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얌선생 님의 서재입니다.

슬픈 고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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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얌선생
작품등록일 :
2023.04.25 00:21
최근연재일 :
2023.05.19 16:47
연재수 :
2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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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5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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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5.03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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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쪽

12화. 기념이 될 성적표 (2)

DUMMY

버스 정류장 근처에 있는 당구장에 갔다.


주인 아줌마가 선철을 알아보고 반겨주셨다. 특활시간 내내 쇠도 씹어 먹을 나이라며 계속 먹을 걸 가져다주시던 주인 아줌마는 당구반 동아리 아이들 사이에 인기가 최고였다.


창가 쪽 당구대에는 아이들이 왁자지껄하게 당구를 치고 있었다.


당구장에 처음 왔다는 수혁은 궁금한 게 많았다. 이제 말을 배우는 어린아이처럼 들떠서 질문이 많았다.


당구 실력이라야 초보에 불과한 선철의 말과 동작을 무슨 프로선수의 특강쯤이라도 되는 양 귀 기울여 들었다.


당구를 치는 시간이 지날수록 선철은 수혁에 대해 알아가는 느낌이었다. 수혁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섬세했고 집중력이 뛰어났다. 무엇보다도 처음 놓인 환경에 기죽지 않는 당당함을 가졌다. 당구반 선생님이 당구 치는 모습을 보면 그 사람의 성격을 알 수 있다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한 시간이 지나서 당구장을 나섰다. 수혁이 흥분해서 떠들었다.


“너 진짜 잘 치더라, 텔레비전에서 본 선수들 같던데. 우리 일찍 끝나는 날 한 번씩 치자. 완전히 신세계야, 정말 짱이야.”


흥분한 수혁의 모습에 공짜로 당구를 쳤다는 찜찜한 기분이 사라졌다.


학교 담장을 따라 걸으면서도 수혁은 처음이라 입에 익숙하지 않은 당구 용어를 써가며 연신 시늉을 했다.


자율학습실 앞까지 따라온 수혁은 노골적으로 선철에게 매달렸다.


“친구 부탁 좀 들어주면 안 되냐? 나 원래 부탁 같은 거 안 하는데, 오늘은 눈 딱 감고 너에게 부탁하는 거야. 나 학원 끝나는 시간까지만 같이 있어 주라. 정말 혼자 있기 싫어서 그래. 자존심 그런 거 나 지금 생각 안 해. 그만큼 절박하다, 선철아.”


당구 칠 때도 그랬다. 파워가 필요할 때 수혁은 당구알이 깨질 만큼 힘을 썼다. 지금처럼 꼭 이루고야 말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선철은 자율학습실 문을 소리 나지 않게 밀고 들어갔다. 다행히 감독 선생님은 자리를 비우고 없었다. 아이들 자리도 거의 비어있었다. 부모님 방문 행사가 있는 날의 자율학습실은 언제나 그랬다.


가방을 매고 나오는 선철을 수혁이 해맑은 웃음으로 맞았다.


라면 먹은 지 얼마나 되었다고, 배고프다고 성화를 부리는 수혁에게 이끌려 두 정거장을 걸어 패밀리 레스토랑에 들어갔다.


내색은 안 하려고 했지만 선철은 시선을 어디에 둘지 몰랐다. 벽마다 쓰인 큼지막한 영어부터 익숙하지 않았고, 메뉴판에 적힌 글자는 거의 암호에 가까웠다.


빨간 모자를 쓴 예쁜 여자가 테이블 옆에 쪼그려 앉았다. 빨간 모자의 몸에 무릎이 닿을까 봐 선철은 화들짝 두 다리를 모았다.


빨간 모자는 메뉴를 결정했냐고 선철과 눈을 마주치며 물었다. 순간 투명한 손이 목을 조르는 것만 같았다. 열이 올라 뜨끔거리는 얼굴을 숙여 메뉴판을 보는 척 고개를 숙였다.


“아직 못 골랐어요, 조금 있다가 와 주세요.”


수혁의 말에 빨간 모자는 두 손을 모으고 인사를 하고 갔다.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선철과 수혁의 시선이 만났다.


“미안 미안, 니가 이런 데 싫어하는 줄 몰랐어. 느끼한 것 싫어하는 애들은 여기 싫다고 하던데, 내 생각만 하고 오자고 했네. 난 아무거나 잘 먹으니까 우리 그냥 나가서 다른 거 먹자.”


“아냐, 실은 나 이런 데 처음 와서 그래. 메뉴판에 있는 게 도대체 뭐가 뭔지 몰라서.”


“그랬구나, 난 그것도 모르고.”


수혁은 바싹 다가앉아서 한 번 들어서는 알기 어려운 메뉴를 하나하나 설명하기 시작했다.


테이블 위에 가득 놓였던 음식의 자취는 없어지고 빈 접시만 남았다. 디저트로 수혁은 커피를, 선철은 아이스크림을 시켰다.


수혁이 음악에 대해, 영화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 선철은 주로 듣기만 했다. 선철이 반 아이들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반대로 수혁이 들었다.


은은하게 흐르는 음악 소리, 그 위에 담소를 나누는 사람들의 기분 좋은 소란스러움이 얹혀 있었다. 식사를 마친 둘의 목소리는 포만감만큼 커졌고, 웃을 때는 더욱 커졌다.


“선철아,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애들 말이, 네가 경찰대 가고 싶다고 했다던데, 정말이야?”


“응, 그래.”


수혁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테이블 앞으로 바싹 다가왔다.


“왜, 네가 왜 경찰대를 가?”


“경찰대가 어때서, 난 좋아 보이던데.”


수혁이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두 박자 늦게 말했다.


“경찰대가 나쁘다는 게 아니고, 너하고 좀 안 맞는 거 같아서.”


“그래? 나는 잘 어울리는 거 같은데.”


“애들이 다 너는 대학 교수나 연구자가 어울릴 것 같다고 했거든. 너라면 SKY는 충분히 갈 거고, 나도 네가 대학교수 같은 걸 하면 딱 일 거 같은데.”


“그렇게 얘기해주니까 고맙다.”


선철이 기분 좋게 웃었다.


“수혁이 너는 의대 갈 거지? 의사 집안이니까.”


말을 마치고 선철은 당황했다. 수혁의 얼굴이 순간 어둡게 굳어졌기 때문이다.


수혁은 좀처럼 입을 떼지 않았다. 선철은 수혁이 왜 그러는지 알 수 없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이유를 묻고 싶지 않았다. 의도하지 않았어도 상처를 건드리는 말을 한 건 분명해 보였다. 이럴 때는 사과나 변명 없이 가만히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선철이었다.


8시가 지난 거리는 도시의 북적임이 한풀 꺾여 있었다. 자율학습이 끝나는 시간이 10시니까, 수혁과 두 시간이나 더 같이 있어야 했다.


식사비를 계산하고 레스토랑에서 수혁이 나왔다. 선철은 잘 먹었다고 말했다. 하마터면 고개를 숙일 뻔했다. 수혁은 자기가 산 게 아니라 엄마의 카드가 산 거라고 했다. 선철은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었지만 부러웠다.


길 너머로 어둠에 싸인 학교가 보였다. 목적지를 정하지 않고 걷다 보니 맴돌 듯 처음으로 다시 돌아온 것이다.


여전히 수혁은 말이 없다. 선철이 몇 번 말을 건네 보았지만, 수혁의 시큰둥한 대꾸에 더 이상 대화가 이어지지 않았다.


교문을 지나 운동장을 마주하고 섰다. 흐릿한 네 개의 조명등이 비추고 있는 인조 잔디 구장은 안개에 싸인 듯 몽롱했다.


한 무리의 아이들이 어둠을 뒤집어쓴 채 공을 쫓아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있었다. 검고 넓은 공간에서 소리를 내는 것은 그 아이들뿐이었다.


불 켜진 자율학습실이 보였다. 선철은 수혁을 따라나선 두 시간 전의 결정을 후회했다. 앞서가던 수혁이 걸음을 멈추고, 벤치에 털썩 앉았다.


“여름이 가긴 갔나 봐. 저녁이 되니까 제법 쌀쌀하네.”


수혁이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푸른빛이 도는 검은 하늘이 시야 가득히 펼쳐졌다.


선철은 별을 세었다. 몇 개 되지 않았다. 어느 것은 흐릿해서 별인지 조차 분명하지 않았다.


“난 왜 의대를 가야 하는 거지?”


불쑥 꺼낸 수혁의 말에 하늘을 보던 선철이 눈길을 돌렸다. 수혁은 캔버스에 그려진 인물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선철은 가슴이 먹먹했다. 수혁이 무척 슬퍼 보였기 때문이다. 금방이라도 또르르 눈물이 쏟아져 내릴 것만 같았다.


“남들은 못 가서 난린데 그런 말을 하니까 좀 이상하네. 그리고 너희 아버지 의사잖아 형도 의대에 다닌다고 들었는데. 내가 잘못 들은 건가?”


대답 대신 수혁은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선철은 마른침을 삼켰다. 긴 침묵 끝에 수혁이 나지막하게 말했다.


“우리 아버지 의사 맞아. 우리 형이 의대 다니는 것도 맞고. 다들 우리 집을 두고 대단하대. 엄친아라는 소리 형이나 나나 많이 들었지. 사실 나도 얼마 전까지는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아. 항상 우쭐대며 살았으니까.”


선철은 우쭐대는 수혁의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애초에 난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눈치 채지 못하게 뻐기는 재주가 있는 걸까. 모든 것을 가진 사람들은 우쭐댈 필요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그런 사람들도 사람들 앞에서 뻐기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신기한 건 아버지가 의사면, 네 형처럼 자식들도 의대에 가는 경우가 많잖아. 어떻게 그렇게 될까? 의대 가기 정말 어려운데 그러고 보면 공부 잘하는 것도 유전인가 봐.”


그 말에 대해 수혁은 아무 말하지 않았다. 멍한 시선으로 운동장에서 뛰는 아이들을 쳐다보던 수혁이 생기라고는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형은 왜 의대에 갔을까? 그리고 나는 왜 당연히 의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 거지? 아마, 어렸을 때부터 의사인 아버지를 보았고, 주변에서 의사가 되라고 하니까 그리고 가장 중요한 이유는 의대에 가면 다들 나를 부러워할 테니까. 성적이 안 되면 몰라도 갈 수 있는 성적이면 다른 생각할 필요가 없었던 거지.”


수혁은 말끝에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선철이 넌 왜 경찰대야? 혹시 아버지가 경찰이야?”


“거긴 등록금이 공짜잖아. 우리 집은 대학 등록금을 댈 형편이 못 되거든.”


“미안해, 그런 이유일 줄은 몰랐어.”


“등록금 못 내는 형편인 게 어디 나만 그런가, 괜찮아. 사실은 더 중요한 이유가 있기는 하지만 너에게 말하기는 좀 그래.”


“더 중요한 이유?”


수혁이 고개를 돌려 쳐다봤다.


“그렇지 우리가 절친은 아니지.”


수혁의 목소리에 실망이 담겼다.


“사실 우리가 절친은 아니잖아. 그런데 수혁아 너 그거 아니? 오히려 절친이라서 절대 하지 못하는 얘기도 있어. 그걸 말하면 친구들이 나를 이상하게 볼 거 같아서 못하는 얘기. 그런데 묘한 건 나를 이상하게 볼까 봐 두려워서 입 꾹 다물고 가슴속에 몰래 품고 있는 것도 정말 힘든 일이야.”

말을 마친 선철은 벤치 등받이에 기대 뒷머리를 젖히고 검은 하늘을 올려다봤다. 선철에게서 눈길을 떼지 못하던 수혁도 검은 하늘을 올려다봤다. 운동장을 가로지르며 부는 바람이 뺨을 스쳤다.


한동안의 침묵을 깬 건 수혁이었다.


“아까 라면집에 있는데 정말 황당했어. 아이들로 복잡할 거라고 생각해서 갔는데 아무도 없는 거야. 또 아무도 오지 않고. 난생처음 혼자서 밥을 먹는구나 하는데 네가 들어왔어. 반갑더라.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너하고 같이 있어야겠다고 생각했어.”


“······”


“선철아, 나도 아무에게도 하지 못한 얘기가 있는데 한 번 들어볼래? 왠지 너라면 누구에게도 전하지 않을 거 같아서.”


선철이 하늘을 올려다보던 눈길을 돌려 수혁을 쳐다봤다가 다시 머리를 젖히고 하늘을 봤다. 수혁이 천천히 말을 꺼냈다.

“모의고사 성적표를 받고 며칠이 지난날이었어. 나는 너무 몸이 안 좋아서 학원도 못 가고 형 침대에 누워 있었어 ······ 혹시 내가 형 방에 있지 않고 내 방에 있었으면 그 일이 없었을까 ··· 아니 아닐 거야 그런 일은 전에도 있었고 또 그다음에도 있었을 테니까. 바보같이 나만 몰랐던 거지.”


수혁의 목소리가 심하게 떨렸다. 선철은 두 눈을 꼬옥 감았다.


“선철아, 기억나? 나 모의고사 날 심하게 아팠던 거?”


“기억나지, 너 토할 것 같다고 화장실에 계속 왔다 갔다 했잖아. 네가 얼굴이 창백해서 시험을 보니까 감독으로 들어온 담임 샘이 양호실에 가서 누워있으라고 했잖아. 내신 성적에도 안 들어가는 시험 보느라 몸 상하지 말라고 하면서.”


“어쩜 그렇게 잘 기억해?”


선철이 웃음기를 담아 말했다.


“내가 모의고사에서는 너한테 밀려서 항상 2등만 했잖아. 그때 처음 1등 할 거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 미안한 말이지만 네가 아프다니까 은근히 좋던데.”


수혁의 얼굴에 설핏 미소가 스쳤지만 금방 괴물이라도 본 것처럼 굳었다.


“엄마하고 아버지가 집에 들어오시는 소리가 들렸어. 나는 그냥 엎드려 있었어. 귀찮아서. 우리 엄마는 내가 아프다고 하면 많이 오바하시거든. 처음에는 그 소리가 텔레비전 소리인 줄 알았어. 근데 점점 이상한 기분이 드는 거야. 나는 침대에서 내려와 살짝 방문을 열었어. 엄마하고, 아버지가 싸우고 계셨어. 아니, 그건 싸운 게 아닌가?”


선철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수혁은 한참이나 끊었던 말을 이었다.


“가방에 교과서를 챙기다가 보니까 책갈피 사이에 모의고사 성적표가 있었어. 죽도록 아파서 제대로 보지 못했으니 성적이 어땠겠어. 처음엔 찢어버릴까 하다가 이런 성적표도 기념이라는 생각에 성적표를 모아두는 파일에 넣었지. 그걸 아버지가 봤나 봐. 다정한 아버지는 아니지만 존경하는 아버지였는데. 왜, 성공한 아버지는 존경스럽잖아 ······ 난 아버지가 욕하는 걸 그때 처음 봤어. 머리 나쁜 여자하고 결혼했더니 아들들이 하나같이 병신이라고. 형이 지방대 의대를 간 것도 머리 나쁜 엄마 때문이고, 내가 공부를 못하는 것도 엄마의 나쁜 유전자 때문이라고. 아버지 친구 아들은 서울대 의대를 들어가 아버지하고 동문이 되었는데. 머리 나쁜 년, 병신 같은 년, 씨발 년 때문에 아버지 아들들은 쓰레기라고··· 나는 눈앞에서 벌어지는 장면을 믿을 수가 없었어. 엄마가 소리쳤어. 내가 왜 공부를 못 했냐고, 공부를 잘했으니까 그 대학에 들어간 거라고. 그때 갑자기 둔탁한 소리가 들렸어. 난 떨면서 문틈으로 밖을 내다봤어. 배를 움켜쥐고 소파에 쓰러진 엄마를 아버지가 발로 찼어. 아버지는 쉬지 않고 년, 년, 년 했어. 베란다로 기어가면서 엄마는 죽어버릴 거라고 소리를 쳤고, 아버지는 더 큰 목소리로 죽으라고 죽어버리라고 소리쳤어. 내 집 더럽히지 말고 한강에 빠져 죽으라고······ 그런데 난 할 수 있는 게 없었어. 고작 형 옷장으로 숨는 거 밖에는.”


가파른 산비탈을 오르듯 수혁의 호흡은 점점 빨라졌다. 선철의 호흡도 가빠졌다. 이야기를 마친 다음에도 둘의 호흡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선철은 검은 하늘만 바라봤다. 도저히 고개를 돌려 수혁의 얼굴을 볼 수가 없었다.


이야기를 듣기 전까지 수혁은 다른 세상 사람이었다. 높은 아파트에 살고 벤츠 자동차를 타고 고가품만 소유한 세상의 사람. 수업 시간에 먼발치로 수혁을 볼 때, 방과 후에 자율학습실로 가는 자신과 달리 대치동 학원으로 가는 수혁과 마주칠 때, 의사 아버지를 두었다는 사실을 떠올릴 때, 선철은 뼛속까지 수혁을 부러워했다.


“수혁아, 아버지가 엄마 때릴 때 혹시 달려들어 그 더러운 손을 붙잡고 싶지 않았어?”


선철의 말에 수혁이 고개를 돌렸다. 선철이 말을 이었다.


“나는 이제 아버지에게 달려들어. 휘두르는 손을 붙잡고 아버지를 막아서. 그러면 아버지는 엄마 대신 나한테 주먹질을 하지. 아들이 이만큼 컸으면 그렇게라도 엄마를 보호해야 할 것 같아서.”


수혁의 눈동자에 불이 켜졌다.


“나보고 왜 경찰대를 가냐고 물었지. 물론 우리 집이 가난하기 때문이야. 그런데 그게 다가 아니야. 진짜 이유는 내가 경찰이 되면 아버지가 날 무서워할 테니까. 아버지를 때리지 않고도 죽이지 않고도 엄마를 지킬 수 있으니까. 그리고 너희 아버지나 우리 아버지 같은 사람들을 감옥에 가둘 수 있으니까.”


통쾌했다. 처음으로 가슴속 깊은 말을 입 밖으로 꺼내고 나니 선철은 짜릿하게 통쾌했다.


그런데 수혁의 표정은 여전히 철갑처럼 굳어있다.


“제기랄, 그러면 네가 경찰이 될 때까지는? 그때까지 엄마는 개, 돼지처럼 맞아야 하는 거야. 엄마 대신 맞는다고. 그런데 엄마만 있을 때는 네가 없을 때는?”


그 말이 선철의 뺨을 갈겼다. 수혁의 입가에 의미를 알 수 없는 미소가 담겼다.

선철은 그 미소를 잊지 못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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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화. 기념이 될 성적표 (2) 23.05.03 27 0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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