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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산(韓山) 님의 서재입니다.

1987 미안해 아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대체역사

한산(韓山)
작품등록일 :
2023.05.10 12:14
최근연재일 :
2023.06.18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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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6.16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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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58화 공존의 조건 (7)

DUMMY

역시, 무슨 일을 하던 빈틈없는 사람이다.


그새 나에 대한 것들을 거기까지 알아낸 것을 보면 말이다.


이제껏 YS와 DJ는 물론 정주열 회장도 나에 대해서 거기까진 뒷조사를 하지 않았던 것을 감안한다면, 그는 분명히 다른 이들과는 다르다는 얘기다.


물론, 그의 입장이 다른 이들처럼 보고를 받기만 하는 사람들과는 달리, 보고를 해야 하는 입장이기도 했지만 말이다.



“다만이요? 후후.. 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고 싶으신 겁니까?”



나는 충분히 예상 가능한 그의 대답을 캐물었다.



“그냥.. 이건 또 뭘까, 싶어서 말이죠. 정말 김 위원장은 볼수록 재밌는 사람이다, 이 말입니다. 내가 겪어봐서 잘 아는데, 이런 경우는 상당히 위험하거든요. 뭐, 내 편이면 꽤 든든하겠지만 말입니다. 흠.. 어떻게 알았습니까? 이제 막 선정된 신도시 건설 부지를? 그것도 계획서 상으로 이곳이 가장 중심이 되는 곳인데 말입니다?”



역시.


그가 궁금했던 것은 그것이겠지.



“아, 그렇게 선정이 됐습니까? 그거 참, 우연의 일치군요. 저야 단지 되도록 가까운 곳으로 부지를 찾다보니 매입을 한 건데.. 뭐, 하긴. 신도시나 임시 거주시설이나 일단은 들어올 사람들의 접근성을 확보해 줘야 하니까, 크게 다를 것은 없었을 겁니다. 말 그대로 수도권 신도시 아닙니까?”



나는 늘 준비를 하고 있던 대답을 했다.


식은땀이 흘렀던 노무연 변호사와의 대화 이후, 이런 부분들은 좀 더 설득력 있는 답변들이 필요하다는 걸 절감했기 때문이다.



“단지 접근성을 고려했다? 예, 뭐 다들 먹고 살아야 하니까, 그럴 수도 있겠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심지의 입지까지 이렇게 정확하게 골라낸 건, 정말 신기한 일이지만 말입니다.”



그의 웃는 눈에 여전히 의심이 가득했다.


하긴 이제 막 내부적으로 선정된 신도시 건설부지는 정부 측과의 합의를 거쳐, 대선 정국에 돌입하기 직전에야 공표가 될 것이었다.


때문에 그때까지 이 사실은 그야말로 기밀 중에 기밀.


그는 그의 성격만큼이나 진행하는 전 과정에서 모든 정보를 철저하게 차단해왔을 것이다.


그런데 내가 사들인 이곳의 위치와 절묘한 타이밍이 그의 입장에선 얼마나 기가 막히고 코가 막혔을까.


다른 사람도 아닌 그라면, 충분히 의심하고도 남을 만한 상황이었다.



“그 정도로 정확하다면 저야 말로 신기한 일이네요. 우연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할 만큼 말입니다.”


“덕택에 김 위원장은 조만간 이 땅의 시세차익으로 벌어들이는 수익이 제법 솔솔 하실 겁니다. 뭐, 좀 더 싼 곳도 있긴 했지만 말입니다.”


‘싼 곳? 쳇. 분당 얘기군. 돈이야 아깝지. 하지만, 어차피 필요한 만큼의 시세 차익을 기다리기엔 시간이 너무 걸린다. 게다가 분당은 가만히 둬도 천당 아래 분당이 되며 난리가 난다. 그건 정치를 하려는 내게는 오히려 발목이 잡히는 독이 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어딘지는 모르겠지만, 돈만 보고 한 일이면 그 싸다는 곳이 더 나았겠지요. 하지만, 제겐 그 돈 보다 저 사람들이 더 중요합니다. 저들과도 공존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나는 짐짓 모르는 척, 제법 의로운 눈빛을 반짝였다.



‘그래. 차라리 나중에 이 신도시의 첫 제안자로서 서민들의 주거안정과 도시균형발전에 일조한 걸로 숟가락을 얹는 게 현명하다. 여차하면, 더 투자 가치가 좋았던 분당 땅을 두고 왜 여길 샀겠냐며 발뺌하기도 좋고.’



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흠.. 진심이라면, 김 위원장은 참 대단한 분입니다. 제가 이런 일은 많이 해봐서 아는 데, 보통 사람은 돈 앞에서 그러기가 쉽지 않거든요.”



그의 저 미소야말로 진심인지가 의심스러웠다.


나는 속을 알 수 없는 이상박 회장의 의중을 살피기 위해 화제를 돌렸다.



“그나저나, 그새 저희 할머니까지 알아보시고, 바쁘셨겠습니다.”



그가 나의 말에 의외인지, 살짝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거야 뭐, 거래를 위해 상대를 파악하는 것은 기본 중에 기본이니까요. 지금의 저에겐 현세라는 조직의 힘도 있고 말입니다.”


“그러시겠지요. 재계 서열 1위인 현세의 힘이면, 외국 기업도 아니고, 저 같은 소시민의 신상 정도야, 뭐.. 후후. 그래도 신도시 개발 계획으로 바쁘신 회장님께서 그새 제 주변도 알아보시고, 손 교수님이랑 이재우 사무총장까지 진보련에 합류시키실 정도로 빠르게 움직이실 줄은 몰랐습니다. 어떻게.. 마음을 굳히신 겁니까?”



우리 할망구에 대한 나의 반어법에도 대수롭지 않게 대꾸하던 그가, 이어지는 나의 말에 눈썹을 꿈틀거렸다.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습니다. 진보련이라면 이번에 창당을 준비 중인 범재야 세력정당, 진보연합을 말하는 겁니까? 게다가 손교수랑 이재우 사무총장이라면..”


“네. 이상박 회장님과 함께 박통의 굴욕적인 한일회담을 반대하며 싸웠던 6.3 동지회의 손학구 교수님과 민생당의 이재우 사무총장 말입니다. 회장님께서 그분들에게 먼저 합류해 달라고 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이번엔 그가 나의 대수롭지 않은 대꾸에 가볍게 혀를 찾다.



“허, 이거 참.. 우리 김 위원장은 적이 되면 정말 큰일 날 사람이네요. 대체 무슨 근거로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그거야 뭐, 거래를 위해 상대를 파악하는 것은 기본 중에 기본이니까요. 지금의 저에겐 민통당이라는 조직의 힘도 있고 말입니다.”



나는 그가 나에게 했던 말을 고스란히 돌려주었다.


비록 현세에는 못 미칠지 모르지만, 민통당은 엄연히 대한민국의 제1 야당이다.


미국의 CIA조차 일정부분 정보를 공유하는 정치 집단이니, 그 정도의 정보는 그리 어렵지 않다는 얘기다.


물론, 이에 대한 나의 단언은 순전히 손학구 교수와 이재우 사무총장의 연결고리가 아직은 이상박 회장 밖에는 없다는 추측에서 나온 확신이지만 말이다.



“허.. 하! 하하하하! 김 위원장 이 사람 정말..”



잠시 황망하게 나를 바라보던 이상박 회장이 끝내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그의 입장에서도 내가 만만치는 않다는 것 같았다.



“왕회장님껜 모르는 척 해드리겠습니다. 뭐, 아직은 왕회장님이 회장님을 놓아주실 생각도 없어 보이니까요.”



누구보다도 힘을 가질 때까진 엎드려서 힘을 기를 줄 아는 그다.


그러니 당연하게 그가 지금 자신의 속내를 들키고 싶지 않은 인물은 정주열 회장이겠지.



“그럼. 나는 김 위원장이 태원각 큰 선생의 핏줄이라는 것을 비밀로 해드리면 되겠습니까? 왕회장님께서 이를 아셨다면, 벌써 큰 선생을 직접 만나셨을 텐데, 아직까진 그런 움직임은 없으시니 말입니다.”



마치 준비하고 있었던 것처럼 그의 답에 막힘이 없었다.


실상 정주열 회장이 우리 할망구를 직접 만나기 시작하면 상대적으로 내가 운신할 폭이 좁아지는 건 피할 수 없게 된다.


때문에 내가 우리 할망구와 사사건건 부딪히지 않기 위해서라도, 그의 말은 나에게도 분명히 필요한 조건이었다.



“네, 뭐. 그래주시면 좋겠습니다. 보태서 한 가지 더 부탁드릴 것도 있습니다만.. 그건 좀 더 나중에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나는 그에게 작은 여운을 남기고 말을 마쳤다.



“쓰읍. 흠.. 그게 뭔지 몰라도, 이러면 우리 거래가 조금 기우는 것 같은데... 그래도 지금 당장은 말씀을 안 하실 거지요?”



그가 왠지 밑지는 장사라는 말투로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명색이 회장님이시고, 까마득한 어른이시면서, 그럼 그 정도 양보도 안하실 생각이셨습니까?”



나는 필요할 때마다 꺼내 쓰는 비장의 무기를 꺼냈다.


물론, 입장을 바꿔야 하는 상황이면 나조차도 내 전생의 나이로 생각하지만 말이다.



“하하.. 알겠습니다. 뭐, 그렇게 까지 정색을 하신다면야..”



그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내게 그럴 이유가 있다면, 그 정도쯤은 기다려 줄 수 있다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그나저나.. 조심은 하셔야 할 겁니다. 왕회장님은 모르는 것이 아니라, 아직은 알 필요가 없는 것이니까요. 그가 알려고 들면 그땐.. 아무도 못 막습니다. 뭐, 사실 할머님이 태원각 큰 선생이시라는 게 득이면 득이지, 실은 아니기도 하고 말입니다.”



그가 웃으면서 말을 보탰다.


역시, 나보다는 그의 비밀이 더 무게가 있다는 얘기였다.


그건 그에게 있어 거래는 결코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질 수 없는 저울과 같다는 말이리라.



‘젠장. 손해라곤 1도 안 보는 능구렁이 같으니라구..’



내가 그에게 뭐라도 말대꾸를 하려고 돌아보던 그때.



“형! 여기 진짜 캡쑝이예요. 킹왕짱 진짜 캡쑝, 왕 캡쑝!!”



무슨 말일까.


아마도 대단히 좋다는 표현 같기는 한데..


시대마다 그 감정을 표현하는 신조어들이 넘쳐나서, 따라가기를 포기한 나는 이런 것에 취약했다.


나는 나에게 달려와 안기는 민재를 시작으로 인사를 위해 몰려나오는 상계동 식구들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


이상박 회장도 그런 내 의도를 눈치 채고 만면에 웃음을 머금은 채 상계동 식구들을 맞이했다.



“대체, 언제 이렇게까지..”



너나 할 것 없이 감격에 겨운 사람들의 눈가에 눈물이 그렁거렸다.


고작 군대 막사같이 지어 놓은 임시 거주시설에 이런 반응이라니.


그간 그들이 버텨온 천막생활이 얼마나 고되고 외로웠는가를 말해주는 것 같아 씁쓸했다. 그런데.



“아, 그리고 버스 한 대는 놓고 가겠습니다. 아무래도 도로들이 생기고, 교통편이 정리되기까지는 필요하실 것 같으니까요. 또.. 유류비는 왕회장님께서 지원하시라고 하셨습니다만.. 혹시, 대형 면허를 가지고 계신 분이 있는지. 저희 직원을 보내도 되겠지만, 기왕이면 일자리 하나라도 보태라는 왕회장님의 말씀이 계셔서 말이죠?”



이상박 회장의 말에 상계동 식구들이 더욱 놀라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렇지 않아도 아직은 허허벌판인 곳.. 생계를 위한 출퇴근과 아이들의 통학이 어찌 걱정스럽지 않았을까.


타국에서 수많은 현지의 애로사항을 해결해주며 계약을 따내던 현세 건설의 노하우가 빛나는 순간이었다.



“저요! 제가 있습니다!”



잠시 서로의 눈치를 보던 사람들 중에 두 분 정도가 번쩍 손을 치켜들며 소리를 질렀다.


즉석에서 현세 건설과 고용계약을 맺는 것이다 보니, 처음엔 좀처럼 믿기 힘들었던 것 같다.



“하하.. 좋습니다. 한 분 보다야, 두 분이 번갈아 하시는 게 효율적일 겁니다. 서로 개인적인 사정들도 있을 테니 말입니다.”



쳇. 제 것도 아니면서 호탕하게 대답하는 이상박 회장의 얼굴에도 웃음이 가득했다.


하긴. 그 또한 누구보다도 가난이라면 지긋지긋했을 사람이기에 당연한 일이었으리라.


한 여름, 뜨거운 태양의 열기 속에서 웃는지 우는지 모를 사람들의 야단법석이 정겨웠다.


그리고 나는..



‘다른 지역의 철거민들도 이주를 서둘러야 할 텐데.. 그건, 일단 제경구 선생님께 부탁드리고, 이제 나는 다음을 준비해야만 한다.’


본격적인 대선정국을 위하여 긴 호흡을 가다듬었다.




* 본 작품은 대한민국 현대사를 모티브로 한 것이나, 등장 인물이나 단체의 이름, 역사적 사실들은 작가의 상상력에 의해 재구성 된 픽션임을 밝힙니다.

* 공모전 참여 중입니다. 많은 관심과 추천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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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52화 공존의 조건 (1) 23.06.10 85 3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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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44화 잠룡들을 움직이다. (1) 23.06.02 117 3 9쪽
44 43화 다른 나라 DNA (6) 23.06.01 121 3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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