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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산(韓山) 님의 서재입니다.

1987 미안해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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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산(韓山)
작품등록일 :
2023.05.10 12:14
최근연재일 :
2023.06.18 20:00
연재수 :
6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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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74,7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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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6.15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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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57화 공존의 조건 (6)

DUMMY

노무연 변호사는 대책 없이 사람 마음을 덜컥 내려앉게 하더니, 이내 너무나도 태연하게 말을 이었다.



“사람이 백 마디 말을 해도, 그 말이 사람을 속이거나 제 이득만을 위한 것이면, 믿으라고 하는 말 자체가 사기겠지만.. 어떤 것은 지나온 시간과 상황만으로도 진실이 됩니다. 저는 위원장님에게서 그 진실을 봤다, 그래서 고생했다, 그 말씀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위원장님.”



나는 예상치 못한 그의 위로에 마음이 울컥했다.



‘염병. 이게 무슨 주책이야. 나보다 나이도 한참 어린 사람한테..’



하지만, 나는 그의 따듯한 위로에도 밖으론 별 내색 없이 전방만 주시했다.


보통 이런 경우는 눈만 잘못 깜빡거려도 찔끔거리는 눈물 때문에 망신살이 뻗친다.


그래서 그쯤하면 좋으련만..



“그리고.. 너무 빨리 혼자서 앞서 가지 마십시오. 혼자면 너무 외롭지 않습니까? 비록, 위원장님처럼 월등하진 못해도, 주위를 둘러보면 꽤 뛰어난 동지들도 언제나 곁에 있으니까.. 함께 가십시다. 저도 끼아주시면 좋겠고요. 뭐, 공존이야 의견이 달라도 가능하지만, 동지는 일단 의견이 같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맞지요?”



늦은 밤.


그가 기분 좋게 기지개를 피며 조수석 시트에 몸을 기댔다.


하지만 나는..



‘우웁.. 웁..’



치밀어 오른 격한 감정에 이를 악물었다.


울면 지는 것이고, 내 입장에선 나이 값도 못하는 것일 테니.


그를 태운 나의 차가 어느새 올림픽 도로를 빠져나와 여의도 인근으로 향하고 있었다.



“큼, 큼! 어찌됐건 앞으로가 더 문제일겁니다. 양김의 실질적인 단일화도 단일화지만.. 이기던 지던, 대선 이후엔 많은 사람들이 갈라서게 될 테니까요.”



나는 차 안에서 끝끝내 사족 하나를 더 달았다.


왠지 이대로라면 내가 지는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을 지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



“네, 네. 그래서 우리가 열심히 해야지요.”



그새 조는 건지 노무연 변호사의 대답이 기분 나쁘게 성의 없다.




***




보름 뒤.


결선투표제에 대한 YS와 DJ의 합의를 바탕으로 8월 말에 접어든 9인회담은 일사천리로 전문과 조항의 합의를 이끌어 냈다.


이제 9월 중순까지 남은 부칙만 합의되면, 개헌안은 역사대로 국회의 ‘헌법개정특별위원회’를 통해 본회의에 상정될 것이고, 통과되면 국민투표를 거쳐 새 헌법으로 공포되리라.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그러나 향후 40년 가까이 대한민국의 기틀이 되는 6공화국 헌법, 소위 87년 체제라고 불리는 새 헌법이 기지개를 펴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나는..



“형!!”



저 녀석을 만나러 근 한 달 반 만에 명동성당에 와 있었다.



“잘 있었어?”



우다다다 뛰어나와서 내 품에 안기는 우리 솥뚜껑.. 아니, 민재를 들어 안은 내가 녀석과 눈을 맞췄다.


글썽거리는 녀석의 눈빛이 그간, 많이도 서운하고 섭섭했나보다.



“네. 형. 어.. 아, 아뇨. 사실 잘 못 있었어요. 엄마도 그렇고, 자꾸 어른들이 형은 안 올 거라고 그래서.. 그래서.. 그치만, 저는 형이 꼭 다시 올 거라고 그랬어요. 형은 약속을 지킬 사람이라고. 헤헤, 역쉬~ 내 말이 맞죠?”



민재의 말 속에서 상계동 어른들의 많은 원망들이 들리는 것만 같았다.


하긴, 몇몇의 재야 어른들과 학생들이 나름 꾸준하게 그들을 들여다봤어도, 그들에게 있어 절실한 건 어쩌면 정치인들이었으리라.


개개인이나 자금력이 빈약한 민간차원에서는 절대로 해결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철거민 문제니까.



“그래. 일단 형이 어른들하고 전화는 했는데.. 짐은 다 쌌어?”



나는 유난히 신난 민재의 반응에 녀석의 엄마가 나의 방문에 대해 말하지 않은 것을 눈치 챘다.


예나 지금이나, 부모들은 아이가 좋아하는 것을 보기 위해 서프라이즈를 좋아하니까.



“네, 여기.. 어? 아, 그랬구나. 저는 어제 저녁부터 어른들이 짐을 싸시길래.. 쳇! 엄마는 알고 있었으면서 나한테 말도 안 해주고!”



녀석도 그제야 눈치를 챘는지, 내게 제 책가방을 보여주다 말고 입을 삐죽거렸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우리를 보고 있는 제 어미를 향해 못내 서운한 응석을 부리는 것처럼 말이다.



“안녕하세요. 민재 어머니. 위원장님 그리고 신부님.”



나는 민재를 들어 안고 몇 걸음을 옮겨, 나를 향해 다가오는 민재 엄마와 철거민 세입자 대책위원장에게 인사를 했다.


김승운 신부님을 비롯해 그들의 뒤에서 흐뭇하게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다른 신부님들과 수녀님들, 세입자 어른들에게 인사를 건네는 것도 잊지 않았다.



“네. 감사합니다. 정말.. 이렇게 다시 오실 거라곤..”



민재 엄마가 내게 인사를 했다.


40도 안된 것 같은 그녀의 얼굴이 나이보다 많아 보였다.



“죄송합니다. 많이 늦었네요. 준비는 다 하셨어요?”



나는 그녀에게 최대한 내 속내를 들키지 않도록 친절하게 물었다.



“네, 뭐. 근데, 짐이랄 것도 별로 없어서..”


‘젠장.. 나름 무난한 질문이었는데.. 그래, 민재는 책가방, 민재 엄마는 몇몇 살림도구가 전부겠지.’



나는 그녀의 대답에 그저 담담히 고개를 끄덕이는 수밖에 없었다. 대신.



“자, 그럼.. 위원장님께선 어제 확인을 하셨으니 잘 아실 테고.. 일단 오늘은 현세 측에서 사내버스 두 대를 준비했습니다. 천막을 제외한 큰 짐들은 1차로 어제 보내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민재 엄마의 인사를 받은 내가 세입자 대책위원장에게 실무적인 것들을 확인했다.



“네. 각자가 들고 탈 수 있는 짐 정도만 남겼습니다. 집마다 버리지 못하는 가구 같은 것들은 어제 다 보내주신 트럭에 실어 보냈고요. 여기 이 천막만 짐칸에 실으면 될 것 같은데..”


“칫, 뭐야. 엄마. 어제는 어떤 분들이 수리해 준데서 가져가는 거라며. 어쩐지.. 내가 너무 많다 했어. 순 거짓말쟁이야 엄마는.”



세입자 대책위원장의 말에 대뜸 민재 녀석이 투덜대며 끼어들었다.


민망해 하는 민재 엄마로부터 사람들 사이로 기분 좋은 함박웃음이 퍼져나갔다.



“후후. 그럼, 가시죠. 그 쪽에서도 아마 사람이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나는 김승운 신부님과 성당 분들에게 인사를 건네곤, 민재의 책가방을 둘러매고 먼저 나섰다.


민재가 나를 따라 잽싸게 성당 분들에게 배꼽인사를 하곤 내손을 잡았다.




***




두 시간 여 뒤.


나와 민재, 상계동 식구들을 태운 버스 두 대가 정발산 인근에 도착했다.


아직은 비포장도로로 되어 있는 곳들을 지나다 보니, 생각보다 시간이 더 걸렸다.



“우선은.. 김위원장 말대로 기본적인 것들만 구비를 했습니다. 그래도 뭐, 우리가 현장들 구축할 때 하는 만큼은 되니까, 생활하는 데는 충분할 겁니다.”



일부러 나온 걸까.


이상박 현대건설 회장이 내 곁에서 내 땅에다가 세워놓은 임시 주거시설을 바라보며, 빙그레 웃음을 지었다.



“우아아아아!!”



나와 이상박 회장의 눈앞으로 버스에서 내려 방방 뛰는 민재와 감격에 겨워하는 상계동 식구들이 보였다.


그들은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콘크리트로 기초를 다져 세운 판넬 하우스로 들어섰다.


전기는 물론, 수도가 들어와 있는 공동 화장실과 목욕탕, 주방까지 갖춰진 임시 주거시설이었다.


한쪽으로, 같은 기초 위에 마사토를 올리고, 건설 비계 파이프와 안전망으로 펜스를 쳐놓은 농구장만한 운동장이 보였다.


민재를 비롯한 몇몇 아이들이 그 운동장에 있는 작은 축구골대와 농구대를 바라보며 환호성을 질렀다. 그리고..



“그나저나.. 여당 쪽 지원으로, 허가가 안 되는 곳에 정화조도 설치하고, 수도와 전기도 땡기긴 했는데..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이 땅의 주인이 김 위원장이라는 것도 확인을 했습니다만.”



민재의 모습에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짓고 있던 내게 이상박 회장이 웃는 낯으로 두 눈을 반짝거렸다.


그가 무언가 호기심이 가득할 때 보였던 바로 그 눈빛이었다.



‘이 양반은 왜 또..’



나는 이상박 회장의 의심 가득한 눈웃음에 살짝 빈정이 상했다.


냉정하고 치밀한 그의 성격으로 미루어 볼 때, 당연한 것이겠지만 말이다.



“네. 제 땅 맞습니다. 왕회장님께 저들의 집을 지어 달라고 하면서, 신도시 계획까지 내민 마당에 저라고 가만히 있을 수 있습니까? 집안에서 물려받은 것들을 탈탈 털어서 그들이 임시로 거주할 땅이라도 사둬야겠다, 했지요. 뭐, 가지고 있다 보면 땅값이야 언제든 오를 테니, 투자하는 셈 치고 말입니다. 문제 있습니까?”



그에게는 언제나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답이 우선이어야만 한다.


직전까지 인권 변호사였던 노무연과는 달리, 그는 50세가 되기도 전에 이미 자력으로 현세 건설의 회장이 된 외부인이며, 기업인이기 때문이다.


그건 의외로 상당히 유머러스한 그의 화법 속에 늘 칼이 숨어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문제랄 게 뭐 있겠습니까? 불법적인 것도 아니고, 그저 할머님이 태원각 각주시다 보니 집에 돈이 조금 있으셔서, 겸사겸사 투자하신 것을.. 다만.”


“?!”



그가 아무렇지도 않게 내 할머니를 운운했다.




* 본 작품은 대한민국 현대사를 모티브로 한 것이나, 등장 인물이나 단체의 이름, 역사적 사실들은 작가의 상상력에 의해 재구성 된 픽션임을 밝힙니다.

* 공모전 참여 중입니다. 많은 관심과 추천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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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59화 절반의 승리 (1) 23.06.17 66 3 10쪽
59 58화 공존의 조건 (7) 23.06.16 65 3 11쪽
» 57화 공존의 조건 (6) 23.06.15 69 2 9쪽
57 56화 공존의 조건 (5) 23.06.14 66 3 11쪽
56 55화 공존의 조건 (4) 23.06.13 58 3 10쪽
55 54화 공존의 조건 (3) 23.06.12 64 2 10쪽
54 53화 공존의 조건 (2) 23.06.11 74 3 9쪽
53 52화 공존의 조건 (1) 23.06.10 88 3 10쪽
52 51화 잠룡들을 움직이다. (8) 23.06.09 95 4 11쪽
51 50화 잠룡들을 움직이다. (7) 23.06.08 93 5 11쪽
50 49화 잠룡들을 움직이다. (6) 23.06.07 94 3 9쪽
49 48화 잠룡들을 움직이다. (5) 23.06.06 105 4 9쪽
48 47화 잠룡들을 움직이다. (4) 23.06.05 104 3 10쪽
47 46화 잠룡들을 움직이다. (3) 23.06.04 106 3 10쪽
46 45화 잠룡들을 움직이다. (2) 23.06.03 111 3 10쪽
45 44화 잠룡들을 움직이다. (1) 23.06.02 119 3 9쪽
44 43화 다른 나라 DNA (6) 23.06.01 128 3 9쪽
43 42화 다른 나라 DNA (5) 23.05.31 137 5 9쪽
42 41화 다른 나라 DNA (4) 23.05.30 148 7 10쪽
41 40화 다른 나라 DNA (3) 23.05.29 154 7 9쪽
40 39화 다른 나라 DNA (2) 23.05.29 150 6 10쪽
39 38화 다른 나라 DNA (1) +1 23.05.28 172 6 9쪽
38 37화 설계된 엔딩 (5) 23.05.28 164 4 11쪽
37 36화 설계된 엔딩 (4) +1 23.05.27 162 6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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