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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산(韓山) 님의 서재입니다.

1987 미안해 아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대체역사

한산(韓山)
작품등록일 :
2023.05.10 12:14
최근연재일 :
2023.06.18 20:00
연재수 :
6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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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5
글자수 :
274,7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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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6.06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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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48화 잠룡들을 움직이다. (5)

DUMMY

어느새 돋보기까지 꺼내 코에 걸친 정주열 회장이 노태후에게 건넨 여론조사 결과지를 짚어가며 조문조문 따져 물었다.



“기야말로 엎치락뒤치락하는 박빙의 승부다, 이 말입네다.”



잠시, 상대가 고민할 짬을 내어준 정주열 회장은 다시 노련하게 말을 이었다.



“물론, 노 후보님 입장에서는 이거이 말도 안 되고, 마음에도 안 드시갔지만, 기래도 내레 명색이 사업하는 놈인데 주판알도 제대로 못 튕기갔습네까? 요는, 내레 이 모든 걸 감수하고서 노 후보님의 편에 서갔다, 이 말입네다. 길타면 노 후보님도 제 충심을 이해하시고, 어느 정도는 결단을 해 주셔야 하지 않갔습네까?”



역시, 같은 말이라도 누가 하는 지에 따라 그 무게는 달라진다.


미래의 한창 때에도 세계 부자 순위 84위 밖에 안 되던 삼정그룹에 비해, 이미 당대에 세계 9위에 올라선 거인 정주열의 말이었다.


그건 비록 그의 말이 내 것을 그대로 옮긴 것이라고 해도 그 무게와 파급력이 다르다는 얘기다.


게다가 나의 제안대로 그가 준비해온 여론조사 결과지도 달랐다.


내용 자체야 협박용이니, 조금은 조작된 것이 틀림없었지만, 그 퀄리티는 분명히 현세가의 것.


감히 노태후가 그 정확도나 신뢰도에 대해 태클을 걸만한 여지는 애당초에 없었다는 말이다.



“끄응.. 회장님 말씀이 무슨 뜻인지는 이 사람도 잘 알고 있습니다. 허나, 아직은 저들의 단일화에 대한 기대가 높아 그런 것일 뿐입니다. 만약 단일화 자체가 불발로 끝나게 된다면, 그땐..”



거북한 표정의 노태후가 정주열 회장의 말에 항변을 하다말고 말을 삼켰다.


아마도 그가 진행하고 있는 모종의 정치공작들을 밝히기엔 아직은 시기상조라는 판단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그땐, 당연히 일정부분 후보님의 지지율이 반등하겠지요. 그런데, 지지율이 조금 오른다고 해서 장담할 수 있는 승리입니까? 만의 하나라도 이번 선거에서 지시면, 양김 둘 중 누가 되었던, 현직 대통령과 후보님을 편히 쉬시게 두진 않을 텐데 말입니다. 그래서 뜻대로 되지 않을 때를 준비하자는 게 회장님 뜻입니다만.”



나는 노태후의 아킬레스건을 건드렸다.


실재 역사도 그렇고, 전두안· 노태후가 이번 대선에 사활을 걸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이미 전 국민이 다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YS와 DJ가 그간 어떤 표현들로 그 두 사람을 비판해 왔는지는 당대에도 이제는 너무나 유명한 얘기들이었기 때문이다.



“좋습니다. 이 사람이 8인회담에는 좀 더 강경하게 제안을 해보지요. 하지만,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그렇다고 해서 결선투표제를 관철시킬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건 엄연히 제 소관 밖의 일이라..”


‘이 작자가 지금, 누구를 상대로.. 하! 이렇게 나온다 이거지? 좋다. 그렇다면..’



정주열 회장이 앵무새처럼 같은 말만 반복하고 있는 노태후를 바라보다가 이내 돋보기를 벗으며 나를 돌아봤다.


마치 ‘어케 할래? 이 양반 이거이 결선 투표만큼은 절대로 아니 가겠다, 이카는데.’라고 묻는 것 것처럼.


나는 그의 시선을 신호삼아 대뜸, 노태후에게 내가 그와 담판 지을 용건을 꺼냈다.



“8인회담에 재야인사들을 대표하는 위원으로 한 명 더 합류시키시지요. 그게 양김의 분열을 더욱 가속화시킬 겁니다.” 라고.




***




갑작스런 나의 제안에 노태후는 물론, 정주열 회장도 날카롭게 눈빛을 번뜩였다.


나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파고들었다.



“어차피, 지금 노 후보님께서 바라시는 게 그거 아닙니까? 양김의 분열로 인한 단일화 불발. 그로 인한 대선 승리와 정권 연장. 그래서.. 김대종 의장의 사면 복권을 서둘렀고, 그래서. 울산에서 타오르는 노동자들의 시위도 방관하고 있는 거 아닙니까?”


‘자, 이젠 좀 까놓고 얘기를 해볼까? 왜 니들은 니들만 똑똑한 줄 알지? 대한민국에 똑똑한 사람들이 얼마나 차고 넘치는데..’



노태후의 얼굴이 나의 직언에 표정을 들키지 않으려는 듯, 미세하게 움찔거렸다.



“이 사람이 대통령 각하께 김위원장 얘기를 들었을 때만 해도 각하의 과장인줄 알았는데, 이렇게 왕회장님까지 모시고 와서.. 어린 사람이 듣던 대로 참 맹랑하십니다. 헌데, 이걸 어쩔까요. 이 사람은 지금 김위원장이 하는 얘기가 무슨 얘기인지 도통 모르겠으니..”


‘염병. 의뭉스러운 인간. 모르긴 개뿔.. 아주 더 까발려서 처 먹여줘야 알아듣지?’



나는 나의 도발에도 아무렇지도 않은 척, 화제를 돌리는 노태후에게 작정을 하고 쏘아 붙이기 위한 호흡을 골랐다. 그런데, 그때.



“잠깐. 거, 잠깐만 있어보라우, 김위원장. 지금, 기거.. 울산 사태를 방관하고 있다는 거이 무슨 말인디, 내레 후보님께 설명을 들어야 할 것 같은데 말이야. 후보님은 도통 모르갔다, 하시니까네.. 김위원장 자네가 한 번 설명을 해보라우.”



정주열 회장의 눈빛이 서늘하게 공간을 훑었다.


사실, 노태후와 한 몸이나 다름없는 이 정권이 울산 지역의 상황을방관하고 있다는 것은, 전두안에 이어 노태후에게도 자금을 조달하며 뒷배가 되어 주겠다는 정주열 회장에겐 말 그대로 먹튀이고, 모멸감을 주는 배신이었다.


적어도 그들은 노사문제에 있어서 직접적인 이해 당사자인 정주열 회장에게 만큼은, 돈 받은 만큼 일을 하는 최소한의 상도덕은 지켰어야 했기 때문이다.



“뭐, 특별할 것 없습니다. 김대종 의장의 사면 복권도 하루라도 빨리 양김이 치고받으라고 벌린 판이고, 울산지역을 방관하는 것도 노동자들이 그들의 문제에 빠져 양김의 단일화를 강력하게 요구할 수 없도록 하기 위한 의도라는 얘깁니다. 본래부터 재야 운동 세력들의 요구에는 소극적이던 양김이 이번 기회에 노동자들을 비롯한 재야 운동 세력에게 완전히 거리를 두도록 하겠다는 속셈이지요. 뭐, 최소한 양김이 독자 출마를 선언할 때까지라도 시간을 벌면, 그 이후에는 알아서들 둘로 나뉘어 다퉈줄 테니 말입니다.”



나는 정주열 회장의 진노를 대수롭지 않게 받아 넘겼다.


그의 진노가 향할 곳은 내가 아니라, 언제든지 자신들의 유불리에 따라 입장을 바꾸는 바로 저 노태후 같은 자들이니까.



“어허! 이, 이사람.. 속셈이라니.”



그제야 뒤늦게 사태를 파악한 노태후의 얼굴이 더 할 나위 없이 당혹스러웠다.


한 순간에 200억의 자금과 정주열이라는 든든한 지원군이 연기처럼 사라질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명히 말씀드리는데, 제가 모시는 두 어른은 그렇게 만만한 분들이 아닙니다. 제게도 뻔히 보이는 그런 정치 공작 정도로 단일화의 성패가 휘둘리지는 않는다는 말이죠. 그분들이 죽음을 불사하고 같이 달려온 세월이 얼만데.. 안 그렇습니까, 회장님?”



나는 상황이 더 악화되기 전에 노태우에게 활로를 열어주며, 정주열 회장을 바라봤다.


그가 찰떡 같이 나의 의도를 눈치 채고는, 못내 못마땅한 듯 야트막히 한숨을 내쉬었다.



‘회장님. 죄송하지만, 다소의 영향은 있을지 몰라도 그건 양김의 분열에는 크게 영향을 주지 않습니다. 말씀드렸다시피, 양김의 욕망과 그들의 태생이 경쟁자라는 사실이 먼저거든요.’


“험.. 험! 그래서, 8인회담에 재야 대표를 합류시키면 뭐가 달라진다는 겁니까?”



잠시 틈을 준 사이. 다행히 노태후는 내가 만들어 준 활로로 정확하게 찾아 들었다.



“후보님이 장담하지 못하신다던 결선투표제를 관철시킬 캐스팅보터(가부동수에서의 결정권자)가 되겠지요. 설마 이렇게까지 말씀드렸는데, 아직도 양김의 분열은 당연히 후보님의 당선으로 이어진다는 낭만을 가지고 계신 것은 아니시지요? 정말 거기까지만 생각하셨다면, 이제 이쯤해서 재고하셔야 합니다. 한차례의 투표로 끝나버리는 것이 양김이 아니라, 노 후보님이 될 수도 있다, 이 말입니다.”



나는 지나칠 정도로 명쾌하고, 단호하게 그의 기대를 잘랐다.


그런 내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고 있던 정주열 회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그가 나의 말에 동의한다는 뜻으로 힘을 보태준 것이다.


잠시 정주열 회장과 나를 번갈아보던 노태후 후보가 마른침을 삼켰다.



‘그래. 두려움은 그렇게 기지개를 펴서, 영혼을 먹어 치우는 거다.’



이젠 그 또한 어떤 식으로든 속내를 보여야 하리라. 하던 그때.



“말씀하셨던 손님이 도착했습니다. 안으로 모시겠습니다.”



익숙한 예령 이모의 목소리와 함께 누군가가 방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그곳은 나의 집 태원각의 밀실이었고, 그는 현세건설의 회장으로 내정되어, 내년부터 현세건설을 이끌 이상박 회장이었다.


이상박 회장을 안내하고 문을 닫는 예령 이모가 잠시 잠깐 나와 시선을 맞추며 고개를 끄덕였다.




* 본 작품은 대한민국 현대사를 모티브로 한 것이나, 등장 인물이나 단체의 이름, 역사적 사실들은 작가의 상상력에 의해 재구성 된 픽션임을 밝힙니다.

* 공모전 참여 중입니다. 많은 관심과 추천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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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54화 공존의 조건 (3) 23.06.12 60 2 10쪽
54 53화 공존의 조건 (2) 23.06.11 73 3 9쪽
53 52화 공존의 조건 (1) 23.06.10 85 3 10쪽
52 51화 잠룡들을 움직이다. (8) 23.06.09 91 4 11쪽
51 50화 잠룡들을 움직이다. (7) 23.06.08 91 5 11쪽
50 49화 잠룡들을 움직이다. (6) 23.06.07 90 3 9쪽
» 48화 잠룡들을 움직이다. (5) 23.06.06 100 4 9쪽
48 47화 잠룡들을 움직이다. (4) 23.06.05 101 3 10쪽
47 46화 잠룡들을 움직이다. (3) 23.06.04 102 3 10쪽
46 45화 잠룡들을 움직이다. (2) 23.06.03 107 3 10쪽
45 44화 잠룡들을 움직이다. (1) 23.06.02 117 3 9쪽
44 43화 다른 나라 DNA (6) 23.06.01 121 3 9쪽
43 42화 다른 나라 DNA (5) 23.05.31 136 5 9쪽
42 41화 다른 나라 DNA (4) 23.05.30 146 7 10쪽
41 40화 다른 나라 DNA (3) 23.05.29 151 7 9쪽
40 39화 다른 나라 DNA (2) 23.05.29 146 6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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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37화 설계된 엔딩 (5) 23.05.28 160 4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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