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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산(韓山) 님의 서재입니다.

1987 미안해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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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산(韓山)
작품등록일 :
2023.05.10 12:14
최근연재일 :
2023.06.18 20:00
연재수 :
6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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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981
추천수 :
385
글자수 :
274,795

작성
23.06.02 20:00
조회
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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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글자
9쪽

44화 잠룡들을 움직이다. (1)

DUMMY

대한민국 대통령.


그건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과 이를 위한 살신성인의 정신보다, 어쩌면 전생의 나와 같은 깡패새끼에게나 어울릴법한 다양한 기술이 필요한 직업이었다.


적재적소에 모습을 드러내며 상대에겐 공포를, 내편에겐 든든한 뒷배를 제공할 수 있는 쇼맨십과 승리를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지만, 그에 대한 명분은 확실하게 때려 넣는 치밀함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죽었다 깨어나도 태근이 형님은 안 된다.


내가 아는 한 이 양반은 너무나도 정의롭고 인간적이기 때문이다.



“왜? 애석하다는 말이 마음에 걸리나? 훗! 내가 한 번씩 그렇게 삐딱한 건 신경 쓰지 말게. 내 입장에서도 한참 어린 후배를 치켜세우는 것이 민망해서 그러니.”



나의 속내를 아는지 모르는지 태근이 형님이 마냥 밝게 웃음을 짓는다.



“아닙니다, 뭐. 저도 그편이 좋습니다. 말씀처럼 어린놈이 건방을 떨려면 그 정도는 감수해야지요. 헌데, 그렇다면 이제 무슨 일부터 착수해야 할까요?”


“음.. 늦었지만, 일단 단 한 명이라도 8인회담에 우리 사람을 합류시켜야 하네. 이제는 자네도 가능한 일이겠지만, 내가 재야의 어른들에겐 다시 한 번 힘을 보태달라고 편지를 넣겠네. 자네는 우선 합류시킬 인사를 물색해주게. 우리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서, 자네처럼 충분히 정치적인, 전.문.가. 여야 하네.”



그의 목소리가 조심스럽다.


잘못하면 그나마 한 목소리를 내 왔던 민통당과 재야의 연대가 틀어질까 걱정하는 눈치였다.


나또한 태근이 형님과의 일은 물론, 앞으로 대다수의 일들을 민통당..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YS와 DJ의 눈을 피해 은밀히 움직여야 했기에 조심스럽긴 마찬가지였다.



“네. 알겠습니다. 하지만, 아시다피 그런다고 해서, 정부쪽이던 민통당쪽이던 8인회담에 새로운 인사를 합류시키는 것엔 흔쾌히 동의하지 않을 겁니다.”



나는 이미 시작된 YS와 DJ로부터의 분열엔 침묵했다.


어차피 제도 정치와 재야의 운동세력을 함께 묶어 가는 건 완전히 새로운 틀이 필요한 문제니까.



“알고 있네. 하지만 이제라도 8인회담에 우리 쪽 사람을 합류시키는 것 외엔 달리 방법이 없네. 일단 합류를 해야, 결선투표제건 공표 금지조항 삭제건 시도라도 해볼 수 있을 테니까. 그리고.. 내 생각엔, 합류시킬 방법은 자네에게 있는 것 같은데, 아닌가?”



무서운 양반.


역시 태근이 형님은 내가 그의 대답 속에서 찾아낸 방법을 눈치 채고 있었다.



“네. 뭐.. 어느 정도는 방법이 있을 것 같습니다. 우선 우리 쪽에서 합류시킬 인사를 찾고, 함께 의논하면서 진행해 보겠습니다. 선배님께선 수고스러우시겠지만, 재야의 어른들을 다시 한 번 움직여 주십시오. 어쩌면 이미 늦었을 지도 모르겠지만요.”



나는 태근이 형님의 기대에 명쾌한 답을 드리지 못했다.


새로운 인사를 8인회담에 합류시키기 위해 내가 생각한 방법은 나조차 부딪쳐봐야 성패를 알 수 있는 문제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어느새 6월의 뒷심이 파편처럼 흩어지고 있었다.


YS와 DJ로부터 시작된 재야와의 거리두기가, 6월에서 이어진 노동자 대투쟁의 열기와 함께 운동권 내의 노선투쟁으로 번지면서, 서서히 그 분열의 실체를 드러내기 시작한 탓이었다.


직선제를 쟁취한 이후, 대다수가 노동자였던 국민들조차 마치 모든 것이 끝난 것처럼 노동자라는 말과 멀어지고 있었다.



“좋네. 내 믿어보겠네. 헌데, 언제나 문제는 사람인지라.. 찾을 수 있겠나? 우리와 같은 생각을 가진, 충분히 정치적인 전문가를?”



태근이 형님의 목소리가 불안했다.


하긴, 하나부터 열까지 조심스럽기 짝이 없는 살얼음판 같으니 그로서도 어쩔 수 없으리라.



“네. 다른 사람은 생각조차 안 날 정도로 적합한 인사가 있습니다. 하지만, 어찌 될지 모르니 우선 제가 접촉을 해보고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래도 되겠습니까?”


“그래?! 그거 참 듣던 중 반가운 소리군. 그렇게 하게. 이런 일은 괜스레 사람 마음에 앙금을 남길 수도 있으니, 나는 일이 성사된 다음에 알아도 상관없네.”



반색을 하는 형님의 얼굴에 그제야 희망이 보인다.



‘정주열 회장이 내 말뜻을 조금만 알아들었어도, 그 인사의 영입은 어렵지 않을 거다. 역사와는 달리 그 인사는 지금, 생각보다 시간이 많을 수도 있으니까.’



나는 태근이 형님의 얼굴을 바라보며 또 다른 이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리고..



“아, 근데 선배님. 아까 말씀하신 그 지인이 혹시 제경구 선생님입니까?”


“어?! 어, 맞네. 아니 근데, 그걸 자네가 어떻게..”



태근이 형님이 적잖게 놀란 듯 말끝을 맺지 못했다.


나는 그의 모습에 빙그레 웃으며 그를 바라봤다.




***




이튿날.



“네. 네. 걱정 마십시오. 총재님 말씀처럼, 우선 찾아뵙고 인사 정도만 드리고 오겠습니다. 총재님의 의중은 그저 넌지시 던져 놓기만 하고요.. 네. 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나는 민통당 사무실로 전화를 넣어 YS와 통화를 마친 후, 부산으로 향했다.



- 노무연 · 문재민 법률사무소 -



바로 저 간판 속의 인물.


정확하게 오늘은 노무연 변호사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얘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솔직히는 신문을 통해서 참 많이 봤고요. 음.. 근데, 오늘 이렇게 저를 찾아오신 이유를 물어도 될까요?”


‘뭘요.. 솔직히 얘기야, 제가 더 많이 들었지요.’



감회가 새롭다.


지금 내 앞에 앉아 있는 사람이 바로 그 노무연 이라니.



“그간 고생 많으셨습니다. 개인적으로나 저희 당 차원에서도 이태천 열사의 일은 매우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곁에 계셨었지요?”



나는 그에게 지금 당장 가장 아픈 손가락에 대한 위로를 건넸다.


몸에 배어 있는 듯 한 그의 존대에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배려였고, 존중이었다.



“네. 뭐,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지요. 곁에 있었지만, 저도 그리 될 줄은 생각조차 몬 했습니다.”



아직까진 그의 억양과 단어에 미세한 사투리가 남아 있었다.


81년 부학사건 이래, 일약 인권 변호사의 대명사처럼 불려온 그의 표정이 더없이 피곤해 보였다.



“네. 정말 예측할 수 없어서 더 고달프고, 또 그래서 더 가슴이 먹먹했던 시간들이었던 것 같습니다. 어.. 오늘 제가 변호사님을 찾아온 용건은..”



내가 가벼운 인사를 마무리하면서 용건을 꺼내 들었다.


그가 차분한 표정으로 그런 나를 마주 보았다.


흔들림 없는 눈빛.


아마도 그는 부산지역 최대의 용공 조작사건으로 불리는 부학사건 이후, 언제나 저 눈빛을 유지해왔으리라.


‘변호사’라는 영화에서 그렸던 것처럼, 고졸 출신의 생계형 변호사가 인권변호사로 불리기까지는 꽤 많은 곡절이 있었을 테니까.



“편하게 말씀 하시지요. 얼마나 피곤한 인생을 살고 있는 지는 서로가 더 잘 안다, 아닙니까.”



나는 그의 사람 좋은 너스레에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터졌다.



“네. 후후.. 쓰읍, 일단 저는 저희 당 총재이신 김영산 어른이 보내서 왔습니다. 대선도 대선이진만, 지난 항쟁을 통해 국민들을 이끌어 왔던 지역의 인사들을 제도 정치로 모셔서 달라진 대한민국의 미래를 함께 모색해야 한다는 전언이 계셨거든요.”



나의 얘기에도 그의 표정엔 그다지 변화가 없다.


그저 고개만 끄덕끄덕하며 잠자코 경청할 뿐.



“직접 찾아뵙지 못한 결례를 양해해 달라고도 하셨습니다. 아무래도 지금의 개헌논의도 그렇고, 또 개헌 이후의 대선 준비도 바빠서 말이지요.”



내가 다시 한 번 그의 침묵에 말을 보탰다.


실상, 이 당시 범국본의 부산지역 상임 위원장이었던 그는 일련의 과정과 전망들을 꿰뚫고 있었을 것이기에, 뭐 하나도 새로울 건 없었을 것이다.


다만, YS가 자신의 영입을 추진하려고 한다는 것이 색다르다면 색다른 것이었을 터.


하지만 나도 그가 어떻게 해서 YS에 의해 정치에 입문했는지는 잘 몰랐다.


때문에 그에게 건네는 한마디 한마디가 조심스러웠다.



“음.. 일단, 제가 지금은 좀 바쁩니다. 서울서는 이한율 열사의 노제 이후, 나름대로 진정국면이 형성되는 것 같습니다만, 여기 부산도 그렇고, 특히 울산 쪽에 노동 쟁의는 이제 막 시작이라서요. 저하고, 같이 있는 문재민 변호사하고.. 솔직히 눈코 뜰 새가 없어서, 다른 생각을 할 틈이 없습니다.”


‘그렇겠지. 지금부터 시작해 8,9월에 절정을 찍는 노동자 대투쟁은 지난 10여 년 동안 발생한 노사분규의 2배에 가까운 노동쟁의를 양산하며 기록적인 성장세를 보인다.’


‘이 두 달여 사이의 쟁의 건수만 하루 평균 40 여건. 그 대부분을 감당하던 이가 저 노무연과 문재민이었으니..’


“음.. 그럼 만약, 울산 지역의 상황이 사측과 조정국면에 들어가게 되면, 그러면 생각을 좀 해보실 수 있을까요?”



나는 내가 정주열 회장에게 던져 놓은 선물을 생각하며 노무연을 바라봤다.


그러자 정중하게 나의 말을 거절했던 그의 눈빛에 순간 놀라움이 스쳤다.




* 본 작품은 대한민국 현대사를 모티브로 한 것이나, 등장 인물이나 단체의 이름, 역사적 사실들은 작가의 상상력에 의해 재구성 된 픽션임을 밝힙니다.

* 공모전 참여 중입니다. 많은 관심과 추천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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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57화 공존의 조건 (6) 23.06.15 69 2 9쪽
57 56화 공존의 조건 (5) 23.06.14 66 3 11쪽
56 55화 공존의 조건 (4) 23.06.13 58 3 10쪽
55 54화 공존의 조건 (3) 23.06.12 64 2 10쪽
54 53화 공존의 조건 (2) 23.06.11 75 3 9쪽
53 52화 공존의 조건 (1) 23.06.10 88 3 10쪽
52 51화 잠룡들을 움직이다. (8) 23.06.09 95 4 11쪽
51 50화 잠룡들을 움직이다. (7) 23.06.08 93 5 11쪽
50 49화 잠룡들을 움직이다. (6) 23.06.07 94 3 9쪽
49 48화 잠룡들을 움직이다. (5) 23.06.06 105 4 9쪽
48 47화 잠룡들을 움직이다. (4) 23.06.05 104 3 10쪽
47 46화 잠룡들을 움직이다. (3) 23.06.04 107 3 10쪽
46 45화 잠룡들을 움직이다. (2) 23.06.03 111 3 10쪽
» 44화 잠룡들을 움직이다. (1) 23.06.02 120 3 9쪽
44 43화 다른 나라 DNA (6) 23.06.01 129 3 9쪽
43 42화 다른 나라 DNA (5) 23.05.31 137 5 9쪽
42 41화 다른 나라 DNA (4) 23.05.30 148 7 10쪽
41 40화 다른 나라 DNA (3) 23.05.29 154 7 9쪽
40 39화 다른 나라 DNA (2) 23.05.29 150 6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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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37화 설계된 엔딩 (5) 23.05.28 164 4 11쪽
37 36화 설계된 엔딩 (4) +1 23.05.27 162 6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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