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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산(韓山) 님의 서재입니다.

1987 미안해 아들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대체역사

한산(韓山)
작품등록일 :
2023.05.10 12:14
최근연재일 :
2023.06.18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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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4,7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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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6.11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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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53화 공존의 조건 (2)

DUMMY

“후후.. 위원장님도 참. 아시다시피 저를 제외한 9인회담의 정치인 대부분이 법조계 출신이다 보니, 제가 전문가처럼 나선 것뿐이지.. 본래 헌법에 관련된 것들은 저희 법조계에서도 보다 더 전문적인 분들이 계십니다.”


“그 말씀은..”


“돌리지 않고 터놓고 말하면, 개헌을 통해서 하는 것들보다 국회에서 해결해야 하는 공직선거법이나, 정당법 같은 하위 법들이 더 많다는 거죠. 우리는 그저 큰 틀에서 헌법이 정해줘야 할 기준만 잡아 놓으면 됩니다. 나머진 ‘민주적 경선 공천’이나 ‘군소정당 봉쇄조항’ 등으로 국회에서 보완하면 되고요. 그.. 말씀하신 여론조사 공표금지 조항 삭제도 그렇습니다. 제가 이번에 조금 공부를 해본 바에 의하면 말입니다.”



그가 나의 의도가 무색하게 막힘없이 답을 하며 빙그레 웃었다.



‘젠장. 태근이 형님은 둘째 치고, YS나 DJ도 그렇고.. 이상박 회장에다가 노무연 변호사까지.. 그래. 대통령은 아무나 되는 게 아니라는 거지?’



나는 괜한 자격지심과 오기로 꿈틀대는 표정을 관리 하느라 애를 먹었다.



“근데 말입니다, 위원장님. 이쯤 되면 이제 어떻게 울산 지역의 노동쟁의를 조정할 수 있었는지, 도대체 정주열 회장은 어떻게 설득했는지, 말씀을 해 주실 때도 되지 않았을까요?”



그가 못내 궁금증이 풀리지 않은 것처럼 나를 바라봤다.


하긴, 현장에서 직접 노사의 극심한 견해 차이를 체감했던 그로서는 그야말로 꿈과 같은 일이리라.


다른 사람도 아니고, 바리깡으로 직원들의 머리를 밀던 군대식 사내문화와 독보적인 카리스마로 정평이 난 정주열 회장으로부터 얻어낸 결과이기에 더더욱 그러할 것이다.



“말씀 좀 해 주시죠. 궁금해 죽겠습니다. 대체 뭐라고 하셨기에 강경일변도의 현세가 중공업을 시작으로 각 부문의 민주노조 결성까지 전격적으로 인정하고, 전방위적인 협상에 들어간 겁니까?”



나를 보는 그의 눈이 아이처럼 반짝거렸다.



‘참.. 이거 이러면 모른 채 할 수도 없고..’



나는 운전하는 사이사이 확인했던 그의 눈빛 덕에 하는 수 없이 약간의 비법(?)을 귀띔해줬다.



“뭐, 별 거 없습니다. 변호사님께서 정치를 하시려는 이유처럼, 사안 자체가 결국 결정권을 가진 정주열 회장을 설득하는 일이었던 지라.. 정치적으로 거래를 했지요. 음모라면 음모고, 야합이라면 야합일 수도 있는 방법으로 말입니다.”



뻔뻔하다 못해 너무 당당한 나의 말에 그의 표정이 황당해졌다.



“정치적 거래라고요? 게다가 음모나 야합이라는 말씀은..”



또박또박 존대를 하는 그가 부지불식간에 자신의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태생적으로 그런 것들은 단어조차 입에 올리기 싫어하는 사람처럼 말이다.



“사실.. 제가 집을 지어주기로 약속한 녀석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걸 정주열 회장에게 요구했고, 그 대가로 변호사님께 말씀드렸던 것처럼 양김의 단일화 실패에 대한 제 의견과 그걸 이용해 정주열 회장이 얻을 수 있는 이득을 계산해 드렸습니다. 울산에서부터 시작된 노조 문제는 그 거래에 대한 일종의 서비스 차원이었지요. 뭐, 결과적으로 시대의 흐름을 눈치 채고, 파격적이면서, 발 빠르게 대응한 건 오로지 정주열 회장의 귀신같은 촉 덕택이지만요.”


“촉이라고요?”


‘네, 네. 분야는 다르지만, 본인도 왕회장님 못지않은 촉을 가지신 분이 설마 그걸 이해하지 못하시는 건 아니겠지요? 쳇!’



나는 촉이라는 나의 말에 날카롭게 반응하는 그에게 대수롭지 않게 웃어보였다.



“좋습니다. 일단 그거야 그렇다 치고.. 그러면, 제가 8인회담에 합류할 수 있었던 방법을 물어도 되겠습니까? 울산의 노동쟁의가 조정국면으로 들어가자마자, 민통련(민주통일 민중운동 연맹) 측에서 연락이 왔습니다만..”


“그 전에 역시 정주열 회장을 이용해서 정민당의 노태후 후보를 움직였습니다. 그거야 말로 야합이나 음모 같은 것이 되겠네요.”



다시 한 번 야합과 음모를 입에 올리는 나의 말에 그의 미간에 나타나기 시작한 내천(川) 자(字)가 더욱 굵고 선명해졌다.



“노태후 후보를 말입니까?”


“네. 자신만만하게 단일화를 확신하는 양김 쪽에서 변호사님의 합류를 원할 리 없기 때문에, 정주열 회장과 함께 노태후 후보를 만나 설득했습니다. 대통령을 만들어 줄 테니, 결선투표제와 변호사님의 합류를 받아들이라고 말입니다.”


“노태후를 대통령으로 만들어요? 이것 보십시오, 김 위원장님!”



노무연 변호사가 노태후 대통령을 운운하는 나의 도발에 기어코 참지 못하고 버럭 호통을 쳤다.


하지만, 되도록 그와 많은 것들을 공유하기로 결심한 나는 멈추지 않았다.


말했다시피, 그와 같은 사람에겐 언제나 돌려 말하지 않는 정공법이 가장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민통련 측에서 변호사님의 합류를 제안한 곳이 정민당 쪽이라는 것을 확인 하셨을 텐데, 새삼 너무 놀라십니다. 그리고 대통령이라는 자리가 어디 만들어 준다고 해서 만들어 지는 자립니까? 믿은 사람이 문제지, 그 가능성과 확률을 제안한 사람에겐 죄가 없습니다. 저에겐 일말의 양심의 가책도 없다는 말입니다.”


“김 위원장님. 당신이란 사람, 정말..”


“네. 그 자리에서 정주열 회장이 노태후 후보에게 200억 원을 건네더군요. 아마 조만간 후보자가 확정되면 양김에게도 얼마씩의 선거자금은 보낼 겁니다. 제가 그렇게 조언하기도 할 것이고요. 문제 있습니까? 금융과 부동산 거래가 실명제가 되고, 정치자금법 개혁으로 단 한 푼의 정치자금까지도 추적 관리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전까진 피할 수 없는 악습입니다. 그걸 극복하는 것도 변호사님이 하시겠다는 정치가 책임져야 할 몫이고요.”



나는 놀라움을 넘어 기막힌 표정을 짓고 있는 그에게 조금의 동요도 없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왜요? 설마 정치를 하시겠다면서 나 홀로 독야청청, 깨끗한 척 하시겠다는 것은 아니겠지요? 국회의원이라는 지위가 그게 가능합니까? 하다못해 시골 촌부도 문제가 생기면 아는 지인을 찾는 판에.. 국회의원은 개인이자 기관입니다. 판, 검사야 월급 받는 공무원에 가깝지만, 국회의원은 정보와 판단 자체가 경제고, 돈이라는 말입니다.”



그가 한 치의 양보도 없는 나의 말에 잠시 멍하니 나를 바라보다가 이내 한숨을 내 쉬었다.



“하.. 김 위원장님. 저도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사람 사이의 관계에는 도리와 신의라는 게 있습니다. 아무리 상대가 나와 다르더라도, 뱉은 말에 대한 책임과 의무는 다 해야 된다, 이 말이지요?”



그의 말투가 어느새 청년 김주혁을 다독이는 중년의 노무연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나는 조금 더 그에게 할 말을 해야 했다.



“사람 사이의 관계라면 그렇겠지요. 하지만 적어도 사람은 같은 사람을 해치지 않습니다. 살해하거나 학살하지 않습니다. 짐승이 아닌 이상, 사람이라면 당연히 그래야만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저들은 사람입니까?”



그가 본적 없는 나의 서늘한 냉기에 흠칫하며 숨을 멈췄다.


나는 노무연 변호사를 대신하는 것처럼 길게 심호흡을 했다.



“변호사님. 만약 노태후가 대통령이 되면 저는 정주열 회장에게 약속을 지킨 셈이 될 겁니다. 그런데 사실, 저는 그러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래도 정주열 회장은 고작 200억 원 정도를 잃을 뿐이고, 그 손해는 누구도 건들지 못할 신도시 개발 계획으로 회수 할 수 있을 테니까요. 게다가 올림픽도 있지요. 현세는 현세가 개입한 모든 것에서 수익을 남길 겁니다. 그게 기업이니까요. 그럼.. 우린 무얼 해야 하겠습니까?”



그가 나의 질문에 마른침을 삼켰다.


아마도 그는 나의 답들 속에서 내가 정한 ‘사람’의 기준을 찾고 있으리라.



“우리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우리가 정치를 시작한 이유를 지키는 겁니다. 정치적으로 영악하고, 주도면밀하게 정적들을 치우고, 짓밟으면서! 후.. 변호사님. 이건 전쟁입니다. 전쟁.”



나는 참아왔던 응어리를 쏟아내듯, 숨 쉬는 것조차 잊은 사람처럼 그를 몰아 세웠다.


그러자 그가 물끄러미 그런 나를 바라봤다.



“한 가지만 묻겠습니다. 집을 지어 주겠다고 약속한 녀석이.. 명동성당의 그 솥뚜껑 소년입니까? 그것이 위원장님이 지켜야하는 이유이고요?”



그의 질문이 천근만근의 무게가 되어 나를 짓눌렀다.


나는 그에게 애써 답하지 않았다.


힘없는 자들에게 어떤 것들은 답을 하는 것 자체가 초라하기 때문이다.


또, 누구보다도 사람이 아닌 개새끼로 살아봤던.. 전생의 나를, 떠올리기 싫었기 때문이다. 대신.



“집을 지어달라는 제 요구는 현세건설이 주도할 수도권 신도시 개발 계획안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두 양반 만나시면, 소신 것 말씀하십시오. 필요하시면, 제 얘기를 하셔도 괜찮습니다. 어차피 이 싸움은 누구든 살아남을 수만 있다면 해 볼만 한 싸움이니까요.”



나는 차분하게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다 했다.


아마도 이생에 돌아와서 내가 밖으로 처음 내뱉은 내 진심이리라.




* 본 작품은 대한민국 현대사를 모티브로 한 것이나, 등장 인물이나 단체의 이름, 역사적 사실들은 작가의 상상력에 의해 재구성 된 픽션임을 밝힙니다.

* 공모전 참여 중입니다. 많은 관심과 추천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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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59화 절반의 승리 (1) 23.06.17 66 3 10쪽
59 58화 공존의 조건 (7) 23.06.16 65 3 11쪽
58 57화 공존의 조건 (6) 23.06.15 69 2 9쪽
57 56화 공존의 조건 (5) 23.06.14 66 3 11쪽
56 55화 공존의 조건 (4) 23.06.13 58 3 10쪽
55 54화 공존의 조건 (3) 23.06.12 64 2 10쪽
» 53화 공존의 조건 (2) 23.06.11 75 3 9쪽
53 52화 공존의 조건 (1) 23.06.10 88 3 10쪽
52 51화 잠룡들을 움직이다. (8) 23.06.09 95 4 11쪽
51 50화 잠룡들을 움직이다. (7) 23.06.08 93 5 11쪽
50 49화 잠룡들을 움직이다. (6) 23.06.07 94 3 9쪽
49 48화 잠룡들을 움직이다. (5) 23.06.06 105 4 9쪽
48 47화 잠룡들을 움직이다. (4) 23.06.05 104 3 10쪽
47 46화 잠룡들을 움직이다. (3) 23.06.04 106 3 10쪽
46 45화 잠룡들을 움직이다. (2) 23.06.03 111 3 10쪽
45 44화 잠룡들을 움직이다. (1) 23.06.02 119 3 9쪽
44 43화 다른 나라 DNA (6) 23.06.01 128 3 9쪽
43 42화 다른 나라 DNA (5) 23.05.31 137 5 9쪽
42 41화 다른 나라 DNA (4) 23.05.30 148 7 10쪽
41 40화 다른 나라 DNA (3) 23.05.29 154 7 9쪽
40 39화 다른 나라 DNA (2) 23.05.29 150 6 10쪽
39 38화 다른 나라 DNA (1) +1 23.05.28 172 6 9쪽
38 37화 설계된 엔딩 (5) 23.05.28 164 4 11쪽
37 36화 설계된 엔딩 (4) +1 23.05.27 162 6 10쪽
36 35화 설계된 엔딩 (3) 23.05.27 156 6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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