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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산(韓山) 님의 서재입니다.

1987 미안해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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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산(韓山)
작품등록일 :
2023.05.10 12:14
최근연재일 :
2023.06.18 20:00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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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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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6.04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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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46화 잠룡들을 움직이다. (3)

DUMMY

“허! 이거 봐, 김위원장. 이게 뭐이가? 자네 지금 이 거이 얼마짜리 공사가 될지, 주판알은 튕겨 보고 하는 말이야? 내레 철거민들에게 집을 지어준다고 했지, 도시를 만들어 준다고 한 건 아닌 거 같은데 말이디?”



다음 날 오전, 나는 정주열 회장의 부름을 받고 그의 집무실 소파에 앉아 있었다.


8인회담 합류 시간에 대한 압박으로 전날 무리를 해서 서울로 돌아온 나에게 그가 무려 새벽1시에 걸어 온 전화 때문이었다.


나는 거의 밤을 새다시피 제경구 선생의 구상안을 정리했다.


그리고 그렇게 정리한 제안서는 지금 저 양반, 정주열 회장의 손 안에 있다.



“기왕에 지으실 거라면, 회장님께도 득이 되는 사업이 되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더더욱, 아무리 철거민이라고 해도 무상으로 지원하는 건 그들에게도 좋지 않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만..”



나는 빙그레 웃으며 정주열 회장을 바라봤다.


그가 기가 막힌 표정으로 제안서와 나를 번갈아 봤다.



“글티만 이건, 생각보다 어마어마한 대공사가 될 기야. 수익성을 생각해도 미지수고 말이디.”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없는 듯, 그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그건 단순히 집장사를 하실 경우에 그렇지요. 제안서처럼, 회장님께서 이번 철거민들의 집단 이주대책을 신도시 건설과 맞물려 진행하시면.. IOC의 우려를 불식시키는 것은 물론 그로 인해 성대히 치러질 88올림픽 이후, 급증하는 관광객들과 하늘 모르고 치솟는 부동산으로 그 특수를 충분히 누리시고도 남을 겁니다.”



나는 미리 준비했던 대답을 정주열 회장에게 늘어놓았다.


그가 나의 말에 다시 한 번 제안서를 꼼꼼히 훑어보기 시작했다.



“그 특수를 충분히 누릴 수 있다.. 기래, 일단 관광객들은 둘째 티고 부동산부터 심상티 않기는 하디..”


“네. 맞습니다. 게다가 제가 드린 신도시 계획은 단순히 주거시설을 확충하는 게 아니라, 그와 함께 관광과 쇼핑의 중심지가 될 수 있는 자족형 문화도시를 조성하는 겁니다. 대다수의 주거시설들은 질 좋고 넉넉한 세대수의 장기 상환주택과 함께 분양을 하시고, 현세타워 같은 랜드 마크와 구역별 쇼핑몰들이나 문화센터 같은 건 현세가(家)의 경영권 아래 두십시오. 임대 수익은 물론, 그로부터 발생하는 각종 수익들이 모두 현세에게 귀속될 것입니다.”



나는 제경구 선생의 구상안을 정주열 회장의 구미가 당기도록 적절하게 손을 봤다.


제경구 선생이 처음 제안했던 구상안은 자본주의적인 관점에선 조금 많이 벗어나 있었기 때문이다.



“흠.. 기럼, 이번엔 그 장기 상환주택이라는 거를 설명해 보라우.”



고개를 끄덕이며 나의 말을 경청하던 정주열 회장이 못내 장기 상환주택이라는 말이 거슬렸는지, 예리하게 눈빛을 번뜩였다.



“별거 아닙니다. 무상으로 저렴하게 임대주택을 제공하는 것보단, 질 좋은 공공주택을 넉넉히 장기 저리로 공급하는 것이 낫다는 겁니다.”


“왜디?”


“공급 세대 자체가 부족하고, 그 질마저 떨어진다면, 그건 중장기적으로 주거의 양극화를 부추기고, 부동산 투기의 열풍으로 돌아올 것이 뻔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임대주택이 내 것이 아닌 이상 관리도 쉽지 않을 겁니다. 도시가 빈민가처럼 될 여지도 있지요. 버거워도 자격이 분명한 사람들에게 원리금의 장기상환이 가능하게 만들고, 그 시세 차액들을 돌려주는 방식이면 일반 분양세대들과의 공존이 충분히 가능할 것으로 보입니다. 더더욱 그곳이 관광과 쇼핑의 명품도시라면 말이죠.”



나는 차분하게 정주열 회장의 질문에 답을 했다. 그런데.



“일 리가 있구만, 기래. 긴데 말이야.. 내레 아무리 생각을 해도 기런 곳에는 기런 식의 임대주택보다는 고가의 일반 아파트 분양이 더 나을 것 같다, 이 말이야. 안 그런가, 김위원장?”



역시나. 기업은 이윤을 추구해야 한다는 절대 진리를 놓지 않는 양반이다.


하지만 미래의 기업은 단지 그것만으로는 버틸 수 없는 법.


기업 이미지와 그 기업에 대한 평판들은 숫자들의 별세계인 주식시장에서 엄청난 힘을 발휘한다.


별거 아닌 찌라시가 하루아침에 수백, 수천억 원의 주가를 증발시키는 건 일도 아니라는 얘기다.



“맞습니다. 현실도 그렇고 일반적으론 회장님 말씀이 당연하지요. 문제는 지금이 철거민들의 문제가 불거져 나온 상황이라는 것과 중장기적으로 구매력을 유지하는 국민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현세에도 득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구매력을 유지하는 국민?”


“네. 주거 자체가 불안한 상황에서 누가 얼마나 빚을 내가며 현세 차를 사고, 아파트를 사겠습니까? 표를 의식한 정책도 내버려 두지 않겠지만, 양극화 된 상위 1%가 사들이는 집과 차와 그 밖의 현세 제품들은 한계가 명확합니다. 해외시장도 내수가 엉망이면 사상누각에 불과하고 말입니다.”



이거야 말로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얘기다.


자의반 타의반, 이미 숫자의 노예가 되어버린 수많은 국민들이 빚을 내서라도 차를 사고, 집을 사다가 무너지는 미래가 그리 멀지 않았으니까.


또, 현세는 물론 수많은 글로벌 기업들이 자기들의 물건을 팔기 위해 해외시장에서 만큼은 소비자의 입맛에 맞는 나름의 자구책들을 병행한다.


같은 종류의 차량이라도 수출용이 내수용 보다 사양이 좋거나, 값이 저렴한 이유가 그거다.


정치권 못지않게 자국민을 봉으로 아는 재벌들의 횡포 말이다.


적어도 내가 없고, 정주열 회장의 결단이 없다면 반드시 그렇게 될 것이다.


나는 지금 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그가 좀 더 폭넓은 안목을 가지고 있으리라 확신하면서 말을 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늦기 전에 다음 정권에 빚을 안기는 것입니다. 당장 이 신도시 계획을 착수만 해도, 그것으로 현직 대통령과 한 몸이나 다름없는 지금의 여당 후보에겐 더 할 나위 없이 든든한 뒷배가 될 것입니다. 게다가 만약, 거기에 회장님의 용돈과 전폭적인 지지선언까지 이어진다면..”



단일화를 막기 위한 공작을 하면서도, 설령 단일화가 되더라도 해볼만 하다는 용기가 샘솟겠지.


정주열 회장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현 여당 후보에게 상당한 빚을 안겨줄 테고.



“길티! 기거이 길케 맞물려야디.”



정주열 회장의 얼굴에 회심의 미소가 피어올랐다.


그 면밀한 속사정까지야 모르겠지만, 그가 권력에게 당한 수모와 박탈감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미소였다.



“근데.. 만약 회장님께서 저의 기획안에 동의 하신다면, 저도 부탁이 하나 있습니다.”


“뭐인데 또 이카네? 내레 이젠 자네가 뭐라 하면, 덜컥 겁부터 난다, 야.”



나는 그의 너스레에 빙그레 웃음을 흘렸다.



“우선 그 제안서의 내용을 여당 후보의 공약집에 넣도록 해주십시오. 뭐, 회장님께서 특별히 강제하지 않으셔도 현 정권과 여당 후보에겐 충분히 표를 당길 수 있는 공약이 될 테니, 어렵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흠.. 길케 해서리, 야당 후보들하고 공약 경쟁을 시키려는 셈이디? 기럼 어떤 식으로든 기거이 다음 정부의 주택 정책에 먹줄(아우트 라인)을 치는 거이고..”


‘허! 망할 노인네. 그새 내 스타일을 꿰 찼다. 이거.. 조심해야겠는 걸.’


“네. 뭐. 대충 그렇습니다. 저는 회장님부터 시작한 이 신도시 개발 계획이 앞으로 우리나라의 주택과 도시정책의 근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물론, 이후의 신도시들을 저마다 차별성 있게 특성화 시키는 것은 별개의 문제지만요.”


‘중요한 건, 개발이익을 환수해서 도로나 교통, 교육 같은 공적 인프라를 확충하고, 원주민의 재거주율을 높이도록 충분한 보상과 혜택을 확보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건 국회의 소관.. 지금은 아우트 라인만 확실하게 긋는다!’



나는 그의 날카로운 지적에 대해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어 내가 보다 시급한 문제에 대해 다시 말을 꺼내던 순간.



“어허.. 이거 봐, 김위원장. 자네 나한테 분명히 부탁은 하나라고 했디? 기럼, 이제 기건 끝이 났구만, 그리고는 무슨 그리고디?”



정주열 회장이 나의 말을 잘랐다.


나는 그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피식 웃음을 지었다.



“방금 말씀드린 것도 딱히 저보단 회장님께 더 득이 되는 것 같고, 이제 말씀드릴 것도 역시 저보다 회장님께 더 득이 되실 것 같은데.. 들어보시지도 않으실 겁니까? 그럼. 저도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회장님의 용단에 보험이 될 수도 있는 얘긴데..”



나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허세를 부렸다.


상대가 상대인지라 과연 통할까, 애써 무표정한 얼굴로 눈치를 보는 사이.



“하.. 이 사람, 정말. 이거이.. 내레 이겨 먹을 수가 없구만, 기래. 큭큭큭큭.. 좋네. 말 해보라우. 그 보험.”



그가 나를 바라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나도 예의상 한 번 쯤은 더 튕겨줘야 맛이겠지.



“아닙니다. 됐습니다. 저도 뭐, 당장 저한테 떨어질 게 있는 것도 아니고..”


“에 헤이.. 이거 봐, 김위원장. 내레 잘못했다, 야. 기러디 말고 어서 말 해보라.”



그가 나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흠, 정 그러시다면.. 다름이 아니라, 제안서와는 별도로 저는 우리가 선택한 여당 대표에게, 있어서는 안 될 만의 하나를 대비한 안전장치를 걸어두었으면 합니다.”


“기래, 기러니까네.. 그 보험이라는 거를 어드렇게 들면 되갔어?”



그가 나와 눈을 맞추며 입맛을 다셨다.


그의 성정 상, 아무리 확신이 서는 계획일지라도 할 수 있는 데까진, 최선의 최선을 다해 마지막까지 리스크를 지우고 싶을 거다.


그게 정주열이고, 그렇게 일궈온 현세그룹이니까.



“그건..”


내가 그의 날카로운 눈빛을 마주 하며 입을 열었다.




* 본 작품은 대한민국 현대사를 모티브로 한 것이나, 등장 인물이나 단체의 이름, 역사적 사실들은 작가의 상상력에 의해 재구성 된 픽션임을 밝힙니다.

* 공모전 참여 중입니다. 많은 관심과 추천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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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50화 잠룡들을 움직이다. (7) 23.06.08 93 5 11쪽
50 49화 잠룡들을 움직이다. (6) 23.06.07 94 3 9쪽
49 48화 잠룡들을 움직이다. (5) 23.06.06 105 4 9쪽
48 47화 잠룡들을 움직이다. (4) 23.06.05 104 3 10쪽
» 46화 잠룡들을 움직이다. (3) 23.06.04 107 3 10쪽
46 45화 잠룡들을 움직이다. (2) 23.06.03 111 3 10쪽
45 44화 잠룡들을 움직이다. (1) 23.06.02 119 3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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