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한산(韓山) 님의 서재입니다.

1987 미안해 아들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대체역사

한산(韓山)
작품등록일 :
2023.05.10 12:14
최근연재일 :
2023.06.18 20:00
연재수 :
61 회
조회수 :
12,982
추천수 :
385
글자수 :
274,795

작성
23.05.31 20:00
조회
137
추천
5
글자
9쪽

42화 다른 나라 DNA (5)

DUMMY

“와.. 어떻게 아셨대요? 철거민들 좀 모아 놓고, 그걸로 나중에 돈을 벌던가, 선전을 해서 잔뜩 이용해먹을라고 했더니.”



나는 너스레를 떨며, 에둘러 그의 관심을 피했다.


근데, 이 양반. 6.29 선언 끝나고 모인 식사 자리에서 내가 어지간히 마음에 드신 모양이다.


전화로 부탁을 드렸을 때도 그러시더니, 이제는 대놓고 막내 동생 취급이시다.


이런 저런 내 별명조차 이 양반한텐 그저 놀림거리일 뿐이니, 당췌 답이 없다.



“해. 해! 살 길 열어준 사람이 자기들 좀 이용해서 돈 벌고, 선전 좀 한다고 해서 우리 식구들 뭐라고 안 해! 뭐, 늘 그 ‘정도’가 문제겠지만~ 응? 큭큭큭..”


‘허.. 이 양반이 정말 성공회 대성당의 그 양반이 맞나? 사람들이 더 다칠 수도 있다면서 세상 심각한 척은 혼자 다 하시더니만..’



나는 그의 선한 웃음에 기가 차서 웃음조차 나오지 않았다.



“들으셨는지 모르지만, 일단 논밭이라 수도하고 정화시설은 없습니다. 다만 그건, 선생님의 구상을 구체화할 수만 있다면, 제가 별도로 조달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그가 뒤끝을 흐리는 나의 말에 순간, 눈빛을 번뜩였다.



“말했다시피, 충분히 가능한 얘기다. 또, 그래야만 중장기적으로 이 나라가 북한처럼 망가지지 않을 수 있고.”



이번엔 내가 그의 얘기에 마른 침을 삼켰다.


그건 처음 들었을 때부터, 좀처럼 믿기 힘들었던 그의 구상 때문이었다.


나는 그의 표정을 놓치지 않고 서둘러 너스레를 이어갔다.



“아, 부지가 넓은 건 그래야 저한테 돈도 되고, 또 상계동 외에 아직 임시 거주지조차 없는 다른 분들도 모실 수 있을 것 같아섭니다. 당분간은 다시 또 긴 시간을 기다려야 하겠지만, 그래도 뭐.. 괜찮죠?”



어떻게 더 이상 솔직하게 말을 할까. 나는 분명히 내 돈 버는 얘기를 먼저 했다.


보태 이 나라를 뒤집어엎을 지독한 속내까지 어느 정도는 말이다.



“정말. 만났냐? 그 양반이 널 만나는 주디?”



재경구 선생이 두리뭉실한 내 얘기를 참지 못하고, 끝내 본론을 다그쳤다.



“네. 만났구요. 던졌습니다. 선생님이야, 그저 그런 재.야.인.사. 시지만, 저는 그래도 명색이 민주통일당의 청년 위원장, 정.당.인. 아닙니까? 정당인. 해서 그날 선생님 말씀처럼, 그 구상이 되기만 한다면 땡길 수도 있습니다. 제가 충분한 선물은 드릴 거니까.”


“그래? 그러면, 주혁아. 하자! 우리 이거 하자! 이거.. 해야지만, 다 같이 살 수 있어. 부자들은 뭐, 자기들끼리만 부자겠냐? 자기들만큼은 아니어도 받쳐줄 사람들이 있어야 지들도 부잔 거야!”



재경구 선생의 눈빛이 간절하다.


그래. 미래를 먼저 본 내 생각도 그와 같다.


숫자가 재산의 전부인 세상에선 그 숫자들을 인정하고 지탱할 사람들이 있어야, 그것이 유지되는 거니까.



“연락을 받기로 했습니다. 그 전에 저는 먼저 다녀올 곳이 있어서, 조금만 기다려주십시오.”


“뭐, 누구? 김의장?”


‘읭? 설마, 이 양반 태근이 형님을 알고 있는 건가?!’


“흐흐.. 내가 우리 막내 머리 꼭대기에 앉아 있거든? 김의장하고 나하고, 민청련(민주화운동 청년연맹) 사건 때 나란히 손잡고 들어간 동지라서 잘 알아. 저 번에 면회 갔을 때, 아주 심각하게 우리 막내 얘기를 하길래, 내가 등 좀 두드려 줬지. 그 사람이 원래 좀 깝깝~ 하잖아.”



의외의 인연에 놀라며 내가 그의 표정을 살피는 사이.


대답을 바라지 않는 그와 나의 눈앞으로 세상을 삼킬 것 같은 시뻘건 노을이 저물고 있었다.




***




다음 날.


나는 다시 경주교도소를 찾았다.


6월 항쟁의 열기 덕에 이번에는 천만 원의 돈이 필요 없었다.


바람이 불기도 전에 눕는 풀처럼, 그저 살기 위해 정권의 눈치를 살폈던 대부분의 공무원들은 시대의 흐름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신 교도소장은 겸연쩍은 표정으로 내게 정상적인 절차를 부탁했다.


그리고 민통당 청년 위원장이라는 나의 명함을 고려해 접견시간을 늘려주는 소소한 배려를 잊지 않았다.


나는 못내 아쉬워하는 것 같은 그의 등 뒤로 10만 원짜리 수표 10장을 돌돌 말아 쥐어줬다.


그가 찡긋거리는 나의 눈짓에 환하게 웃으며, 가볍게 몸을 굽실거리는 사이.


접견장의 칸막이 너머로 잔뜩 상기된 얼굴의 태근이 형님이 나타났다.



“흠.. 그래. 결국은 모두 자네 말대로 됐어. 내 무슨 재주로 그걸 맞췄는지는 묻지 않겠네. 하지만, 이제부터가 정말 중요하네. 자칫, 이번 개헌과 대선마저 자네 말대로 된다면, 그건 우리 역사에 돌이킬 수 없는 과오로 남을 것이기 때문이네.”



다짜고짜 본론으로 직진하는 그의 마음이 급하다.


하고자 하는 얘기가 접견시간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거나, 지금의 정국이 그를 재촉하는 것이겠지.



“그럼, 제가 말씀드렸던 대로 저를 도와주실 겁니까? 선배님의 말씀에 따라, 저 또한 선배님과 다른 제 생각을 재고해 보겠습니다.”



나는 최대한 차분하게 태근이 형님을 바라봤다.


그러자 그가 자신의 주제에서 벗어난 나의 말에 물끄러미 내게 시선을 맞췄다.



“자네, 지금.. 하.. 좋네. 헌데..”



결국 그는 내가 강제로 돌린 화제에 올라탔다.


자신이 하고자 하는 얘기를 위해선 우선 나의 제안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사실을 인정한 것이다.



“사람은 결코 희망이 될 수 없다던 자네의 생각을 재고하겠다고? 왜지? 왜 그러는지 물어도 될까?”



역시, 태근이 형님은 나의 말들을 토시 하나 빼놓지 않고 기억하고 있었다.


하긴, 그 고문들을 받으면서도 날짜와 시간은 물론, 사람들의 면면까지 기억했던 양반이니 대수로울 것도 없다.



“별 거 없습니다. 여전히 선배님처럼 사람만이 희망이라는 말엔 동의할 수 없지만.. 아주 가끔씩 사람이란 종자도 희망이 될 수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뭐?!”



의외라는 형님의 반응에도, 반사적으로 한율이와 민재가 눈앞에 어른거렸다.



‘젠장..’



또, 그들과 함께 했던 수많은 평범한 사람들이 떠올랐다. 그런데.



“훗! 그나마 다행이군. 자네가 신문에서 보였던 모습이 전부 의도된 건 아닌 것 같아서.”



형님 말 속에 뼈가 있다.


이생에서 형님을 다시 만난 그때부터 지금까지, 일련의 과정들을 통해서 그가 느꼈을 혼돈과 갈등들을 감안한다면 뭐, 당연한 것이겠지만 말이다.



“그렇다고 오해도 하지 마십시오. 전부는 아니어도, 대부분은 의도된 것이니까. 단지.. 최소한 그 어디에도 거짓은 없습니다. 언론에 노출된 것은 제 의도가 다분했지만, 그 자리에 있을 때만큼은 저도 언제나 진심이었으니까요.”


‘정확히 말하면 진심이 아닐 수가 없었지. 염병할.. 사람 새끼가 어떻게 그 상황에서 딴 생각을 해.’



이번엔 내가 태근이 형님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정주열 회장이 그랬던 것처럼 형님도 지금, 도대체 내가 뭐하는 놈인지 궁금한 사람 같았다.



“그래. 내가 희망의 힘을 믿는 것처럼, 난 자네의 진심을 믿네. 그래서 자네에게 그 편지를 보냈던 것이고.. 자, 그렇다면 내가 자네를 어떻게 도우면 되겠나? 당장, 이곳에 묶여 옴짝달싹도 못하는 이 김태근이 말일세.”


‘허, 됐다!’



나는 생각보다 쉽게 나를 믿어준 태근이 형님을 바라보며 쾌재를 불렀다.


나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이 어느새 여름날의 청춘처럼 이글거렸다.



“형(刑)은 조만간 집행정지가 될 겁니다. 시일은 제가 조금 더 앞당겨 보죠. 어차피 6.29의 내용엔 6.10대회 관련 구속자들에 이어 선배님 같은 분들의 사면과 복권이 명시되어 있으니까요.”



풀어준다는 데, 어지간하면 좋아할 만도 하건만 태근이 형님의 표정엔 변함이 없다.



“그 다음엔?”


“정치를 하겠다고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제게, 치우치지 않는 균형추가 되어주십시오. 막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말씀처럼, 당장 개헌과 단일화 문제부터 풀어야 합니다.”


“방법은 있고?”


“글쎄요. 분명한 건 정치적으로 풀어야 한다는 겁니다. 이미 논의의 주체가 여당 쪽 4명과 민통당 쪽 4명의, 8인회담으로 넘어온 이상 범국본조차 끼어들 틈이 없습니다. 다시 말해서, 이젠 거리가 아닌 국회의 시간이 되었다는 얘기죠. 앞으로도 그렇겠지만, 거리의 싸움이 힘을 잃지 않으려면, 역설적으로 제도 정치가 단단해야 합니다.”



이제는 달라지겠지만, 원래대로라면 형님은 내년이나 돼서야 형집행정지로 가석방 된다.


그리고 나서도 다시 재야세력으로서 분열된 민주화 운동을 이끌며 진을 빼겠지.



“좋네. 그렇다면 쉽진 않겠지만, 내게 대안이 있네. 사실, 내가 자네를 보자고 한 이유도 바로 그것 때문일세.”


나는 확신에 찬 그의 모습에 가슴이 설렜다.




* 본 작품은 대한민국 현대사를 모티브로 한 것이나, 등장 인물이나 단체의 이름, 역사적 사실들은 작가의 상상력에 의해 재구성 된 픽션임을 밝힙니다.

* 공모전 참여 중입니다. 많은 관심과 추천 부탁드려요.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1987 미안해 아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담주 부처님 오신날 연휴까지 이어서 연참합니다. 23.05.19 31 0 -
공지 제목을 변경했습니다. 23.05.17 54 0 -
공지 아, 일단 다음주까지 하루 2회 연참갑니다!! ^^ 23.05.11 35 0 -
공지 연재 시간은 저녁 8시 입니다. ^^ 23.05.11 300 0 -
61 60화 절반의 승리 (2) 23.06.18 78 3 10쪽
60 59화 절반의 승리 (1) 23.06.17 66 3 10쪽
59 58화 공존의 조건 (7) 23.06.16 65 3 11쪽
58 57화 공존의 조건 (6) 23.06.15 69 2 9쪽
57 56화 공존의 조건 (5) 23.06.14 66 3 11쪽
56 55화 공존의 조건 (4) 23.06.13 58 3 10쪽
55 54화 공존의 조건 (3) 23.06.12 64 2 10쪽
54 53화 공존의 조건 (2) 23.06.11 75 3 9쪽
53 52화 공존의 조건 (1) 23.06.10 88 3 10쪽
52 51화 잠룡들을 움직이다. (8) 23.06.09 95 4 11쪽
51 50화 잠룡들을 움직이다. (7) 23.06.08 93 5 11쪽
50 49화 잠룡들을 움직이다. (6) 23.06.07 94 3 9쪽
49 48화 잠룡들을 움직이다. (5) 23.06.06 105 4 9쪽
48 47화 잠룡들을 움직이다. (4) 23.06.05 104 3 10쪽
47 46화 잠룡들을 움직이다. (3) 23.06.04 107 3 10쪽
46 45화 잠룡들을 움직이다. (2) 23.06.03 111 3 10쪽
45 44화 잠룡들을 움직이다. (1) 23.06.02 120 3 9쪽
44 43화 다른 나라 DNA (6) 23.06.01 129 3 9쪽
» 42화 다른 나라 DNA (5) 23.05.31 138 5 9쪽
42 41화 다른 나라 DNA (4) 23.05.30 148 7 10쪽
41 40화 다른 나라 DNA (3) 23.05.29 154 7 9쪽
40 39화 다른 나라 DNA (2) 23.05.29 150 6 10쪽
39 38화 다른 나라 DNA (1) +1 23.05.28 172 6 9쪽
38 37화 설계된 엔딩 (5) 23.05.28 164 4 11쪽
37 36화 설계된 엔딩 (4) +1 23.05.27 162 6 10쪽
36 35화 설계된 엔딩 (3) 23.05.27 156 6 9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