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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작은 하셨나요?

영업부 꼰대 과장의 이세계 라이프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완결

천세은
작품등록일 :
2023.01.15 15:52
최근연재일 :
2024.03.15 10:00
연재수 :
400 회
조회수 :
15,928
추천수 :
1,480
글자수 :
2,061,634

작성
23.12.22 10:00
조회
16
추천
3
글자
11쪽

310. 은행털이

DUMMY

“여길 턴다고요? 무슨 수로요?”


여희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나를 바라보았다.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저 삼엄한 경비를 뚫고 저택 안에 들어가는 것조차 힘들 테니까. 하지만, 난 다르다. 이 상황의 미래를 조금 맛본 난 말이다.


“넌 그냥 내 곁에 붙어서 가만히 있어.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그녀는 여전히 날 미덥지 않게 바라보고 있었지만, 상관은 없었다. 뭐, 지가 어쩌겠어. 내가 저 은행을 털겠다는데.


“그럼 딱 붙어서 다가와. 입도 뻥긋하지 말고.”

“아니, 나 옷도 평범하지 않은데!!”

“다 노린 거니까, 그냥 따라와.”


그래, 여희의 옷은 아직도 기루에서 입고 있던 복장 그대로. 난 일부러 그 걸 노렸다. 이게 평소와 다르게 나를 따라 나섰을 때도 굳이 말리지 않았던 이유다. 적당히 야한 그녀의 복장이 지금 나에게 딱 필요했기에.

난 그녀의 손을 잡고서 서서히 저택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멀찌감치 다가오는 내 모습에 서서히 긴장하는 경비원들. 난 그런 그들을 향해 느긋하게 다가갔다. 잔뜩 겁먹은 여희를 데리고.


“여긴 사유지입니다.”

“그건 그렇지. 여긴 사유지지. 난 그 사유지에 볼일이 있는 남자고.”


남자는 날 유심히 바라보았다.

예상했던 반응이다. 오늘이 아닌 다른 날 같았으면, 이 남자는 은행일이냐고 물어보았겠지만, 오늘은 다르다. 오늘은 그 누군가가 이 은행에 올 예정이니까.


“실례지만,”

“실례? 그래 실례 하시게.”


난 대답과 동시에 여희의 허리를 감싸 내 쪽으로 끌어당겼다. 그 모습에 뭔가 확신을 하는 듯한 남자. 그는 잠시 기다리라는 말만 남긴 채, 저택 안으로 황급히 들어갔다.


“지금 뭐 하시는...”

“가만히 있어. 보는 눈이 많으니까.”


난 그녀의 투정에 나직이 주의를 주고 나서, 다시금 그녀의 허리를 힘껏 감았다. 주변 사람들에게 이런 모습을 어필하기 위해.

이유는 단순했다. 오늘 이 은행에 행차하실 높은 양반이, 무척이나 기루 마니아였기 때문이었다. 한 낮에도 여자들을 옆구리에 끼고 다닐 정도로. 심지어 비밀스러운 일을 진행할 때도 말이다. 그리고,


“들어오십시오, 왕야 어르신.”


여기 사람들은 자신이 기다리고 있는 ‘왕야’라는 인물의 얼굴을 모른다. 이 작전을 위해 난 이 사실만 불러오기를 통해 수십 번 확인했다.

난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이며 은행의 안으로 들어갔다. 여전히 여희를 끌어안은 채.

그렇게 은행 안으로 들어가자, 옷을 잘 차려입은 중년 남성이 날 반기며 다가왔다.


“생각보다 이른 시간에 오셨습니다, 변 왕야.”

“잠이 일찍 깨서.”


난 그들에게 호색한의 면모를 보여주기 위해, 여희를 힘껏 끌어안았다. 이런 내 모습에 싸늘한 미소를 짓는 중년 남성. 그래 아무리 여색을 좋아하는 인간이라고 해도, 이 정도는 아닐 거다.


“그럼 준비된 금을 보시겠습니까?”

“그래, 한 번 봅시다! 하하하하!”


난 시원스럽게 웃으며 그의 뒤를 따라갔다.

그의 뒤를 따른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도착하게 된 거대한 금고 방. 그 안에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양의 금이 방 안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약속드린 금의 일부분입니다.”


이 정도가 일부분이라니. 그럼 남은 건 어느 정도일까.


“이건... 생각보다 적은데.”


하지만 난, 오히려 표정을 바꾸어 매섭게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는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나에게 머리를 조아리며 입을 열었다.


“문주의 말로는 북쪽 사업이 순조로우니 다음 주 안에 나머지를 전부 드릴 수 있다고...”

“얘기가 다른 거 같은데. 아무래도 그냥 돌아가는 편이 낫겠군. 옮겨줄 심복들도 데리고 오지 않았으니 오히려 잘 됐군, 잘 됐어.”


난 그대로 금고의 방을 떠나려 했다. 그러자, 황급히 내 앞을 막아선 남성. 예상대로 흘러가는 상황 때문에 입가에 미소가 저절로 떠올랐지만, 참고 또 참았다. 이렇게 만든 기회를 날려 먹고 싶지 않았으니까.


“나머지는 저희가 꼭 다음 주까지...”

“돈이 문제가 아니라, 신뢰가 문제라고. 다음에도 이러지 않을 거란 보장이 어디 있나?”


내 말에 그는 정곡을 찔린 듯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그렇게 한동안 고개를 숙이더니 아무 말도 못했던 남자. 조금의 시간이 지나자,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비장해진 목소리를 머금은 채로.


“소문대로 왕야께서는 자비가 없으시군요.”

“사업에 자비를 배풀면 망하는 거 모르십니까?”

“그 냉정함이 젊은 나이에도 성공하신 비결이시겠지요.”


비장함 속에 싸늘함이 숨어져있는 그의 목소리. 하지만 비협조적인 그의 목소리와 다르게, 그의 행동은 무척이나 협조적이었다. 주변의 다른 이들을 시켜서 숨겨 놓은 금을 꺼내 왔으니까 말이다.


“여기 약속드린 금 전부입니다.”

“이제야 상황이 상황답게 흘러가는 군.”


난 기쁜 표정을 숨기지 않고 모두에게 보여줬다. 모두를 깜빡 속이기 위해서.

이제 남은 건 속이기의 절정. 바로 왕야의 버릇인데.

...여희가 잘 따라와 줄까?


“뭐하시나? 밖에 안 나가고?”

“네? 아! 네!!”


뭔가를 눈치챈 듯이 피식 웃으며 밖으로 나가는 중년 남성과 경비원들. 난 그들이 나가자마자 빠르게 문을 닫았다.


“아니, 날 기루 여자 취급하는 건 뭐예요?!”

“아직 안 끝났어. 목소리 낮춰.”


내 한 마디에 입을 틀어막고 숨을 죽이는 여희.

그런데 어쩌지. 이제부터 벌어질 이야기를 들으면, 무척이나 화가 치밀어 오를 텐데.


“여희야, 잘 들어. 전부 여길 털기 위한 거야.”


난 여희의 어깨를 살포시 잡으며 그녀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전부 그녀에게 신뢰와 안심감을 안겨주기 위한 밑밥 깔기. 난 그녀가 이 긴박하고 위험한 상황을 받아들일 수 있을 때까지 약 10초 정도 시간을 주었다.

10초면 많이 줬잖아. 한시가 바쁜 상황인데.


“야, 신음 소리 좀 내봐.”

“네에?!”


그녀의 얼굴에 당혹감이 반발했다. 그녀에게는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게 변 왕야라는 인간의 버릇인 걸. 금 밭에서 여색을 즐기는 게 그 인간의 고상한 취미라고.


“빨리! 안 그러면 들킨다고!”

“아니, 지금 뭘 어쩌라고!”


아직도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모르는 듯한, 아니 애써 무시하는 듯한 여희. 어쩔 수 없었다. 지금 내가 어떤 상황을 연출하려는 지 직접 몸으로 보여주는 수밖에.

난 그녀를 번쩍 들어 올려 금괴들의 위에 눕혔다. 그러자,


“지, 지금 무슨...!!”


아니나 다를까. 당혹스러움에 온 몸이 굳어진 그녀. 그래도 어쩔 수 없다. 뭐 진짜 그런 행위를 하는 건 아니니까.


“빨리! 신음!”

“...아! ...아!”


전혀 감정이 실리지 않은 그녀의 목소리. 평소 같았으면, 그녀의 머리통을 한 대 쥐어박으며 연기를 지도했겠지만, 그럴 시간이 없다. 여긴 실전이니까.


“미리 사과할 게, 미안하다.”

“네? 뭐가...”

[짝!]


난 그녀의 말이 채 끝나기 전에, 그녀의 하얗고 고운 배를 손바닥을 살짝 내려쳤다. 그러자,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찰진 소리. 그 소리와 함께 그녀의 비명도 함께 퍼져나갔다.


“아!”


그래, 이거면 됐다, 이거면. 내가 얻은 소문에 따르면, 변 왕야는... 무척 빠르니까. 별명이 찰나의 황태자였던가. 정말 찰나의 순간에 모든 것이 끝나는 찰나의 황태자.


“좋았어, 일어나. 옷 챙겨 입은 척하고.”

“네? 지금 뭐가 어찌 된 거예요?”


여전히 그녀는 얼굴에 당혹스러움이 가득했다.


“이렇게 빨리 끝난 거예요?”

“그런 게 있어. 남자들 중에는 그런... 부류가 있다고.”


비록 모르는 사람이지만, 난 그의 자존심을 지켜주고 싶었다.

힘내, 변 왕야! 힘내라고!


“다 끝나신 모양이군요.”


중년의 남성이 분을 벌컥 열며 들어왔다. 그의 얼굴에는 갑작스레 방 안으로 들어온 미안함도 그 어떤 죄송함도 없었다. 그저 비웃음만 가득했다.


“금 옮겨주게.”

“네, 그러겠습니다. 그럼 어디로 옮겨드릴까요?”


드디어 다가온 마지막. 나는 편안한 마음으로 금이 향할 목적지를 입에 담았다.


“극북 표국. 양씨 문중의 표국으로.”




큰일을 치르고 은행에서 나온 나와 여희는, 어색함에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지 못했다. 그런데, 여전히 내 곁에 딱 붙어있는 여희. 이제 그만 떨어져도 되는데 왜 이렇게 붙어있는 거야? 팔짱까지 끼고.


“이제 좀 떨어져도 되거든.”

“......”


말이 없다. 하긴 오늘 일어난 일이 꽤 충격적이었지. 기루에 팔렸던 몸이라고 해도, 비극이 발생하기 전에 내가 구해줬으니까. 이런 경험은... 아마도 없었을 것이다.


“아니, 떨어져도 된다니까.”

“......”


밀어내려고 슬쩍 팔을 뺐지만, 그녀는 다시 내 팔을 잡아 끌었다. 귀찮음에 한마디 하려 그녀를 바라본 순간, 난 내가 지금 무슨 짓을 벌였는지 되짚어 보게 되었다.

새파랗게 질린 얼굴. 풀린 동공.

내게 기대지 않으면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힘이 풀린 다리까지.

생각이 짧았다. 복수를 위해서라면 그녀가 어느 정도 감내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녀는 아직 이 모든 상황을 버틸 수 있는 정신은 기르지 못한 모양이었다.


“넌 오늘 복수의 발판을 다진 거야.”

“......”

“여기가 가씨 집안의 은행이거든. 비자금 은행.”


내 팔에 기댔던 그녀가, 차츰 기운을 차리는 듯이 느껴졌다.


“... 그런 건 진즉에 말해 줘야죠.”

“... 내가 말 안 했어?”

“안 했어요.”


아차 싶었다. 제일 중요한 것을 이야기 해주지 않다니. 아니, 그런데 여희는 아무것도 모른 채 그저 날 따라와 준 거야? 나를 믿고?


“... 날 믿은 거야?”

“...네.”


그녀의 대답은 담백했다. 한 치의 망설임조차 없었다. 조금 전 이상한 연기까지 시킨 나인데도 불구하고.


“나 대협이 하라고 하면... 옷도 벗을 수 있어요.”


각오가 단단히 서린 그녀의 목소리. 그런데, 너 신음소리도 못 냈잖아. 옷 벗는 거 보다 쉬운 신음소리 조차도.


“너 신음 소리는 못 냈잖아.”

“그건! 당황해서!”

“필요할 때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어. 그런 각오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고.”


따뜻한 말을 건네고 싶었지만, 나도 모르게 냉담한 말만 튀어나왔다.

마음과 다르게 차가운 목소리만.

그 뒤로는 우린 아무런 말도 나누지 않았다. 그저 팔짱을 낀 채 앞으로, 그저 앞으로 걸어 나갔다.




“형님! 큰일이 났습니다!”


진건이 혼비백산한 얼굴로 방 문을 벌컥 열며 들어왔다. 그런 그를 보며 의아하다는 표정을 짓는 진자. 웬만큼 큰일이 아니고서야 이런 모습을 보일 진건이 아니었기에, 진자의 눈동자에 불안감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무슨 일인데 이 호들갑이냐?”


“변 왕야, 그 변 왕야 있지 않습니까?!”

“변 왕야가 왜?”


진자는 고개를 기울였다. 변 왕야가 무슨 일을 저질렀다는 것일까. 또 기루에서 시비가 붙었다는 것일까? 도대체 무슨 일이기에 이리 호들갑을 떠는 것일까.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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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4 314. 창조교 23.12.25 12 3 11쪽
313 313. 설원에서 23.12.23 17 3 11쪽
312 312. 은행털이 - 3 23.12.23 18 3 11쪽
311 311. 은행털이 - 2 23.12.22 22 3 11쪽
» 310. 은행털이 23.12.22 17 3 11쪽
309 309. 그들의 꿍꿍이 - 3 23.12.21 19 3 12쪽
308 308. 그들의 꿍궁이 - 2 23.12.21 13 3 11쪽
307 307. 그들의 꿍꿍이 23.12.20 14 3 12쪽
306 306. 영업의 신 23.12.20 11 3 11쪽
305 305. 여정의 시작 23.12.19 13 3 12쪽
304 304. 조건 23.12.19 16 3 11쪽
303 303. 원치 않았던 만남 23.12.18 15 3 12쪽
302 302. 새로운 모험, 무협랜드 +1 23.12.18 21 3 12쪽
301 301. 하드 리셋 23.12.16 9 3 11쪽
300 300. 뜻 밖의 제안 23.12.16 8 3 12쪽
299 299. 마지막 희망. 그리고... 23.12.15 12 3 12쪽
298 298. 마지막 희망 - 5 23.12.15 9 3 11쪽
297 297. 마지막 희망 - 3 23.12.14 11 3 11쪽
296 296. 마지막 희망 - 2 23.12.14 9 3 11쪽
295 295. 마지막 희망 23.12.13 14 3 11쪽
294 294. 몰아치는 전쟁 - 3 +1 23.12.13 14 4 12쪽
293 293. 몰아치는 전쟁 - 2 23.12.12 18 3 11쪽
292 292. 몰아치는 전쟁 23.12.12 17 3 11쪽
291 291. 신살(神殺) +2 23.12.11 25 3 12쪽
290 290. 드러나는 배후 +2 23.12.11 22 3 11쪽
289 289. 담판 23.12.09 12 3 11쪽
288 288. 침공 방어 23.12.09 12 3 11쪽
287 287. 각자의 결정 23.12.08 13 3 12쪽
286 286. 습격 그리고 23.12.08 13 3 12쪽
285 285. 제안 23.12.07 15 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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