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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작은 하셨나요?

영업부 꼰대 과장의 이세계 라이프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완결

천세은
작품등록일 :
2023.01.15 15:52
최근연재일 :
2024.03.15 10:00
연재수 :
400 회
조회수 :
15,895
추천수 :
1,480
글자수 :
2,061,634

작성
23.12.18 19:00
조회
14
추천
3
글자
12쪽

303. 원치 않았던 만남

DUMMY

맹수들과 작별을 고한 난, 한동안 마을을 지켜보았다.

화려한 불빛과 맛있는 음식냄새가 가득한 마을, 북리(北里). 아마도 북쪽의 설원지대로 가기 전 마지막 마을인 듯했다.

이 곳에는 여정을 정비하기 하려는 여행객들로 가득했다.

특히나 사람의 따스함을 느끼려는 사람들, 즉 기루를 찾는 사람들로.

평소 같으면 눈길조차 주고 싶지 않은 광경이었지만, 오늘은 달랐다. 오늘은 저 기루에서 누군가가 죽는다. 그것도 오늘 막 저 기루로 팔려온 여성이.


“거지같은 년! 야! 이거 치워!”


때가 된 모양이다.

기루에서 나온 늙은 남성은, 온 몸이 날붙이로 도륙이 난 여성을 땅바닥에 매다 꽂았다. 사방으로 피가 튀기고 으스러진 살점이 떨어졌다. 그러나 고통의 몸부림이나 신음은 결코 들려오지 않았다. 이미 그녀는 죽어있었기 때문에.

몇 번의 불러오기로 그녀와 관련된 이야기를 모을 수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증여희. 권문세족 증 씨 가문의 둘째딸. 잘나가는 가문이었지만, 주변 귀족들의 모함을 받아 몰락한 비운의 집안이었다.

다른 형제 자매들은 운명을 알 수 없었지만, 얼굴이 반반한 그녀는 이곳 기루까지 팔려오게 된 모양이었다. 오늘은 그녀가 사람을 맞이하는 첫 날. 하지만 일을 시작하기 도 전, 그녀는 이렇게 싸늘한 고깃덩어리가 되고야 말았다. 자신을 범하려는 남자의 심장을 칼로 찔렀기 때문에.

그녀의 시체가 땅에 떨어진지 얼마 지나지 않아, 몇 명의 거렁뱅이들이 그녀의 시신들 들고 돼지우리로 향했다. 평소에 여자 근처에도 못가는 거렁뱅이들이었지만, 그녀의 시신에는 아무런 위해를 가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아무리 여자가 궁한 놈이라 해도 시신을 범하는 놈이 있을 리 없잖아. 제정신이 아니라면.

난 돼지우리에 버려져있는 그녀의 주검을 그저 바라만 보았다.

사실, 그녀의 과거를 살피던 도중, 여러번 그녀를 살려보았다. 하지만 뒤끝이 좋지 않았다. 한번은 기루의 모든 이를 학살하기도 했고. 또 한 번은 여기의 거렁뱅이들에게 몹쓸 일을 당해 목숨을 끊기도 했다. 매번 살릴 때마다 운명이 바뀌니 정말이지 미칠 노릇이다. 미래시를 알아도 쓸 수가 없다니. 이걸 도대체 어쩌라는 건지.


“또 모르니까, 살려는 볼까?”


측은한 마음이 들어서 일까. 난 또 쓸데없는 짓을 하고야 말았다.

청명한 부른 빛이 그녀의 몸을 감쌌다. 미동도 없던 그녀의 몸이 조금씩 움직이는 것이 느껴졌다.


“여, 여긴...”


이내 정신을 차린 그녀는, 주변의 상황을 천천히 바라보기 시작했다. 볼게 뭐 있나. 여긴 그 여느 때의 돼지우리인데. 그리고 다음 차례는...


“감히 날 이런 곳에?!!”


오호. 이번엔 좀 색다르다. 지금까지 언제나 비명으로 시작했었는데, 이번엔 분노라니. 그녀의 운명에 대한 새로운 패턴인가?


“내 이것들을 가만히 두지 않을 것이야!”


그녀는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빛으로 날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네 놈도 한패냐? 붉은 옷!?”


분노의 화살을 나에게 쏟아 부었다. 성깔하고는 참. 얼굴도 그다지 예쁘지도 않는데 이렇게 성깔이 개차반이라니. 이런 성질머리로 어디 시집이나 가겠어?


“넌, 살려준 은인에게 고작 하는 말이 그거냐?”

“뭐? 살려준 은인? 날 덮치려 해 놓고?”


하아... 차라리 비명 지를 때가 나았다. 비명을 지르면 데리고 도망 치면 되지. 이건 뭐 그냥 보자마자 시비니. 이럴 땐 어떡해야 할까.


【다시 불러 올까요?】


내 고민이 진지했던 모양인지 보조 프로그램까지 반응했다.


“아니야 그럴 필요는 없어. 조금만 더 관찰해 보고.”

“지금 누구와 이야기 하는 것이냐! 설마 너... 미친놈이냐?”


하... 여기서 이렇게 시간을 끌 이유도 없는데. 난 왜 이런 버러지같은 여자에게 내 금과 같은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걸까.

아니지, 아니야. 그래도 이렇게 살려 줬으니 작은 정보라도 캐내야지.


“너, 다른 세계로 이어지는 문이란 걸 들어본 적이 있냐?”

“......”


그렇게 쫑알쫑알 이빨을 털어댔던 여자가, 단번에 입을 다물었다.

이건 언제나 같은 반응이다. 이게 내가 몇 번이나 불러오기를 시전 한 이유였다. 아니 왜 이것만 이야기 안 해?


“아니, 좀 이야기 좀 해 봐라! 사람 미치게 만들지 말고!”

“처음 보는 이에게 지금 무슨 실례되는 행동인가?!”


아니, 지금까지 날 범죄자 취급해놓고, 뭐? 실례되는 행동? 이 인간 정말이지!


“야, 넌 그냥 죽어. 죽어있어.”

“그건 너무하잖아! 살아있는 이에게 죽으라니!”

“어차피 넌 죽었던 몸이라고. 그러니까, 그냥 죽어. 다른 험한 꼴 당하지 말고.”


나는 가슴팍에서 은화를 꺼내, 힘껏 쥐었다.

모든 이들을 살리고자 했던 과거의 현과장이 보았더라면 기겁을 했을 것이다. 자신의 손으로 사람을 죽이다니.

그래도 어쩔 수 없잖아. 이 여자 아무런 도움이 되질 않는다고.


“이 칼에 닿기만 해도 온몸이 불길에 휩싸일 거야. 너무 염려하지는 마. 저기 기루도 내가 확실히 불 질러 버릴 테니까.”


난 진심이었다. 그 어느 때보다 명확하게 진심이었다.


“자, 잠시만요!”


잠시만은 무슨 잠시만. 난 이 이상 시간을 그녀에게 시간을 허비할 마음이 없었다. 이쯤 끝내자. 무는 무로, 시체는 시체로 돌아가야 하는 법이니까.


“우, 우리 집 비보에 시공간을 가르는 문에 관한 이야기가 나와요!”


잠깐, 잠깐, 잠깐. 시공간을 가르는 문? 그게 사실일까?


“지금 거짓말하는 거지?”

“거짓말 아니에요! 진짜라고요!”


그녀의 이야기에 망설임이 발생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녀를 믿을 수는 없었다.

그렇다면,


“불러오기.”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수밖에.




마을에 도착... 이게 도대체 몇 번째 도착이야. 어쨌든, 난 마을에 도착하자마자 기루로 발걸음을 옮겼다. 모든 사건이 시작되기 전 확실히 알고 싶었다. 그녀의 말이 사실인지.


“어서 오세요~!”


기루에 들어서자, 화장을 짙게 한 늙은 노파가 내 앞에 불쑥 나타났다.

내 복장이 희한한 모양인지, 한참동안 내 주위를 빙빙돌던 노파. 그녀는 그렇게 시간을 무지하게 잡아먹고서야, 그녀는 나를 향해 질문을 던졌다.


“누구 찾는 이라도 있을까~”

“증 씨 가문의 둘째 딸, 증여희.”


내 입에서 나오지 말아야 할 이름이 나온 것일까. 노파의 얼굴이 흙빛으로 변했다.


“...그런 아이는 없는데.”


없다니, 이건 무슨 말이지? 지금 설마 뭔가 숨기는 거야?


“시간 없어, 할매. 여희는 어디 있어?”


노파의 눈빛에 난처함이 맴돌았다. 그러자, 서서히 나를 향해 다가오는 기루 안에 있던 남자들. 이곳 단순히 인신매매만하는 곳은 아닌 모양이다.


“아, 진짜 이럴 줄 알았으면, 여기도 조사해 놓는 건데.”


답답함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일이 왜 이렇게 꼬이는 거야. 그냥 다시 불러오기를 할까? 가슴속에서 갈등이 생겨났다. 그런데 그때,


“으아아아악!!”


2층의 어디선가 들려온 남자의 비명. 분명했다. 지금 여희가 사람을 찔렀다.


“내가 말했잖아! 시간이 없다고!”


난 빠르게 2층으로 올라갔다. 역시나 내 예상대로, 아니 운명대로 남자의 가슴에 비수를 꽂아 넣은 여희. 그녀의 눈동자에서 초연함이 느껴졌다. 마치 자신의 운명을 예감한 듯이.

그러나, 난 그녀가 그렇게 죽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나에겐 그녀로부터 확인해야 할 사실이 있으니까.


“자, 여기서 분명히 말해. 증씨 가문의 비보에 시공간을 넘나드는 문에 대한 정보가 적혀 있어?”

“그, 그걸 어떻게...”


초연함만 가득했던 그녀의 눈빛에 당혹감이 섞여 들어갔다. 사실이었다. 증씨 가문에 차원문에 대한 단서가 존재한다. 그렇다면... 얘를 살려줘야 하잖아?!

이건 좀 아닌데...


“널 살려 줘야 한다고? 이건 좀 아닌 거 같은데.”


수십, 수백차례에 걸쳐 그녀의 싸가지를 경험한 나는, 순간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살려줘도 도와줘도 배은망덕을 기본으로 장착한 그녀를 왜 구해줘야 한다는 말인가.

아니, 이게 무슨 운명의 장난이야?


“야, 너희 형제나 자매 중에 비보에 대해 더 자세하게 아는 이는 없니? 내가 진짜 미안한데, 널 살려주면 내가 정말 골치가 아플 거 같단 말이야.”


난 내 감정을 더하지도 빼지도 않고 그녀에게 전달했다. 그런 그때였다.


“감히 정풍 가씨의 막내 도련님을 죽여?! 네년이 우릴 전부 죽일 셈이구나!”


늙은 남성이 거대한 칼을 들고 방 안으로 들어왔다. 죽은 여희를 기루 밖에 메쳤던 그 남자였다.

순간 여러 생각이 들었다. 전부 죽이고 여희만을 데리고 밖으로 나갈까. 아니면, 죽어 있는 귀족 가문의 막내를 살려주고 당당하게 여희를 데리고 나갈까. 여러 생각이 머릿속에 어지럽게 흩날렸다.


“나 지금 불러오기 하는 것도 질렸거든. 우리 좋게좋게 이야기하자.”


은화를 꺼내 한바탕 난리를 치고 싶었지만, 딱 한 번 참기로 했다. 평화로운게 좋은 거니까.

이어서 나는, 선을 뻗어 누워있는 남자에게 소생을 불어넣었다. 내 선택은 귀족 가문의 막내를 살리고 당당하게 기루를 나가는 것. 그래, 좋은 게 좋은 거잖아.


“으.... 으...”


소생을 시전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남자는 정신을 차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자, 내가 막내 도련님을 살려 줬으니까, 우리 그냥 좋게좋게 넘어갑시다.”


난, 정말 마음속에 전혀 존재하지 않는 친절함을 억지로 만들어 그들에게 선보였다.

하지만,


“저 계집 죽여! 죽이라고!”


막내 도련님은 내 생각과 전혀 다른 모양이었다. 죽이라고 소리나 지르고. 아니, 귀족 가문의 자제들은 소리 지르는 것이 뭐 패시브야? 왜 다시 살아나자마자 소리를 지르고 난리지?


“어이, 붉은 옷의 소협. 그냥 가시오, 그냥 가.”


늙은 남자도 도련님의 목소리에 가세했다.

일이 꼬이려면 정말이지 한도 끝도 없다. 난 그냥 여희를 살리고 싶을 뿐인데. 난 그냥 원더랜드로 돌아가고 싶을 뿐인데. 왜 이런 하찮은 일들에 머리를 쥐어 싸메야 하지?


“우와! 미치겠네! 어이, 막내. 내가 방금 당신 목숨 살렸어. 그래도 그런 말을 하는 거야?”

“저거 한패야! 한패!”


내 눈빛에 겁을 먹은 것일까. 그는 나를 그녀와 한패로 몰아갔다. 뭐, 틀린 말은 아니었다. 어차피 차원문을 위치를 알기 위해서는 한패가 되어야 하니까.


과거의 현과장이라면, 이런 상황을 호떡과 커피로 파훼했겠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과거의 현과장. 오리지널인 나와는 많이 다르다.

난 망설임 없이 가슴팍에서 은화를 꺼내들었다. 도신(刀身)을 타고 흐르는 은빛의 화염. 내 본능은 은화의 힘을 모두에게 발산하라고 연거푸 외쳤다.


“내 안에 선한 부분이 남아있는 것을 감사하라고.”


난 벽면을 향해 은빛 화염을 뿌려대기 시작했다. 이윽고 기루 전체로 번진 은빛의 화염. 독기로 만들어진 이 화염이 쉽사리 꺼질 일은 없었다.

그렇게 난, 모두가 화염에 혼비백산한 틈을 타 여희를 데리고 기루를 빠져나왔다. 멀어지는 화염 사이로 여희의 이름을 부르짖는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지만, 개의치 않았다.

아니, 지가 뭘 어쩔 건데? 그렇게 부른다고 내가 그녀를 돌려줄 거라 생각하나?

바보 아니야?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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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4 314. 창조교 23.12.25 12 3 11쪽
313 313. 설원에서 23.12.23 17 3 11쪽
312 312. 은행털이 - 3 23.12.23 18 3 11쪽
311 311. 은행털이 - 2 23.12.22 22 3 11쪽
310 310. 은행털이 23.12.22 16 3 11쪽
309 309. 그들의 꿍꿍이 - 3 23.12.21 18 3 12쪽
308 308. 그들의 꿍궁이 - 2 23.12.21 13 3 11쪽
307 307. 그들의 꿍꿍이 23.12.20 14 3 12쪽
306 306. 영업의 신 23.12.20 11 3 11쪽
305 305. 여정의 시작 23.12.19 13 3 12쪽
304 304. 조건 23.12.19 16 3 11쪽
» 303. 원치 않았던 만남 23.12.18 15 3 12쪽
302 302. 새로운 모험, 무협랜드 +1 23.12.18 21 3 12쪽
301 301. 하드 리셋 23.12.16 9 3 11쪽
300 300. 뜻 밖의 제안 23.12.16 8 3 12쪽
299 299. 마지막 희망. 그리고... 23.12.15 12 3 12쪽
298 298. 마지막 희망 - 5 23.12.15 9 3 11쪽
297 297. 마지막 희망 - 3 23.12.14 11 3 11쪽
296 296. 마지막 희망 - 2 23.12.14 9 3 11쪽
295 295. 마지막 희망 23.12.13 14 3 11쪽
294 294. 몰아치는 전쟁 - 3 +1 23.12.13 14 4 12쪽
293 293. 몰아치는 전쟁 - 2 23.12.12 18 3 11쪽
292 292. 몰아치는 전쟁 23.12.12 17 3 11쪽
291 291. 신살(神殺) +2 23.12.11 25 3 12쪽
290 290. 드러나는 배후 +2 23.12.11 22 3 11쪽
289 289. 담판 23.12.09 11 3 11쪽
288 288. 침공 방어 23.12.09 11 3 11쪽
287 287. 각자의 결정 23.12.08 13 3 12쪽
286 286. 습격 그리고 23.12.08 13 3 12쪽
285 285. 제안 23.12.07 15 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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