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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작은 하셨나요?

영업부 꼰대 과장의 이세계 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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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천세은
작품등록일 :
2023.01.15 15:52
최근연재일 :
2024.03.15 10:00
연재수 :
400 회
조회수 :
16,009
추천수 :
1,480
글자수 :
2,061,634

작성
23.12.19 10:00
조회
16
추천
3
글자
11쪽

304. 조건

DUMMY

“날 왜 구해주신 겁니까?”


숲길을 한참을 걷던 도중, 여희가 내 손을 뿌리치며 나에게 물었다.

아니, 지금까지 내가 한 말을 귓등으로도 안 들은 거야? 분명히 말했잖아.

... 아닌가? 이거 같은 시간대를 여러 번 경험했더니 기억에 혼동이 오는 거 같은데.


“차원문 때문에. 난 그 차원문으로 꼭 가야 하는 곳이 있으니까.”


기억이 애매할 때는, 다시 한번 진행하면 되는 법. 나는 그 내 목적을 일체의 과장 없이, 담백하게 전달했다. 그러자,


“왜 가려는 겁니까?”


질문에 질문이 이어진다. 아니 남의 사정에 왜 이렇게 관심이 많은 거야? 본인 일이나 잘할 것이지.


“아니, 내 일에 왜 이렇게 관심이 많아? 여보세요, 증씨 가문의 둘째 따님. 당신은 그냥 차원문에 관한 정보만 주고 갈 길 가세요.”


그녀에게 수십, 아니 수백 번 당했던 나는, 나도 모르게 그녀를 향해 신경질을 부렸다. 물론, 지금의 그녀가 나에게 버릇없는 행동이나 말투를 보여줬던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같은 인간이잖아. 여태까지 불러오기로 만난 그녀들과 같은 ‘여희’라는 인간.


“참... 무례하시군요!”


그녀의 얼굴에는 할 말이 많다고 쓰여 있었지만, 그녀는 입을 꾹 다물었다. 마치 화를 억지로 참는 것처럼.


“아이고, 화를 참아? 개가 똥을 끊지. 이미 알 만큼 아니까, 얌전한 척하지 말고 본색을 드러내라고.”


가관이다. 가관이야. 지금까지 입에 전부 담기 힘들 만큼 쓰레기 같은 인성을 보여줬는데, 이제와서 착한 척을 한다고? 내가 전부 다 아는데?!


“무슨 소문을 들으신지 모르겠지만, 저는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기가 막혔다. 아니긴 뭐가 아니야.

기껏 살려줬더니 소리부터 지르질 않나, 사람을 강간범으로 몰지는 않나.

배은망덕도 유분수지. 아니, 내가 왜 얘를 살려 줬지? 그냥 모른 척 지나갈걸.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다 보면 다른 쪽에서 정보를 얻을 수도 있는 거잖아.


“어휴... 아닌 척, 아닌 척. 저기요. 그냥 편하게 본색을 드러내라니까. 난 다 알고 있다고.”

“뭘 안다는 겁니까?”


그녀는 끝까지 오리발을 내밀었다. 이렇게 말싸움을 하면서 시간을 지체할 여유조차 없는데 말이다.


“그래 마음대로 해라. 순수하고 착한 가면을 쓰고 살든지, 아니면 악마 같은 그 본색을 내비치든지. 네 뭐 꼴리는 대로 사세요.”


난 그녀를 무시한 채, 그대로 걸음을 재촉했다. 그런데,


[씩! 씩!]


등 뒤에서 거친 숨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다. 마치 자신의 화를 이기지 못하고 촉주의 한계 직전까지 온 마물의 숨소리. 그 숨소리의 주인은 다름 아닌, 아니지 역시나 그녀였다.


“...난 할 만큼 했어...”


씩씩거리는 와중에 날 보며 뭔가 중얼거리는 그녀. 그래, 이 모습이지. 이게 여희지. 예의? 존중? 이 세상 물정 모르는 귀족의 영애에게 그따위 것이 있을 리 없었다. 아니, 애당초 그 그림자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살려 줘서 고맙고, 구해줘서 고마운데! 이렇게 사람을 무시하는 놈하고 어떻게 같이 다녀?! 난 못해!”


두 눈을 똥그랗게 뜬 채, 나를 째려보는 그녀. 그렇지. 이게 그녀지. 지금의 그녀는 예전에 내가 겪었던 여희로 완전히 돌아와 있었다.


“아휴~ 이제 속이 다 시원하네. 드디어 본색을 보여주시는 거야? 귀족 아가씨?”

“이게 내 본색이 아니라고! 당신이 날 화나게 만들었으니까 이러는 거 아니야!”


그녀는 여전히 날 씩씩거리며 노려보았다.

아니, 적반하장도 적당히 해야지. 본인이 나에게 보인 비매너는 생각하지도 못하고!


“넌 더 심했어. 내가 얼마나 많이 구해주고, 살려주고 그랬는데!”

“뭘 구해주고 살려줘?! 난 처음이거든!”


그래 처음이겠지. 너한테는. 나한테는 수십, 수백 번이고.


“말을 말자. 내가 스무 살도 안 된 꼬맹이랑 무슨 이야기를 한다고.”

“아니! 진짜! 난 당신에게 도움을 받은 게 이번이 처음이라고!”

“알아, 이번이 처음인 거. 그런데 난 아니거든.”


내 말을 듣던 여화는, 그녀의 눈동자에 가득 담겨 있었던 분노를 조금씩 덜어내기 시작했다. 그 대신, 얼굴 가득히 차오르기 시작한 두려움. 어느새 그녀는 새파랗게 질린 얼굴이 되어 슬슬 날 피하기 시작했다.


“왜 그러는 거야?”

“미친놈에게는 말도 걸지 말라... 아니, 아닙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오호라, 이제는 미친놈 취급이네. 이건 좀 신선한데.


“미친놈 취급이라. 신선하군.”


신선하다는 말에, 그녀의 얼굴은 파랗다 못해 잿빛으로 변모해가고 있었다.


“그래, 미친놈이 하나 묻자, 네 가문이 가지고 있는 차원문. 지금 어디 있어?”


난 그녀가 겁을 먹은 상황을 이용하기로 마음먹었다. 겁을 잔뜩 집어먹은 지금이라면, 순순히 위치를 말해 줄 거란 확신이 들었기 때문에.


“나, 나는 몰라요!”

“어허! 몰라? 빨리 말 안 하면 내가 몹쓸 짓 한다!”

“끼야~!!!”


완벽하게 겁을 집어먹은 그녀의 얼굴에서, 지금까지 들어본 적 없는 비명의 소리가 뿜어져 나왔다. 숲속으로 가냘프게 퍼지는 그녀의 목소리. 겁에 질린 그녀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빨리 안 말하면, 미친놈이 미친 짓을 벌일지 몰라~”


난 그녀를 조금 더 강하게 압박했다. 내 얼굴을 해괴망측하게 일그러뜨리며.


“저, 저, 저, 정말 몰라요! 모른다고요!”

“어허! 이거 안 되겠네!”


난 더욱 압박하기 위해, 색정에 눈이 먼 무뢰배처럼, 쓰러진 그녀의 가슴을 강하게 움켜 쥐려...


“어? 어? 지금...”


난 그녀의 가슴으로 향하던 손을 재빠르게 거두어들였다. 이유는 별 다른 게 없었다. 사시나무처럼 벌벌 떨고 있는 그녀의 모습도 이유라면 이유였겠지만, 제일 큰 원인은, 땅을 축축하게 적시고 있는 그녀의 배설물 때문에.


“아, 안 놀려! 안 놀린다고!”


그녀에게 사심을 조금, 아니 많이 담았던 나 자신이 살짝 원망스러워졌다. 이렇게까지 하려고 했던 건 아니었는데.

하... 뒷감당을 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




난 우선 강가로 그녀를 데리고 갔다.

달빛이 안 비치는 적당한 곳에서 목욕을 하게 데려다 놓고, 난... 빨래를 시작했다. 이게 무슨 팔자에도 없는 고생일까. 원더랜드에서는 채야가 다 해줬는데. 이게 뭐냐고. 내가 왜 망한 귀족 가문의 싸가지 없는 둘째 딸의 수발을 들어야 하냐고! 생각을 하면 할수록 열이 뻗쳤다.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아닌데...”


말과 생각은 이러했지만, 내 몸은 빨래를 하고 불사조의 재킷을 이용해 불도 지피고 있었다. 내 생각과 의지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이.


“야! 너 다 씻었으면 와서 불이나 쫴!”


조금 전과는 많이 다르게 고분고분 말을 잘 듣는다. 내가 미친놈이라고 확신을 해서일까. 아니면, 조금 전 충격으로 성격이 바뀐 걸까. 흐음...어쨌든 신선한 반응이다. 신선한 반응이야.


“이거 덮고 있어.”


난 알몸인 그녀에게 재킷을 던져줬다. 아무리 내가 남자이고, 마음속에 엉큼한 부분이 있다고 하지만, 빤히 알몸인 여자 아이를 그냥 내버려 두는 건 아니잖아. 그건 변태라고, 변태 중에도 상 변태.


“...고맙습니다.”

“고마우면 차원문 위치.”

“......”


그녀는 입을 다물었다. 입을 다물었다는 것은 차원문의 위치를 모르는 게 아니다. 숨기고 있는 거지.


“그 위치를 지키는 게 네 목숨보다 중요해?”

“......”


여전히 말이 없다. 목숨보다는 아니지만, 목숨만큼이나 중요하다는 것이겠지.

하... 난감했다. 정말 마음 모질게 먹고 못된 인간이 되어야 할까. 아니면 그녀가 스스로 입을 열 때까지 기다려야만 할까. 그것도 아니면, 그녀의 신임과 마음을 얻어, 그녀의 입을 열게 만들까. 신임과 마음이라... 신임과 마음을 얻는 방법이라면, 이 방법이 최선이지.


“우리 결혼...?”

“미쳤어요?!”


우와... 거절하는데 단 1초도 걸리지 않았다. 아직 말이 다 끝나지도 않았는데. 이건 좀 상처받는데.


“왜 차원문을 이용하려는 지 아직 말해 주지 않았어요.”


그녀의 질문에, 난 고개를 숙였다.

난 수십, 수백 번을 말했지만 그녀의 기억에 없을 뿐이다.


“지킬 사람들이 있어. 차원문의 반대편에.”


구구절절 일일이 설명하는 것도 이제는 지쳤다. 이제는 결단을 내려야 했다. 그녀를 놓아주고 다른 곳에서 차원문에 대한 정보를 찾을 것인가. 아니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녀의 입에서 차원문에 관한 이야기를 캐낼 것인가. 난 지금 그 기로에 서 있었다.


“우리 증씨 가문은 예언가 집안입니다.”


예언가? 예언이라... 잠깐, 예언이라고? 이거 어디서 많이 들어본 듯한 이야기인데...


“대대로 내려온 이야기가 있어요.”


이야기라고? 그거 예언이라는 말이잖아. 설마, 『인간체스를 우승한 자가 원더랜드를 무너뜨린다.』 뭐, 이런 거야?


『人名茄郭登 (인명가곽등 - 가지 넝쿨 벽에 사람의 이름이 오르고).

治一土之哄 (치일토지홍 - 왁자지껄 땅을 다스리네).

雲雨如天淚 (운우여천루 - 남녀의 정이 하늘의 눈물이려나).

流江增不紅 (류강증불홍 - 흘러 강물이 늘지만, 붉지는 않네).』


그녀는 나에게 이해가 조금도 되지 않는 이야기들을 들려주었다. 인명 뭐? 류강증? 류강증이 누구야? 유명한 사람 이름인가?


“그게 무슨 소리야?”

“예언입니다. 얼핏 듣기에는 전쟁의 슬픔을 말하는 이야기인 거 같지만.”


전쟁의 슬픔? 난 하나도 모르겠는데? 이 이야기의 도대체 어디가 전쟁의 슬픔이 담겨 있다는 말이야? 지금 나 언어영역 5등급이라고 무시하는 거야? 응?!


“너 지금 내가 모른다고 아무 말이나 막 하는 건 아니지?”

“내 말 아직 안 끝났으니까, 이야기나 마저 들어요.”


여희가 매섭게 노려보는 바람에, 난 그만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제대로 된 해석은 이러합니다. 사람 이름 중, 가(茄)씨 곽(郭)씨 그리고 등(登)씨가, 왕을 속이고 나라를 지배한다. 비바람은 하늘의 눈물. 원망이 강을 이루지만, 증(增)씨는 붉지 않다.”

“그게 무슨 뜻이야?”

“나라가 귀족 가씨, 곽씨, 등씨에게 떨어졌지만, 증씨만이 등을 돌렸다는 이야기에요.”


나는 자연스럽게 고개를 기울였다. 그게 지금 나와 무슨 상관인데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일까.


“이게 지금 나와 무슨 관련이 있는 걸까?”

“관련이 있지요. 차원문이 어디 있는지 알기 위해서는.”


차원문이라는 말에, 정신이 번뜩였다. 설마, 요녀석...


“너, 거래를 하자는 거냐?”


그녀는 대답을 하지 않고, 그저 내 얼굴을 바라만 보았다. 담담하기 그지없는 그녀의 눈동자. 이미 그녀는 어느 정도 마음을 정한 모양이었다.


“저 이야기 때문에 우리 집안이 풍비박산이 났어요. 이대로 넘어 갈 수는 없어요. 그러니까, 그쪽이 절 대신해 복수를 해주세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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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4 314. 창조교 23.12.25 13 3 11쪽
313 313. 설원에서 23.12.23 18 3 11쪽
312 312. 은행털이 - 3 23.12.23 18 3 11쪽
311 311. 은행털이 - 2 23.12.22 23 3 11쪽
310 310. 은행털이 23.12.22 17 3 11쪽
309 309. 그들의 꿍꿍이 - 3 23.12.21 19 3 12쪽
308 308. 그들의 꿍궁이 - 2 23.12.21 13 3 11쪽
307 307. 그들의 꿍꿍이 23.12.20 14 3 12쪽
306 306. 영업의 신 23.12.20 11 3 11쪽
305 305. 여정의 시작 23.12.19 13 3 12쪽
» 304. 조건 23.12.19 17 3 11쪽
303 303. 원치 않았던 만남 23.12.18 15 3 12쪽
302 302. 새로운 모험, 무협랜드 +1 23.12.18 21 3 12쪽
301 301. 하드 리셋 23.12.16 9 3 11쪽
300 300. 뜻 밖의 제안 23.12.16 9 3 12쪽
299 299. 마지막 희망. 그리고... 23.12.15 12 3 12쪽
298 298. 마지막 희망 - 5 23.12.15 9 3 11쪽
297 297. 마지막 희망 - 3 23.12.14 11 3 11쪽
296 296. 마지막 희망 - 2 23.12.14 9 3 11쪽
295 295. 마지막 희망 23.12.13 14 3 11쪽
294 294. 몰아치는 전쟁 - 3 +1 23.12.13 14 4 12쪽
293 293. 몰아치는 전쟁 - 2 23.12.12 18 3 11쪽
292 292. 몰아치는 전쟁 23.12.12 17 3 11쪽
291 291. 신살(神殺) +2 23.12.11 26 3 12쪽
290 290. 드러나는 배후 +2 23.12.11 23 3 11쪽
289 289. 담판 23.12.09 12 3 11쪽
288 288. 침공 방어 23.12.09 12 3 11쪽
287 287. 각자의 결정 23.12.08 13 3 12쪽
286 286. 습격 그리고 23.12.08 13 3 12쪽
285 285. 제안 23.12.07 15 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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