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선작은 하셨나요?

영업부 꼰대 과장의 이세계 라이프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완결

천세은
작품등록일 :
2023.01.15 15:52
최근연재일 :
2024.03.15 10:00
연재수 :
400 회
조회수 :
16,011
추천수 :
1,480
글자수 :
2,061,634

작성
23.12.16 19:00
조회
9
추천
3
글자
11쪽

301. 하드 리셋

DUMMY

“이건 아니지요! 정말 아니라고요!”


난 화들짝 놀라 다급하게 외쳤다. 그런데,


“왜 그래? 무슨 일이야?”


내 눈앞에 있는 건 창조주가 아닌 다른 사람. 바로 20여 년 전, 나에게 진한 흑역사를 만들어준 바로 그녀였다.


“수진...이? 수진아 네가 여기 왜 있어?”

“왜 있기는! 당연히 널 보러 왔지!”


날 보러 왔다고? 여기 화이트 룸으로? 그건 말이 안 되잖아?!


“날 보러 화이트 룸으로...”


말을 이어가려던 그때, 난 입 밖으로 나오려는 목소리를 당차게 끊을 수밖에 없었다.

새하얀 공간은 어딜 가고, 주변에 보이는 건 아늑한 분위기의 소품들. 귓가에는 크리스마스 캐럴이 잔잔하게 들려오고 있었다. 그래 여긴 커피숍. 어딘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크리스마스의 분위기를 잔뜩 녹여낸 아늑한 카페였다.


“여, 여기 어디야?”

“아니, 그것도 몰라? 네가 불렀잖아, 네가.”


그녀는 답답하다는 듯 나를 바라보았다. 내가 불렀다고? 그럼 언제인 거지? 설마 흑역사가 만들어지기 전인가?


“너 이민 갈 거잖아.”

“어... 어?! 그걸 어떻게...”


수진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날짜는 확실하진 않지만, 그녀의 반응으로 보아, 아무래도 그녀의 부모님으로부터 통보를 받은 지 얼마 지나지 않은 듯했다.


“이렇게 날 만날 여유 있어? 심사도 봐야 하잖아.”

“그건 그런데...”


그녀의 눈망울에 미안함이 올라왔다. 그렇게까지 미안할 거 없는데 말이다.

그녀와 헤어진 이후,

20여 년간 여자 손은 잡지도 못한 채, 이리저리 일에 채이며 굴러다니다,

그냥 아무런 연고도 없는 원더랜드에 떨어지지만 말이다.

이게 전부 그녀의 탓은 아니잖아. 그래 그녀의 탓은...


“아! 맞다 원더랜드!!!”


머릿속에 순간, 원더랜드의 가족들이 떠올랐다.

귀여운 토끼 키토와 새하얀 드래곤 리코.

뭐든지 척척 다 아는 잘생긴 어흥선생과 미인 주방장 채야.

원더랜드의 주인이자 리더인 갓패치와 원더랜드의 꼬마 여왕 미우.

그리고 시간의 늑대 루프와 팽까지.

채야의 집에서 날 기다리고 있을 그들이 떠올랐다.


“나 지금 집에 가야 돼!”

“그래 좀 가서 옷 좀 갈아입고 와.”


그녀는 날 붙잡지 않고 무조건 고개를 끄덕였다. 잠깐, 옷을 갈아입으라고? 이건 또 무슨 소리야?


“옷을 갈아입어?”

“아니 여자 친구 만나러 오는데 그 옷이 뭐야?!”


그녀의 핀잔에 난 내 옷을 천천히 살폈다.

이상한 점은 전혀 없었다.

붉은 색 트레이닝복 바지에 핑크색 맨투맨 셔츠.

그리고 그 위를 덮고 있는 붉은색 불사조 가죽 재킷까지.

이거 완전히 현과장 복장 그 자체잖아.


“뭐긴 뭐야. 이게 내 옷이지!”

“지인아! 너 나랑 정 떼려고 그러는 거야?”

“정을 떼다니 그건 무슨 소리야?!”


아니, 얘가 미쳤나.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난 현과장이라고 현과장. 원더랜드의 붉은색, 현과장.


“아무리 나이를 믿고 원색을 입는다고 해도, 그건 아니지 않아?”

“나이?”


나이라는 말에, 순간 난 자리에서 일어나 주변을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내가 찾는 건 당연히 거울. 흔히 볼 수 있는 거울이긴 하지만, 커피숍 모든 자리에 있을 리 만무한 일. 그래서 난 당연히 창가 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창가에 비친 내 모습은, 20여 년 전 내 모습. 앳되고 풋풋한 모습 그대로였다.


“뭐야?! 왜 이렇게 젊어!”

“너 뭐 잘못 먹었니? 소리를 지르고 난리야!”


수진은 빠르게 내 손을 잡아 끌어 자리에 앉혔다.

큰 목소리 덕분에 주변에서 밀려오는 따가운 시선.

그러나 나에게 그들의 시선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바로,


“아니, 정말 20년 전으로 보내 버린 거야? 구해달라는 원더랜드는 안 구해주고?”


원더랜드의 존망. 나에게 있어서 중요한 건 단지 그뿐이었다. 그런데,


“너 이상해. 자꾸만 딴 소리나 하고. 원더랜드? 그건 뭐야? 영화 제목이야? 아니면 애니메이션?”


수진이 날 자꾸만 이상 시선으로 바라본다. 하긴, 그녀가 뭘 알겠어.


“수진아 잠깐만. 나 한 마디만 할게.”


아무것도 모르는 그녀를 안심시킨 나는, 다시금 자리에서 일어나 큰소리로 외쳤다.


“지금 이런 장난 하나도 안 재미있어요! 빨리 돌려 놔! 나 원더랜드 구해야 한다고!!”




쫓겨났다. 나도 수진이도.


“정말이지 구제 불능이다, 구제 불능. 내가 왜 이런 애를 좋아한 거지?”


수진이의 퉁명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화가 날만도 하지. 그러나 이런 상황이라도 사실은 확실히 짚고 넘어가야한다.


“네가 좋아한 게 아니야. 내가 널 좋아한 거지. 난 널 내 미래보다 내 목숨보다 더 사랑했다고.”


난 내 안에서 20년 간 꼭꼭 눌러 담아 놨던 감정을 그대로 이야기 했다.


“했다? 지금은 아니라는 말이야?”


입 꼬리는 귀에 걸려 찢어질 것만 같았지만, 그녀는 앙칼진 목소리로 날 압박했다.


“어차피 이민 가면 끝이잖아. 더 마음에 두면 나만 손해지.”

“나 안 갈 수도 있는데?”


그녀의 목소리에서 망설임이 느껴졌다. 분명 잡아달라는 말이겠지.

그래 잡으면 어떻게 될까.

이런 상상을 한 두 번 한 게 아니다.

남들과 같은 행복한 미래를 살고 있을까? 아니면 매일 싸우는 지옥 같은 미래?

아무리 고민해도 답은 나오지 않았다.

왜냐면, 그렇게 살아본 적이 없으니까.


“추억은 추억으로. 병신같은 선택이지만, 그래도 널 위해서라면.”

“어휴! 샌님!”


그녀는 피식 웃으며 등 뒤에서 날 꼬옥 안아주었다.

아마 다 알고 있었을 것이다. 결코 내가 그녀의 손을 잡지 않을 것을.

이런 모습을 좋아한 거겠지.

오래간만에 느껴지는 씁쓸한 감정.

등 뒤로 느껴지는 따스한 온기보다, 가슴속에서 올라오는 쓴물이 더욱 친근하게 느껴지는 건 왜일까. 20년이나 함께한 감정이라서 그럴까.


“나 핸드폰 놓고 온 거 같아.”


난 씁쓸함만 남겨주는 그녀를 매몰차게 뿌리 친 채, 다시 한 번 커피숍 문을 열었다. 그런데,


“어... 어?!”


하얗다. 문의 안 쪽이.




“아쉽네. 이번엔 거사를 치를 줄 알았는데.”

“거사는 무슨 거사! 해달라는 원더랜드는 내팽개치고 이건 뭡니까?”


난 그를 보자마자 윽박을 질렀다. 가슴속 저 밑, 단전에서 끌어올린 궁극의 분노였다.


“그래도 첫사랑과 뜨거운 하룻밤을 보내면 뭔가 달라지지 않을까?”

“달라지긴 개뿔! 그런 경험으로 사람이 달라졌다면, 세상 이렇게 험악하지 않았을 겁니다!”


내 대답에 그는 깔깔깔 웃어 제겼다. 뭐가 그리도 좋은지.


“큭큭큭, 재미있는 친구야. 경험이라는 건 정말 소중한 건데.”

“불필요한 경험도 있기 마련입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첫 사랑과의 아련하고 애틋한 추억이 불필요한 추억은 아닐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만큼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의 손에 놀아나는 게 죽고 싶을 만큼 싫었기 때문에.


“다 필요 없고! 빨리 원더랜드 돌려줘요! 현기증 난단 말이에요!”


이렇게 된 이상, 난 떼라도 써서 원더랜드를 받아내려고 했다. 그런데,


“말했잖아. 그건 안 된다고. 다른 건 다 돼도 그건 안 돼.”


모든 것을 관장하는 창조주께서 그건 안 된단다. 시간을 20년 전으로 돌릴 수 있는 양반이 그것만 콕 집어서, 다른 것도 아닌 원더랜드만 콕 집어서 안 된단다!


“아니, 왜요? 왜?!”


억울함이 차올랐다. 울분이 차올랐다. 도대체 나한테 왜 이러는 거야?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는데?


“아니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습니까?”

“잘못한 건 없지. 그냥 그러면 안 될 뿐인 거야.”

“그러면 안 된다니요! 이거 너무 억지 아닙니까?”


이야기를 나누면 나눌수록 울화가 치밀어 올랐다.

창조주고 뭐고 그냥 들이박아?

목숨 걸고 한 번 깽판 쳐?

영업부 현과장의 무시무시함을 한 번 보여 줘?!


“헛생각 하지 마. 얼굴에 다 티나니까.”


못 된 마음을 먹으려던 찰나, 그의 얼굴에 먹구름이 드리웠다. 정체모를 압박감에 자리에 서 있는 것조차 힘겨웠다.


“지난 영겁의 시간동안 뼈저리게 배운 게 뭔지 알아? 뭐든지 그냥 주는 건 안 된다는 거야. 특히 사랑하는 아이들에게는.”


말을 마친 그는 내 주변으로 수많은 문을 만들어 내었다. 내가 원더랜드로 갈 수 있었던 그 문 말이다.


“정말 갖고 싶은 게 있다면 손에 직접 쥐어 주는 게 아니라, 스스로 쟁취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 이게 내가 살아오면서 내린 결론이야.”


이내 그는 주변에 널린 수많은 문들을 바라보며 크게 외쳤다.


“내가 주는 건 기회야, 현과장! 가서 원더랜드를 구해!”


그의 의도를 어느 정도 눈치 챌 수 있었다. 20년 전 원더랜드로 돌아가 종말의 원흉을 찾으라는 게 아닐까.


“여기로 직접 가라는 말씀이신가요?”

“당연한 소리를 하네. 그러니까 만들었겠지.”


그래, 내 손으로 직접 원더랜드를 구하는 거야. 다른 누구의 도움도 없이. 나에겐 그럴 능력이 있으니까. 난 원더랜드의 붉은색, 현과장이니까.


“그럼 갑니다!”


난 망설임없이 문을 열려고 했다. 그런데,


“잠깐, 잠깐, 잠깐! 아직 내 말이 끝나지 않았는데~”


순간, 그는 내 앞을 가로막더니, 날 방 중앙으로 데리고 갔다. 뭐지 나에게 할 말이 남아 있으신 건가?


“뭐 더 하실 말씀이...?”

“할 말은 없는데, 가져가야 할 건 있거든.”


가져가야 할 게 있다고? 난 줄 게 없는데?


“저는 드릴 게 없는데요?”

“아이고 참, 현과장! 현과장은 지금 20년 전으로 와 있다는 사실을 잊었어?”


나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아니, 20년 전에 와 있는 게 무슨 문제 일까? 이제 와서 과거로 돌아온 게 문제가 된다는 걸까?


“과거로 돌아온 게 문제가 되나요?”

“아니지. 20년 전으로 온 건 문제가 안 되지. 문제는,”


그는 말을 마치기도 전에, 가슴속으로 손을 불쑥 넣었다. 방어할 시간도 없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동 시대에 2개가 존재하면 안 될 것들을 가지고 있는 거지.”


내 몸을 휘저은 그의 손은, 이내 가슴속에서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오색찬란하게 빛나는 모래시계와 녹색으로 빛나는 물방울. 「영겁의 모래시계」와 「시간의 생명」이었다.


“모래시계는 지금 로데인이 가지고 있으니까 안 되고. 시간의 생명은 원더랜드의 심장과도 같은 거니까 안 되고.”

“아니, 그런 게 어디 있어요! 이거 완전 너프 아니야!”


난 당연히 반발했다. 지금 말도 안 되는 시련을 쥐어줘 놓고 가진걸 빼앗아 가겠다고? 이게 말이야 방귀야?


“그것 보다 더 좋은 거 주면 되잖아. 거 참 말 많네.”


살짝 괘씸하다는 듯 바라본 그는, 다시금 내 가슴속으로 손을 넣어 이리저리 헤집어 놓기 시작했다. 그의 손이 움직일 때마다 느껴지는 뜨거운 기운. 정체모를 힘이, 그래, 마치 호랑이 기운이 솟아나는 듯 했다.


“원더랜드를 구할 때 꼭 필요한 능력인 창조주의 능력 「소생」 그리고 보존한 시간대로 언제든지 돌아올 수 있는 창조주의 능력, 「세이브 포인트」 됐냐?”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영업부 꼰대 과장의 이세계 라이프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314 314. 창조교 23.12.25 13 3 11쪽
313 313. 설원에서 23.12.23 18 3 11쪽
312 312. 은행털이 - 3 23.12.23 18 3 11쪽
311 311. 은행털이 - 2 23.12.22 23 3 11쪽
310 310. 은행털이 23.12.22 17 3 11쪽
309 309. 그들의 꿍꿍이 - 3 23.12.21 19 3 12쪽
308 308. 그들의 꿍궁이 - 2 23.12.21 13 3 11쪽
307 307. 그들의 꿍꿍이 23.12.20 14 3 12쪽
306 306. 영업의 신 23.12.20 11 3 11쪽
305 305. 여정의 시작 23.12.19 13 3 12쪽
304 304. 조건 23.12.19 17 3 11쪽
303 303. 원치 않았던 만남 23.12.18 15 3 12쪽
302 302. 새로운 모험, 무협랜드 +1 23.12.18 21 3 12쪽
» 301. 하드 리셋 23.12.16 10 3 11쪽
300 300. 뜻 밖의 제안 23.12.16 9 3 12쪽
299 299. 마지막 희망. 그리고... 23.12.15 12 3 12쪽
298 298. 마지막 희망 - 5 23.12.15 9 3 11쪽
297 297. 마지막 희망 - 3 23.12.14 11 3 11쪽
296 296. 마지막 희망 - 2 23.12.14 9 3 11쪽
295 295. 마지막 희망 23.12.13 14 3 11쪽
294 294. 몰아치는 전쟁 - 3 +1 23.12.13 14 4 12쪽
293 293. 몰아치는 전쟁 - 2 23.12.12 18 3 11쪽
292 292. 몰아치는 전쟁 23.12.12 17 3 11쪽
291 291. 신살(神殺) +2 23.12.11 26 3 12쪽
290 290. 드러나는 배후 +2 23.12.11 23 3 11쪽
289 289. 담판 23.12.09 12 3 11쪽
288 288. 침공 방어 23.12.09 12 3 11쪽
287 287. 각자의 결정 23.12.08 13 3 12쪽
286 286. 습격 그리고 23.12.08 13 3 12쪽
285 285. 제안 23.12.07 15 3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