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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작은 하셨나요?

영업부 꼰대 과장의 이세계 라이프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완결

천세은
작품등록일 :
2023.01.15 15:52
최근연재일 :
2024.03.15 10:00
연재수 :
400 회
조회수 :
16,008
추천수 :
1,480
글자수 :
2,061,634

작성
23.12.16 10:00
조회
8
추천
3
글자
12쪽

300. 뜻 밖의 제안

DUMMY

내 의사와 상관없이, 난 어디론가 날아가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이미 도착해 있었다. 모든 것이 시작된 그 방, 화이트 룸으로.

사방에 서 있는 네 개의 문, 그리고 뻥 뚫린 새하얀 공간.

변한 건 하나도 없었다. 아니, 없다고 생각했다.


“둘을 물리치고 여기까지 온 게... 너야?”


도착하자마자 들려온 여린 목소리.

변한 게 없다고 생각한 그곳에는 앳된 소년 하나가 서 있었다. 새하얀 방과 대조되게 검은색 정장 차림의 소년이.


“넌, 누구니? 아니 어떻게 이런 어린 아이까지 유괴를 하는 거야?! 유괴를!”


어이가 없었다. 분노가 차올랐다. 아직 부모의 손길이 필요한 어린 아이에게까지 마수를 뻗을 줄이야. 도대체 이런 납치를 자행하는 존재는 누구인 거야?! 아? 아니면 음?


“얘야, 아저씨가 꼭 데려다 줄게! 꼭!”


그래, 이 아이만큼은 지구로 돌려보내자. 그 순간 난 다른 모든 것을 제치고 그것만을 생각했다. 그런데,


“넌 귀가 막힌 거니, 아니면 주변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거니? 내가 물었잖아, 둘을 죽이고 온 게 너냐고.”


아이는 마치 나를 벌레 보듯 바라보며, 건방진 말투로 이야기했다.


“아니, 그런데 이놈이 어른에게 존댓말을 못 할망정, 어디서 그딴 말버릇이야! 말버릇은!”


요즘 애들 교육이 어쩌구저쩌구, 개념이 어쩌구저쩌구 말이 많은데, 난 그런 거 없다. 버릇없는 것들에게는 따끔하게 한마디 하고! 인생의 쓴맛도 알려주고! 어른의 무서움도 알려 주어야 한다. 그게 내 교육관이다.


“그래, 어른에게 존댓말은 왜 안 하는 거야? 내가 우스워 보여?”


난 두 눈을 부라리며 이 아이를 압박했다. 그런데,


“내가 묻고 싶은 말인데. 넌 왜 날 존중하지 않는 거지?”


당장이라도 날 찢어발길 것처럼 노려보는 아이. 순간 생전 처음 느끼는 공포가 내 몸을 감쌌다. 내 안의 본능이 줄곧 외쳤다. 그러다 죽을지도 모른다고.


“어... 그게....”


아니, 그래도 아이한테 고개를 숙이는 건 좀 아니잖아. 나이도 있는데.


“크흠! 어른이 손아랫사람을 걱정하는 건 당연한 일! 그런 걸 하나하나 설명하고, 뭐, 그래야 하나! ...요.”


나도 모르게 말 끝에 한 글자가 튀어나와 버렸다. 아, 정말 쪽팔리게.


“내 질문에 대답을 아직 하지 않았어. 네가 정말 아와 음을 죽이고 이 자리에 온 존재가 맞아?”


아와 음이라고? 신의 이름을 아는 것도 모자라,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쉽게 부른다고? 아무래도 내 안의 본능이 감을 잘 잡은 거 같은데.


“그, 그래! ...요. 내가 그 사람이 맞아! ...요.”


모양이 빠지긴 하지만, 난 본능에 충실하게 대답했다. 그러자, 내 대답을 듣더니, 그는 내 주위를 빙빙 돌며 유심히 날 관찰하기 시작했다. 그 작은 얼굴에서 나오는 강렬한 눈빛이 너무나 뜨거웠다. 마치 태양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같이.


“10대도 아니고 20대도, 30대도 아닌, 40대 초반인데 그런 열정이 있다고?”

“어허! 나이는 숫자에 불과해! ...요! 그런 말 상처가 된다고... 요!”


그래, 나이로 그렇게 사람을 평가하는 건 언제나 상처로 바뀐다. 어릴 때는 어리다고, 늙어서는 늙었다고.


“그런 나이로 거들먹거린 건 내가 아니라 너잖아.”

“그건... 그렇네... 요.”


그러고 보니, 먼저 시작한 건 나였군. 아, 이거 정말 쪽팔린데. 무슨 말을 해도 전부 막히잖아.


“어쨌든, 환영한다. 얼마만의 손님인지. 아! 처음인가?”


그는 매서운 표정을 거두더니, 조금 편해진 미소로 날 반겼다.


“난, 그러니까, 아와 음을 만든 존재. 너희들 입장에서는 창조주가 되겠군.”

“아... 창조주. 응? 창조주!!!”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려던 그때, 귓가로 어마무시한 단어가 들려왔다. 창조주라고? 다른 신도 아닌 창조주?


“저기, 진짜 창조주...”

“우주도 내가 만들었고. 원더랜드도 내가 만들었지. 원더랜드는 누가 마음대로 그 위에 덧칠을 조금 하긴 했지만.”


그의 말을 듣던 도중, 나도 모르게 움찔하고 말았다. 덧칠을 한 사람 그거 나잖아! 설마 내 운명은 여기서 끝인 건가. 아직 원더랜드를 구하지도 못 했는데. 아직 영혼융화된 현과장과 분리하지도 못 했는데. 이대로 끝난다고? 내 인생도, 현과장의 인생도?


“저, 정말 죄송합니다. 그러니까 제 안의 현과장만이라도... 아니지, 가능하면 원더랜드도...”


난 모든 걸 집어 던지고 넙죽 엎드려, 아니, 내 필살기 그랜절을 올리며 간청 드렸다.


“재미있는 필멸자네. 그쪽 세계는 그런 방식으로 부탁을 진행하나?”


그러나 그는 밝은 목소리로 대답할 뿐, 큰 감동이나 반응은 보이지 않았다. 마치 감정 없는 로봇을 마주하는 것만 같았다.


“그런 그렇고. 절망을 희망으로 바꾼 필멸자라. 귀하긴 귀한 존재네.”


그는 턱을 괴며 날 쳐다보았다. 흡사 흥미로운 장난감을 쳐다보는 듯한 눈빛으로. 그런 바로 그때,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내 등 뒤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늘 온종일 머리 위에서 들었던 그 목소리. 그래, 신(神) 아와 음이었다.


“제 불찰로 필멸자가 여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아닙니다, 제 불찰입니다! 음은 아무런 잘못이 없습니다!”


말을 마침과 동시에 황급히 머리를 조아리려고 한 그들. 하지만 그들은 이상하게 멈칫멈칫거렸다. 그 앞에 있는 나를 보고.


“왜?”


창조주는 그런 그들을 보며 흥미롭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그러자,


“죄송합니다!”


나를 따라 그랜절을 펼치는 아. 곁에 있던 음도 덩달아 그랜절을 올렸다.

아니, 이게 무슨 상황이야. 왜 그랜절을 올리는 거냐고. 이건 내 트레이드마크인데.


“이 필멸자 참 재미있네. 이름이 뭐야?”

“저, 저는... 현지인입니다.”

“현지인이라... 확 와 닿지 않는데. 그 이름에는 힘이 없어.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힘이.”


그는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기울였다. 아, 여기서도 본명은 안 되는 거야? 부모님이 주신 내 이름인데? 이건 좀 슬픈 걸.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창조주 앞에 거짓을 고할 순 없으니까.


“... 주변에서 현과장이라 불렀습니다.”

“그래! 현과장! 그 정도는 돼야 이 자리까지 오지!”


아니, 과장이란 이름이 그렇게 대단한 거였어? 그럼 차장이나 부장은, 아니 사장은, 그렇다면 회장은?


“모습이랑 찰떡이네. 딱 맞아 떨어져. 그러니까 여기까지 올 수 있었지. 이제야 완벽히 이해가 되네.”

“아, 감사합니다.”

“그런데 언제까지 그렇게 머리를 땅에 처박고 있을 거야? 이야기를 하려면 눈을 똑바로 바라봐야지.”

[딱!]


경쾌한 핑거스냅 소리가 귓가를 때렸다.

그런데 이건 무슨 조화일까. 분명 머리가 땅을 향해 있었는데, 지금은 오로지 정면을 바라보고 있다. 그것고 창조주의 용안을 바라보고 있다.


“어라... 이게...”

“그래, 여기까지 왔으니까 선물을 줘야지. 뭘 줄까?”


내가 당혹감으로부터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그는 더욱 정신을 쏙 빼놓는 이야기를 건네 왔다. 선물? 선물이라고?!


“선물이요?! 그럼 당연히 원더랜드의 평화죠! 원더랜드만 잘 있을 수 있으면 바랄 것이 없습니다!”

“그래? 그렇단 말이지...”


그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그러더니,


“그럼 그건 빼고.”


아니, 이건 또 무슨 심보야? 그건 빼고라고? 이게 말이야 방귀야?


“아니! 그러시는 게 어디 있어요?!”

“어디있긴 요기있지~”


난 내 억울함을 읍소했지만, 그는 오히려 더욱 비아냥거리며 내 마음을 짓밟았다.


“창조주이시면서 그냥 좀, 그 뭐냐, 양보 좀 해주시지! 그 코 먹는 어른 아이 마음이나 상처주고 말이야!”

“그건 현과장이 앞으로 걸어야 할 미래니까 안 돼. 그러니까 다른 걸 주겠어.”

“다른 거 뭐요? 그럼 나와 내 안의 현과장이나 분리 시켜 주세요.”


그래 그렇다면 현과장만이라도 안정된 삶을 살게 하자. 산전수전 공중전 거기에 우주전까지 겪으면서 많이 힘들었잖아. 그만이라도 쉬게 해야지.


“뭘 분리시켜달란 말인 거야? 현과장의 영혼은 원래 하나였어.”

“에이, 무슨 소리를 하시는 거예요. 제 안에는 저와 제가 만든 복제인간 현과장이 있는데.”


너무 허무맹랑한 소리라 난 피식하고 비웃었다. 그러자 창조주는 정말 충격적인 말을 내게 들려줬다.


“세상을 창조할 때, 그냥 창조하는 게 아니야. 자신의 영혼을 조금 나눠서 창조하는 거지. 영혼이 들어가지 않으면, 그건 그냥 껍데기에 불과하니까.”

“그, 그렇다는 건...”

“현과장이 만든 세계는 현과장의 영혼으로 만들어진 세계라는 거지.”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나라는 존재 자체가 원더랜드란 말인 거잖아.


“그럼 제가 돌아가면 원더랜드도 살릴 수 있는 거예요?”

“그건 다른 문제지. 현과장의 원더랜드는 살릴 수 있을지 모르지만, 내가 만든 원더랜드는 결코 아니니까.”


그의 말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내가 만든 원더랜드는 살릴 수 있지만, 궁극적인 목적, 진짜 원더랜드는 살릴 수 없다.


“그럼 진짜 내가 만든 원더랜드가 진짜 대신 그 자리를 대체하는 건 어떤가요?”

“가능은 하지. 하지만 머지않아 붕괴할 걸. 어차피 모조품이니까.”


착잡함이 밀려왔다. 어차피 내가 만든 세계는 가짜라는 건가.

실체를 부여하고 완벽하게 구현했지만, 그냥 허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인가.

난 이제 뭘 어떻게 해야 하지?

뭣 때문에 이렇게 달려온 거지?


“원더랜드를 살리고 싶어?”


나는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희망이 남아있었다면, 목소리 높여 그의 질문에 답했겠지만, 이제 희망도 기회도 없다. 창조주가 직접 힘들다고 말했잖아. 그럼 그냥 받아들여야...


“불가능한 건 아니지.”


그래, 불가능한 건 아니니... 응? 불가능한 게 아니라고?


“가능한 거예요? 정말요?”


난 의구심을 품은 채 그를 바라보았다. 조금 전 그렇게 절망을 안겨주더니 이제와 가능하다고? 장난치는 거지? 아가도 그랬잖아. 이거 장난 맞는 거지? 제발 아니라고 해줘. 장난이 아니라고.


“가능하지. 좀 번거로울 뿐이라서 그렇지.”


번거로울 뿐이라는 말에, 난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그래, 살릴 방법이 있구나! 그래, 이게 신이지! 이게 창조주지!


“무슨 방법입니까?! 제가 다 알아서 하겠습니다!”

“어? 정말? 그래, 어차피 현과장이 해야 할 일이었어.”


마치 내 대답을 기다렸다는 듯, 그는 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런데, 뭔가 느낌이 이상하다. 내가 원래해야 하는 일이었다고? 뭘? 어떻게?


“그런데 제가 뭘, 어떻게...”

“조금 번거로울 거야. 그래도 원더랜드를 살리는 일이니까 괜찮은 거지?”

“뭐, 번거롭기만 하는 일이라면...”


이상하게도 불길한 느낌이 사라지지 않는다.

왜일까. 나에게 이런 제안을 하는 존재는, 다름 아닌 창조주인데. 왜 이런 느낌이 나는 것일까.


“그럼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말해 줄게. 정신 단단히 차리고 들어.”


침착해진 그의 목소리에 난 의구심을 푼 채, 그를 응시했다.


“방법은 단순해. 내가 지금까지 온 우주의 20년을 날려 버릴 테니까, 현과장은 그때로 돌아가서 원더랜드를 살릴 방법을 찾아. 원더랜드의 붕괴 씨앗이 싹트기 전까지.”


잠깐, 이건 또 무슨 소리야.

과거로 돌아가라고? 앞으로 20년을 뺑이치라고? 이건 아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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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4 314. 창조교 23.12.25 13 3 11쪽
313 313. 설원에서 23.12.23 18 3 11쪽
312 312. 은행털이 - 3 23.12.23 18 3 11쪽
311 311. 은행털이 - 2 23.12.22 23 3 11쪽
310 310. 은행털이 23.12.22 17 3 11쪽
309 309. 그들의 꿍꿍이 - 3 23.12.21 19 3 12쪽
308 308. 그들의 꿍궁이 - 2 23.12.21 13 3 11쪽
307 307. 그들의 꿍꿍이 23.12.20 14 3 12쪽
306 306. 영업의 신 23.12.20 11 3 11쪽
305 305. 여정의 시작 23.12.19 13 3 12쪽
304 304. 조건 23.12.19 16 3 11쪽
303 303. 원치 않았던 만남 23.12.18 15 3 12쪽
302 302. 새로운 모험, 무협랜드 +1 23.12.18 21 3 12쪽
301 301. 하드 리셋 23.12.16 9 3 11쪽
» 300. 뜻 밖의 제안 23.12.16 9 3 12쪽
299 299. 마지막 희망. 그리고... 23.12.15 12 3 12쪽
298 298. 마지막 희망 - 5 23.12.15 9 3 11쪽
297 297. 마지막 희망 - 3 23.12.14 11 3 11쪽
296 296. 마지막 희망 - 2 23.12.14 9 3 11쪽
295 295. 마지막 희망 23.12.13 14 3 11쪽
294 294. 몰아치는 전쟁 - 3 +1 23.12.13 14 4 12쪽
293 293. 몰아치는 전쟁 - 2 23.12.12 18 3 11쪽
292 292. 몰아치는 전쟁 23.12.12 17 3 11쪽
291 291. 신살(神殺) +2 23.12.11 26 3 12쪽
290 290. 드러나는 배후 +2 23.12.11 23 3 11쪽
289 289. 담판 23.12.09 12 3 11쪽
288 288. 침공 방어 23.12.09 12 3 11쪽
287 287. 각자의 결정 23.12.08 13 3 12쪽
286 286. 습격 그리고 23.12.08 13 3 12쪽
285 285. 제안 23.12.07 15 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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