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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음여류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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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음여류
작품등록일 :
2012.11.16 14:10
최근연재일 :
2018.03.26 19:27
연재수 :
36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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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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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45
글자수 :
2,037,868

작성
16.11.18 19:26
조회
657
추천
10
글자
12쪽

아프가니스탄 [The Beast..7]

DUMMY

현실에 있을 수 없는 존재.


세상에 있어서는 안 될 생명체.


모든 적으로 멸하고 만물 위에 선 영장이 나와 너를 죽이기 위해서 잉태한 천적을 맞이한 자들은 감당할 수 없는 존재감에 짓눌려 모조리 주저앉았다. 그들 대부분은 심장을 옥죄이는 살의에 휘말려 정신을 잃었고, 겨우 견뎌낸 소수는 그저 한 가지만 생각하며 현실을 부정했다.


‘신이시여.’ 누군들 기도하지 않으랴.


모두를 공황상태로 몰고 간 포효가 멎고 숨 막히는 정적이 찾아든다. 다행히도 아직은 깊지 않은 울림이라 하나둘 정신 차릴 때, 참으로 안타깝게도 죽음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널브러진 소년은 자신을 향해 뻗어오는 마수[魔手]를 인지하지 못하고 그저 슬피 울었다.


“집에 가고 싶어요.”


눈물이 그렁그렁한 동공은 풀려 있었고, 흙먼지가 잔뜩 묻어서 지저분해진 바지는 축축이 젖어 지독한 냄새를 풍겼다. 반쯤 벌어진 입으로는 뭔가를 계속 웅얼거린다.


“샬..리..나.” 곧 결혼할 아름다운 누이와 “샬..라..흐.” 세상에서 가장 용감한 형의 이름을 부르고 또 불렀다. 하나 아무런 대답도 없어서, “엄..마.” 죽은 자를 부르니 사신이 찾아왔다.


허기진 야수가 커다란 손을 뻗어 아이의 조그만 머리를 말아 쥐자, 생명줄이라도 되는 듯 소총을 꽉 움켜쥔 손이 미약하게나마 떨린다. 애처로운 생존의지로 발악이라도 해보려는 걸까? 아니면 곧 찾아올 죽음에의 미약한 반작용에 불과한 걸까?


“가련하구나.”


개미를 든 기분으로 소년을 들어올린 짐승은, 곧 짓이겨져 달콤한 만찬의 향기를 풍길 연한 고깃덩이를 보며 군침을 삼켰다. 흥분해서 손에 힘이 들어가자 아이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는데, 그 신선한 숨결을 들으니 더는 기다릴 수가 없었다. 해서 핏빛 눈동자를 번들거리며 커다란 입을 벌렸다. 향긋한 뇌수로 이 지독한 목마름을 해소하고 나머지는 통째로 씹어 삼키며 찬찬히 음미하리라.


‘기대되는군.’


그렇게나 즐거운 상상을 행동으로 옮기려는 순간, 콴! 단말마의 총성이 잔인한 침묵을 부쉈다. 육중한 근육으로 이루어진 팔에 미약하게나마 틀어박힌 총알은 야수의 손아귀를 벌어지게 하였고, 굶주린 짐승의 관심을 성공적으로 이끌어냈다. 먹잇감을 놓친 짐승은 바닥에 널브러져 꿈틀대는 고깃덩이를 잠시 내려다보다가, 총성이 들려온 곳으로 천천히 고개 돌렸다.



“망할!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야.”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서 홀로 50여 미터 뒤에 떨어져 있던 지프의 보닛 위, AK소총을 파지한 채 쪼그려 앉아있던 기관총수가 욕설을 뱉어내며 벌떡 일어섰다. 그냥 도망이나 칠 걸 하고 후회하면서도 빠르게 움직여 M60기관총을 장전했다.


“젠장, 막내만 안 건드렸어도 내가 이런 미친 짓은 안 했을 텐데.” 그는 안전장치를 해제하며 이를 악물었다.


웬 미친놈 하나를 죽일 때까지만 해도 그저 좋은 구경거리였다. 아쉽게도 쇼는 단발성이었고 탑승 명령에 따라서 지프에 올랐다. 시동을 걸고 막내를 부르려 고개 돌리다 믿을 수 없는 장면을 목도한 것이다.


‘저게 뭐야?’


총알 밥만 15년 가까이 먹으면서 산전수전 다 겪었건만, 그런 현상이나 위기감은 처음이라 막내에게 도망가라 고함치던 중 사자의 포효를 듣고 정신을 잃었다. 그리곤 아직도 귓가를 맴도는 이명을 뒤로한 채 눈을 떴는데, ‘세상에, 신이시여.’ 신화 속에서나 나올법한 괴물이 막내를 들어올린 채 입을 쩍 벌리고 있는 게 아닌가?


“이런 씨팔 새끼가.”


그래서 앞뒤 잴 것도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그래서 일단 살리기는 했는데, ‘젠장!’ 소름 끼치는 핏빛 눈동자를 잠시 마주한 것만으로도 오금이 저려왔다.


“씨..팔, 씨팔! 겁먹을 거 없어. 괴물이고 나발이고 명중만 하면 끝이야.”


몸의 떨림이 멈추지 않았지만, 그는 능수능란하게 적을 조준하고 방아쇠를 당겼다.


“이거나 먹어, 이 괴물새끼야!"


그렇게 큰소리친 것과 달리 총알은 적을 단 한발도 맞추지 못했다. 평소에는 600m 밖에 있는 타깃도 곧잘 맞추곤 했지만, 목표물의 지근거리에 쓰러져 있는 막내를 신경 쓰다 보니 탄띠 하나를 다 쓰도록 흠집조차 내지 못한 것이다.


"빌어먹을, 정신 차려! 고작 50m잖아."


자신을 다그치며 장전하고 다시 방아쇠를 당기려고 할 때, 그나마 패닉에서 빨리 회복한 보스가 일어서는 게 눈에 들어왔다.


'그래, 그래도 보스라면 뭔가 답을 내놓겠지.'


한가닥 기대를 걸고 잠시 지켜보니, 슬슬 뒷걸음질을 치던 무샨이 괴물을 발견하곤 병신처럼 오줌을 지리고 개새끼마냥 바닥을 기는 게 아닌가?


“저 돼지새끼가 진짜..”


절망에 찬 욕설을 뱉어 내면서도 그는 다시 M60을 잡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멀리 자신을 노려보는 괴물의 눈빛이 발아래 개미를 어떻게 밟아 죽일지 고민하고 있는 듯해서 다리가 후들거렸다.


‘젠장, 이러다 진짜 잡아먹히는 거 아냐?’


마치 자신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놈이 한 발 한 발 천천히 다가오기 시작하자, 목을 바싹 태우던 긴장이 칼날이 되어 등골을 훑어 내린다.


‘정신 차려, 이대로 가다간 아무것도 못 하고 죽게 될 거야.’


그는 여전히 널브러져 있는 막내를 힐끔 보곤 이를 악물었다.


‘미안하지만, 놈이 더 가까이 올 때까지 견딜 자신이 없어. 이렇게 병신처럼 죽기도 싫고.. 막내야, 내가 어떻게든 최선은 다해볼게!’


그는 막내와 괴물 모두를 타깃으로 하는 조준점을 잡아서 방아쇠를 당겼다. 하지만 바로 맞추지는 않고 목표물의 5미터 앞부터 서서히 긁어 가다가 괴물의 어깨가 확 젖혀지는 것을 보곤 쾌재를 불렀다.


“그래, 내 실력이 어디 가겠어?” 이대로 총구를 고정하면 막내를 살릴 수 있으리라.


그 상태로 탄띠 하나를 다 소모해버린 그는 뿌옇게 인 흙먼지를 노려봤다.


‘이 정도면 아무리 괴물이라고 해도 뒈졌겠지? 아니라도 최소한 중상일 거야. 그런데 막내는 괜찮을까?’


쉽게 가라앉지 않는 먼지 속을 어렵사리 살피던 그는 간발의 차이로 총격의 궤도에서 벗어난 막내를 발견하곤 겨우 한숨 돌렸다.


“봐, 내가 이 정도라니까?”


긴장이 탁 풀리자 입가에 절로 미소가 그려진다. 한데, ‘뭐지, 그럴 리가 없는데?’ 흩어지는 모래먼지 속에 떡 하니 서 있는 커다란 그림자가 보이는 게 아닌가? 아니, 그냥 서 있는 게 아니라 움직인다 싶더니, 쾅! 온몸을 저릿하게 울리는 굉음이 강렬한 충격과 함께 몰려와 지프를 강타했다.


‘어떻게?’


반사적으로 M60에 매달려서 나가떨어지지는 않았지만, 사방 가득히 피어오른 모래먼지 때문에 목이 메이고 기침이 나와서 정신이 없었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상황 파악을 해보려 두리번거리던 그는 얼핏 밝아진 시야 사이로 보이는 놈을 발견하곤 절망을 뱉었다.


“말도..안 돼.”


본능이 가장 먼저 도망가라고 절규했지만, 몸이 얼어붙어서 말을 듣지 않았다. 호흡은 거칠어졌고 확장될 대로 확장된 동공에는 한없는 절망감만 차올라 눈을 깜빡이는 것조차 허락하질 않았다.


‘끝이다.’


그의 시선이 닿은 곳, 지프의 바로 앞에는 뿌연 흙먼지를 두른 거대한 그림자가 있어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서서히 흙먼지가 가라앉으며 그림자의 윤곽이 뚜렷해지자, 그의 심장이 터질 듯 뛰기 시작했다.


‘신이시여.’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군용으로 제작된 지프의 강철보닛을 두부처럼 뚫고 들어간 시꺼먼 무쇠 기둥 같은 팔이었다.


“불가능해.”


어리석게도 부정했지만, 그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팔을 타고 올라갔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하고 육중한 근육으로 이루어진 상체에는 뱀 같은 힘줄이 불거졌고, 당장에라도 사지를 씹어 삼킬 것만 같은 사자의 머리 위로는 커다란 가우르[Gaur]의 뿔 두 개가 우뚝 솟아있었다.


“어떻..게?”


대체 어떻게 저런 생명체가 존재할 수 있을까? 가능하다면 빌어먹을 신에게라도 묻고 싶었지만, 어디선가 불어온 열풍에 흩어진 먼지 사이로 자신을 해체하듯 훑는 핏빛 눈동자를 마주하자 그저 모든 게 다 덧없어졌다.


‘이렇게 가는 거야?’


눈앞의 생명체는 괴수나 괴물 따위가 아니었다. 그것은 분명히 전설 속에서나 등장했었던.. 겁쟁이 나지르가 입만 열면 떠들어댔던 바로 그 신벌의 행위자가 분명했다.


“악..마.”


신이 배덕한 인간에게 벌을 내리려 그를 창조했다는 말을 그냥 개소리로 치부하며 웃어넘겼는데, 막상 이렇게 닥치고 보니 살고자 하는 의지마저 들지 않았다.


‘이건, 내가 어찌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 그냥 이게 내 운명이었어.’


죽어라 움켜쥔 기관총의 손잡이를 놓아버린 총수는 멍하니 상대를 바라봤다. 난생처음으로 느끼는 피식자로서의 공포에 압도당한 채 이성과 본능의 치열한 발버둥도 무시해버렸다.


‘다, 의미 없는 짓이라니까?’


모든 걸 포기하고 주저앉는 순간 커다란 손이 그의 오른팔을 덥썩 붙잡아 올렸다. 뼈가 수수깡처럼 부러지는 게 느껴졌지만, 그는 애달픈 신음만 흘릴 뿐 고통에 몸부림치지 않았다. 악마가 짐승의 아가리를 커다랗게 벌리는 걸 보고도 그저 이 모든 게 빨리 끝나기를 바라며 조용히 눈 감을 뿐이었다.


‘나뿐만 아니라, 다 죽게 될 거야.’


그렇게 허기진 짐승은 축 늘어진 고깃덩이의 머리를 뽑아 으깨 뇌수로 목을 축이고 상체를 통째로 씹어 삼키며 피와 내장을 사방에 흩뿌렸다. 그리곤 남은 다리 두 쪽을 구겨서 입안으로 털어 넣을 때, 반쯤 정신나간 무샨의 악다구니와 함께 40여 정의 화기가 일제히 불을 뿜었다.


“저 괴물 새끼를 죽여!”


소총 중에서는 그래도 파괴력이 강한 AK-47의 집중포화는 충분히 위협적이었지만, 공포에 절어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쏜 총알은 흙먼지만 일으킬 뿐 별다른 피해를 주지는 못했다.


‘애처롭군.’


순식간에 사람 하나를 먹어 치우고 피에 절은 옷가지를 바닥에 털어낸 짐승은 자신의 막강한 무력을 인지하고 기분 좋게 효후를 흘렸다.


‘어떻게 놀아 볼까?’


그는 언젠가 영화에서 봤던 장면을 떠올리곤 여전히 손에 꽂힌 지프를 번쩍 들어서 총알세례를 막았다. 그 믿기지 않는 장면에 놀란 사람들은 미친 듯이 방아쇠를 당기고 탄창을 교체했다. 이 집중포화가 끊기는 순간 저 괴물이 움직일 거라는 생각에 질려 쏘고 또 쏘며 의미 없이 탄환을 소모했다. 짐승이 한 걸음씩 다가설 때마다 비명은 커져만 갔고.. 한데 놀랍게도 이 와중에 맨정신을 유지한 사람이 한 명 있었으니..


“다들 뭐 하는 거야! 로켓이랑 수류탄은 장식이야? 그리고 기관총이 한 정 더 있잖아, 안 갈기고 뭐 해!”


무샨이었다. 좀 전까지만 해도 오줌이나 지리고 있던 그는 부하 덕에 간신히 이성의 끈을 잡았는지 보스다운 면모를 보이며 부하들을 다그쳤다. 그는 다른 지프와 M60사수를 찾으려 이리저리 고개 돌리다가, 벌써 줄행랑쳤다는 걸 깨닫곤 욕설을 뱉었다.


“이런 개새끼가 혼자서.. 젠장, 누가 또 M60을 다루더라?”


주위를 둘러보니 다들 탄창 갈기도 버거워 보인다.


“빌어먹을, 내가 직접해야 돼?”


그냥 장전하고 쏘면 되지 별 거 있겠냐며 지프 쪽으로 걸음을 옮기던 그는 최초의 희생양이 된 기관총수가 문득 떠오르자 슬그머니 방향을 틀었다. 그곳에는 허머가 있었는데, 마침 허머를 방패 삼아 총질 중인 소년이 보이자 눈을 빛내며 뛰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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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아프가니스탄 [The Beast..전운1] 16.11.22 754 13 14쪽
27 아프가니스탄 [The Beast..학살조장] 16.11.21 816 12 14쪽
26 아프가니스탄 [The Beast..9] +1 16.11.21 743 13 12쪽
25 아프가니스탄 [The Beast..8] 16.11.18 646 10 13쪽
» 아프가니스탄 [The Beast..7] 16.11.18 658 10 12쪽
23 아프가니스탄 [The Beast..강림{降臨}] 16.11.17 890 13 17쪽
22 아프가니스탄 [The Beast..6] 16.11.17 726 12 11쪽
21 아프가니스탄 [The Beast..5] +1 16.11.17 835 13 12쪽
20 아프가니스탄 [흐름] +3 16.11.15 841 17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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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아프가니스탄 [학살조..8 도살자] +1 16.11.14 758 10 11쪽
17 아프가니스탄 [학살조..7 도살자] 16.11.14 787 6 14쪽
16 아프가니스탄 [학살조..6 도살자] 16.11.11 855 15 13쪽
15 아프가니스탄 [학살조..5 도살자] 16.11.10 851 1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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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아프가니스탄 [학살조..1 폭탄마] 16.11.08 1,427 21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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