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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음여류 님의 서재입니다.

포식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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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음여류
작품등록일 :
2012.11.16 14:10
최근연재일 :
2018.03.26 19:27
연재수 :
36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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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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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45
글자수 :
2,037,868

작성
16.11.17 2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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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9
추천
13
글자
17쪽

아프가니스탄 [The Beast..강림{降臨}]

DUMMY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방금 제가 보여준 인간만 확실하게 죽이면 만찬을 위한 대가는 다 치른 거나 다름없습니다. 그러니까 놈을 아뮤즈 부쉬로 하시고 나머지는 에피타이저, 농장에서 주요리에 디저트까지 즐기시다 보면, 고대하던 이름을 받을 내일이 올 겁니다.”


옷 색깔에 맞춰서 검은색 중절모까지 쓴 샤프한 인상의 남성은 옆의 갈색정장이 들은 척도 하질 않았지만 미소를 지우지 않고 이어갔다.


“혹시, 처음이라서 긴장하신 거라면 제가 도와드릴 수도 있습니다. 너무 어려워 말고 한 번 말해보세요.”


원 버튼에 핏이 정말 잘 떨어져서 스타일리쉬한 옷차림과 달리 야만스러운 분위기를 물씬 풍기던 갈색 정장이 드디어 그의 말에 반응하기 시작했다. 소름 끼치도록 흉흉한 살기를 흘리며 그를 죽일 듯 노려봤다. 그러자 검은 정장은 짐짓 놀란 척 오른손으로 중절모를 벗어 들곤 장난스럽게 고개 숙였다.



“농담입니다, 단순한 농담.”


하지만 갈색 정장은 끓어오르는 울화를 참지 않았다. 사과의 진정성도 그렇지만, 애초에 상대의 모든 게 언짢고 거슬렸었다.


“농담, 농담이라고? 내 너희가 상대할 가치도 없는 하찮고 천한 것들이라 들어 여태 그러려니 했는데, 네놈의 언행은 천박하기 그지없구나. 너만 그렇게 가벼운 것이냐? 아니면 너희 족속이 다 그렇게 미천한 게냐?”


그나마 속이 좀 후련해진 갈색 정장이 입가를 일그러뜨려 노골적으로 조소를 띠자, 고개 숙인 채 가만히 미소 짓던 검정 정장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그리곤 항상 가볍기만 해 미천하기 그지없는 자의 목소리가, 감히 견뎌낼 수 없을 무게를 담아내기 시작했다.


“당신의 왕에게 전승받은 일족의 의지와 능력에 자부심을 가지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하나, 주제파악은 하셔야지요.”


말끝에 살의를 실은 자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어리석은 자를 마주하는 순간, 그의 유달리도 시꺼먼 그림자로부터 뻗어 나온 어둠이 주변을 우악스럽게 집어삼켜갔다. 그것은 술[呪術]이나 법[魔法]으로 만들어낸 인위적인 힘이 아니라, 자연의 순리 안에서는 결코 존재해선 안 될 생명체가 본모습을 드러낸 충격의 여파요, 한없이 강대한 자의 존재감이 실체화된 형상이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각성의 날부터 오늘 이곳에 서기까지 3개월간 검은 정장은 오직 안내자의 역할만 충실히 수행했다. 항상 먼저 사과하고 고개 숙인데다가, 일족도 아닌 다섯 번째라서 그냥 자연스럽게 하대하고 무시했다. 한데 놀랍게도 그가 왕과 같은 위압감을 가진 괴물이었다니.. 한없이 나약한 미물은 그저 죽음만 떠올렸다.


‘이렇게..이렇게 끝나는 건가?’


사위를 잠식해 온 어둠이 그를 대적할 수 없는 힘으로 짓눌러 바닥에 처박는다. 텁텁한 모래가 입안으로 밀려들자 나의 미약함에 비례하여 상대의 끝 모를 힘이 더더욱 절절히 느껴진다. 이 정체불명의 어둠 속에는 피할 수 없는 죽음이 도사리고 있어 숨통을 옥죄였다.


‘왕이시여.’


죽음의 공포보다 그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게 더 죄스럽고, 하릴없는 나약함이 그저 서러울 뿐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삶을 구걸하지는 않을 거라 다짐하며 이를 악물 때, 강대한 자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어리석구나. 죽음 앞에서 전의가 아닌 한낱 자존심 따위를 위한 다짐을 하다니. 그런 그릇으로 감히 내 앞에서 일족의 우열을 입에 담은 것이더냐?”


대기를 뒤틀고 빛을 잡아 가둔 어둠이 짓밟혀 꿈틀대는 벌레의 세상을 모조리 집어삼키는 순간, 그의 애달픈 자존심마저도 모래성처럼 스러졌다. 그래도 겁먹지 않았다고 소리쳤지만, 악다문 입술을 비집고 흘러나온 건 애처로운 흐느낌이요, 사지육신은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떨려서 안쓰러울 정도였다.


‘이 자는 뭐지?’ 눈앞의 괴물이 허락하지 않는 한 그 어떤 것도 할 수 없음이 느껴진다.


그와 동시에 상대가 홀로 법칙 위에 설 수 있는 존재, 타인의 운명을 손바닥 위에 올린 자들 중 하나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꼈으니.. 그는 자신도 모르게 절대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기 시작했다.


“가진 바 능력도, 핏줄에 흐를 무력도, 전장에 설 자격마저도 없는 하찮은 아이야. 너는 네 왕의 그늘이 모든 곳에 미치지 않음을 새겨야 할 것이다.”


대답은커녕 숨도 쉬지 못한 채 무너져가는 벌레를 가만히 내려다보던 절대자는 불현듯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대소를 터뜨리며 한 발 물러섰다.


“홀로 고고한 자여, 드높아 압도적인 폭력이여, 어미의 거죽에 갇혀 죽어가는 애달픈 야수여, 장장 삼백 년 만에 태어난 당신의 아이가 오늘 승리해 이름을 받고, 수많은 전장에 새겨 널리 알린 뒤에 다시 나를 찾을 때, 오늘의 우행을 사죄하고 걸맞은 대접을 하겠습니다. 그럼 이만..”


그가 손에 든 중절모를 쓰고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자, 세상만물을 모조리 다 먹어 치우던 어둠이 그대로 증발했다. 부지불식간에 정신을 잃었다가 금세 눈을 뜬 갈색 정장은 주변 어디에서도 바알제불을 찾을 수 없자 길게 한숨을 뱉어내며 어떤 결심을 가슴에 새겼다.


‘언젠가는..’


목표를 잡고 결심을 굳혔으니 이제는 바알제불이란 이름 넉 자를 머릿속 깊은 곳에 잠시 묻어둘 차례였다. 심적 충격이 커서 마음대로 되지는 않겠지만, 승리해서 이름을 받으려면 눈앞의 전장에 집중해야 했기에 오늘의 다짐을 한 번 더 되새기며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놈에게 사죄 받을 때도 이렇게 두 발로 서 있으리라.’


소멸의 문턱을 넘을 뻔했던 육신은 이리저리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쉽게 회복되었지만, 정신적 붕괴로 인한 트라우마는 생각보다 쉽게 회복되지 않을 듯했다.


‘그분에게 이름을 내리받을 때쯤에는 완쾌되어야 할 텐데. 그래도 생각보다는 상태가 좋으니까, 몇 놈 먹다 보면 괜찮아지겠지. 그러면, 집중하자.’


그는 자신이 움직여야 할 동선과 아편농장의 위치 등을 빠르게 되짚어보다가, 이제는 인간의 눈으로도 식별이 가능할 만큼 접근해온 차량을 보며 양쪽 어깨를 크게 한 번 휘돌렸다.


‘이렇게 직접 보니까, 제법 그럴 듯하네.’


각성 전에는 평범한 민간인이었기에 지프와 기관총으로 무장한 행렬의 모습은 묘한 감흥을 불러일으켰다. 조금은 설레기까지 하자 입가에 옅은 미소가 그려진다.


‘총 53명이라고 했었지.’ 결코 적지 않은 숫자였다.


인원 전부가 총과 폭탄 등으로 무장한데다가 첫 전투라는 것을 고려한다면 겁이 날 법도 했건만, 그는 두려움이나 공포보다는 설명하기 어려운 희열 속 어떤 짜릿함에 사로잡혀갔다. 역시나 가장 큰 건 허기였기에 군침부터 돈다.


‘이거, 예상보다 더 재미있는 시간이 되겠어.’


그는 왕과 보낸 하루와 500년 전에 각성했다고 한 윗대와의 60일을 찬찬히 되짚어가며 천천히 눈을 감았다. 귀에 거슬리던 엔진소리가 멎고 차에서 내린 먹잇감 중 하나가 코앞으로 걸어오는 게 느껴졌지만, 바로 눈을 뜨지 않았다.


‘너무 흥분하지 말고 해야할 일부터..’


입안 가득 고인 군침을 삼키며 나름 경건한 마음으로 왕의 거처를 떠날 때 들은 지상명령을 되새겼다.



‘가치를 증명하고 걸맞은 자격을 취해서 다시 내 앞에 서는 날, 만천하가 너를 인정하게 될 거다.’


지고한 자의 목소리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활화산 같은 용맹이 터져 나와 심장을 미친 듯 뛰게 한다.


‘반드시, 나는 반드시 승리해서 왕의 전장에 설 것이다.’ 그렇게 승리의 목적을 새기고 또 새긴 어린 전사는 천천히 눈을 떴다.


두어 걸음 앞, 권총으로 자신을 겨냥한 채 욕설을 퍼붓고 있는 비대한 돼지새끼 한 마리가 보인다. 뒤로는 각종 무기로 무장한 수십의 인원이 자신을 조준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놈은.. 바알제불이 가리켰던 타깃이잖아.’


놀랍게도 세상 모든 욕을 쏟아내는 중인 고깃덩이는 이곳에 도착하기 전에 들은 브리핑 속 커다란 사진의 주인공이었다.


‘만찬의 대가라고 했지.’


상관을 닮아서 싹수가 노란데다가 핀트까지 나간 계집의 목소리가 귓가를 스친다.


‘모든 인간을 싸그리 다 먹어 치우는 게 좋을 거예요. 이렇게 많은 먹이를 거저먹을 기회가 자주 오는 게 아니거든요. 특히 가난뱅이인 당신들에게는 정말로 드문 만찬이니까.. 뭐, 내가 말하지 않아도 한 번 먹기 시작하면 멈추질 못하겠지만.. 어쨌든 정신없이 입에 처넣다 보면 이렇게 생긴 놈이 보일 거예요. 이놈은 무조건 죽여야 되니까 신경 좀 써주세요. 이런 잔칫상을 차리는데 한두 푼이 드는 게 아니라서.. 아, 참! 그쪽이 아직 어려서 잘 모를까 봐 가르쳐 주자면, 우리는 항상 더치페이라는 거 명심하세요. 쉽게 말해서 왕족이고 나발이고 간에 제 밥값은 자기가 해야 된다, 이 말이에요. 이봐요, 그렇게 인상쓰고 노려봐야 아무 소용도 없으니까, 이만 가보세요. 저 바쁘거든요?’


속사포처럼 쏘아대고는 말 한마디 할 겨를도 없이 헤드폰을 눌러 쓰던 미친년을 생각하니 중대한 의문 하나가 떠오른다.


‘혹시, 다섯 번째는 다 상태가 안 좋은 건가?’


만사가 다 귀찮은 얼굴로 자신과 바알제불에게 휘휘 손을 내젓던 나사 빠진 년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헛웃음이 나와서 미소를 머금자, “이런 미친새끼가 지금 웃냐? 웃어?” 라는 욕설이 바로 들려왔다. 자신에게 총구를 들이민 비곗덩이의 고함이었는데, 화가 난다기보다 그냥 우스웠다.


‘그러고 보니 나도 좀 이상해진 것 같긴 해.’


코앞에 총이 있는데 딴생각이나 하고 있는 자신의 여유만만도 우스웠고, 자신을 보자마자 두말 않고 도주하면 어쩌나 하고 걱정했던 밥값이 제 발로 찾아와서 죽여달라 깝죽대는 것 역시 재미있었다.


‘이렇게 변해도 여전히 세상일은 알 수가 없구나.’


그런 생각에 다시 헛웃음을 터트리는 순간, 눈알을 뒤집을 듯 노려보던 비곗덩이가 괴성을 내지르며 방아쇠를 당겼다.


“이 개 같은 새끼가 감히 날 무시해? 누구 앞이라고 이를 보여!” 무샨은 17발들이 탄창 안에 든 총알을 모조리 쏟아부었다.


사람을 코앞에 두고 비웃던 미친놈이 핏물을 쏟아내며 주저앉자 그동안 쌓인 스트레스가 확 날아가는 것만 같았다.


‘역시, 사람 죽이는 게 최고라니까.’


이제 농장에 가서 두어 놈만 더 잡아 족치면 고 야들야들한 계집을 끼고 편히 잘 수 있을 듯했다. 그래서 후련한 걸음걸음으로 되돌아가며 시원하게 소리쳤다.


“야! 저거 트럭에 매달지 말고 그냥 치워! 차에 오물 냄새 밸라.”


보스의 명령에 가장 먼저 반응한 건 M60지프의 막내였다. 비쩍 마른 소년이 소총을 등 뒤로 빗겨 멘 채 시체로 달려가자, 큰 거래 후 유발된 기묘한 대치상황에 놀라 긴장했던 사람들이 허탈하게 웃으며 각자의 차로 돌아갔다.


‘괜히 겁먹었잖아.’


무슨 상황인지는 몰라도 엄청 긴장했던 막내는 모두가 웃자 한결 편해진 마음으로 시체 앞에 섰다. 이제 저것만 치우고 나면 사랑하는 누나와 형을 만날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 절로 힘이 났다.


‘와, 그런데 가까이에서 보니까 옷도 비싸 보이네.’


여기저기 총알구멍이 뚫렸음에도 고급스러워 보이는 옷을 걸친 걸 보면, 돈이 될만한 물건을 건질 수도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거 잘하면 누나 결혼선물이 생길지도 몰라.’


남모를 기대감에 절로 미소가 그려진다.


‘그럼 형한테 배운 대로 들키지 않게.’


일단은 일행의 상황부터 슬쩍 살피고는 상의 안 주머니로 재빨리 손을 뻗을 때, 마치 짐승의 으르렁거림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어? 이게 무슨 소리..”


반사적으로 입을 열었지만,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화난 야수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다리에 힘이 빠져서 그대로 주저앉고 말았다. 엉덩이를 바닥에 깐 채 슬금슬금 물러서는데, 짐승의 목소리가 들려와 그를 붙잡았다.


“이것들이..”


적의 총알을 고스란히 허락한 육체는 강한 통증을 호소하며 일순 마비됐다. 두 달여를 같이한 윗대에게 들은 것과는 너무 차이가 심해서 원망스러울 정도였다.


‘총? 종류마다 다르지만, 대체로 따끔한 정도고 가끔 불에 덴 듯 아릿한 것도 있지.’


윗대는 500년의 세월 간 수많은 전쟁 속 다양한 무기를 겪은 뒤 총을 맞이했지만, 자신은 처음으로 접한 무기였다. 칼보다 수십 배는 강력한 총이 수천·수만 배는 흔한 시대라는 걸 염두에 두지 못한 선대의 실책이었지만, 어쩌겠는가? 이게 현실인데..


‘그래, 어차피 겪어야 될 상황이었어. 그래도 빌어먹을, 이건 좀 너무 하잖아!’


몸 여기저기에 박힌 쇳덩이가 전해주는 통증과 말로 표현키 어려운 이질감이 첫 전투를 맞이하면서 느꼈던 설렘을 순식간에 분노로 변질시킨다. 엎친 데 덮친다고 피를 너무 많이 흘려서 들리는 이명 사이로 잊을 수 없는 멸시까지 섞여들었다.


‘가진 바 능력도, 핏줄에 흐를 무력도, 전장에 설 자격마저도 없는 하찮은 아이야.’


이렇게 잠시 되살리는 것만으로도 악다문 어금니가 부스러진다. 놈이 어디에선가 지켜보고 있다면 또 얼마나 비웃겠는가?


‘처음이라서 긴장하신 거라면 제가 도와드릴 수도 있습니다. 너무 어려워 말고 한 번 말해보세요.’


그 역겨운 조소가 눈앞을 아른거리는 순간 놈을 향한 분노가 자신을 이렇게 만든 적에게의 증오로 뒤틀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작게 벌린 입술 사이로 짐승의 으르렁거림 같은 신음이 흘러나온다.


“대가를 치르게 해주마.”


화난 짐승의 효후를 들은 막내는 훈련받은 대로 소총을 고쳐 잡은 채 상대를 겨냥했지만, 얼마나 당황했는지 방아쇠 고리에 손가락도 집어넣지 못한 상태였다. 그러고 보니 안전장치도 풀지 않은 것 같아서 다급히 총신을 더듬던 그의 얼굴이 공포로 일그러진다.


‘그림자?’


믿을 수 없게도 검은색 안개 같은 게 적의 주변으로 몰려들고 있었다. 반사적으로 머리 위를 쳐다봤지만, 이글거리는 태양만 있을 뿐 구름 한 점 없이 청명한 하늘만 보였다.


‘그러면 저건 뭐야?’


이제는 모래 회오리 같은 어둠을 휘감은 채 떠오르기 시작한 적의 모습에 놀란 그는 정신없이 물러섰다..


‘악..마?'


얼마 전 샤히츠가 말해준 코란 속 악마가 나타난 게 분명했다.


‘누나, 형! 나 이제 어떡해?’


그 말할 수 없는 위압갑에 압도된 아이는 회오리치며 몰려들던 어둠이 정지하고 세상이 거짓말처럼 고요해지는 순간 뒤돌아 뛰기 시작했다. 생사의 갈림길에 섰음을 감지한 본능이 미친듯 울부짖었다.


‘도망쳐, 뒤돌아보지 말고 뛰어! 저 어둠으로부터 달아나, 누구도 찾을 수 없는 곳으로 가야만 해!’


어느새 거대한 구로 변한 어둠이 흑빛 아지랑이를 뿜어내며 일렁거리기 시작할 때, 다리가 풀려서 몇 번이고 넘어지던 막내는 자신을 옭아매고 있는 게 무엇인지 깨달았다. 그래서 다리를 꼬집고 두들기며 발작적으로 외쳤다. 하지만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질 않아 울먹였다.


“죽기 싫어, 형이랑 누나 결혼식에 갈래! 엄마, 알라께 나 엄마 있는 곳으로 데려가지 마라고 말해줘.”


놀랍게도 내 가족을 떠올리는 것만으로 기적처럼 다리에 힘이 들어갔다. 그래서 한 발 한 발 내딛다가 예전처럼 뛸 수 있을 것만 같아서 그대로 내달리려 할 때, 세상에서 가장 무서워하고 존경하는 사람의 고함이 들려와 그를 붙잡았다.


“씨 팔, 저건 또 뭐야? 다들 뭐해? 뭐하고 있냐고! 병신처럼 보고만 있지 말고 총부터 들어! 겁먹고 도망가는 새끼는 내 손에 먼저 뒈질 줄 알아!” 막내에게는 신과 같은 무샨이었다.


그는 글록의 탄창조차 교체하지 못한 채 개처럼 짖어대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참 추하고 우스웠지만 막내는 그의 명령을 거부할 수 없었다.


‘무..샤.’


마을의 다른 아이들처럼 그를 향한 무조건적인 복종을 교육 받았고 성공적으로 세뇌되었기에 그는 무의식적으로 뒤돌아섰다. 덜덜 떨리는 손을 들어 인세의 것이 아닌 흑점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아니 당기려는 순간, 거대한 암흑이 소리 없이 폭발했다.


‘신이시여.’ 빛을 찢어발기며 사방으로 터져나간 어둠이 신기루처럼 흩어진 공간에는 거대한 야수가 한 마리 서 있어 그 위용을 자랑했다.


태초의 포식자가 네 번째로 잉태한 천적, 전장의 악몽이라고 불리는 광전사가 드디어 이 땅 위에 강림한 것이다. 그는 사자의 것과 같이 커다란 머리통을 흔들며 거칠게 숨을 토해내고는, 애처로운 피식자[被食者]들의 세상을 향해 포효하기 시작했다.


‘새겨 알리리라!’


작가의말

본의 아니게 수요일에 쉬어서 한 편 더 올립니다.


드디어 짐승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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