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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음여류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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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음여류
작품등록일 :
2012.11.16 14:10
최근연재일 :
2018.03.26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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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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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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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45
글자수 :
2,037,868

작성
16.11.17 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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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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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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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아프가니스탄 [The Beast..5]

DUMMY

살을 익힐 듯 뜨거운 땡볕과 숨 막히도록 건조한 열풍이 각고의 시간을 들여서 빚어낸 사막은, 세상 그 어떤 생명체도 용납하질 않아 척박하기 그지없었다. 하나 저기 바위 그늘로 기어들어가는 게코 도마뱀이나, 그 뒤를 살금살금 쫓는 사막여우의 적응력에는 무릎 꿇은 듯하다.


적응과 진화라는 세상의 이치에 다시 한번 감탄하게 된다.


물론, 땡볕과 열풍 따위는 그냥 무시한 채 흙먼지를 일으키며 질주해가는 만물의 영장이 뿜어대는 위압감에는 비견할 바 아니었지만 말이다.


그 위풍도 당당한 대열의 선두에는 빛바랜 카키색 지프가 한 대 있었는데, 낡긴 했어도 M60[기관총]을 장착한 걸 보면 평범한 차량행렬은 아니었다. 뒤로는 눈에 확 띄는 검은색 허머[HUMMER H1]와 그를 앞뒤로 호위하며 달리는 대형 수송트럭 두 대가 보였고, 후미에는 선두의 차량과 꼭 같은 M60지프가 있어 주변을 경계했다.


대형트럭의 수송칸에 탄 40여 명의 무장병력만 해도 웬만한 정규군의 소대급 규모에 비견할 만한데, 과연 저들이 호위하는 허머 속 VIP의 정체는 뭘까? 마침 요란한 엔진 소리를 뚫고 살기 위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이렇게 큰 거래도 쉽게, 그저 쉽게 처리하시면서 최대의 이익을 뽑아내시다니, 어쩜 그렇게 수완이 탁월하신지.. 모자란 저로서는 당최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보스의 타고난 위엄 앞에서 그 양키 놈들의 고개가 절로 숙여지는 걸 제가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했습니다. 정말, 정말로 대단하십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존경을 표할 뿐입니다, 무샨!”


40도를 넘나드는 무더위 속을 내달리는 차량 중 유일하게 에어컨이 나오는 허머의 뒷좌석에는, 고개를 조아린 40대와 거만한 모습으로 미소 짓는 중년인이 있었다. 그가 바로 소대급 병력에게 호위받는 VIP이자, 세계 최대 규모의 마약 보급량을 자랑하는 무샨 카냐즈마였다.


‘헤로인의 악마.’


마약으로 몸살 앓는 수많은 국가 중에서 그를 블랙리스트의 최상위에 랭크시켜두지 않은 나라가 없다고 했다. 악마의 상인이라고까지 불리는 이 슬러거에게 이런 거만은 소박한 걸지도 몰랐다. 그러고 보니 소대급 병력마저 왜소하게 느껴진다.

마약상인이 잠수함에 전투기까지 보유하는 게 요즘 아니던가?


한데 왜 세계 최대 규모의 아편 농장들을 보유한 그가 명성에 비해 초라하기 그지없는 행색으로 사막을 횡단하는 걸까? 아무리 명작이라해도, 허머라니? 때때로 차창 밖을 보며 두 눈을 번들거리곤 하는 저 섬뜩한 살기의 대상이 그 이유이리라.


‘내가.. 이 무샨 카냐즈마가 반년 안에 놈을 양귀비 거름으로 삼으리라. 이 개 같은 새끼가 뭐? 마약왕이라고!’


으드득 이까지 간 무샨은 불과 2시간 전에 있었던 대형거래를 떠올리며 분을 삼켰다. 이번 거래 덕에 생긴 판매망은 그 씹어먹을 놈의 강도 때문에 막힌 자금줄을 시원하게 뚫어줄 게 분명했다.


‘일단 돈만 제대로 돌면..’ 막대한 자금은 곧 강력한 힘이요 권력이었다.


압도적인 무력으로 자신의 농장 중 반을 강탈하고 마약시장까지 양분한 날강도라고 해도, 세상을 움직이는 힘 앞에서는 기껏 하루살이에 불과하리라. 지난 몇 년 사이에 웃음을 잃었던 그가 다시 이렇게 미소를 찾은 것이다.


‘내 그 검둥이 새끼를 반드시!’


놈을 찢어 죽이는 상상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져서 입가를 움찔거리는 순간, 낯 뜨거울 정도로 노골적인 멘트가 다시 들려와서 귓가를 살살 간질인다.


“무샨, 위대하신 무샨!” 윗사람이 기분 좋을 때 던지는 존경만큼 효과적인 아부가 또 어디에 있겠는가?


샤히츠는 지금이야말로 자신의 유일한 특기를 살릴 완벽한 타이밍이라 여기고 프로페셔널하게 말을 이어갔다. 일단은 자신을 살짝 높였다가..


“저도 한때나마 제법 큰 상단을 이끌었고 이 바닥에서만 해도 벌써 15년째인데..”


이렇게 굳이 다 아는 이야기를 짧게나마 던진 건, 자신을 더 바짝 낮추기 위함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의 작은 그릇으로는 감히 품지 못할 환상적인 아이디어와, 그저 감탄에 또 감탄을 할 수밖에 없는 무서운 행동력이 이루어낸 오늘의 거래야말로 혁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시중 잡것들이 장사놀음이나 하고 있을 때, 무샨께서는 홀로 무역로를 개척하고 계시니, 후일 위대한 사업가로서.. 아니 개척자로서 무샨의 존함이 교과서에 실릴지도..”

“어허, 이 친구 과하네 과해.”


어울리지도 않는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턱수염을 어루만지는 무샨을 보며 샤히츠는 눈을 번뜩였다.


“과하다니요, 천부당만부당한 말씀이십니다. 저만 아니라 세상 누구도 이런 판매루트를 생각해내지 못했을 겁니다. 언감생심 꿈이나 꿨겠습니까? 거기에다가 그 싹수없는 양복쟁이들을 압도한 풍채는 정말, 지금 생각해도 그저 탄성만 나올 뿐입니다. 진정한 리더, 우리의 지도자가 아니면 세상에 누가 있어 그런 기막힌 거래를 성사시킬 수 있었겠습니까?”


무샨의 입에 걸린 미소가 짙어지자 아부의 농도 역시 진해진다.


“아니, 아니지요. 성사 정도가 아니었지 않습니까? 취할 이득은 모조리 취하고 조그만 앙탈은 큰 가슴으로 품어 주셨으니, 거래라기보다는 일방적인 통보를 하였다, 정도로 보면 되지 않겠습니까? 정말 무샨은 위대하십니다.”


못 이기는 척 밖을 보며 조용히 듣던 무샨은 슬쩍 끄덕이며 맞장구를 쳤다.


“뭐, 다른 건 몰라도.. 그건 그렇지, 거래가 아니라 통보였어. 내가 이렇게 하라고 명령한 거나 다름없었지.”


얼씨구나 박수를 친 샤히츠는 입을 멈추지 않았다.


“암, 그렇고 말고요. 그러니 제가 어찌 존경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곧 농장에 도착하면 주민 모두가 무샨을 찬양하며 축배를 들 겁니다.”


그는 혀를 내밀어 입술을 살짝 적신 뒤에, 놀랍게도 계속 이어갔다.


“무샨, 위대한 무샨께서는 이제 저같이 미천한 놈은 감히 상상하지 못 할 권력을 품게 되실 겁니다. 당장 내일이라도 헤라트의 농장을 되찾으실 테고..”


샤히츠의 입은 단 한 순간도 쉬질 않았고, 무샨은 양팔을 쭉 뻗어서 좌석 쿠션에 척하니 기댄 채, 샘솟듯 흘러나오는 감언이설을 마음껏 즐겼다.


‘그럼, 그렇고말고. 내가 바로 그런 사람이지.’


그 내용이 아무리 낯 뜨거워도 아부의 대상이 지극히 만족하고 아부쟁이도 흥이 나서 떠들어대니, 이보다 더 좋은 관계가 어디에 있겠는가? 얼굴 가득 함박웃음을 띤 채, 연신 헛기침하던 무샨은 결국 참지 못하고 대소를 터트렸다.


“샤히츠, 너도 이제 도심부에 집을 한 채 떡, 하니 가져야지?”

“무샨, 감사합니다. 크디 큰 은혜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그저 감사합니다. 이 충직한 부하는 무샨의 하해와 같은 은덕에 송구스러울 뿐입니다.”


물 들어올 때 노 저으라고 바로 바닥을 기어 집 한 채를 획득한 샤히츠는 아내와 딸의 웃는 얼굴이 눈앞을 스치자 잔뜩 흥분해서 나오는 대로 지껄이고 말았다.


“무샨, 이제 마약왕의 목을 매다는 것도 시간문제입니다. 무.. 이런..”


생각지도 말았어야 할 단어를 은연중에 뱉고 놀라 사색이 된 샤히츠는 슬그머니 무샨의 얼굴을 훔쳐봤다. 역시나 화난 목소리가 들려온다.


“뭐?”


일순, 허머 안의 모두가 숨죽여 긴장하기 시작했다.


“너 이 새끼야, 방금 뭐라고 그랬어?”


어찌나 분노했는지 이를 가는 소리까지 들려오자 샤히츠는 다급히 어깨를 움츠린 채 양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대답 안 해? 다시 한 번 떠들어봐, 이 버러지 같은 새끼야!”


타고난 눈치와 입담으로 보스의 오른팔까지 올라온 샤히츠는 자신의 운도 여기까지라는 것을 직감 했다. 자신이 아는 한 세상에서 가장 쓰레기 같은 인간말종의 역린을 건드리고 말았는데 어찌 내일을 꿈꾸랴.


'끝이다.'


땅을 치고 후회한들 이미 흘린 물이요 뱉은 말이었기에, 그저 애처롭게 떨 뿐이었다. 그래도 혹시나 하면서 입을 열어 봤지만..


“무샨, 이 모자란 놈이 잠깐 미쳤었나 봅니다. 부디, 용서해주십시오.”

“용서? 그 강도 새끼를 왕이라고 씨부리는 걸 보니까, 네놈도 결국 속으로는 놈을 인정하고 있었다는 말 아니야? 그런데 뭐? 나보고 봐달라?”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수많은 변명거리가 머릿속을 맴돌며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그는 힘없이 고개를 떨궜다. 여기서 입을 잘못 놀렸다가는 자신은 물론 가족까지 몰살당하리라는 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젠 마을에 있는 가족을 위해 기도나 하는 수밖에 없었다.


‘여보, 미안해.’


숨죽인 채 떠는 오른팔을 빤히 쳐다보던 무샨은 갑자기 대소를 터뜨렸다.


“샤히츠!”

“예, 무샨.”

“오늘같이 좋은 날, 내 오른팔의 실수 정도는 눈감아 줘도 상관없지 않겠어? 네 생각은 어떠냐?”


불과 며칠 전 술김에 마약왕이라는 단어를 꺼낸 부하와 가족을 공개 처형한 자의 입에서 의외의 말이 나오자, 샤히츠는 터널 속 광명이라도 본 듯 감격해 입을 열었다.


“위대한 무샨, 감사합니다. 은혜를 베풀어 가족만은 살려주십시오. 부디 이렇게 부탁드립니다. 무샨의 너그러움을 믿고 또 믿겠습니다.”


말을 마친 샤히츠는 달리고 있는 허머의 문을 열고 망설임 없이 뛰어내렸다. 사막지대를 통과하고 있는 차에서 맨몸으로 뛰어내리는 건 자살행위였음에.. 스스로 목숨을 끊을 테니 가족만은 살려달라는 간절한 바람이었다. 하지만 상대는 그의 생각처럼 인면수심의 말종이었으니..


“총알 값은 아꼈네.”


건조하고 뜨거운 공기가 쏟아져 들어오는 문을 말없이 닫은 무샨은 다시 쿠션에 기대앉은 채 운전병에게 명령했다.


“마을에 가거든 놈의 아내와 아이들의 다리를 꺾어서 사막에 버려. 그래도 오른팔인데 가족끼리 만나게는 해줘야지.”


그러자 운전병이 조심스레 물었다.


“딸년이 하나 있던데, 같이요?”

“딸? 몇 살이었지?”

“열하나 정도 됐을 겁니다.”

“다 컸군.”

“오늘 밤에 씻기겠습니다.”


다시 운전에 집중하는 부하를 보며 무샨은 자신의 아량에 홀로 감탄했다.


‘그러고 보니 나도 이제 나이가 들었어. 그래, 함께한 세월이 있으니 이 정도는 해줘야지. 그건 그렇고 열하나라, 한 번 봤었던 것 같기도 한데..'


그는 기억을 더듬다가 조그만 얼굴 하나가 뇌리를 스치자 슬그머니 입을 열었다.


“피곤하군, 앞으로 한 시간쯤 더 가야 하던가?"


운전대를 잡은 부하가 괜히 주위를 둘러보며 답했다.


“한 시간 반쯤 걸리지 않을까요?”


그러자 무샨은 인상을 찌푸린 채 되물었다.


“한 시간 반?"

“예, 아시다시피 이제 사막지대를 통과했고, 물론 저보다 더 잘 아시겠지만, 이 이상 속도를 올리면 다른 인원들이..”


운전대를 잡은 부하가 주저리주저리 맞는 말을 늘어놓으려 할 때, 룸미러로 무샨을 살피던 조수석의 하마스가 불쑥 입을 열어서 그의 자살시도를 만류했다.


“예, 무샨! 1시간이면 도착할 겁니다.”

“그래, 오늘은 빨리 가서 쉬어야겠어."

“예, 알겠습니다”


그제야 무샨의 미간이 펴지는 걸 확인한 하마스가 한숨 돌리며 무전기로 각 차량에 명령을 내릴 때, 비로소 분위기를 파악한 운전병은 마른 침을 삼켰고, 한 번 더 자신의 아량에 탄복한 무샨은 ‘나 같은 보스가 세상 또 어디에 있겠어. 예쁘게 생긴 딸도 아량으로 품어주고..’ 따위의 역겨운 생각을 하며 미소 지었다. 그리고..



“아, 이런 씨팔, 인간말종 돼지새끼는 꼭 자기만 생각하네.”



속도를 올리라는 무전에 선두의 지프에 탄 기관총수는 욕설을 뱉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작가의말

예, 이제는 끝을 보려고 리메이크 하는 중입니다.

제 머릿속 장면과 인물들이 독자님들의 머릿속에도 그려지기를..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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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아프가니스탄 [The Beast..전운1] 16.11.22 754 13 14쪽
27 아프가니스탄 [The Beast..학살조장] 16.11.21 817 12 14쪽
26 아프가니스탄 [The Beast..9] +1 16.11.21 743 13 12쪽
25 아프가니스탄 [The Beast..8] 16.11.18 646 10 13쪽
24 아프가니스탄 [The Beast..7] 16.11.18 659 10 12쪽
23 아프가니스탄 [The Beast..강림{降臨}] 16.11.17 891 13 17쪽
22 아프가니스탄 [The Beast..6] 16.11.17 726 1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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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아프가니스탄 [학살조..8 도살자] +1 16.11.14 759 1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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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아프가니스탄 [학살조..3 구원자] +1 16.11.09 1,163 20 13쪽
12 아프가니스탄 [학살조..2 폭탄마] +2 16.11.08 1,253 19 12쪽
11 아프가니스탄 [학살조..1 폭탄마] 16.11.08 1,427 21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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