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n4558_chldmswl1 995 님의 서재입니다.

귀신의 집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공포·미스테리

완결

작뚜
작품등록일 :
2017.06.26 10:16
최근연재일 :
2021.07.29 10:00
연재수 :
96 회
조회수 :
7,447
추천수 :
16
글자수 :
402,336

작성
17.12.29 23:55
조회
376
추천
0
글자
9쪽

끝이 보이는 삶

DUMMY

“쿵!”


저승사자가 벽에 머리를 찍는 소리였다.

이름뿐이긴 해도 강사라는 사람이 돌아오자마자 이상행동을 하고 있으니 지나가는 귀신이 전부 요상한 표정을 지었다.

그 중엔 민수도 있었고, 청소장도 있었다.

청소장은 자신의 눈이 잘못 됐나 벅벅 비비고 있는 민수를 두고 저승사자에게 다가갔다.


“대체 이번엔 무슨 일이에요? 다 해결된 거 아니에요?”

“그게 아니야.”


저승사자가 벽에 머리를 박고 있는 채로 말했다.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어.”

“저기.. 소문에 의하면 가마 빌릴 돈도 다 구했다던데, 또 무슨 문제가 생긴 건데요.”


저승사자가 중얼거렸다.


“해야 될 일인데 안 하고 싶어.”

“그건 원래부터 그랬잖아요.”

“아니, 그런 가벼운 마음에 하는 소리가 아니야. 이번엔.. 아니다.”


평소에도 이상하긴 했지만 이번엔 특히 더 이해할 수 없는 소리를 하는 통에 청소장은 답답한 마음만 커졌다.

그렇다고 저승사자를 다른 귀신들 대하는 것처럼 막 대할 수도 없었다.

때문에 청소장은 팔짱을 끼는 것으로 대걸레로 향하려는 손을 못 움직이게 만들었다.


“그 가마 움직이는 거랑 관련된 일이에요?”

“어.”

“그러면 아직 20시간 정도 남았으니까 생각할 시간은 충분하지 않아요? 여기서 이러지 말고 방에 가시는 게 나을 것 같은데요.”

“..그래. 내가 직접 보고 어떻게 해야 할지 정해야겠어.”

“어.. 그런 뜻으로 얘기한 건 아닌데 뭔가 결론이 났다니 다행이네요.”

“나 한..”


저승사자는 벽에서 머리를 떼고 시계를 보면서 말했다.


“18시간 정도 있다가 부를 테니까 그동안 준비 좀 부탁해.”

“..? 제가요?”

“있다 봐!”

“잠깐, 한다고 얘기 안 했거든요!”


냅다 밖으로 날아가는 저승사자를 보고 청소장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지만 저승사자는 벌써 멀리 날아간 후였다.

청소장이 결국 화를 참지 못하고 대걸레를 저승사자가 날아간 방향으로 힘껏 던졌다.


“부르기만 해봐, 이 멍청아!”




청소장이 잔뜩 화난 건 알고 있지만 저승사자는 지금 청소장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남은 시간동안 유리 옆에 붙어있어야 했다.


‘그러면 판단할 수 있을 것 같아.’

“죽여야 할지, 살려야 할지.”


유리의 집에 다다른 저승사자는 유리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저승사자가 인간의 임종을 지켜볼 때 쓰는 방식인데, 유리만 자신을 볼 수 있고, 그것에 대해 아무런 의문도 품지 않는, 저승사자만의 능력이었다.

유리는 갑자기 웬 남자가 새벽에 자신의 앞에 나타나도 별다른 표정변화 없이 고개를 숙여 인사할 뿐이었다.


“안녕하세요.”

“안녕. 별 일은 없어?”“별 일이 있으니까 찾아오신 거 아니에요? 제가 죽는 다거나.”

“..그렇지. 놀란 것 같지는 않네.”

“차라리 죽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어서..”


유리가 아무렇지 않게 말하면서 휴대전화를 두드렸다.

저승사자는 그 모습에 자신도 모르게 눈살이 찌푸려졌다.


“대략 20시간 뒤에 죽는 데 하고 싶은 건 달리 없어?”

“음..”

“토독, 토도독.”


고민하는 것 같으면서도 유리는 검색 하는 걸 멈추지 않았다.

정말 달리 하고 싶은 게 없는 것 같았다.

저승사자는 1년 전의 눈물을 펑펑 쏟던 유리를 떠올렸다.


“많이 변했네.”

“그 때랑은 상황이 바뀌었으니까요. 이젠 그 때로 돌아갈 수도, 그런 상황이 다시 찾아올 거란 기대도 할 수 없어요.”

“그건 너무 비약한 거 아니야?”

“사람이 언제까지 희망만 안고 살 수는 없으니까요. 언젠가는 꿈을 버리고 현실에 순응해야 될 때도 있죠. 지금 저한테는 이게 현실이에요. 죽음이 하루도 안 남아도, 무언가 다른 걸 할 수 있는 경제적 여건도, 제 현실을 공유할 친구도 없어요. 무엇보다 그게 다 갖춰져도 무언가 하고 싶다는 기분도 안 들 것 같고.”


저승사자는 중얼거리는 유리에게 화가 나면서도 안타까웠다.

유리는 14살이었다.

과연 이게 유리가 맞이해야할 마지막 하루인가 싶었다.


“그러면 후회는 없어?”

“오히려 하루라는 기한 없이 지금 죽어도 여한은 없을 것 같네요.”

“그건..”


더 얘기했다간 괜히 화만 낼 것 같아서 저승사자는 유리의 방을 떠났다.

동시에 유리는 자신이 방금까지 저승사자와 대화했다는 사실 자체를 잊어버렸다.

유리의 집은 사람이 사는 집이라기엔 찬 기운이 가득했다.

저승사자는 혹시나 싶어 안방에 머리를 디밀었다.

아무도 없었다.

아까 유리의 부모가 나눈 대화에서 추정해 보건데 누군가를 찾으러 간 것 같았다.


‘대리보증을 서버린 바람에 1년 만에 이 지경이 난 건가.’

“쾅! 쾅! 쾅!”


아직 새벽인데도 누군가가 유리네 집 대문을 부서져라 두드리기 시작했다.


“문 열어!”


저승사자는 직감적으로 유리의 엄마가 말했던 빚을 찾으러 온 사람임을 알았다.

밖으로 나가보니, 역시나 웬 인상을 팍 쓴 사람이 유리의 머리만한 주먹으로 문을 두들기고 있었다.


“성질 급하긴.”


죽을 운명이 아닌 인간에게 간섭하는 것은 할 수 없기 때문에 저승사자는 어떻게 자연스럽게 이 험상궂은 남자를 돌려보낼 수 있을까 고민했다.


“철컥, 끽..”


하지만 저승사자가 어떤 결심을 하기도 전에 먼저 문이 열렸다.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순간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은 저승사자는 눈을 크게 뜨고 유리를 보기만 했다.

유리는 예의 죽은 눈을 하고 문을 잡고 있었다.


‘왜 문을 연거야?’

“부모님은 없어?”

“안..!”


유리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남자는 유리를 밀치다시피 하면서 집안에 들어갔다.

때문에 벽에 팔꿈치가 세게 부딪쳤으면서도 유리는 한번 팔꿈치를 감쌌다가 손을 내릴 뿐 어떤 소리도 내지 않았다.

어째서 유리가 문을 연 건지, 마치 죽은 사람처럼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삶에의 의욕이 바닥났다는 것이 이런 것인가 싶었다.


‘왜 저항을 안 하는 거야?’


남자는 유리의 집을 제 집인 양 앉아 유리에게 손짓했다.

유리는 처음 겪은 일은 아닌 듯 얌전히 남자에게 다가갔다.

유리가 손에 닿기 직전까지 가까이 오자 남자가 말했다.


“어디 갔어.”

“삼촌 찾으러 가셨어요.”

“그니까 그 놈 찾으러 어디로 갔냐고?”


분명히 질문인데도 소리를 워낙 크게 지른 탓에 저승사자에겐 유리를 겁주려는 것으로 밖에 비치지 않았다.


“저도 몰라요. 제가 일어나기도 전에 나가셔서..! 아야!”


결국 남자가 벌떡 일어나 유리의 팔을 세게 잡아끌었다.

유리는 이번엔 의도치 않게 남자에게 붙들려 팔을 위로 세게 꺾였다.

어떻게든 고통을 줄이기 위해 유리가 발뒤꿈치를 들었지만 아픈 건 똑같은지 얼굴이 잔뜩 일그러졌다.

남자는 그런 유리의 귀에 입을 가까이 가져갔다.


“우리는 부탁 받고 돈 가져다주는 일만 하는 거라고. 이러고 싶어서 이러는 게 아니란 말이야. 그러니까, 엄마아빠한테 얘기해서 무슨 짓을 써서라도,”


남자가 빈손을 유리의 눈앞에 바짝 가져다 대면서 손가락을 두개 피고 말했다.


“20억. 준비해놔.”

“털썩!”


남자가 유리를 잡았던 손을 놓자 유리는 제대로 서있지도 못하고 쓰러졌다.

저승사자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집을 나서는 남자의 등을 최대한 눈을 가늘게 뜨고 째려보기만 했다.


“쾅!”


부수기라도 하려는지 남자가 세차게 문을 닫고 나갔고, 저승사자는 다시 유리에게 보일 수 있도록 몸을 드러냈다.


“왜 경찰을 안 부르는 거야?”

“법적으로는 우리가 잘못한 거니까요.”

“그렇다고 이런 방식으로 돈을 받아내려는 건 잘못된 거지!”

“저 아저씨도 세 달 전엔 안 이랬어요. 아마 아저씨가 말한 대로 그냥 돈을 뜯어내는 역할일 뿐인 거예요. 자꾸 윗사람이 쪼기라도 하는 거겠죠.”

“그래도..!”

“어쨌든 저승사자님이 나타났다는 건 제가 죽을 운명이라는 거죠? 그냥 이대로 죽여주시면 안돼요?”


처음으로 유리가 저승사자와 얼굴을 마주보고 말했다.

죽은 눈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처음으로 생기가 돌고 있었다.

진심으로 그것을 바라는 눈을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죽고 싶어요.”

“그.. 안 돼.”

“기간이 아직 안 되서 그런 거예요? 조금만 앞당기는 것도 안 돼요?”

“안된다니까!”


결국 저승사자는 소리를 버럭 질렀다.

유리는 그 모습에 당황했는지 저승사자에게서 조금 거리를 벌렸다.

저승사자는 잠시 숨을 거칠게 쉬다가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네 담당 저승사자는 나니까 네가 죽는 때는 내가 알아서 결정할거야!”


결국 저승사자는 떼를 쓰는 것처럼 말해버리고는 유리의 앞에서 사라졌다.

유리는 깊게 한숨을 쉬었다.

저승사자는 지금은 없는 것 같았다.


“생각보다 짧았지만, ..고통스럽기만 한 삶은 아니었으니까.”


유리의 혼잣말은 몸을 투명하게만 만들었을 뿐인 저승사자에게 똑똑히 들렸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귀신의 집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96 앞으로(8) 21.07.29 45 0 7쪽
95 앞으로(7) 21.07.28 25 0 7쪽
94 앞으로(6) 21.07.27 26 0 7쪽
93 앞으로(5) 21.07.26 30 0 7쪽
92 앞으로(4) 21.07.25 26 0 7쪽
91 앞으로(3) 21.07.24 26 0 7쪽
90 앞으로(2) 21.07.23 21 0 7쪽
89 앞으로(1) 21.07.22 22 0 7쪽
88 깨진 속박 21.07.21 24 0 7쪽
87 결계 안에서 18.02.20 82 0 11쪽
86 까만 기억 18.02.13 102 0 9쪽
85 역겨움 18.02.09 99 0 7쪽
84 고통(3) 18.02.06 538 0 7쪽
83 고통(2) 18.02.02 540 0 7쪽
82 고통(1) 18.01.31 81 0 7쪽
81 후회할 선택과 후회하지 않을 선택 18.01.26 87 0 7쪽
80 직감 18.01.23 101 0 9쪽
79 몸 (2) 18.01.19 70 0 8쪽
78 몸 (1) 18.01.16 80 0 10쪽
77 거짓말의 의미 18.01.12 65 0 7쪽
76 크리스마스에 되찾은 것 18.01.09 82 0 12쪽
75 숨긴 마음 18.01.05 75 0 7쪽
74 원하는 것과 얽매인 것 사이 18.01.02 85 0 8쪽
» 끝이 보이는 삶 17.12.29 377 0 9쪽
72 죽은 의욕과 버티는 희망 17.12.26 89 0 8쪽
71 가까운 죽음 17.12.22 73 0 8쪽
70 마지노선과 반항 17.12.19 78 0 8쪽
69 성불 17.12.16 95 0 8쪽
68 모두가 잠든 시간에 잠들다 17.12.12 99 0 9쪽
67 고통이 지르는 소리를 쫓아 17.12.08 85 0 8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