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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4558_chldmswl1 995 님의 서재입니다.

귀신의 집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공포·미스테리

완결

작뚜
작품등록일 :
2017.06.26 10:16
최근연재일 :
2021.07.29 10:00
연재수 :
96 회
조회수 :
7,413
추천수 :
16
글자수 :
402,336

작성
17.12.08 23:55
조회
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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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글자
8쪽

고통이 지르는 소리를 쫓아

DUMMY

공중전화박스에서, 수은은 피멍이 든 손으로 수화기를 꽉 쥐고 이를 악물고 있었다.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건너편에서 잔뜩 흥분한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합격이라고! 수은아! 붙었어!”

“선생님..”

“잘했어! 이제.. 수은아? 목소리가 왜 그래?”


수은은 손등을 보고 있었다.

피멍이 눈에 가득 들어왔다.

이젠 바뀔 것이라는 희망이 사그라 들었다.


“..알아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수은..!”

“뚝”


수은은 전화박스를 나섰다.

바람이 세게 불어 수은의 몸을 쳐댔다.

이런 낡은 스웨터 한 장으로는 한기를 막을 수 없었다.

수은은 팔짱을 껴 깨질 것 같은 두 손을 감쌌다.

발도 잘 움직이지 않는 것 같았다.

추위 때문이기도 했지만, 수은의 마음을 짓누르는 두려움이 너무 무거운 이유도 한몫했다.

합격을 한들 소용없었다.

자신은 등록금은 물론 입학금도 낼 돈이 없었다.

또한 그 양부모들의 허락을 받아낼 자신이 없었다.

수은에게 있어서 합격은 사치였다.


“휘잉!”


날이 선 바람이 마음에도 상처를 내는 것 같았다.

우중충한 하늘은 당장에라도 무언가 쏟아낼 것 같았다.



“뭐! 그 날 일하던 거 아니었어? 수능 봤던 거야?”

“퍼억!”

“니 따위가 배워서 뭐에 쓰게?”


양아빠가 아직 젖어있는 우산 끝으로 수은을 쿡쿡 찔렀다.

수은은 잠자코 맞고만있었다.

수능을 봤단 이유만으로 이 지경이었다.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돈을 줄 수 없다고 말했다간 걷지 못 할 정도로 맞을 게 분명했다.


“말해! 뭐에 쓸 거냐고?”

“차악! 촥!”


양아빠는 우산으로 수은의 머리를 사정없이 내리쳤다.

빗물이 흘러내려 꺼림칙한 기분이 들었다.

양엄마는 수은이 잠자코 맞고 있는 모습을 보고 남편의 팔을 막았다.

“그만해요. 이런데 괜히 힘쓰지 말고 그냥 밖으로 내보내요. 좀 서 있으면 뭘 잘못했는지 알겠지.”



“쾅!”


수은이 밖에 나가자마자 대문이 듣기 싫은 소음을 내며 닫혔다.

아까보다는 많이 수그러들었지만 아직 비가 내리고 있었다.

수은은 얇은 스웨터만 입은 채 내리는 비를 가감 없이 맞았다.

이런 적이 몇 번 있긴 했지만 오늘은 그동안 쌓인 피로 때문인지 유달리 힘들었다.

딱히 비를 피할 곳도 없어, 수은은 잎이 몇 장 붙어있지도 않은 나무 아래로 피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계속 서있기가 너무 힘들어 수은은 나무 밑에 쪼그려 앉았다.

이미 밤이 깊어, 주위는 이젠 조금씩 내리는 싸리눈 소리만 들려왔다.

덩어리진 소금처럼 생닌 눈이 젖은 땅에 닿았다.

얼마간은 바로 녹아버리는 것 같더니 서서히 눈이 쌓이기 시작했다.

수은은 스스로도 몸이 점점 굳어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추위에 익숙해진 건지, 아예 감각이 없어진 건지 오히려 따뜻해졌다는 느낌까지 들기 시작했다.

싸리눈이 함박눈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수은은 무의식적으로 손을 내밀었다.

곱아버린 손 위로 눈이 내려앉았다.

눈이 녹았다.

이젠 어찌되든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친 것이었다.

이런 삶을 살 바에는 죽는 게 나을 거라는 기분이 들었다.

지금 기분이라면 고통없이 죽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툭.. 툭..”


포기하자 마음이 가벼워지는 기분이 들면서 눈물이 흘렀다.


“털썩”


부드러운 눈이 수은의 몸을 감쌌다.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감겨지는 눈을 뜰 여력조차 없었다.

좁아지는 시야로 본 마지막 광경은 닫혀있는 철문 사이로 보이는 동생의 눈이었다.

자신과는 다르게 고통으로 인한 뜨거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수민이..’

“후...”

‘내가 지켜야 돼.’


마지막 숨과 함께 마치 둘로 쪼개지듯 수은의 시신에서 수은이 떨어져 나왔다.

반투명했던 몸은 서서히 짙어지더니 눈 위에 수은의 몸과 같은 형태로 자국이 눌렸다.


‘나 아니면..’


수은은 땅을 짚고 일어섰다.

그리고 자신의 시신은 거들떠도 보지 않고 수민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툭.. 툭.... 툭.......”


눈물이 서서히 마르면서 수은의 눈 속에 서서히 분노가 자리 잡았다.


“아무도 지킬 사람이 없어.”



“언니, 그만 둬!”


동생을 지키는 언니가 되고 싶었다.


“선호는 아무 잘못도 없잖아! 아직 어린 애라고!”


그런데 동생이 공포에 사로잡혀 덜덜 떨면서 울고 있었다.


“평소의 언니로 돌아와 줘..”


그제서야 두 손에 가득 묻은 피가 눈에 들어왔다.

자신은 동생에게 괴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미안해.”


그래서 도망쳤다.

피 웅덩이 속에 동생을 버려두고 떠나버렸다.

집을 나서고, 꽤 멀리 떨어졌는데도 죄책감 때문인지 부끄러움 때문인지 마음이 옥죄어들었다.

살아있을 때보다 더 무거워진 심장이 수은을 가두었다.

평생이 지나도 지울 수 없는 빨간 족쇄가 두 손을 묶었다.


“따듯해.”


처음엔 온기를 띄는 손 때문에 자신이 다시 인간이 됐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


그런데 아니었다.


“..뜨거워. 왜..”


점점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뜨거워지는 손에 수은은 손을 뜯어내고 싶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ㄴ..]


너무 큰 고통에 환청까지 들려왔다.


“으윽..”

[ㅇ어..]


그 목소리가 점점 커지나 싶더니 누가 어깨를 꽉 쥐는 느낌이 들었다.


[일어나!]

“헉!”


청소장은 숨을 크게 들이쉬며 눈을 크게 떴다.

웬 준수하게 생긴 아저씨가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정신 들어? 대체 무슨 일이야? 지금은 붙였지만 아까 너 팔 떨어져 있었다고!”

“..? 아, 저..”


청소장은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간 과거의 기억에 혼란스러워, 흡혈귀와 있었던 일을 말하려다가 다른 질문을 던졌다.


“누구세요?”

“어? 무슨 소리야.”

“죄송하지만 누군지.. 아아!”


남자의 얼굴을 직시하니 자신이 잘 알고 있는 누군가가 금세 떠올랐다.

청소장은 남자가 누군지 알아채고 소리가 커졌다.


“아저씨!”

“하기야 몰라볼만 하려나.”


청소장은 현석이 어째서 멀쩡한 모습인지 궁금한 것도 잠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수민이 떠오른 것이었다.


“수민이!”

“갑자기 왜 그래? 진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대걸레는 왜 저 모양이고..”

“설명할 시간 없어요. 아저씨가 없는 동안 난리가 나서..!”


흡혈귀가 어떤 짓을 했는지 얘기를 다 했다가는 수민이 어떻게 될지 뻔했다.

아무리 선호가 제령하는 법을 배워왔다고 해도, 자신이 이 모양이었다.

고작 이틀 동안 배운 기술로 선호가 상대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흡혈귀는 1층에 가만히 서서 자신을 노려보는 선호를 보고 자신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아무리 제령사라지만 혼자 날 상대하긴 힘들 텐데 그 스님이라도 불러오지 그래?”

“저쪽에서 당신이 그 악령이랑 싸우는 동안 이미 불렀지. 그나저나 대단하네. 몰라보게 변했어. 흡혈귀는 다 그런 능력이 있는 거지?”

“젊어진 걸 말하는 거면, 다 그런 능력이 있긴 하지.”

“괴물이네.”

“부정할 생각은 없지만.. 인간이랑 다른 능력을 갖고 있다고 해서 괴물이라고 하는 거면 기분 상하는데.”


선호는 불안한 기분을 감추는 것과 시간을 벌기 위해 계속 흡혈귀와 대화를 시도했다.


“괴물이라고 말한 이유는 젊어지기 위해서 당신이 택한 방법이 눈에 보여서 그런 거야. 피를 마셔서 그런 걸 테니까.”

“이건 흡혈귀의 삶의 방식이라고. 스스로가 납득할 수 없는 방식이 있다고 해서 그렇게 매도하면 안 되지. 너도 평생 배고픈 채 살고 싶진 않을 거 아냐?”

“...인간 말고 가축의 피를 마실 수도 있잖아.”

“풋.”


별안간 웃음을 터뜨린 흡혈귀를 보고 선호가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내가 보기엔 인간이나 가축이나 같아. 너 본인이 얼마나 위선적인지 알아? 같은 말을 돼지나 소 앞에서 해보라고. 과연 돼지가 말을 할 수 있었다면 그렇게 얘기할 수 있을까? 살면서 이미 몇 마리의 목숨을 죽여 놓고 내가 피를 마시는 건 잘못됐다고? 설마 그동안 ‘자신은 단 하나의 목숨도 없애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


흡혈귀가 송곳니가 드러날 정도로 씩, 웃었다.


“내가 이래서 인간을 싫어한다니까.”



작가의말

선호 시점의 회상 장면은 45화에 있습니다.

후에 기회가 된다면 청소장이 귀신의 집에 취직하게 된 경우도 적어보고 싶네요.


이번 화의 흡혈귀가 한 말은 그저 흡혈귀의 입장일 뿐,

살인은 절대 용서받을 수 없는 범죄입니다.

때문에 이번 화를 왜곡해서 받아들이는 분이 없기를 바랍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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