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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보(漫報) 님의 문피아 서재입니다.

HAZARD - 5부 외전 - 크라뮤의 매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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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보(漫報)
작품등록일 :
2013.02.10 16:07
최근연재일 :
2013.02.10 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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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2.10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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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쪽

[HZ5外] 4장 매듭의 연결 (5)

DUMMY

BGM : Laura Fygi 의 It's Crazy



마왕의 후계자인 꼬마와 경호를 위해 채택된 똥강아지 한 마리 그리고 인간 둘이 산을 넘고 있다. 크라뮤와 시바, 몰리, 그리고 엘리는 들판과 산을 넘어 [완전한 고요의 호수]를 지나 미스번으로 향하고 있다.

“것 참. 이럴 줄 알았으면 헤븐한테 돈을 더 받아 둘 것을 그랬어.”

너덜해진 옷을 흔들어 보이면서 몰리가 한숨을 쉰다. 몰리가 생각하는 기준으로 볼 때 ‘되먹지도 않은 마법’으로 자신을 누드댄서로 만들었던 크라뮤에 대한 원망 때문에 그러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번 일로 귀찮게 굴던 일당들을 깨끗하게 쓸어버렸으니 좋은 결과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소동 때문에 많은 것을 잃어버린 여행가들에게 있어서 지금 상황은 그리 좋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덕분에 몰리는 지금 거의 무일푼 상거지 스타일로 미스번을 향하고 있는 이 일행의 미래를 생각해 보게 된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굉장히……암울한 전망이 나오기 때문에 그녀는 한숨을 간간히 내쉴 수밖에 없는 것이다. 반면 엘리에게 있어서 어제 그 사건는 제법 즐거운 일이었는지 가끔 혼자서 그 일을 떠올리고 미소를 지어 보이기도 한다. 몰리가 그 난장판에서 거의 모든 재산을 분실하게 되었기 때문에 한숨을 몰아 쉬는 의미를 충분히 이해하고 있는 크라뮤가 말한다.

“그렇게 부자 되고 싶어?”

“부자? 그런 것은 관심 없어”

“그런데 무엇 때문에 그렇게 돈! 돈! 하는 거야?”

“없는 것보다는 좋지 않아?”

크라뮤는 그녀가 말하는 말 뜻을 모른다. 성안에서 정식후계자 교육을 받은 것이 아니라, 거의 무치할 정도로 제멋대로 시간을 소비하면서 성장한 크라뮤는 세상물정과는 거의 담을 쌓은 편이라고 할 수 있다. 시바에게 잘난 체 하는 것도 대부분 책으로만 얻은 지식일 뿐 실제적인 생활에 대해서는 시바와 동급이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돈이라는 경제관념은 인간계에서 중요한 것이지만 마족에게 있어서 가치관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그것을 이해한다는 것이 어려운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몰리는 처음 만날 때부터 무일푼 상태로 여행을 다닌 애한테 무슨 ‘물욕’을 바라겠는가? 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지금 확실히 교육을 해두지 않으면 이 아이는 평생 괴상한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가게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크라뮤, 넌 내가 이렇게 열. 심. 히~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항상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가 언제나 이렇게 펄펄뛰어 나돌 수 있는 청춘일 때만 있는 것은 아니야. 우리도 언젠가는 늙어서 살아가는데 있어서 어려움이 생길 때가 있다고”

마족은 어느 정도 성장기가 지나면 그 모습을 유지하고 이후 죽을 때가지 그대로 살다가 수명을 다하면 그냥 소멸하는 형태를 가진다. 마족들의 신력에 따라서 어느 정도 차이가 있지만 인간들의 수명에 비교해보아도 약 수배에서 수 십 배에 달하는 수명을 가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상황이니 크라뮤의 귀에 몰리의 충고가 들어올 리 만무하지만 그것을 몰리는 알 리 없다.

“… 그래서 우리가 살아가는 데 있어서 한창일 때 열심히 벌어두는 의미는, 바로 내일을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몰리는 강조한다. 내일을 강조한다. 그녀에게는 언제 내일이 없어질지도 모른다. 자신이 전문 도둑이기 때문에 자학하는 것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자기가 처한 상황에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것이 자신의 의지이고 목표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그녀는 당당하게 설교를 하면서 자신의 의지를 강하게 관철시키는 작업을 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크라뮤는 시큰둥한 표정으로 반문을 한다.

“우리 할아버지가 말하길 부자가 된다고 해서 편한 것 하나도 없데.”

“너희 할아버지는 부자 해봤데?”

“엥?”

몰리의 질문에 생각을 해보는 크라뮤. 확실히 지금 시대에 있어서 부자라고 하면 세계를 다스리고 있는 제국의 수상이면서 실 통치권자인 크라뮤의 할아버지, 애즈머드야 말로 이 세상에 있어서 말로 할 수 없을 만큼, 최고의 경지에 있는 부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크라뮤가 그렇다고 말할 수도 없고 실제로 얼마나 부자인지 크라뮤 자신도 그것을 전혀 모른다. 몰리는 이 꼬마가 처음부터 막가는 인생을 걷게된 녀석은 아니라고 예상을 하고 있다.

아무리 막 되먹은 녀석이라고 해도 제법 특이한(?) 마법을 쓸 줄 알고 마귀족에게 태어난 혼혈이라면 제국사회에서 지위를 보장받은 출신으로 인정되기 때문이다. 물론 크라뮤 본인은 부인하고 있지만 말이다. 몰리는 그런 크라뮤 집안이 결코 가난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하물며 그 가치를 알 수 없는 전설의 개 삽살개(?) 시바를 부라고 데리고 다닐 정도니 나름대로 뼈대가 있는 집안에서 삐쳐나온 꼬마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기도 한다.

“돈을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이 그런 말을 하는 것은 반칙이다. 가지고 있는 게 있으니까 그런 소리를 하지.”

이렇게 말하면서도 몰리는 크라뮤가 뭔가 말꼬리를 물고 늘어질 것 같아서 발걸음을 빨리한다. 하지만 크라뮤 발걸음도 빠르다. 몰리가 예상한 그대로 크라뮤는 그녀의 뒤를 따라 쪼르르 따라온다.

“그러면 몰리는 뭐 때문에 돈 버는 거야?”

“행복 해지려고 그런다.”

“그게 돈만 있으면 되는 거야?”

몰리는 크라뮤의 말에는 대답을 하지 않고 오솔길을 돌아선다. 물론 그녀의 대답은 ‘당연한 것이다’이지만 그런 말을 하면 이 꼬마 크라뮤는 이상한 소리를 늘어놓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일부러 대꾸를 안 하는 것이다. 이 꼬마가 자꾸만 ‘왜?’를 붙이면서 질문하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몰리의 눈에 지금까지와 달리 어여쁘게 정돈된 길과 성벽이 들어온다. 오빌 산맥에서 나는 질 좋은 석재들은 영롱한 색을 가지면서 단단하기로 유명하다. 지금 몰리 눈에 들어온 성벽은 그런 좋은 돌로 두 겹이나 쌓아서 만든 것이다.


미스번의 성벽이었다. 크라뮤 일행은 미스번에 도착했다. 북(北)쪽 숲, 남(南)향 산, 동(東)에 위치한 사막, 서(西) 계곡에 따른 지형을 생각하면 이곳은 제국중앙대로로 연결되는 오아시스 같은 곳이다. 덕분에 이 미스번은 마왕 카이라가 이끄는 제국이 생기기 전부터 많은 번영을 약속 받은 곳으로 엉성하기 그지없는 크라뮤의 지도에도 표기가 되어있을 만큼 규모가 큰 곳이다. 한마디로 여타 마을과 차원이 다른 ‘대도시’ 인 것이다. 성벽 너머로 높은 사원이 눈에 들어온다.

성채와 같이 넓은 덩치를 자랑하는 사원꼭대기가 맑은 하늘로 솟아 있다. 성문은 넓고, 크고,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매력을 보여준다. 입구에서 연결된 길은 광장으로 흘렀다. 밭의 채소들이 이글거리는 햇살 아래 그 매력을 보여주고 있다. 건조한 바람이, 늦가을의 찬란한 풍성함을 발하고 있는데도 맛난 향기를 포함하고 불어왔다. 그런 부드러운 바람들도 그 존재만으로 식혀버리는 곳이 있다. 인간들에게 전율스러운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광장 중앙 건물이 있다. 그것이 ‘마왕군의 사원’이다. 인간문화가 이루어낸 것과 달리 제국양식에 따라 만들어진 것으로, 달과 안개의 민족인 북마족 시미리언의 건축양식을 기반으로 지어진 건물이다. 이 스타일은 제국수도인 라임시티에 있는 마왕성과 같은 디자인이기 때문에 크라뮤와 시바에게는 살짝 추억과도 같은 것이 되살아나는 장소였지만 몰리와 엘리에게는 공포의 대상이요, 마왕의 법을 수호하는 곳이다.

“뭐하니? 빨리 지나가자고.”

알게 모르게 위축된 것을 뚜렷이 보여주는 몰리가 마왕군의 사원을 구경하느라 느려진 크라뮤의 발걸음을 재촉한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크라뮤가 생각한다. 확실히 몰리는 죄를 많이 지었나보다…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사실 마왕이 제정한 제국법은 간단하고 단순하다. 그리고 아무런 이유도 없이 국민을 괴롭히지 않는다. …라고 크라뮤는 생각을 한다. 어디까지나 제국이 지향하는 이상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어리석은 인간, 여타 종족들이 그들 자신만이 가지고 있는 이상을 내세워, 자꾸 맞서려한다고 생각을 크라뮤는 하고 있다. 크라뮤가 알고 있는 애즈머드와 리아는 높은 이상과 꿈을 실현하고자하는 위엄이 있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그런 크라뮤의 생각과 달리 몰리는 빨리 광장을 지나 옷가게로 가고 싶었다. 크라뮤가 펼친 훌륭한 마법으로 위기를 넘길 수 있었지만 옷이나 도구들이 다 날아갔기 때문에 일행은 상당히 처참한 모양이었기 때문에 창피함을 무릎 쓰고 대도시 길을 걷고 있는 중이었다. 일행은 아침에 날아가 버린 자신들의 짐과 도구를 챙기는데 오전 내내 고생을 했다. 만일 지금 몰리 일행을 코튼테일에 있는 헤븐이 봤다면 [이…이것은 전설에 나오는 부랑자모임]이라고 했을 것이다.

강렬한 마법폭풍 덕에 몰리와 엘리가 입고 있는 옷은 완전히 너덜너덜하다. 몰리의 외투는 반 이상 찢어져 우물 속에 들어가 있었고 그녀의 하드레더는 오크들이 가지고 놀았는지 괴상한 냄새와 얼룩으로 새롭게 단장을 했다. 두 자매에게 남아 있던 유일한 가리개는 큰 타울을 대충 구겨 입은 것으로 그 위에 구멍이 숭숭 나있는, 잿물에 빨고 씻어도 술 냄새가 미묘한 풍기는 옷을 입고 있다. 이런 꼴로 미스번에 도착했을 때 주변에서 자신들을 쳐다보는 그 시선들은 몰리의 가슴속에서 영원히 잊히지 않을 만큼 인상적인 것이었다. 그런 몰리는 빨리 옷가게에 가서 번번한 것으로 갈아입고 이곳을 떠나야 했다. 이렇게 큰 도시라면 당연히 자신의 몸값에 눈이 뒤집힌 인간들이 나타날게 확실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그녀에게 그 몸값이 걸린 원인은 이미 없어진 상태이다.

[용의 손톱]

그것을 잃어버린 것이다. 아마도 대머리가 아니면 어제 그 악마들이 가지고 갔을 거라는 추측을 할 수 있었지만 대머리라면 몰라도 악마들이 그것을 가져갔다면 거의 찾는 것을 포기해야 한다. 용의 손톱은 아직도 몰리가 오트라인 수도원 창고에서 무단으로 가지고 나온 것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에 그녀에게 걸려 있는 현상금은 당연히 그대로이다. 이런 상태로 잡히기라도 하면 정말 진퇴양난이기 때문이다. 현상금 추적자들은 그녀를 노릴 것이 뻔하고 그것을 방어하는 수단으로 사용할 수 있는 비밀병기, 용의 손톱은 없다. 지역 변두리 악당이 대머리 같은 녀석이야 어찌해서 처리할 수 있다고 해도 이런 대도시에서 활약할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현상금 사냥꾼이라면 그녀는 쉽게 잡힐 것이다. 게다가 잡힌 이후에 현상금의 원인이 된 물건을 가지고 있지 않을 것이 알려지면 물건을 팔아 넘긴 인간으로 평가받을 것이다. 제국법을 떠나 인간사회의 관습에 따르면 거의 2배 이상의 형량이 선고될 것이 뻔한 상황이다. 그나마 그녀가 특이한 의상으로 거리를 활보하고 있어서 엘리와 몰리, 시바와 크라뮤를 그 현상범들이라고 상상할 수 없게 한 것은 나름대로 행운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몰리에게 있어서 대도시는 그런 위험부담도가 있는 장소였다. 몰리는 크라뮤와 시바를 광장의 옆에 있는 공원에서 시바와 놀고 있으라고 한 뒤, 엘리와 옷가게가 있는 상점가로 갔다. 물론 크라뮤 생각에 왜 저렇게 몰리가 ‘옷 정도’를 가지고 신경질적인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전에 할아버지가 한말이 생각났다.

[옷과 보석에 집착이라…이것은 부끄럼 타는 계집의 교태에 지나지 않지. 여자들이 보여주는 어떠한 배신이라도 이에 비하면 하찮을 뿐이야. 남자들에게는 정말로 세상을 삼켜 버릴 것만 같은 허무감을 주는 행위이지만 여자들은 결국 그것에 집착을 하게 되지.]

크라뮤 주위에 여자라고는 리아누나 밖에 없었다. 어딘가 어두운 리아는 화려하게 치장을 하지도 않았고 머리는 대충 치렁치렁하게 늘어트리고 다녔다. 그래도 누구나 예쁘다고 했다고 한다. 크라뮤가 유일하게 알고 있는 인간이었고, 여성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언제나 소박하게 크라뮤의 앞에 나타났고 조용히 없어지고는 했다. 그래서 할아버지가 말한 여자들이 옷과 보석에 집착한다는 말을 듣고 이해가 되지 않았었다. 크라뮤는 쏟아지는 가을 햇살과 바람을 맞으면서 조용히 시바에게 말을 건넨다.

“정말로 많은 것을 알게 되는 것 같아.”

“뭘 또 알아? 나 빼고 혼자 알지 마라.”

시바는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엎드려 있다가 크라뮤가 하는 말을 듣고 고개를 돌리며 묻는다.

“똑같은 사람이고 여자인데 몰리와 엘리는 리아누나하고는 틀리니까.”

“이름이 틀리잖아. 주인은 그것만으로 분간이 잘 안 갔나보지?”

“……시바야.”

“응?”

“모험기나 써라.”

“앗! 까먹었다. 그러고 보니까 어제부터 아무 것도 안 썼다.”

시바는 공원의 나무의자에 앉아 있는 크라뮤의 품으로 들어가 꼼지락 거린다. 시바가 자신의 무용담을 환상적으로 창작하는 동안 몰리와 엘리가 깨끗한 차림으로 나타났다. 아마도 있는 돈을 전부 털었는지 한눈에 보아도 질이 좋아 보이는 천과 가죽으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그것 밖에 안 털었어?”

오랜만에 던진 크라뮤의 농담은 몰리의 주먹으로 되돌아왔다.

-딱-

“또 그런 쓸데없는 말하면 다음엔 발로 찬다.”

가뜩이나 주변에 있을 지 모르는 현상금 헌터들의 존재에 두근거리는 몰리에게 있어서 시달갑지 않은 크라뮤의 농담은 치명적일 수도 있기 때문에 좀 힘이 들어간 한 방이었다. 몰리는 아파하고 있는 크라뮤 옆에 털썩 주저앉는다. 엘리는 가게에서 사온 것으로 보이는 작고 가는 검정색 털실로 짠 목걸이를 시바의 목에 매준다. 크라뮤는 그런 모습을 보면서 자기에게는 뭔가 없나 하는 표정으로 몰리를 바라본다.

“엘리는 시바가 좋은가봐.”

“너도 선물 받고 싶냐?”

“나도 받을 거 있어?”

“자.”

몰리는 작은 주머니를 크라뮤에게 건넨다. 제법 예쁘고 튼튼하게 보이는 주머니다.

“뭐야?”

“돈이다. 이제 우리랑 헤어져야 하니까 앞으로 시바를 굶기고 다니지 말라는 뜻으로 주는 거다.”

조금은 섭섭한 기운도 있는 쓸쓸함이 있는 말소리였지만 크라뮤는 전혀 그런 기색을 눈치 차리지 못하고 그냥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지금 당장 가게?”

“그래. 이런 곳에 오래 머물러 있어 봤자 좋을 게 없는 우리들이니까.”

“대머리 때문에 그래? 그러면 나하고 시바가 있는 게 더 좋지 않아?”

“그런 문제가 아니야. 너희들은 우리랑 같이 다닐 수가 없어. 대머리 정도는 이야기도 아니야.”

“내 마법은 도움이 안 되는 가 보지?”

아침에 시바에게 크라뮤가 시전하는 마법은 대부분 정신없고 멍청한 명중률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들은 몰리는 크라뮤가 조금 더 성장을 하면 자신의 파티에 넣겠다고 한 말을 얌전히 철회시켰다. 아직 한창인 나이에 같은 파티를 이룬 마법사가 벌인 실수로 파티가 전멸 당할 수 있다는 것은, 모험보다는 도박에 가까운 짓이기 때문이다. 크라뮤는 그래서 몰리가 이런 말을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몰리는 가볍게 고개를 저어서 부정하면서 말한다.

“나한테 걸린 현상금 때문이야.”

시바는 엘리에게 안겨서 크라뮤의 옆에 얌전히 있게 된다. 포근하고 아늑한 느낌을 주는 엘리의 다리 위에서 누워있는 시바는 기분좋은 표정을 지으면서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BGM : 김건모의 자유에 관하여….



“현상금? 얼마나?”

크라뮤가 묻자 몰리는 무엇이 즐거운지 모르겠지만 히히히-하는 웃음을 날린다. 물론 그 속에는 괴로움이 배어있는 자조적인 웃음이었지만 크라뮤에게 있어서 사람이 보이는 웃음은 그냥 웃음이다.

“2만 셀.”

“깽?”

왕궁에서 지내왔기 때문에 돈 개념이 없었던 둘이지만 요사이 여행을 하면서 조금씩 이 세상에서 돌아가는 돈의 가치를 조금 알게 됐다. 이만셀면 현상금 중에서도 상당한 금액이다. 도대체 얼마나 극악한 짓을 했기에? 시바와 크라뮤는 자조하고 있는 몰리를 다시 쳐다본다. 짧은 밤갈색 머리카락, 아직 한창으로 보이는 홍조 띈 얼굴, 의외로 글래머한 몸매, 그 몸매를 잘 보여주는 착 달라붙은 하드레더로 구성된 무투복. 가죽옷 색과 잘 어울리는 그을린 건강한 피부색. 보기만 하면 길지도 짧지도 않은 건강하고 예쁜 다리(물론 무지무지한 아픔을 주는 위력이 숨겨져 있지만 맞아보기 전에는 알 수 없는 예쁜 다리라는 뜻이다). 입언저리에 언제나 돌고 있는 장난기 풍부한 미소. 이런 아가씨가 현상금 2만 셀이나 되는 흉악범?

……크라뮤와 시바는 납득이 갔다. 그 정신위생에 유해한 발 버릇을 생각하면 충분히 그러리라고 생각이 되는 크라뮤와 시바는 고개를 동시에 끄덕였다.

“응? 뭐야. 마치 내가 그런 현상금이 걸렸다는 것이 당연하다는 그 표정은 뭐냐고?”

몰리 눈꼬리가 올라간다. 아! 저 살벌한 표정을 아는 사람이라면 현상금을 10,000정도 더 올릴지도 모른다. 크라뮤는 이렇게 생각했지만 입에서 나온 말은 다른 소리였다.

“몰리가 범죄적으로 예쁜 다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에 찬성한다는 표정이지 뭐겠어.”

몰리 눈꼬리가 바로 내려가고 입가에 다시 미소가 맺힌다. 크라뮤는 순식간에 표정이 바뀔 수 있는 몰리 얼굴근육에 감탄을 했다. 마족은 얼굴변화가 느린 편이기 때문에 인간처럼, 그것도 몰리처럼 빠르게 변화하는 것은 거의 신기에 가까운 기술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면서 여자 얼굴가죽이 왜 매끈매끈 한 것인지 이해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시바는 둘이 나누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드디어 피바람이 부는 가 했는데 크라뮤의 한마디로 사태가 반전되는 것을 보면서 감탄 한 듯 한마디 한다.

“굉장하다. 주인아. 언제부터 그런 거짓말에 능숙…… 깽!”

몰리의 황금발길질이 시바 뒤통수를 쳤다. 시바가 비실거리고 있는 동안 크라뮤는 쫄다구의 아픔은 무시한 채 다시 몰리에게 물어본다.

“그럼 전에 본 그 [용의 손톱] 때문에 그러는 거야?”

“그래. 난 처음으로 오트라인의 수도원을 나와 여행을 시작해야 했다고. 하지만 내가 가지고 있던 돈으로 시작하기에는 너무나도 험한 게 세상이라고. 그래서 창고에서 그냥 썩고 있는 그것을 내가 사용하고, 대신 나중에 돈을 많이 벌어서 더 좋은 것을 가지게 되면 돌려줄 생각이었다고.”

“그렇게 얘기했는데 현상금을 걸었어?”

크라뮤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동그란 눈을 크게 뜨고 묻는다.

“얘기는 무슨 얘기, 당연히 그냥 가지고 나왔지. 대신에 편지는 써 놨어. 우선은 날 찾지 말아 달라고.”

“……결국은 도둑이네?”

“[용의 손톱]은 격투가에 있어서 놀라운 보물 중 하나라고. 그런데 그것이 창고에서 썩고만 있다면 얼마나 낭비니? 그러니까 내가 잠시 쓰다가 돌려주겠다는 것인데 그 노랭이들은 대뜸 나한테 상의도 없이 상금을 걸어 버렸더라고.”

“그런 게 왜 필요해?”

“넌 필요 없니? 너야 돈도 없이 돌아다니면서 살 수 있는 특이한 성격을 가졌는지는 모르겠지만 난 그렇지 못하거든.”

“그래서 쫓기고 다니는 것보다는 낫지 않아?”

“나하고 엘리를 돌봐 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고. 우리는 16살에 수도원을 나와야 했다고. 싸움 좀 잘하는 여자애하고 남에게 붙임성 없다는 소리를 듣는 말없는 여자애가 살아가기에는…… 험한 세상이라고.”

“그런데 왜 용의 손톱이라는 이상한 이름이야?”

“진짜로 아크드래곤 손톱으로 만들어진 것이거든.”

“드래곤 중에서 가장 큰 덩치를 자랑한다는? 그래도 몰리 그건 아주 크던데…”

몰리 팔에 차였던 것을 생각해 보니 근 2펜더는 되어 보였다. 드래곤 종족 중에서도 큰 덩치를 자랑한다는 아크드래곤도 대부분 25펜더 정도가 평균적이다. 그런 것을 기준해보면 몰리가 홈쳐와서 사용하는 그 녀석은 굉장히 큰 편이다.

“물론 역대 아크드래곤 중 3번째로 컸다는 녀석의 손톱이라고 하는데 나도 정확히는 몰라.”

“하긴, 드래곤, 용족 물건은 굉장히 귀한 게 맞아. 시바도 드래곤의 ……”

“주인아, 그만해라.”

시바가 날이 갈수록 흉흉해지는 이빨을 자랑스럽게 보이면서 경고를 한다.

“어쨌든, 사람이 살아가는 세상은 그렇게 만만한 것이 아니거든. 먹고 싸움질이나 하는 것으로 만족하는 마족들과는 다른 것인 문화적인 인간의 세상이지.”

“그 문화적인 인간 세상에서 왜 고아 여자가 살기 힘든 건데?”

“문화적이니까 그렇지. 문화적이고 경제적이고 인간적이고 하지만……결국 먹고 사는 것만으로 만족하면서 살 수 있는 것이 아닌 종족이기 때문에 더욱 그런 것이라고”

“비록 8종족 중에서 인간의 수명이 제일 짧다고 해도 150년 정도 살잖아. 그리고 다른 종족들에게 가장 영향을 많이 주고 많이 받는 종족이 인간이고 말이야.”

“그건 그래. 인간들의 문화는 드워프들의 장인문화에서 세공기술과 건출기술에 대한 영감을 얻었고, 엘프종족이 만든 기록방법에 따른 문화의 보전, 말타족이 보여준 다양한 노동력과 육체활용법, 호빗족이 보여준 산간 개발 방법, 오크종족이 보여준 자원개발 능력, 정령족이 보여준 자연마법계열의 발달을 하나로 모아서 독자적인 문화를 창출해 냈으니까 말이야.”

“그렇게 다양한 문화의 집합체라고 불리는 인간들의 사회에서 왜 사는 것이 힘든 사람이 나오는 건데? 모든 종족은 모두를 돌보자는 평의외 종족률이 있잖아.”

“워낙 다양한 인간들이기 때문이라고. 결국 제국이 모든 종족들의 평등권을 보장하고 있다고 하지만 결국 인간들의 사회 자체가 변하는 것은 없거든.”

“그것은 그만큼 인간들이 제국의 법이나 규율에 따르지 않기 때문에 발생하는 거 아니야?”

크라뮤가 알기론 그렇다. 제국의 규율은 생명을 가진 존재를 아끼기 때문에 무익한 살생을 금하고 있다. 또한 비록 마족이 지배하는 세상이라고 해도 모든 종족간 회의를 거쳐 과거 8종족회가 구성해온 전통을 잘 유지해 나가게 하고 있다. 그것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인간들의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크라뮤에게 이해시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몰리였다. 곧 헤어지고 나면 이 세상물정 모르는 마귀족 혼혈아는 어디서 어떤 꼴로 성장할지 알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시바는 좀 어려운 말이 나왔다고 생각했는지 따스한 햇살과 엘리의 부드러운 손길 안에서 눈을 감고 있다. 사실 인간사가 시바의 인생에 큰 관심거리는 아니라고 할 수 있겠다. 지금은 어디까지나 제국의 영광으로 기억될 시바의 여행기중 한 부분일 뿐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이 세상이 마왕의 제국으로 바뀌면서 어둠과 혼란이 왔고 조금씩 시간이 지나자 사람들은 점점 자기들의 주장을 세우게 되고 대마왕 카이라가 죽자 [겨울은 갔다, 봄이 왔다]라고 떠들면서 기뻐했지만 결국은 변한 게 없어. 우리 같은 보통사람들에게 있어서는.”

가재는 게편이라고 했다. 크라뮤는 제국을 지배하는 계급에 속한 마족이고 하물며 최고 통치자였던 대마왕 카이라는 자신의 아버지이다. 자신의 아버지를 위대하게 생각하고 있는 크라뮤는 그가 죽자 사람들이 기뻐했다는 소리에 기분이 나빠진다. 그러나 몰리는 그런 크라뮤의 안색 변화를 미처 살피지는 못한다. 어느새 자기 인생이야기 속에 빠져 몰리의 시선은 지나가는 뭉게구름을 바라보고 있다.

“너희는 이 제국의 법을 알고 있니?”

“밥?”

엘리 무릎에서 졸고 있단 시바가 반쯤 감은 눈으로 고개를 들면서 말했다.

“조용히 자라. 똥개야.”

-꽈지직-

잠결에도 시바는 잊지 않고 크라뮤 왼발을 물고 씹으면서 웅얼거렸다.

“그아아울아아웅 아그으응 응아가아아 끙끙 응가(밥도 제때에 주지도 못하는 바보주인은 그런 말 할 자격도 없다 응가…)”

어떤 말을 하는지 알아들은 크라뮤는 왼발을 털털 흔들어서 시바를 구석으로 던지고 다시 몰리를 쳐다보았다.


“법? 간단하잖아. 대마왕의 법문을 모르는 사람도 있어?”

“그래 너무나도 간단한 그 법이 문제라고..”

“응? 그러고 보니 사람들의 세계는 훨씬 많은 법을 가지고 있다고 했지?”

“그래 그것도 말도 안 되는 법까지 해서 300개가 넘었지.”

“321개.”

언제나 조용하던 엘리가 입을 열어 정확한 수를 말했다. 크라뮤는 드디어 5번째로 엘리 목소리를 들었지만 역시 감정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 그렇게 많은 법들은 스스로 인간들의 질서를 만들어 나갔고 그것이 인간을 더 바보로 만들고 속박하게 되었지. 뭐든지 안 된다가 대부분 이었으니까.”

“그런데도 간단하고 명료한 법으로 이 세계를 유지해가는 제국이 싫다는 거야?”

크라뮤가 아는 인간들은 멍청하고 무지하며 난폭한 종족이었다. 코튼테일에 있던 대머리들이 그러했고 성기사라고 자처하던 녀석들도 호빗족의 보물이나 빼앗는 짓을 했다. 하지만 벨기어스 마을에 있던 할버트의 봄바람은 그렇지 않았고 이름 모르는 빵집 아주머니도 자신에게는 친절했다. 눈앞에 있는 몰리와 엘리도 돈에는 욕심을 보이지만 자기에게 잘 해준 것은 사실이다.

과연 그런 사람들이 정말로 자신이 책으로 보고서 알고 있는 무지하고 난폭한 종족인가? 확실히 그들은 제국을 두려워하고 싫어하는 것도 보인다. 그것은 카이라가 제국을 세워서 억압을 하기 때문인가? 크라뮤는 점점 알 수 없는 문제가 머리 속에서 떠오른다. 몰리는 크라뮤의 말을 듣고 여전히 하늘을 보면서 말했다.

“…하지만 마왕의 법은 간단했고 인간들의 법을 건드리거나 하지 않았어. 최고가 1,000일의 강제노동이야. 그것도 대부분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집을 짓고 여관을 만들고 길을 트는…… 도움을 주는 일이 대부분이야. 오히려 인간들의 세계보다 안정되고 범죄도 줄었지. 놀라운 일이야. 하지만 인간들은 스스로 구속되기를 원하는지 이 법을 무시하기 시작했지, 문제는 이 법에는 너무 자유도가 많다는 것이지. 예를 하나 들자면 신고를 하지 않으면 아무도 이 법을 적용하지 못한다는 거지. 즉 신고할 자가 완전히 죽거나 소멸하면 마의 법전에 고발이 되지 않고 법은 실효를 거두지 못해. 오히려 이 법에 묶여 있는 것은 마족들뿐이고 인간들은 그냥 자기 편한 데로 사는 거지. 게다가 수도 라임시티 같은 대도시를 제외한 대부분의 지방도시를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200명의 행정관 대부분이 인간들이라고. 그들은 결코 마귀족은 건들지 않아. 같은 인간들을 괴롭히면서 살뿐이지. 인간들에게는 힘이 있는 척하고 악마들에게는 꼬리를 흔들며 아양을 떨고 사는 거지.”

몰리는 여기까지 말하고 훗-하고 조금 깊은 한숨을 쉬었다.

“결국 인간들의 사회에서 남아있던 악습이나 질서는 인간들 사이에서 그대로 유지되어 버리고 그 위의 상법(上法)으로 마의 법전이 군림하게 된 거지. 그래가지고는 변화를 가지기 힘들다고.”

어차피 크라뮤와 같은 마족들은 인간들의 권력이나 관습같은 것에 익숙하지 못하다. 크라뮤도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한다. 의원으로 선발되어 지방 행정을 맡고 있다고 하는 마귀족들도 말로만 의원일 뿐 거의 모든 행정을 인간들에게 맡기고 놀러 다니기에 바쁘다.

물론 마족에게 거슬리는 짓을 하면 죽음이지만 건들지만 않으면 오히려 편한 존재가 그들인 것이다.

마왕의 법을 악용하는 존재들은 인간이고 그 인간들이 배척하는 존재가 같은 인간들이기 때문에 약자의 세상은 변함이 없다고 생각하는 크라뮤이지만 인간들은 그 존재의 부담스러움을 그냥 마왕의 제국으로 지목해버리고 그 탓을 한다고 애즈머드에게 들은 것을 생각해냈다. 그러나 그것을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는 크라뮤였다.

“그런 세상에서 살아가기에는 우린 너무나도 미약하고 작은 존재들이거든.”

몰리는 자리에서 일어선다.

“그러니까 너를 데리고 다니기에는 너무나도 위험이 커. 난 우선 영웅군에 지원을 할 거야. 영웅군 사람들은 무엇이 다른지 모르겠지만 지금 나에게 있어서는 유일한 희망이고 운명이라는 수레바퀴에서 살아가는 내가 정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의 길이니까.”

“그…말 [크로세아 신원기(神元記)]에 나오는 말이지?”

“그래. 결국 그들도 지금과 별다른 바 없는 세상을 만든다고 하더라도 나는 그들과 같이 있을 것이고 난 나의 의지대로 제국의 마왕군과 싸우겠지. 지금보다 조금 더 나은 우리들의 미래가 만들어지기를 바라면서 말이야.”

이때 크라뮤는 몰리들과 헤어져야 하는 것을 직감했다. 역시 신원기에는 이런 말도 있었다.

[운명은 모든 지능이 있는 생명에게 선택의 길을 준비한다. 그 선택이 행복이건 파멸이건 결국 선택한자의 어깨에 그 무게를 실어주고 그 무게를 훌훌 털어 버릴 수 있는 용기와 지혜를 주기도 한다.]

크라뮤는 몰리가 그런 용기와 지혜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자신의 갈 길을 선택한 자였다.



BGM : ICE의 CAN'T STOP THE MUSIC



몰리와 크라뮤는 광장 한가운데 있는 시민게시판을 보고 있다. 이미 몰리와 엘리는 시바와 작별인사를 마쳤다. 이 광장을 중심으로 크게 길이 갈라져 있는데 동쪽 길이 중부로 향하는 것으로 중부대륙으로 연결되는 관문에 위치한 대도시 로기암이 있는 곳으로 향하고 있다. 남쪽으로 뻗은 길은 오빌산맥을 지나 남부지방뿐만이 아니라 대륙최고의 광산도시인 롱바우스가 나온다. 몰리는 영웅지원대가 있는 로기암으로 가기로 했고 크라뮤와 시바는 신전에 관한 정보를 얻기 위해서 롱바우스로 가기로 결정했다. 몰리는 떠나기 전에 참고하기 위해서 요사이에 유명해진 현상범들의 공문을 보고 있었다. 어둠의 세계나 동부에서 몰리와 엘리 에푼 자매 이름은 알려져 있었지만 이곳에서는 아직 그녀들의 현상공문이 걸릴만한 굉장한 건수는 없었다.

“역시 큰 도시답게 현상범들도 스케일이 크게 나있군. 보라고. 가인이라는 작자, 십오만이나 걸려 있어. 이쪽에 있는 헬리엔트라는 계집애는 십이만. 나 같은 것은 걸려 있을 틈도 없겠다.”

크라뮤가 고개를 들어본다.

여러 가지 글과 그 밑에 얼굴 그림이 그려져 있다.

[현상범.

이름 : 가인 (성은 불명)

종족 : 인간

용모 : 키 3.84팬더. 회색머리의 남자. 검 소지.

나이 : 30대 초반 (으로 보임)

직업 : 현자

죄상 : 사기, 세금 포탈, 귀족 모독, 결혼 빙자 사기.

금액 : 150,000펜스 (시체면 100,000, 살아있으면 150,000)]


[현상범.

이름 : 헬리엔트 (정령족이라 성은 없음)

종족 : 정령 (이라고 함)

용모 : 키 3.01팬더. 붉은 머리의 여자. 겉으로는 10대로 보임.

나이 : 52세. (정령기준으로는 5살 정도로 취급)

직업 : 정령사. 불의 정령을 주로 사용함.

죄상 : 가출, 방화, 민중 선동.

금액 : 120,000펜스 (살아만 있으면 지급됨)]


이것을 본 몰리는 혀를 차며 말한다.

“봐라 크라뮤. 이렇게 험한 세상이라고. 세상에 현자가 결혼빙자 사기?! 말세라고, 말세.”

시바는 자기가 모르는 단어가 나오자 크라뮤에게 빠리 묻는다.

“현자가 뭐야?”

“책장사.”

한동안 크라뮤는 시바에게 세상에서 가장 쓸모가 없는 직업 중 하나인 책장사에 대해서 설명을 했고 시바는 열심히 듣고 있었다. 몰리는 그런 둘을 보고 웃으면서 엘리와 함께 외투를 걸친다.

“자. 크라뮤 잘 살아라. 살아 있으면 또 보겠지.”

헤어지는 행동에 동반되는 아쉬움은 없어 보인다. 어차피 크라뮤와 시바는 그녀들과 가는 길이 틀리다. 그녀들이 영웅지원대에 지원하고 영웅군에 들어간다면 틀림없이 그녀들은 나중에 크라뮤를 잡아 죽이려는 편에 서게 된다. 어쩌면 다음에 보게 되었을 때 서로를 죽이려고 하는 입장에 설지도 모르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당장 크라뮤와 시바는 별다른 감정을 보이지 않는다.

좀 떠들썩하던 분위기가 가라앉을 뿐이다.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감정이 그들에게 어떻게 보일까 하는 것은 그렇게 중요한 감정이 아니다. 다만 말없던 엘리의 무표정도 이미 크라뮤와 시바에게는 친숙한 것이 되고 말았다.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악마들이나 마귀족보다는 훨씬 가까운 감정을 가지게 된 것이다.

“다음에 볼 때는 당신의 길이 있기를…”

크라뮤는 나지막하게 읊었다. 그녀들의 길이 진심으로 평안하기를 빌었다.


한동안 크라뮤와 시바는 조용했지만 곧 현실로 돌아왔다. 미스번은 곧 있을 수확제(收穫祭) 때문에 오후가 되자 상당히 웅성거리면서 분주한 움직임을 보였다. 오전에는 한가했던 광장에도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고, 떠돌이 전사나, 행상, 가끔 마왕군에 속한 자들도 보였다. 마왕의 제국군은 검은 체인메일에 제국 문장이 새겨진 검은 방패와 단검을 언제나 착용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다른 이들과는 확실히 구분이 간다. 검은 방패는 형태에 상관없이 검은색인데 모두 악마들의 수호를 얻은 것이다. 이것만으로도 웬만한 야생 몬스터들은 접근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장거리를 여행하는 행상이나 캐러번들은 제국군과 동반하기를 좋아한다. 특별한 일이 아니고서 제국군은 모두 제국의 사원에서 침식을 제공받기 때문에 이들은 시가지 내에서 난동을 피우거나 민폐를 끼치는 일도 거의 없다. 요사이 대마왕의 죽음으로 세상이 술렁이고 있다고는 하지만 아직 겉으로 들어나는 큰 변화도 없다.

크라뮤와 시바는 우선 강가로 가서 옷을 빨기로 했다. 한동안 별 탈이 없이 지내왔지만 고약한 냄새가 나는 것은 사실이었다. 게다가 떠나기 전에 몰리에게 받은 돈으로 오늘은 숙박소에서 잠을 자고 식사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옷에서 나는 냄새 때문에 들어갈 수 없다면 억울한 일이라고 몰리가 충고를 해준 것 때문이다.

광장 저쪽에서는 가극을 준비하는지 뚱뚱한 사내가 유명한 ‘사랑의 테마’를 부르고 있었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방안에서 너의 옆얼굴을 만지지 못하고 보고 있는 것만큼 참을 수 없는 고통은 없으리라-

그게 왜 고통인지 알 수 없는 크라뮤와 시바는 시원하게 로브를 빨아 넘긴 오후 내내 가극의 노래를 들으면서 로브를 따스한 햇살에 말렸다. 홀랑 벗고서 강가에 누워있는 크라뮤 덕분에 도시문화에 익숙한 숙녀들은 눈살을 찌푸렸지만 별다른 일은 없었다.

크라뮤와 시바는 밤거리를 걷는다. 오늘은 마구간에서 자거나 할 필요는 없다. 몰리가 주고 간 주머니에는 그녀가 목숨처럼 아끼던 돈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오늘은 네가 좋아하는 스테이크를 먹을 수 있겠다.”

“스테이크?! 난 레어가 좋아. 물론 등심이면 더 좋고. 뼈도 많으면 더~ 더~ 좋아.”

이미 시바는 마음이 반쯤 그곳으로 향했는지 꼬리를 흔들면서 뒤뚱거린다. 밤길을 밝게 비추고 있는 가로등은 늘어지고 거리의 좌우에서 풍기는 술 냄새와 음식냄새로 지나는 손님들을 유혹한다. 먼 곳에서 여행을 온 타지 사람들도 오랜만에 제대로 된 대도시에서 좋은 휴식을 얻기 위해 두리번거리는 모습을 보인다. 시바도 꼬리를 흔들면서 그들 사이를 헤치고 다니다가 어느 가게 앞에서 멈칫하더니 크라뮤에게 재빨리 돌아온다.

“저기가 좋은 냄새 난다.”

시바가 권한 가게는 3층 짜리 식당이다. [산사태]라고 이름 지어진 가게는 제법 북적거리는 것으로 보여 인기가 있어 보인다. 크라뮤는 시바를 안아서 자신의 로브 안으로 집어넣는다. 가게 안에 ‘개’는 데리고 들어갈 수 없는 것 때문이다. 코튼테일에 있었던 가게에 들어갈 때도 그랬기 때문에 역시 지금과 마찬가지로 숨겨서 들어 간 경험이 있는 둘은 자연스러운 연기력을 가지고 있게 됐다.

“무기는?”

가게 문 앞에 서 있는 험상 굳은 사내가 묻는다. 크라뮤는 손을 탁탁 털어 보인다.

“없어.”

제국은 도시의 식당으로 들어 갈 때 무기를 가지고 들어가지 못하게 정했다. 술기운에 벌어지는 쓸데없는 싸움을 없애고 장사꾼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다. 물론 자주적인 것으로 강제성은 없지만 가게 안에서 몰래 무기를 들고 가 행패를 부리다 걸리면 곧바로 제국 도시경비대에게 끌려가서 강제노동을 당하게 된다. 아직도 대륙의 개발에 힘을 기울이는 제국은 많은 인력을 필요로 했고 경범죄자들은 중요한 노동력이었다.


BGM : DO-RE-MI….from The SOUND OF MUSIC O.S.T.


“어서 옵셔어어! 안쪽에 자리 있습니다. 여기 손님 한 분!”

밝고 높은 목소리가 둘을 맞이한다.

시바의 판단대로 인기가 있는 곳인지 홀 안은 넓고 사람들이 많았다. 테이블은 20개가 넘었고 거의 수를 다 채운 손님들이 왁자지껄 떠들면서 술과 음식을 먹고 마시고 있다. 제법 많은 이들이 피우는지 담배연기가 천장에 깔려 있지만 홀 안쪽에 환기되는 곳이 있는지 그렇게 공기가 나쁘지 않았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옆에는 [방 있음]이라는 문구가 보인다. 1층은 식당 겸 주점을 겸하고 있고 2~3층이 숙박소인 곳이다.

크라뮤는 테이블로 가고 싶었지만 혼자라서 바가 있는 곳으로 안내를 받는다. 안내를 하는 아가씨는 이 근방에서 본적이 없는 모양새를 하고 있는 크라뮤를 [어려보이는 여행자]라고 생각했다. 이곳은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이 다니는 곳이다. 그러니 별다른 의심 없이 바로 안내하고 주문을 받으려 한다.

“자 손님, 식사를 하시겠어요? 마실 것? 잠자리는 정하셨나요?”

“밥. 비싼 거.”

어린 티가 가급적 나지 않게 크라뮤는 짤막하게 답했다. 안내하는 아가씨는 별로 놀라지도 않고 생긋하는 웃음을 보인다.

“마실 것은 무엇으로 하시겠어요?”

“물, 비싼 거.”

“물은 그냥 드린답니다. 다른 것은 필요 없으신가요……손님?”

“…뭐 있는데?”

어떤 것들이 있는지 알지 못하는 크라뮤는 물어 볼 수밖에 없었다.

이전이야 몰리가 시키는 바람에 가게에 들어와 주문하는 것이 처음인 시바가 무엇을 알 리가 없다. 언제나 궁에서는 알아서 음식이 나왔고 입맛이 까다로운 편이 아닌 크라뮤는 주문 같은 것도 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 지방의 특산인 크림치즈와 밀크를 듬뿍 넣은 [밀키웨이]를 권하고 싶네요.”

“그거 줘.”

“식사만 하시겠어요, 아니면 숙박 할 곳도 필요하세요?”

“방, …줘.”

“예. 그럼 합이 420크렐 되겠습니다.”

몰리가 준 주머니에서 크라뮤는 작은 손으로 한참을 뒤지더니 돈을 꺼내 건넨다. 안내하는 아가씨가 저편으로 가서 마스터한테 돈을 건네며 주문을 한다. 큰 모험을 치룬 크라뮤는 작은 숨을 몰아쉰다.

“휴-.”

“그것밖에 못하냐? 밥. 비싼 거, 마실 거, 비싼 거… 나라도 그거보다는 잘 하겠다.”

“시끄러. 그럼 다음엔 네가 해.”

“시켜 줄래?”

“할 테면 해봐라. 비싼 개밥이 나오겠지만.”

크라뮤는 좀 사람이 없는 구석진 자리에 앉아 있었고. 헐렁한 로브로 몸을 감싸고 있어서 다른 이에게 주목받는 일은 없었다. 덕분에 시바도 몰래 고개를 내밀어 크라뮤와 같이 홀 안을 구경한다.

“사람 많다.”

“개는 안 보인다.”

“마족도 안 보인다.”

크라뮤와 시바는 서로를 잠시 노려본다.

“다 여행하는 사람들인가?”

“여기는 하실리아 지방 동쪽 끝 도시이고 남부 크로쥬하고 중부 헬바이드로 향하는 길목이 되는 곳이니까 그렇겠지.”

“이렇게 큰 곳이면 대마신전이 어디 있는지 알고 있는 사람도 있지 않을까?”

“멍텅구리 보그같은 드래곤족은 이런 곳에서 밥 안 먹어.”

“드래곤 족만 알고 있나?”

“할아버지 얘기로는 그래. 보그나인이 대마신전을 알고 골드 드래곤이 천국신전을 알고 있대.”

“왜 드래곤들만 알아?”

“무지 오래 사니까.”

“아무리 오래살아도 그렇지. 보그처럼 치매 걸리면 소용없잖아.”

“그래도 대마신전이 어디에 있는지는 까먹지 않았잖아. 치매라기보다 머리를 쓸 일이 없어서 좀 멍청해진 거겠지.”

“하긴 그렇게 좋아한다는 싸움도 못했으니… ”

이때 크라뮤 옆자리에 행상차림을 한 사내 둘이 않는다. 크라뮤와 시바는 입을 다문다. 들어설 때부터 수다스러웠던 이 사내들은 앉자 마자 간단한 주문과 방을 부탁하고 떠들기 시작한다.

“이곳은 아직 조용한 편이군.”

“글쎄 말이야. 파이어 드래곤이 열 받아서, 살던 곳을 나와 설치고 다니는데 말이냐.”

“간 큰 놈도 다 있지. 마귀족과 드래곤에게 사기를 처먹다니 말이야.”

“세상이 뒤숭숭해서 그렇겠지. 게다가 소문으로는 영웅군이 곧 행동을 시작 할 거라고 하던데.”

이 둘은 먼저 나온 술잔을 들고 신나게 떠든다. 크라뮤도 제법 푸짐하고 향긋함이 있는 고기요리를 받아서 먹고 있다. 물론 시바도 로브에서 고개를 내밀어 꽉 꽉 거리면서 먹지만 아무도 보는 사람은 없다. 어느새 두 행상인이 떠드는 이야기에 사람 몇이 모여 얘기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소리는 나도 들었다고. 하룻 밤 사이에 귀족 경비병 다섯을 죽이고 보물을 홈쳐 갔다고 하던데.”

“틀려, 틀려. 이전에 있었던 파이어 드래곤과 마귀족의 결투는 알고 있지?”

“그래. 마귀족이 과거 남부 왕족의 딸과 결혼을 하기 위해서 자신 혼자서 드래곤하고 싸우겠다고 한 그 얘기 아닌가.”

밥 먹으면서 이 이야기를 듣고 있던 크라뮤는 큿-하고 코로 밥풀이 나오는 것을 참아야 했다. 전날 크라뮤는 몰리와 이야기를 하면서 드래곤이나 때려잡는 짓을 좋아하는 것은 인간들뿐이라는 얘기를 했었다. 헌데 지금 얘기를 들어보니 한 마귀족이 인간의 여자와 결혼하기 위해서 드래곤과 싸운다는 얘기가 아닌가.

[것 참 - 갈수록 악마들도 인간처럼 되어 가는군.]

행상인과 이야기를 나누는 자들의 잡담은 계속되었다.

“잘 아는 구만.”

“그때 구경을 가려고 했는데 그만 집안에 급한 일이 생겨서 구경을 가지 못했다네. 그런데 어째서 일이 그렇게 변한거지?”

“나도 그때 구경을 한 친구에게서 들은 얘기지만 파이어 드래곤인 에디가 화를 벌컥 내면서 [잡으면 가만 안 놔두겠다]하고 걸어 갔다더군.”

“드래곤이 걸어가?”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그 드래곤은 날개가 있으면서도 날지를 않고 걸어서 도시를 떠나갔다고 하더군.”

“저주인가?”

“그건 나도 그 친구도 모르는 수수께끼이고, 더욱 황당한 일은 그 사건 이후로 그 예쁘기 그지없다는 공녀와 마귀족 둘 다 상금을 걸고 한 인간을 잡으라고 했다는 거야.”

“그게 15만펜스라는 보기 드문 현상금이 걸린 가인이라는 현자란 얘기로군.”

“도대체 사정을 알 수는 없지만 그 가인이라는 친구는 무지막지한 사기꾼이라고 하더군.”

“현자가 사기꾼?”

“현자라는 것은 다 거짓말이고 사기꾼에, 인간을 삶아 먹는 몬스터라고 하더군.”

“아까 현상 포스터를 보니까 종족은 인간이라고 하던데?”

“그렇게 보이는 것뿐이지.”

“하긴 보통 사람이라면 한 달씩이나 도망을 다닐 수 있었겠냐? 마귀족에, 공녀의 사병에, 현상금 추격자들, 게다가 날지는 못한다지만 파이어 드래곤한테까지 뒤를 밟히면서 지금 까지 살아 있을 인간이란 없을 거야.”

“내 생각에는 대마왕이 죽고 난 후에 몬스터들이 한번 들고 일어날 대란의 조짐이라고 보여진다… 이 말씀이야.”

“나도 그 소문은 들었어. 실제로 세계의 끝에서나 살고있다는 희괴한 몬스터들이 아반델트 항구도시 보산에서 난리를 쳤다더군.”

“하실리아 쪽 코슬란에서 일하던 허셀드래곤들이 이유 없이 추락을 하고 했데.”

“서부 드워프 연합은 파업 중이라면서?”

“북동부에서는 언데드들이 대규모로 신천지를 찾아 이동 중이라는 소문도 있다고.”

이들 이야기는 갑자기 종말론으로 치닫기 시작했다.


크라뮤와 시바는 식사를 마치고 새콤달콤한 [밀키웨이]를 마시고 있었다.

“어떻게 해서 갑자기 저런 얘기로 바뀌냐?”

역시 입맛을 다시면서 마시던 시바의 말이다.

“할아버지가 그러더라. 사람들은 셋 이상만 모이면 괴상한 전설을 만들어 낸데.”

“그럼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전설 같은 거, 말로만 만들어진 거 무지 많겠네?”

“나도 그런 거는 잘 몰라. 중간에는 거짓말도 있겠고. 진짜도 있겠지.”

“진짜로 진짜인지. 진짜로 가짜인지 어떻게 알고 전설을 만든데?”

“사람들은 우리랑 달라서 상상력이라는 게 풍부하데.”

“그게 진짜 되면 어떻게 할 라고?”

“내가 아냐? 그렇다고 하니까 그런 거지.”

크라뮤는 마지막 한 방울을 빨고 몸을 일으킨다. 밥도 먹었겠다. 푹신하고 따끈한 침대에서 몸을 굴리기로 한 것이다. 옆에서 떠들고 있는 사람들은 어느새 인가 [신은 죽었다], [드래곤은 자이언트 열 명이 가죽을 뒤집어쓰고 다니는 것이다], [마왕군과 영웅군이 한달 뒤에 일차전을 한다더라]등의 화제로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크라뮤는 배부르게 많이 먹었고, 로브 안에 숨어있는 시바도 무척이나 많이 먹은 편이어서 로브가 제법 팽팽해진 상태였다. 당연히 걷는 폼이 부자연스럽고 걷는 속도가 느렸다. 뒤뚱거리던 크라뮤가 홀 가운데의 작은 테이블에서 혼자 조용히 마시고 있던 사내를 건드리게 된 것은 우연이었다.

-탁-

별 것 아닌 작은 충돌이었지만 그 사내는 신경질 적인 눈으로 크라뮤를 쏘아본다. 웬만하면 그런 정도의 눈초리로 쳐다본다고 해서 소름이 끼칠 정도로 섬뜩해 하지 않지만 그의 눈초리에는 크라뮤를 움찔하게 하는 그 무엇이 있었다. 사내는 크라뮤가 어린아이인 것을 보고 고개를 천천히 돌려 다시 술잔을 기울인다. 크라뮤는 입을 한번 삐쭉 내밀어 보이고는 계단을 올랐고 지정 받은 작은 방으로 들어갔다. 작은 창문이 대로 쪽으로 나있고 크라뮤가 쓰기에는 제법 큰 침대가 있었다. 조그만 나무 테이블 위의 작은 촛대에 불이 붙은 체 방안을 밝히고 있었고 문 옆에는 작은 사물 보관함과 옷걸이가 있었다.

“아까 그 사람 뭔데 그렇게 괴상한 기운을 가진 검을 가지고 있지?”

크라뮤 품에서 나온 시바가 먼저 침대 위로 올라가서 통통거린다.

“너도 봤냐?”

“응, 우리 째려보면서 오른손이 허리로 가기에 봤더니 검이 있었어.”

시바가 본 검은 크라뮤도 흘끗 보았다. 보통 검이라면 크라뮤나 시바가 반응을 할 일도 없지만 워낙 강력한 마력을 풍겼기 때문에 그런 쪽에 민감한 둘에게 바로 감지 된 것이다.

“전에도 그런 마력을 풍기는 검을 본적이 있는데…. 아마도 이 세계에 별로 없다는 정령검이거나 명검 중 하나 인 것 같더라.”

“암흑마군에도 그런 검 있잖아.”

시바는 침대의 탄력을 조사하는지 오른발로 통통거리면서 말했다.

시바가 말한 암흑마군(Dark Knight Force)은 제국마왕군 중에서도 파괴와 살육의 정예가 모였다는 제 1사단에 속한 특수부대명칭이다.

다크나이트를 중심으로 구성된 1사단에서도 막강한 실력을 지닌 자를 교육시켜 만들어진 소수부대로 그 정확한 인원구성과 행동은 대원수 애즈머드와 지옥 9장군이며 마왕군 1사단장인 아리만, 이 둘만이 알고 있다고 전해진다. 애즈머드의 서재와 집무실을 마음대로 들락날락한 둘은 굉장한 제국기밀인 암흑마군의 이름과 소지무기 종류 정도를 알고 있지만 일반 마왕군에서도 모르는 이가 태반이다. 그들 암흑마군은 모두 살상력과 파괴력이 강한 정령검이나 명검, 마검 등을 가지고 있었고 그 중 몇 개를 크라뮤가 장난을 쳐본 적이 있었다. 물론 그 벌로 무척 혼나기는 했지만 그 괴이한 기운을 풍기는 마검의 느낌을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암흑마군 대원같지는 않았어.”

“그건 그래. 암흑마군 대원이면 그렇게 힘든 표정이 아니었을 테니까.”

대체로 정령검이나 마검들은 그 소유자의 정기나 마력을 흡수하면서 활동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보통 사람이 이러한 검을 잡고서 싸우게 되면 얼마 못 가서 기력을 상실해서 기절을 하거나 미치게 되는 경우가 태반이다. 훈련을 받은 암흑마군의 대원이라면 침착하고 조용히 일을 처리하면서 피로한 기색은 보이지를 않을 것이다.

“그러면 제국에 등록되지 않은 검인가?”

“어차피 제국이 생기기 이전에 만들어진 검이나 무기들이 전부 등록이 된 거는 아니잖아. 사실 제국 최후의 비밀병기도 아직 등록이 안 된 상태니까.”

“제국 최후의 비밀병기?”

시바가 가슴을 내밀면서 당당한 폼을 보인다.

“나.”

크라뮤는 미간을 좁히면서 한마디 한다.

“똥개가 제국최후의 비밀병기면 우리제국의 최후도 멀지 않았군.”

“끄앙? 나한테 시비를~.”

-우당탕탕!-

“끼야야악!”

시바가 크라뮤에게 달려들기 직전, 시끄러운 소음과 비명소리가 아래층에서 울려 퍼졌다.

“무슨 일이지?”

크라뮤는 문을 열고 나가 일층 홀과 이층을 이어주는 계단의 끝으로 고개를 내민다. 크라뮤를 물어주려고 하던 시바도 궁금증에 잠시 신성한 의식을 멈추고 같이 고개를 들이민다. 작은 틈이지만 둘은 일층의 홀 안에서 일어난 일을 볼 수 있었다. 손님들의 대부분은 홀의 가장자리로 물러서 있었고 테이블과 의자 대여섯 개가 바닥에 넘어져 있었다. 날렵하게 생긴 다섯 사내들이 일어서서 식식거리는 숨소리를 내고 있었고 날카로운 인상에 세 가닥 콧수염을 기른 사내가 그들과 함께 자리 구석을 노려보고 있었다.

무기검사를 하는 이곳에서도 싸움은 그칠 수가 없었나보다. 요사이 흉흉해진 인심 탓인지 날렵해 보이는 사내들과 세가닥 콧수염은 처음부터 손에 칼을 들고 있었다. 그들이 노려보고 있는 장소에는 아까 크라뮤에게 눈총을 주었던 사내가 의자에 앉아 있었다. 칼을 들고 있는, 날렵해 보이는 자들의 뒤쪽에서 몰리가 입었던 격투복과 비슷한 차림을 한 사내 둘이 다시 등장한다. 그들은 아무 말 없이 크라뮤에게 눈총을 준 사내에게 다가간다.

-파팡-

-팡-

괴상한 파공음이 있었다. 갑자기 두 격투사가 몸을 뒤로 잡아 빼면서 비틀거린다. 크라뮤에게 눈총을 주었던 사내의 하얀 가운이 펄럭인다. 아마도 그가 무슨 수를 쓴 것 같다. 크라뮤는 눈이 커지더니 계단을 내려간다. 좀 더 가까이 가서 싸움구경을 하려는 것이다. 시바도 재미있어지는지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면서 계단을 내려간다. 세가닥 수염은 칼을 잡지 않은 왼손을 들어 주위 사내들에게 무슨 신호를 보낸다. 그가 두목인 듯하다. 크라뮤와 시바가 계단을 거의 다 내려 왔을 때 다시 한번 그들의 공격이 있었다.

-파파파팡-

-챙-

역시 마찬가지로 칼잡이 셋이 뒤로 물러서고 눈총 사내의 망토가 펄럭인다. 아까와 틀리게 금속끼리 부딪치는 소리가 있었기 때문에 그가 무기를 빠르게 움직인 것 같다는 추측을 할 수는 있었지만 주위 사람 중에서 아무도 그것을 제대로 본 사람은 없었다.

“저 사람 요리사(검사) 맞아?”

“그걸 알면 내가 네 주인이…… 이니까, 네가 네 주인이다.”

크라뮤도 보지 못했기 때문에 무어라고 말 할 수는 없었다. 다만 짐작 가는 것은 있었다.

“언젠가 들은 말이지만 검으로 더 이상 갈 수 없는 경지까지 가게 되면 그 뜻만으로도 상대를 박살낼 수 있다고 했거든.”

“그럼 저 작자가 그런 경지까지 이른 요리사야?”

“몰라.”

이 괴상한 싸움에 홀 바깥쪽으로 밀려가 있던 손님들은 마른 침을 삼키면서 조용히 관전하고 있다. 자신의 주위에 날카롭게 번뜩이는 칼날들이 포위를 했지만 그 눈총사내는 별 반응을 안 보인다. 주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은 자기와 상관이 없다는 듯 타는 듯 한 ‘열정의 쥬스’를 마시고 있다. 보다 못한 세가닥 수염이 입을 연다.

“순순히 우리와 동행하는 것이 좋을 터인데.”

이 말에는 반응을 보인 눈총사내였다.

“배신이나 책임 회피, 삶의 노력이 헛된 것이라고 할지라도, 그것을 잃어버리면 후회한다는 것을 아직 모르고 있는 것 같군.”

그자가 지껄이자 두목의 세가닥 수염이 고개를 까닥하더니 뒤에 있는 부하들에게 묻는다.

“…쟤 지금 무슨 말하는지 알아들은 사람 손 들어봐.”


#BGM : SMAP의 夜空ノムコウ



아는게 많다고 자랑하는 크라뮤가 손을 든다. 여기에 시바도 질세라 앞발을 들고 보지만 아무도 시바에게는 시선을 주지 않는다. 자기 부하들 중에서는 아무도 손을 든 사람이 없어서 콧수염은 그냥 크라뮤에게 물었다.

“꼬마야. 넌 알아들었단 말이냐?”

“응.”

“음…저런 꼬마도 알아듣는데 너희들은 도대체 뭐냐!”

“두목도 못 알아들었잖아요.”

“난 두목이니까 괜찮아!”

그는 신경질 적인 목소리로 한마디 깔고 크라뮤에게 묻는다.

“저 자식이 한 소리가 무슨 소리냐?”

“무슨 책임감 같은 거나 공명심 같은 걸로 자기 피곤하게 하지 말고 죽고 싶지 않으면 꺼지라는 얘기야.”

크라뮤의 말에 눈총사내는 살짝 고개를 끄덕이고 왼손을 들어 엄지손가락을 크라뮤에게 들어 보인다.

“뭐! 뭐라고! 이 자식이!”

안색이 달라진 세가닥 수염이 거센 칼소리를 내면서 달려든다. 뒤따라서 격투가와 나머지 사내들이 덤빈다.

-파파파팡-

-팡! 팡!-

-치익-

확실히 세가닥 수염은 두목이었는지 부하들이 비틀거리면서 물러서는 동안 눈총사내의 외투자락을 칼로 베어내는데 성공을 하고 물러선다. 자기 외투가 찢긴 것을 보고 있던 사내는 유리잔을 탁자 위에 놓고 그들을 쳐다본다. 그의 눈은 취했는지 약간 풀려 보인다. 아까 크라뮤와 시바가 느꼈던 섬뜩한 느낌은 없었다.

“너희들은 라크라시스의 부하인 것 같지도 않고, 아일리스의 추적자는 더욱 아닌 것 같고, 에디의 수하 몬스터는 더더욱 아닌 것 같은데 왜 나를 쫓고 있는 건가?”

“훗 라크라시스 남작이 너에게 십만펜스 현상금을 걸었거든. 거기에 아일리스 공녀도 자네를 산채로 잡아오면 오만펜스를 추가로 준다고 했고. 파이어드래곤의 에디는 자네를 잡기 위해 직접 나섰다고 하더군.”

이 둘의 말에 크라뮤와 시바는 속삭였다.

“우와~ 저 사람 몰리보다 현상금이 더 많이 걸렸다.”

“뭐 저렇게 쫓는 사람이 많냐?”

“파이어 드래곤이 잡으러 다닌다고? 초 극각무도한 범죄자인가보지.”

말을 주고받던 둘은 잠시 조용해졌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앗! 그럼 저 사람이 십오만짜리 현상금이 걸렸다는 그 현자?”

“결혼 빙자 사기범으로는 안 보이는데…”


그 사내, 결혼사기범이라느 가인은 좌충우돌한다. 덩치에 어울리는 힘찬 모습으로 사내들을 쓸어 넘기는데 몰리처럼 절도가 있는 기술이 아닌 힘으로 밀고 보는 스타일이다. 현자 가인은 일부러 인지 칼을 검집에서 뽑지 않은 상태로 싸운다. 한 명씩 쓰러트릴 때마다 큰 소리로 외친다.

“난 검사가 아니야! 난 현자라고!”

“크악!”

어깨를 세게 맞은 칼잡이가 땅바닥을 구른다.

“난 세상의 이치를 깨닫기 위해서…”

“크으윽!”

배를 맞은 칼꾼이 꼬꾸라진다.

“이 세상을 떠도는 현자란 말이다!”

“으아악!”

… … 이하 동문.

가인의 말을 듣고 있는 크라뮤와 시바는 그의 말이 터져 나올 때마다 아니라는 듯 고개를 설레설레 젓고 있다.

“난 폭력을 싫어하는 현자 일 뿐이다.!”

“크억!”

“꺽!”

“카악!”

“끽!”

세가닥 수염을 제외하고서 부하들은 모두 바닥에 누워서 몸을 비비꼬고 있다. 습관적으로 고개를 가로 네 번 저은 시바가 고개를 멈추고 말했다.

“잘 넘어진다. 그치?”

크라뮤가 고개를 끄덕인다.

“저 사람들 왜 싸움 걸었데?”

“수가 많으면 무조건 싸움 걸고 보는 게 떼거리들의 습관이야.”

크라뮤의 소리를 들었는지 세가닥 콧수염이 부르르 떨린다. 이런 꼬마와 강아지 앞에서 쪽팔리는 꼴을 보이고 있는 것에 참 열받는 것이다.

“어디 너 죽고 나죽어 보자!”

그는 힘차게 칼을 휘두르며 가인에게 달려든다. 누가 보더라도 우락부락한 덩치이면서 현자라는 직업을 가진 가인이 이길 것은 눈에 뻔히 보인다. 다만 두목답게 수염은 날카로운 검날을 빛내면서 공방을 한다.

“저렇게 칼싸움 잘하는 책장사면 엄청 책 많이 팔았겠다. 그치?”

크라뮤도 오랜만에 시바에게 동의를 표시하고 있다.

“칼 잘 쓰는 걸 보니까 거의 상대가 없겠는데. 같은 책장수 중에서는.”

“그런 사람이 있다면 천하에 적수가 없겠군.”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런 자라면 아마도 무척이나 쓸쓸할 거야.”

“왜?”

“천하무적하고 있으면 아무도 상대를 안 해줄 거 아냐.”

“응…. 무척 심심하겠다.”

“그래서 그 보그나인도 말이 많아지나봐!”

“스핑크스인 그레고리도.”

“애즈머드 할아버지도.”

둘이 쓸데없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사이에 싸움은 결말을 보이고 있었다. 가인의 손이 빠르게 위로 올라갔고 콧수염의 칼은 챵-하는 비명을 지르며 위로 올라가 천장에 꽂힌다.

“크어억!”

세 가닥 콧수염이 파르르 떨리면서 뒤로 벌렁 쓰러진다. 과연 두목답게 여타 졸개들과 달리 빨간 피를 뿌리면서 멋있는 폼으로 쓰러졌다. 앗! 피였다. 어느새 가인의 검이 검집에서 나와 붉은 빛을 뿜고 있었다.

“이런! 열중하다가 그만….”

고의는 아니었는지 가인은 재빨리 검을 검집에 넣고 콧수염에게 다가간다. 콧수염은 오른쪽 배에서부터 왼쪽 가슴까지 길게 베여서 피를 왈칵 쏟고 있었다. 가인의 얼굴에서 당황한 빛이 흐른다. 생각이상으로 심각한 상처였다.

“누……누구 치료 할 수 있는 사람 없소?”

가인은 자기의 흰 망토를 찢어서 상처를 싸매려고 하지만 상처가 너무 깊고 피가 많이 나와서 불가능했다. 보고 있던 크라뮤가 한 마디 한다.

“현자면 회복마법정도는 쓸 수 있을 거 아냐.”

“난 쓸 줄 몰라!”

가인은 당황한 탓인지 홀 안이 쩌렁쩌렁 울리게 크게 외쳤다. 그리고는 곧 창피함 때문인지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크라뮤가 멍한 표정으로 그것을 보고 있을 때 주위에서 구경을 하던 사람들 사이로 한 소녀가 앞으로 나섰다.

“제가 회복마법을 쓸 줄 알아요.”

홀 안을 비추는 조명을 홀로 받아서 그런지 무척이나 환한 금발이 인상적인 아가씨였다.


BGM : SADE의 Your Love is king



마리아라고 자신을 소개한 환한 금발머리 아가씨는 상처를 입어 바닥에서 끙끙거리는 콧수염에게 걸어간다. 잠시 그 사람의 상처를 보고 있던 그녀는 그의 옆에 무릎을 꿇고 앉는다. 마리아는 고개를 숙이고 두 손을 모아 기원을 시작한다.

“안녕하세요. 저는 당신들과 친하게 지내는 오트라인의, 고통받는 이들을 돌보는 간호사 수업을 마친 프리스트 마리아라고 해요. 지금 여기 제 앞에 상처를 입어 괴로워하는 친구가 있네요. 별로 이 친구를 잘 알지도 못하고 오늘 처음 본 사람이지만 아프다고 하니까 당신들의 힘을 빌려 이 사람의 아픈 곳을 치료하려고 해요. 하지만 전 아직 수업을 마친지 얼마 되지 않는 신참이라서 이곳 정령님들에게 인사하는 법도 잘 모른 답니다. 하지만 꼭 저를 도와 주셔야 해요. 안 그러면 전 이들에게 사기꾼이라는 소리를 듣게 되고 당신들은 주변 사람들에게 것 참 쓸모가 없는 정령일세! 라는 말을 듣게 될 거예요. 그러면 우리 둘 다 참으로 외로운 처지가 되겠지요? 전 당신들의 위대하고 훌륭하고 뛰어난 힘을 알고 있답니다. 이번에 쪼금만 도와주시면 전 다음에 사원에 돌아가서 당신들의 업적을 말하고 찬양하며 당신들이 더 기분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게 할 것입니다. 이건 약속이랍니다. 전 어려분들과 한 약속을 꼭 지키는 오트라인의 신참 프리스트 마리아 랍니다.”

그녀의 주문이 끝나자 모은 두 손에서 환한 빛이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어머 고마워요. 이렇게 반가운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네요. 이 사람은 지금 딱딱한 철을 불과 물의 힘을 빌려 만들어진 칼이라고 하는 것에 베여서 무지 아프다고 하네요. 가서 아프다고 하는 그곳을 어루만져주세요. 힐~링~!”

마리아의 빛나는 손은 상처를 어루만지고 곧 그 빛은 천천히 줄어들더니 곧 사라졌다. 이 장면을 멍하니 쳐다보던 시바가 말한다.

“주인아.”

“응?”

“난 저런 마법 안 배워서 다행이다.”

“왜?”

“저렇게 낮 간지러운 소리를 어떻게 하고 다니냐?”

“애즈머드 할아버지도 회복마법 쓰잖아.”

“껭? 저런 말투로?”

“아니. 할아버지는 대마도사잖아. 전에 리아누나가 마신하고 싸우고 중상을 입었던 적이 있었지?”

“응.”

“그때 하는 주문이 이렇더라. [야 이놈들아! 빨리 와서 이 사람 고쳐라! 힐링!]”

“음…상급직이 되면 그렇게 반말해도 되는구나.”

“그래서 온순한 사람도 상급직으로 전직하면서 입이 더러워지고 성격이 나빠진다고 하더라.”

둘이 시덥지 않은 말을 주고받고 있는 동안 조금 시간이 지나자 프리스트인 마리아가 일어섰고, 세가닥 콧수염은 조금 씁쓸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난다. 회색머리를 한 가인은 옆에서 그것을 보고 프리스트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한다.

“정말 고맙습니다. 만일 당신이 계시지 않았더라면 전 살인자가 될 뻔 했습니다.”

“별 말씀을요. 전 오히려 검사님이 사람들의 목숨을 가볍게 여기지 않고 행동하는 것을 보고 감명을 받았답니다.”

“아…예. 그런데 저는 검사라 아니라…현자인데…”

마리아라는 금발의 프리스트는 생글생글 웃으며 가인을 본다. 가인은 그 밝은 웃음 앞에서 더 이상 무어라 말을 하지 못했다.

“쳇! 우리야 실패 한 몸이니 군말 없이 돌아가지.”

콧수염은 매우 불쾌하다는 표정을 지어 보이면서 아직도 몹시 아픈 표정을 하고 있는 자기 부하들에게 철수명령을 내린다.

“하지만 기억 해두는 게 좋을 걸세. 자네가 이곳에 있다는 소문은 이미 좌악 퍼진 상태야. 우리야 졌으니 가지만 다른 현상범 추적팀이나 파이어 드래곤인 에디라면 가만있지는 않을걸.”

콧수염이 한 말에 가인은 눈가에 그늘이 진다. 그러나 곧 가인은 별다른 말없이 주위에 널 부러진 테이블과 의자를 바로 세우거나 치우기 시작한다.

“언제까지나 상대를 죽이지 않고서 도망 다닐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힘들 것일세.”

여기까지 말을 한 콧수염은 부하들과 가게를 나간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시바가 조금 심드렁한 표정을 한마디 한다.

“살려줘서 고맙다는 인사도 안 하네?”

“대신 빨리 여기를 뜨라고 얘기 해줬잖아.”

“아. 그게 그 얘기야?”

크라뮤와 시바도 사태가 진정되고 사람들이 각자의 위치로 가는 곳을 본다. 싸움이 끝나자 자리를 피해있던 사람들이 다시 웅성거리면서 모여들었다. 프리스트라는 마리아는 몇몇 사람에게 둘러 싸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고 다시 홀 안은 소란스러워진다. 다른 점이라면 아무도 가인의 주위에 가거나 하지 않는다는 것뿐이다. 가인은 주위를 한번 살피다가 계단을 오르기 시작하는 크라뮤와 시바를 본다.

“아. 꼬마야. 아까는 고마웠다.”

“별 말을…. 그래도 싸움은 났잖아.”

“영차. 덕분에 결심도 하게 됐지.”

가인은 검 자루를 자신의 큰 행낭에 집어넣고 어깨에 걸친다. 계단에 한발을 올리던 크라뮤가 묻는다.

“무슨 결심?”

가인은 계단을 스치면서 지나가며 크라뮤에게 눈짓을 보인다.

“우선은 영웅군에나 지원을 해야겠다는 결심이지. 잘 있게나, 꼬마 친구.”

가인은 도저히 현자로는 보이지 않는 근육질의 몸을 이끌고 밖으로 사라진다.

“너나 할 것 없이 다 영웅군에 간다네?”

시바는 약간 졸린 듯 하품을 해 보인다.

“몰리가 그랬잖아. 영웅군은 지금 과거 같은 것을 따지지 않고 있다고.”

“애즈머드 할아버지 골치 아프겠다…”

“그것보다는 놀기 좋아하는 마귀족들이 더 문제라더라.”

“끄앙, 차라리 인간들보고 정치하라고 하는 게 더 낳겠다.”

연신 하품을 해대는 시바를 보고 있던 크라뮤는 프리스트 마리아가 있는 쪽을 본다.

“인간들은 자기들끼리 싸우고 죽이면서 자기들끼리 치료도하고 돌본단 말이야.”

“마족은 자기가 다치면 자기가 치료하잖아.”

“서로를 돕고 산다는 것….그것도 인간들이 가지고 있는 힘이라고 했거든.”

“애즈머드 할아버지가?”

“그래, 우리보다 극단적으로 짧은 수명을 가진 그들은 우리보다도 많은 문화의 발전을 가져 왔지.”

“하긴 검이나 갑옷 같은 것도 원래는 인간들의 문화니까.”

시바는 졸린 눈을 하면서 간단히 크라뮤의 말을 받아넘기고 있다. 저쪽 테이블에서는 마리아가 웃으면서 술잔을 받아 마시고 있다.

“결국, 뭐가 다른 거지? 인간들이 지배를 하건 우리들이 지배를 하건 결국 지배하는 형태는 같은 거 아냐?”

“어려운…끄아앙…얘기는 나중에 하자고.”

크라뮤는 시바의 머리를 잡는다.

“넌 결국 지배하고 지배당하는 것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다는 거겠지. 하지만 난 너의 주인이다.”

“주인이라고 부르기는 하지만 아직은 마스터로 인정한 거는 아니다.”

“너와 나의 관계가 지금의 인간들과 마족의 관계라고 해야 할까?”

“헹! 그게 훨씬 복잡하다고. 우리처럼 실력으로 승부하는 게 편하다고.”

시바는 한마디하고 계단을 뛰어 올라간다. 둘은 자기들 방으로 들어가 쿨쿨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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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ZARD - 5부 외전 - 크라뮤의 매듭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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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HZ5外] 4장 매듭의 연결 (7) 13.02.10 427 2 50쪽
12 [HZ5外] 4장 매듭의 연결 (6) 13.02.10 420 1 50쪽
» [HZ5外] 4장 매듭의 연결 (5) 13.02.10 396 2 64쪽
10 [HZ5外] 4장 매듭의 연결 (4) 13.02.10 404 1 37쪽
9 [HZ5外] 4장 매듭의 연결 (3) 13.02.10 440 1 63쪽
8 [HZ5外] 4장 매듭의 연결 (2) 13.02.10 387 1 55쪽
7 [HZ5外] 4장 매듭의 연결 (1) 13.02.10 404 2 54쪽
6 [HZ5外] 3장 매듭의 시작 (4) 13.02.10 436 2 35쪽
5 [HZ5外] 3장 매듭의 시작 (3) 13.02.10 424 1 53쪽
4 [HZ5外] 3장 매듭의 시작 (2) 13.02.10 362 1 46쪽
3 [HZ5外] 3장 매듭의 시작 (1) 13.02.10 341 1 35쪽
2 [HZ5外] 2장 원수 13.02.10 449 2 49쪽
1 [HZ5外] 1장 봄이 왔다 13.02.10 603 2 6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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