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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보(漫報) 님의 문피아 서재입니다.

HAZARD - 5부 외전 - 크라뮤의 매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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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보(漫報)
작품등록일 :
2013.02.10 16:07
최근연재일 :
2013.02.10 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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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2.10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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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쪽

[HZ5外] 4장 매듭의 연결 (4)

DUMMY

BGM : LOS LOBOS의 Cancion Del Mariachi from DESPERADO O, S. T.


크라뮤와 몰리들은 이미 코튼테일을 나와 오빌 산맥이 보이는 방향을 향하고 있었다. 시바의 신성한 의식덕분에 몰리는 더 이상 시바를 원하지 않았고 오히려 죽도록 미움의 시선과 저주의 말을 퍼부었다. 그리고 시바에게 크라뮤같은 남자아이 엉덩이와 달리 몰리같이 황금 다리를 가진 여성의 엉덩이는 소중한 것이니 남녀가리지 않고 엉덩이를 무는 것은 큰 잘못이라고 여러 번 가르쳤다. 물론 시바가 그것을 제대로 이해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이들이 향하고 있는 곳은 하실리아와 중부의 관문소인 미스번이다. 중부와 서부를 잇는 중요거점으로 지금까지의 마을과는 한 차원 틀린 도시이다. 이 곳까지 가서 몰리와 엘리는 동쪽으로 향해 중부사막을 건너 로기암으로 향 할 것이고 크라뮤와 시바는 오빌산맥을 넘어 롱바우스 쪽으로 갈 것이다. 그래도 중간 미스번까지의 길은 같기에 서로 같이 가고 있지만 심통이 난 몰리는 좀 앞서서 간다.

엘리는 시바가 귀여운지 껴안고 쓰다듬으면서 가고 있었는데 시바도 그게편한지 별 반항 없다. 자연히 시바와 농담 따먹기를 못하는 크라뮤는 입이 좀 나와서 몰의 뒤를 따르고 있다.

“몰리. 그렇게 아팠어?”

“넌 어떻게 해서 시바한테 수 없이 물리고도 멀쩡할 수가 있니?”

“많이 물리면 괜찮아.”

크라뮤의 시원스러운 대답은 몰리를 얼빠지게 했지만 그것도 잠시일 뿐이다.

“후우. 그건 대답이 안돼. 나도 수없이 수련을 하면서 상처를 받아 봤지만 저…삽살개의 이빨은 장난이 아니라고.”

“그럼 왜 시바를 놀린 거야? 시바를 놀리려면 그 정도는 생각을 해야지.”

“그럼 크라뮤는 언제나 그 이빨에 물리는 걸 각오하고 장난 치는 거니?”

“응.”

[우와 얘네 들 장난이 아닐세. 보통 사람이면 죽을 정도로 아픈 짓을 장난으로 알아? 단련을 한 내 몸으로도 그 아픔을 견디기 힘든데…이런 꼬마가?]

몰리는 코튼테일에서 헤븐이 했던 말을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

크라뮤가 마치 전설에 나오는 거지같다는 그 말을….

[음 그때는 믿거나 말거나 이었지만 그렇게 큰 아픔을 아무렇지 않은 듯 받아들이는 저 마음씨…보통은 아니야.]

몰리는 이 꼬마 크라뮤의 정체가 무척 궁금해졌다. 어제 여관에서 들은 얘기로는 드래곤이 나오고 할아버지가 나오면서 마법의 수련을 위해서 신전을 찾아간다고 했는데 중간중간에 무언가 숨기는 냄새가 풍겼던 것이다. 전설의 거지 복장을 하고 다니면서 말하는 삽살개(자신은 아니라고 주장하지만)를 부하로 두고 있는 꼬마아이.

무슨 종인지 알 수 없는 괴상한 용모, 인간치고는 성이 없는 것을 보아 몬스터 일족 같기는 하지만 몬스터는 아니고, 아직 자신은 본적이 없는 정령족인가 하고 생각해보아도 역시 듣던 거와는 다르다. 몰리는 미스번에서 헤어지기 전까지 크라뮤의 정체를 알아내야 갰다는 사명감에 불타고 있었다.

“난 그냥 동쪽사람들이 성격이 나쁘고 흉폭하다고 들어왔기 때문에 인상이 나쁘다는 것뿐이야.”

크라뮤는 할아버지에게 들은 인간에 대한 단편적인 지식과 편견으로 몰리가 자랐다는 대륙의 동쪽에 있는 오트라인의 인습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몰리도 크라뮤가 무척이나 삐뚤어진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틀리다고 100% 부정하지도 못하는 편이라, 크라뮤가 가진 인간에 대한 지식 중에서 여성은 구제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남자들은 참 이상하지. 아침부터 저녁까지 생각한다는 것이 고작 싸움밖에 없으니 말이야. 여자들은 얼마나 착하고 고운 성격을 가졌느냔 말이야. 세상은 여성에게 정치에 참여 할 수 있게 해야 한다니 깐.”

“보통 남자보다 싸움 잘하는 여자한테는 듣고 싶지 않은 소리지만….”

크라뮤는 가볍게 꿀밤을 한 대 먹었다. 머리가 단단한 크라뮤는 별 충격은 오지 않았고 성안에서는 이런 커뮤니케이션을 해본 적이 없었기에 그저 사람들은 이러나 보다…하고 생각했다.

“그래, 여성이 정치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세상이 요모양 요꼴이 된 거라고 내가 왕이면 관료들을 모두 여자로 바꿀텐데 말이야.”

“기록에 보니까 옛날 왕들은 여자부하를 매일 옆에 두고 살았다던데?”

“크라뮤. 그건 후궁을 말하는 거라고 아무 생각도 없이 그저 편안히 먹고사는데 정신이 팔린 깡통들이라고. 그래봤자 그녀들하고 별다른 게 없는 게 대신이나 귀족들이었지만.”

“할아버지 얘기로는 사람들이 귀족 되는 것은 무지 쉽데. 좀 커서 드래곤이나 때리고 사람이나 죽이면 귀족 했대.”

“음…틀린 말은 아니지만(도대체 크라뮤의 할아버지라는 작자는 애를 어떻게 가르친 거야?)”

몰리는 괴상한 크라뮤의 할아버지이니까 괴팍한 성질을 가진 사람이라고 단정 지었다.

“이상한 세상이었던 것은 사실이야. 지금처럼 지배계급이 악마들이어서 오히려 문명이 발달하고 있는 것도 웃기는 일이지. 인간이 인간을 죽이고, 악마들이 인간을 죽이는 모습이 틀림없이 좋은 일이라고 볼 수는 없어.”

“어차피 똑같이 죽는 건데?”

“너는 사람을 죽여 본 적이 있니?”

“…….”

크라뮤의 묵묵부답에 몰리는 나름대로 해석을 한다.

“너 같이 어린애가 그럴 수는 없겠지. 하지만 너도 크면 언젠가 사람을 죽이고 드래곤을 때려잡으러 갈지 모르지. 과연 그것이 출세를 하기 위해서 인지. 유명해지기를 바래서 인지. 꼭 그럴 사정이 있어서 인지는 다르겠지만.”

“드래곤을 때려서 유명해지는 것은 인간들만이 가지고 있는 특별한 문화라고 하던데?”

“그래. 다른 종족들은 타 종족을 때려잡아서 유명해지는 일은 거의 없어. 오직 사람들만이 그렇지. 천성적으로 가지고 있는 파괴본능을, 파괴능력을 보이고 싶어도 별다른 방법이 없지. 아마도 그래서 드래곤을 잡거나 전쟁을 일으키게 되는가 보지.”

갈수록 복잡해지는 이야기에 크라뮤는 정신을 가다듬는다. 몰리도 크라뮤의 정체를 알기 위해서 너절거리다가 이렇게 비판적인 말만 나오게 되자 내심 걱정하다가 크라뮤가 조용해지자 안심을 했다.

하지만 몰리의 안심도 잠깐, 크라뮤는 자기의 생각을 정리하고 물어간다.

“제일 처음에 싸움을 시작 한 건 누군데?”

“응? 그건 왜?”

“시작한 누군가 있으니까 지금처럼 많은 사람들하고 종족들이 싸우는 거 아냐?”

“글세. 그건 모르겠네. 이 세상을 만들었다는 하늘과 땅이 싸웠다는 얘기는 없으니 아마도 사람들이겠지.”

“결국은 사람이 나쁜 거 맞네?”

“그래도 가장 문명을 발달시키고 사는 것에 지혜를 짜 낸 것도 사람들이란다.”

“그래도 사람을 죽이잖아. 그게 발전하는 일이야?”

“그건 옛날 일들이잖아. 이제 사람들은 전쟁 같은 거 안하고 있잖니.”

“그건 제국이 있으니까 그렇지. 그래도 사람들은 제국을 없애겠다고 싸움준비 같은 거 하잖아. 그러니까 제국도 또 싸울 준비하고.”

몰리는 움찔 한다. 영웅군 이야기이다. 몰리도 미스번에 도착하면 크라뮤들과 헤어져 영웅군에 지원 할 생각이다. 크라뮤의 말대로 그녀도 싸움을 만들기 위해서 영웅군에 지원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궤변이지만 아니다 라고 말하기도 힘들었다. 무슨 말을 해도 이 괴상하고 어린 꼬마는 몰리의 생각과 이념을 왜곡시킨다고 생각했다. 몰리는 더 이상 이런 얘기를 하고 있으면 자기의 이념이나 사상이 붕괴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 네가 다른 사람을 죽인다고 해도 난 별로 통쾌하거나 하지는 않아. 다만 난 돈만 생기는 일이면 되니까.”

“몰리는 그 목적 때문이라면 사람을 죽여도 좋다고 생각하는 거야?”

“안 죽이면 되지. 그러니까 난 그냥 가져오는 거라고. 그리고 죽지 않으려고 싸우는 거고.”

“몰리, 넌 격투사야, 도둑이야?”

“오호호 숙녀에게 그런 것을 묻는 것은 실례란다. 꼬마야.”


이 이상 말을 하다간 알이 먼저냐 닭이 먼저냐 같은 논리에 빠질 것 같은 생각에 몰리는 웃음 치면서 슬쩍 빠진다. 크라뮤가 다시 무슨 말을 하기 전에 다른 쪽으로 화제를 돌려야 했다. 저 미운 시바는 그녀에게 으르렁대면서 이빨을 보였지만 엘리에게는 얌전히 안겨서 털을 쓰다듬게 하고 있었다. 몰리는 확실히 자신 같은 격투사보다는 소환사의 능력이 있는 엘리가 더 친하게 됐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보니 번뜩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몰리는 일행의 선두에서 걷고 있다가 발걸음을 멈추고 돌아서며 크라뮤에게 말한다.

“아, 맞아! 시바를 엘리가 소환수로 계약하는 건 어때?”

난데없는 몰리의 제안에 크라뮤는 고개를 갸우뚱한다

“시바가 소환수가 돼?”

소환술에 대해서 크라뮤나 시바는 완전 백지 상태이다. 아는 게 없다. 알고 있는 유일한 소환사는 지옥 9장군의 아키오스인데 역시 그가 술법을 쓰는 것을 멀리서 보기만 한 것뿐이지 어떻게 소환수나 정령들과 계약을 맺는지는 본적이 없다. 전에 엘리가 페어리를 불러 빛을 일으키게 한 것을 본 것이 가장 가까이 본 정도이다. 멍한 표정으로 묻는 크라뮤를 본 몰리가 간단한 설명을 한다.

“어떤 생물이건 소환의 계약은 가능하다고. 다만 노루나 토끼하고 계약을 맺지 않는 것은 필요가 없어서야.”

“배고플 때 소환해서 잡아먹으면 되잖아.”

“…. 그 소환의 계약은 엘리 같은 술자(術者)와 자신의 의사를 확실히 할 수 있는 지능을 가진 동물이라면 가능한데 시바는 말이 가능하고 자신의 의사를 표명 할 줄 아니까. 엘리의 계약의식에 동의만 하면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몰리는 소환의 계약이 되면 다른 곳에서 예쁜 암컷을 구해서 준비를 하고 불러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런 몰리의 음모를 알리는 없지만 시바는 등골이 오싹한 한기를 느끼면서 꼬리를 말고 말한다.

“싫다. 내가 왜 몰리의 노예가 되야 하냐고.”

“내가 아니라 엘리의 소환수가 되라니깐.”

몰리는 웃으면서 말한다. 그녀가 저렇게 웃을 때는 뭔가 꿍꿍이가 있다고 확신한 시바가 고개를 돌리면서 엘리의 품안에서 빠져 나온다.

“기왕 하는 거라면 좀 더 품위 있는 소환사하고 계약을 맺을 거다.”

“호오? 품위? 감히 이 여신처럼 미끈한 다리를 가진 몰리의 언니인 엘리에게 품위가 없다고 말하는 거니?”

“엘리는 괜찮지만 몰리가 동생이라는 게 문제라고!”

“그래? 그럼 상관없네. 엘리! 시바가 너랑 소환계약 하는 거는 상관없데.”

엘리는 비록 말로 하지는 않았지만 시바가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귀엽고 말도 하는 시바와 소환계약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말을 하지 못하다가 몰리의 음모(?)덕분에 가능해지자 시바에게 다가간다.

“깽? 말이 이상한데 난…엘리는 좋지만 몰리는…”

시바는 일이 이상하게 돌아간다고 생각하면서도 엘리가 다가서자 말을 하지 못한다. 엘리는 크라뮤에게 인사를 하고는 시바의 정면에 무릎을 대고 앉는다.

그리고 시바를 쳐다본다. 크라뮤도 시바의 위기보다는 궁금증이 앞서서 보고만 있다.

엘리는 가만히 앉아서 시바를 본다. 시바를 보고 있다.

시바도 엘리를 보고 있다. 계속해서 보고 있다.

서로를 보고 있지만 시바는 엘리의 눈 속에서 빛나오는 그 뜻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시바는 무의식중에 이것은 위험한 눈빛이라고 느꼈지만 고개를 돌릴 수가 없었다. 마치 가위에 눌린 듯 아무런 행동도 취할 수가 없었다. 전신이 엘리의 눈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계속해서 둘은 서로를 보고 있다.

크라뮤와 몰리는 옆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나 하고 보고 있다. 시바는 아무 말 없이 자신을 째려보고 있는 엘리의 시선에 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과연 지금의 행동이 소환수의 계약 때의 의식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말없이 자신을 노려보는 엘리의 시선에 더 이상 견디지 못한 시바는 뒷걸음을 칠 수밖에 없었다. 이것을 본 엘리는 일어서더니 몰리를 쳐다보고 어깨를 으쓱한다. 그 뜻을 이해했는지 몰리는 한 숨을 쉰다.

“쳇! 너무 어려서 그런지 엘리의 소환계약에는 부적합하다는군. 앞으로 1, 2년만 더 있으면 가능 할텐데…. 하지만 시바도 대단해 대부분의 소환계약 때 다른 녀석들은 엘리의 시선을 받으면 3분도 견디지 못하고 먼저 [소환 계약을 할테니 제발 그만 쳐다봐요!]라고 손들고 항복해오는데 말이야.”

몰리의 감탄은 시바의 귀에 들리지 않았다. 힘든 전투를 크게 한번 치른 듯 피로감에 비틀거리면서 크라뮤에게 간 시바는 울먹였다.

“끼~잉. 무서웠다.”

“음, 나라도 저렇게 아무 말 없이 노려보고 있으면 무섭겠다. 저렇게 해서 계약하는 줄은 처음 알았다.”

몰리는 틀리다고 말하고 엘리의 방식만 그렇다는 것을 이야기 해주고 싶었지만 이런 저런 말이 나올까봐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덕분에 크라뮤는 잘못된 지식을 습득했고 후에 이런 방식으로 소환의식을 하다가 일을 내게 된다. 후담이지만 이후로 시바는 아무와도 소환 계약을 맺지 않았다고 한다.


BGM : Beauty &Beast O. S. T.에서 Be Our Guest


노숙을 하면서 길을 재촉한 일행은 서서히 눈앞으로 다가오는 오빌산맥 덕분에 굴곡이 많은 길을 걷게 됐다. 하루정도를 더 가면 중계도시 미스번에 도착을 하겠지만 작은 산등성이가 많은 지점에서 저물어가는 해를 맞게 되었다. 몰리는 친절하게도, 엉성하게 작성된 크라뮤 지도에 방향과 작은 점을 몇 개 그려 넣어 주었다. 그 작은 점들은 마왕의 제국이 건설한 자주여관-코테지였고 크라뮤 일행이 지금 있는 근처에도 하나가 있었다.

“응. 저거야. 오늘은 저기서 묶기로 하자고.”

작은 골짜기와 언덕 위에 세워진 통나무집이 보였고 몰리는 그곳으로 일행을 이끌고 갔다. 제법 큰 통나무집으로 향하는 길에는 도로 표지판이 있었고 거기에는 [서부여관 17호]라고 적혀 있었다.

중부지방에서 서부지역 하실리아로 향하는 중간 길목에 있는 이곳[서부여관17호]는 여행자들의 편의를 위해서 지어진 곳으로 우물도 있고 장작도 있다. 빈번한 여행자와 행상들을 위해서 제국이 각지에 세운 여관으로 이곳을 사용한 자들은 떠나기 전에 자신이 사용한 만큼의 장작을 만들어 두고 떠나게 되어 있다. 대륙 중앙에 위치한 라임시티와 마왕성을 중심으로 동서남북으로 뻗는 상로(商路) 건설은 제국이 생기면서 계속되었고 이러한 개척 토지에는 자주여관(自主旅館)이 생기게 되었다.

제국군이 각 지역에 거주하는 솜씨 좋은 장인들에게 만들게 한 이 자주여관은 인기가 좋아 사용하는 이들이 많았고 제법 마왕이 지배하는 제국 인기를 올리게 한 원인 중 하나이기도 했다.



크라뮤 일행이 도착했을 때는 막 이곳을 떠나는 10여명 행상들이 있었고 그 외에는 아무도 남아있지 않았기 때문에 시바는 마음 놓고 말을 할 수 있었다. 몰리는 산에 가서 나무를 해와 불을 지피고 식사준비와 목욕준비를 했다. 엘리는 아까 행상들에게 산 재료로 요리를 한다. 의외로 엘리는 요리를 잘했다.

지지고 볶는 기름요리부터 끓이고 삶는 스튜까지 향기가 진동을 했고 일행은 배가 터져라 먹어치운다. 어디서 구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엘리는 앵두에 꿀을 발라 디저트까지 준비를 했다.

“우와- 도대체 엘리는 어디서 이런 요리를 다 배웠어?”

크라뮤가 한입 집어먹고서는 감탄을 터트린다.

“엘리는 소환사 수업을 하면서 오트라인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요릿집에서 아르바이트도 했거든.”

시바도 재빨리 하나를 입에 넣고 황홀한 표정을 보인다.

물론 귀로는 몰리 이야기를 들으면서 말이다.

“몰리는 뭐 했는데?”

크라뮤는 앵두를 삼키고 다시 손을 뻗는다.

“나야 동네에서 까부는 얼굴들을 문질러 주고 보호비를 상납 받았지.”

“완전 타고난 깡패네.”

크라뮤가 몰리에게 꿀밤을 한번 맞는 사이에 시바는 와작하고 앵두를 씹어 삼키면서 다시 하나를 집어먹는다.

“너무 그러지 말아. 아는 게 그거 밖에 없다 잖아.”

시바는 이번엔 통째로 삼키고 작게 말했다.

몰리는 이미 충분히 먹었는지 손을 떼고 엘리 자랑을 한다.

“엘리는 눈썰미가 좋아서 금방 요리장한테 배웠더라고. 그래서 같은 시기에 배우는 애들보다 훨씬 빠르게 배웠다고.”

시바는 재빨리 두 개를 집는 크라뮤를 본다.

“주인아.”

“응?”

대답을 하면서 앵두를 입에 넣는다.

“내가 예상하건대 아마도 엘리는 거기서도 말이 없었겠지?”

시바도 지지 않고 두 개를 한입에 넣으려고 하지만 실패한다.

“음. 그렇겠지.”

크라뮤는 시바가 코를 박고 먹으려는 것을 밀어 재낀다.

“말없이 엘리가 보고 있으면 요리장이 견딜 수 있었을까?”

마지막 남은 앵두를 재빨리 가로챈 크라뮤가 볼 안에서 그것을 굴리면서 대답한다.

“음. 그러고 보니 네 말에 일리가 있다. 동생도 알아주는 깡패에다가 말없이 자기 요리하는 법을 지켜보는 엘리…라면 울면서 다 가르쳐 줬겠다.”

시바는 마지막 앵두를 빼앗긴 것에 내심 분노의 눈물을 흘렸지만 승부의 세계는 냉정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뭐 우리야 맛있는 밥 먹으면 상관이 없지만 나도 앞으로 말 안하고 눈으로 기죽이는 법 좀 배워 둬야겠어.”

“켓, 켓, 웃기지 말라고 개가 말 안하고 노려보면 사람들이 가만있겠냐? 발로 차고 말지.”

“내가 왜 걔냐?”

“사실 우리 집에서나 너를 마수로 알아주지. 인간들은 다 너를 개로…그것도 전설의 명견 삽살개로 보잖아.”

시바는 이런 냉정한 현실이 싫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것을 견뎌야 했다. 위대한 마수중의 마수인 선조를 욕되게 할 수는 없었지만 이러한 현실에서 그나마 개중에서도 전설의 명종이라는 삽살개로 보아준다는 것에 우선은 참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중에 자신이 제국의 명예로운 전사로서 그 실체를 밝힐 때 진정한 매력을 알아줄 것이라고 생각을 했다.



치열한 식사시간이 지나고 다 먹어치운 식기를 크라뮤와 시바가 설거지를 하는 동안 몰리와 엘리는 목욕을 하러간다. 물론 시바는 설거지를 도울 수가 없다. 그저 우물가에서 물을 받아 오는 정도가 전부이다. 크라뮤와 시바는 원래 목욕 같은 것에는 신경을 끄고 사는 족속이라 몰리가 코튼테일 여관에서 재워줄 때도 하지 않았다. 물론 몰리가 뭐라고 잔소리를 했지만 강요는 하지 않았기 때문에 둘의 너저분한 꼴은 갈수록 그 경험치를 높이고 있었다.

“왜 여자들은 저렇게 씻는 걸 좋아하지?”

크라뮤는 설거지도 거의 끝났고 시바도 물을 길러 오는 것이 끝나자 몰리와 엘리가 들어간 욕실을 보면서 하는 말이다.

“몸이 크니까 먼지도 많이 껴서 그렇겠지.”

“남자가 크면 여자보다 더 커지잖아.”

“그러니까 어려서부터 남자들은 잘 안 씻잖아. 그러니까 습관이 들어서 안 씻는 거라고. 역시 어릴 때 교육이 그래서 중요하다고.”

“응, 여자들은 어릴 때 버릇이 나쁘게 들어서 그렇군.”

“너도 나같이 많이 아는 주인을 만난 게 행운인 줄 알아. 만일 네 주인이 씻기 좋아하는 여자였으면 넌 매일 뜨거운 물에 삶아져 눈 따갑게 거품 내고 난리를 쳐야 했을 테니까.”

“그건 그렇다. 하지만 예쁜 리아누나 같은 주인이라면 그 정도는 감수해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짜식. 예쁜 거는 알아 가지고.”

-콰장창-

이때 시끄러운 소음과 함께 일련의 사람들이 안으로 들어선다. 제국 자주여관 나무문을 부수듯 걷어차고 들어선 인물들은 코튼테일에서 본 대머리 일당들이었다. 시끄러운 소리에 놀란 몰리와 엘리가 타월을 걸치고 밖으로 나온다. 이미 적들은 이쪽 동태를 주시하고 있었는지 들이닥치자 마자 몰리와 엘리가 벽걸이에 벗어둔 장비와 무기들을 장악한다. 순식간에 크라뮤일행은 포위를 당하고 말았다. 대머리는 자기 부대에서 정예만을 끌고 왔는지 머리 수는 많지 않았지만 모두들 한 가닥 한다는 폼을 보인다. 코튼테일에서는 크라뮤가 보지 못한 애꾸눈 사내가 앞으로 나온다.

“이 놈들이란 말이지?”

“이거 웃기는 파티로군. 꼬마하나에 반 홀랑 벗은 계집아이 둘, 그리고 비루먹은 개 하나.”

역시 본적 없는 머리에 붕대를 한 사내가 말을 받는다. 아마도 그의 머리는 낮에 몰리에게 맞아서 그런 것인지 몰리를 노려보고 있었다.

“진짜로 이런 애들한테 터진 것 맞나?”

애꾸눈이 뒤에 있는 대머리에게 묻는다. 대머리는 자신의 부하들이 제대로 반항도 해보지 못하고 당하는 것을 보고 특별히 애꾸눈과 그 일당 셋을 초빙하고 부하 중에서 움직일 수 있는 다섯 녀석과 함께 온 것이다. 그러니 당연히 애꾸눈 일당들은 크라뮤 일행을 처음 보는 것이었다. 애꾸눈은 잘나가는 해결사로 알려진 친구로 자기 못지 않게 홈치는 쪽으로 알려진 대머리 일파가 이런 애송이들에게 당했다는 것이 믿어져지지 않았다.

“목욕 중에 들어온 너희들이 예의가 없어서 그렇게 보이는 게 아니겠어?”

몰리는 분하다는 표정으로 자신의 몸을 가린 긴 타월을 다시 한번 단단히 감으면서 말했다. 한바탕 붙어본다면 좀 불리한 상황이지만 어쩔 수 없다는 각오를 보이는 것이다. 엘리도 유일한 방어 수단인 듯 타월로 몸을 감싸고 몰리 뒤편에 선다. 크라뮤와 시바는 몰리들과는 떨어져 있다. 크라뮤는 마지막으로 씻고 있던 양철 냄비를 손에 든 채로 기회를 보지만 모두들 살기가 등등했다.


“흐흐흐. 어쨌든 큰 현상금 걸린 몸은 어떠신 지 구경 한번 할까?”

애꾸눈 부하 중 한 명이 왼손에 날이 넓은 대거를 들고 나선다.

잘 갈아두어서 그런지 옅은 모닥불 빛에도 음산한 느낌을 주는 대거였다. 대머리는 이것을 보면서 신음 소리 비슷한 웃음을 날린다.

“흐흐. 감히 이 대머리 님을 모욕하고서 살아 남을 줄 알았더냐?”

그자는 이름도 대머리 였나보다…라고 생각을 한 크라뮤와 시바였지만 이 세계에서는 통상적인 예명을 쓴다는 것을 알 리가 없기에 둘은 훗-하고 웃음소리를 내고 만다. 그 소리를 들은 척도 안하고 칼잡이가 재빠르게 몰리를 노려간다. 물론 목표는 그녀의 타월이다.

“어딜!”

몰리가 호락호락 당할 위인인가. 왼손을 칼잡이 앞으로 내민다. 칼잡이는 오른 손을 뻗어 잡으려고 한다. 몰리는 순순히 잡힌다. 칼잡이는 시시덕거리면서 몰리의 손을 잡아당긴다. 한번 안아보고서 칼질을 하겠다는 속셈이다. 몰리의 몸은 순순히 그의 품으로 안기지만 그녀의 무릎은 그렇지 못했다.

“끄엑!”

칼잡이는 칼을 놓지는 않고 뒤로 엉거주춤하게 물러서면서 오만가지 인상을 보인다. 몰리는 그가 칼을 놓으면 그것을 잡아 무기로 쓰려 했지만 그가 칼을 들고 물러서자 할 수없이 한발 더 앞으로 나서서 오른 손을 뻗는다. 그런데 이 애꾸눈은 유명한 싸움꾼으로 전날 몰리가 난타전을 벌였던 덩치의 상대보다 한 수 위인 친구였다. 이미 대머리에게 몰리 이야기를 듣고 있어서 경계를 하고 있었고, 칼잡이가 당하는 것을 보는 순간 몸이 움직이고 있었다.

-슈욱-

가볍게 흐르는 애꾸눈의 수도(手刀)가 몰리의 눈앞을 갈랐고 몰리는 뒤로 물러 설 수밖에 없었다. 애꾸눈은 동시에 몸을 가볍게 띄우면서 돌려차기를 한다. 보기에는 가벼운 움직임 이였지만 몰리는 고수를 만난 것을 직감했다.

-파앗-!

몰리의 빠른 회피에도 불구하고 애꾸눈의 발끝은 그녀의 타월을 찢어갔다.

“잇!”

비명 비슷한 외침을 내고 몰리는 찢어지는 타월 자락을 잡는다. 허점이 드러난 몰리의 양팔은 어느새 애꾸눈의 오른팔 하나에 감기면서 뒤로 꺾이고 타월자락은 내려가다가 그녀의 허리 근처에서 멈춘다.

“히히히. 역시 대장이라니깐.”

애꾸눈의 부하 하나가 싱글거리면서 긴 검을 뽑아 엘리의 등에 댄다. 본래 육탄전에는 전혀 재능이 없는 엘리다. 별 반항도 못해보고 잡히고 만다. 상체가 들어나게 된 몰리는 별 반항을 못하고 허리를 비틀어 타월자락이 더 이상 떨어지지 않게 할 수밖에 없었다.

둘이 잡히고 나니 남은 것은 크라뮤와 시바뿐이다.

나름 한 판 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분위기이지만 시바는 일류 격투가인 애꾸눈에게 걸리면 박살날 것이 뻔하다.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가 없다. 애꾸눈은 자신에게 양팔관절을 제압당한 몰리가 발기술을 쓰려 해도 허리에 걸린 타월 때문에 옴짝달싹 못 한다는 것을 안다. 여유가 생긴 그는 탁한 목소리를 내뱉는다.

“자넨 지금 벽을 찾고 있는 거지. 자신의 인생에 마지막을 장식할 벽을 말이야.”

몰리는 목뒤에서 울리는 그의 목소리에 소름이 났지만 어쩌지 못하고 분한 표정뿐이다. 대머리는 비록 완전 무장을 한 상태는 아닌 몰리기는 했지만 순식간에 그녀를 제압한 애꾸눈에게 찬사를 보낸다.

“과연 1000이 아깝지 않은 솜씨야. 나중에 시간 나면 내 부하들 좀 가르쳐 주게나.”

“어렵지 않은 부탁이지. 돈만 내준다면.”

승리가 확실해진 대머리는 크라뮤와 시바를 본다. 그의 눈빛은 시바에게 많이 머물러 있다가 다시 크라뮤를 본다.

“자 꼬마야. 네 개는 나한테 넘겨라. 그러면 팔 하나로 용서 해주지.”

“애한테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악!”

몰리가 외쳤지만 애꾸눈이 거세게 그녀의 관절을 비틀자 비명이 나온다. 크라뮤는 상황이 나쁘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시바를 삽살개로 알고 있는 그들에게 넘겨주어야 하는지, 그게 모두에게 좋은지를 생각한다.

“꼬마야. 난 참을성이 없게 커오다 보니 시간 끄는 것을 무척이나 싫어하거든.”

대머리는 재촉을 하면서 부하에게 칼을 들이대라고 눈짓을 보내다. 대머리 부하 한 녀석이 날카로워 보이는 칼을 들고 크라뮤에게 다가간다. 크라뮤는 결심한 듯이 고개를 들고 대머리와 애꾸눈에게 잡힌 몰리를 본다. 잠시 후, 그는 사심 없이 솔직하게 말했다.

“이거나 먹어라!”

-탱-

크라뮤가 던진 양철 냄비는 몰리를 향해 날아갔고 몰리는 몸을 비튼다. 냄비가 날아오자 피하는 애꾸눈의 팔에 살짝 힘이 빠진다. 몰리는 그 짧은 순간을 놓치지 않고 팔을 풀어 왼발로 애꾸눈의 복부를 차면서 엘리를 잡고 있는 녀석의 콧등에 주먹을 날린다.

-빡-!

“크악!”

애꾸눈은 몰리의 일격을 피했지만 엘리를 잡고 있던 녀석은 자빠진다.

“아니 이 계집애가!”

대머리 부하 하나가 칼을 휘두른다.

“누구한테 험한 입을 놀려!”

몰리는 엘리를 뒤로 물러나게 하면서 바닥에 나동그라진 냄비를 걷어찬다. 땡-! 하는 맑은 소리를 내면서 그 녀석은 뒤로 벌렁 자빠진다.

“받아라!”

아까 그곳을 차여 열이 받아 있던 애꾸눈 부하가 설거지통에서 꺼낸 냄비 뚜껑을 던진다.

“너나 먹어!”

“꽤액!”

이미 엘리는 주위를 돌보지 않고 날카로운 옆차기를 날리고 있다. 덕분에 그 녀석은 같은 곳을 한번 더 맞고 앞으로 꼬꾸라진다.

“에잇 비켜! 던져라!”

애꾸눈이 외치자 시커먼 그물이 날라 간다.

“꺄악! 이런데서 그물을 던지면 어떡해!”

순식간에 몰리와 엘리는 그물에 싸여 나동그라진다.

“고삐 풀린 망아지를 잡을 때는 이것보다 좋은 게 없지.”

순식간에 벌어진 일로 잠시 소란이 있었지만 몰리가 벌인 반격은 실패하고 만다. 하지만 그 덕분에 한 놈은 완전 그로기 상태였고 한 녀석은 콧등이 깨져서 비실거리게 됐다. 대머리 부하 한 놈이 크라뮤에게 다가가서 세게 손을 놀린다.

-짜악-!

웬만한 어른도 맞고서 기절할 정도의 위력이었다. 크라뮤는 따귀를 맞고 저만치 몸이 떠서 휭-하니 날아가 나동그라진다.

-와그르르-

크라뮤가 떨어진 곳은 나무 장작이 모여 있는 곳이었다. 시바는 재빨리 크라뮤가 있는 곳으로 간다.

“에잇! 이 꼬마녀석 눈초리가 마음에 안 들어!”

크라뮤에게 분풀이를 한 녀석이 가래침을 탁-하고 뱉는다. 크라뮤는 기절을 했는지 웅얼거리는 소리를 낼뿐 꼼짝도 하지 않는다.



약간 시간이 흘렀다. 여전히 크라뮤는 나자빠져 있고 시바는 꼬리를 내리고 그 옆에서 꼼짝도 안하고 있다. 대머리와 일당은 아까 전부터 그물 안에 갇힌 몰리와 엘리에게 발길질을 하고 있었다. 전에 당한 분풀이를 하는 것이다. 몰리는 자신의 몸으로 엘리를 감싸고 녀석들의 분풀이를 받아내고 있다.

대머리 일당들이 얼마나 신나게 밟았을까? 녀석들은 이마의 땀을 홈치면서 늘어진 몰리를 본다. 아직 정신은 있는 몰리는 거의 그물과 발길질에 이겨져 몰골이 말이 아니다. 그래도 품속의 엘리가 무사한 것을 보고 안도의 한숨을 쉰다. 엘리는 슬픈 표정으로 몰리를 바라보고 있지만 몰리는 씨익 웃으면서 나지막하게 속삭인다.

“걱정마. 저런 헐렁이 놈들 발길질 정도로는 끄떡없다고.”

대머리는 신나게 복수를 해서 좀 속이 풀렸는지 주머니에서 담배가루를 집어내서 불을 붙이고 한 모금 깊이 빤다. 그가 흘끗 보니 시바는 여전히 저자세로 얌전히 있다.

“그러고 보니 저 개하고 계집애들은 필요하지만 꼬마 녀석은 아무 쓸데도 없잖아!”

대머리는 담배연기를 뿜으면서 말한다.

“목을 그어 버려!”

대머리는 부하에게 목을 자르는 몸짓을 해 보인다.

“안돼! 너희들은. 윽!”

몰리는 옆구리에 한방을 맞고 신음과 함께 고개가 꺾인다. 찬 녀석은 애꾸눈이다. 이번 발길질은 외치느라고 숨을 쉬던 몰리의 횡경막에 직격된 것이어서 몹시도 아픈 일격이었다.

“시끄러운 암 망아지들은 끌고 가고 꼬마녀석의 시체는 쓰레기장에 내버려둬!”

대머리가 외친다.

“히히 우리야 선량한 제국민이라서 말이야. 못돼먹은 악마 님들의 찢어 죽이는 잔인한 짓은 못하겠고.”

머리에 붕대를 한 녀석이 칼을 들고 크라뮤가 넘어져 있는 곳으로 움직인다.


크라뮤는 기절하지 않았었다. 사치스러운 분노가 타오른다. 아직은 그런 감정을 가지는데 익숙하지 않은 크라뮤이지만 머지 않아 자신을 죽이기 위해서 달려들 정의의 수호자들은 아직 보지도 못한 자기의 모든 것을 저주하고 말살시키려 한다. 도대체 자기가 무얼 어쨌다고?

장작더미 위에 떨어진 크라뮤는 통증을 참고 두 손을 모아 영창을 시작했다. 안 보이는 쪽에서 곧 몰리와 엘리가 고통스러워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크라뮤는 열심히 주문을 외운다.

나지막하게.

“나는 이 땅의 자식 크라뮤! 내 부름에 응하는 이 지역의 모든 이들은 나의 말에 귀를 기울여라……”

시바는 이제 좀 배웠다고 크라뮤가 말하는 영창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물론 그와 함께 동반되는 정신적인 고통도 이해한다. 분노 때문인지 정신 집중이 잘된 크라뮤의 주문은 시바의 예상보다 빠르게 진행되어졌다.

“내 마음속에 잠자는 환희의 불길에 호응하는 나의 친구들이여. 나의 모든 것은 그대들의 것이요. 그대들은 나의 친구로 나의 모든 것을 바라볼 수 있으리라. 나 땅의 자식 크라뮤는 대지의 이름으로 그대들을 이곳으로 부르니 이것은 그대들을 즐거움으로 안내하는 길을 여는 것이다. 그대들의 파티를 이곳에 여니 모두 나와서 즐거워하라. 그대들은 춤추고 술을 마시고 나를 위해 노래하라. 난 크라뮤. 내 모든 힘을 그대들의 환락에 바치니 내 초대에 응하는 대지의 모든 아들과 딸은 이곳에 모여라.”

“깽?!”

이 주문은 전에 애즈머드가 쓸 때 들어 본적이 있는 것이다. 시바는 설마 이런 곳에서 크라뮤가 이런 광역 마법을 쓸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그리고 시바가 알기에 이 마법의 유효 반경은 틀림없이 이 여관의 부피를 뛰어 넘는다.

“야! 주인아! 그건…”

“할-로-윈-!”

-펑-!

회색의 구름이 여관의 창문을 모두 부수며 퍼진다. 이 여관은 참나무로 지어진 제법 오래된 건물이지만 갑작스러운 폭풍과 구름의 회오리에 견디기 힘든지 들썩인다. 돌풍처럼 질주하는 힘들이 사방으로 뻗어 나간다. 기이한 향기와 화사한 꽃잎들이 공간을 넘실거린다.

“크앗! 이게 뭐야!”

“으앗!”

“앞이 안보여!”

-쿠ㅡ당탕탕!-

-콰쾅-

잠깐 사이에 휘몰아친 구름은 사내들을 쓰러지게 하고 그 힘은 좁은 여관 안에서 견디지 못하고 폭발을 한다. 우지끈-하는 소리와 함께 바닥의 돌들과 나무판자들이 뜯겨 나간다. 타오르는 듯한 불그스름한 빛이 땅에서 솟아오르면서 안에서 시커먼 그림자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다.

“끼야하하하하-”

“우카캬캬캬캬캬-”

“이히히히히히히-”

“끼----얏호-!”

“꾸와아아아아-”


쏟아져 나오는 마수, 정령, 악마들이 헤아릴 수가 없다. 해골뿐인 스켈톤도 가지각색의 뼈를 두르고 나타난다. 멧돼지 같은 얼굴에 털이 숭숭난 오크들도 황금색에 갈색, 시푸리 딩딩한 색, 가지가지의 보디 컬러를 자랑하면서 팔짱을 끼고 등장한다.

빛나는 날개를 가진 작은 요정들이 하늘에서 춤춘다. 이미 날아가 없어진 여관의 뚫린 천장으로 별밤이 보인다. 그 검푸른 별바다에서 요정들은 춤을 춘다.

외눈박이 사이클롭스도, 뿔 달린 유니콘도, 턱뼈가 없어 보이는 스켈톤도. 박쥐날개를 두르고 나타난 라미아도, 머리가 둘, 셋 달린 히드라도, 무시무시한 이빨을 들어 내보이는 라이건슬롭들도, 커다란 황색 호박머리를 한 펌프킨 헤드들도, 가지각색 아름다운 빛을 발하는 사라맨더들도, 덩실덩실 춤을 추며 노래하고 술을 마신다. 서로가 자랑하는 술을 건네 받으며 떠들고, 악취를 풍기는 오거가 멱따는 목소리로 노래를 부른다.



반쯤 혼이 나간 대머리의 부하들은 붉은 망토를 두른 스켈톤이 퍼 먹이는 골주(骨酒)에 눈이 완전히 풀려 있다. 대머리는 길게 갈라진 혀로 자신을 꼬옥 안고 있는 반라의 미녀, 라미아에게 키스를 받으며 눈이 뒤집혀 있고, 애꾸눈의 깡패는 라이건 슬로프의 팔 씨름 상대가 돼서 이리저리 날려지고 있다. 그물을 던졌던 머리에 붕대를 한 사내는 자신의 그물에 몸이 둘둘 말려 공이 돼서 이곳 저곳을 굴러다닌다.

몰리는 홀랑 벗겨진 상태로 커다란 은쟁반 위에서 뺑뺑이를 돌고 있다. 녹색머리의 자이언트가 그 쟁반을 돌리고 있고 붉은 머리의 자이언트가 거대한 술통을 들어 그녀의 머리에 붇고 있고 그녀가 돌 때마다 술 방울들은 사방으로 퍼진다. 그 술 방울들은 주위에 있는 요정과 히드라들의 입안으로 들어가고 있다.

“끼야하-하-하”

몰리는 이미 정신이 반쯤 나갔는지 입에서 게거품을 물고 있지만 균형을 잡고 쟁반을 돌리는 자이언트덕분에 계속 돌고 있다. 엘리는 검붉은 망토를 걸친 라이건슬로프들과 브레이크 댄스(?)를 추고 있다. 그 옆에서 원조 댄서 격인 스켈톤 셋이 춤솜씨를 보인다. 머리를 들었다 던졌다하면서 허리부근의 뼛조각들이 따다닥-하는 음률을 맞춘다.

“그아아아아-”

괴상한 소리를 내지르는 악마 다섯이 의자 열 개를 양손에 쥐고서 큰 테이블을 두드리며 박자를 맞춘다.

-둥다당-둥탕-꿍꽈라 꽝! 꽝!-

지진이 남부럽지 않을 정도로 땅을 울리면서 미노타우르스 대여섯이 광무(狂舞)를 한다. 각자 손에는 양젖을 발효시킨 술잔을 들고 있다. 저쪽 구석에서는 다크엘프로 보이는 귀가 길고 두툼한 덩치를 한 자들이 술 한 통씩 비워가면서 활을 당기도 있다.

그 앞에는 크라뮤의 따귀를 때렸던 작자가 벌벌 떨면서 양손에 사과, 머리 위, 양어깨, 가랑이 사이에 사과를 들고 있다. 싸움도 났는지 쿵당거리는 소음과 먼지를 일으키며 좀비 셋과 오크 다섯이 치고 받고 있다. 시바는 유니콘 세 마리와 헬하운드 둘과 함께 달리기 시합을 하고 있다.

마법의 영향덕분에 이미 자아를 잃고 실실거리면서 날뛴다. 장애물 경주인지 길 주위에서 요정들과 라이건 스로프들이 돌, 장작, 사람을 집어던지면서 방해를 하지만 모든 선수들은 요리조리 피하면서 잘도 달리고 있다. 크라뮤는 자신의 어깨를 두드리면서 쥬스을 권하는 긴 수염의 인자해 보이는 리치와 함께 마신다. 그리고 그 리치는 자신이 어떤 과거와 추억을 가지고 있는지 주절대기 시작한다. 호박머리들이 자신과 친구들의 머리를 던지며 묘기를 보인다.

귀신들이 서로 누가 더 무섭나 대회를 벌인다. 도깨비들이 방망이를 들고 죽자사자 두둘기고 있다. 뭐가 그리 흥겨운지 괴상한 환호성을 내지르며 난리법석이다.


오크들이 캠프파이어를 시작했다. 완전히 박살나기 전에는 여관의 벽이라는 이름을 가졌던 나무들이 활활 타오르고 있다. 그 불길은 동녘에 햇살이 보일 때까지 타오르고 있었다. 난리법석 중에 대머리와 애꾸눈은 도주를 했지만 나머지 녀석들은 모두 악마들에게 끌려갔다. 그들은 산채로 지옥관광을 떠나게 된 것이다.



이 광란은 해가 뜰 무렵쯤 돼서 끝이 났다. 풀 한포기 남지 않고 황폐해진 곳에 사람들이 널부러져 있다. 몰리와 엘리, 크라뮤다. 시바는 저쪽 구석에 뻗어서 자고 있다.

“으…응…살아있…냐?”

몰리의 말에 정신이 들었는지 크라뮤가 입을 연다.

“으…응.”

몰리는 새파란 아침 하늘을 바라보면서 말한다.

“크라뮤….”

“응?”

“내가 있는 곳에서…두 번 다시 이런 마법 쓰지 마라….”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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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ZARD - 5부 외전 - 크라뮤의 매듭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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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HZ5外] 4장 매듭의 연결 (7) 13.02.10 426 2 50쪽
12 [HZ5外] 4장 매듭의 연결 (6) 13.02.10 419 1 50쪽
11 [HZ5外] 4장 매듭의 연결 (5) 13.02.10 395 2 64쪽
» [HZ5外] 4장 매듭의 연결 (4) 13.02.10 404 1 37쪽
9 [HZ5外] 4장 매듭의 연결 (3) 13.02.10 440 1 63쪽
8 [HZ5外] 4장 매듭의 연결 (2) 13.02.10 387 1 55쪽
7 [HZ5外] 4장 매듭의 연결 (1) 13.02.10 404 2 54쪽
6 [HZ5外] 3장 매듭의 시작 (4) 13.02.10 436 2 35쪽
5 [HZ5外] 3장 매듭의 시작 (3) 13.02.10 424 1 53쪽
4 [HZ5外] 3장 매듭의 시작 (2) 13.02.10 362 1 46쪽
3 [HZ5外] 3장 매듭의 시작 (1) 13.02.10 341 1 35쪽
2 [HZ5外] 2장 원수 13.02.10 448 2 49쪽
1 [HZ5外] 1장 봄이 왔다 13.02.10 602 2 6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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