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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보(漫報) 님의 문피아 서재입니다.

HAZARD - 5부 외전 - 크라뮤의 매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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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보(漫報)
작품등록일 :
2013.02.10 16:07
최근연재일 :
2013.02.10 19:08
연재수 :
1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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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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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글자수 :
304,138

작성
13.02.10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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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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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글자
49쪽

[HZ5外] 2장 원수

DUMMY

#BGM : 松たか子의 サクラフワリ


크로세아 대륙에서 그 아름다움을 비교할 곳이 없는 건축물 중 하나라는 소리를 듣고 있는 제국 마왕성은 과거 헬바이드 왕성이 있었던 자리에 새로 새워진 거대한 성이다. 정령왕이 거주하는, 1만 4천년 수령을 가진 나무 위에 지어진 수림궁(樹林宮)과 더불어 해가 뜨고 지는 시간에 따라 그 아름다움이 변한다고 알려져 있는 마왕성은 그 멋진 외관 때문에 제국이 안정기에 들어선 이후, 이곳을 관람하고자 오는 세계각지의 관광객만 한 해 수 십 만 명이 이르는 곳이다.

하비아드 명물인 수정대리석 3천개가 떠받치고 있는 제국 최고의 건축물인 마왕성은 본래 ‘샤인워터 캐슬’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고 그 이름에 어울리는 우아함을 자랑하고 있는 곳이다. 그러나 정작 그 이름을 입에 담는 이들은 이곳에 관광을 오는 시골사람들이 대부분이고 도시밖에 사는 이들은 누구도 그 이름을 부르지 않고 ‘마왕성’이라고 칭했다.

인간 세계에 있어서 최고의 정통성을 자랑하는 헬바이드 왕가는 천신(天神)인 헬바이드의 신명에 의해 지정된 신성부족국가로 시작해, 차츰 그 세력을 넓이더니 결국 인간계가 정착한 크로세아 대륙에서 당당하게 왕가를 세웠다. 천지신들의 축복을 받아 세워진 이곳은 언제나 맑은 물이 샘솟는 라임 호수와 비옥한 대지, 풍토가 좋은 산악에 둘러싸여 있다. 마왕 카이라에 의해 점령되었고 마귀족들이 주거하게 되었다고 해도 여전히 그 아름다움을 잃지 않고 인간문화의 중심지로서 그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는 곳이라고 말할 수 있다.

덕분에 제국의 정치 행정 중심지가 된 이곳 라임시티, 마왕성이 있는 이곳은 언제나 수많은 문호인과 학자들에게 영감을 주는 도시로 알려져 있다. 대륙에 인간들과 여타 종족들이 살아가면서 고유 문화영역을 지켜나가게 되었고 기록이라는 수단을 통해서 자신들의 삶과 문화를 전승하기 시작했는데 이 과정을 통해 헬바이드 왕가는 크로세아 대륙에서 가장 번영된 문화를 창조하고 전파하는 장소로 알려지게 되었다. 특히 이곳에 운하(運河)가 세워진 200여 년 전부터 문화, 학문의 중심지는 물론이요, 교통과 상업의 중심지로도 자리 잡게 되었고 각지에서 생산되는 다양한 특산물들이 이곳을 통해 거래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오래전부터 이곳을 거점으로 한 공상인들은 많은 부를 쌓을 수 있었다. 그런 부자들이 많다보니 자연스럽게 도시는 화려함으로 가득 차게 되었고 불야성과도 같은 환락의 이미지를 가지게 되었었다. 이곳이 역사상 유일하게 환락의 불이 꺼졌었던 시기는 카이라가 이끄는 마왕군이 헬바이드 왕가를 멸망시켰을 때뿐이었다.

인간의 세계가 무너지고 짧은 불안기를 맞이했었지만 제국이 역사에 등장해 다시 도시로서 기능을 발휘하게 된 이후, 금과 소금을 취급하는 장사치들은 막대한 부를 쌓게 되었고, 기존 인간사회에서는 통합시킬 수 없었던 타 종족 간 협조를 통해 더욱 왕성한 노동력을 얻게 된 제국사회는 기존 종족별 문화에서는 생성시킬 수 없는 새로운 사업을 일으킬 수 있었다. 정치적이거나 종족, 신앙적인 부분에 있어서 기존 사회에서 어울리기 힘들었던 이들도 제국시대에 들어서는 본의건 타의건 새롭고 혁신적인 진척을 거둘 수 있게 된 것이다. 덕분에 새롭게 개발되는 광산이나 특수제철 사업, 교육기관 발전은 인간들만이 이룬 왕국문화보다 훨씬 다양하고 복잡하게 발전할 계기를 가질 수 있었다.

이전부터 왕성한 문화발전을 이루고 있는 인간문화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지만 접근할 기회가 없었던 여타 종족들, 오크, 말타, 정령, 호빗, 엘프, 드워프, 솔빗과 같은 7대 종족은 인간연합과 더해져 ‘8종족회’가 구성되었고 소수종족은 물론이요 독창적인 문화와 마법체계를 자랑하는 드래곤 족까지도 마왕 카이라가 세운 제국에 소속되어 공통된 문화와 발전을 공유하는 형태가 되어있다. 인류가 크로세아 대륙에 있어 가장 많은 수를 가진 종족으로서 군림한다고 해도 아직 세계의 모든 지역이 밝혀진 것도 아닌 상황에서 이 세계는 이미 인간들에게 정복되었다며 자만하던 인간들. 갑작스레 지상에 출현한 마족과 마왕 카이라의 군단에 의해서 세계가 통일되면서 인류와 비 인류가 제대로 된 교류를 시작하게 된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지만 처음에는 어색했었던 종족간 교류도 이제는 안정적으로 정착되어 많은 새로운 문화가 창조되고 있었다.


라임시티의 명소라고 할 수 있는 맑고 아름다운 라임호수를 끼고 건축되어 있는 마왕성은 9층 건물인데 4층에 위치한 의회전은 간결하지만 통일된 세계가 굴러갈 수 있는 정책을 확정짓는 장소로 유명한 곳이다. 해가 살짝 서쪽으로 기울어가면서 정오가 지나 오후로 가고 있다는 것을 알려줄 무렵, 제국의 심장부이면서 모든 행정의 결정권이 오가는 이 장소엔 웃음소리와 노래, 술을 권하는 소리가 흘러나오면서 흥겨움을 보여주고 있었다.

대마왕 카이라가 이 세상을 떠난 지금에 있어서 제국에서 최고의 자리에 있는 통치자는 대원수 애즈머드라고 할 수 있다. 인간출신이지만 카이라를 만나 그에게 감명을 받은 애즈머드는 제국이 성립된 이후 그를 도와 이 세계를 정비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고 카이라가 없는 지금도 그는 제국에서 가장 강한 신뢰를 얻고 있는 자로서 마신 출신인 지옥장군들도 그의 명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 그에게 있어서 지금 가장 큰 골칫거리는 오직 제국의 후계자 문제였다. 그렇기 때문에 눈앞에서 명색이나마 세계를 관장하고 있는 27마귀족과 8종족 대표위원들의 웅성거림에는 전혀 관심이 가지 않고 있었다.

애즈머드는 대마왕 카이라를 만나 그에게 천령마법(天靈魔法)을 얻게 되었고 이로서 세상에 존재한다는 모든 마법의 원리를 터득하게 되었다. 이후에 각 세계의 정보와 문화에 능통한 인물로 인정받아 제국에 발탁되어 지금은 이 세상의 둘도 없는 고귀한 신분인 천마대원수(天魔大元帥)의 직위에 올라 있다. 그러나 그것도 어디까지나 결단력이 있는 대마왕 카이라가 있을 때의 대원수였을 뿐이라는 것을 애즈머드는 지금처럼 실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번에 새로운 집사는 인간인데 말이야 나보고 다된 밥에 재를 뿌린다고 뭐라고 하더라고. 난 원래 밥에 재뿌려 먹는다고! 왜 내 식성을 가지고 시비를 거는지 알 수가 없어. 이전 내 성질 같았으면 한번 저세상 구경시켜주는 건데 말이야”

“너 그 정도 가지고 뭘 그러냐! 꽃은 보라고 있는 것이 아니라고! 먹으라고 있는 것이라고! 왜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인지 몰라 내 마을 인간들은 말이야. 13년이나 걸려서! 내 마력을 동원해서 13년이라는 시간을 투자해서 만든 꽃밭이라고! 난 그 꽃 농장을 만든 이유가 꽃 감상을 하려는 작자들에게 팔려고 한 게 아니라고! 난 먹고 싶었다고! 그런데 겨우 십만 송이정도만 먹으라고 하다니!! 난 이해를 못하겠다고!”

우렁찬 목소리로 자신의 주장을 떠들고 있는 마귀족은 자기 통치령에서 키운 특산물, 엘리슘 꽃을 먹지 못하게 된 것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마족 중에서도 특수한 능력과 혈통을 자랑하는 마귀족들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능력만큼이나 독특한 식성을 자랑하는 경우가 많다.

“넌 꽃이지만 난 개라고 개! 왜 내가 개를 먹으면 안 되는 거지? 동풍족들에게 있어 보신탕은 훌륭한 요리라고! 난 그 개를 버리려면 차라리 나에게 달라고 한 것 뿐이라고. 아깝잖아! 그런데 먹으려고 한다니까 나보고 야만인이래! 난 야만인이 아니야! 난 악마라고! 날 깔보는 거야 뭐야!”

역시 먹는 타령이다. 국정회의라는 말이 무색하다.

“왜 그 녀석들은 그렇게 소금가지고 난리인지 몰라! 그렇게 소금이 필요하면 땅을 파던 바닷물을 퍼마시던 마음대로 하면 될 거 야냐! 왜 그런 것을 일일이 우리가 관장해야 하는 것인지 모르겠어. 다음에 법령을 만들 때는 소금 알아서 팔라고 해야겠어. 일일이 보고하는 의원녀석 얼굴을 보면 정말 한 대 때려주고 싶다니깐”

마족들은 대부분 간을 하거나 소금을 먹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마족들은 간이 된 음식을 좋아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인간 사회에서 고가로 거래되는 소금에 대한 관리에 대해서 무척 귀찮아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개간사업을 하겠다고 하기에 내가 힘 좀 써서 땅을 갈라줬더니 아 글쎄 측량한 위치랑 다른 곳까지 무너트렸다고 군시렁 거리는 거 아냐! 내가 성질 많이 죽었지. 왕년 같았으면 다 들어 엎어버리고 마을을 지도에서 지워버리는 것인데 말이야…”

본래부터 자유분방한 성격에 통제하기 힘든 유아독존과도 같은 행동양식을 보이기 때문에 마족이라고 불리는 것이다. 그런 마족 중에서도 괴팍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워 할 정도로 자기 마음대로 살아온 마귀족들이다.




지금이야 제국의 법에 묶여 있어서 마음대로 못하는 부분이 있지만 그 법령을 세운 마왕 카이라가 없는 지금은 어떤 행동을 보일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각 지역을 관리, 감독한다는 부분에 있어서 마족만큼이나 적성이 맞지 않는 종족도 드물다고 할 수 있다. 그나마 무력을 행사하는 군부, 마왕군과 장군들만이 규율을 지키면서 관리를 하고 있기 때문에 제국이 유지되고 있지만 제국이 안정되면서 그 폭력을 행사할 일이 줄어들면서 마족들이 받는 심적 고통때문에 규율이 해이해져 있는 상황이다.

“말뿐이던 인간들 정치세력, ‘빛의 광장’이 요즘에 들어 다시 활동을 하기 시작했다는 말도 있더군. 대원수는 이들을 그냥 놓아두었는데 이번에 한번 쓸어버리는 것이 나중에 귀찮은 일이 없을 것 같은데 말이야……”

다들 테이블 위에 차려진 술과 음식을 처먹으면서 자신들 이야기를 하느라 바쁘지만 염소수염이 나고 인중에 귀안(鬼眼)이 달려있어 아수라 형상을 한 마귀족이 말꼬리를 흐리면서 의회전 중앙에 있는 애즈머드 대원수를 쳐다본다. 과거에 카이라가 있었을 때는 카이라의 명에 고개만 끄덕이던 녀석들이었지만 그가 이제 이 세상에 없는 것만으로도 마귀족들은 근질거리는 몸과 마음을 주체하기 힘들어한다는 것을 애즈머드는 익히 알고 있다.

“그럼 11관 무아광은 그들의 위치와 죄를 알고 계시겠군. 돌아가시는 길에 제국 정보부에 그 사실을 알려주시면 통보하여 섬멸군을 보내도록 하지. 물론 섬멸 사유가 될 수 있는 죄에 대한 증거를 같이 제출해주시는 것을 잊지 말아주시기 바라겠네.”

크로세아 대륙 지역을 27곳으로 나누어 관장하는 27마귀족은 별도로 명칭을 두지 않고 라임시티를 중심으로 27방향으로 나누어 1관부터 27관으로 불린다. 아수라의 형상을 한 마귀족은 11관을 관장하는 마귀족 무아광이었다.

“제국 마군이 있는데 무엇을 걱정하는 거냐고? 어차피 그것들이 옛날에 있었던 인간들의 사회에 대한 향수 때문에 우리 제국을 싫어한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잖아!”

무아광의 말을 거든 덩치 큰 마인은 육소마(六召魔)로 불리는 자로 21관에 위치한 마귀족이다.

“우리가 이전부터 가지고 있는 습성으로 본다면 그럴 수도 있는 일이지. 하지만 지금 우리는 대왕이신 카이라의 명을 받들어 규율과 법칙 안에서 활동을 하고 있지. 그런 것이 마음에 들지 않으시다면 관직을 물러나시고 무관마인으로서 살아가도 좋겠네. 그쪽은 규율에 묶이지 않으니 말이야”

실제 수많은 마족들이 이 세계에서 활동하고 있지만 제국을 유지하는 관직에 몸을 담은 이들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원래 자유분방한 그들이기 때문에 카이라가 정한 제국법령의 의거하여 행동하는 것을 꺼리는 녀석들도 있기 마련이다. 제국 관직에 속한 마족들은 그만한 권리와 여유를 가지게 되지만 그대신 제국이 정한 규칙과 법률을 지켜야 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껄끄러운 것이 사실이다. 게다가 관직을 버리면 재야에 퍼져있는 여타 마족들과 다를 바 없기 때문에 마음대로 행동할 수 있는 반면 모든 것을 자급자족하는 생활을 해야 하기 때문에 놀고먹을 수 있는 기회를 버리는 일이다. 그런 것은 또 싫어하기 때문에 마족들에게 있어서 어느 쪽을 중시하는 가에 따라 그들의 행동양식이 바뀐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 이런 상황에…”

“이런 상황이라니요? 어떤 상황을 말씀하시는 것인지요?”

애즈머드가 말을 끊고 반문하자 말문이 막히는 육소마였다. 물론 그들이 섬기는 대마왕 카이라는 죽어 이 세상에 없다. 하지만 그의 법령은 남아있고 그가 세운 제국도 아직 멀쩡하다. 혼자서 무어라도 해도 씨도 먹히지 않을 천마대원수 애즈머드의 말빨을 이기려면 힘의 법칙에 의해서 존재하는 마족들의 룰에 따를 수밖에 없다. 힘이 있는 자가 무조건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제국이다. 그리고 그 원칙에 따라 형성된 지금 제국 안에서 놀고 있는 이상 함부로 발언을 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본래 카이라가 27관의 통치령을 준 마귀족들은 머리가 좋은 축에 속하는 녀석들로 힘으로 밀어붙이는 바보는 아니다. 카이라가 이 세상을 통일할 때 관리를 할 수 있는 마귀족들에게 관직을 주었고, 힘으로서 파괴를 즐기는 자들에게는 장군직을 주었다. 그런 적재적소의 배치로 큰 사고 없이 지금까지 제국을 유지해 올 수 있었다. 물론 카이라는 힘으로도 지략으로도 이들을 다 굴복시킨 대마왕이다. 그런 카이라가 제국의 2인자로 인정한 애즈머드의 말에 함부로 토를 달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아니 그래서 누가 뭐라 그랬나? 그냥 그렇다는 얘기지”

카이라의 죽음이 세상에 알려지고 인간사회가 술렁이고 있는 것은 이 자리에 있는 27 마귀족들 누구나 알고있는 사실이다. 하지만 아직 그 어떤 행동을 상부에서 명하지 않는 이상, 제국의 법령에 따라 이유도 없이 그들을 핍박할 수는 없다. 애즈머드는 자신이 인간종족이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 평등한 권리를 주어 박해받는다는 느낌을 주지 않기 위해서 법령을 제정했고 카이라도 이에 찬성을 했다. 물론 제국 정무집행관이나 장군들은 즉석에서 처형을 할 수 있는 생사여탈권이 있지만 막강한 마신들인 그들이야말로 확실하고 충실하게 대마왕 카이라의 명을 듣고 있는 자들이기 때문에 오히려 애즈머드는 안심할 수 있었다. 반면 들뜬 기분에 마족의 본성에 따라 학살을 벌일 수도 있는 사악한 존재들에게는 어느 정도의 관리가 필요한 것이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자리에 모여 있는 27마귀족들은 대표적으로 관리를 해야 할 대상이기도 한 것이다. 본래 마족들은 통제된 규율에 움직이지 않는다. 대부분 마계에 있을 때부터 자기 멋대로 살아가는 것이 당연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인간계, 크로세아 대륙으로 오면서, 또는 소환되면서 지켜야 할 부분 또한 많이 약해진 상태이기 때문에 지금처럼 마족들이 여유를 가지고 마계와 인간계를 넘나들면서 활동을 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하지만 그중에서는 아직도 본성을 버리지 못하고 자유롭게 폭력을 행사하고픈 녀석도 존재하는 것이다. 물론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마족도 있다. 애즈머드의 오른쪽에 앉아있는 국정좌상대신인 염마왕(焰魔王)이 대표적인 존재이다.

“슬슬 지겨워지기 시작하는데 이만 회의를 파하지요?”

“오늘이 국정회의 마지막 날인데 아직 결론을 내지 못한 사항이 9개나 있네.”

“그런 거야 제가 그냥…… 말로 해서 결인을 받도록 하지요”

“말……이라…. 자네가 어제 회의장에서 마법으로 폭발만 일으키지 않았더라면 벌써 끝났을 것인데 말일세”

“어허허허허. 뭐 그야……. 제가 좀 급해서요. 죄송합니다. 한동안 자제를 하겠습니다.”

겸연쩍어 하는 염마왕은 사실 ‘불꽃의 마왕’이라고 불리는 상급악마신(Hi-demon:上級惡魔神)이다. 의전 중에서도 가장 높은 위에 속하는 존재로 마계위(魔界位)는 오직 실력으로만 정해진다. 그런 그가 애즈머드의 보좌를 맡고 있는 것은 어디까지나 카이라와의 약속 때문이다. 어제는 회의 도중에 열 받은 염마왕이 마법으로 폭발을 일으켜 몇몇 마의원들을 날려버렸기 때문에 의제를 끝마칠 수 없었다.

“여기에 우상대신까지 자리를 비우게 되었으니 한동안 국정회의는 열수 없게 되었지 않은가”

“에헤헤. 그것도 참 죄송한 일입니다”

조금은 질책하는 의도가 담겨있는 애즈머드의 말에 염마왕은 조금 기분이 좋아 보이는 웃음을 보이면서 애즈머드의 비위를 맞춘다.

그가 기본 좋은 것은 자신과 라이벌 관계에 있는 국정우상대신인 해마왕(海魔王)을 어제 폭발 마법으로 기를 죽여 오늘 불참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자네가 작년에 우상대신에게 당한 것을 알고 있지만 그 사사로운 원한을 공석에서 풀지는 않기를 바랐네.”

“아니 그 무슨 섭섭한 말씀을…. 제가 어찌 사사로운 감정 때문에 의석에서 손을 썼겠습니까? 우상대신이 자리를 비운 것은 어디까지나 제가 쓴 마기보다 강한 마기를 얻기 위해서 수련을 떠난 것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결코 국정에는 피해가 없을 것이라고 사료됩니다.”

“자네들의 수련이라는 것인 하루 이틀사이에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고, 내년 국정회의 때까지 돌아 올 수 있을지 그것이 걱정일세.”

“……크크크크. 제가 이번에 선 보인 팔염폭풍(捌炎爆風)은 그렇게 쉽게 대적할 수 있는 기술이 아니니 자질이 좀 떨어지는 그 친구가 과연 그에 맞먹는 마기를 터득할 수 있을지 걱정이 안 되는 것은 아닙니다. 크크크크.”

염마왕이 ‘선 보인다’는 표현을 쓰는 것을 보니 그는 이미 전부터 작정을 하고 그 기술을 쓴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하는 애즈머드였지만 말꼬투리를 잡으면 잡설이 길어질 것 같아서 무시한다. 마왕 카이라가 세운 제국령에 의해서 제국을 관리하는 27마귀족과 8종족을 대표하는 중의원들은 일 년에 한 번 모여 그해의 일을 의논하고 다음 해 일을 결정한다. 하지만 급작스러운 왕의 죽음을 인해 이번 의회는 거의 제 기능을 발휘하고 있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렇다면 차라리 빨리 의회를 해산하고 애즈머드가 독단으로 일을 처리하는 것이 더 빠를 것이다. 미 의회장의 마귀족들이 주절거리고 있는 말들은 가관에 돌입하고 있었다.

“우리 동네 애들은 다 바보라니깐? ‘올해는 좀 세금이 모자라~’ 하니까 바로 다음 날 다 모아서 내놓더라고. 우헤헤헤. 그 돈으로 맛난 것들 좀 사 먹었지만 역시 사먹는 것보다는 잡아먹는 것이 더 맛이 좋은 것 같아~”

독자적인 세금징수는 비상사태를 제외하고서 금지되어 있다.

대왕이 살아있을 때였다면 이런 소리를 의석에서 꺼내놓지도 못했을 것이다.


“솔바리오에 관광산업을 키울 겸 해서 모험자들을 위한 던전을 하나 만들어 달라는 의뢰가 있더라고. 요새 몬스터 연합이 가만있을 것 같아?! 중노동에 대한 임금이 얼마나 들어가는데 말이야!”

“맞아, 맞아! 그런 주제에 모험자들 생명에 지장이 생기면 안 되니까 야생 몬스터들을 던전에 풀어놓는 것은 싫다고 징징대는 것을 보면 정말 웃긴다니깐”

“그냥 콱 내가 들어가서 다 두들겨 패주고 싶다니깐! 우헤헤헤헤. 마족은 스트레스가 없는 줄 아는 것 같은데 말이야, 우리도 스트레스 풀 곳이 필요하다고!”

이 자리에 있는 의원들 정도의 수준이 되면 대부분 6품에 속하는 고급악마왕(demon / 高級惡魔王)에 속하는 존재로서 이 작자들이 스트레스를 풀겠다고 일반 모험자용 던전에서 날뛰기 시작하면 살아남는 인간의 수가 급격하게 줄어들기 시작할 것이다. 이 품위는 신족의 기준으로서, 지계(地界)를 담당하는 신분등급은 상위 1품부터 최하위 13품까지 존재하고 지성과 힘의 등급을 나누는 구분으로 지정되어 있다. 품 이하는 인간들이 주구성원인 지상세계인 크로세아 대륙에서 떠돌아다니는데 소위 말하는 야생 몬스터 부류에 속한다. 천계, 지계, 인계는 구분이 되어 있었고 서로에 대한 간섭이 거의 없었지만 지금은 지계에서 튀어나온 마족들이 이 인계, 크로세아 대륙에서 활개를 치고 있기 때문에 일반적인 힘의 균형이 깨져있는 상황이다.

이 능력별 구분으로 인해서 구분되는 지계 13품은

13품 악령 (evil spirit / 惡靈)

12품 저급악마 (evil / 低級惡魔)

11품 하급악마 (Evil / 下級惡魔)

10품 중급악마 (EVIL / 中級惡魔)

9품 상급악마 (devil / 上級惡魔)

8품 고급악마 (Devil / 高級惡魔)

7품 악마왕 (DEVIL / 惡魔王) / 마왕위

6품 고급악마왕 (demon / 高級惡魔王)

5품 최고악마왕 (Demon / 最高惡魔王)

4품 악마신 (DEMON / 惡魔神) / 마신위

3품 상급악마신 (Hi-demon / 上級惡魔神)

2품 최고위악마신 (Hi-Demon / 最高位惡魔神)

1품 최고신악마신 (Hi-DEMON / 最高神惡魔神)

으로 나누어지는데 인계에는 8품 또는 9품의 마족만이 존재를 해왔었다.

물론 품위는 변동하는 것으로 타고나는 마족도 있고, 자신의 능력개발로 인해서 품위를 올리는 마족도 있는데 그 대표적인 사례가 크로세아 대륙을 통일한 카이라였다. 카이라는 6품인 고급악마왕으로 태어났지만 2품위 최고위악마신의 지위까지 올랐었다. 마계에서 품위결정은 싸움, 대결을 통해서 결정된다. 결국 카이라는 마계에 있어서 최강의 싸움꾼이고 말썽꾼이었다는 것이다. 그런 카이라가 왜 갑자기 이 세계에 등장해 세계를 통일했는지는 같은 품위의 마신들에게도 알려져 있지 않다.

“그렇군. 이대로 가봐야 좋을 것 없으니 회의를 종료시키도록 하지.”

“역시 그렇지요. 저도 슬슬 좀이 쑤시던 차였거든요.”

염마왕은 결정용 햄머를 들어 지옥의 하프를 칠 준비를 한다.

“그러면 이번의 남서 지방의 결계문은 로트로이에게 넘기기로 결정하지. 모두 다른 의견은 없겠지?”

애즈머드의 말에 대꾸를 하는 이들은 아무도 없다. 다들 자기 이야기하느라 바쁘기 때문이다. 애즈머드는 고개를 끄덕이고 염마왕은 햄머로 하프를 쳤다.

구우우우우우우웅~

무거운 음향이 회의장에 울려 퍼졌고 그제야 제정신으로 돌아온 듯 마의원들이 자리를 일어서기 시작했다.

“어라? 끝났군. 정말로 유익한 모임이었어. 탄다레스! 다음에 같이 가자고! 나도 라덴 계곡의 낚시 맛이 죽여준다는 얘기 들었다고.”

“제길, 홀버맨이 안 왔어. 짜아식. 같이 결정궁에 놀러가자고 했는데 먼저 간 것이 틀림없다니깐!”

“우웅, 자러 가야 갰군. 내년 회의까지 나 깨우지 마.”

잠시 후 27개의 마의원석과 8개의 중의원석은 비워졌다. 애즈머드는 쓴웃음을 지으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결정 기록을 염마왕에게 넘겼다.

“자네 딸은 아직도 가출 중인가? 그 애가 있으면 이 잡동사니들을 치우는데 좀 더 편할 텐데 말이야. 어디 있는지 아나?”

“헬리는 집 떠난 지 벌써 2년이 넘었고 좀 컸다고 제 소환에는 응하지도 않아요. 차라리 제가 찾아 가보는 것이 더 빠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겠군. 이걸로 자네도 할 일은 끝났으니 집으로 돌아가도 괜찮네.”

“쩝. 딸애도 집에 없어서 심심해 죽겠는데 왜 집에 갑니까? 오랜만에 다비드 고원에 가서 암소나 몇 마리 구워먹어야죠.”

“그럼 자네도 휴가가 필요하겠군. 다비드고원이라면 자네라도 20일은 족히 걸리는 곳이니…”

“후후훗. 10일이면 충분할 겁니다. 내기에 이겨서 사탄 녀석에게 해골 전차를 빼앗아 왔거든요.”

“축하하네. 그럼 국정 좌상 대신인 자네의 20일간 휴가를 허락하네.”

-펑!-

말이 끝나기 무섭게 불의 마왕은 공기를 가로지르는 소리를 내며 사라졌다. 어지간히 놀고 싶었는가 보다.

“하긴 서류 정리 때문에 일주일이나 일을 했으니 좀이 쑤실 만 하겠지.”

이런 자기중심적인 성격을 가진 마족들 습성과 달리 대마왕 카이라는 확실히 일을 잘했었다. 그가 살아 있을 때는 거의 혼자서 모든 것을 결정하고 처리했다. 엄청난 마력과 정력을 소비하는 일이었지만 카이라는 이 마왕의 제국을 이끄는데 전혀 문제가 없는 완벽한 왕이었다. 단 하나의 문제만을 제외하고서….

“왜 카이라대왕은 나와 9장군 이외에는 제국을 이끌어나갈 교육을 시키지 않으셨단 말인가? 휴~, 덕분에 이제 내가 죽어나고 있지 않은가.”

틀림없이 애즈머드는 과거에 그를 만났을 때 그의 사상과 이념, 행동력에 반했고 그의 지식과 재주를 부러워하며 흠모하게 되었다.

그가 대마왕으로서 수많은 악마들을 이끄는 자라고 해도 애즈머드는 전혀 거리낌 없이 그의 신하가 되기를 자청했다. 이후 세상은 그의 손에 의해 통일되었고 애즈머드는 이상적인 세계 건설에 힘을 기울일 수가 있었다. 카이라는 제멋대로이며 자신 밖에 알지 못하는 마족들을 교육시켜서 제국의 병사들로 만들어 냈고 그들로 하여금 가공할 힘을 자랑하는 마왕군을 지휘하도록 했다. 모든 것은 착실히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어쩌면 애즈머드를 비롯하여 역대의 성군, 철학자, 왕들이 꿈꾸던 이상향에 근접한 모습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가 없는 것이다. 자신만을 남기고 말이다. 절대적인 카리스마의 소유자인 카이라가 없어진 이후에는 멍청하고 이기적인 악마들만이 남아서 궁 안에서 떠들어 대고 있는 것이다. 애즈머드가 자신의 집무실로 들어서자 밝은 빛이 조용하게 다가와서 그의 주변을 살핀다.

“이제 오십니까? 오늘도 지쳐 보이십니다.”

“별 것 아닐세. 언제나 있는 일이다 보니 조금씩 면역이 생기는 것 같기도 하군”

“그럼 바로 세계집무실로 가시겠습니까?”

“음… 조금 쉬었다가 하지. 아, 이 기록을 오늘 날짜에 넣어서 보고해 주게나.”

애즈머드의 시중을 드는 정령은 둘이다. 정체를 알 수 없는 투명한 기운의 아지랑이 모양을 한 화령(花靈) - 이 녀석은 언제나 대원수의 몸 주위를 돌보면서 불의의 사고나 공격에 반응하여 주인을 보호한다. 덕분에 어제의 대폭발 당시에 아무런 상처를 입지 않았다. 다른 이들은 이것이 결코 자연계에 존재하는 정령이 아니라 애즈머드가 발명한 안티스펠의 사념체라고 알려져 있다. 또 하나는 제국 서기관 역달을 담당하고 있는 목령(木靈)이다. 언제나 스케줄 정리와 국무내부 조정. 작업의 뒤처리 등을 하며 목령이 가진 자연의 기운을 이용하여 머나먼 지역과 통신을 가능하게 한다. 애즈머드는 이들에게 별도의 이름을 주지 않았다. 그것은 이 둘이 상급에 속하는 완성형에 가까운 정령들로서 이름을 주어 자아를 가지게 되면 제어를 하는데 무척이나 많은 마나를 소비하기 때문이다. 혼란스러운 제국을 관장하는데 있어서 이 두 정령의 힘이 없었더라면 어쩌면 그는 발광하고 말았을 지도 모른다. 그만큼 우수한 업무처리능력을 가진 정령들이었다. 목령은 애즈머드가 건넨 기록지를 받아 간직하고 천천히 각계에서 들어온 소식을 알리는 자기 업무에 들어간다.



“4차 서부 지구 개발 계획의 일정에는 차질이 없을 것이라는 아키오스 집정관의 보고가 첫 보고입니다.”

애즈머드는 집무실의 왼편에 있는 세계지도를 펼친다. 이미 완성된 지 120년이 넘은 녀석이고 세계 탐험이 중단된 이상, 이것 이상의 정확도를 가진 지도는 없었다. 그는 언젠가 대마왕 카이라에게 좀 더 확실하고 정확한 지도의 완성을 위해 측량 탐험대를 발족 시킬 것을 권했었다. 하지만 무책임하고 제멋대로인 악마들은 이런 일에 적합하지 못했고 그나마 사상과 이념을 가지고서 활동하는 지옥 9장군은 제국의 치안과 안녕을 유지하는데 바빴다. 결국 지금 애즈머드 자신이 보고 있는 지도는 과거 헬바이드 왕국의 아카데미가 만든 세계지도를 바탕으로 한 것이고 여기에 제국의 48년간의 일정과 보고에 의해서 지도는 조금씩 완성도를 높이고 있었다.

그러나 워낙 느린 진도로 아직도 그가 만족할만한 성과는 올리지 못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었다. 좀 더 정확한 지도가 완성되려면 다른 종족세계와 협력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남해족이 가지고 있다는 전설의 해도(海圖)라도 얻을 수 있다면 진정한 세계지도 완성이 더욱 빨라 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애즈머드였지만 그의 이상에 있어 든든한 후원자였던 대마왕 카이라가 세상을 떠난 지금은 더 이상 자기 욕심을 채우고 있을 수는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방금 전 보고를 들은 애즈머드는 지도의 중심에서 서쪽에 있는 지방의 그림 위에 녹색의 선을 그었다.

“예상대로 아키오스가 이곳을 곡창 지대로 바꾸어만 준다면 5년 안에 더 이상 남부의 지원 없이도 북부와 중부가 자급자족이 가능하게 되겠군.”

애즈머드는 비록 마왕의 제국을 통치하는 입장에 있었지만 이 세상에서 필요 없다고 판단되는 재난과 병해들에 대처하면서 좀 더 풍요로운 세상을 만들어 가는 것에 목적을 두고 있었다. 라임시티를 중심으로 세계의 모든 도시, 인간, 종족들이 굶주림 없고 질병을 이겨, 미래에 대한 새로운 꿈과 근심 없는 생활을 영유 할 수 있게 하는 것이 그의 야망이요 욕심이었다.

“덕분에 알바란에서 생산되는 열다섯 종류의 과일과 세 종류의 와인이 남부로 원활하게 이동되는 사업대로가 완성되어지는 거지”

오랜만에 뜻대로 이루어지는 상황에 애즈머드는 실낱같은 웃음을 지었다. 그러나 목령이 연이어 하는 보고에 애즈머드의 웃음은 바로 사라진다.

“달라산맥에서 일직선으로 로기암까지 이어지는 대로 공사가 완성되려면 아직 3년 정도 남아 있습니다.”

애써 중서부의 대도시 알바란 에서 남부까지 대단위로 행상들의 이동이 가능한 대로를 만들고 있었으나 3년 전 민족영웅이라고 자처한 아리바바와 그일당은 마왕군 보급로를 없앤다며 이 공사 현장을 습격하여 큰 타격을 안겨 주었다. 덕분에 아직까지 이 공사는 계속되어지고 있고 덕분에 서부 지구 개간 사업이 먼저 끝나게 되는 것이다. 씁쓸한 기분이 드는 애즈머드는 카이라 대왕이 없어지자 세상의 모든 인간들이 애즈머드 자신을 적으로 여기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그는 펼쳐진 지도에서 눈을 떼었다.

“마신 루프레감은 어떻게 되었지?”

“사신으로 간 오기베우에게 아직 연락은 없습니다. 떠난 지 2주가 다 되어 갑니다만…”

“이번에도 실패라고 보아야겠군.”

“대왕님과의 우호 관계를 생각해서 아직 별다른 행동은 보이고 있지 않지만 역시 우리를 도울 생각은 없는 듯합니다.”

목령의 보고를 들은 애즈머드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자신의 책장으로 향한다. 400년 된 호두나무로 짠 책장으로 30년 전에 마신 루프레감이 선물한 것이다. 현재, 이 세상과 마계를 오가면서 존재하는 마신들은 대마왕 카이라와 친분 관계를 가지면서 제국의 완성에 많은 도움을 주었었다. 그러나 한 달 전 카이라가 이 세상을 떠나자 그들은 각자 자신의 영지에 틀어박혀 아무런 행동도 보이지 않고 있었다. 마신은 본래 천지인 삼계 중에서 지계에 속하는 신족으로 지신(地神)으로 불렸지만 인간계에서는 마족으로 통일되어 불리고 있는데 그 중 하나인 루프레감은 드워프 족이 창조의 신으로 섬기고 있는, 제작의 명수였다. 그가 만든 책장만 하더라도 루프레감의 마법에 의해 장안에 보관되는 책의 상태를 언제나 최상의 상태로 유지해주고 있다. 덕분에 애즈머드는 세계 각지에서 모여진 고서와 문서를 이곳에 보관하는데 보관의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 또한 넣어도 넣어도 언제나 가득 차지 않는 신비로움과 원하는 책을 바로 찾을 수 있는 마력을 가진 책장이기도 하다.

“이제 그들까지도 이 제국을 외면하려 하는가….”

애즈머드는 그가 꿈꿔 오던 세상이 자신에게서 멀어져 가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저 놀기에 바쁜 마귀족들, 대왕 카이라의 죽음으로 통솔력을 잃기 시작하는 마왕군, 카이라의 죽음과 함께 흉흉해지는 제국 국민들의 민심, 절대적인 권력의 수호자들이던 마신들의 무관심, 지옥 9장군의 방심과 분열 등이 그의 어깨를 힘없이 처지게 만들고 있었다.

“카이라 대왕과 함께 이 제국을 세운지 어언 48년……. 세상을 하나로 통합하여 새로운 발전을 이루려 했던 나의 꿈은 결국 이렇게 무너질 것이란 말인가?”

목령은 말없이 그의 옆에 서 있었고 장탄식을 내뿜은 애즈머드는 다시 책상 위에 펼쳐진 세계지도를 본다.

“다음 보고를 계속해주게나.”

“카이라 대왕의 사망과 함께 인간들의 모임과 불순한 움직임이 전에 없는 활발한 활동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하실리아에 있는 마법 연구소에 습격이 있었습니다.”

“참을성 없는 친구들이군. 벌써 일을 터트리려고 하다니 말이냐. 로드, 그 친구는 신중파니 그의 짓은 아닐 테고…… 다른 세력이겠군.”

“아직 정확한 물증은 없지만 제국군 4사단의 올베이드가 마수100과 오크 군병3,000을 이동시켜서 조사 중입니다.”

“그런 하찮은 일에 너무 많은 이동이야…. 올베이드에게 수를 반으로 줄이라고 하지.”

애즈머드의 결정은 거의 떨어지기가 무섭게 목령은 자신이 가진 능력으로 각 지역과 연결되어 있는 다른 목령들에게 명을 전달시켜 영주들에게 보낸다. 이 명령은 제국을 대리 통치중인 천마대원수의 이름으로 전달되는 것으로 보고와 명령의 전달이, 전 세계에 퍼져 있는 목령들에 의해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인간세계에서는 꿈도 꿀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전달체계라고 할 수 있다. 인간들은 이들을 ‘마계의 스파이’라고 부르지만 애즈머드가 인간들의 왕국 때보다 훨씬 빠르게 명령을 받고 전달하는 중요한 수단으로 이들을 택한 이후로 제국 번영은 말로 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진행되었기에 지금 제국의 번영을 이루어온 숨은 공로자들이기도 하다.

“진압부대 사령관은 누구를 지정했는가?”

“올베이드 장군은 바아라크를 주장, 고모리를 부장으로 해서 파견했습니다.”

“음…. 둘 다 과격한 성격으로 일이 좀 커질 수 있겠군. 지역 영주에게 그들의 기분이 풀어질 수 있도록 오락시설을 정비시키도록 하게”

“……전달했습니다.”

“다음은?”

“과거 신성제국이었던 오트라인의 고위 사제들이 정령국으로 사절을 보냈는데 이들의 정확한 목적이 아직 알려지지 않아서 제국정보부에서 조사 중입니다. 정보부 장군인 엠피드 라키올이 직접 움직인다고 합니다.”

“엠피드가? 그 친구는 너무 화려한 것을 좋아해서 은밀한 행동은 못 할 테니…… 이미 그들의 정보망에 걸려 있겠군. 어차피 시작한 일이니 계속하라고 하게나. 그들이 일부러 흘리는 거짓 정보나 가져오겠지만.”

사실 제국의 정보부는 말이 정보부지 마족의 특성상 은밀한 행동이 무리이다. 거의 까놓고 행동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정보부의 가장 주요임무는 모여진 자료의 재분석과 자료정리가 주였다. 특히 이 정보부를 관리하고 있는 엠피드 라키올은 지옥 9장군 중 한명임에도 불구하고 전적(戰績)이 없는 특이한 장군이다. 짙은 하늘 빛 갑주를 입고 다니면서 무척 화려한 마기(魔技)를 쓰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무언가와 싸웠다는가 무언가를 파기했다는 이야기가 전혀 전해지지 않는 특이한 마장군(魔將軍)이기도 하다.

최근에는 마족보다는 여타 종족에서 정보부의 인원을 보충하는 안도 있었지만 아직까지는 순수하게 마족으로 운영되고 있는 상황이다.



“남해족 수확제가 시작되면서 축제가 열리려고 하는데 그전에 주민들에게 발표해야 할 정치사항의 변동이나 세금 문제들 때문에, 남해 지역 영주들은 올해 세금을 어떻게 할지를 결정해 달라고 영주 대표, 후키발 공작을 통해 전언을 보냈습니다.”

제국은 인간들의 왕국과 달리 능력위주로 구성되는 형태를 유지했기 때문에 능력만 있다면 인간이건 여타 종족이건 상관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제국이 마족에 의해서 지휘된다고 해도 사실 수많은 분야에 있어서는 결국 인간이 치정에 참여하는 경우가 많았다.

“작년과 올해는 모두 풍년이었으니 역시 마찬가지로 그들의 10분의 1을 우리에게 보내고 1을 마을 창고에 보관 할 것이고, 역시 1을 영주가 소유할 것이고, 나머지 7은 영민들의 소유로 해라.”

“12년이 넘게 세금의 변동이 없어 귀족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습니다, 부족한 물자를 채우기가 힘들다고 불평을 하는 마을위원 수가 30을 넘고 있습니다.”

물론 여기서 불평을 하는 귀족위원은 지역주민이 뽑은 대표들로 대부분 그 지역에서 가장 많은 분포를 자랑하는 종족의 대표가 선출된다. 당연히 그 수가 가장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는 인간 출신의 지역대표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또한 불평도 가장 많은 것도 역시 인간출신 의원이었다.

“자신들의 주어진 권한대로 부족한 물자는 타 영지나, 지방과의 교류를 통해서 채우라고 했건만 노느라 바빠서 일을 하고 있지 않으니 자업자득이지. 변경 사항은 없다. 세금을 허락 없이 올리는 멍청이는 즉시 파면이라고 추기하게나.”

“미셀 드윈이라는 학자가 ‘영웅군’이라는 길드를 시작했다고 합니다. 영웅지원자들을 모아 제국에 저항하려는 영웅군을 조직하려 한다고 합니다.”

“… 드윈이라면 7천국가문 중 하나군. ‘빛의 광장’에서 말이지…. 이것은 좀 더 두고 보아야겠군, 아마도 로드의 아텔리가문과 연결이 되어 있을 것 같지만 아직 정확한 물증이 없으니 말이야. 그들이 아직 활동을 하지 않고 있는 이상 지금 건드릴 상항은 아니겠지만 정보국의 로트라, 보기하린에게 조사를 시작하라고 하게. 조사뿐일세. 사고가 나는 것은 용서 못해.”

“전달했습니다. 보기하린은 자리에 없어서 추후에 다시 전달하겠습니다. 동방검사인 무대포가 이번 아반델트 검왕제에서 우승해 51대 동방검왕의 자리에 올랐답니다.”

“축하는 해주어야겠군. 물론 우리 마왕군에 속할 마음은 없을 테니 마검고에서 대충 괜찮은 검을 하나 골라서 보내지.”

“그의 특기가 전격 마법이라고 하니 일급 썬더소드와 프레임 실드를 보내겠습니다. 남해족의 족장인 하리봉봉이 이번 세금은 좀 내려 주었으면 하는 전갈이 있습니다.”

“이유는?”

“지난달 말에 있었던 지역 축제 중 제국군 8군단 63부대 소속 오거(Orge) 다섯이 술에 취해 곡식 창고에 불을 낸 것 때문이랍니다.”

“그 부대는 석 달간 금주시키고 제국에 바칠 올해 세금은 10에서 6으로 감하게. 차후에 정식으로 서류를 보내주도록.”

“……처리했습니다. 서부 제국군의 허셀 드래곤 하나가 비행 도중 추락해서 실종되어 있습니다. 이에 드래곤 연합은 장시간 혹사에 의한 사고라며 작업 시간을 줄여 줄 것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서부 지역의 광물은 우리에게 절대로 필요한 물건이니 작업 시간을 줄일 수는 없지. 능률은 떨어지더라도 드워프연합에 말해서 작업에 같이 참여하라고 하지”

“서부 드워프 연합 지국은 지금 파업 중입니다”

“언데드(Undead)들이 땅을 황폐시키기에 그렇지? 우선 언데드의 종족 보장권 때문에 수를 줄이라고 할 수는 없고, 팬텀드래곤의 로디겔-하디우스가 맡고 있는 부대에 합류시키도록 하지. 그 부대는 하실리아의 경비로 돌려 이동시키게.”

“연락했습니다. 다만 결정사항이 어떻게 반영될지는 조금 더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로디겔은 현재 14관주와 사이가 좋지 않다는 이유로 거부 의사를 밝힐 확률이 있습니다. 이후 수정요정이 있을 듯 합니다. 2급 보류기록으로 남겨두겠습니다. 정령수호국의 킹스타운에서 금년도 공물로 황금수(黃金樹)와 사파이어, 정령석을 보내 왔습니다.”

“공물은 필요 없다고 했는데……아! 그러고 보니 대왕님이 돌아가신 것 때문에 임시 조공을 받은 뒤로 아직 감사와 답례에 대한 명을 내리지 않았군. 중앙 외교 사관 데빌리아에게 그 공물을 그대로 돌려주면서 질이 좋은 마정석(魔晶石) 5개와 작년에 만들었던 ‘마운틴 디스트로이어 보우’를 더해서 인사를 하고 오라고 하게. 조공에 대한 명은 지난 한번만으로 족하고 앞으로는 이전과 다름없이 요구한 정도만 보내오도록 전달하게”

“전달하겠습니다. 다만 킹스타운의 왕인 아바이어는 궁을 쓰지 않습니다. 게다가 그 궁은 위험등급 2급에 속한 강한 힘을 내포하고 있어서 잘못하면 악용될 소지가 있습니다.”

“그의 아들이 궁에 능하다고 알고 있다. 어차피 힘을 길러도 소용이 없다는 것을 이미 깨달은 자들이니 그 정도는 상관이 없지. 게다가 만일 우리에게 반항하려는 세력에게 그 활을 준다면 그거야말로 우리에게 있어서 좋지. 마령을 포함한 궁이니 그들을 포착하기가 쉽겠지.”

“하지만 마정석은 마법주문을 새롭게 만들 수 있는 중요한 것입니다.”

“이왕 쓰는 선심은 팍팍 써 두는 것이 좋아. 그래야 나중에 잘잘못을 따지더라도 한꺼번에 밀어붙일 수 있는 구실이 될 수 있으니까. 현명한 아바이어왕이기에 오히려 정성스럽게 강력한 주문을 만들어 되돌려 바치겠지만.”

“전달했습니다. 아반델트에서 이곳으로 진군하던 영웅 알비온과 그의 파티를 사타니우스3세가 처리하는데 성공했다는 전갈이 오늘의 마지막 보고입니다.”

“3세? 사타니우스 장군이 언제 손자를 두었지?”

“2년 전에 아리바바 왕자를 때려잡은 후에 그에게 도전하는 자가 없어서 얼마 전에 이름을 바꾸었다고 합니다.”

“……멋있는 이름이라고 칭찬했다고 전해 주게.”


#BGM : Leila tosetowicz의 Tzigane


지금 애즈머드는 마왕궁에서 최고로 높은 별실에서 술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 옆에는 칠흑처럼 검고 긴 머리카락을 자랑하는 미모의 여인이 대작을 하고 있다.

“과연. 위대한 대왕님의 능력은 지금 더욱 절실히 느끼게 되는군.”

“그래도 당신은 잘하고 있어요. 애즈머드. 그렇기 때문에 대왕님도 당신을 믿고 원수직을 맡긴 것이겠지요.”

애즈머드는 조금 씁쓸해 보이는 미소를 지어 보인다.

“그러나 다른 마신(魔神)들이 도와준다면 좀 더 쉽게 일을 할 수가 있을 텐데 말이야.”

“결국 마왕과 다른 그들은 영원에 가까운 존재들. 자신의 힘과 지식은 진정으로 굴복한 자가 아니면 쓰려고 하지도 않아요. 우리 지옥마장(地獄魔將) 아홉이 다 모여도 결국은 마신 하나에 필적할 힘을 가졌을 뿐이니까요.”

“그런 면에서 본다면 대왕님은 정말로 마왕 중에서도 유별난 존재였지. 그런 마신들을 설득해서 자신의 힘으로 쓰셨으니….”

애즈머드는 쓴웃음과 함께 자신이 알고 지내 온 추억의 주군을 그리워했다. 그, 카이라가 이 세상을 떠난 지 아직 한 달 밖에 지나지 않은 것도 있겠지만 감정이라는 것에 쌓인 추억 속과 함께 늙어버린 얼굴에서 스스로 괴로움을 쥐어 짜내려는 모습이었다. 애즈머드는 아름다운 빛을 발하는 수정의 테이블을 밀어내고 고풍스럽지만 편안함이 보이는 나무 의자로 등을 대었다.

“그 어느 누구도 해내지 못한 모든 세계의 통일을 이루고 신계 통합도 꿈꾸셨던 분인데 말이야………”

생각 할수록 그의 업적을 다시 기리고 싶은 애즈머드는 다시 낮은 소리를 읊었다. 그와 같이 소담을 나누던 검은머리의 여인이 손에 들었던 와인 잔을 수정과 금으로 만들어진 테이블에 놓고 말을 받는다.

“그것을 위해서 만들어진 군대가 지금은 이렇게 각자 노는데 정신이 없는 오합지졸이 되어 가고 있으니….”

그녀는 포도 한 알을 들어 입에 넣었다. 애즈머드는 그런 그녀를 보면서 눈을 지그시 감았다. 그가 믿고서 옆에 둘 수 있는 자는 지옥9장군 중에서도 그녀와 리가인 뿐이었다.

사제(邪帝)라는 별명을 가진 그녀. 리아-시트란스. 파괴력을 제외하고 충분히 마신과 동등한 힘을 가지고 있다고 알려진 그녀는 카이라 왕과 과거 제국의 영광을 보여준 암흑대장군의 총애를 받아 인간이면서도 사신기(邪神氣)를 이어받았다. 덕분에 그녀는 자신의 주위, 사방 4루일 내의 움직임을 감지할 수 있고 보통의 적이면 주살(呪殺)도 가능한 힘을 가지고 있으며 검술에도 뛰어난 실력을 가지고 있다. 이 마왕궁 안에서 인간의 신분으로 최고의 지위에 올라 있는 그녀이지만 어느 누구도 그녀가 어떤 경력으로 장군의 지위에 올라있는지 아는 이가 없다. 오직, 대마왕 카이라와 대원수 애즈머드만이 그녀의 진정한 실력을 알고 있다고 전해지고 있다.

“어딘가 멀리 가버리고 싶은 생각도 드는 요즘이야. 자네는 참으로 현실을 빨리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 같아. 역시 인간이라서 그런가?”

“후훗. 원수님도 인간이 아니셨던가요? 현실이란 것을 직시하고 살지 못한다면 인간의 짧은 삶에는 후회와 고통만이 남게 될걸요.”

“그건 ……자네 경험에서 나오는 것인가?”

“이럴 때 리가인, 이 바보라도 있어 주면 대원수께서도 조금은 쉴 수 있을 텐데요.”

리아는 그의 말에 대답을 하는 대신 여행을 떠나 버린 9장군 중의 하나인 리가인에게 화제를 돌렸다. [백발의 악마]라는 이름을 날린 그는 압도적인 힘과 지략으로 일을 빠르게 해결해 나갔고, 그의 압도적인 추진력은 짧은 역사를 가진 이 제국을 안정시킨 초석이기도 했다. 다시 큰 포도 한 알을 씹어 삼킨 리아는 눈을 감고 있는 애즈머드의 수심어린 모습에 상관 안한다는 듯 다시 입을 열었다.

“리가인도 대왕님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충격을 받은 것이겠지요?”

“………”

리아는 애즈머드의 동의는 필요가 없다는 듯 희미한 미소를 머금으며 몸을 돌려 테라스로 향했다. 성에서 가장 높은 곳 중 하나인 천마대원수의 방은 라임시티가 한눈에 들어오는 곳으로 얼마 되지 않는 그녀의 안식처이기도 하다. 그녀는 자신의 모습을 남에게 보이기를 꺼려하는 편이었다. 그렇기에 더욱 신비감을 느끼게 해주는 그녀의 미모를 보기 위해 서성이는 이들이 많았다. 매일 같이 볼품없는 늙은 원수의 테라스를 서성이며 바라보는 마왕병들은 한둘이 아니었다. 지금이야 대마왕의 상을 치른 지 얼마 안 돼는 상황이어서 그런 경거망동을 보이는 이가 없었지만 언제나 그녀가 잠깐 모습을 보일 때면 테라스 아래의 백합 정원에서는 [후아아-]하는 한숨과 탄식의 소리가 끊어지지 않았다. 리아는 테라스 밖으로 보이는 마왕성과 라임시티 전경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아름다운 도시, 라임시티에 둘러싸인 이 마왕성을 유명한 음유시인은 ‘이 세상에 둘도 없을 공포이지만 그 아름다움에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구나’라고 표현한 것처럼 마왕이 이 세계를 지배하는 상징이라는 것을 제외하고 볼 때 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고 훌륭한 성임은 그 누구도 부인할 수가 없었다. 천궁지리사가 설계하고 1만에 달하는 드워프가 다섯 달 동안 잠을 안자고 건설한 지상 최고의 성이 아닌가.

라임시티 한 가운데에 있는 라임 호수를 끼고 9종류의 보석으로 치장된 7개의 아치로 연결된 성은 수정과 대리석으로 지어진 이 마왕성을 낯과 밤을 가리지 않고 지극히 아름다운 모습으로 보이게 하고 있었다. 인간도 30만이 넘게 살고 있는 이 도시는 세계의 모든 종족이 자신의 지혜와 미를 뽐내는 장소이기도 하다. 대마왕 카이라는 대전쟁을 일으켜 수많은 생명을 빼앗은 장본인이기도 했지만 그의 정책은 차별이 없는 것으로 힘이 있는 자는 인간이건, 악마이건, 정령이건 가리지 않고 정무에 등용을 했다. 덕분에 전쟁 후에 영웅들의 반란을 제외하고 사소한 싸움조차도 일어나지 않게 되었다. 인간들은 자존심을 걸고 협력과 투쟁을 계속해왔지만 그것을 빼면 이 성이 자리하고 있는 라임시티처럼 아름다운 도시가 세계에 계속해서 세워졌으며 학문과 기술의 발전을 이루어 왔다. 그리고 그 모든 정열의 상징들은 지금 테라스에 서서 밤바람을 맞으며 서 있는 리아를 포함한 9장군과 대원수 애즈머드의 노력의 결과이기도 했다.

“아마도 우리보다는 더욱 상심을 했겠지요. 우리보다 40년이나 먼저 대왕님과 함께 한 그니까요.”

리아는 감상에 젖은 눈을 전경에서 돌리며 애즈머드를 바라보았다.

침묵을 지키던 애즈머드는 테라스에서 불어오는 차가운 밤바람이 싫었던지 감고 있던 눈가의 주름을 더 짙게 만들면서 입을 열었다.

“대왕님의 생애에 있어 그를 아끼는 열 하나의 친구를 만든 것은 그분의 업적에서 가장 훌륭하고 뛰어난 것이라고 할 수 있겠지.”

“이 세계를 하나로 통일한 것 보다 도요?”

“최소한 나는 그렇게 보고 싶네.”

애즈머드는 눈을 떠 동의를 청하는 눈빛으로 리아를 바라보았다.

“후- 우리가 모두 죽고 없어진 뒤라면 모르겠지만 아직은 성급한 판단이에요.”

리아는 몸을 돌려 다시 테라스에 팔을 기대면서 적갈색의 망토를 휘감았다.

“적어도 이 제국에 진정한 후계자가 있어 우리를 인도하지 않고서는 이 제국의 자멸은 뻔하니까요.”


아직은 차가운 밤바람이 그녀의 머리칼을 쓸고 지나갔다. 애즈머드는 깊게 파인 주름살을 더욱 깊게 하면서 다시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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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ZARD - 5부 외전 - 크라뮤의 매듭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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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HZ5外] 4장 매듭의 연결 (7) 13.02.10 427 2 50쪽
12 [HZ5外] 4장 매듭의 연결 (6) 13.02.10 420 1 50쪽
11 [HZ5外] 4장 매듭의 연결 (5) 13.02.10 395 2 64쪽
10 [HZ5外] 4장 매듭의 연결 (4) 13.02.10 404 1 37쪽
9 [HZ5外] 4장 매듭의 연결 (3) 13.02.10 440 1 63쪽
8 [HZ5外] 4장 매듭의 연결 (2) 13.02.10 387 1 55쪽
7 [HZ5外] 4장 매듭의 연결 (1) 13.02.10 404 2 54쪽
6 [HZ5外] 3장 매듭의 시작 (4) 13.02.10 436 2 35쪽
5 [HZ5外] 3장 매듭의 시작 (3) 13.02.10 424 1 53쪽
4 [HZ5外] 3장 매듭의 시작 (2) 13.02.10 362 1 46쪽
3 [HZ5外] 3장 매듭의 시작 (1) 13.02.10 341 1 35쪽
» [HZ5外] 2장 원수 13.02.10 449 2 49쪽
1 [HZ5外] 1장 봄이 왔다 13.02.10 603 2 6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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