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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보(漫報) 님의 문피아 서재입니다.

HAZARD - 5부 외전 - 크라뮤의 매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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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보(漫報)
작품등록일 :
2013.02.10 16:07
최근연재일 :
2013.02.10 19:08
연재수 :
1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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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4,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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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2.10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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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35쪽

[HZ5外] 3장 매듭의 시작 (4)

DUMMY

“허허. 너희들은 너무 가벼워서 등에 타고 있는 건지 아닌지 구분이 안가는 구나.”

세차게 하늘의 구름을 가르면서 보그는 말했다. 보그나인은 어느새 블랙드래곤의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크라뮤와 시바는 그의 운동장처럼 넓은 등위에 타고서 신전으로 향하고 있다. 시바는 아침에 갑자기 수십 배는 커진 보그의 덩치를 보고도 잠시 졸았지만 금방 보그의 등에서 데굴데굴 구르면서 신나게 놀았다. 보그는 수십 루일이나 치솟아 땅의 나무들이 너무나도 작게 보이는 곳까지 올라갔고 아직 하늘을 날아본 적이 없던 둘은 신이 나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봐라! 봐라! 내 손톱보다도 산이 작아!”

“와우! 이것 봐. 구름이 잡힌다!”

시바는 보그의 등 너머로 보이는 지상의 산들을 자기 발톱과 비교하고 있었고 크라뮤는 이리저리 뛰어다니면서 보그의 등위로 흐르는 구름을 잡느라 바쁘다.

“그렇게 난리법석 벌이다가 떨어져도 난 모른다.”

시바와 크라뮤는 저어기 앞에서 울려 나오는 보그의 말에는 별 관심을 안보였다.

“아앙! 내입에 구름이 들어온다아아앙.”

“캥? 나도!”

크라뮤와 시바는 보그의 등위에서 입을 한껏 벌리고 구름을 받아먹는다. 시원한 구름 빙과를 마시는 느낌이었다.


조금 시간이 지났다. 크라뮤와 시바는 보그의 등위에서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보그는 워낙 가벼운 둘의 움직임에는 이미 신경을 끄고 하늘을 나는 것에만 집중을 하고 있어서 인지 아까부터 말이 없다. 시바는 꼬리를 돌돌 말고서 크라뮤를 쳐다본다.

“어쩌냐? 참을 수 있어?”

“으…응, 넌?”

“끄응….쫌만 더 참으면 터질지도 몰라.”

“나…나도.”

둘은 안색이 파래졌다가 노래지면서 몸을 비비꼬고 있었다.

“다 네 탓이야. 네가 구름 먹자고 하지 않았으면 이렇게 금방 오줌이 마렵지는 않았을 거 아냐.”

“시꺼. 너도 신나서 입 벌릴 만큼 벌리고 먹어 놓고서는… 윽.”

크라뮤가 갑자기 몸을 뻣뻣이 세운다. 척추를 가로지르는 통증과 아랫배의 팽창감이 그를 엄습한 것이다.

“끄응…보그 할아버지 등에다가 실례하면 안…되겠지?”

시바도 꼬리가 왼편으로 말렸다가 오른 편으로 말렸다가 하면서 뒷발을 부르르 떤다.

“끄으으…우리가 최초로 블랙드래곤의 등에다가 실례를 하는 역사를 만들자 그거냐?”

둘이 아는 한 이 블랙드래곤의 보그나인 헬리버는 한때 ‘광란의 춤’으로 대륙을 들썩이게 한 공포의 파괴자였다. 성질이 더러워서 별 것 아닌 일로도 화를 벌컥 냈고, 자존심이 엄청 강해서 자기의 눈 밖에 나는 짓을 하는 자에겐 어김없이 브레스를 뿜어 구워 놓고 잘근잘근 씹어서 가루로 만들어 놓고는 했다고 한다. 물론 요사이 조금 치매 현상을 보이고 있는 것 같았고 둘이 만났을 때의 태도를 봐서는 만만해 보였지만 그래도 드래곤은 드래곤이다. 아무리 겁 없는 두 주종이지만 그런 실례를 할 수는 없었다.

“끄응…. 그런데 이 할아버지는 귀가 먹었나? 아까부터 아무리 불러도 대답이 없잖아.”

“으응…. 맞바람이 세게 불고 있어서 우리 목소리가 안 들리나 보지.”

“우리가 지금 시속 10루일은 되는 거지?”

“바보냐! 시속 100루일도 될…윽‥! 될 거다.”

“목을 따라가서 큰소리로 말하면 들리지 않을까?”

넓은 보그의 등에서 그의 등뼈 줄기를 따라가면 길고 좁은 목덜미가 나온다. 아까부터 많아진 구름 때문에 그 끝이 보이지는 않지만 틀림없이 그 마지막에는 보그의 머리가 있을 것이다. 거의 50펜더가 다되는 보그의 몸길이로 예상을 하자면 10펜더는 가야 그의 머리가 나올 것이다. 할 수 없이 보그의 머리쪽으로 향하려 했던 그 순간 둘은 뭔가 모를 이상한 충격과 함께 몸이 붕 뜨는 느낌을 받았다.



BGM : Calling you from Bagdad Cafe O.S.T.



보그는 설산에 들이박은 머리를 뽑아내더니 털털한 웃음소리를 내면서 다시 날갯짓을 시작했다.

“하하하하 그만 졸다가 실수를 했구나. 걱정마라. 이제는 안잘 테니까. 자-간다!”

설산에 들이받고도 아직 잠에서 덜 깼는지 보그는 고개를 흔들거리면서 몸을 하늘로 잡아당긴다.

-슈아아아아악-

거대한 날개 짓과 함께 보그의 몸은 다시 창공으로 솟아올랐고 힘찬 날개 짓으로 한 번에 수 루일을 날아간다. 너무나도 가벼워서 등에 탔는지 안탔는지 모를 정도라는 일행을 등에 태우고 있다고 생각하고서…. 눈 속에 처박혀 있던 크라뮤와 시바는 한동안 눈 속에서도 수영이 아니 설영(雪泳)이 가능한지를 실험했다.

“끄응…. 역시 저런 바보를 믿는 게 아니었어. 헥헥.”

시바는 두 앞발로 맹렬히 눈을 파헤치고 눈 속에서의 탈출에 성공을 했다.

“크앙! 이게 무슨 꼴이냐고! 얼라? 안보이네? 어디 간 거야? 보그---! 어이 보그나인 헬리버어어어어-!”

-버어어어어어-

시바의 우렁찬(?) 절규에도 불구하고 외침은 외로운 메아리를 만들면서 다시 되 돌아 올 뿐이었다.

-휘유우웅-

갑자기 세찬 찬바람이 불어 시바의 콧등을 스치고 지나간다. 쌀쌀맞은 정도는 훨씬 넘어선, 시바의 일생에 있어서 경험해보지 못한 매서운 한기의 바람이었다. 북풍은 칼날처럼 날카로운 기운으로 몰아치고 온 누리는 빙설로 뒤덮여 있었다. 시바의 눈에 들어오는 것은 온통 찬바람과 하얀 눈뿐이었다. 보그를 몇 번 불러 봤지만 돌아오는 것은 메아리뿐이요. 그 시커멓고 덩치 큰 보그는 찾아 볼 수가 없었다. 시바는 이런 빙원에 떨어져 버려진 것이 무척이나 신경질이 나는지 앞발로 눈덩어리를 세게 걷어찬다.

“아얏!”

마침 그곳으로 머리를 빼내던 크라뮤가 다시 세상을 보자마자 느낀 것은 차가운 바람도 아니요, 하얀 설원의 절경도 아닌 시바가 날린 신경질적인 앞발 일격이었다.




“저기 보이는 마을이 우리들 목적지인 벨기어스란다.”

보리스의 말에 크라뮤와 시바는 환상적인 추억에서 깨어나면서 보리스가 말한 대륙 서단에 위치한 벨기어스를 보게 된다. ‘벨기어스’는 크로세아 대륙 중심에 있었던 헬바이드 왕가가 최초로 서방원정을 시작했을 때 발견한 최서단의 마을이었다. 지금은 ‘코슬란’이라는 해양도시가 세워져 서쪽 끝 마을이라는 호칭은 넘겨주고 말았지만 춥기 그지없는 서풍산맥과 빙원 중간에 위치하면서도 기이하게 언제나 봄 날씨를 유지하는 곳으로 옛 부터 많은 여행자와 모험가의 휴식처로 알려진 곳이다.

자기가 살던 집에서 나온 지 얼마 안되는 크라뮤와 시바 같은 촌닭은 알 수 없는, 유서가 깊은 그러한 마을이었다. 마왕 카이라에 의해 제국이 이루어진 이후에도 벨기어스는 하실리아 지방의 대도시 ‘모스’와 ‘알바란’을 이어주는 교통의 요지요. 공산품의 이동을 위한 행상인들의 경유지로서 그 명맥을 유지했다. 비록 동부에 생긴 대단위 오락 도시인 알바란 덕분에 많은 인구가 그곳으로 이주했고 덕분에 벨기어스는 이전과 같은 번잡함은 없었지만 역시 많은 주민들이 남아 유목과 경지를 일구면서 살고 있었고 여행자와 행상들의 중간 휴식처로 그 이름을 유지하고 있었다. 또한 알바란에서 소모되는 각종 식재료들이 이곳에서 만들어지기 때문에 이곳의 규모는 줄었다고 해도 마을은 부유한 편이었다. 덕분에 작지도 크지도 않은 이곳 벨기어스는 빠른 발전을 보이고 있는 소도시라고 할 수 있다.

대마왕 카이라에 의해 제국이 세워진지 48년이 되는 10월 어느 날 일이다. 벨기어스의 아침은 언제나 마찬가지로 추수를 마친 곡식으로 빵을 굽는 아낙네들의 수다가 있었고, 곧 있을 마을의 수확제와 알바란에서 있을 페스티벌로 마을 처녀와 총각들은 들뜬 마음으로 흥겹게 서로의 일에 시작을 알리고 있었다. 이곳 벨기어스는 많은 여행자를 위해서 가게가 많은 편이었다. 비록 대도시의 그것에는 못 미치는 자그마한 규모이지만 마을의 중앙을 가로지르는 대로를 사이에 두고서 많은 점포들이 삼삼오오 짝을 이루고 있었다.

이 점포들 사이에 1달 전부터 영웅지원대라는 이상한 가게가 생겼다. 이 가게는 파는 것보다는 사는 것이 주이고 판다고 해도 물품을 받지 않는 경우도 허다했다. 각 지방에서 몬스터나 보기 드믄 요상한 것들을 잡은 자들이 이곳에서 물건을 팔고 이상한 말을 나누다가 어디론가 사라지고 했다. 이 가게를 경영하는 주인은 털북숭이의 덩치 좋은 홀아비로 이 마을에서는 이사 온지 6달 정도 되는 신참이었다. 하지만 다른 이들과 사고파는 종류가 틀려서인지 별 다른 충돌 없이 마을사람들과 잘 지내고 있었다. 이 시장거리에도 여지없이 아침이 왔고 처녀들의 간드러지는 웃음소리와 대장장이의 망치질 소리, 빵 굽는 향기가 어우러지기 시작했다. 노래와 휘파람을 불며 농장이나 밭으로 향하는 청년들의 즐거운 분위기도 마을의 활기찬 하루를 축복하는 듯하다. 이런 때에 말을 탄 한 사나이와 꾀죄죄한 몰골의 소년. 검정 강아지가 나타났다.

사나이는 사나운 여정을 거쳐 왔다는 것을 자랑하듯 울퉁불퉁한 근육을 아침 햇살에 뽐내듯 했고 소년은 먼지가 폴폴 일어날 것 같은 헐렁한 로브를 걸치고 있었다. 검정 강아지는 쉴 새 없이 꼬리를 흔들면서 주위를 두리번거리는데 이 마을에서 볼 수 있는 종은 아니었다. 이 일행은 크라뮤와 시바, 그리고 광전사 보리스다. 마을 어귀에 도착했을 때 광전사 보리스는 크라뮤와 시바에게 말했다.

“그런데 저곳에서 네 친구 시바는 조용히 있는 게 좋을 것 같구나?”

“왜?”

“물론 나 같은 모험가야 이런 저런 것, 보고 들은 게 많아서 이해를 하고 넘어간다고 하지만 아직 마왕군에 반항을 계속하고 있는 저 자그마한 마을 사람들이 네 친구를 보게 되면 틀림없이 불길한 마수의 일종이라고 생각하고 난리를 칠 것이 뻔하거든.”

“어차피 똥개니까 말 안 해도 상관없어.”

“캥! 웃기는군, 나같이 전통과 역사를 같은 집안의……”

“결국은 똥 먹고 말하게 된 똥개지.”

“너 자꾸만 치사하게 나온다 이거지?”

“말하고 다니면 너 똥 먹은 개라고 소문내고 다닌다.”

“끄으응, 치사하다, 그래 안 한다 안 해. 나중에 집에 가서 두고 보자고 내가 아빠한테 이르나 안 이르나.”

말을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는 듯 시바는 크라뮤의 로브 안에서 두발을 꺼내더니 통-하고 튀어 오른다. 어느 정도 추위가 가신 탓에 시바는 땅위에 서 있어도 괜찮다는 알게 된 것 같다. 바닥에 내려선 시바는 뒤에서 따라오는 크라뮤와 보리스가 탄 말의 발길을 피하면서 사방을 두리번거린다. 신기한 눈치다. 역시 촌 강아지의 모습을 드러내는지 크라뮤와 보리스가 타고 있는 말 앞을 얼쩡거리면서 촐싹거린다.


자신들의 집 이외에는 밖으로 나가 본적이 없는 둘은 어쩌면 그리도 똑같은 표정을 지으면서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마을 주민들은 이곳을 지나는 많은 여행자를 보았기 때문인지 별로 신기해 쳐다보는 이가 없었다. 모두가 자신의 일이 시작되는 아침이어서 인지 흘끔하고 쳐다보기만 하고 지나 칠 뿐이다. 전날 밤 과음을 해서인지 술통 위에 앉아 있던 노인 한 둘만이 크라뮤와 보리스를 향해서 [벨기어스에 잘 왔소이다]라는 인사를 건넬 뿐이다.

크라뮤 일행은 곧 마을의 중앙대로에 도착했고 곧 떠들어대는 장사치들의 호객, 이 마을을 지나치는 여행자들인 듯한 많은 이들이 움직이고 있었고 아침치고는 제법 왁자지껄하다. 보리스는 말에서 내려 안장에 묶어 둔 화이트 사라맨더의 주검을 풀기 시작했다.

“이곳에는 마법진이 없지만 마법가 정도는 있을 지도 모르는 일이지. 너의 잃어버린 일행과 다시 만나려면 제법 레벨이 높은 친구가 되야 하겠지만 알아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거다.”

보리스는 이곳에 온 목적이 있었다. 마왕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다시 인간들의 행복을 찾기 위하여 대륙의 현자 '미셀 드윈'이 만들었다는 곳, 젊은 영웅들의 지원을 받는 곳이 이곳에 있기 때문이다. 대마왕 카이라의 법은 단순하며 간단했다. 제국에 반란을 주동하는 자들의 모임이라 할지라도 실제로 그러한 행동을 보이기 전까지는 아무런 제약을 받지 않았다. 물론 대륙의 중심부에서 그런 영웅지원대를 만들고 크게 선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변두리 마을정도라면 그렇게 간섭이 심하지 않았다. 덕분에 간간히 만용을 부리는 인물들이 자기주장을 펼치면서 반 제국시위나 반 제국 단체의 결성을 주장했지만 그런 것은 언제나 볼 수 있었던 일이기도 했다.

하지만 근래에 결성된 미셀 드윈의 ‘빛의 광장’은 조용히, 그리고 착실하게 카이라가 없어진 지금, 제국의 미래를 준비하는 유일한 ‘인간들의 모임’이라는 말을 들은 보리스는 오늘 결심을 굳히고 온 것이다. 물론 그 결심을 굳히게 한 계기는 이미 마련되었으니 정열을 바쳐서 새로운 미래를 만드는데 일조하고 싶었다고 하겠다.

“자, 너희들은 이 근처에서 놀고 있어라. 난 볼일을 마치고 오지.”

보리스가 찾는 목표의 가게는 금방 눈에 띄었다. 그리 크지도 작지도 않은 분수대 옆의 상가가 있었고 그곳에 적당한 크기의 글씨로 [영웅이 되고 싶으면 오슈]라는 문구가 보였다.

보리스는 어깨에 둘러맨 화이트 사라맨더의 주검을 힘 있게 흔들며 그곳으로 향했고, 별로 할 일없는 크라뮤도 쪼르르 따라갔다. 가게의 주인인 듯 보이는 털북숭이 중년 남자는 보리스가 자기 가게 쪽으로 오자 습관적인 미소와 문구를 늘어놓는다.

“자아~ 나이, 과거, 성별. 모든 것을 묻지 않습니다. 능력이 있고 강한 의지의 소유자라고 자처하는 자는 누구나 들어올 수 있답니다. 어서 영웅군에 지원하십시오.”

털북숭이 아저씨는 이렇게 말하고 있었고, 입가에는 산뜻한 미소를 지어 보이고 있었다. 까놓고 제국에 대항하는 이를 모은다는 소리는 하지 않는다. 이런 저런 도망갈 길을 만들어 놓기 위해서 이다. 모르는 이들이 보면 용병을 모집하는 중계인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보리스는 이곳에서 빛의 광장이 모집하는 영웅군 지원소라는 정보를 확실히 가지고 있었다. 보리스는 이 털북숭이의 앞에 멈춰 선다. 털북숭이는 입가에 띄운 미소를 지우지 않고서 계속 말을 했다.

“자네는 자신의 능력을 과신을 하는 것은 아니겠지? 이 영웅지원대는 누구나 지원을 할 수는 있어도 신전의 시련을 견뎌 내지 못한다면 시간을 소모하는 것일 수도 있네. 게다가 이렇게 늦은 시기에 지원을 하는 것을 보면 내심 고민도 많이 했을 것 같은데….”

“빛의 광장에서 영웅을 모집한다는 것은 전부터 알고 있었소. 내가 조금 늦은 이유는 이 녀석을 잡기 위해서지.”

보리스는 어깨에 메고 있던 하얀 물건을 털북숭이가 있는 접수대 위로 올려놓는다.

-털썩-

제법 나가는 무게의 화이트 사라맨더는 접수대를 들썩이게 한다. 털북숭이 주인은 그것을 자세히 바라보더니 눈가의 주름이 펴진다.

“이…… 이것은 설마? [빙벽의 이빨]인가?”

“아마도 틀림이 없을 겁니다. 작년에도 이 녀석과 싸운 적이 있어서 기억을 하고 있는 거지만요.”

보리스는 좀 싱거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털복숭이 주인은 이 친구가 웃는 것에 소질이 없어 보인다고 생각을 했다. 물론 보리스가 이런 어핵한 웃음을 지어보인 것은 자신이 직접 때려잡은 녀석이 아니기 때문에 그 어색함을 없애기 위해서이다. 물론 과거 자신이 먹여둔 일격으로 인해 나중에 죽은 것이라고 믿고 있지만 말이다. 하지만 털북숭이 주인장에게 그것은 중요 한 것이 아니었다. 왼손에 쥐고 있던 파이프를 탁탁 털고 일어나서 [빙벽의 이빨]을 이리저리 살핀다. 그가 알고 있고, 말로 듣던 동북빙원에서 유명한 난폭자 [빙벽의 이빨]이 틀림이 없었다.

“모…, 몰라봐서 죄송하구려. 50년 동안 마을 여행자들을 괴롭혀온 이 괴물을 잡아온 자네를 내가 몰라보았구먼.”

“그런 정도는 이해합니다. 어차피 이 녀석을 잡은 것도 운이 좋아서요.”

“운이 좋기만 해서 잡을 수 있는 녀석이 아닐세. 자넨 나이에 비해서 제법 많은 경험을 한 노련미가 보여. 전쟁을 겪은 세대로는 안보이지만 말이야.”

“하하하, 마왕군과의 전쟁 때 할버트 하나로 적진을 봄바람처럼 돌파한 형님 앞에서야 우스운 정도입니다.”

털북숭이는 눈앞에 있는 젊은 친구가 전쟁 때 자기 별명을 알고 있자 놀란 듯, 잠시 조심스럽게 보리스의 안색을 살폈다. 하지만 곧 상대에게 믿음이 간다는 눈빛을 하고 입을 놀린다.

“후~. 그때를 돌아보면 지금 아무리 생각 해봐도 무모한 짓이었지. 결국 그 돌파작전 때 얻은 상처로 난 군에서 나오게 됐고 이렇게 살아남아서 동료들의 전사 소식이나 듣고 지내는 신세가 되었네.”

“겸손하신 말씀을 하십니다. 어떤가요? 선배님이 보시기에 제가 영웅군에 지원 할 자격이 있어 보이십니까?”

“자네 같은 이가 아니면 누가 대마왕이 없어진 이 세상에 빛을 뿌리겠나! 환영하네!”

털북숭이 주인은 너털웃음을 터트리면서 보리스에게 한 장의 지도를 건네주었다. 그리고 지도에 표기된 장소에서 누구를 만날 것이며 그와 나눌 암호를 가르쳐 준다. 그리고 영웅군 지원 자격을 증명하는 은색의 메달을 받아든 보리스는 간단한 인사를 마치고 바로 떠나겠다며 돌아선다. 뒤에서 졸졸 따라다니면서 그것을 전부 지켜본 크라뮤는 은색의 메달을 보여 달라고 조른다.

“그건 뭐야? 좀 보자고.”

“허허허. 이것은 이 세상을 평화의 길로 안내하는 용사의 상징이란다. 아직 너 같이 어린 꼬마가 만지기에는 경험치가 부족하다고 하겠구나. 그러나 젊은 영웅지원자인 자네에게 보여주지 않는다면 인생의 선배로서 너무 째째한 모습이겠지.”

보리스는 좀 우쭐하는 태도를 보이면서 크라뮤에게 손바닥 안의 메달을 보여준다. 메달은 은으로 코팅이 되어 있었고 가운데에 빛의 모양과 날개를 펼친 큰 새의 모양이 새겨 있었다. 여기에 축복을 받았는지 메달의 주위에는 파르스름한 기운이 흐르고 있었다. 보리스는 크라뮤가 손을 뻗어 은메달을 만지려고 하자 재빨리 주머니에 넣는다.

“나중에 너도 크면 이런 메달을 받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때는 우리 영웅군이 마왕군을 무찌르고 난 이후라서 어쩌면 네가 활약할 기회가 없을지도 모르겠지. 하하하.”

무척이나 유쾌한 듯 보리스는 고개를 젖혀 웃어 보인다. 크라뮤는 약간 이맛살을 찌푸리고 있다가 다시 표정을 평상시의 순진해 보이는 모습으로 바꾼다. 보리스는 드래곤 나이트가 되기 위해서 여행을 하는 이 어린 친구가 기가 죽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아직 어리지만 좀 특이한 능력의 소유자임에는 틀림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보리스와 크라뮤는 광장의 구석에 묶어 둔 말이 있는 곳까지 간다. 시바는 그 근처를 서성거리면서 주위를 구경하고 있었다. 보리스는 말 안장에 달린 가죽 주머니에서 천으로 된 작은 주머니를 꺼낸다. 그것은 그가 여행과 모험을 해오면서 모은 돈이다. 하지만 자신은 곧 영웅군에 들어간다. 이런 돈은 자신보다는 어리고 외지에 나와 있는 크라뮤와 시바에게 더욱 필요 할 것 같았다.

“이건 얼마 안 되는 돈이지만 자네가 가지게나. 난 이제 필요하지 않을 것 같거든.”

크라뮤는 싫다 좋다 하는 표정도 없이 보리스가 건넨 작은 주머니를 받아 든다. 제법 묵직한 느낌이 드는 것을 보니 얼마 안 되는 돈은 아닌 듯싶다. 하지만 크라뮤는 아무런 말도 없이 그것을 자신의 헐렁한 로브 안으로 쑤셔 넣는다. 그 모습을 본 보리스는 그 로브가 크라뮤의 몸에 비해서 무척 큰 옷이지만 이것저것 넣을 장소가 있는 짐 보따리의 역할도 하는 실용적인 옷이라는 알 수 있었다.

“크라뮤군. 나는 영웅지원군에 들어가네. 자네는 아직 어려서 격변의 시대를 살아가기에 힘이 들겠지만 비스트마스터 자질도 보이는 것을 보니 쉽게 험한 일을 당할 것 같지는 않아. 난 내가 선택한 길을 가야하기 때문에 더 이상 자네를 돌보지 못하고 떠나지만, 참고 수련을 계속하면 젊은 영웅으로서 세상을 놀라게 할 인물이 될지도 모르네. 자네 가문 수업이 끝나는 날까지 내가 살아남게 되면 그때 다시 만나기로 하자고.”

약간 긴장한 보리스는 자신의 말안장에 짐을 얹고 올라탄다. 세상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이런 시기에, 자기 자신의 길이 앞으로 어떻게 펼쳐 질 지는 그와 같이 용맹한 광전사도 장담 할 수가 없는 것이다. 보리스는 영웅지원대의 접수자 [할버트의 봄바람]에게 받은 2차 영웅지원군의 집결장소로 향하는 지도를 넣어둔 가슴의 안주머니가 있는 곳을 다시 한 번 쓰다듬어 보고 크라뮤와 시바를 보았다. 확고히 결심을 굳힌 모습이다.

“그럼 자네들 앞길에 운명의 선택이 언제나 같이 하기를 기원하네.”

이렇게 힘찬 한마디를 남긴 보리스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바로 자신이 온 그 길로 아침 해를 받으며 떠나갔다.



BGM : MOON RIVER from ANDY WILLIAM


보리스가 떠난 후 남겨진 크라뮤는 조금 생각하더니 대뜸 시바에게 말을 꺼낸다.

“나도 들어가야겠어. 저 영웅군이라는 곳!”

“껭? 무슨 소리야. 저런 인간들이 모여서 주접떠는 게 뭐가 좋다고?”

“어쨌든 나도 뭔가 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야 돼. 저런 광전사도 들어가는 곳인데 내가 못 들어간다는 게 말이 안 되잖아”

“그런 거 증명해서 뭐하게? 그냥 우리는 보그가 우리를 찾을 때까지 여기서 먹고 자고 있으면 되는 거 아냐?”

“내가 허락 받은 시간은 3년뿐이야. 이런 곳에서 어물거리다가 그 돌 머리 보그가 우리를 찾는데 몇 달이라도 걸려 봐. 너 할아버지가 보신탕감이라고 입맛 다시던 생각나지 않나 보지?”

크라뮤의 말에 시바는 눈을 크게 뜨고 꼬리를 내렸다.

“주인이 되가지고 그런 공포 발언까지 해 가면서 핍박하면 재미있나 보지? 나중에 아빠한테 일러서 조합에 탄원서 보내라고 해야지.”

“흥. 네 아빠 라거는 우리 집 수문장이라는 것을 알아야지. 게다가 형제 중에서 제일 능력 없는 너 하나 때문에 생계를 포기할 것 같아?”

시바는 큰 눈을 데굴데굴 굴리면서 생각하는 듯 하더니 캥! 하고 한숨을 쉬었다.

“치사하다…. 알았다고. 저 인간들이 모이는 난리굿에 끼던지 말든지 맘대로 하라고 난 틀림없이 말렸으니까.”

“난 빨리 이런저런 시련을 거쳐서 신전으로 가지 않으면 안 된다고. 보그가 우리를 찾는데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는 모르겠지만 그 동안 나도 그냥 놀고먹을 수는 없으니까.”

크라뮤는 아까 보리스가 하던 행동을 예시주의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털북숭이 아저씨가 있는 곳으로 달려간다. 그리고 자신도 영웅군이라는 곳에 들어가겠다고 말했다. 물론 크라뮤 자신은 그곳이 어떤 곳인지 무엇을 하는 곳인지 알 리가 없다. 그냥 보리스가 말한 대로 뭔가 멋진 시련이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들어가겠다고 하는 것이다. 아주 엉뚱하기 그지없는 소년의 말이지만 아까 보리스가 지원을 할 때 옆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었던 크라뮤를 기억하고 있던 털복숭이 사나이는 보리스와 인연이 있는 아이라고 생각하고 바로 답변을 해주었다.

“아하하하하. 꼬마야. 네 마음은 알겠다만 여기는 너희 같은 애들이 놀 장소가 아니란다. 나중에 좀 더 크거든 오너라. 그러면 이 ‘할버트의 봄바람’이 네 용기를 기억하고 입회를 해주마.”

“왜 안 된다는 거지? 내가 어려서? 나이는 상관없다고 했잖아?”

“쩝, ……거참, 나이는 상관이 없다고는 했지만 너 같은 어린아이가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느냐? 잘 해봐야. 하급 악마들의 먹이나 되는 결과가 뻔히 보이지 않느냐?”

“… 안보여.”

“…… 으응, 강적이로군.”

할버트의 봄바람은 팔짱을 끼고, 고개를 살짝 들어 조금 위압적인 인상으로 이 고집 부리는 아이를 어떻게 돌려보낼 것인가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한 달 전부터 접수를 받으면서 별로 쓸 만한 인재가 모이지 않는 것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잃지 않고 끈기 있게 접수를 받다가 조금 전 화이트사라맨더를 잡은 광전사를 추천하게 되어 무척이나 상쾌한 하루를 시작한 그로서는 이 자그마한 아이의 농담 같은 접수에 화가 나기보다는 가벼운 웃음으로 넘기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래. 꼬마야. 이곳에 접수를 하려면 영웅의 자질이 있는지를 시험한단다.”

“자질? 뭘 가지고 시험하는데?”

“음, 세상은 넓고 사람이란 자기가 가지고 있는 특기가 있기 마련이지. 하지만 우리는 목수나 요리사를 찾는 게 아니라 영웅의 파티를 만들기 위한 전사를 찾는 거란다.”

“응, 아까 들어서 알아. 그래서?”

[참 꼬마가 끈질기구나.…] 라는 생각을 하면서 할버트의 봄바람은 다시 말을 이었다.

“그래서, 우리 빛의 광장에서는 그러한 자격이 있는지 없는지를 한눈에 파악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접수자의 공적을 말하게 하거나 전리품을 가져오게 하지.”

“응, 그래서 보리스도 화이트사라맨더 잡으러 왔으니까.”

“응, 그렇단다. 꼬마야. 그렇게 뛰어난 자기 능력을 보여 줄 수 있는 사람만이 이곳에 접수를 할 수 있다고 볼 수 있겠지. 알겠느냐?”

“아니 모르겠는데.”

고개를 가로젓는 크라뮤의 천진난만한 눈빛을 본 할버트의 봄바람은 미간에 주름을 지어보인다.

[끈질긴 게 아니라 조금 덜떨어진 아이였구나. 쯧 쯧 불쌍하게도 귀엽게 생겼는데 어쩌다 저런 나이에 영웅군에 지원을 하겠다는 소리를 하는 것일까? 마왕군에게 가족이라도….?! 크흐, 그렇다 틀림없다. 이 아이는 자기 부모의 원수를 갚으려는 일심에 이곳에 지원을 하려고 하는 게 틀림없다. 이 얼마나 심금을 울리는 이야기란 말인가~ 훌쩍.]

할버트의 봄바람은 나름대로 혼자 크라뮤의 처지를 이해해버리고 다시 한 번 크라뮤의 옷차림을 자세히 보았다. 더럽고 여기저기가 찢어진 것처럼 보이는 헐렁한 로브를 입은 거무튀튀한 피부는 마치 전쟁고아를 보는 듯 했고 더부룩한 검은 머리는 오랜시간 씻지 않아서 개기름이 흐르는 것처럼 보였다. 작은 왼손에 쥐고 있는 말라 비틀어져서 꼬부라진 나무지팡이(롯드)같은 것을 보니 더욱 처량하게 보였다.

게다가 로브 안에는 웬 시커먼 강아지 얼굴이 보이는 게 아닌가. 보이는 각도에 따라서는 비루먹은 개로 보일 수도 있는 멍청한 강아지의 눈을 보니 할버트의 봄바람은 어느새 눈물샘이 촉촉이 젖어드는 것과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할버트(槍斧)를 봄바람과 같이 부르럽게 쓰면서 전쟁터를 누빈 것으로 유명세를 떨쳤던 그였지만 은퇴한 이후, 이렇게 마을 생활을 하면서 정이 많아진 그였다.

[크으-, 내가 왜 진작 이 아이에게 좀 더 친절하게 대해주지 못했을까. 아아, 자비의 여신 엘미, 루비나시여. 저의 불찰을 용서하소서.]

잠시 자신의 과오를 참회한 할버트의 봄바람은 행낭에서 빵과 꿀병을 꺼내서 크라뮤에게 내밀었다.

“자 이거라도 먹으려무나. 이 아저씨가 눈치가 없다 보니 네 사정을 이제야 이해 할 수 있었구나.”

“그럼 나 들어가도 되는 거야?”

“우선은 먹고 이야기하자꾸나.”

크라뮤는 주는 빵과 꿀을 받아 들었다. 오늘 아침에 바로 구운 빵이어서 냄새가 구수하기 그지없었고 아직 촉촉한 찰기가 남아있어서 부드럽게 씹히는 맛이 좋았다. 크라뮤는 한입 물어서 맛을 본 후 반을 뚝 잘라서 시바의 입에 넣어 주었다.

“먹어.”

“키앙!”

시바는 기쁨의 소리를 지르며 빵을 덥석 물었다. 시바도 그 동안 제대로 먹지 못했다. 못난 주인 덕에 고생문이 폈다고 괴로워하던 시바는 그래도 손에 떨어진 맛있는 빵 절반을 바로 잘라 주는 주인을이 조금 철들었다고 생각하면서 앞으로 2, 3번 정도 자기에게 무례한 말을 해도 참아 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할버트의 봄바람도 그런 크라뮤와 시바의 모습을 보면서 자신도 배고플 텐데도 강아지에게 나누어 주는 크라뮤의 마음씀씀이에 다시 감동을 받으며 이웃집 식료품 아주머니에게 우유를 부탁했다. 아까부터 크라뮤와 할버트의 봄바람의 우스운 말싸움(?)을 듣고 있던 옆자리, 식료품집 아주머니도 웃으면서 우유를 큰 잔에 가득 넣어 크라뮤에게 주었다.

“어린아이가 참 장하네요. 이런 아이들만 있으면 곧 우리들의 세상도 밝아 질 거예요.”

우유 잔을 건네는 아주머니는 기특하다는 표정으로 웃으면서 할버트의 봄바람에게 말했다. 할버트의 봄바람도 싱긋 웃으면서 몹시 게걸스럽게 먹고 있는 크라뮤를 보고 있다. 크라뮤는 기뻤다. 뭔지 모르겠지만 자신을 칭찬하는 분위기에 기분이 좋은 것이다. 자신에게 맛있는 빵과 우유를 준 이들에게 뭔가를 자랑하고 싶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무엇인가를 보이고 싶었다. 크라뮤는 아까 할버트의 봄바람이 말한 것에서 자기 특기를 생각 해냈다. 생각을 마친 크라뮤는 아까보다 환한 웃음을 가지고 다시 할버트의 봄바람에게 말을 걸었다.

“나, 나말이야 마법 할 수 있다.”

“호오~ 마법을! 그것 참 대단하구나.”

“보여줄까?”

“그래, 그래 네가 할 수 있는 최고의 것이면 되겠구나. 어디 한번 이 할버트의 봄바람을 놀래게 해보려무나. 내가 깜짝 놀랄 만한 것이라면 특별히 너를 영웅지원군에 넣어 주마.”

웃으며 말하는 그를 보면서 옆의 빵집 아주머니가 츳츳거리면서 혀를 찬다.

“당신은 사람은 좋은데 그렇게 어린아이한테까지 실없는 농담을 해서 쓰겠어요? 전 번에 마을에 마왕군의 스파이가 있다고 실없는 소리해 가지고 사람들이 얼마나 난리를 쳤어요. 괜히 어린아이를 데리고 장난치지 말고 오늘 잘 곳이나 찾게 도와주는 게 어때요?”

“그렇지 않아도 이일만 끝내고 같이 이 아이가 머물만한 곳을 찾아 볼 생각이요. 이 아이를 보아하니 부모를 잃은 고아같은데 공민관에 말해서 좋은 집안에 양자로 보낼 수 있게 해봐야지. 뭐 안 되면 내가 돌보지.”

“쯧 쯧 홀아비인 주제에 동정심만 많아 가지고서는… 그래서는 장가도 가기 전에 혹만 주렁주렁 달게 된다니까요. 그러지 말고 전 번에 내가 말한 목수집 큰딸 에리아하고 어때요?”

털북숭이와 아줌마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그 둘의 이야기는 상관없다는 듯 크라뮤는 중얼거리고 있었다. 크라뮤는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얼마 정도 시간이 지났을까? 모여진 마나의 힘들이 손안에서 진동을 일으키고 있었다. 드디어 주문이 완결된 것이다. 어느덧 해는 서산으로 기울고 있었고 자신의 그림자는 길게 늘어지고 있었지만 주문이 끝난 크라뮤는 기뻐서 할버트의 봄바람을 향해 큰소리로 말했다.

“끝났어! 이제 보여줄까?”

“응?”

할버트의 봄바람이 고개를 돌려 꼬마 크라뮤가 두 손을 모으고 자신을 쳐다보는 모습을 마주 보았다. 꼬마의 두 손에서는 기이한 공간의 출렁임이 보였고 주황색 기운이 넘실거렸다. 전장에서도 물론이요, 이곳에서 접수를 맡으면서 그는 제법 많은 마법가의 시전을 구경했지만 이런 현상은 처음 보는 것이었다.

“얘야. 그게 무슨 마법이냐? 정말로 넌 마법의 영창을 하고 있었던 거냐?”

크라뮤는 그의 질문에 자랑스럽게 마법의 이름을 말했다.

“이거? 카오스!”

-파아아아-

시술자인 크라뮤의 입에서 마법명이 나오는 순간, 주황색의 오라는 더욱 강렬한 빛을 발하면서 사방으로 뻗어 나가기 시작했다. 동시에 크라뮤의 두 손 사이에서 출렁이던 공간이 검붉은 기운을 쏟아내면서 투명한 기운을 만들어 넘치기 시작했다.

-치이이이익-

듣기에도 끔찍한 소리를 내면서 뻗어나는 주황색기운에 접촉한 물건들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주황빛 기운들은 마치 살아서 움직이는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여기저기에 있는 물체를 찾아서 뻗어 가기 시작했고 무거운 공기의 흔들림이 있었다.

“이… 이게 무슨 난리냐?”

할버트의 봄바람은 급작스러운 변고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눈부신 주황빛에 급히 자신의 얼굴을 가리는 것이 다였다.

“꺄아아아아~~!”

길을 지나던 아낙네가 주황빛오라에 몸이 감싸이더니 주르륵-하고 녹아 내려버렸다.

-쿠우우웅-쿵-쿵-

심한 진동음과 함께 사방의 집들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건물뿐만이 아니었다. 도로며 분수대며 마구 요동을 치면서 갈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쿠르르르르-

땅에서 심한 흙먼지가 광풍과 함께 피어오르더니 놀래서 집에서 뛰쳐나온 사람들의 시야를 마비시켰다.

“우아아아악!”

“사람 살려!”

“꺄아아아아!”

아비규환의 장면이 사방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크라뮤는 두 손을 풀면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느새 마을 전체로 퍼진 마법장력은 소리까지 삼켜가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이 연출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크라뮤는 할버트의 봄바람을 보았다.

“난…. 난 해보라고 해서 한 건데… 아저씨??!”

이미 접수대는 녹고 부서져서 일그러진 마법의 장력 안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주위의 나무들이 엿가락처럼 늘어지면서 바닥을 기어 다니고. 펑, 펑 하는 폭발음과 함께 땅에서 짙은 갈색의 용암들이 솟아 올라왔다.

“케켕! 주인아 뭐 한 거야!”

시바가 타오르는 불기둥을 피하면서 크라뮤에게 다가왔다. 시바도 자다가 갑자기 이런 꼴을 당해서 그랬는지 등과 머리털이 약간 그을려 있었다.

“난. 그냥….”

-콰아아앙-

엄청난 소음과 함께 폭진이 날렸다. 그리고 조용해졌다. 마법이 종결된 것이다.



벨기어스라는 마을의 간판은 반쯤 타고 녹아서 바닥에 널 부러져 있었다. 그 외에는 깨끗했다. 아무 것도 없었다. 바람도 불지 않는다. 강력한 마력의 집중으로 주위 자연경관이 이상해져서 공기의 흐름이 원활히 되고 있지 않았다. 재만 남았다고 하기에는 이상하고, 폐허라고 하기에는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과거 벨기어스라는 마을이 있었던 넓은 공터에 크라뮤와 시바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시커멓게 그을린 커다란 반원의 흔적이 이곳에서 무엇인가가 폭발했었다는 흔적을 말 할 뿐 아무 것도 없었다.

크라뮤는 멍하니 서 있었다. 자신에게 우유를 주던 아주머니도, 머리를 쓰다듬으며 이상한 혹이라고 놀리던 대장간 아저씨도, 공부하기 싫다며 분수대로 뜀박질하던 아이도, 어디 마법을 해보라며 팔짱을 끼고 웃던 할버트의 봄바람도…… 아무도,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갑자기 서늘한 북풍이 크라뮤의 볼을 어루만지고 간다. 조금은 역겨운, 무엇인가 타버린 냄새도 크라뮤의 코를 자극한다. 시바는 자신의 그을린 털을 어루만져 보다가 멍하니 서 있는 크라뮤를 보았다. 시바는 이런 난리를 만들어 낸 주인에게 한마디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야~~ 이~~ 바보 주인…”

“으아아아아앙~~~~~~~~”

크라뮤는 울었다.

뭔지도 모르고 왠지도 모르겠다.

그냥 한없이 슬펐다.

시바도 그런 주인을 처음 보았다.

뭐라고 놀리지도 못했다.

“아앙앙~~~~앙~~~”

시바는 마냥 울고 있는 크라뮤를 보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옆에서 주인이 울고 있는 것을 지켜 볼 수밖에 없었다.

대마왕 카이라의 아들 크라뮤가 처음으로 한 파괴와 살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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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ZARD - 5부 외전 - 크라뮤의 매듭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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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HZ5外] 4장 매듭의 연결 (7) 13.02.10 426 2 50쪽
12 [HZ5外] 4장 매듭의 연결 (6) 13.02.10 419 1 50쪽
11 [HZ5外] 4장 매듭의 연결 (5) 13.02.10 395 2 64쪽
10 [HZ5外] 4장 매듭의 연결 (4) 13.02.10 403 1 37쪽
9 [HZ5外] 4장 매듭의 연결 (3) 13.02.10 440 1 63쪽
8 [HZ5外] 4장 매듭의 연결 (2) 13.02.10 386 1 55쪽
7 [HZ5外] 4장 매듭의 연결 (1) 13.02.10 404 2 54쪽
» [HZ5外] 3장 매듭의 시작 (4) 13.02.10 436 2 35쪽
5 [HZ5外] 3장 매듭의 시작 (3) 13.02.10 424 1 53쪽
4 [HZ5外] 3장 매듭의 시작 (2) 13.02.10 362 1 46쪽
3 [HZ5外] 3장 매듭의 시작 (1) 13.02.10 341 1 35쪽
2 [HZ5外] 2장 원수 13.02.10 448 2 49쪽
1 [HZ5外] 1장 봄이 왔다 13.02.10 602 2 6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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