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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보(漫報) 님의 문피아 서재입니다.

HAZARD - 5부 외전 - 크라뮤의 매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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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보(漫報)
작품등록일 :
2013.02.10 16:07
최근연재일 :
2013.02.10 19:08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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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2.10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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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쪽

[HZ5外] 1장 봄이 왔다

DUMMY

BGM : HERB ALPERT의 RISE앨범에서 1980



봄은 만물을 새롭게 탄생시키는 시작의 계절이다.

새로운 탄생은 희망과 젊음을 잉태하고, 활짝 피어 성숙해지면

아름다운 추억을 가지고 꿈의 바다로 떠난다.

다시 피어오를 생명은 모든 것들의 꿈을 먹고 새로운 탄생을 준비한다.

과연 이 새로운 탄생은 어떤 운명의 길을 만들어 나갈 것인가.

운명은 지능이 있는 모든 생명에게 선택의 길을 준비한다.

그 선택이 행복으로 가건 파멸로 이끌어지건 선택자의 어깨에 운명의 무게를 실어 주고 그 무게를 훌훌 떨쳐 버릴 수 있는 용기와 지혜를 주기도 한다.

용기를 가진 자는 그것으로 자신의 길을 개척해 나가고 그 길은 끝없는 모험의 수레바퀴가 되어 다시 자신에게 돌아온다.

지혜를 얻은 자는 앞서 걸어온 자들의 훌륭함을 본받아 그 지혜로 모든 것을 선택하며 그것의 진실을 추구한다.

운명이라는 수레바퀴는 선과 악을 조화롭게 이루어 냈고 그 조화 속에 선 인간들은 용기와 지혜로 자신의 길을 만들어 나갔다. 모든 것이 조화로운 세계는 꿈을 가졌고, 희망으로 무장한 인간들은 여행을 시작했다.

아름답고 황홀한 기쁨의 세계는 즐거운 만남을 이루게 했고 인간들은 서로를 이해하며 살아가는 지혜를 얻게 되었다. 이들은 신들의 영광을 알았고 자신들의 추한 면을 어루만져 주는 자상함에 감사했다. 그 자상함을 기리며 자신들 세상을 크로세아, 신들의 자비라는 이름으로 부르게 되었다.

땅에 서서 하늘을 바라보는 이들은 신의 축복을 바랬고 신들은 자신의 자식들에게 영광을 주었다.


                             -신원기(神元記) 중에서-


크로세아 대륙에서 최고왕조(最古王朝)로 알려진 헬바이드의 수도 라임시티에서 모든 소년 소녀들에게 선망과 동경의 대상을 물어보면 누구나 손을 꼽아 아텔리 가문의 차기 가주로 칭송받는 ‘로드 아텔리’를 입에 올린다.

빛나는 금발에 밝은 갈색 눈, 시원한 입가의 미소만 보면 라임시티 최고의 미소년 극단배우라고 해도 믿을 정도이다. 인간세계를 대표하는 7천국가문 중 하나인 아텔리 가문의 적자이면서 뛰어난 용모를 가지고 있는 덕분에 수많은 소설가와 음유시인들이 로드의 아름다움을 칭송하고 매일같이 새로운 시를 쏟아내고 있다.

그런 선망의 대상인 로드 아텔리는 ‘드윈 가문’과 함께 이 크로세아대륙에서 ‘용기’와 ‘지혜’를 대표하는 가문의 차기 영주인 것이다.

수백 년을 이어온 유서 깊은 칠천국가문(七天國家門) 중 하나로 그 영광의 역사는 바로 대륙의 역사이고 영광스러운 헬바이드 왕가의 자랑이라고 하겠다. 그런 시대의 아이돌과 같은 로드 아텔리는 지금 고민스러운 상황에 빠져있었다.

세상사람들에게 은덕이 있는 왕가 대주교가 내리는 설법이 인생에 있어서 꼭 필요한 영광이라고 말하는 경우도 있지만 로드는 그것보다 모험을 바라고 있었다.

아버지가 영웅으로 칭송받아 전설로 기록되고 있는, 그러나 정작 그 영웅의 아들인 자신에게 있어서는 따분하기 그지 없는 시기가 지금이기 때문이다. ‘천궁사전쟁’, 사람들이 소위 말하는 ‘마법대전’이 끝난 이후 대륙은 평화를 유지해왔고 수많은 기사들이 평화롭다 못해 나태함에 빠질 정도로 조용한 시기였기 때문에 이 혈기 왕성한 젊은 영웅후보는 역사에 자신의 이름을 외모가 아닌 실력으로 기록시켜 빛나게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로드에게는 큰 불만인 셈이다.

7천국가문은 왕가나 귀족, 민중에게 도움을 줄 수는 있지만 종속될 수 없는, 신권(神權)에 속한 가문이기에 국가 간 분쟁이나 종족간 대립, 가문 가주가 인정한 원정을 제외하고는 표면적으로 행동을 할 수 없는 규율이 있었다. 칭송받기 위한 것은 아니지만 세월이 평화로우면 무용(武勇)으로 알려진 아텔리 가문의 차기가주인 로드라고 해도 그 뛰어난 외모만으로 도시의 처녀들 마음에 봄바람을 일으킬 뿐, 정작 자기 인생에 있어서 끊임없이 수련해온 실력을 펼칠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가문을 이어받는 차기 가주로서 보여줄 수 있는 위용을 펼칠 기회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현 가주이며 로드의 아버지인 무스 아텔리가 헬바이드 왕명에 따라 원정을 간다는 소리를 듣고 어떻게 해서든 그 원정에 따라가고 싶었고 억지를 부리면서까지 허락을 받아 따라 나온 것 까지는 좋았다.



세속적인 욕심을 버리고, 영혼의 구원을 바라는 수도승은 아니었지만 대륙의 영웅 무스 아텔리와 그 아들 로드 아텔리가 가는 길에 모험과 멋진 이야기 거리가 잔뜩 만들어 질 것이라고 상상했던 로드는 자신의 첫 모험담으로 기록될지도 모르는, 또는 음유시인들에게 각색되어질 멋진 모험을 경험하게 될지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정작 아버지와 함께 한 이 여행길은 눈곱만큼도 재미가 없었다. 대륙 중심에 위치한 헬바이드 령 라임시티에서 대륙 북쪽 끝에 있는, 북마족(北魔族) 시미리언 영지까지 오는 동안 밀명을 받은 바 소임을 지키기 위해 인적이 드문 길만을 택하여 왔고 멋진 모험을 기대해 장만한 로드의 멋들어진 장비들은 시간이 갈수록 빛이 바라면서 무게만을 더해와 로드에게 피곤함을 더해주기만 했다.


로드는 지금도 지극히 깊은 심연의 나락과도 같은 어둠을 현 아텔리 가문 가주이며 헬바이드왕가 최고 군사이면서 군사 동원을 행사할 수 있는 아버지 무스 아텔리와 함께 걷고 있다. 아련한 달빛조차 끝없이 내려앉는 눈들에 의해 보이지 않을 정도였고, 그저 바닥을 덮고 있는 한없이 넓은 설원 끝자락을 바라보면서 아텔리 부자는 계속 걷고 있었다.

로드의 나이에 이미 ‘레드펜서’를 때려잡아 그 힘을 자랑했고 20살에 헬바이드 왕가 친위병장으로 임명되어 서산족(西山族) 대도(大盜) 알펜서를 잡아 힘과 지략을 갖춘 희대의 명장으로서 길을 걷기 시작하여 40년간 수많은 영웅담의 주인공으로 음유시인들의 단골주제였던 무스 아텔리이다.

인간의 힘으로 대적할 수 없다던 악령 드라고아를 때려잡고, 25세 때 이 세상에 그에게 도전할 ‘인간’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정령계와 교류를 가지면서 수많은 이종족(異種族) 친구들을 사귀었으며, 천궁마도사들이 벌인 전쟁에 가문의 힘을 빌리지 않고 훌훌 단신으로 참전하여, 전쟁을 끝낸 영웅으로 수많은 서사시의 주인공이 되어있는 아버지 무스 아텔리 신화에 비하면 로드는 그냥 대도시를 대표하는 아름다운 귀공자, 실제로 행했는지 어떤지 자신도 알 수 없는 미담의 주인공일 뿐이다.

덕분에 로드는 왜 이리도 유명하기 그지없는 아버지 무스가 신중한 걸음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헬바이드 왕가 집사장(執事長) 가리스가 국왕이 내린 밀명을 받았다는 일을 알려줄 때 그 임무는 지금까지 내려진 그 어떤 것보다 황홀하며 역사에 한 획을 긋는 것이라고 했다. 그 때문에 로드도 아버지 무스를 조르고 졸라 간신히 이 여행길에 동반할 수 있었다.

세계를 지배한다는 명성을 듣고 있는 왕국의 밀명을 가지고 단 둘만의 일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로드는 흥분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떤 일이 있을지 몰라 아껴두었든 용돈을 탈탈 털어 구입한 항마(抗魔)스펠 3중 코팅 갑옷과 동방에서 수입해온 귀한 신발 무음족(無音足), 물리방어력에 있어서 최고급에 속하는 가디언 실드까지 장비하고 따라왔건만 이 장비에는 먼지만 가라앉을 뿐 그 효능을 발휘해볼 일이 없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먼지제거 주문으로 코팅 해왔을 것인데….]

이러한 한탄이 생길 정도로 시간이 지날수록 이 여행길은 로드의 비싼 무구(武具)들에 먼지만 쌓이게 했고 무거운 장비들을 하고 벌써 100일 가깝게 이동하고 있는 중이었다. 워낙 주변의 이목을 살피면서 신중한 이동을 해온 덕분에 로드는 그 사악하고 잔인하기 그지없다는 마수(魔獸)의 꼬리도 보지 못했고 보통 어른이 하루 동안 이동할 수 있는 거리, 1루일의 수 백 배나 되는 거리를 조심조심하면서 이동해왔다. 게다가 아버지 무스는 로드에게 이번 일정에 대한 내용을 침묵으로 일관해왔기 때문에 그 목적도 도착지도 알지 못한 체 이동만을 하고 있었다. 덕분에 정확한 목적도 알지 못한 상태로 여행을 해온 로드는 내심 절망스러운 심정이었다.



북마족(北魔族)으로 불리는 시미리언이 살고 있는 크로세아대륙 북쪽은 세계 중심을 지배하고 있다고 공언하고 있는 헬바이드 왕가에게 있어서 무척 껄끄러운 장소이다.

200여 년 전, 왕명을 받아 세계각지로 파견된 대륙원정대가 세계지도를 완성하기 위해 서산족(西山族), 남해족(南海族), 동풍족(東風族)의 협조를 얻는데 큰 어려움이 없었던 반면, 소수민족 시미리언은 자신들이 살고 있는 크로세아 대륙 북부지역에 대한 정보를 알리는 것에 비협조적이었고 지금까지도 세계지도의 완성에 있어서 유일하게 그 정밀도가 떨어지는 지역이 이 북쪽지역이라고 할 수 있다.

대륙원로원도 험난하고 좋지 않은 날씨를 자랑하는 이 대륙 북쪽지역 탐사에는 그렇게 정열적이지 않았고 특별한 광물이나 특산품이 없었기 때문에 결국 여타 지역의 지도 정밀도를 높이는 형태로 결정되었다. 덕분에 헬바이드 왕가의 영지가 칭송받고 있는 지금 시기에도 이 지역에 대한 연구나 조사는 아직까지도 제대로 진행되지 않고 있다. 대륙원로원이 원하는 완벽한 세계지도 구상에 있어서 절반정도가 완성되었다고 공언하고 있는 지금도 크로세아대륙 북쪽은 아직도 신비로움을 품고 있는 곳이다. 그런 만큼 어떤 위험, 모험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감을 가지고 여행에 동반한 로드였는데 신중하시기 그지없는 아버지덕분에 때문에 무료하고 따분하고, 지쳐가는 심신을 어찌하지 못하면서 보행을 계속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곧, 애즈머드의 집이 보이겠군.”

달빛조차 도움이 안 되는 스산한 설원을 걸어가고 있던 무스 아텔리가 읊조렸다.

[애즈머드? 혹시 북마족 원로이면서 대마도사로 알려진 그 애즈머드?]

로드는 놀란 안색을 감추지 못하면서 조금 발걸음을 빨리하면서 아버지 무스의 뒤를 따른다. 애즈머드. 북마족은 대륙 중앙부와 달리, 성과 이름을 구분하지 않고 사용하기에 그저 이름만 존재한다.

물론 인간 세계와 문화에 있어서 성과 이름을 나누어 쓰는 곳은 그렇게 많은 편이 아니지만 여타 종족과 달리 성과 이름을 쓴다는 것에 의미를 두고 있는 헬바이드 왕국의 문화는 인간 고유의 문화로서 세계에 정착되어가고 있는 중이다. 그런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북부 시미리언들은 오릭 이름만을 사용하는 전통을 지켜오고 있는 몇 안되는 민족이다. 북마족의 기원이 되는 시미리언은 그 이름에서 알려진 대로 여타 종족에 비해 뛰어난 마법적응력을 가지고 있어, 대대로 대마법가, 마도사, 대마도사를 배출해왔다. 그중에서도 근대에 들어 가장 유명한 인물이 있는데 그가 바로 애즈머드였다.

애즈머드라는 인물은 로드는 물론이고 무스가 활동하기 이전부터 그 위명을 날린 대마도사로 942개의 던전을 공략한 마도사, 최강의 종족 드래곤과 맞먹는 마력을 자랑한 인물, 대마도사로서 꼭 창조해야할 새로운 마법을 4개나 만들어낸 희대의 천재로 알려져 있다, 스스로 최고의 마도사를 자칭한 천궁마도사들 사이에 벌어진 마법대전에 무스 아텔리와 함께 활약한 인물로 알려진 북마족 출신 대륙최강 마도사이다. 로드도 그를 본 적은 없지만 아버지의 명성에 못지않게 많은 시와 칭송을 들어왔기 때문에 익히 알고 있는 이름이었다. 물론 살아있는 전설로 알려진 그의 존재를 헬바이드 왕국이 가만히 보고만 있는 것은 어느 정도 상징적인 왕국 균형을 위한 형태라고 로드는 알고 있지만 그 이상으로 야심가가 많은 왕국의 귀족정치에 대한 반발 때문에 애즈머드는 북쪽에만 살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크로세아 대륙에 인간들이 문명을 쌓아가면서 기록을 남기게 된 가운데 역사에 이름을 길이 남긴 존재는 그리 많지 않다. 그러나 다양한 종족이 만나 벌여온 크고 작은 전쟁과 분쟁가운데 그 이름을 기억해두어야 하는 존재는 꼭 있기 마련이다. 로드가 살아가는 지금 시대에 있어서도 7천국가문의 가주들은 대륙의 지방 촌구석 코흘리개도 아는 존경의 대상이다. 여기에 정령족의 족장, 드래곤족의 수장, 헬바이드왕가의 국왕, 서산족의 왕, 남해족의 상단주(商團主), 동풍족의 패왕(覇王), 그리고 북마족의 원로 이름은 대도시 학교에서 교과과목으로 가르치고 있을 정도이다. 다만 인간들과 다른 문화, 시간대를 살아가는 종족을 제외하면 기억해야 될 이름은 그렇게 많은 수는 아니다. 세계최초로 대륙통일전쟁을 일으킨 동풍족의 패왕이었던, 뇌제(雷帝)나 인류문화에 있어서 최고(最古)의 역사를 자랑하는 헬바이드왕가를 세운 헬바이드 형제 정도가 유명하지만 결국 신들의 축복을 받아 탄생한 7천국가문의 이름만이 종족을 초월해 모든 이들에게 알려졌다. 그런 가문 후계자인 로드가 바로 떠올릴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은 실로 대단한 인물이라는 것이다. 하늘에서 쏟아지는 거품과도 같은 눈송이들을 헤치면서 고생해가며 온 길의 끝에 있는 것이 대마도사 애즈머드와의 만남이라니!! 지친 걸음걸이에 힘이 실리고 허리가 바로 세워지는 느낌을 받는 로드였다.

마음 속 깊은 어딘가에서 드디어 로드의 첫 모험에 역사적인 순간이 다가서려고 하는 순간이라는 느낌을 받았던 것이다. 물론 7천국가문이 가지는 존재감을 생각해본다면 대륙 북쪽 변경에 위치한 곳에서 살고 있는 대마도사를 만나는 정도로 로드의 모험심에 만족을 주기는 좀 어려울 것 같지만 모험다운 모험을 꿈꾸어온 로드에게 있어 살아있는 전설을 가지고 있는 두 명이 만나는 장소에 동참하는 것은 결코 대단하지 않은 일은 아닐 것이라고 예상하게 했고 뭔가 모를 새로운 역사를 만들게 될 것이라는 상상을 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이때 로드의 뇌리 속에는 집사장 가리스가 자신을 배웅 보내면서 나지막하게 했던 말을 다시 떠올렸다.

“로드 도련님, 이번 여행은 무척이나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결코 경거망동하지 마시고 아버님을 따라 무사히 다녀오시기를 바랍니다. 도련님의 첫 여행치고는 가혹할지도 모르지만 가문의 영손으로서 가져야할 사명이라고 생각하시고 부디 몸조심하시기를 바랍니다.”

헬바이드 왕국이 비록 이전에 비해 쇠퇴한 면을 가지고 있지만 그래도 인간사회에 있어서 최고라는 자부심을 내세우는 문화를 자랑하는 곳인데 그 곳에서 직접 나온 밀명을 받아 움직이는 무스, 로드 아텔리부자는 대륙의 살아있는 전설, 대마도사 애즈머드를 만나려고 하는 것이다.

무엇인가 있다!

어찌 흥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인간들의 세계가 시작되고 문화를 가지면서 신들의 세계가 ‘신원기(神元記)’에 기록된 것으로 이야기되는 시대가 된 이후, 이 세계에는 수많은 마술사와 마법사, 마법가가 탄생했지만 그 상위직종인 마도사(魔道士), 그리고 그 마도사를 넘어선 존재인 대마도사(大魔道士)는 다른 계통의 마법을 다루는 천궁마도사를 제외하고 지금까지 확인된 존재가 단 18명밖에 없었다.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영겁의 시간을 지내오는 동안, 마법의 존재와 그 체계를 바꾸어 새롭게 창조할 수 있는 단계로 들어선 18명 중 하나이며 현존하는 유일한 대마도사인 애즈머드와 무스 아텔리가 젊은 시절 몇 번 모험을 같이 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지만 지금에 와서보면 ‘대륙전설’로 남아있는 이야기일 뿐이고 시인들의 기록으로만 알려져 있을 뿐인데 그 실체를 만나러 온 것이라는 것은 젊은 로드에게 있어서 흥미진진하기 그지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무척 암울한 분위기 속에 연륜을 느끼게 해주는 두 노인, 역대의 전력을 살필 수 있는 위용이 풍기는 두 노인들이 술잔을 기울이고 있다. 그렇게 좁지는 않다고 하겠지만 대륙을 대표하는 대마도사가 사는 곳이라고는 믿기 어려운, 단출한 방구석에 놓여있는 작은 나무 선반을 놓고서 두 인물이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이상하게도 로드와 무스의 급작스러운 방문에도 불구하고 주름살과 길고 긴 흰머리로 연륜을 자랑하는 대륙의 대마도사는 전혀 어색한 기운이 없이 방문을 받아들였고 무스가 건넨 왕가직인이 찍힌 두루마기를 읽은 그는 아무 말 없이 술병을 꺼내 무스에게 술을 권했다. 정말 아무 말도 없는 가운데 조용히 타들어가고 있는 촛불과 술잔을 기울이는 작은 기척만이 방안을 메우고 있었다.

[난 여기까지 와서 다시 벙어리 행세를 하고 있어야 한단 말인가?]



경거망동하지 말라는 아버지 무스 아텔리의 엄명에 따라 별도 명령이 있기 전까지는 결코 말을 하지 말라는 경고를 들었던 로드였기 때문에 이 이상한 분위기에서도 입을 열지 못한 상태로 대작하고 있는 두 노인을 쳐다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사실 밝고 명랑한 성격으로 알려진 로드는 아버지 무스의 명이 없었더라면 자신이 누구인지 밝히고 전설의 대마도사 애즈머드의 업적을 기리면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도시에서는 언제나 가문의 위명 덕분에 과분할 정도로 애정을 받아온 처지였기에 응석받이라는 평도 있었지만 자신이 어른스러운, 차기 가주의 모습을 선보일 수 있다는 점을 증명하고 싶었지만 이번 여행에서도 그럴 기회가 없어서 로드는 애즈머드에게 자신이 누구인지 소개할 기회조차 못 얻고 있는 상황이었다.

[혹시나 이대로 술만 기울이다가 두 영웅의 대담아닌 대담이 끝나버리면 내가 이곳에 왔었는지 어떤지 조차 알려지지 않을 것이 아닌가. 그러면 나의 첫 여행, 모험담은 이걸로 끝이란 말인가?]

조바심까지 나는 로드였다.

“결국 자네의 왕은 과거의 어리석음을 다시 꺼내 보이고 싶어 한다는 말이군.”

침묵을 깨고 입을 연 애즈머드가 한 말이다. 로드는 조금 놀라면서 귀를 기울였고 무뚝뚝하게 입가에 술을 흘려 넣고 있던 무스는 담담한 표정으로 답을 했다.

“칠천국가문은 주군을 섬기지 않는다네. 이것은 헬바이드왕가가 그대에게 하는 부탁일세.”

“이런 멍청한 왕의 칙서를 가지고 올 정도였다면 나와 자네의 친분을 이용한 그들의 수작이라는 것을 자네가 모를 리 없다고 생각하네.”

“문을 열 수 있는 자가 존재하는 세상이니 결국 언젠가는 그것을 열려고 하는 자는 존재할 것이네. 그것이 우리의 후손이 될지도 모르겠지만 우리가 살아있을 때 그것을 볼 수 있다면 하는 바람은 변함이 없네.”

“결국 마계의 파수꾼을 깨우겠다는 소리가 아닌가?”

애즈머드의 목소리는 잔잔하게 방안을 울리고 있었는데 로드는 그 목소리에서 일종의 분노와 같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무스는 조용히 술병을 기울여 다시 잔을 채웠다.

“이미 루길라 성에는 통보가 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네. 자네가 돕지 않는다고 해도 결국 준비되어있는 그들은 일을 시작할 것일세. 400명이나 되는 그들이 동원되고 2년이나 준비해온 일일세. 그들은 결코 멈추지 않을 걸세”

“이미 그 일의 결과를 알고 있는 자네가 이일을 찬성했다고는 생각하고 싶지 않군.”

“그 결과가 꼭 같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네. 또한 그런 결과를 경험했던 자네가 있기 때문에 이번에는 그 것을 회피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네. 아니 그럴 것이라고 믿네.”

“헛! 지나가던 호빗이 오크옆구리 걷어 찰 얘기로군”

“자네가 이곳에서 20년이 넘게 그것을 다시 연구하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네.”

“내가 연구하는 것은 그것이 아니야! 나는 그것을 규명하려는 것이 아닐세!”

애즈머드의 술잔이 조금 거친 소리를 내면서 탁자위에 내려간다.

긴장된 공기 때문에 촛불이 파스르르 떨린다.

“자네는 아직도 베르사니의 죽음에 책임을 느끼고 있는 것이 아닌가?”

반면 무스는 차분한 어조와 표정을 바꾸지 않으면서 말을 이어갔다. 물론 애즈머드의 안색도 거의 변함이 없다. 깊은 눈주름과 많은 수염 때문에 표정을 읽기는 힘들었지만 로드가 보는 한 애즈머드의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다. 다만 그의 말투에서 감정을 읽을 수 있을 뿐이었다. 아직은 젊고 경험이 적은 로드라도 알 수 있는 경앙된 감정의 모습이었다.

“그가 그런 결과를 예측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은 할 수 없네. 베르사니는 정말 뛰어난 선생이었고 그의 논리는 완성된 것이라고 생각하네. 그리고 그 의지는 자네에게 이어졌다고 생각하네.”

다시 무스의 설득이 시작되었다.

“……그렇다고 해도 내가 다시 그 일을 하려고 한다면 그것은 나를 위해서 하는 일이지. 자네나 자네의 잘나고 어리석기 그지없는 왕을 위해서 하는 것은 아닐 것일세.” “그렇지. 나도 그렇기 때문에 그의 글을 전달했을 뿐이네. 그나 그의 아버지에게 받은 은혜에 보답할 생각은 없네. ……다만”

여기서 그의 심려를 헤아린 애즈머드가 말을 끊는다.

“다만 아무것도 모른 체 이 일에 동원된 어린 마도사들과 젊은 기사들 목숨이 안타깝다는 것이겠지. 하지만 그것은 자네의 업보일세. 결과가 뻔히 보이는 일에 그것을 막을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나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은 결코 대륙 제일의 영웅 무스 아텔리가 보여서는 안 될 언동이라고 할 것일세”

“………그 것을 바꿀 수 있는 이는 자네밖에 없다는 생각에 찾아왔지만 잘못된 판단이었나 보군”

둘 사이에 다시 침묵이 흐른다. 둘의 대화에서 나온 베르사니라는 이는 대마도사 애즈머드의 스승으로 알려진 마도사이다. 그는 애즈머드를 키운 마도사로서 명성도 가지고 있지만 새로운 마법체계를 창조하려 한 얼마 되지 않는 마도사로서 마법학문에 있어서 놀라울 정도로 뛰어나고 체계적인 기록을 남긴 인물이기도 하다. 로드가 기억하고 있는 베르사니는 천재로 불리는 애즈머드의 재질을 일찍이 간파하고 그에게 대마법을 가르친 뛰어난 지도자라는 것이다.

다만 그의 죽음에 대해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는데 어느 날 갑자기 절명했다는 기록이 간간히 역사가들의 구설수에 올랐다는 것 정도만을 로드는 기억해낼 수 있었다. 그런데 역사가들도 알지 못하는 마도사 베르사니의 죽음에 대한 비밀을 이 둘은 알고 있다는 얘기이다.

게다가 이야기가 흘러가는 분위기를 보면 결코 좋은 모습으로 죽음을 맞이한 것은 아니라고 추측할 수 있는 로드였다. 증폭되는 궁금증이 가슴 속을 넘어서 입 밖으로 쏟아져 나올 것 같은 충동에 로드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는 사이에 무스는 잔을 비우고 자리를 일어선다.

“나는 지금 바로 루길라 성으로 가서 그들을 지휘하게 될 것일세. 앞으로 두 달 정도가 지나면 결과를 알 수 있을 것일세.”

“마중하지 않겠네. 잘 가게나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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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로드는 다시 아버지와 함께 험한 눈밭을 걷고 있다. 약 반 시간 정도의 만남을 위해서 100여일을 넘긴 여행의 한 고비가 끝난 순간이었다. 로드는 허탈했다. 그러니 불평서린 입이 열리지 않을 수 없었다.

“아버님,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이미 아들 녀석 말 끝에 맺힌 것이 있다고 생각한 무스였지만 간결하게 답을 한다.

“꼭 알고 싶다고 생각한 것을 2가지만 물어보아라.”

그 말에 조금 생각을 한 로드는 부지런히 발을 놀리면서 질문을 했다.

“대마도사 애즈머드는 아버님 일을 도울 것 같습니까?”

“그는 의지가 강하고 심성이 굳은 인물이다. 짧은 말이라고 해도 스스로 뱉은 말을 번복할 사람이 아니다”

잠시 세찬 바람이 불어와 무스는 한 호흡을 끊었다가 말을 이었다.

조금은 무스의 괴로움이 담겨있는 표정을 읽을 수 있는 로드였다.

“그리고 이일은 나의 일도 우리 가문의 일도 아니다. 다만 왕이 벌인 일에 대해 감독을 하는 입장으로 참관하는 것이다”

로드는 아까 아버지와 애즈머드와 나눈 대화를 정리해 보았다. 대륙 제일이라는 역사와 위용을 자랑하는 헬바이드 왕국의 젊은 왕은 어떤 일을 벌였고 그 일은 위험을 동반한 일이다. 그 일의 위험을 줄일 수 있는 수단이 애즈머드에게 있지만 그는 이일에 참가하는 것을 거절했다. 그리고 그 일은 과거 애즈머드의 스승인 베르사니의 죽음과 관계가 있는 일이다.

베르사니도 역시 역사에 이름을 올린 대마도사로 수많은 신마법을 개발한 천재로 알려져 있었는데 그의 말년에 관한 기록은 거의 알려져 있지 않았다. 다만 아까 말을 들어보니 아버지 무스와 애즈머드는 베르사니의 말년을 알고 있고, 그 것은 말하기 어려운 비참한 것이었을 것이라는 것을 추측해볼 수 있었다. 그리고 이번 왕가에서 벌인 일에 무스 자신도 결코 찬성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 일에 이미 파견되어 있는 수많은 젊은 마도사들과 기사들의 위험을 두고 볼 수만은 없기 때문에 이 세찬 눈바람을 맞아가면서 눈길을 걷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고 싶지 않은 일이라고 해도 ‘모든 기사들의 왕’이라는 칭호를 받고 있는 아텔리 가문의 가주는 개인 신분으로 이번에 벌어질 위험을 막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로드는 도대체 그 위험한 일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직접 묻고 싶었지만 그것보다 더 원천적인 부분에서 걸리는 의문이 생겼다. 조금은 불안한 기운이 서린 의문이었다. 로드는 다시 질문을 한다.

“애즈머드의 도움이 없이 이 일은 무사히 마칠 수 있는 일이 맞습니까?”

사실 이 질문을 하면서도 로드는 질문 자체에 의아함을 가지고 있었다. 이 세계에서 몇몇 드래곤 일족과 정령왕의 계보에 속한 존재를 제외하고서는 적수가 없다고 알려진, 절대적인 무용(武勇)의 화신이며 신들의 축복을 받은 아텔리 가문의 당대 가주인 무스 아텔리가 관여하는 일에 실패라는 단어는 어색하기 그지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덤덤한 표정의 무스가 세찬 눈바람을 헤쳐 걸으면서 한 답은 로드에게 충격을 안겨준다.

“……내게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너는 살아야 한다.”

갑자기 숨이 막혀오는 압박감을 느끼는 로드였다. 무스는 다시 한번 힘을 주어 말을 한다.

“너는 차기 아텔리 가문의 가주이기 때문이다.”

“……그, 그 무슨 말씀이십니까?”

로드 아텔리가 결코 가벼운 마음으로 이 여행길에 참가한 것은 아니지만 신들의 가호를 받아 대륙에 등장한 7개의 가문의 후계자인 로드다. 실전 경험이 적다고 해도 앞으로 뛰어난 위용을 전설로 남길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는 자기 로드가 대륙의 영웅 무스 아텔리와 함께하는 모험길이었다. 로드는 결코 이 모험에 있어서 실패에 대한 불안감을 품지 않았고 심지어 목숨이 위험한 일을 맞이하게 될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을 못했다. 순간 자신의 어리석은 행동에 대한 자책감이 밀려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로드였다.

“결코 이 길에 동반하는 것을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느냐?”

“옛! 결코 후회하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출발 전 아버지 무스에게서 마지막으로 다짐을 받았던 대화가 떠오르는 로드였다. 갑자기 자신아 아끼는 주 무기, 명검(名劍) ‘브리짓트’를 가져오지 않은 것을 후회하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대륙 제일의 도시 라임시티가 자랑하는 최고의 대장장이가 1년 동안 주조하여 상납된 브리짓트는 아직 한 번도 피를 묻혀 보지 못해서 덕분에 창고에서 곰팡이가 슬 정도였지만 언제나 아버지 무스의 명령 때문에 화려한 장식으로 번쩍이는 브리짓트를 매일 로드가 닦고 갈았기 때문에 그 화려함은 견줄 바가 없다고 알려져 있다. 검신 중앙에 위치한 적수정은 희귀한 정령석 중 특수한 일종으로 스스로 빛을 내는 것인데 덕분에 실제로 휘둘려질 때 브리짓트는 화려하기 그지없는 모습을 보여준다.

명검 브리짓트의 명성은 로드가 사용하게 되면서 덩달아 많이 알려지게 되었고 이번 밀행에 있어서 거추장스러울 것이라는 판단 하에 지참을 하지 않았던 것인데 대륙을 대표하는 12명검 중 하나인 브리짓트가 수중이 있고 없고는 자신감에 있어서 차이가 생기게 된다. 갑자기 깊은 눈길을 헤치면서 걷는 로드의 발걸음이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그나마 마법을 부리는 몬스터에 대항하기 위한 항마스펠(抗魔Spell)까지 새겨둔 실버메일만이 아직 마법력을 익히지 못한 로드에게 있어서 안심감을 주는 귀중한 장비였다. 그렇다고 해도 이렇게 충격적인 말을 듣게 될지는 상상도 못한 로드는 지금까지 자신이 느껴보지 못한 ‘공포’의 감정에 빠져드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까지 들 정도였다.

[도대체 왕은 어떤 일을 아버지에게 부탁한 것이지?]

일 자체에 대한 공포감도 스물 스물 피어올랐지만 그 이상으로 궁금증이 커지는 것을 느끼는 로드였다. 이 세상이 시작하고 그 기록이 인간들의 문화로 정착되어 갈 때, 크로세아 대륙의 중앙에 위치한 것으로 알려진 헬바이드 왕가는 번영과 창조로 물들어 가는 희망과 꿈의 상징이었다. 세계최고(世界最古) 왕조(王朝)로서 그 이름을 역사에 남긴 루가스 왕(王)은 신들의 축복을 받은 일곱 가문을 휘하로 거두어들여 ‘세계의 끝’을 향한, 일백년에 걸친 원정을 시작했다.

이때의 선봉을 맡았던 용맹한 가문은 아텔리가문이었고 수많은 종족과의 교류를 평화롭게 성공시킨 공로를 인정받은 지략의 영광을 가진 것이 드윈 가문이었다. 이후로도 이 두 가문은 7천국가문 중 필두로서 수많은 존경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이들도 대륙 동쪽 끝에 위치한 다수 부족국가 아반델트와의 첫 조우에서 호전적인 그들의 성질을 파악하지 못했고, 원정군은 그들의 사상과 이념을 이해하지 못한 체 최초로 인종간 대륙전쟁을 일으킨다.

7천국가문은 국가 간 싸움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원칙 때문에 빠지게 되고, 이들이 제외된 헬바이드와 아반델트의 싸움은 아반델트의 승리로 끝나고, 루가스 왕의 동생 라울이 아반델트의 볼모가 되었다. 라울의 동생인 왕권을 물려받은 포러스 왕제(王弟)는 세상의 끝에 대한 원정을 포기한 체 크로세아 대륙의 역사와 문화를 새로 정립해 나가기로 했다.

세계에 있어서 가장 큰 대륙으로 확인된 크로세아 대륙의 중심에 위치한 헬바이드 왕조는 동쪽의 강맹한 아반델트를 두려워했지만 풍부한 자원과 신들의 축복으로 그 번영의 발걸음은 멈출 줄 몰랐다. 그러나 세계의 역사에 헬바이드왕가의 영광이 기록되기 시작하고서 지나온 180년. 아무리 현명한 왕이라도 평화가 계속되면 유혹에 약해지는 법. 왕의 권세를 등에 업고 세상 무서운 줄 모르던 대신(大臣) 레루오리스의 간언에 의해서 정확한 정체를 알 수 없었던 대륙 북쪽의 시미리언 민족에게 세금을 과하게 부여하면서 새로운 신전의 완성을 위한 목적이라며 지방민을 차출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거두어 들여진 자금과 인력은 헬바이드 왕조의 번영을 더욱 빛내는 초석이 되었지만 지방 민족 간 갈등을 일으키는 새로운 갈등이 되기도 했다. 이러한 왕의 잘못을 알고 충언을 하던 드윈가문 3대 가주는 도심지에서 쫓겨나는 결과를 맞이했고 같은 신의 축복을 받은 7가문의 하나였던 시트란스 가문도 먼 남쪽 변두리로 내쫓기는 결과를 낳았다.

천국에 있는 천신의 가호를 받은 일곱가문 중 유일하게 대도시에 남아 충직하게 기사와 국민을 지키던 아텔리가문도 결국은 대신 레루오리스의 간변에 넘어간 왕의 어리석은 명에 의하여 정령의 숲에 진격, 허무한 승리와 종족간의 우월성, 질투의 시작을 이 세상에 퍼트리고 말았던 적도 있었다. 그 사건도 역시 당시 아텔리 가문의 가주가 죽어나갈 기사들을 불쌍히 여겨 참전한 것이었지만 결코 자랑을 할 만한 것은 아니었다. 물론 왕권에 귀속된 역사가들은 이 원정을 치장했고 찬양하는 시를 지었고 기록을 남겼지만 아텔리 가문에서는 이러한 일이 없도록 가문의 힘이 권력에 휘말리는 일을 금지했고 그렇지 못한 경우가 발생할 대는 개인의 일로서 처리하는 것을 지정했었다.

대마도사인 애즈머드의 출신지는 대륙 북쪽으로 시미리언으로 지칭되고 있다. 천신(天神)을 섬기지 않고 지신(地神)을 숭배하는 대륙 북쪽 시미리언은 소수 민족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민족에 비하여 뛰어난 마법지식을 가지고 있었으며 여타 종족과 비교해도 마법에 대한 적성이 지극히 높았다. 이들은 대륙의 중심, 세계의 중심으로 자처한 헬바이드 민족에 의해 북마족(北魔族)이라고 불리며 왕가에 충성을 강요받았다. 이런 시미리언의 성질을 파악한 남해족(南海族)의 주인 오크베우는 대륙 중앙으로 끌려온 시미리언 민족과의 교우를 돈독히 다지면서 헬바이스 왕가의 폭정이 극에 달하는 때를 기다렸다.


헬바이스 왕가력 214년이 돼는 해 8월. 신의 축복을 받은 7가문의 지지를 얻어낸 오크베우는 반란을 일으켰는데 이 난은 너무나도 싱겁게 10일 만에 막을 내린다. 포레스왕제와 대신 레루오리스는 아무런 반항도 하지 못하고 단 2번의 전투로 의욕을 상실해 스스로 항복한 것이다. 오크베우는 아반델트에서 지내던 라울왕의 후손 라운드-헬바이스를 데려와 왕으로 모신다. 또한 신들의 축복을 받은 7가문을 다시 복권시키는데 성공하게 된다. 세상은 평화와 사랑을 되찾고 번영의 길로 다시 들어서게 된다. 그러나 이때부터 아반델트는 대륙 제일 왕가인 헬바이드 왕의 친국(親國)이라는 것을 빌미로 권위를 내세우게 되고 민족간 우월성에 대한 감정을 더욱 건드리는 결과를 가지게 했다.


사실 아반델트는 7천국가문 중 하나인 아텔리가문과 대륙 중부에 있는 이민족들이 전한 위협에 사기가 크게 저하되어 있던 참에 이런 일이 일어나게 되어 크게 다행으로 여기고 있었다. 아직 어린 라운드 왕은 볼모로 잡혀 있었던 아버지를 그리는 마음과 자신을 키운 것과 다른 바 없는 아반델트에 대한 존경의 표시로 매년 많은 양의 공물을 보내게 되었다. 대륙 제일의 권세와 힘을 자랑하는 헬바이드는 대륙 역사에 있어서 크게 주목을 받지 못하던 동쪽 아반델트에게 존경과 위협을 동시에 보내면서 그 번영을 유지하게 된다. 이후 다시 세월이 흘러 세상은 헬바이드 왕가 354년. 이전 세대 왕족들은 이미 세상을 떠났고 그 후손들이 세상을 다스리고 있었지만 헬바이드와 아반델트의 관계는 변함이 없었다. 이러한 관계에도 불구하고 두 나라는 별다른 충돌 없이 시간을 흘려보냈고 이러한 평화의 뒷받침이 된 7천국가문에 대한 공로가 새삼스럽게 다시 인정을 받게 되었다. 세계의 모든 이가 지켜보는 가운데 이 일곱 가문은 ‘7천국가문(天國家門)’으로 새롭게 칭호를 받게 되었고 대대로 장군을 배출해 온 아텔리가문과 훌륭한 재상과 인재를 세상에 내보인 드윈 가문은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존경을 받는 지식의 가문으로서 그 명성을 온 세상에 알리며 이 세계를 수호하는 쌍두마차가 되었다.

이런 일과 달리 새로운 왕조의 개혁에 큰 공헌을 한 남해족의 오크베우의 후손은 계속되는 영화에 스스로 자멸하다시피 하여 날이 가면 갈수록 부패 일로였다. 귀족들과 영주들은 매일 축제와 가무에 빠져 세계 제일의 곡창과 수렵을 자랑하는 영토를 갈수록 황폐화시키고 있었다. 북마족의 시미리언은 원래 어두운 성격의 생활 방식과 문화 덕분에 그렇게 주목을 받지 못하고 다시 자기들만의 생활로 돌아갔고 자그마한 부족국가 하나를 세워서 살아가게 되었다.

헬바이드 왕가력 590년.

고이는 물은 썩기 마련이라던가. 유수와 같은 세월 속에서 수많은 영웅들이 용을 잡고 야만스러운 정령족(精靈族)을 퇴치하고, 음유시인들은 그들을 칭송했다. 건축가들은 제각기의 미를 뽐내듯 신전과 궁전을 지었으며, 상인들은 모험가들과 같이 세계를 여행하며 새롭고도 신비한 발견을 하였다. 헬바이드 왕가의 라운드 왕은 돌리아스에게, 돌리아스는 휘리스에게, 휘리스는 다시 파돌에게 왕위를 물려주었다. 무척이나 호기심이 많았던 파돌 왕은 ‘과연 세상의 끝은 존재하는가? 라는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 강한 열정을 보였고 세계의 모든 모험가와 귀족들에게 명을 내려 세상의 끝에 대한 탐사를 시작한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은 그 동안의 평화와 부패의 아슬아슬한 경계에 있던 인간사회의 질서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신관들의 반대가 있었다. 마찬가지로 안일한 풍요로움에 빠져 있던 귀족들에게 있어서 새로운 탐구란 유흥 거리는 될 수 있어도 자신의 정열을 불태우고 편안함을 포기하면서까지 얻을 대상으로는 부족함이 있는 비효율적인 방법이었다. 새로운 세계에 대한 탐구는 파돌 왕의 광기(狂氣)로 낙인 되고 왕의 통제력에 큰 손상을 주었다. 낙심한 파돌 왕은 인간 민족 이외의 다른 종족의 지식에 눈을 돌리게 되었다. 정령족이 가지고 있는 신비스러운 자연 통제력이라든가, 수인(獸人)들의 불가사의한 변신 능력, 아직 인간들이 완전하게 규명하고 있지 못하는 ‘마법의 진실’ 등이었다. 호기심이 가득 찬 젊은 왕. 파돌 왕이 내린 어떤 명령으로 인해 벌어진 일 때문에 지금 이 북쪽 한지에서 로드는 알지 못할 불안감에 싸이게 된 것이다.

파돌왕이 즉위한지 8년째인 지금. 평화롭다 못해 안락의 세월을 보내고 있는 지금. 시건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일이 없어서 젊은 영웅이 따분해 마지 않고 있는 지금. 어찌해서 정체를 알 수 없는 불안감에 기분이 나빠져야 하는지 알 수 없는 로드는 묵묵히 걸음을 재촉하는 아버지의 등을 바라보면서 발걸음을 놀릴 수밖에 없었다.

[응? 눈이…… 달이 떴었던가?]

감자기 로드는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거친 눈보라를 헤지면서 걷고 있었던 부자의 눈앞에 갑자기 나무 한그루 보이지 않는 설원이 보이기 시작했다. 다만 이상하게 푸른 달빛에 의해서 요사한 매력을 풍기는 설원이다. 게다가 그렇게 세차게 몰아치던 눈보라가 갑자기 눈앞에서 사라진 것이다. 대륙 중심에는 봄기운이 불어오고 있다고 하지만 대륙북부에 위치한 이곳에는 아직도 늦겨울의 험한 기운이 세찰 때이다. 그런데 그것이 이렇게 갑자기 그친다는 것은 놀랄 일이다.

“이것은 무슨?”

“쉿, 뭔가 이쪽으로 온다”

아텔리 부자가 향하고 있는 루길라 성은 대륙 최북단에 있는 영지로서 시미리언 영지에서도 북쪽에 위치하고 있었다. 무스는 여기서 약속 받은 사람들을 만나기로 되어있다. 일반적으로 외진 지역에서도 극단적으로 외진 장소이기 때문에 이런 곳에선 누군가를 만나게 될 확률은 거의 없다고 할 것이다. 그런데 무엇인가가 다가온다는 것이다. 로드는 주변의 경치가 바뀐 것을 느낄 새도 없이 가슴을 조여 오는 긴장감을 맛보면서 눈과 바람을 피하기 위해서 걸친 코트 안에 숨겨져 있는 칼의 손잡이를 잡았다 놓았다 하는 손동작을 했다. 제법 매서운 냉기가 털 코트의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는 것을 보면 추운 기운은 이 장소에 그대로 머물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는데 그들의 앞쪽에서 다가오는 것은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마법사 차림같기도 한 인물은 회갈색의 로브를 걸치고 있었는데 기이하게도 등에는 한 자루의 검을 메고 있었다.

그 검 자루에는 푸른 옥석이 박혀 있었는데 무척이나 괴이한 빛을 발하고 있어서 이미 달빛이 비치고 있는 설원에서도 그 기이한 푸르름에 시선이 고정되는 것을 느끼는 로드였다. 로드는 그 푸른 장식돌이 자신의 브리짓트에 박혀 있는 정령석과 같은 종류임을 알아 볼 수 있었다.

“로드야, 저 자를 보니 보통 사람은 아닌 듯 하구나. 주의를 게을리 하지 말거라”

“걱정 마세요. 한데 저 검은 뭐랄까 …위험한 기운을 뿜는군요.”

역전노장인 무스와 아직은 경험이 적은 로드이지만 둘은 강한 경계감을 표시하고 있었다. 그렇게 예민하게 반응하는 편이 아니지만 이런 시각, 이런 장소에서 누군가를 만난다는 것은 무척 어색한 일이라고 생각된 것이다. 저 멀리서 걸어오는 마법사 차림의 인물은 보기보다 걸음이 빠른지 부자가 이런 말을 주고받는 사이에 전신이 확연이 보이는 가까운 곳까지 와 있었다. 그러나 그는 마치 둘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지 빠르게 옆을 지나갔다. 너무나도 이쪽을 의식하지 않고 지나가는 모습에 조금 놀라고 있는 로드에 비해 그를 마지막까지 노려보고 있던 무스는 그의 모습이 벌써 보이지 않는 것을 확인한 후에 로드를 쳐다보고 놀라움을 표했다.

“놀라운 인물이군. 우리가 보이지도 않는 듯 한 태도도 놀랍지만 그 빠른 보법은 실로 놀라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수련을 거친 자의 것이라고 하겠다.”

“마법인가요? 저 마법사를 본 게 마치 신기루를 본 것 같네요.”

“동풍족(東風族)의 검사 중에 무척이나 괴이하고 빠른 보법을 쓴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지만 차림새는 빠른 행동을 하기에는 불편한 로브 차림이지 않았느냐? 괴이한 일이군”

“검을 매고 있는 것을 보아서 마법 검사가 아니었을까 하는데요.”

“태반의 마법 검사들은 특징적으로 밝고 화려한 차림을 좋아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저자는 그렇지 않았으니 딱 잘라서 뭐라고 말할 수가 없구나. 검만 본다면 굉장히 보기 드문 명검인 것 같다만…….”

이때 갑자기 무척 서늘하기 그지없는 음성이 둘의 귓가에 흘러들었다.

“너희들은 어디로 가는 거냐?”

갑작스럽게 들려 온 말소리에 아텔리 부자는 소스라치게 놀라면서 몸을 움직였다. 그 말소리가 기척도 없이 자신들의 앞쪽에서 들려온 것이었기에 더욱 놀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앞을 주시한 둘은 등골이 오싹해지는 놀라움을 경험할 수밖에 없었다. 틀림없이 방금 막 자신들을 빠르게 지나쳤던 그 사람이었다. 등 뒤에 매고 있는 특이한 분위기를 풍기는 검도 틀림없이 아까 지니간 그 사람이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아텔리 부자들의 놀란 표정이 달빛에 의해서 역력히 들어나는 것을 보았는지 어쨌는지 정체불명의 인물은 자기 할 말을 한다.

“만일 루길라 성으로 가는 것이라면 돌아가라. 너희들은 대륙 중부의 기사 같은데 이런 변두리에서 무엇을 하는 거야?”

무척이나 냉랭하게 말을 쏟아 내는, 검을 맨 마법사는 부자의 모습을 힐끔 보면서 대답도 듣지 않고 말을 하고 있었다. 아직 경험이 적은 로드는 이 자가 무척이나 건방진 태도를 보인다고 생각을 하면서도 무언가 모를 부조리를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노련한 무스는 살짝 입가에 웃음을 보이면서 상대에 대한 경계심을 풀어 보였다.

“우린 중부에서 온 수련사이외다. 형씨는 이곳 지리를 잘 아는 토박이 같은데 어디 이 근방에 묶을 만한 곳이 없겠소? 길을 잃은 것 같아서 내심 불안했는데 좀 도와주시구려.”

“흥, 중부에서는 수련사도 정령검을 가지고 수업을 하는가 보군. 그런 소리를 들은 적이 없는데 말이야”

정체를 숨기고 상대를 파악하려 했던 무스의 언동은 대뜸 들통이 나고 말았다. 그러나 무스는 표정에 변화를 두지 않았다. 물론 그런 것을 단번에 간파한 상대의 눈썰미에 내심 경계하는 마음의 끈을 단단히 조여 맸다.

“하하하. 이것 참. 우리는 형제를 처음 보기에 겁을 먹어 한 소리올시다. 이런 곳에서 우리말고도 설경의 운치를 즐기려는 사람이 있을 줄은 몰랐기 때문이지요. 헌데 형제는 어디서 사시오? 이곳 주위에 마을이 있소?”

재빠르게 말을 받으면서 무스는 상대가 눈치를 채지 못하도록 검집을 조금 앞으로 잡아 뺏다. 적이 될 가능성이 있는 존재라면 그가 펼칠 것으로 생각되는 마법의 차징타임이 승부의 열쇠고 정령검을 쓰는 단순한 검사라면 주위의 환경과 영창 시간이 있지만 마법 검사라면 상당히 까다로운 상대가 될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우선 얼굴 표정을 잘 알아 볼 수 없게 달을 등지고 있다는 것 때문에 어려움이 있었고 어느 정도 쌓여있는 눈 때문에 보행이 자유스럽지 못한 것도 걸리는 문제였다. 아직 상대에게서 살기 같은 것은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에 안심 할 수 있는 무스였지만 조금 전 그가 말한 [루길라성으로 가지 말라] 라는 것은 마음에 걸려서 꼭 그 이유를 알아야겠다고 결심을 한 상태였다.

“루길라로 가지 말라는 것은 나의 충고로서 그대들에게 다가올 운명과는 상관이 없는 것이지. 특히 저 꼬마는 아직 자신의 운명이 어찌 될지 스스로 결정하기에는 너무 어리니까.”

그러나 그런 무스의 마음을 간파 한 듯 한 그의 말에 무스는 그가 이 비밀스러운 일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단순히 그들이 걷는 방향을 보고 루길라 성으로 간다는 것을 추측한 소리가 아닌, 무언가를 알고 있는 자의 말이었기 때문이다. 로드는 이미 아버지가 임전태세를 갖추고 있는 것을 알고서 자신도 활동이 편할 수 있도록 어깨 가드를 풀면서 검을 뽑을 때 방해가 되지 않도록 준비를 했다.

“이런? 이런! 쯧! 이런 시각에 일어나 그대들에게 충고를 하는 내 성의가 그대들에게 보이지 않는가 보군. 앞으로 수십 년간은 살아 있어야 할 꼬마가 우후후….”

로브의 후드 안에서 알지 못할 빛이 번쩍이는 것을 본 로드는 그가 자신을 직시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서 이상하게 오한이 몸을 지나는 것을 느꼈다. 덕분에 로드는 대뜸 소리를 지르게 되었다.

“그대는 자신의 정체를 밝히시오!”

“나의 정체? 그대는 내가 보이지 않는단 말인가? 아니면 내가 사람인지 아닌지를 말하라는 건가?”

로드가 약간 기가 질려 말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고 생각한 무스는 함부로 손을 댈 자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자아. 그렇게 까지 말한 것을 보면 자신에 대해서 우리에게 밝히지 못할 것은 없다고 생각하는데, 형씨는 좀 더 가까이 오셔서 우리에게 모습을 확연히 보여 주실 수 없겠소? 그래야 내 어린 자식이 겁을 먹지 않겠소.”

“그렇게 못 할 것도 없지만 나는 바쁜 몸이라서. …… 자 이거나 받게나.”

그 괴상한 인물은 대뜸 자신의 등에서 검을 풀어내어 로드에게 던졌다.

“어엇?!!”

무척이나 놀란 로드는 그것이 무슨 못 볼 것이라도 된다고 뒤로 한 걸음 껑충 뛰어서 피하고 말았다. 털썩 하고 보드라운 눈 위에서 제법 묵직한 소리를 울리면서 검은 눈바닥으로 떨어졌다.

“4계절의 정령과 계약을 맺은 검이다. 가져라!”

괴상한 그의 말은 한동안 둘에게 이해되지가 않았다.

“틀림없이 너의 인과율에 따라서 그 것은 너의 것이 돼야 하니까. 후후훗. 그래 봤자. 네가 쓸 수 있는 것도 아니지만….”

무스는 그 ‘인과율’이라는 말에 퍼뜩 떠오르는 단어가 생각났다.

“당신은 천궁사입니까?”

“난 그런 하찮은 이름을 걸치고 있지 않아.”

무스는 자신의 추측이 빚나 가게 되자 더욱 상대의 정체에 대한 의문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그가 아는 한 세상의 이치를 통달했다고 외치고 다니는 천궁사는 무척이나 자존심이 강해서 자신이 천궁사인 것을 자랑하지 않고서는 못 배긴다고 알고 있다. 그런데 이 인물은 그 천궁사라는 것을 가볍게 부정한다. 그러면 이 인물은 도대체 어떠한 작자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아직 그의 말만 믿고 단정 지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이 세상에서 인과율을 따지는 법의 수호자는 오직 시간과 공간의 지배를 받지 않는 천궁사(天宮使)뿐이라고 들었소.”

“이 세상? 난 그런 것 몰라. 내가 아는 것은 오로지 그대들이 이곳을 지나고 있고 저 어린 꼬마 녀석에게 이 검을 주어야 한다는 것뿐이지.”

로드는 도대체 무슨 이야기가 오가는지 알 수가 없었다. 다만 천궁사라는 것과 인과율에 대한 단어의 정의만을 이해하고 있을 뿐이었다. 로드의 가문과 함께 7천국 가문의 대표로 일컬어지는 드윈 가문의 기록에서 이런 글을 본 것을 로드는 기억해냈다.

- 세상에 이치가 정리되면서 하늘과 땅은 서로의 영역에 대한 결론을 인과율에 맡겼다. 인과율은 높은 수학과 정력에 정통한 마학자가 세울 수 있는 학문으로서 신과 인간의 관계, 사람과 사람의 관계, 사람과 정령의 관계를 계산해 내는 것으로 이 인과율을 계산 할 수 있는 자는 시간과 공간의 구애를 받게 되지 않는다. 결코 불로불사가 되는 것이 아니지만 자신이 가진 생명의 선 안에서의 이동과 계산이 자유로워진다는 것이다. 이 능력은 자손에게 물려지는 것이 아닌 특이한 자질문제로 아직 순수한 인간으로 인과율을 계산해 내는 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인과율을 만들어 계산하여 자신의 선을 찾는데 걸리는 시간은 약 100년 이상 걸리기 때문이라고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수명이 인간에 비하여 월등히 긴 정령족이나 신수(神獸)들 만이 가능했다. 정령 중에서도 이러한 힘을 얻게 된 자는 하늘의 이치를 통달했다는 뜻으로 천궁사라는 명칭으로 통일되어 불리는데 이 또한 극히 보기 드문 직업으로 이 세상이 시작되고서 천궁사의 칭호를 얻은 자는 13명에 불과 했다. -


그렇다면 이 눈앞의 인물이 천궁사라고 해야 할 것인가? 하지만 이 작자는 부정하는 말투에서 천궁사를 하찮게 여기는 것까지 느끼게 했다. 그렇다면 인과율을 말하면서 천궁사를 깔볼 수 있는 인물이란?? 무스와 로드는 동시에 같은 추리를 일으키면서 심각한 혼란에 빠져들고 있었다. 왕의 명을 완수하기 위하여 이런 벽지 산길에서 암행을 하던 이들 앞에 대뜸 너무나도 큰 시련이 닥친 것이다. 문득 무스는 이런 일을 행 할 수 있는 능력이 되는 사람을 떠올렸다.

“자네는 애즈머드의 명으로 이곳에 온 것인가?”

“애즈머드?? 아! 그는 우리의 인과율을 알지 못해”

“그 말투는 애즈머드를 알고 있다는 것으로 받아 들여도….”

“오호, 난 그를 알지만 그는 날 알지 못하지. 그가 나를 알게 되는 것은 앞으로 20일이 지난 후에나 가능한 일이고 그때 그의 인생은 끝을 보게 되니. 이 시간에서 나와 그의 인과율은 그것으로 끝이지.”

밑도 끝도 알 수 없는 소리이기는 하지만 그자의 말을 나름대로 해석한 무스는 이 작자가 20일 후에 애즈머드를 이 세상에 존재시키도록 하지 않을 생각이라고 단정했다. 무스는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파돌왕의 부탁으로 수도를 떠나 이곳에 오는 140여 일간 아무런 제지나 방해는 없었다. 오히려 자신을 믿고 같이 행동을 취해줄 줄 알았던 애즈머드의 반발에 상심한 그에게 있어서 남은 것은 ‘그곳’에 있는 문을 열어 ‘마나의 근원’을 조사하는 것 뿐이었다. 그런데 이 날벼락 같은 작자는 갑자기 나타나서 인과율을 들먹이면서 자신들의 길을 방해하는지, 또는 돕는 것인지 알 수 없게 만든다. 한 가지 분명 한 것은 이자는 틀림없이 무스의 여행 목적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흠, 조금 눈보라가 다시 이는군. 나는 아홉 지옥을 바라보는 관찰자이며 한심한 암흑용의 지배자라고 해두지. 이제 너희들과 나의 시간은 끝이다.”

조금씩 줄어드는 눈보라 속에서 갑자기 그의 형체가 흔들리더니 무너지듯 사라져 버렸다. 너무나도 정신이 없는 광경에 놀라는 로드에게 무스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정신 차려! 조금만 더 가면 성이 보이기 시작 할 거다!”

갑작스레 눈보라가 로드의 뺨을 때렸다. 차가운 기운에 퍼뜩 깬 로드는 무스의 등을 바라보았다.

“아버님! 방금 그 자는….”

“응? 뭐라고? 누가 보였냐?”

“에엣?"

뜻밖의 대답을 들은 로드는 깜짝 놀라며 발걸음을 멈추었다. 무스도 갑자기 아들이 멈추며 자신을 멍하게 바라보자 자신도 발걸음을 세워 바람을 등지고 섰다.

“무슨 일이냐? 수상한 움직임을 봤느냐?”

“아버님, 방금 저희가 만난 그 마법사……”

“마법사? 애즈머드를 보았느냐?”

이런 답을 들은 로드는 순간적으로 머리를 스치는 격언이 생각났다.

- 인과율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만남은 대상자과 실행자만의 시간과 공간을 형성함으로 결코 타인의 기억에는 남지 않는 다는 것을 기억해라. 결국 신과 인간의 만남도 이러한 인과율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으로 바로 옆에 있던 사람에게 그 일을 말해도 그는 기억하지 못한다. -

로드는 자신의 왼손을 들어보았다. 가운 안에는 자신의 애검 브리짓트에 준할 정도로 요상한 빛을 풍기고 있는 푸른 옥석이 장식된 검이 보였다. 그것은 틀림없이 자신이 보았던, 그 마법사가 자신에게 준 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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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세상은 멸망했다. 아니 인간들이 지배해오던 역사의 크로세아 대륙은 새로운 주인을 맞이하게 되었다.


대마왕 카이라는 강력한 마왕군을 이끌고 이 세계에 나타났다. 수많은 영웅과 용사, 기사단, 마법사들이 피를 뿌리며 쓰러졌다.

크로세아 대륙 세기 600년. 헬바이드 - 로이베 - 파돌 왕력(王歷) 6년. 세계의 탐험가 라싱톤은 이제 더 이상 찾을 땅이 없다며 자신의 세계지도를 완성한 그 해. 7천국가문 중 하나. 시트란스가문이 지키던 요새도시 알바란이 세상에서 그 자취를 감추었다. 알바란이 멸망하면서 내뿜은 그 불길은 저 멀리 남해족 대도시 모스에서도 확인이 될 정도였다고 한다. 어떻게 해서 알바란이 세상에서 없어졌는지를 알아보기도 전에 서산족의 수도 코슬란이 해가 떠보니 재로 변해 있었다. 세상은 순식간에 혼란에 빠져 버렸다. 근접한 군사 대국, 하실리아 소행은 아니었다. 코슬란이 멸망한지 4일 만에 하실리아의 사자(使者)가 헬바이드의 수도 라임 시티에 도착했다.

정체불명의 군대에게 공격을 받아 하실리아의 왕이 사망했다는 소식을 가지고. 근래에 들어 강력한 세계 통일 이념을 부르짖던 통일부족 크로쥬에서도 정체를 알 수 없는 자들의 공격으로 도시의 태반이 불타고 없어졌다는 소식이 들어왔다.

도대체 적은 누구인가? 어디를 가더라도 전멸과 파괴의 소식뿐이어서 적의 정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상태로 헬바이드 왕가는 불안에 떨게 되었다. 무엇보다 세상의 평화, 법과 질서를 지켜 온 7천국 가문의 붕괴가 더욱 혼란을 불러 일으켰다. 과거 인간들끼리의 전쟁, 정령과 벌인 분쟁, 오거종족과 싸웟던 영토싸움 등에서 언제나 7천국가문은 그 힘과 지혜로 세계를 구했고 수많은 영웅들과 함께 질서를 유지해왔다. 하지만 이번에는 어떤 행동을 취할 수도 없었다. 그들 자신이 누구에게 멸망을 당하고 있는지 알았을 때는 이미 5월의 악몽이 끝나갈 무렵이었기 때문이다. 고블린의 모임, 가고일의 군대, 오우거 군단, 드래곤의 폭주, 영수들의 폭동이 동시 다발로 일어나면서 인간의 군대들은 질서를 잃어 가기 시작했다. 5월 화창한 어느 날, 하늘을 뒤덮은 강철 화살들은 신성 국가 오트라인의 대신전을 피바다로 만들었고, 남해족 최고 마법도시 하비아드는 100여 마리에 달하는 드래곤의 폭염브레스에 녹아 내렸다. 대륙과 인간들의 자존심이며 절대로 침범할 수 없다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던 헬바이드의 수도 라임 시티는 정오의 따스한 햇살 속에서 악마들의 공격에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7천국가중 3가문이 합세해 방어선을 구축했지만 철저하게 데몬 트루퍼 사단에게 짓이겨 무너졌다고 전해진다. 도대체 어디서 쏟아져 나오는지, 들도 보지도 못한 괴수들에 의해서 정령 수호국 킹스타운은 결계가 파괴되어 물속에 잠기었다.


결국 단 한 달도 되지 못해서 세계는 멸망하고 말았다. 아니 하나가 되고 말았다. 대마왕 카이라의 이름이 알려진 것은 헬바이드의 수도가 있었던 라임캐슬 자리에 거대한 핏빛 성이 세워진 이후였다. 대마왕 카이라. 그는 아홉 지옥장군을 이끌고 마왕과 마신, 마수들을 통합하여 세계를 정복해 버린 것이다. 수많은 영웅과 국가가 세상을 자신의 손안에 두려 했지만 결국 이 세계를 통일 한 것은 대마왕 카이라였다.

붉은 마왕성이 세워진 이후로도 인간과 정령들이 반격은 이어졌으나 그들의 어떠한 힘도, 지략도 대마왕의 힘에는 상대가 되지 못했다. 간단히 말해서 그들은 마왕성의 대문도 두들겨 보지 못하고 전멸을 당했다. 수를 헤아릴 수 없는 마왕군의 군세와 도저히 이 세상의 마법으로 생각 할 수 없는 강력한 힘을 내세운 지옥 9장군의 힘은 잔인하고 전율적이었다. 어디 그뿐이겠는가! 마왕과 함께 지상에 강림한 마귀족들은 지옥 9장군 못지않은 마력으로 생명이 존재하는 모든 것을 파괴하고 불태우며 그것을 즐거움으로 삼았다.


인간들은 절규 할 수밖에 없었다. 공포와 절망이 세상을 뒤덮고 아무도 반항이라는 말을 꺼내지 못했고 복종과 죽음만이 존재하게 되었다. 대륙의 세기는 다시 쓰여 지게 되었다. 인간들의 세기가 끝나고 마왕 카이라 원년이 시작되었다.


카이라의 마왕성이 생긴지 5년이 되던 날. 서산족 용사 샤부샤부가 이끌던 뢰기병(雷騎兵)군단이 대반격을 시작했지만 그날 오후에 전멸을 당했다.

카이라 세기 8년 되던 해. 하이랜더로 용맹을 떨치던 하실리아 왕국왕자가 생존하여 왕실 기사단의 생존자들과 같이 마왕성으로 쳐들어갔다. 약 10여분이 지난 후에 그 누군가의 웃음소리가 들렸고 그 왕자의 주검은 쓰레기장에 버려졌다.

카이라 세기 10년째 되는 날. 대륙의 성지로 이름을 떨친 신성 국가 오트라인의 대원로와 사제 10명이 축하 퍼레이드에 나온 카이라에게 봉인 마법을 걸다가 피죽이 되어 부하들에게 나누어 졌다.

카이라 세기 12년 되던 해. 7천국 가문의 하나였던 로즈 가문이 정예를 이끌고 마왕성에 돌입을 하려 했다가 거대한 벼락 창을 맞고 새까맣게 타 버렸다. 들은 이야기로는 후에 마왕성 부엌의 숯으로 쓰였다고 한다.

이후로 약 10년간은 조용했다. 무슨 난리를 쳐도 이기지 못하고 게다가 믿을 만한 소식통에 따르면 마왕은 일부러 용사나 영웅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그들이 성장해 도전하게 만든 후에 잡아먹어서 자신의 레벨을 높인다고 했다. 이러니 어떤 용사가 먼저 죽겠다고 달려들겠는가?…. 어찌 되었든 인간과 정령들은 악마족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암흑의 세기가…오고 만 것이다.

하지만 사실상 별로 달라 진 것은 없었다. 인간의 영주와 귀족, 왕권을 행사하던 존재가 악마로 바뀐 것뿐이었다. 힘이 없는 평범한 이들은 반항을 하지 않았고 꼬박 꼬박 세금을 내고 살아간다. 틀리다면 인간은 알게 모르게 은근슬쩍 아랫사람을 괴롭혀서 나쁜 짓을 하지만, 악마들은 단도직입적이었다. 거슬리면 그냥 죽여 버린다. 이게 다였다. 그래도 세월이 지나면서 다시 인간들의 수는 늘어나기 시작했고 아주 가끔씩 악마들의 난리로 인간의 마을이 날아가기는 했지만 인간들은 순응성이 강한 동물이어서 그냥 그러려니 하면서 시간에 적응하고 말았다. 세상은 변했지만 보통 인간과 정령들에게 있어서 오히려 더욱 상대하기 편해진 것도 사실이었다. 덕분에 마왕의 세기가 시작된 지 15년쯤 지나자 반란도 일어나지 않았고, 사람들은 이러한 현실을 당연시하며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렇다고 해도 납득을 못하는 열혈한은 어디에든지 있기 마련이다.

또한 인간 우월 주의자에게 있어서 폭력만을 자랑으로 삼는 악마 따위에게 지배당한다는 정신적 고통을 이기지 못하는 자도 생기기 마련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절대적인 힘의 지배는 유지될 수밖에 없었다.


HZ*HZ*HZ*HZ*HZ*HZ*HZ*HZ*HZ*HZ*HZ*HZ*HZ*HZ*HZ*HZ*


세계가 대마왕 카이라에게 정복 당한지 어언 40년……. 카이라는 무지막지한 마력과 공포정치로 인간과 마족을 통솔하여 세계를 하나의 조직으로서 놀라운 문화를 창조했다. 물론 그 동안 인간들은 영웅을 기원하였고 구세주를 찾았다. (비록 건성이라고 하더라도)

마왕 퇴치를 기원했으나 너무나도 막강한 대마왕의 힘에는 그저 기록만을 갱신 시켜줄 뿐이었다. 그 사이에 있었던 일들을 간추리자면,

영웅 하브하브가 신들의 힘이 담긴 장비를 갖추어 몇몇 마족들을 물리치고 대마왕 성까지 돌진을 했으나 역시 돌아오지 못하는 운명을 걸었고, 전설의 용사 우가우가도 마왕성 대문에서 개 쪽을 당하고 세상을 떴다. 정령족 용사 햄머로드는 정령군을 통합하여 1만이라는 저항군을 조직했지만 카이라의 애완동물로 알려진 검은 드래곤의 간식이 됐다고 알려진다.

이후 사람들은 결국 포기를 알게 되었다. 반항하면 죽음이지만 아무 짓도 하지 않고서 자신의 생활에 충실하면 아무런 간섭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불굴의 투지를 가진 인간들은 지치지 않고서 계속해서 반항을 이어갔다. 결국 여타 종족이 제국에 반항하는 것을 그만두고 마지막까지 남은 반란의 종자는……인간들뿐이었다.


과거의 영광만을 뒤로 한 체 인간들은 수적으로 번영하기 시작했다. 악마들에게 제약을 받은 몇 가지의 조건을 제외한다면 오히려 인간의 법보다도 간단하고 편했다. 별다른 사상 교육도 없었다.

그저 악마가 최고다! 라는 것뿐이었다. 그게 싫으면 반항을 하던지 말던 지라는 규율도 없다. 그냥 그것뿐이었다.

간단히 말해서 까놓고 비평하는 것은 안 되지만 뒤에서 수군수군 거리는 것은 마음대로 라는 법이었다. 기나긴 세월이 지나면서 반항심을 잃어 가는 인간들은 늘어갔고 세상을 구하겠다고 뛰쳐나오는 이도 드물었다. 오히려 인간과 악마들의 혼혈이 등장하면서 그들이 우대 받는 등, 간단한 실력 사회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사이에 놀라운 점을 본다면 대마왕은 결코 인종차별을 하지 않는 다는 점이었다. 실제로 9지옥장군의 1명은 인간 출신이라는 것이다.

이쯤 되다 보니 반란 세력이나 레지스탕스 활동의 인간들은 점점 설 땅이 좁아지기만 했다. 그러나 흐르는 세월에는 대마왕도 어쩔 수 없었는가 보다. 이 세계를 최초로 완전하게 통일한 대마왕 카이라도 결국 마왕의 제국을 세운지 48년이 되던 그 해 꼴깍하고 만다.

‘마왕도 결국은 저 세상으로?’

무시무시한 용모 때문에 나이를 알 수 없었지만 실제로는 무척이나 나이가 많았다고 전해진다. 그래서 죽기 전에 한번 대업을 이루어 보자는 생각에서 세계를 정복 했었는가!?? 라는 소문도 돌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신빙성이 없는 뜬소문과도 같은 이야기와 함께 카이라 대마왕이 저 세상으로 갔다는 소문은 세계로 퍼지게 되었고 사람들은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그 무지막지한 대마왕이 없어진 이후의 세계는 어찌 되는 거지?]

라는 문제가 나오기 시작했다. 사실 그동안 강력한 통제력을 발휘한 대마왕이 있었기 때문에 제멋대로 날뛰지 못한 악마가 없었다고는 말을 못하지 않는가? 통제력을 잃은 악마들이 언제 다시 파괴 본능에 충실하게 따르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새로운 암흑시대가 도래 할 것인가? 아니면 다시 인간들의 영광이 이 세상에 재현될 것인가? 그 누구도 예측을 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어느 새인가 사람들 사이에서는 이런 말이 오가기 시작했다.

‘위대한 지도자를 잃은 마왕군이 제대로 그 힘을 유지 할 수 있을 것인가!! 이때가 바로 인간이 다시 모든 생명의 위에 설 수 있는 때가 되지 않겠는가…’

인간들은 지금이야말로 인간들의 세상을 다시 찾을 수 있는 시기라고 생각하게 되었고 세계는 다시 대폭풍의 계절을 맞이하고 있었다. 인간들에게 있어서 암흑의 마귀들에게 지배받던 겨울이 끝났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제 누구도 주저하지 않고 이렇게 부르짖었다.

“그렇다! 드디어 봄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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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ZARD - 5부 외전 - 크라뮤의 매듭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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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HZ5外] 4장 매듭의 연결 (7) 13.02.10 427 2 50쪽
12 [HZ5外] 4장 매듭의 연결 (6) 13.02.10 420 1 50쪽
11 [HZ5外] 4장 매듭의 연결 (5) 13.02.10 395 2 64쪽
10 [HZ5外] 4장 매듭의 연결 (4) 13.02.10 404 1 37쪽
9 [HZ5外] 4장 매듭의 연결 (3) 13.02.10 440 1 63쪽
8 [HZ5外] 4장 매듭의 연결 (2) 13.02.10 387 1 55쪽
7 [HZ5外] 4장 매듭의 연결 (1) 13.02.10 404 2 54쪽
6 [HZ5外] 3장 매듭의 시작 (4) 13.02.10 436 2 35쪽
5 [HZ5外] 3장 매듭의 시작 (3) 13.02.10 424 1 53쪽
4 [HZ5外] 3장 매듭의 시작 (2) 13.02.10 362 1 46쪽
3 [HZ5外] 3장 매듭의 시작 (1) 13.02.10 341 1 35쪽
2 [HZ5外] 2장 원수 13.02.10 448 2 49쪽
» [HZ5外] 1장 봄이 왔다 13.02.10 603 2 6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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