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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즈리 님의 서재입니다.

달이 만든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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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즈리
작품등록일 :
2020.06.13 16:23
최근연재일 :
2021.05.01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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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6,707

작성
20.11.27 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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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176화

DUMMY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안수와 인사를 나누었었다고? 나나에게는 그런 기억이 없다. 그녀를 혼란스럽게 하고도 이를 별개의 사건으로 두고 싶었던 것인지 백면은 당시의 상황을 이어서 서술하지 않고 바로 말을 돌려버렸다.


“그나저나 재밌는 것 같아.”


무엇을 가리키고 하는 말인지 몰라서 나나는 달을 쳐다보았다.


“너는 생각보다도 더 어리석은 아이였다니.”


그런데 다른 것도 아닌 나나를 가리키고 하는 말이었다. 나나는 팔자주름이 들 정도로 인상을 구기었다. 거울을 보다가 문득 제 얼굴에 난 뾰루지 하나를 발견한 후에 찌푸리는 듯한 얼굴로 마주한 백면은 그 뾰루지가 실은 자기 자신이라는 것을 모르는지 연신 미소를 너그럽게 띠었다.


“달은 변하지 않아.”


나나가 무어라 따져 묻기 전에 백면이 선수를 쳤다.


“계속 둥글지. 둥글다 못해 너무 둥글어서 지겨울 정도로 둥근 게 저 달이야.”

“태양도 그래.”


그에게 적대감과 반감을 동시에 느낀 나나는 그의 말에 꼬투리를 잡았다.


“그렇다면 왜 둥근지도 알아?”


순순히 넘어가지 않으려는 건지 아니면 그저 나나의 장단에 맞추기 싫어 실랑이를 부리려는 건지 백면은 바로 나나에게 태양이 둥근 이유를 물었다. 나나는 짐짓 당황하고 말았다. 자신에게는 그 까닭과 근거를 충분히 설명할 만큼의 지식이 있지도 않다지만, 설사 그렇다고 해도 만유인력이니 중력이니 그래서 어떻게 저렇게 해서 구체가 되었느니 하는 종류의 이야기를 기대하는 것 같지 않은 눈빛을 백면이 보인 것이다.


“너무 그렇게 심각하게 고민하지는 마.”


표정에서 들켜버리고 말았는지 백면은 피식 헛웃음을 흘리며 상냥히 일렀다.


“어차피 이건 꿈이니까.”


그러고는 그가 나나에게 한 발자국 더 다가왔다. 백면은 아예 서로가 마주할 수 있도록 나나의 어깨를 부여잡고는 그녀의 상체를 틀어 자신을 보게 하였다. 그때 나나는 왜 저항도 없이 그가 하는 대로 두었는지 그 사유조차 모르게 되었다. 두 개의 달이 걸린 듯한 멍한 눈동자로 백면을 직면하자 그는 자신의 손바닥을 가져다 대 나나의 눈을 지그시 감겼다.


“하지만 꿈이라고 해서 네가 보는 달이 내가 보는 달과 다르라는 법은 없지.”

“이번엔 또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백면의 손이 제 얼굴의 반을 가리도록 둔 채로 나나가 물었다.


“그야 너는 수없이 봤을 거 아냐. 과연 나만큼 보았을지는 의문이긴 해도 나는 이미 죽었으니 나를 제외한다면 네가 제일 많이 본 사람이 되겠지.”

“도대체 뭘?”


나나가 입술을 깨물며 재촉했다. 백면의 가벼운 웃음소리가 다시금 들려왔다. 시야를 잃었는데도 귀에 익은 그 음성에 나나는 섬세하고도 기묘한 안정감을 느꼈다. 어쩌면 지금 이 순간에서야말로 자신이 백면을 완전히 받아들이게 되었을 수도 있다.


“그렇지 않아.”


그녀의 속마음을 읽은 백면이 답했다.


“아직은 때가 아냐. 너는 날 받아들이려면 더 노력해야 해. 그러니까 섣부른 판단은 하지 마. 아직 내 말이 끝나지 않았으니까.”

“왜 멋대로 사람 마음을 읽는 거야?”

“난 그런 적 없어. 반대로 내가 마음을 읽게 한 게 바로 너지.”


아직도 자신의 얼굴에서 손을 떼지 않은 백면의 태도에 나나는 팔을 거칠게 휘두르며 그것을 치우려고 그의 약지를 잡았다. 그러나 백면이 바로 손을 가뿐히 쳐 떨어뜨리는 바람에 나나는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며 실소를 터뜨렸다.


“본론으로 돌아가도록 하자.”


어떤 사과도 없이 백면은 태연하게 굴었다. 나나는 기가 차서 결국에 그에게 아니꼬운 말을 던지고 말았다.


“사람 화나게 하는 화법 좀 쓰지 말고 제발 말을 똑바로 해.”

“그래, 나는 그러려고 했어. 하지만 다른 생각을 한 건 너야. 왜냐하면 네가 집중하지 않으면 난 이 손을 뗄 수가 없거든.”

“뭘 보여주려는 건데?”


질문을 마치자마자 나나는 백면의 숨이 더 가까워진 것만 같은 기분을 느꼈다. 어쩌면 착각이 아닐 수도 있다. 앞이 보이지 않으니 백면이 정말로 고작 손 하나를 두고 자신의 코앞에 있다고 해도 이상할 건 없다. 그런 상상을 하니 나나는 본능적으로 머리를 뒤로 빼었다.


“그렇게 물러서면 안 되지.”


백면이 반대편의 팔로 나나를 감싸 그녀의 뒤통수를 조심스럽게 앞으로 밀었다. 자신에게서 멀어지지 않도록 한 조치였다.


“네가 제일 많이 본 게 뭔지 알아야 해. 아마 바로 알아챌 수 있을 거야. 네가 제대로 본다면 말이지. 그대로 보면 안 돼.”


나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있는 그대로만을 보는 사람은 그림을 그릴 수 없거든.”


그 때문인지, 백면은 나나의 가장 아픈 구석을 건드렸다. 욕지거리가 나오려던 것을 애써 입술을 꾹 씹으며 나나가 침착하게 대응하자 백면은 더는 그녀를 자극하지 않고 천천히 나나의 얼굴을 감싸고 있던 손을 뗐다.

비록 눈을 감고 있더라도 시야가 어두운지 밝은지는 알 수 있다. 얼굴을 누르고 있던 무게보다도 조금씩 서서히 밝아지는 시야에 먼저 반응한 나나는 눈부심이 없도록 살짝 찡그리면서 눈을 떴다. 역시나 예상했던 대로 백면이 제 얼굴을 아주 가까이에 대고 나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디에 시선을 두어야 할지 몰라 나나가 눈알을 굴리니, 백면은 아직도 나나의 머리를 감싸고 있던 팔에 힘을 실어 그녀가 자신을 쳐다보도록 유도했다. 어쩔 수 없이 나나는 백면의 눈을 쳐다보았다. 그런데 그 안에는 초승달의 형상이 담겨 있었다. 각막을 통해 들어간 것이 빛이 아니라 달이었을 수도 있겠단 착각이 들 정도로 백면의 흑갈색 눈동자에는 또렷하게 초승달이 빛나고 있었다.


“······달을 말하는 거야?”

“그래, 맞아.”


나나가 눈살을 찌푸리며 그것을 더 들여다보기 위해 눈을 비볐다. 하지만 그 이후에 백면은 사라지고 없었다. 허무맹랑하게도 중요한 순간에 꿈에서 깨어버린 것이었다. 영화 속에서 보면 간혹 이런 종류의 일이 있고는 한다. 달이나 태양의 움직임을 보고서 자신이 속한 세계가 어떤 세계인지 깨닫게 되는 일 말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그것을 알아채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하나의 모티브처럼 이야기를 구성하는 중요한 틀이 되기는 하지만 결코 끝까지 그것을 눈치채기는 쉬운 법이 아니니까 말이다. 그리고 그 고정된 천체의 역할은 이야기의 끝에 가서 드러나기 마련이다. 그래야 일이 해결되기 전까지는 인물들이 죄책감을 갖지 않고 허튼 짓을 할 수 있으니까.

그렇다면 이 이야기는 곧 끝날 때가 된 것일까? 나나는 내심 그런 수상한 기대를 품어 보았다. 이제는 그냥 백나나라는 사람 자체가 되고 싶어졌다. 무엇이든 좋으니 백면과는 관련이 없는 백나나 말이다. 나나는 헝클어진 머리를 정리하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창문 너머로 보이는 달을 제일 먼저 보기 위해 창문 쪽으로 다가가 그 틀에 기댔다.


“보름달.”


그녀는 달의 모양을 보고 그 달의 이름을 중얼거렸다.


“······하지만 내가 제일 많이 본 건 초승달이란 건가?”


백면이 한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나나는 관자놀이 부근에 손가락을 갖다 대고 고뇌에 빠졌다. 하지만 자세만 바꾼다고 해서 생각이 쉽게 바뀌는 것은 아니다.


“아니면 사람 눈을 제일 많이 봤단 건가?”


백면이 보여준 것이 그 자신의 눈이었는지 아니면 세계에서나 보던 초승달이었던 건지 나나는 자신할 수 없었다. 있는 그대로 보자니 나나는 그 둘을 동시에 보았다. 반면에 보인 것을 제대로 보자니 나나는 무엇이 제대로 된 것인지 알 수 없어졌다.

미간을 구기며 괴로워하던 나나는 도진을 떠올렸다. 어쩌면 도진은 왜 월계의 달이 항상 보름달인지 알려줄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의 상황에서 이것이 왜 중요한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어쨌든 백면이 꿈에 나와 일러둔 것이라고 하면 모두가 그것을 중요하게 고민할 것이다. 그렇게 결론을 내리자 나나는 곧 창문에서 떨어져 바깥으로 걸음을 돌렸다.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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