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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즈리 님의 서재입니다.

달이 만든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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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즈리
작품등록일 :
2020.06.13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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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01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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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2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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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161화

DUMMY

사람들이 드나드는 현관문이 가장 잘 보이는 자리는 어느새 태강의 지정석이 되어버렸다. 왜 그렇게 되었는지 곰곰이 생각할 것도 없이 누구보다도 편하게 다리를 쭉 뻗고 한가로이 하루를 만끽하는 그의 모습만으로도 단번에 파악 가능했다.


“태강. 참으로 태평합니다.”


하품하는 꼴이 영 얄미운 태강을 향해 달목이 그를 불렀다. 태강과는 달리 일어선 자세로 상대방을 한심하게 바라보며 그를 꾸짖을 작정인지 뒷짐을 지고 있는 모습은 꽤 인상 깊게 다가왔다.

결국에 달목이 말을 건 이유를 눈치채버린 태강은 다리를 바닥으로 내리고선, 바른 자세로 앉아 달목의 부름에 변명으로 응했다.


“에이, 아니야. 앞으로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생각하고 있었어.”

“그렇습니까? 그렇다면 무엇에 대처하고자 그렇게 고심했는지 궁금합니다.”


어물쩍 넘기려다가 되려 제 꾀에 제가 걸리게 되었으니 난처해진 태강은 급히 머리를 굴려보았다. 딱히 좋은 수가 떠오르지 않자 그는 요즘 자신들의 발을 수도에 묶어둔 문제나 다름없는 시집을 화두에 올렸다.


“제목이 없는 시에 대해서 계속 생각 중이었거든. 봐!”


그리고 테이블 위에 뒤집어엎어진 책 한 권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도진이 가져온 책 중에 하나를 뺏어 몇 장 읽다가 금방 싫증을 느끼고 아무렇게나 둔 것이었다.


“그 시가 참 감명스러웠나 봅니다.”

“응? 그랬던가? 아무래도 그러긴 했지.”


속이 훤히 보이는 거짓말에 달목은 미간을 찌푸리며 눈을 가늘게 떴다.


“여태까지 시집에 손도 못 댈 정도로 충격을 안겨준 작품이라니, 아무래도 백면은 예술 방면에 있어서 정말 뛰어난 재능을 갖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제야 달목의 저의를 알아차린 태강은 뜨끔하여 윗입술을 꾹 삼킬 정도로 입을 굳게 다물었다. 서서히 눈치를 보면서도 절대로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은 그를 답답히 여기며 달목이 한마디 덧붙였다.


“천하태평한 태강을 감동케 하다니, 아무래도 문학적 재능으로는 흑석이 백면에게서 한 수 배워야 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태강은 어떻게 받아칠지 몰라 어색하게 웃음만 흘렸다. 자꾸 뜸을 들이며 하는 대답은 전혀 신뢰감을 얻지 못할 정도로 그는 실수투성이다.


“그런가······ 뭐, 잘은 모르지만 그런 것도 같아. 백면의 이름이 밝혀진 것도 아닌데 인간들이 그렇게 훌륭하다고 하니까 말이야.”

“어느 정도는 인정하겠어.”


자신을 마주하고 있는 달목에게로 태강이 눈길을 두고 있던 차에 갑자기 흑석의 목소리가 태강의 귓가에 꽂혔다. 눈이 나올 정도로 깜짝 놀라 급히 주변을 돌아보니 제 옆에서 서 있다가 시선을 맞추기 위해 옆자리로 앉는 흑석의 모습이 들어왔다.

다음으로 앞쪽을 확인하니 달목 역시 갑작스러운 흑석의 등장에 상당히 놀란 모습이다. 큰 표정 변화 없이 항상 얌전하고 평온하던 이마에 주름을 그릴 정도로 말이다.


“꽤 괜찮기는 하던데. 시 같지도 않은 것을 시라고 쓰고 그걸 또 시라고 부르는 인간들에 비해서야 당연히 12성인의 명색이 있는데, 백면이 더 나아야지.”


두 명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면서도 그들의 반응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이, 자신과 백면의 비교에 대해서 자신의 견해만을 내비칠 뿐이다. 하도 어이가 없어서 뭐라 대꾸할 겨를도 없는 태강과 달목의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그는 이제야 자신이 어떻게 나타나게 되었는지 그 경위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상하게 보지 마. 새로운 이동 장치를 개발한 것밖에 없으니까.”


그래도 두 사람은 눈만 꿈뻑일 뿐이지, 대화에 재참여하지 못할 정도로 여전히 놀란 상태였다. 어쩔 수 없이 흑석은 오른쪽 팔을 위로 들어올려 제 팔목에 걸린 것이 보이도록 좌우로 흔들었다.


“봤지? 이걸 만들었거든.”


실없이 던진 소리도 아니었건만, 소용도 없는 시도였다고 하소연을 하려던 찰나에 몸을 뒤로 젖히며 그를 경계하는 눈빛의 태강이 말했다.


“왜?”

“뭐가 ‘왜’야?”

“갑자기 왜 그런 걸 만들었어?”


흑석은 질문을 이해하지 못해서 난처한 얼굴로 태강을 쳐다봤다. 하물며 자신을 처음 상대하는 것도 아닌데 저렇게 거리감을 두면서 묻는 태강의 태도도 이해할 수 없었다. 어느새 흑석은 억울한 듯 입꼬리를 비틀었다.


“죽다가 살아났잖아. 살려고 만든 거지. 다시 그런 일에 처할지 모르지만 만일에 대비해서 나쁠 게 없잖아. 이제 딱 한 번 남은 목숨일지도 모르는데.”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이곳에 있는 모두가 기억하고 있는 일이 있었으므로 대답으로 충분한 설명이었다. “아.” 짧은 탄식이 태강과 달목의 입가에 나오면서 그 이상의 소명(疏明)은 불필요해졌다.


“팔찌로군요.”


겨우 본래의 얼굴로 돌아온 달목이 물었다.


“어. 예전에 이미 목걸이를 만든 게 있으니 이번에는 팔찌가 어떤가 싶어서. 그리고 사실 이게 더 간편할 것 같아서 새로 제작한 거야.”

“어떻게 쓰는데?”


옆에 앉은 이가 흑석이 맞다는 확신을 드디어 갖은 태강이 옆으로 바짝 붙으며 호기심 가득한 눈길로 흑석을 바라보았다. 초롱초롱한 두 눈은 흑석을 바라보다가 말고 아예 팔찌에 꽂혀서 좀처럼 딴 데를 향하지 않게 되었다.


“방금 보여줬잖아.”


자신의 흉을 보고 있다 못해 의심까지 한 그가 귀엽게 보일 리가 없기에 흑석은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응? 팔찌만 보여줬잖아. 흑석. 알려주기 싫어서 그래?”


풀죽은 모습으로 토라진 태강이 상대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하지만 저지른 잘못이 없는 흑석은 태강의 행색에 한 발 물러서기는커녕 더 못마땅한 투로다가 같은 대답을 되뇌었다.


“보여줬다니까? 그것도 방금.”

“방금? 팔찌밖에 보여준 게 없잖아. 설마 팔찌를 다른 사람한테 보여주면 이동이 되는 거야? 뭐야, 그렇게 웃긴 게 어딨어.”


흑석이 했던 동작을 따라하며 태강은 실망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예전에 만든 거울의 사용법까지는 아니더라도 뭔가 팔찌만의 독특한 사용법을 기대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낙담이었다.


“내가 그렇게 단순한 줄 알아? 그게 아니라 내가 팔찌가 있는 팔목을 좌우로 움직였잖아. 그렇게 하면 원하는 장소로 이동이 가능하다고.”


혼자 기대했다가 이제는 혼자 의욕을 상실한 태강의 이해를 돕기 위해 흑석이 다시금 자신이 했던 동작을 보여주었다. 이번에는 두 사람의 이목을 끌 필요는 없었기에 팔을 위로 뻗지는 않았다.


“하지만 아까도 그렇고 방금도 그랬지만, 흑석은 이동을 하지 않았지 않습니까?”


두 번이나 보여준 사용법을 묵묵히 관찰하고 있던 달목이 팔찌에 관한 의문 하나를 짚기 위해 입을 열었다.


“그야 내가 이동을 할 생각이 없으니까 그렇지.”


아주 간단명료한 대답을 내놓은 흑석은 아직도 팔찌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태강이 못미더워서 눈을 살짝 찌푸렸다. 이렇게 실은 티를 내봤자 어차피 태강은 자신에게 전혀 눈길을 주지 않으니, 그저 얼굴을 구기는 일에 불과했다.

팔찌에서 시선을 거두지 못하는 것은 달목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그는 태강보다 훨씬 더 팔찌의 실질적 가치에 대해 논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목걸이보다 더 복잡해 보이는군요.”

“그렇지 않아. 그 거울 목걸이도 결국에 공간과 공간 사이를 두고 갈지 말지 결정하는 건 인간의 마음이니까. 모양만 다르지, 원리는 같다고 할 수 있어. 목걸이와 팔찌가 어차피 모두 장식품인 것처럼.”

“그렇군요. 흑석이 다시는 그런 물건을 만들지 않알 줄 알았습니다.”

“나도 그랬지. 그런데 생각은 바뀌는 거더라고.”


잠자코 흑석의 손목만 쳐다보던 태강이 중간에 끼어들었다.


“그럼 이걸 자랑하려고 온 거야?”


그의 단순하면서도 꽤 정곡 근처를 찌르는 질문에 흑석은 목청을 가다듬어야 했다. 실은 그런 목적이 아주 없다고는 할 수 없는 것이 그의 진심이었다.


“꼭 그렇지는 않고. 내가 자랑할 사람이 없어서, 허.”

“그러면? 왜 여기에 갑자기 나타났어?”


계속되는 솔직한 질문공세에 정신을 차리려고 눈을 부릅뜬 흑석은 재차 일부러 기침하며 자신이 나타난 또 다른 이유를 밝히기 시작했다.


“전할 소식이 있어서.”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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