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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즈리 님의 서재입니다.

달이 만든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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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즈리
작품등록일 :
2020.06.13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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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23 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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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화

DUMMY

고집하던 부동자세를 버리고 결국에 야담은 태강의 옆에 앉았다. 마냥 낮잠이나 자는 것 같이 보이는데 하품은 줄곧 하는 것이 신기해서 태강의 벌어지는 입을 바라보다가 무심코 저지른 일이다.

저를 꾸짖으려고 앉은 줄 알고 다소 겁먹은 얼굴로 태강이 야담을 바라보았다.


“왜 옆에 앉고 그래? 오늘은 어디 안 가?”


느닷없는 낯가림으로 한 뼘 정도의 거리를 떨어뜨리며 태강이 물었다.


“태강.”


들리는 자신의 이름이 섬뜩하기는 정말 오랜만이다. 무게를 실은 야담의 목소리에 태강은 아주 뻣뻣하게 고개를 돌려 이에 응했다.


“응?”

“내가 영월에게 할 말이 있을 거라는 걸 어떻게 알았지?”

“그거야······ 표정이 그래 보였으니까?”

“단지 그런 짐작밖에 없던 건가?”


태강은 두 눈을 치켜뜨며 어젯밤 자신이 왜 그런 말을 했는지 되새겼다. 순전히 지레짐작으로 가능했던 일 같다. 아니면 직감이라고 불러도 좋을, 막연한 감정 말이다.


“야담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겠다는 그런 느낌밖에 없었어.”

“그럼 근거도 없이 내게 그런 말을 했다는 거군.”

“야담까지 나한테 잔소리를 하려는 거야?”


불쌍한 눈빛으로 둔갑한 태강은 애처롭게 야담을 쳐다봤다. 실은 약간의 억울함만이 있을 뿐, 그다지 이 상황을 자신에게 불리하게 받아들이지도 않으면서 보인 과잉대응이었다.


“그러려는 건 아니다. 단지 네가 어떻게 내 생각을 읽었는지 궁금했던 거니까.”

“뭐?”


헛것을 보고 놀란 것처럼 태강이 비명을 질렀다.


“그럼 정말 진심이었어? 나는 그냥 그런 느낌이 들어서 그랬던 건데, 야담이 그랬다고 하니까 소름 끼친다.”

“사실 백면에 대해서 따로 조사했으면 하는 게 있어서 영월을 떠올리던 참이었으니까.”

“백면? 설마 또 뭘 알고 있는 거야? 홍연이 없으니까 야담이 비밀을 다 가져가네.”


그는 퉁명스럽게 말을 뱉어도 막상 야담이 모두 말해줄 거란 막연한 생각에 그다지 조바심치게 굴지는 않았다.


“저번에 황호를 만난 것은 이야기했었지?”


야담이 말했다.


“응. 그랬었지. 그런데 그게 왜?”

“그때 초영이 이상한 이야기를 했다.”

“이상한 이야기? 백면에 대해서? 초영은 원래 이상한 이야기만 하잖아.”

“그런 말장난을 가리키는 게 아니야.”


티끌이 없을 정도로 순진무구한 태강의 태도에 야담은 고개를 가로젓다가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초영 역시 자신이 꺼낸 이야기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처음에는 모르는 눈치였으니, 그보다 더 평소에도 눈치가 바닥인 태강의 반응은 예상과 다를 바 없었다.


“그나저나 초영은? 안 보이네. 설마 가출한 거야?”

“가출은 우리가 했다고 봐야겠지. 초영은 어제 난연으로 갔다.”

“난연으로 갔다고? 난연엔 왜? 고여명한테 무슨 문제라고 생겼던 거야?”


야담은 미간 부근을 손날로 꾹꾹 누르며 피로해진 탓에 뒤죽박죽인 머릿속을 애써 정리하기 시작했다.


“오히려 그 반대라고 해야겠지. 그리고 난연에 가야만 했던 이유는 지금 내가 너에게 털어놓으려는 이야기와 일맥상통하는 구석이 있으니, 그런 밤길에 마주친 부엉이 같은 얼굴은 그만둬라.”


우선은 황호를 만나고 난 뒤 초영과 나눈 대화부터 시작해야겠다. 마음을 듣기로는 그 백면의 내생이라는 학자가 자신 나름대로 길을 튼 것 같은데, 그것을 제외하고도 백면의 시집에는 분명히 다른 사연이 숨겨진 게 분명하다. 그리고 그 사연은 필시 그의 죽음과 상통하는 면이 있으리라. 아니다. 이제는 그가 왜 죽었는지도 모르겠으며, 백면이 정말로 죽은 자가 맞는지 의심스럽다.


“그렇다면 우리가 예상했던 이유 때문이라거나 혹은 괜히 고도훈의 아들로 다시 태어난 게 아닐 수도 있다는 거네.”


초영과의 일에 더해 야담의 사견까지 들은 후 태강은 의외로 자신이 들은 이야기의 주제를 간편하게 요약했다. 이에 고개를 끄덕거리며 야담은 사뭇 소심해진 목소리로 조심스럽게 태강에게 말을 걸었다.


“태강. 너는 영월이 어디까지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

“영월이? 뭘 알고 있는지에 따라 다를 것 같은데? 일단 영월은 우리 중에서 다방면으로 똑똑한 편이라고는 생각하지만.”

“백면의 일에 대해서 말이다. 도진이를 이어서 계속 백면이 나타나는 꿈을 꾸는 백나나에 대해서도, 그리고 이번 시집에 대해서도. 어쩌면 다른 속사정이 있을지도 모르는 일까지 전부. 백면의 삶과 죽음에 해당하는 모든 것을 가리킨다면 너는 영월이 어디까지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


태강은 수염을 민 자국이 잘 보이지 않는 제 턱을 문지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 고민상(苦悶相)을 표현하자면 탐정보다는 탐정의 조수의 것에 가까울 정도로 그리 심각하지는 못하지만, 야담의 물음에 진지하게 임하고 있는 자신의 자세를 드러내기에는 충분했다.


“확실히 애매하기는 해. 영월은 좀처럼 그런 말을 하지도 않고 어쩔 땐 멋대로기도 하잖아. 막무가내일 정도로.”

“지금 영월을 평가하라는 게 아니다.”

“하지만 영월이 누군지도 생각하지 않고서 어떻게 영월이 뭘 알고 있는지 생각할 수 있겠어? 어쩔 수 없이 자연스러운 거라고.”


이에 야담은 불만스럽게 입을 다물며 계속해서 태강의 침묵을 기다렸다.


“아이, 모르겠다. 진짜 모르겠어. 야담. 영월한테 돌아갈 자신이 없어서 나한테 이런 걸 물어보는 거지?”

“뭐? 그런 게 아니라 나는 최대한으로 일을······”

“됐어. 말하지 않아도 알 것 같아.”

“방금 네가 했던 말과 모순되는 발언 같은데.”

“그럼 취소할게. 야담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발언을 취소하면 되지.”


당장에 사사건건 따질 작정은 아니었지만, 태강의 변사(變詐)에 야담은 얼이 나간 상태가 되었다. 태강은 제 머리를 흐뜨러질 만큼 두 손으로 머리카락을 마구 헤집어 놓았다. 두 눈도 그리 맑은 빛깔은 아니었기에 단정하고 편하던 그의 행색은 금세 흠히 자다 일어난 사람인 양 지저분해졌다.


“야담. 생각해 보니까 영월이 뭘 아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아.”

“어째서지?”

“그야 우리가 찾아내려는 비밀은 모두 백면과 관련이 있는 것인데, 영월은 그저 우리와 같은 입장이지, 별로 다를 데가 없잖아. 그러니까 그런 생각을 하는 건 아주 의미가 없는 일은 아닐지 몰라도 별로 큰 도움은 안 될 거란 말이야. 내 생각은 그래.”

“이곳에 계속 머무르는 게 그다지 편하진 않던 모양이군.”


태강은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렇다고 야담을 따라온 걸 후회하는 건 아닌데, 나는 당분간은 여기에 있을 필요가 없는 것 같아. 그리고 천규는 이제 다음 생을 기다리고 있는 처지니 과감하게 말해야 한다면, 천규는 죽었다고 해야겠지. 그러니까 나는 아직 그 애가 있는 데에 머무르고 싶단 생각이 계속 들었단 말이야.”


그의 상실감을 모르는 척 넘어갈 정도로 야담은 매정한 이가 결코 아니었다. 태강이 가진 고충에 대해서도 어렴풋하게라도 공감하고 있었다. 그러니 굳이 태강이 하는 말에 토를 달지 않고 야담은 묵묵하게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그럼 돌아가고 싶단 말이겠지?”

“응. 그리고 야담도 그걸 원하는 것 같아.”

“내가?”

“말했잖아. 그런 느낌이 들었다고. 내가 어제 한 말을 야담이 이렇게 마음에 담아두는 것도 신기하다면 신기한 일이야. 그러니까 야담도 내심 영월이랑 대화를 하고 싶어 한다는 걸 인정해도 돼. 그건 부끄러운 일이 아니잖아.”

“그렇군.”


자신을 말리거나 회유할 시도조차 하지 않는 야담의 소극적 태도에 태강은 잠시 그를 지켜보다가 질문 하나를 꺼냈다.


“야담. 사람의 마음이 변하는 게 죄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

“좋은 것은 아니지.”

“그렇지 않아. 좋은 변덕도 있어. 그건 내가 제일 잘 알아. 왜냐하면 나는 모든 나쁜 변덕을 겪었으니까.”

“나쁜 변덕이라고?”

“기적 말이야. 기적은 사람들이 좋지 않은 변덕을 부리게 하거든. 하지만 야담은 내가 죄인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을 거야.”

“그야 너는 성인이니까 그런 거다.”


태강은 맞장구의 뜻으로 손뼉을 쳤다.


“그래! 그렇다니까. 변덕을 부려야 할 때도 있는 법이야. 야담이 심연도를 떠났을 때 했던 생각을 계속 유지할 필요도 없어. 반드시 계속 같은 생각을 할 필요도 없는 거고.”


그리고는 야담의 어깨 위에 팔을 얹으며 어깨동무를 시도했다.


“화해해야 하려면 우선 마음부터 바꿔야 하지 않겠어?”

“화해라고? 영월과의 화해를 말하는 건가?”

“그것도 그렇고. 주화와의 화해 말이야.”


싱긋 웃는 인물은 단연 태강밖에 없었다. 하지만 야담은 상대방의 밝아진 표정을 보고도 그리 얼굴을 찡그리지는 않았다. 어쩌면 자신도 따라서 웃고 싶단 속내 때문에 어색한 모습을 보인 것일 수도 있다.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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