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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즈리 님의 서재입니다.

달이 만든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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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즈리
작품등록일 :
2020.06.13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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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24 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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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화

DUMMY

왜 몰랐을까? 인간의 연애 사업, 그러니 인간의 감정놀음에는 전부 관여하고 있다고 믿어 자부했던 지난 시절이 급히 부끄러워졌다. 짚이는 구석이 있으니 신중히 들어보라는 야담의 부탁에, 어쩌면 자신이 그때 간과했던 그 여자의 마음이 지금까지 일어난 일들의 시초일지도 모른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참지 못하고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쓸어넘긴 초영은 열녀비 앞에 무릎을 접고 앉았다.


“이 여자가 아닐 수도 있잖아. 그러니까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는 말자.”


비석에 대고 하는 말은 아니었다. 난연에 이르러서도 여전히 갈피를 못 잡고 있는 자신을 다독이기 위해 꺼낸 말이다. 하지만 막상 열녀비를 바라보고 하자니 왠지 모르게 상하는 자존심에 초영은 코를 찡그렸다.


“아닐 거야. 아닐 수도 있고, 아닐 가능성이 더 많고.”


애써 부정하려고 드는 가정은 도리어 그것이 현실이기 때문임을 알고 있지만, 확률은 어디까지나 숫자일 뿐이다. 가능성이 있다고 하여서 모든 사랑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닌 것처럼 말이다. 조건이 성립한다고 해서 결코 원하는 결과를 거머쥘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속마음은 그리 논리정연하지 못하다.


“안녕!”


뒤집히는 속에 곧 얼굴이 달아오를 새라 살금살금 달아난 곳은 여명의 가게였다. 월촌은 그리 북적거리는 동네가 되지는 않는지라 이전의 도심 광장에서 일하던 때와 다른 게 확연히 보일 정도로 가게는 썰렁했다.


“······안녕하세요!”


뜬금없는 초영의 방문에 잠시 놀라다가도 여명은 이내 반가운 얼굴을 하며 그녀를 맞이했다. 그가 인사를 건네자마나 머쓱하게 계속 들고 있던 손을 이제야 내려놓으며 초영은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그대로 꽃집을 하는구나.”


여명의 새로운 가게를 둘러보던 초영이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할 줄 아는 게 딱히 없더라고요. 아무리 머리를 싸매고 생각해도 말이죠.”


멋쩍게 입꼬리를 올리며 여명이 답했다.


“그래도 당신한텐 꽃집이 제일 잘 어울리기는 해요. 그런데 여기 장사는 제대로 되긴 해요? 굳이 이럴 거였으면 그때 그 가게에서 하는 게 제일 좋았을 텐데.”

“그렇지는 않아요. 벌이가 필요한 건 사실이지만, 딱히 욕심은 없거든요.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기에 충분하기만 하면 되니까요.”

“하긴, 그게 당신이 바라는 행복이었죠.”


초영은 새침하게 팔짱을 끼며 주변에 놓인 화분들을 유심히 살폈다. 아직은 자신이 이곳에 온 이유를 말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어쩐 일로 오신 건지 여쭤도 될까요? 혹시 나나 씨와 도진 씨와 관련된 일인가요?”


조심스럽게 다가와 용건을 묻는 여명의 안색은 확실히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밝아졌다. 그는 무표정의 얼굴에서도 웃음기를 머금고 있을 만큼 온종일 하루의 행복을 쉽게 찾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아······ 그런 건 아니고, 그냥 잘 있나 궁금해서 그러죠.”


거짓말을 하는 것이 영 불쾌했지만, 아직은 말할 때가 아니라는 생각에 어쩔 수 없이 초영은 눈알을 뱅그르르 굴리며 시선을 피했다. 남을 속이는 게 익숙하지 않은 터라 두 볼은 약간 발그스름하게 상기되었다.


“덕분에요.”


그녀의 상태를 눈치채지 못한 여명은 소리 없이 활짝 웃었다.


“그래요? 난 다른 애들에 비해 별로 한 게 없는 것 같은데.”


초영은 과찬이라는 듯이 손짓으로 사양하며 자신도 따라서 웃었지만, 그 미소의 뒷맛은 씁쓸하기만 하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시간을 끌려고 했던 짓을 관두고 그녀는 여명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혹시 시간 괜찮아요?”

“시간이요? 시간이야 뭐··· 보시다시피 제가 지금 바쁘진 않으니까요.”

“그래요. 보아하니 시간이 괜찮아 보이긴 한데······ 내가 이야기를 다 전하고 나서도 충분히 내 말이 뭔지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의 시간도 넉넉하게 있는지 나는 그걸 묻는 거예요.”


***


월영전에 도착한 태강은 제일 먼저 양실로 향했다. 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나니 그 안에서 주화가 조용히 오후의 티타임을 즐기고 있었다. 안을 살피다가 차를 마시고 있던 중의 주화와 눈이 마주친 태강은 그대로 그녀를 지나쳤다.

그의 황당한 등장에 놀란 주화는 마시고 있던 것을 서둘러 삼키고 일어났다.


“태강!”


정신없이 돌아다니는 그의 시선에 분명히 무슨 일이 있음을 단번에 직감한 것이다. 하지만 태강은 지금 당장 주화가 자신의 이름을 불렀다는 것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그는 두 눈으로 자신이 목표로 하는 한 인물을 탐색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태강!”


고개를 움직이는 모습으로 보아 무언가에 쫓기듯 태강이 다급하게 행동하고 있다는 것을 간파한 주화가 다시금 그를 불렀다.


“응?”


결국에 태강은 잠시 멈추어서 주화가 있는 쪽을 바라보았다.


“갑자기 돌아오다니 도대체 무슨 일이야? 뭘 찾는 거야?”

“아, 영월 말이야. 영월 어디에 있어?”

“영월을 찾는 거야?”

“응. 영월한테 할 말이 있거든. 그래서 당장에 영월을 좀 봐야 해. 주화, 혹시 영월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


머리를 갸우뚱하게 숙이면서도 주화는 손가락으로 어느 한 방향을 가리켰다. 맞은편의 암실을 두고 하는 손짓이었다.


“영월!”


마침 그곳에서 나온 영월을 보고 태강이 반갑게 두 팔을 흔들었다. 그를 잠재적 배신자로 취급하여 이곳을 떠났다는 것을 도저히 믿을 수 없을 만큼의 해맑은 얼굴을 포함한 인사였다. 태강의 염치없이 태연한 태도에도 놀랐으나 이에 별다른 대꾸도 없이 덤덤하게 이쪽을 향해 오는 영월의 당당함에 주화는 더욱 당황하고 말았다.


“영월, 잘 지냈어?”

“하지 않던 짓은 하지 마라. 대하기 어려워지는군.”

“그런가? 나도 꽤 생각보다 다정한 사람인데.”

“정신이 나갔군.”


영월은 뒷짐을 쥐고 있던 손을 고쳤다. 그 사이에 그것을 유심히 지켜보던 태강은 영월의 손안에 무언가가 있음을 감지하고 이에 대해 바로 물었다.


“그건 뭐야?”

“백면의 유품이다.”

“유품을? 뜬금없이 왜?”


이해하지 못하는 눈길을 보내자 옆에서 둘의 대화를 어이없게 듣고 있던 주화가 대신 설명했다.


“이번에 새로운 내생을 찾은 걸 잊은 건 아니지?”

“아아, 그랬지. 잊고 있었어. 찾은 지 꽤 되었잖아. 이번엔 늦었네.”


영월은 이번에 어떤 유품을 꺼내 온 건지 보여줄 마음이 없는지 계속해서 뒷짐을 쥐고서 태강의 말에 반박했다.


“그건 나의 의지는 아니었으니 나에게 할 말로 적절하지 않은 것 같군.”

“그런가? 그래서 그게 뭔지 안 알려줄 거야?”


태강이 고개를 내밀면서까지 물건이 뭔지 살피려고 하자 영월은 아예 태강이 내미는 방향의 정반대 쪽으로다가 자신의 손을 숨겼다.


“왜 그래? 어차피 다들 알게 될 텐데, 비밀도 아니고 말이야. 궁금한데 알려주면 안 돼?”

“나를 쓸데없이 의심하는 자에게는 쓸데없는 짓을 할 필요가 없지.”

“설마 삐진 거야? 그러지 말고 그냥 보여 줘. 내가 다시 돌아왔잖아.”


의기양양하게 자신의 죄를 고백하는 꼴이 상당히 기괴한지도 모르는지, 옆에서 주화가 인상을 쓰며 자신을 바라보는 것도 알지 못한 채 태강은 목소리를 귀엽게 꾸며 영월에게로 더 가까이 붙었다.


“목적이 있어서 한 귀가를 두고 그런 사과를 하다니, 태강, 역시 그 가벼운 마음가짐은 변하지 않는구나.”

“응? 목적이라니?”


꿍꿍이가 딱히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없다고 하기에는 용건이 버젓이 존재했으므로 속내를 들킨 태강은 꾸미던 목소리를 금세 내려놓았다.


“백면의 일로 왔겠지. 그러니 이곳에 도착하자마자 나부터 찾은 게 아니었던가?”


그가 없는 줄로만 알았는데, 태강은 이곳에 와서 양실의 문을 여는 순간부터 쭉 영월이 자신을 지켜보고 있었을 거란 착각이 들었다.


“그럼 안 들어줄 거야?”


그렇다고 겁을 먹을 필요는 없었다. 오히려 아까와 같이 당당한 자세를 유지하면 그만이다.


“들어보도록은 하지.”


영월은 유품이 든 손을 더 꼭 쥐며 먼저 자리를 떴다. 그의 등을 물끄러미 쳐다보던 태강은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러고는 옆에 있는 주화와 한 번 눈을 맞추고는 그대로 영월의 뒤를 따라갔다.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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