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핏콩 님의 서재입니다.

검은머리 러시아군 대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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핏콩
작품등록일 :
2024.08.25 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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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8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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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5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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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서

DUMMY

일본의 선전포고 없는 공격으로 발발한 전쟁.


어쩐지 기시감이 드는구만. 일본 놈들은 이때부터 선빵부터 갈기고 봤던건가.


한 40년 뒤에는 그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되지만, 역으로 그 말은 지금은 그럴 일이 없다는 뜻.


- 이 전쟁은 러시아의 패배로 끝나니까.


그러나 그 사실은 아직 아무도 알지 못한다.


저 미개한 원숭이들을 징벌하자는 여론만이 온 페테르부르크를 뒤덮고 있을 뿐.


그것은 제1생도군단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것은 단순한 전쟁이 아니다.


이것은 러시아 제국의 위신과 명예에 대한 모욕이고 도전이다.


어릴 때부터 조국에 대한 충성심과 애국심을 교육받아온 생도들은 복도에서, 기숙사에서 일본에 대한 즉각적인 보복을 외쳐댔다.


“이번 기회에 반드시 일본에 본때를 보여줘야 해!”


“저 원숭이 같은 일본 놈들을 철저하게 응징해야한다고!”


“어? 뭐라고?”


“자, 잠깐! 절대 루슬란 너 보고 한 말이 아니야!”


내가 지나가는걸 본 잔뜩 흥분한 얼굴로 일본을 욕하고 있던 동기 한 놈이 얼굴색을 바꾸더니 입을 닥쳤다.


그 옆에 있던 놈은 황급히 동기의 입을 가리면서 변명을 했다.


야 인마.

넌 한국인이랑 일본인도 구분 못하냐. 괜히 그렇게 얘기하니까 더 수상하잖아.


“아니, 괜찮아. 나도 동감이니까.”


“그렇지? 루슬란 너는 그렇게 얘기할줄 알았어! 중국에 가서 가차없이 이교도 복서 수십 명을 망설임없이 베어낸······.”


나는 쓸데없는 소리를 늘어놓는 녀석을 손을 휘저어 물리쳤다.


쟤네가 절절매는 이유는 간단하다.


물론 내가 학교의 유명인사인 것도 있지만.


내가 차르에게 요청해 생도군단의 숙원이었던 ‘황제가 직접 학교 후견인 맡기’를 부활시킨 이후로 나는 거의 우리 학교에서 언터쳐블한 인간이 되었다.


심지어 교관들마저 내게 존경의 눈빛을 보낼 정도.


포코틸로 교장 입장에서도 자기 재임기에 생도군단 역사에 남을 업적 하나 세운 셈이니 저번 일은 퉁치고 넘어가고도 남는 선물이었다.


포코틸로도 그 이후로 나한테 꽤 살갑게 대했다.


“급히 이리 불러서 미안하네. 내가 부탁하고 싶은 일이 있어서 말이야.”


봤나? 내가 깐깐징어의 얼어붙은 심장을 녹였다!


내가 비행기를 개발했을 때도 딱딱하던 이 인간이 이렇게 부드럽게 차까지 내주는 것 봐라.


하지만 포코틸로 역시 심심하고 할 일 없어서 나를 부른 것은 아니었다.


“이번 전쟁으로······ 생도들이 많이 흥분하고 있네.”


“알고 있습니다. 일본의 공격 방식이 좀 비열했어야 말이지요.”


사실 비열하지 않았어도 흥분했을거다.


애국심과 공명심으로 충만한 녀석들이니까.


“제국의 사관생도로서 그런 분노는 당연해. 하지만 그 방향성이 문제일세. 지금 생도들은 앞다퉈서 전쟁에 참여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하고 있어. 그들의 의기는 인정하지만 결코 받아들일 수는 없어. 한 두 사람도 아니고 지금 분위기면 학교가 텅텅 빌 판이야.”


나폴레옹 전쟁 때도 이런 일이 있었다고 듣긴 했지만, 그건 거진 백 년 전의 일.


하지만 학교를 운영해야 하는 포코틸로 소장 입장에서는 모든 생도를 학도병으로 내몰 수는 없었다.


“교사들이 만류하고는 있지만, 도저히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아. 자네가 나서서 좀 도와주면 어떻겠나?”


“저는 생도 대표도 아닌데요?”


“그래. 그렇지. 하지만 알지 않나.”


암묵적으로는 내가 제1생도군단의 얼굴이나 다름없다는거 말이지.


“무엇보다 정식 생도 대표부터가 참전을 부르짖고 있으니······”


“요안 선배 말씀이시군요.”


요안 콘스탄티노비치 로마노프.


당연히 그가 생도 대표가 된건 황족빨이었지만, 그래도 다른 생도들을 자중시키지는 못할망정 참전을 외치고 있으니 포코틸로가 머리 아프다는 듯이 이마를 짚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상관인 군사 교육감의 아들이자 황족인 요안이 전쟁터로 가고 싶어 안달이라니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겠네.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니 제가 나서보겠습니다. 하지만 모든 생도를 제가 설득할 수는 없다는거, 아시죠?”


솔직히 자퇴하거나 나처럼 방학을 이용해 참전한다면 생도군단에서는 알 방법도, 막을 방법도 없다.


그것을 알고 있기에 포코틸로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만이라도 어디인가. 고맙네······!”


그렇게 고마워할 필요 없어, 교장 선생님.


이미 면피용 명분은 만들어놨고, 교장도 동의했다.


이 시점에서 내 계획은 반쯤 맞아떨어진거나 다름없지.


포코틸로는 솔직히 다른 생도들은 몇 빠져도 요안 선배를 설득하는게 더 중요하겠지만.


나는 이야기가 다르거든.


요안 선배한테 바람을 불어넣은 사람이 대체 누구라고 생각하나.


- 너희 교장이 알면 배신감에 뒤로 넘어가겠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학교 차원에서 생도들의 참전을 막으면 나도 전쟁에서 손가락만 빨고 있어야하잖아.


나는 러일전쟁에서 구경만 하고 있을 생각이 전혀 없다고.



* * *



“어머니 러시아를 위해 이 한 목숨을 바치겠습니다!”


“저 비열하고 사악한 일본인들을 물리치려 하니 허락해주십시오!”


생도들은 앞다퉈 성금을 거둔다, 일본을 규탄하는 집회에 나선다 하며 분주하게 움직였다.


여기까지야 순수한 애국심의 발로일테니 오케이.


그러나 참전은 전혀 다른 이야기가 아닌가.


- 아마 네가 아니었으면 이렇게까지 불이 붙지는 않았겠지.


그래.

내가 의화단에서 너무 크게 따버렸다.


제1생도군단에서는 유일하게 중국 원정에 참전했던 내가 쓸어담은 부와 명예가 얼마였던가.


그리고.


“여자! 여자아아!”


“큰소리로 말하지 마, 등신아!”


“루슬란 넌 이미 중국 공주를 얻었으니 괜찮겠지! 난 이 시커먼 남자 놈들 옆에만 있느라 코가 썩어버릴 것 같다고!”


그래, 옆에 있는 내 동기놈. 세르게이 베틀리츠처럼 이상한 환상까지 가진 놈들이 죄다 달려들게 된 것이다.


전공을 세우면 여자들이 달라붙을거라나 뭐라나.


전쟁영웅이고 뭐고 얼굴 잘생긴게 최고지만, 불행하게도 다섯 형제의 막내로 자라나 여자와 접점이라고는 없던 모솔 베틀리츠는 그 점을 모르는 것 같았다.


- 쟤네야 그렇다치자. 너는 그런 환상이 없을텐데.


당연하지.


이건 중국 원정처럼 압도적인 전력으로 적을 쓸어버리고 보물들을 쓸어올 수 있는 간편한 전쟁이 아니다.


러시아군도 일본군도 만만찮게 죽어나자빠질거고, 보물은 개뿔 러시아가 챙길 수 있는건 패배 뿐이리라.


- 질 전쟁에 자원하겠다고?


“그러니까 더더욱 가야지.”


어차피 내가 이 나라에서 살아가는 한, 안전해지는 방법은 출세하는 것 밖에 없다.


이건 피부색 이야기가 아니다. 내가 신분을 업그레이드한 상태니 그건 당장은 부차적인 문제가 되어버렸거든.


내가 말하는건 러시아 제국 전체를 뒤흔들 혼돈이다.


스타팅이야 어떻게든 극복했지만, 불행히도 나는 너무 늦게 태어났다.


이대로면 내가 서른도 되기 전에 혁명이 터진다.


- 그러니까 미국 가기로 한거 아니었냐.


원래는 그러려고 했지.


이미 내 손에 쥔게 너무 많지 않았다면.


그리고 엄마의 유언이 아니었다면.


“그러니까 임관 시기라도 앞당겨야 하는거야.”


덤으로 전공까지도.


- 그러다가 눈먼 총알에라도 맞고 죽으면 어떡하냐.


어리석은 질문이네.


생도 신분으로 뒤로 빠져서 러일전쟁을 피했다고 치자.


그럼 1차대전은? 그 뒤에 있을 적백내전은?


만주 땅에서 죽을 팔자면 미국 가서도 KKK한테 총 맞아 죽지 않는다는 보장이 어디 있냐.


이거 하나 피한다고 뒤에 있을 위험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라면.


차라리 지금부터라도 출세를 위한 발판을 다져놓는게 좋겠지.


언젠가 ‘그날’이 왔을 때, 나와 제국의 미래를 위해서 말이다.


- 저번에 얘기한 그거, 농담이 아니었구만······.


무언가 중얼거리던 춘명이가 갑자기 씨익 웃음을 지으면서 말했다.


- 재미있군!


“응?”


갑자기 일변한 박춘명의 태도에 내가 당황한 것도 잠시.


- 사실 나 현충원에 있을 때부터 너무 심심했거든. 아니, 생전부터였나. 뭐, 어쨌든.


박춘명이 손바닥을 쓱쓱 비비면서 외쳤다.


- 또라이인건 알았지만, 진심으로 그런 계획을 품고 있었을 줄이야! 암, 이대로 미국으로 가서 한량 노릇하는 것보다 백배는 재미있지!


이 미친 장포대가?


아까까지만 해도 상식인인 것처럼 걱정하더니 이런 갑작스런 커밍아웃을 해버리면 곤혹스러운데.


혹시라도 내가 애먼 전장에서 나자빠지면 어쩌려고.


- 네가 말했잖아. 기왕 죽을 팔자면 어디 가서든 마찬가지라고. 네가 죽으면 귀신 친구는 해주마.


그러면서 박춘명이 말을 이었다.


- 생각해보니까 네가 천수 다 누리고 자연사로 죽는다고 내가 이 세계의 미아가 되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는거고.

기왕 어찌될지 모를 바에야 그 전까지 재미있는 구경이나 실컷하는게 좋지 않을까. 그래, 어떻게 시작할 생각이지?


“······저번처럼 자원병으로 갈 생각은 없어.”


그래서야 세울 수 있는 전공도 한정적일테니. 저번 참전의 본 목적은 북경 약탈이었고, 바실레프스키를 구한건 어디까지나 얻어걸린 공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이야기가 다르다. 시작할거라면 무조건 장교로 스타팅하는게 낫다.


엉뚱하게 불어닥친 생도군단의 참전붐이 아니었다면, 나도 러일전쟁에 끼는게 어렵지 않았겠지만.


‘학교 측에서 단속에 나서버렸지.’


이를 개무시하고 나서자니 기껏 쌓아놓은 학교 당국의 호감을 깎아먹을 공산이 있는데다, 일이 잘못되면 공격 거리로 활용될 가능성도 있었다.


그래서 택하게 바로 요안 콘스탄티노비치를 내세우는 것.


이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요안은 내가 제대로 말을 꺼내기도 전에 흥분해서 외쳤으니까.


“후배, 이건 제국과 적그리스도 국가인 일본 사이의 성전이야! 이런 성전에 우리 제1생도군단 기도회(회원수 2명)가 나서지 않으면 누가 나서겠나!”


요안은 골수 정교회 빠돌이.


마침 정교회는 러일전쟁을 성전으로 선포했고, 나에게서 MSG 팍팍 들어간 전쟁썰을 들은 요안은 성전에 대한 큰 동경심이라도 생겨난 모양이었다.


그는 당연히 신실한 그리스도의 전사인 내가 자원할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고, 본인 역시 참전을 강하게 바라고 있었다.


“하지만 포코틸로 소장께서는 선배님의 참전을 바라시지 않더군요.”


“끄응······ 아마 아버님 때문일거야. 아버님께서는 참전을 반대하고 계시거든. 학생은 전장보다는 학교에서 배울게 있다고 믿으시니 말이야.”


“하지만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교장의 반대도, 군사 교육감의 반대도 뭉개버리고 ‘공식적이고 합법적인 참전’을 허락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


그리고 아직 졸업도 하지 않은 생도에게 장교 계급을 부여할 수 있는 사람.


“차르께 직접 청원하는겁니다.”


그래서 황족인 요안의 도움이 필요했던거고. 나야 니콜라이를 만나긴 했지만 당연하지만 직통 연락처 따윈 없다. 그가 나를 알고 있다는건 큰 이점이겠지만.


“하지만 웬만한 청원이라면 차르께서도 받아주시지 않을거야. 편지로 우리의 확고한 의지를 드러낼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황족과 유명인의 콜라보라면 나름대로 주목받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역시 그 방법 밖에는 없는걸까.


“선배님께서는 차르께 우리의 각오를 보여드려야 한다는 말씀이십니까?”


“뭐······ 그래야 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방법이 있습니다. 웬만한 각오로는 하기 힘든 일이지만요.”


“그야 무슨 상관인가! 우리의 진심이 통할수만 있다면 무슨 일이든 하겠네!”


“그렇다면 지금부터 저를 따라하십시오.”


요안이 뭐라 대답하기도 전에 나는 엄지손가락을 입에 넣고 강하게 씹어버렸다.


“윽······?”


내가 무슨 짓을 벌인건지 미처 이해하기 못한 요안을 내버렺두고, 나는 종이에 일필휘지로 글씨를 써내려갔다.


[경애하는 차르 니콜라이 2세 폐하.


이 편지는 저의 피로 쓰여진 편지입니다. 저는 러시아 제국의 영광을 위해 목숨을 바칠 준비가 되어 있음을 이 피로써 맹세합니다. 제가 이렇게 대담한 요청을 하는 것은 오로지 조국에 대한 사랑과 폐하에 대한 충성심 때문입니다.

저는 비록 나이는 어리지만, 제국을 위해 싸울 수 있는 능력과 의지가 충분하다 자신합니다······.]


바로 동양 전통의 비기.


혈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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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발전 +14 24.09.10 5,097 299 12쪽
16 착수 +15 24.09.09 5,267 316 12쪽
15 내기 +18 24.09.08 5,263 287 12쪽
14 파티 +12 24.09.08 5,704 294 14쪽
13 황족 +21 24.09.07 5,856 316 13쪽
12 귀환 +19 24.09.06 5,786 350 12쪽
11 제안 +27 24.09.05 5,926 330 10쪽
10 호의 +22 24.09.04 6,018 314 14쪽
9 경매 +25 24.09.03 6,055 329 13쪽
8 수확 +27 24.09.02 6,109 331 12쪽
7 시작 +13 24.09.01 6,211 310 11쪽
6 참전 +10 24.08.31 6,722 317 14쪽
5 귀신 +21 24.08.30 6,867 319 12쪽
4 입학 +30 24.08.29 7,092 360 12쪽
3 연줄 +20 24.08.28 7,327 362 11쪽
2 스타팅이 왜 이래 +24 24.08.27 8,299 398 12쪽
1 프롤로그 +41 24.08.26 9,446 389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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