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핏콩 님의 서재입니다.

검은머리 러시아군 대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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핏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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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0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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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전

DUMMY

나는 개인적으로 주코프스키를 잘 알지는 못한다.


그냥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비롯해 러시아의 유명 대학과 발명가들에게 편지를 쫙 돌렸는데, 그가 우연히 걸려든 것 뿐.


하지만 편지를 쓰기 위해 이리저리 수소문해본 결과로는 주코프스키는 그쪽 업계에서는 제법 방귀 좀 뀌는 양반 같았다.


유체역학이라는 분야에 한획을 그은 사람이라나 뭐라나.


- 그정도라면 현대에도 이름이 남았을 사람이겠군.


그의 동료들과 제자들까지는 안 알아봐서 모르겠지만, 그래도 실력 하나는 확실하겠지.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온 모자이스키의 팀은 운송을 위해 비행기를 신중하게 분해했고, 나중에 제대로 재조립할 수 있도록 각 부품을 꼼꼼하게 문서화까지 완료했다.


“상트에는 시설도 인력도 없어. 모스크바로 옮겨서 제국 기술 학교 시설을 사용하는게 연구 개발에 더 효율적일 것 같은데, 어떤가?”


“그러시죠.”


물론 나는 시원하게 모자이스키 비행기를 내어주었다.


- 이렇게 부품 하나까지 다 내줘도 되냐?


어차피 저대로는 못 날잖아.


최대한 끌어모은 박춘명의 아이디어를 주코프스키 팀에 전달하긴 하겠지만, 내가 직접 개발에 관여할 공학적 지식이 없는 이상 이게 최선이다.


저 사람들을 전부 모스크바에서 페테르부르크로 출퇴근시킬 수는 없잖아. 하라고 해도 안할걸.


그렇다고 내가 홀라당 전권을 주코프스키에게 넘겨준건 아니다.


이즈음 나는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애국생도 루슬란 킴, 이번에는 조국을 위해 하늘로 간다!]


[“모자이스키는 위대한 선구자······ 그분의 후계자인 제가 뜻을 이어받을 것······”]


CEO의 본령이란 원래 경영과 언플.


내가 이래봬도 북경의 영웅이랍시고 페테르부르크 신문을 잠깐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사람이다.


거기다 내가 가진 기사 재료도 모자이스키의 바보 같은 실험을 복구시키겠다는 것이었으니 신문사의 할 일 없는 기자들 몇의 관심을 끄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 뉘앙스를 교정하는건 쉽지가 않았지만, 아무튼 소소하게 화제도 된 모양.


당연하게도 결과물도 나오지 않은 지금 시점에서 반응은 시원치 않았다.


소년의 어린 치기로 여겨 코웃음 치는 사람이 반, 누구한테 사기당했구나 불쌍하게 보는 사람이 반.


그러나 멋들어지게 성공시키고 입을 털어도 되는 것을, 굳이 지금 꺼내는 이유는 간단했다.


첫째. 이건 만에 하나 실패했을 때의 플랜 B인데, 어쨌든 간에 내가 이런거 만지작거린다는 소문을 내는데 의미가 있다.


미국과 유럽에서 먼저 항공기가 개발되고 항공 산업이 태동한다면, 러시아 정부와 군도 내가 뿌려놨던 언플을 뒤늦게 떠올릴테니까.


그리고 더 중요한 두 번째 이유는, 성공했을 때 혹시라도 주코프스키와 친구들이 ‘내’ 발명품을 뺏어먹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 네 발명품 맞냐? 구현하는건 전부 저 사람들한테 짬 때려놨잖아?


개발만 했다고 발명품이 그 사람들게 될거면 내가 미쳤다고 내 돈 들여가면서 이러고 있겠냐.


하지만 춘명이의 우려도 일리는 있다.


적어도 실제 개발에서만큼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거든.


자기들이 직접 자전거 공방에서 비행기 만들었던 라이트 형제도 단순히 조언을 구했던 무슨 미국 박사가 자기 결과물을 훔쳤다고 동네방네 떠들어댄 통에 평생토록 곤경을 겪었다고 하지 않나.


그래서 나는 그 해법으로 인터뷰를 할 때마다 모자이스키를 열심히 올려쳤다.


모자이스키는 대단한 사람. 선지자, 예언가, 혁명가!


그의 비행기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개발은 시도조차 할 수 없었을 것!


그리고 그 모자이스키의 진정한 후계자는?


바로 비행기의 소유주인 나. 루슬란이라 이거다.


- 정작 최종적으로 만들어질 비행기는 원래 기체랑 딴판일 것 같은데······.


그런건 별로 중요하지 않아.


분명히 시험비행이 성공하고 나면 러시아에서는 모자이스키 재평가 들어갈거다. 무려 20년 전에 비행에 도전했던 사람이니까.


그럼 그와 연동된 나의 주가도 떡상. 비행기 개발의 서사에서 나와 모자이스키를 절대 빼먹지 못하게 되리라.


- 이거 아무리 봐도 날로 먹는 것 같은데······.


내가 없었으면 첫 삽도 못떴을텐데 그게 무슨 소리냐.


거기다 저 항공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오타쿠들에게 연구 실적과 학문적 명성까지 얻을 기회를 제공해주고 있잖아.


어쨌든 간에 언플 작업이라도 미리 끝마쳐두길 잘했다.


지금 제1생도군단에서는 포코틸로 교장의 전례 없는 폭정이 이뤄지는 중이거든.


“저 배불뚝이가 우리를 새장 안에 가두려고 안달이 났다!”


“겨우 5분 늦었는데 한달이나 외출 금지라고?”


“사람이 좀 늦을수도 있지!”


폭군 포코틸로가 가장 즐겨 사용하는 처벌은 바로 외출 제한.


이 깐깐징어 같은 인간은 외출에서 1분 늦을 때마다 FM대로 그 몇배의 기간 동안 외출 금지를 때려버렸다.


그의 입장은 분명했다.


‘그러니까 빨리빨리 다니면 처벌 받을 일도 없을거 아니냐?’


솔직히 맞는 말이긴 하지만, 생도들은 분노를 금치 못했다.


하지만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백년전이었으면 반란이라도 일으켰을텐데 아깝군.


나야 외출 시간을 언제나 준수하는 사람이지만, 문제는 포코틸로가 이렇게 감금 플레이를 즐기는 통에 다른 종류의 외출도 허가받기가 굉장히 어렵게 되었다는거다.


원래 나는 개발에 직접적으로 참여하지는 않더라도 모스크바를 자주 드나들기는 할 생각이었다.


그래야 대외적으로 나도 연구팀의 일원이란 인상도 주고, 감시의 눈도 좀 부라려주지.


하지만 다른 사람도 아니고 저 인간한테 가서 ‘지금 될지 안될지도 모르는 비행기 개발하고 있는 중인데 외출 허가 좀 내주십쇼’ 해봤자 허락이 떨어질 리가 없지 않은가.


그래서 나는 최재형에게 편지를 써서, 그에게 비행기 개발을 대신 감독해줄 수 있는지 의사를 타진해보기로 했다.


그러나 최재형 역시 현지에서 사업체 경영이다 극동 상업 금고 운영이다 해서 바빴던 터.


[네가 개발하고 있다는 그 비행기······ 관련해서 도움이 필요한거라면 다른 동포 청년들을 불러서 가르쳐보는 것은 어떻겠느냐?]


최재형의 답장을 받은 나는 잠시 고심에 잠겼다.


한국인 청년들이라.


감독자로서는 나나 최재형 정도의 중량감이 있을 것 같지는 않다.


그리고 공학에 대한 전문지식도 없으니 그들을 불러들인다 해도 당장 잡부 이상의 역할을 하기는 어려울게 아닌가.


그러나 내가 느낀 감정은 거부감보다는 아쉬움이었다.


‘미리미리 키워놨으면 지금 같은 상황에서 써먹는건데.’


운명이 어떻게 굴러갈진 아무도 모르지만, 적어도 내가 그리는 미래에서 연해주 한국인들은 내 기반이 되어줄 수도 있다.


[그렇지 않아도 우리 동포들이 택할 수 있는 진로가 좁은 것이 안타까웠던 차였습니다.

미래는 역시 공학에 있으니 우리 조선인들 역시 공학도를 키워내야할 것입니다. 동포들 중 특히 성적이 우수한 이들로 추려서 보내주시면 대학 진학을 알선해보겠습니다.]


그쪽 연줄이야 주코프스키가 있으니 어떻게 선이 닿을 것 같긴 하다.


당장은 못써먹어도 앞으로 10년을 내다본다면 합리적인 선택.


‘그리고······ 내 돈 드는 것도 아니잖아?’


어차피 한국인 학생들 후원하던 최재형과 연해주 유력자들 주머니에서 나오는거지.


큰돈 만져서 형편 폈으니 아마 그 후원금도 크게 늘어날 예정이리라.


그럼 내가 그냥 그들을 데려다가 페테르부르크나 모스크바에 흩뿌리는 것만으로도 한국인 엘리트들에게 내 영향력을 박아넣을 수 있다고.


주코프스키 팀은 신선한 뉴비는 언제나 환영이라는 태도로 흔쾌히 다리를 놓아주었고.


시험을 거쳐 모스크바 대학교에 10여 명의 동포 학생들이 입학했다.


한국인들의 원대한 공대 진출의 시초를 놓았다는데는 의의가 있었지만, 당장 즉시전력감이 필요한 내 입장에선 아쉬운 노릇.


그러나 내가 외출을 못하는 지경이 되었어도 주코프스키 팀은 농땡이 부리지 않고 개발에 전념했던 것 같다.


“떨어지는 엔진 성능은 기체 구조를 역학적으로 개선하는걸로 커버할 수 있지 않을까?”


“아무리 그래도 동력 자체가 불충분하면 쉽지 않을겁니다. 지금 구조로도 비행에 무리는 없을테니, 그보다 이 V8 엔진 개발에 전념하는게 낫지 않을까요?”


나 역시 방학 때는 연해주로 귀향하지 않고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왔다갔다하며 열심히 참여하고 있다는 티를 냈고.


시간이 좀 필요할 뿐, 일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 * *



그렇게 세월은 흘러흘러 1902년.


“여긴 어쩐 일이세요?”


학년도 바뀌어 내가 막 4학년으로 진급했을 때, 내가 편지로 불러도 꿋꿋이 일이 바쁘다던 최재형이 갑자기 페테르부르크로 달려왔다.


“네가 방학 때도 고향에 오지 않으니 어쩌겠느냐. 나라도 네 얼굴을 보러와야지.”


최재형은 사업가답게 땀을 닦아내면서도 태연한 기색을 유지했지만, 나는 그게 진짜 목적이 아니라는걸 알고 있었다.


내 얼굴 한번 보자고 이 먼 상트페테르부르크까지 날아왔을 리가.


설마 그건가?


“비행기 개발 자금 때문에 그러십니까?”


“맞다, 그것도 있었지. 네가 돈이 없는 것도 아닌데 하루가 멀다하고 그 비행기에 대한 투자를 재촉하니 어찌된 일이냐?”


아잇, 나 혼자 잘되자고 이래?


나도 리스크 분산 좀 하자고!


그러라고 만들어놓은 내 저금통, 아니 극동 상업 금고 아니야?


괜한 말을 꺼냈다가 잔소리만 된통 얻어먹었지만, 최재형은 그것 때문에 찾아온 것은 아니었는지 본론을 꺼냈다.


“이번 9월 29일에 새 법령 하나가 발표되었다.”


무슨 법령이기에 다른 곳도 아니고 페테르부르크까지 달려왔나 싶었지만, 최재형은 침착하게 말했다.


“하바롭스크, 블라고베셴스크, 니콜라예프스크, 니콜스크, 우수리스크까지 러시아인과 황색인들의 거주구를 분리하겠다는거다.”


최재형이 언급한 곳은 동양인이 거주하는 거의 대부분의 지역이다.


3년 전까지만 해도 조선인들에게 국적도 발급해주고 북방 이주도 허용하면서 이민을 유치하려던 놈들이 대체 왜?


“이제까진 우리에게 퍽 우호적인 태도로 굴지 않았습니까? 대체 왜 이렇게 나오는거죠?”


“위생상의 이유라더구나. 어이 없는 일이지.”


- 뭐, 그거야 핑계겠지. 슬슬 동양인들이 극동을 잠식해나가고 있으니 팽창을 억제해보겠다는거야. 화장실 들어갈 때랑 나올 때 생각이 다르다더니.


이게 황러시아론인가 뭔가 하는 그거구만.


자기들이 극동 개발해보겠다고 중국인과 조선인을 끌어들여놓고, 이제 사람 수가 차니까 생각이 달라졌겠지.


이렇게 슬금슬금 밀고 들어오다가 꿀꺽 삼켜버리는거 아냐? 라고 말이다.


러시아가 위협을 느끼는 상대는 아마 국경을 길게 맞대고 있는데다 인구돼지인 중국이겠지만, 이렇게 되면 조선인도 세트로 같이 넘겨질 수밖에 없는 운명.


그러나.


“일단 중국인 거주구를 분리하는 법은 통과되었지만, 무슨 일인지 조선인 거주구에 관한 법령은 계류되고 있더구나.”


“그나마 다행이군요. 혹시 이유를 아십니까?”


“내 생각에는······.”


나의 물음에 최재형이 잠시 고심하더니 입을 열었다.


“아마 너 때문인 것 같다.”


예?


아니, 내가 뭘했다고?







---

이 시기 교장이었던 포코틸로는 전후임 교장들에 비해 평이 별로 좋지는 않습니다. 생도였던 보르쇼프의 회고에 의하면 그냥 생도군단에 경력 쌓으러 온 사람이라 자신의 의무를 형식적으로 대했고, 엄격했으며, 특히 기록에 남는 처벌이 빈번했다고 하네요. 정확히는 "엄밀히 말하면 나쁘지 않은 조치였지만 '요금'이 과도했다"고 평가했습니다.

폭정에 시달린(?) 생도들의 악평은 살짝 걸러서 봐야겠지만, 교관이었던 도너(Н.ДОННЕР) 역시 포코틸로를 엄격한 사람이었다고 회고하긴 했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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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내기 +18 24.09.08 4,946 276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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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제안 +26 24.09.05 5,609 316 10쪽
10 호의 +22 24.09.04 5,686 301 14쪽
9 경매 +25 24.09.03 5,713 314 13쪽
8 수확 +27 24.09.02 5,765 318 12쪽
7 시작 +13 24.09.01 5,864 296 11쪽
6 참전 +10 24.08.31 6,345 302 14쪽
5 귀신 +21 24.08.30 6,486 300 12쪽
4 입학 +30 24.08.29 6,709 342 12쪽
3 연줄 +20 24.08.28 6,940 344 11쪽
2 스타팅이 왜 이래 +24 24.08.27 7,860 381 12쪽
1 프롤로그 +41 24.08.26 8,937 371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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