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핏콩 님의 서재입니다.

검은머리 러시아군 대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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핏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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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5 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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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8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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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기

DUMMY

옆에서 터져나온 비웃음에 모자이스키의 얼굴이 잔뜩 구겨졌다.


그러나 모자이스키 의원은 침착하게 대답했다.


“전부 지나간 일이야. 아버님이 돌아가신지가 벌써 10년일세.”


어라? 돌아가신 분이야? 패드립 한번 매콤하군.


- 네가 할 소리냐······.


“지나간 일이라니, 아직 그놈의 비행기도 처분하지 못하고 있지 않나!”


“살 사람을 알아보고 있는 중일세. 없다면 경매로라도 팔아야지.”


어이, 춘명이.

어떻게 된거야. 라이트 형제가 비행기 개발하려면 아직 몇 년은 남았다며.


- 글쎄. 이건 나도 처음 듣는 이야기인데. 이 시대에 비행기를 개발하려는 사람은 많았으니 그 중 한 명인건가.


춘명이도 모른다면 어쩔 수 없지.

나는 모자이스키 의원에게 다가가서 물었다.


“하늘을 나는 비행기라고요?”


“꼬마야, 관심 갖지 마라. 그건 실패한지 오래된 물건이라고.”


훈수 두는 아저씨는 조용히 좀 하시고.


모자이스키 의원은 내 물음에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아, 저건 별로 언급하고 싶지 않다는 얼굴인데.


그러나 그는 내 계속된 질문에 끝내 두 손을 들고야 말았다.


모자이스키 의원은 보드카가 담긴 잔을 쓰게 내려놓으면서 말했다.


“내 아버님, 그러니까 알렉산드르 페도로비치 모자이스키(Алекса́ндр Фёдорович Можа́йский) 제독께서는 오래 전부터 새들의 비행을 관찰하고 비행기를 제작하려는 꿈을 품고 계셨지.”


그렇게 설계에 착수한게 1873년이라니 무려 라이트 형제보다······


‘몇년을 앞선거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하여튼 수십년은 앞섰다.


그러나 그의 실험은 별다른 관심을 받지는 못했다.


그는 전쟁부에 프로젝트를 제출했지만 당시 위원회는 ‘공기보다 무거운 항공기(Heavier-than-air aircraft)의 개발은 불가능하다’고 결론내렸고.


모자이스키 제독이 책정한 예산인 19,000 루블 대신 고작 2,500루블을 지원했을 뿐이었다.


“그 돈으로는 비행 장치용 엔진을 구입하기 위한 여행 비용만 충당할 정도였지.

결국 실제 기계 제작은 아버님께서 자비를 들여 하실 수밖에 없었어.”


모자이스키는 사재를 털어 연구를 계속했고, 1882년 드디어 시험 비행에 나섰다.


“하지만 그 비행기는 얼마 뜨지도 못한 채 추락했어. 이륙 시도 중에 장치가 사고를 당했다나······.”


그 뒤로 모자이스키 제독은 파손된 비행기를 수리하고 엔진도 현대화하여 출력을 높이려고 했지만, 자금 부족으로 브레이크가 걸린데다.


본인도 1890년 사망하면서 연구는 완전히 중단되고 말았다.


“남은 우리는 독자적으로 사업을 계속할 자금이 없었네. 그렇다고 민간에 넘기기는 것도 원하지 않았지.”


모자이스키 의원을 비롯한 아들들은 기체를 전쟁부에 매각하려고 했지만, 당연히 이는 거절당했다.


심지어 비행기 제작과 시범 비행을 하던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군사 훈련장에서 기체를 철거하라는 명령을 받았다고 한다.


이야기하는 동안 보드카를 여러 잔 들이키던 모자이스키는 이제는 거의 혼잣말에 가까운 태도로 중얼거렸다.


“지금까진 사비로 보관료를 충당하고 있었지만, 이젠 나도 지쳤어. 민간인이든 뭐든 사려는 사람이 있으면 팔아버릴거야.”


당초 제작에 1만 9천 루블이 들어갈 것으로 예상되었던 비행기는 예산을 까마득히 초과하여, 그 열배인 20만 루블이 넘는 돈이 들어간 괴물이 되어 있었다.


헌데 그 결과가 인류사에 영원히 남을 업적과 영광이 아니라, 비웃음과 재정적 부담으로 돌아왔으니 자괴감이 이만저만이 아니리라.


“그래서, 매각할 상대는 찾으셨나요?”


“아직. 사실 이 파티에 참석한 것도 매각 상대를 찾으려는 이유도 있었단다.”


지금까진 군사 교육감 콘스탄틴 콘스탄티노비치 대공에게 자식 좀 잘봐달라고 알랑방구 뀌려온줄 알았더니.


하기야 아직 장난감으로 취급받는 비행기를 살 사람들이 있다면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귀족들 뿐이겠지.


하지만 모두가 비행기의 존재에 대해 반신반의하는 이 시대에, 특히 그 실패한 실험으로 인해 더더욱 색안경을 끼게 된 러시아에서 쉽게 상대를 찾을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런 말을 꺼내는 것도 쉽지 않으니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쭈뼛거리고 있었구나.


“매각 상대는 누가 됐든 상관이 없으시겠네요?”


“그래. 이미 실패한 실험일 뿐이야. 나한테는 가족과 아들의 미래가 더 중요해. 나를 대신해 그 비행기를 가져갈 사람이 있다면, 누구든 상관없네.”


나는 잠시 눈을 감고서 결심했다.


그래, 착한 내가 이 아저씨의 짐을 좀 덜어주자.


- 잠깐, 너 이거 사려고?


그래.

내가 의화단 전쟁으로 번 돈 있잖아.


절반은 극동에 있긴 하지만, 보아하니 이 아저씨도 고물값만 받고 팔아버리려는 것 같은데 그정도면 어찌저찌 지금 갖고 있는 돈으로도 충분하다.


모자이스키 제독은 무려 20년 전에 실물 비행기를 제작했던 선구자.


대체 기체에 무슨 결함이 있어서 실험이 실패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아이디어의 방향성만큼은 정확했다.


이건 나와 박춘명만이 알고 있는 사실.


그러면······ 한번 숟가락을 얹어볼만하지 않을까?


나 혼자 0에서부터 비행기를 개발한다는건 당연히 망상에 불과하겠지만, 실물 기체에다 수십년 동안 모자이스키가 자기 돈 털어가면서 축적해놓은 노하우가 있다면?


그걸 지금 떨이로 팔고 있는거랑 다름없다니까?


나는 심호흡을 크게 하면서 눈을 떴다.


“제가 사고 싶은데요, 비행기. 한번 보여주실 수 있나요?”


“뭐?”


모자이스키는 내 말에 미간을 좁혔다.


그리고는 그가 황당하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자네가 무슨 돈이 있어서?”



* * *



알렉산드르 미하일로비치(Алекса́ндр Миха́йлович) 대공.


차르 니콜라이 2세의 소꿉친구이자 5촌 당숙이며, 해군 함장이기도 한 그는 잔뜩 미간을 찌푸린 채 열변을 토하고 있었다.


“일본은 하루가 멀다하고 함대를 증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태평양에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어요!”


그는 일본의 66함대 계획이 완료되면 반드시 일본과의 충돌이 벌어지리라 예상했다.


그는 1895년 이런 예측을 니콜라이 2세에게 제출했지만 이는 논의만 되었을 뿐 채택되지 않았고, 알렉산드르 대공은 사표를 던졌다.


몇 년이 지나 다시 해군에 복직하긴 했지만, 그의 신념은 여전히 꺾이지 않았다.


“참모 아카데미에서 벌인 모의 게임에서도 비관적인 결과가 나왔습니다. 이러다간 정말 큰코를 다친단 말입니다!”


“자자, 무슨 뜻인지 알겠지만 진정하십시오. 이곳은 콘스탄틴 대공께서 제국의 군사 교육을 위해 여신 자선 파티가 아닙니까.

육해군의 장성들과 교육자들이 한데 모인 자리인데 대공께서 그리 언성을 높이시면 보기에 좋지가 않습니다.”


옆에 있던 발트 함대 포술학교 교장, 지노비 로제스트벤스키가 점잖게 타일렀지만 알렉산드르 대공은 컵을 꽉 쥔 채 말했다.


“그러니 더더욱 우리가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지요. 일본과 전쟁이 터지면 죽어나갈건 바로 우리가 후원하려는 어린 생도들 아닙니까.”


로제스트벤스키는 속으로 혀를 찼다.


그는 이 젊은 황족의 열기를 좀 식히고 싶었지만, 좋은 말로 달래도 도저히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화제를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열심히 딴청을 피우고 있을 때, 그의 눈에 이 대공의 관심을 잡아끌만한 무언가가 띄었다.


“대공 전하. 저기 보십시오.”


“응?”


로제스트벤스키가 손가락으로 한쪽을 가리키자 순간 알렉산드르 대공의 고개가 그쪽으로 돌아갔다.


그곳에는 어른 하나와 애 하나가 무슨 일인지 열띤 논쟁을 벌이고 있었다.


“한 명은 초청받아온 생도인 것 같고······ 그 옆에 있는 사람은?”


그 기괴한 광경에 알렉산드르 대공은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로제스트벤스키는 보이지 않게 주먹을 불끈 쥐며 대답했다.


“알렉산드르 모자이스키군요. 저 사람도 해군 출신인데, 이번 파티에 참석했을줄은 몰랐군요.”


“모자이스키······. 혹시 저분 아버지가 알렉산드르 모자이스키 제독 아닙니까?”


대공의 물음에 로제스트벤스키가 의외라는 듯이 되물었다.


“아십니까?”


“제가 해군생도군단을 다닐 때 교관이셨던 분입니다. 10년쯤 전에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아들이 있었군요.”


알렉산드르 대공은 옛 스승의 아들과 웬 동양인 생도 하나가 무슨 일로 열띤 논쟁을 벌이고 있는 곳을 향해서 걸어갔다.


하준과 모자이스키는 그의 접근을 눈치채지 못한 채, 여전히 평행선을 달리는 대화를 나누고 있는 중이었다.


“아, 왜요! 돈만 내면 아무한테나 판다면서요!”


“어른을 놀리면 못쓴다! 자네 같은 어린아이가 무슨 돈이 있어서 비행기를 산다는거야!”


“중국에서 감사의 뜻으로 받아온 돈이 있단 말입니다!”


“그런게 있으면 부모님이 관리해야지, 왜 자네가 쥐고 있어?”


“전 부모님 없는데요.”


“아.”


잠깐 모자이스키가 숙연해져 말을 멈춘 사이, 알렉산드르 대공이 자연스럽게 끼어들었다.


“그래도 부모님을 대신할 후견인은 있지 않은가? 안 그래? 페칠리의 어린 영웅?”


웬 귀해보이는 인간이 아는 척하며 갑자기 대화에 끼어들자 당황한 것도 잠시, 하준은 침착하게 대답했다.


“그분들도 저의 생각과 능력을 인정하시고 제게 재산 관리를 맡기셨습니다.”


거짓말은 아니었다.


대부인 비류코프는 한국에 있어서 하준이 의화단 전쟁에서 정확히 얼마를 벌었는지도 모르고, 아예 하준 덕분에 군납업이 번창하게 된 최재형은 그에게 뭐라할 처지가 아니라는 사실만 빼면.


“내가 뒤에서 잠깐 듣고 있었는데, 아주 흥미로운 이야기를 하더군. 비행기라고 했었나?”


알렉산드르 대공의 물음에 하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걸 왜 갖고 싶은거냐?”


“저는 비행기가 성공할거라고 생각하니까요.”


‘멋져 보이니까’ 따위의 대답을 기대했던 알렉산드르는 하준의 단호한 태도에 조금 놀랐다.


그의 눈망울에는 단순히 어린아이의 망상이라고만 치부할 수 없는 확신이 담겨있었다.


이건 무조건 성공할 것이라는 확신.


하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느낌일 뿐, 수많은 전문가들도 이미 실패하거나 불가능하다고 단정내린 사안이 아닌가.


알렉산드르 대공을 따라온 로제스트벤스키도 그렇게 생각했는지, 그는 너털웃음을 터뜨리면서 말했다.


“하하, 어린아이들은 자기가 하늘을 날 수 있다고 곧잘 믿는다만, 그런건 치기 어린 생각에 불과하단다. 열기구나 비행선이라면 또 모를까. ”


“실패에는 실패의 원인이 존재하겠죠. 그걸 고친다면 도전해볼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가능할 리가 없어. 열기구나 비행선이라면 또 모를까. 어떻게 그 무거운 비행기가 하늘을 난단 말이지?”


하준은 어리석게 기술적 가능성을 들이대면서 그를 설득하려 하지 않았다.


그도 박춘명도 전문가가 아니었으니 논쟁이 시작되면 밑천이 드러날게 뻔했던데다, 무엇보다 믿음이라는건 논리로 반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무슨 이야기를 꺼내든 어린아이의 헛소리로만 치부될 뿐.


그래서 하준은 대신 이렇게 물었다.


“내기하실래요?”


그리고 로제스트벤스키의 귀에는 그 말이 꼭 이렇게 들렸다.


'쫄?'



---

1.

모자이스키 제독은 1879년부터 1882년까지 해군생도군단으로 파견되어 해상 실습 과정을 가르쳤습니다.

이 시기 알렉산드르 미하일로비치 대공이 해군생도군단을 다녔던 것은 맞으나, 모자이스키에게 직접 가르침을 받았는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2.

모자이스키의 비행기는 최초의 실용적인 비행기를 제작하려는 시도들 중 하나였습니다. 다만 여러 가지 문제점이 있어서 성공하진 못했는데, 이것은 앞으로 다룰 예정입니다.

작중에 나온 것처럼 모자이스키가 죽은 후 그의 아들들은 훈련장에서 비행기를 철거하라는 명령을 받았는데, 이후 이 기체의 행방은 묘연합니다(일설에는 경매로 팔았다고 함).

다만 볼로그다에 있는 그의 자택에는 1미터짜리 모형이 보관되어 있었는데, 혁명 이후 붉은 군인들에 의해 파괴되었다네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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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시작 +13 24.09.01 5,862 296 11쪽
6 참전 +10 24.08.31 6,344 301 14쪽
5 귀신 +21 24.08.30 6,485 300 12쪽
4 입학 +30 24.08.29 6,708 342 12쪽
3 연줄 +20 24.08.28 6,940 344 11쪽
2 스타팅이 왜 이래 +24 24.08.27 7,860 381 12쪽
1 프롤로그 +41 24.08.26 8,937 371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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