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핏콩 님의 서재입니다.

검은머리 러시아군 대원수

무료웹소설 > 작가연재 > 대체역사, 판타지

새글

핏콩
작품등록일 :
2024.08.25 21:27
최근연재일 :
2024.09.17 20:00
연재수 :
24 회
조회수 :
131,296
추천수 :
7,315
글자수 :
129,304

작성
24.09.01 20:00
조회
5,861
추천
296
글자
11쪽

시작

DUMMY

잠시 소강 상태처럼 보였던 전쟁은 열강들의 준비가 완료되자마자 뜨겁게 달아올랐다.


7월 14일이 되자 연합군이 천진을 점령했고, 같은 날 청나라 포병대가 블라고베셴스크를 포격했다.


러시아군은 이에 대한 보복으로 블라고베셴스크에 살고 있던 중국인들에 대한 대규모 학살을 벌였다.


나?


나야 당연히 거기에 끼어있진 않았다.


그 전에 페칠리(북경) 부대의 참모장으로 임명된 바실레프스키 장군과 함께 천진으로 이동했거든.


나로서는 참 다행한 일이었다.


블라고베셴스크로 갔으면 꼼짝없이 저 짓거리에 가담해야됐을거 아냐. 얻는 것도 없이.


- 끔찍하구만.


나도 동감이다.


온화한 신사의 나라 러시아 제국에서 저런 짓이 벌어지다니 믿을 수가 없군.


- 러시아가 온화한 신사의 나라? 뭐 잘못 먹었냐?


어허, 박춘명 씨 학교 다닐 때보다 내가 덜 두드려 맞았을텐데 그런 소리를.


가르치는 내용은······ 솔직히 이 시대 기준으로 봐도 굉장히 후진 것 같긴 하지만.


어쨌든 사람들만 착하면 됐지.


최소한 이 나라에선 내가 옐로 몽키 취급은 안당하잖아?


그러나 박춘명은 얼굴을 딱딱하게 굳히고선 말했다.


- 너 제1생도군단만 보고 러시아를 진짜 자유의 나라처럼 생각하고 있는건 아니겠지.


“······.”


- 네 생도군단 생활이 평등해보이는건 거기가 아무것도 모르는 애새끼들 모아놓은 학교라서야.

그나마 피부색 엇비슷한 타타르 귀족 애들 틈에라도 끼어있기 때문이라고.

넌 졸업하고 나면 귀족 출신도 아니고, 황인종 고아 출신 장교 하나에 불과해. 정말 네 학교 간판 하나가 러시아군에서 살아남을 수 있게 해줄까?


“······.”


- 정말 이 나라에서 대접받고 싶으면 힘을 키우는 수밖에 없어. 아니면 네 말처럼 이 나라를 뜨던지. 하긴, 이 시대엔 다른 곳도 똑같겠지만.


나는 찬물을 맞은 것 같은 기분에 얼굴을 쓸어올렸다.


맞는 말이다.


황화론은 유럽과 미국에서 대중적으로 유포된 담론이고, 러시아 또한 예외가 아니다.


중국인들 불쌍하다고 혀나 차고 넘어갈 때가 아니었다.


블라고베셴스크에서 죽어 나자빠진 중국인들과 나.


러시아인들이 보기에 그 둘 사이에 유의미한 차이가 있을까?


제1생도군단은 내가 러시아에서 하게 될 사회생활의 스테레오 타입이라기보다는 예외에 가까운 것이다.


그나마도 6년만 있으면 끝날.


- 그 학교는 내가 봐도 좀 이상하긴 해.


어허, 그게 문명적인 학교지.


선배들 노예처럼 살거나 허벅지에 피날 정도로 선생들한테 빠따 처맞는게 무슨 학교야? 고문실이지.


“그래도 다행이네.”


- 응?


“적어도 이 나라에선, 인종보단 신분이 앞선다는 소리잖아.”


손바닥을 얼굴에서 떼어낸 내가 말하자 박춘명은 눈을 가늘게 떴다.


- 넌 돈도 없는 평민이잖아?


그거야 앞으로는 모르는 일이지.


그러니까 그놈의 돈 벌러 이 먼 중국까지 날아온거 아니냐.


돈만 있으면 출세? 부패가 전통이요 관행인 러시아군에서 못할거 같냐?


- 언제는 러시아 뜬다며.


“보고.”


아직까지 그 계획은 변함이 없다.


하지만 출세를 하든, 망명을 하든 무조건 돈은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이 기회에 반드시 한몫 단단히 챙겨야 하는거고.


나는 오기로 주먹을 불끈 쥐었다.


- 저 불쌍한 중국인들을 보고 한다는 결심이 중국을 제대로 짜먹어겠다는 생각이라니······.


아니지.


학살당한 중국인들은 대부분이 한족들일거 아냐.


그 사람들한테 청나라가 조국일까?


청나라의 수도인 북경에 사는 부자들이라고 하면 당연히 착취자 만주 귀족들일테니.


식민지배자 만주족들에게 걷은 성금을 동양인(나)의 복지를 위해 사용한다.


이건 어쩌면 의로운 도적질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내가 그런 결심을 조용히 다지고 있을 때.


드디어 페칠리 부대의 사령관 리네비치(Линевич, Николай Петрович) 장군이 천진에 도착했다.


극심한 더위와 병사들의 피로에도 불구하고 연합군은 곧바로 진격.


청나라가 요새화시켜놓은 북창(北倉, 베이창)은 반나절만에 함락당했고, 북경까지 가는 길이 훤히 뚫렸다.


천진을 점령했을 때도 그랬지만, 북창이 떨어졌을 때도 8개국 연합군에 의한 대약탈이 벌어졌다.


나는 눈이 뒤집혀서 사방팔방 민가를 뒤져대는 러시아군을 보면서 팔짱을 꼈다.


- 저놈들, 네 도움 없어도 열심히 잘 털어대고 있는데? 지금 이렇게 손가락만 빨고 있어도 되냐?


“뭘 모르는 소리.”


병사들이야 사령부에서도 ‘사기 진작’을 위해 약탈을 눈감아주고 있지만, 아직 전쟁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노동자들이 한눈 팔았다간 무슨 소리를 듣겠냐.


“게다가 진짜는 북경이라고.”


연합군이 청의 심장부를 움켜쥐는 순간 전쟁은 사실상 끝날테고.


전리품을 챙기기 위한 광란의 파티가 벌어지면 분명히 우리에게도 기회가 온다.


그때까지 괜히 힘 뺄 필요는 없다.


바실레프스키 소장 또한 그 점을 눈여겨봤는지 나에게 아낌없는 칭찬을 건넸다.


“한국인 노동자들은 이 혼란 속에서도 성실하기 그지 없군!”


“과찬이십니다. 한국인들은 최대한 정직하게 계약한 일을 지키려고 할 뿐이죠.”


“아니야. 지금 게으르고 요구하는 것만 많은 주제에 약탈에 눈 돌아간 잡부 놈들이 한둘이 아닌데 한국인들은 정말 잘해주고 있어!”


바실레프스키는 내 어깨를 툭툭 두들기면서 그렇게 소리쳤다.


그야 한국인 노동자들 사이에선 내 말빨이 제법 먹히니까 그렇지.


내 삼촌 격인 최재형에게 고용된 것도 있는데다가, 러시아군 장교들은 한국인 노동자들에게 무슨 일을 시켜야할 때마다 항상 나를 찾았다.


굳이 답답한 소통에 의지하거나 통역사를 부르느니 바실레프스키의 당번병으로 항상 붙박여 있는 나를 부르는게 편했던 것이다.


“루슬란, 지금 보급이 왔으니까 인부들한테 진지 뒤편으로 가서 하역하라고 해라!”


“예, 알겠습니다!”


인부들 역시 작업량 셈이 잘못되어도 항의 한번 변변히 못하고 쩔쩔매던 것이 내 말 한마디에 고쳐지는걸 보고 희떡 넘어갔고.


적어도 한국인 노동자들 사이에서는 내 권위는 고용주인 최재형 못지 않았던 것이다.


바실레프스키의 당번병으로서 들어야하는 잡다한 수발에다 인부들 관리까지 겸하려니 몸은 고단했지만, 성과는 확실했던 셈.


북경에 입성하면 이들을 틀어쥐고 부리는 것 정도는 어렵지 않을 것 같았다.


그리고 마침내 1900년 8월 14일.


연합군은 북경 성벽에 도달했다.



* * *



파멸을 눈 앞에 둔 북경은 적막하기 그지 없었다.


그야말로 폭풍전야.


연합군은 북창을 공략할 때 그랬듯이, 각자 북경을 함락시키기 위해 구역을 배분했다.


그리고 러시아군의 선발대를 맡은 사람은 바로 우리 주군, 나의 마스터 바실레프스키 장군.


새벽.


망원경으로 성벽을 관찰하던 바실레프스키는 나를 향해 말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전투가 벌어지는 중에는 나도 너를 챙길 수가 없다.”


“네, 알고 있습니다. 이정도야 러시아의 남아에게 아무것도 아니죠.”


젠장, 괜히 따라나선다고 했나.


바실레프스키가 직접 총 들고 뛰쳐나가진 않을테니, 뒤에서 수발 들면서 눈도장이나 찍으려고 한 소리였는데.


‘의외로 병력이 적네.’


보병 3개 중대에 기관총 2정, 포병 일부와 카자크 반 개 소대.


이러다가 진짜 나도 총탄을 무릅쓰면서 싸워야하는거 아니야?


“씩씩하구나. 그래. 러시아의 남아라면 당연히 공을 세울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지.”


바실레프스키는 호탕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 이거 눈 먼 총탄에 비명횡사하는거 아니냐.


에라이, 재수 없는 소리.


괜찮아.


여기까지 오면서 봤는데 의화단 저 새끼들 순 허당이라니까?


“보초를 제압한다. 총검만 사용하고, 총은 절대 쓰지 말도록.”


북경성 밖을 지키고 있던 의화단원들은 제대로 사주경계도 하지 않고 죄다 곯아떨어져 있었다.


바실레프스키의 명령에 따라 은밀하게 접근한 병사들이 반쯤 잠든 보초들을 총검으로 찔러죽였다.


- 아니, 아무리 반군이라도 그렇지 보초가 몇 명인데 얘네는 경비 하나 제대로 서는 애들이 없냐?


60명에 달하는 보초들 가운데 경계는 고사하고 깨있는 인간이 하나도 없다는게 대단한 점이었다.


다리에는 지뢰도 매설되어 있지 않았고, 성문은 오로지 자다가 찔려죽은 의화단에 의해서만 경비되고 있을 뿐.


바실레프스키는 이쯤되자 공격을 숨길 생각도 하지 않았다.


“포를 꺼내와!”


성문 앞 15보 거리에서 설치된 2문의 대포가 일제히 불을 뿜었고, 성문은 그대로 아작 나버렸다.


곧바로 인접한 성벽 구간은 러시아군에 의해 점령되어 버렸다.


“됐다! 우리가 북경에 첫발을 내디뎠다!”


다른 나라 군대들도 아직 북경에 진입하지는 못한 것 같으니, 러시아군의 사기는 그야말로 승천.


이 가운데 시니컬하기 그지 없는 사람은 나 밖에 없었다.


‘뭐 이거 가지고 그렇게 좋아해?’


성벽 위에 올랐다고 끝은 아니다.


우리는 한족 지구인 외성 일대만을 장악했고, 의화단에 의해 포위된 공사관들은 내성 쪽에 있다.


원정군 입장에서는 그들의 구출이 최우선이겠지만, 나야 솔직히 그 사람들이 어떻게 되든지 간에 별로 상관이 없었다.


다만 진짜 알짜들은 내성 안에 있을테니, 외성 하나를 점령했다고 그렇게 좋아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다른 러시아군들은 북경에 제일 먼저 진입했다는 타이틀이라도 달았으니 자랑스러울지는 모르겠지만.


흠, 좋은 점이 하나 있긴 하네.


우리 러시아군이 제일 먼저 북경에 입성했으니 우선권은 우리한테 있다고 봐도 되겠지?


바실레프스키 역시 침착한 표정으로 말했다.


“기쁨에 잠기기엔 이르다! 아직 본대가 도착하지 않았어! 반드시 중국군이 반격해올거다! 그때까지 버텨야한다!”


아니, 잠깐?


그럼 내성으로 안달려? 너희들 바로 가서 자금성부터 털어야하는거 아니야?


- 상식적으로 이 병력으로 어떻게 자금성까지 들어가겠냐······.


우리가 장악한 성벽 말고도 여기저기서 불길과 함성이 오르는걸 보면 연합군의 다른 병력들도 공격을 시작한 모양.


박춘명은 그 모습을 보고 중얼거렸다.


- 북경의 종말이로구만.


그래.

그리고 우리의 시작이지.








---

러시아의 황화론은 극동에서 특히 두드러졌습니다. 극동개발에 필요한 인력의 확보를 위해 동양인들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그들의 영토 잠식을 우려한 것이죠.

"중국인들을 비롯한 황색인들이 위생 상의 이유 등 유럽인들과 같이 생활하기가 곤란하기 때문에" 아시아인들의 집단거주구를 분리하자는 의견이 제기된 결과, 1902년에는 법령이 발포되어 중국인과 조선인 지구가 분리되는 등 인종차별적 정책이 시행되었습니다.


다만 하준은 나름대로 유화 정책을 시행하던 두호프스키와 그로데코프 총독 시절에 자랐기 때문에 그런 점을 인식하지 못했을수도 있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3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검은머리 러시아군 대원수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연재시간 재변경 안내(오전 8시 10분->오후 8시) +1 24.09.16 156 0 -
공지 이전 제목 "조선인이 러시아 다먹음"입니다. +9 24.09.12 918 0 -
24 들통 NEW +13 16시간 전 2,410 212 11쪽
23 치욕의 날 +28 24.09.16 3,698 278 11쪽
22 혈서 +21 24.09.15 4,219 290 12쪽
21 전야 +13 24.09.14 4,394 290 12쪽
20 반응 +13 24.09.13 4,242 290 11쪽
19 이륙 +37 24.09.12 4,755 332 14쪽
18 이륙 준비 +17 24.09.11 4,616 261 12쪽
17 발전 +14 24.09.10 4,780 287 12쪽
16 착수 +15 24.09.09 4,941 299 12쪽
15 내기 +18 24.09.08 4,945 276 12쪽
14 파티 +12 24.09.08 5,362 280 14쪽
13 황족 +21 24.09.07 5,514 302 13쪽
12 귀환 +19 24.09.06 5,468 335 12쪽
11 제안 +26 24.09.05 5,607 316 10쪽
10 호의 +22 24.09.04 5,685 301 14쪽
9 경매 +25 24.09.03 5,711 314 13쪽
8 수확 +27 24.09.02 5,765 318 12쪽
» 시작 +13 24.09.01 5,862 296 11쪽
6 참전 +10 24.08.31 6,343 301 14쪽
5 귀신 +21 24.08.30 6,485 300 12쪽
4 입학 +30 24.08.29 6,707 341 12쪽
3 연줄 +20 24.08.28 6,940 344 11쪽
2 스타팅이 왜 이래 +24 24.08.27 7,860 381 12쪽
1 프롤로그 +41 24.08.26 8,936 371 7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