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햄스터가 살아있다면 희망은 있어

아넨티어 2부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무협

햄스터살려
작품등록일 :
2016.12.28 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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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1.19 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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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1.19 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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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쪽

아티하 11

2부의 주인공은 1부의 주인공들과 밀접한 연관성이 있습니다.




DUMMY

홀로 작은 연무장에 선 아티하는 발도세로 천천히 몸을 낮춘다. 검을 뽑아내기 전 몸을 다시 관조한다. 내상은 심각하다. 솔직히 아직 검기를 뽑아내서는 안된다. 외상 역시 심각하다. 다칠수록 회복하는 속도가 빨라지는 느낌이지만 그걸 언제까지 믿을 순 없다. 무엇보다 알 수 없는 초회복과 같은 것, 어느 순간 반동이 와서 뒈질지도 모른다. 그래도 할 수 밖에 없다. 이제 겨우 이틀 남았다. 죽일 준비를 하지 않으면 그것이 통상적인 군인 훈련 과정에 가깝다 하더라도, 이 폭력적인 세상에서 죽기 딱 좋은 마음가짐이라고 그는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검집은 크기만 맞는 보급형이다. 마력을 담아서 폭발시키는 발도술은 꿈도 꿀 수 없다. 그저 매끄럽게 빼어 중단세로 집어 든다. 한동안 꾸준히 하지 못했지만, 매일 해야 하는 수직 베기, 수평 베기, 찌르기 순서로 기본 검술을 정확하게 백번씩 반복한다. 본래대로라면 땀도 흐르지 않을 운동량에 몸이 벌써 지치기 시작한다. 숨이 차오른다. 보법을 점검한다. 전신의 근육 가동범위와 유연성을 확인한다. 마력 없이 발휘할 수 있는 최대 근력과 순발력을 점검한다. 지구에서 넘어온지 긴 시간이 지난 것도 아니지만 마구잡이의 실전과 위기 때문에 날카롭게 날이 선 자신을 발견한다. 한편으로는 몸을 막 굴려서 그만큼 망가진 부분도 많았다. 단기간에 워낙 실전 감각이 올라갔기 때문에 그런 하자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성장했을 뿐이다.


호흡을 갈무리하고 다시 상단세, 검과 자신을 일치시킨다. 마력을 강하고 빠르게 돌린다. 다행히 검신은 물론 다른 부속들도 이상증상을 보이지 않는다. 개안. 적색 마안이 눈에 들어차며 연무장의 바깥까지 읽어낸다. 마력압을 높인다. 심장이 두근거린다. 척추를 통해 강대한 마력의 줄기가 뻗어나간다. 뇌에 간섭하고, 영혼에 잇는다.


갑작스럽지만 될 것 같았다. 그는 조용히 읊조리며 배운 대로, 그리고 한번 호되게 당한 만큼 경험을 떠올려 자신의 검을 뚜렷하게 염상한다. 영혼에 잇는 마력이 영혼력을 일깨운다. 그 모든 공정은 아티하 자신도 믿기 어려울 정도로 부드럽게 전개된다. 혈류가 빠르게 돌자 눈 앞이 한순간 핑 돈다. 하지만 기절할 정도는 아니었다.


정보가 넘친다. 시야가 넘친다. 현기증은 그것에 기인한 것이 컸다. 다행히 아티하는 보는 것에 있어선 이미 상당한 경지에 올라 있었기 때문에 금세 적응했다. 더 멀리 더 자세하게 본질까지 뚫어보는 것은 ‘아티하식 탐색 마안’의 상위호환일뿐, 결이 다른 것은 아니다. 하늘 높이 날던 독수리와 눈이 마주친다. 놈은 아티하가 먹잇감이 아닌 것을 알면서도 잠시 더 쳐다보다가 날아가 버렸다. 냄새가 너무 많다. 그래서 오히려 코가 막힌다. 콧물이 마구 흘러내린다. 입에 화학 분석기가 달린 것 같다. 온갖 이상한 맛이 느껴진다. 황홀하고도 역겹다. 위산이 역류하게 놔둔다. 우미하가 저택 어디선가 나직이 노래하는 것이 들린다. 성의 경비병이 공연히 두드리는 창의 진동이 들린다. 창공에서 지나가는 제트기류가 구름을 찢는 파열음이 들린다. 귀는 다행히 엄청 아프기만 했다. 통각이 왜곡되었다. 평소처럼 고통을 무시하고 이겨내고 ‘잊는’ 것이 아니다. 아프다는 것이 근육을 옥죄고 정신에 개입하는 것이 아니라 지극히 객관적으로 이 고통을 무시해도 되는지, 무시했을 경우 어떤 손상과 부작용이 오는지만 정확하게 짚어주는 느낌이다. 그러니까, ‘검신’이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어디까지 몰아붙여도 되는지 수치화해주는 기분이다. 촉각은 뭐가 달라졌는지 알기 어려웠다. 이 모든 감각을 요약하면 ‘다른 생물이 된 것’ 같았다. 그는 영혼이, 가슴 한 구석이 아린 것을 느끼고 그 모든 것을 천천히 풀어냈다. 뒤늦게 검신에서 ‘검강’이 풀려나온다. 다만 그것은 온전한 검강이라 보기 힘들었다.


아티하가 ‘조상들의 기억’을 봉인했다고 하더라도, 그 핏줄에 흐르는 재능과 부친에게 받은 교육 때문에 ‘기’가 지나치게 앞선 상태다. 하루 이틀 된 것도 아니지만 이 불균형은 아티하에게 무공으로도 마검으로도 강기의 무인이 되지 못한 상태에서도 강기를 상대할 수 있는 검기를 운용하게 해주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만큼 몸에 가해지는 부담감, 장래의 발전을 위한 잠재력을 까먹기도 했다.


아티하는 얼른 영안을 잠재운다. 무슨 색깔인지 본인조차 인지하지 못했지만, 적색이나 흑색 계열은 아니었다. 보통의 아티하 장자의 영안이 심연 그 자체에 가까워 정작 시계(視界)의 색상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것을 생각하면, 조금 더 밝은 느낌의 세상이 느껴졌으므로 아티하의 영혼 적성은 의외로 ‘밝음’계열이라는 이야기가 되었다. 보통 ‘어둠’계열이 검의 본질에 가깝고, ‘밝음’계열은 유틸리티 즉 다양한 초능력이나 이능력에 접목한 검을 지향하게 되고, ‘색채’계열은 대개 극단적으로 파괴적이거나 방어적인 성향을 의미한다. 아티하 가문의 검사들은 남녀 할 것 없이 영혼 검사의 수준에 다다르는 그 순간 자신의 첫 영안 색채를 통해서 정체성을 부과받는데, 어떤 이들은 필요에 의해 다양한 영안을 운용할 수도 있어 그것이 반드시 영혼의 색채, 심성의 발현이라고 확신하긴 어려웠다. 하지만 대부분 그렇게 믿는 것은 그만큼 일치되는 경우가 많았고, 다양한 영안을 전개하는 ‘괴물’들은 수세대에 한 명 정도만 나왔기 때문이다.


그는 아쉬웠지만 다시 몸을 관조하며 마력을 잠재운다. 이전에 안 되었던 것이 된 것이라면 감정의 평온 상태도 한 몫 했겠지만, 지난 전투에서 얻은 무엇인가가 있었으리라. 갑자기 발현한 치료 아니 순간재생이라든가 마인들 앞에서 무력했던 기억, 검이 지멋대로 마인들의 수강을 가르고 호신강기에 가까운 마력 방호를 갈라버린 것도 자괴감에 가까운 형태로 마음에 남아있었다. 보통이라면 심마겠지만, 당시의 아티하는 심마에 걸리기도 전에 생의 위기를 연이어 맞았기 때문에 우미하를 보고 안도하고 행복하게 된 정신상태도 한 몫 하지 않았을까. 정답은 아티하 본인도 알 수 없었다. 어쨌든 남들은 평생을 수련해도 실마리도 못 잡는 영안의 경지에 이리도 쉽게 (게다가 한 번 주화입마 때문에 죽을 뻔 해놓고) 올라선 건 핏줄의 은혜라고밖에. 하지만 그는 다시 흐트러졌던 검강...이 아닌 것을 떠올렸다. 아티하의 검사라고 말하긴 아직 부족한 경지이리라.


그는 입가에 흐른 침과 위액을 닦고 몇 번 움직여 정말 기절하지 않는지 확인하고 자신의 검을 내려다보았다.


항상 같다. 여전히 무겁다. 하지만 친숙하다. 마력이 출력이 살짝 부족해서 검의 어떤 성능을 활용한 것 같은데 손상 하나 없다.


“준비가 된 것 같군.”


아티하는 드디어, 자신을 엿먹였던 그 여관을 잡아 모두 죽이기로 마음먹었다. 하루 안에 할 수 없다면 단서라도 잡아두리라.


-


그는 거리에서 순찰을 도는 병사들이 붙잡지 않을 정도로만 빠른 속도로 여관으로 달려갔다. 심호흡 그딴 거 없이 문을 박차고 들어간다. 문은 잠겨있었지만 발차기가 너무 세서 경첩 째 한쪽이 날아갔다. 먼지가 풀썩 날린다.


“에라이 개자식...드ㄹ...?”


아무도 없다. 불도 켜져 있지 않다. 작은 창문의 채광이 전부다. 지금 다시 보니 창문의 덧문이 전부 닫혀 있다. 프리하는 허탈해져서 이곳저곳을 돌아보았지만, 인기척은 없었다. 어디 숨어있는 것은 아닌지 마안으로 사방을 투시했지만, 지하실 하나를 발견했을 뿐이다. 그마저도 평범하게 주방에서 쪽문을 열고 내려가는 형태로, 전혀 숨기지도 않았다.


“아 착실히 공부했으면 ‘탐색 영안’도 쓸 수 있었을텐데.”


그렇게 맘에도 없는 혼잣말을 하고 지하실을 둘러본다. 사방에 뭔가를 도축한 흔적이 있는데, 방의 가운데 놓인 것은 틀림없이 인간을 묶어놓고 장기를 끄집어내는 수술대다.


그는 탐색 효과를 지닌 마안으로 지하실을 한참 둘러봤지만 이상한 것을 발견할 수 없었다. 봐도 봐도 이질적이지 않고 평범했다. 지나치게 익숙했다. 당연히 존재해야 할 공간에 대한 거리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어?”


그는 자기도 이해할 수 없는 소름이 먼저 돋아 몸이 굳어버렸다. 그리고 천천히 생각했다. 바닥에 떨어진 피와 살점, 내장의 조각.


전혀 ‘이질적이지’ 않다. 전혀 ‘다르지’ 않다. 전혀, 전혀, 전혀 ‘이상’하지 않다.


“??????”


아무리 봐도 그것은 이상하지 않다. 다르지 않다. 완전히 동일하다. 그런게 흩뿌려져 있으니까 이 장소가 친숙할 수 밖에 없다. 그는 마안을 끄고 눈으로 보았다. 순식간에 그런 감각이 사라지고 썩어가는 내장과 피의 악취가 코를 가득 메운다. 근데 그마저도 익숙하다. 다시 마안을 켠다. ‘폐부 깊숙이’ 익숙한 체취가 차오른다. 그래 그것은 한 때 그의 폐포에서 산소를 가져가고 이산화탄소를 내뱉던 그 녀석이다. 그 녀석들이 돌아다니던.


“!!??!?!?”


그는 자기도 모르게 검을 들어 수술대를 내리쳤다. 마력에 반응한 ‘피와 살점’이 푸른색으로 불타올라 한 순간에 사라졌다. ‘아티하’는 그 와중에 짓이겨진 간 세포가 분명한 조각을 집어들고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그것이 썩었다는 것을 개의치 않고 입에 넣고 씹었다.


“씨....발!”


그는 그제서야 확신할 수 있었다. ‘프리하 아일리흐 아티하’는 이 곳에서 한 번 살해당했다. 정확히 말하면 내장을 적출당해서 심장이 멈춘 적이 있었다. 아니 그 심장마저도 적출당했다. 다만 쓸모 없는 ‘폐’ 한 쌍만이 적출당하지 않았다. 안구마저 적출당하지 않았을지 확신할 수 없다. 그러나 직접 걷어본 상체에는 그 어디에도 칼자국은 없다. 눈에도 어떤 이물감이 없다. 입 안에서 녹아버린 간은 소화는커녕 그 자체로 마력이 되어 그대로 그의 몸으로 녹아들었다. 기분이 더러웠다. 하지만 그 광기로 수렴하는 정신을 강력한 방화벽이 순식간에 복구한다.


완전 빡친, 아니 이 곳에 출발할 때만 하더라도 적당히 괴롭히다 죽이려던 아티하의 복수심에 광기로는 설명할 수 없는 지독한 분노가 스며들었다. 이성이 멀쩡한데, 이성이 마비된다. 극단적으로 목적을 수행하고자 한다.


지금 여기서 단서를 찾지 못하면 앞으로 찾는 것은 요원할 것이다. 아티하는 주변 상점을 돌아다니며 탐문했지만, 아티하가 방문했을 당시 이 여관을 운영했던 사람들은 불과 일주일 전에 왔을 뿐이며, 그 전에는 2년 넘게 비어있었다는 것이다. 공통적으로 그런 이야기를 했고, 이 구역을 담당(?)한 거지 한 명은 이런 이야기를 해 주었다.


“내가 이 곳에서 오랫동안 동냥도 하고 잠도 잤지만, 그 건물에 불이 꺼지는 걸 본 적이 없소. 이틀 전 밤에는 마차 두 대가 앞에 서서 짐을 잔뜩 싣고 가더군. 내 시끄러워서 깬 것도 있지만 흘리는 게 없나 봤는데 물건이 많진 않아도 무거운지 바퀴가 시끄러운 소리를 냈소.”


프리하는 그에게 충분히 사례하고 다시 건물 안으로 들어왔다. ‘탐색 영안’이란 혼잣말을 했는데, 자신의 장기가 적출되었다면 그것이 어떤 다른 인간의 몸에 들어가더라도, 어디까지나 ‘아티하’의 것이므로 고유 마력을 추적해 찾을 수 있다. 이 세계에만 있다면 말이다.


-


“그럼 나는 어떻게 ‘죽을 뻔’ 한거지?”


마굴에서 겪었던 그런 일이 의식도 없이 또 있었으리라. 그런 확신만이 남았다. 하지만 ‘초재생’같은 건 아티하의 역사에서 배운 적이 없어서 그는 참으로 곤란했다. 전설로 남은 초대 아티하의 ‘녹색 영안 – 영혼의 수복’은 그 비슷한 치료 권능조차도 재현된 적이 없었다. 그만큼 ‘마검술’의 영역에서 무엇을 때려부수는 것이 아닌 회복시키고 치료하는 것은 불가해에 가깝다. 더구나 바로 어제까지 영안 전개에 실패한 찐따 마검사에 불과했던 자신이 단순히 핏줄의 권능으로 죽음 직전에 이른 육체를 회복시킨다? 그것도 완전히 결손되거나 파괴된 부분만 골라서? 마굴에서의 초회복 역시 어중간했던 점이 그가 이 현상에 대해 아예 감도 못 잡는 이유 중 하나였다.


살아서 다행이다. 그런 생각을 너무나 진실되게 하면서도 그는 움직일 수가 없었다.


“난, 뭐지?”


처음으로 가진 자신에 대한 의문. 아티하가 조금만 똑똑했다면 자신의 부계가 아닌 모계를 생각했을 것이고, 그보다 더 똑똑했다면 지구를 떠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모두 뒤늦은 후회일 뿐. 그마저도 떠올리지 못하는 자에게는 사치스러운 상념일 것이다.


여관을 빠져나와, 성을 빠져 나와 가장 가까운 높은 산으로 향한다. 어렵지도 않게 1km정도 되는 고도에 오른다. 찬 바람에 정신이 든 아티하는 곧 검게 죽은 눈을 다시 빛내며 검을 뽑아 든다.


성에서는 차마 눈에 띌까 두려워 못한 일을 행한다.


청색 영안 – 탐색 – 목표는 오로지 ‘자신의 마력’


검을 꺼낼 필요는 없었으나, 본능적으로 꺼낸 검의 내구도에 자신의 육체를 특히 안구를 동조시킨다. 본래대로라면 막강한 검극의 충돌 사이에 무기와 마검격이 파괴되지 않도록 충격을 흩어버리는 기예에 사용하는 기술이지만, 아티하는 어딘가 홀린 것처럼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은 것을 오직 ‘의지’ 하나만으로 작성하고 구현한다. 다만 ‘청색 영안’의 기본 구조와 신비는 그의 혈액 속에 녹아있는 날 것 그대로다.


인간의 안구가 아닌 ‘더 멀리 더 잘 다르게 여러 방법으로 그리고 꿰뚫어서 그리고 지나쳐서 또 넘어서 보는’ 신비가 아티하의 안와를 채운다. 그 물리적 고정 지점이 되는 안구가 막대한 마력압과 세상을 일그러뜨리는 영압에 의해 존재를 소실할 것 같게 될 때에, 검과 전신을 통해 남아도는 압력을 뽑아내고 흩뿌리고 새로이 뿌려지고 부어지는 마력과 영력을 정류한다. 그럼에도 안구 세포, 망막이 조금씩 찢겨나가고 때론 세상에서 소멸한다. 피가 줄줄 흐른다. 오래는 못 한다. 아티하가 장자로서 완성된다 할 지라도 이렇게 한계를 정하지 않은 초월적인 신비를 구현한다는 것은 안구가 아닌 목숨까지 거는 짓이다. 그걸 몰랐기 때문에 아티하는 두 번째 영안 전개를 오히려 쉽게 할 수 있었다.


멀리서도 보이는 거대한 청색 – 이라고 퉁치기에는 너무나 다정多情한 밤 하늘의 별에서 쏘아내는 창백하고도 선명한 눈부심 – 이 구의 형태로 휘돌아치며 빛나다가 아티하의 눈으로 수렴한다. 구토감은 논할 것도 안 되는 수준으로 격통이 달린다. ‘필터’가 제대로 적용되지 않아서 온갖 것이 보이다가 사라지고 나타나고 분류되어 제거되길 반복한다. 아티하는 당장이라도 눈을 뽑아버리고 검을 던져버리고 싶었지만 미쳐 날뛰는 분노가 그 모든 충동을 거칠게 내리눌렀다.


“씨이발! 보이라구!”


세계의 수많은 층위가 벗겨져 나간다. 한 순간 필터가 모든 것을 보는 것에서 모든 것을 보지 않는 것으로 전환된다. 그건 어둠이라고 할 수 없는 심연.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것은 이미 시야라고 할 수 없음에도 눈이 받아들이는 정보는 그 자체로 막대하다. 정보는 모두가 순수에 가까운 광기. 아니 그것은 그저 아티하의 탐색 영안이 완전하지 못해서 생기는 ‘결과만을 산출하는 오류’다. 그는 심연을 보고 있었으나 그것을 알지 못했다.





심연이 그를 보았다.





아티하는 얼른 집중해서 필터를 다시 적용했다. ‘자신의 마력’


오로지 어두운 세상에 다시 윤곽이 칠해지고, 지면과 수면과 대기가 만든 하늘의 경계가 드러난다. 그 와중에 도무지 거리를 가늠할 수 없는 다섯 군데에서 선명한 녹색 빛무리가 드러났다. 그것들은 각각 그의 심장, 간, 신장, 안구 두 개 였다. 저게 떼어지고도 어떻게 살아있는지 이 와중에도 정말 궁금해진다. 안구 두 개는 다른 두 사람에게 각각 이식된 상태였고, 거리가 너무 멀어 아티하의 영안 전개가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진 않았지만, 지금 펼치고 있는 것은 어디까지나 ‘이 세계’라는 광대한 대상을 범위로 그 두 눈도 포함하고 있었으므로, 고통을 느끼는지 마력에 얽힌 신체가 요동치는 것이 보였다.


심장 역시 어떤 사람(성인인지, 아이인지, 남자인지 여자인지도 알 수 없었다)의 몸 속에서 너무나 잘 뛰고 있었고, 신장 하나 역시도 누군가의 몸 속에서 기능하고 있었으나, 나머지 신장 한 쪽과 간은 차갑게 냉동되어 어딘가에 보관되어 있었다.


필터에 세계를 이루는 가장 기초적인 개념들이 추가된다. 가시광선영역, 원근개념, 고도 등. 그의 모든 장기는 지금 닿을 수 없는 아무 먼 곳에 있었다. 제국 그것도 서부에 안구와 간 둘, 아넨트리아보다 동쪽의 셀렌트리아 지역에 신장 하나, 북쪽 아논에 안구 하나, 동남부 해안 항구에 심장 하나, 대륙 중앙의 사막에 나머지 신장 하나. 그 이상 시각적인 정보를 얻을 수가 없었다. 그는 그 이상 유지할 수 없어서 볼품없이 쓰러지며 영안을 거둔다. 막대한 정보량에 비명을 지르던 뇌와 안구가 수축하면서 다시 극심한 격통이 머리를 연이어 때리고 간다.


한 5분 지났을까, 겨우 깨어난 아티하는 입에서 줄줄 흘러내린 피를 대충 닦고 멍하니 서서 자신의 갈 곳 없는 분노를 흘려보내야만 했다.


“언젠가는 먹고 말 거야...”


-


거의 두 시간 정도 눈이 잘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공포에 울부짖기보단 좀 추운 산 정상에서 시각이 돌아오길 천천히 기다릴 수 있었다. 그 또한 모두 분노 덕분이었다. 지쳐서 돌아오자 우미하가 심상치 않은 프리하의 표정을 보고 뭔가를 물어보려 했다. 하지만 그 전에 프리하가 먼저 질문했다.


“우미하, 이 세계에도 장기를 이식하는 방법이 있습니까?”


우미하 세이브리드는 그 질문에 안색을 굳혔지만 한 순간 뿐이다. 그녀는 평시 그러하듯이 태연하고 친절한 얼굴로 대답해주었다. 프리하는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럼요. 병 때문에 장기가 못쓰게 된 사람은 멀쩡한 사람의 신체에서 장기를 빼서 교체할 수 있어요. 그러한 마도 의술이 본격적으로 도입된 지는 아직 50년이 안 되었다고 알고 있어요. 성공률은 그렇게 높지 않다고 하죠. 장기를 이식받는 사람과 장기 사이에 거부반응이 생기는 경우가 보통인가 봐요.”


프리하가 속으로 현대 의학의 유사성에 대해 떠올리고 있을 때, 우미하는, 이 세계 입장에서는 가장 보편적인 ‘장기적출’의 이유에 대해 논했다.


“하지만 그런 건 어디까지나 부자들과 마법사들과 괴짜 의술사들의 영역이에요. 강력한 회복 신성마법의 지원을 바탕으로 부작용이 나오지 않는 완치까지 하는 억지같은 의술이죠. 보통 사람에게서 장기를 떼어낸다는 것은 주술이나 마법 술식의 재료로 쓰거나 연금술의 소재로 사용한다는 것을 의미해요. 마인들은 그것들을 특별히 정제해서 먹기도 하죠. 아티하 당신도 잘 알겠지만 ‘식인’은 사람이 마력을 얻을 수 있는 가장 편리하고 효율적인 방법에 속해요.”


프리하는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던 그 말을 떠올린다. 언젠가는 먹고 말 거야. 생각한다. 나는 왜 그런 생각을 했을까.


“단순히 먹는 것 만으로 타인의 마력을 자기 것으로 할 수 있습니까?”

“죽은 자는 더 이상 마력에 대한 통제력을 가지지 않으니까요. 대기중으로 흩어지는 정도는 훨씬 느리고, 밀도는 매우 높은 마약(魔藥)이 되는 거죠. 죽은 자가 영안을 열 정도의 고수라면 그 내장의 가치는 더욱 높아지겠죠. 일반적인 살과 근육, 혈관과는 달리 내장에는 한 개인의 마력 행사의 성격을 구분 짓는 고밀도의 반 액상화된 마력이 존재하니까요.”


그녀는 이어서 말한다.


“하지만 그렇게 먹거나 이식하는 경우는 무척 드물죠. 오히려 그런 것보단 술자의 마력 행사를 돕는 ‘아티팩트’의 재료로 삼는 경우가 가장 흔할 거에요. 만약 내장의 원 주인이 화염계열의 마법을 뛰어나게 다루는 마도사였다면 그 질료만으로도 약간의 자극을 통해 엄청난 열기를 발생시킨다던가 하는 식으로요.”


프리하는 더 깊게는 묻지 않고, 그날 저녁을 그렇게 휴식에 전념했다.




그는 체육관에서 흑화의 감독 하에 소윤과 검을 섞던 꿈을 꾸다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일어났다. 꿈이라고는 하지만, 명확한 기억이다.


한 순간 꿈이 깨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을 갖는 자신에게 놀란다. 아침이다. 우미하는 벌써 옷을 다 입고 있었다. 하인도 아닌데 세수 할 물을 가져왔다. 프리하가 뭐라고 하려 하자 그녀는 쳐다도 보지 않고 수건을 챙겨주면서 말을 꺼낸다.


“아티하는 조용히 가는 걸 원하겠지만 오늘은 아버지를 뵙고 가요.”

“그대의 가족은 내게 관심이 없는 것 아니었습니까?”

“그럴리가요. 팔만도 내가 아니었으/면 진작 찾아와서 인사했을 거예요. 어쨌든 우리 세이브리드가 당신의 ‘후원 가문’이니까 한동안 못 볼 테니 인사나 하자는 거죠.”


그게 다는 아닌 것 같았지만 프리하는 군말 없이 일어나서 나갈 준비를 했다. 우미하가 나가려 하지 않아서 그는 좀 당황했지만, 그녀의 시선이 너무 따뜻해서 – 그는 그런 시선을 단 한 명의 여성에게만 받아본 적이 있었다 – 차마 나가라고 하지 못했다. 그녀와 처음 만났을 때 그 옷차림이 되었는데, 외투까지 입는 걸 도와는 그녀는 아내처럼 셔츠 깃을 정돈해주고 페릴(아티하가 입고 있는 아넨트리아제 방검코트)이 보호하지 못하는 목 부위를 가드해주는 아미드까지 매어주었다(대략 넥타이와 목토시의 중간단계 디자인). 그가 조금 빨개진 얼굴로 뭐라고 하려 하자 입에 손을 갖다댄다.


“쉿. 오늘 뿐이에요.”


하긴 두 사람은 사귄다고는 하지만 별다른 스킨십도 하지 않았다. 애초에 관계가 얼마나 발전한 것인지 아무도 모른다.


그가 검까지 허리에 매자 우미하는 새삼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그를 보았다.


“역시 이 모습이 제일 어울리네요. 처음 봤을 때 살짝 반했을지도 모르겠네요.”


프리하는 그녀의 갑작스런 고백에 당황했지만 곧 농담이겠거니 생각했다.


“가죠.”


두 사람은 세이브리드 가주 집무실로 향했다. 집무실이라지만 생각보다 작고 볕이 잘 드는 2층의 개인 서재에 가까운 방이다. 우미하의 아버지는 그녀의 아버지가 아니라 큰오빠인 것처럼 젊어 보였는데, 전체적인 몸매가 가느다랗고 어깨와 팔에만 압축된 근육이 좀 있었다. 우미하와는 달리 회색빛 눈동자는 상당한 피로감이 쌓여있지만 프리하를 보고 조금 반짝이는 것 같다. 머리는 거의 완연한 백발이라 원래 무슨 색인지 알기 어려웠다.


“반갑네. 내가 세이브리드 가주 길타일세.”

“프리하 아일리흐 아티하입니다. 인사가 늦었습니다. 저택에 머물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것뿐인가?”

“네?”

“허허 아니네, 앉게나.”


적어도 악의는 없어 보인다. 세 사람은 책상 주변에 적당히 의자를 끌어와 앉는다. 그는 딸과 프리하를 번갈아 쳐다보더니 딸에게 물었다.


“우리 딸, 아주 미남을 데려왔구나?”

“아빠!”


우미하가 버럭 하자 그는 움츠러들며 어색한 미소를 지어보인다. 생각보다 푼수다 이사람... 하지만 프리하는 긴장을 놓지 않았다. 그럴 필요도 없었지만. 하여간에 두 사람이 편한 호칭을 남 앞에서 사용한다는 것은 나쁜 신호는 아닌 것 같다.


“대단한 일로 부른 건 아닐세. 자네가 우리 딸이 최근 사귀는 사람이 아니었다면 조카 녀석의 대체품 이상으로는 생각하지 않았을 거고, 이렇게 보는 일도 없었겠지. 어쨌든 고맙게도 살아서 이렇게 보게 되고 우리 가문의 이름으로 시흐 교육대까지 간다니 나로서는 무척 고마운 마음이네. 이건 그 성의 표시네.”


그는 미리 준비한 듯 책상 아래서 상자 하나를 꺼내서 올려놓았다. 아티하는 보자마자 그것이 단검이란 걸 알았다. 상자 뚜겅을 열자 붉은 색 혈조가 들어간 가느다란 단검이 모습을 보인다. 살짝 휘어져 올라가며 좁아지는 검신의 등에는 녹색 염료로 무엇인가가 각인되어있다.


“사...사르가스 입니까?”

“오 그 고어를 읽을 줄 아는군?”

“읽는 것 정도는 어떻게... 그보다 잡아봐도 되겠습니까?”

“자네에게 주는 건데 당연하지. 얼마든지 써보게.”

“감사합니다.”


아티하는 사양의 말도 없이 단검을 덥석 집었다. 그는 대부분의 무기를 몸처럼 다룰 수 있지만 도검류의 무기에 한해서는 그가 정통한 장검 다루는 검술을 변형해서 사용할 뿐이다. 때문에 자세는 어딘가 어설펐지만, 곧 쥐는 법을 달리 하고 검세를 달리 해서 보완한다. 그저 가볍게 만나볼 생각이었던 것이라고 판단했던 프리하는 길타 가주의 눈빛이 변하는 걸 보고 적당히 내려놓았다.


“이건 귀물이군요. 제가 받아도 되겠습니까?”

“이미 자네 것이네. 딸 애가 자네를 무임금으로 착취했으니 나라도 뭐라도 해주어야 하지 않겠나? 허허.”


아티하는 단검을 쥔 순간 이게 상당한 연식을 가졌고 이름난 명장의 손에서 태어난 살수 전용의 무기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 동안 주인을 바꿔오며 마신 피도 상당하리라. 그런 생각은 뒤로 하고 그는 평온히 대꾸한다.


“좋은 거래였는걸요.”

“그래. 지금 가진 검도 뛰어나다 들었지만 자네가 살수 훈련을 받으며 잘 쓰길 바라겠네. 앞으로 계획은 있나?”

“일단 훈련 과정을 마치면 제국으로 갈까 합니다.”

“아, 제국 살문 등용 과정에 지원할 생각이 있는 건가?”

“? 그런 것까진 생각하고 있지 않습니다.”


사실 프리하는 잘 몰랐기 때문에 그렇게밖에 이야기할 수 없었다.


“시흐 교육과정을 졸업해서 바로 이렌시아 정보부나 살수대에서 일하는 것 보다는 그게 나을걸세. 재능이 있어 아캄쉬르티 서임까지 받는다면 돌아와서도 꽤 자유롭게 운신할 수 있을걸세. 이렌시아는 살수에게 관용한 나라니까.”

프리하는 우미하를 쳐다보았다. 그녀는 묘한 표정으로 웃으며 설명해주었다.


“아캄쉬르티-특급살수는 국가가 전략 병기로 운용할 수 있는 살성급 살수 인재를 의미해요. 제국 살문에서 직접 시험을 치르고 관리하죠. 이렌시아에는 ‘진짜’ 아캄쉬르티라고 인정받는 요인만 백에 달하죠.”


그 순간 프리하는 목표를 갱신했다. ‘아캄쉬르티 서임 받기’. 살수의 길에 발걸음을 내딛은 순간, 살법에 호기심을 가진 순간 정해진 길이었을지도.


“아빠, 아티하는 시골에서 왔기 때문에 세상물정을 모르는 부분이 있어요. 너무 놀리진 마세요.”


왠지 프리하가 해야 할 말을 대신 해 준 것 같지만. 그도 조금 생각하다가 침묵이 어색했기 때문에 질문을 했다.


“가주께서는 저같은 시골뜨기가, 신분도 불명확한 자가 따님과 사귀는 것이 불쾌하지 않으십니까?”


프리하에겐 놀랍게도 그는 즉답했다.


“자네가 귀족이 아니라는 점은 아쉽지만, 일단 ‘아티하’가문 사람이라니 흠이 되진 않는 것 같다고 생각했네. 그리고 세이브리드는 언제나 ‘내실을 담아 시위를 걸어라’에 충실한 가문이네. 실력 있는 검사 사위라면 가문에 해가 되진 않겠지. 딸 아이도 자네를 생각보다 진심으로 좋아하는 것 같고 말이지?”

“아빠!”

“흠흠 뭐 그렇다네.”


‘내실을 담아 시위를 걸어라’가 가훈 중 하나라는 것은 알 것 같았지만, 어디까지나 이 세계 물정에 어두운 그는 길타 가주의 어디까지가 진심인지 알기 어려웠다.


“그럼 저희는 일어나볼게요. 너무 늦게 들어가도 좋지 않으니까요.”

“그렇게 하거라. 그럼 아티하군...도 무탈히 빠져나오길 바라겠네. 다시 이 방에서 만날 날을 고대하겠네.”

“? 알겠습니다. 만나뵙게 되어 반가웠습니다 세이브리드 백작님.”

“딸 아이를 잘 부탁하네. 이건 진심으로 하는 소리네.”


그 전까진 진심이 아니었나 하는 의심이 또 올라왔지만 그는 말없이 가주의 손을 붙잡고 악수했다. ‘빠져나오다’라는 표현이 다시 마음에 걸렸지만 그는 대충 넘기고 말았다.


-


“아빠도 참. 저렇게 말했지만 대부분은 진심일 거예요. 귀족 치고는 솔직한 사람이거든요. 그럼 출발할까요?”


프리하는 딴 생각에 빠져있다가 그녀의 목소리에 정신이 들었다.


“우미하.”

“네 아티하?”

“가기 전에 뭐 없습니까?”


그는 음흉한 생각으로 그런 질문을 했다. 프리하의 표정을 보고 알아차렸는지 조금 당황한 우미하는 잠깐 망설이다가 거리를 좁혔다.


“일로 와요.”


두 사람은 우미하의 방에 도착했다. 그녀도 미리 준비한 것인지 길쭉한 상자를 하나 차탁에 꺼내왔다.


“열어봐요.”


프리하는 기대하는 마음으로 상자를 열어보았다. 안에는 기이하게 생긴 활촉과 수많은 글자가 음각된 화살대 그리고 붉은 깃털로 마감된 깃대로 구성된 살 하나가 있었다.


“이거 설마. 그겁니까?”

“제 정표에요. 아티하가 정말 위험할 때 사용해주었으면 좋겠어요. 소중하게 보관해준다면 더욱 고맙겠지만요.”

“그렇다면... 정말 필요할 때 사용하겠습니다.”


하지만 프리하가 여전히 기대(?)하는 표정이자 우미하는 쭈뼛거리며 다가와서 그를 올려다보았다.


“...이번만이에요?”

“헤헤.”

“잘 다녀와요.”


작게 쪽 하는 소리가 방 구석으로 금세 숨어들었다.


-


...그런 것 치고는 우미하는 시흐 본부 앞까지 따라왔다.


“몸 조심해요. 자주 편지하구요. 나오게 되면 바로 찾아와요. 나도 기회 되는 대로 면회 갈게요.”

“그래 우미하. 건강하게 다시 보자.”


그새 자신감(?)을 얻은 프리하는 반말로 그치지 않고 그녀를 한번 꼭 안아주었다. 주변에는 아티하처럼 연인과 온 경우는 드물고 대부분 가족들이 와서 환영하는 분위기다. 이것이 이 나라의 문화다. 살수가 되는 것은 출세길로 향하는 아주 좋은 방법이다. 그 전에 ‘살수’라는 업이 이 나라에서는 그렇게 나쁘게 인식되지 않았다. 단순한 암살자가 아닌, 명예를 알고 생명의 무게를 아는 그런 뛰어난 전사에 가깝게 인식되기 때문이다. 오히려 제국에서는 살수가 프리하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암살자에 대한 부정적인 통념에 가까운 인식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럼 안녕.”


그녀는 조금 슬프게 웃었다. 프리하는 오히려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그 얼굴을 담고 돌아서 들어갔다. 돌아보진 않았다.


그 또래의 청년들도 있는 반면, 나이가 좀 더 어려보이는 소년 소녀들도 많이 보인다. 시흐 입단은 나이 제한이 없기 때문에, 아주 어려서부터 ‘입단된 상태로 시작하는’ 새끼 살수들은 착실하게 기본기와 경력을 쌓아서 20대가 되면 벌써 살수대 하나의 간부나 조장으로 활동하는 경우도 흔했다. 실제로 여기에도 그런 살수들이 교육대 입소식 교관으로 여기저기서 일하고 있었다. 다들 인사하느라 대기공간에 앉아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지만, 프리하는 인사할 사람도 없었기 때문에 바로 접수대로 향했다.


“이름?”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교관은 이런 공식 행사에서도 눈코입만 내놓은 살수 경장을 입고 무장한 채 접수대에 앉아있었다.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었지만 모두가 기본 무장은 하고 있다. 저게 이 사람들의 일상복일지도 모른다고 프리하는 생각했다.


“프리하 아일리흐 아티하. 세이브리드 가문의 사람이오.”

“아티하라... 이번 기수에 아티하 출신은 없는데.”

“공개처형 생존자요.”

“아아 이거 몰라뵀군. 이번 공개처형은 황제 특명으로 생존자는 많은데 여기 찾아온 사람은 당신이 처음이오.”

“...”

“좋아. 특채 명단으로 올리지. 공개처형 전형이 아니더라도 다른 특채 전형 출신들이 있으니 잘 지내보시오. 다음에 만날 땐 교관과 생도 관계겠군.”

“잘 부탁합니다.”


생각보다 절차가 허술해서 조금 맥이 빠졌다. 개인 짐을 담는 커다란 가방과 나무로 만들어진 임시 신분증을 받은 프리하는 갑자기 궁금해져서 그에게 물어보았다.


“평소에도 ‘아티하 가문’ 출신 생도들이 있습니까?”

“가끔 있네. 3년에 한 번 정도? 대부분은 제국 검방에서 살문에 위탁교육을 맡겨 시흐에 파견된 마검사들이지. 잘 배우고, 당연히 강하고, 인품도 괜찮았던 생각이 드는군. 자네는 본가 출신이 아닌가 보군?”

“시골 출신입니다.”

“하긴 그렇지 않다면 공개처형 전형 같은 걸 노리진 않았겠지. 자 들어가게.”


특채라고 해서 좌석이 따로 준비되진 않았다. 기둥 지붕만 있는 커다란 건물 아래에 의자 수십개가 놓였는데, 그 중 맨 오른쪽 줄일 뿐이다. 프리하는 맨 앞에 앉아서 입소식 행사가 준비되는 모습을 여기저기 둘러 보았다. 가족들과 헤어져 하나 둘 씩 자리에 앉는 소년 소녀들이 보인다. 30대로 보이는 사람도 있다. 입고 있는 복색을 보아 미루어 볼 때, 가난한 집의 자제들이 훨~씬 겉늙어 보이고 위생상태나 영양상태가 좋지 않다. 그는 새삼 공개처형 전형이란 말이 얼마나 개같은 단어인지, 이 사회의 빈부격차는 얼마나 심각한 수준인지 생각했다.


사람들이 다 안들어와도 식순이 시작했다. 별 전조도 없이 들어온 평퍼짐한 이렌시아 전통복을 입은 평범한 중년 남자가 지구였다면 마이크가 있을 법한 단상에 올라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대부분은 그의 등장을 알아차리고 조용히 했지만, 그렇게 정숙한 분위기도 아니다.


“어흠. 시흐 교육단 단장 아머 구르카요. 여러분 입소를 축하합니다. 거기 특채 여러분은 더 축하하고. 알겠지만 특채 여러분은 입단시험만 치르고 2학년으로 편입되는 거 알지요? 앞으로도 이렌시아를 위해 힘써 일해주고 배우는 여러분이 되길 바랍니다. 잘 살아남구요. 그럼 모두 입소시험장으로 이동!”


프리하는 황당했다. 뭐가 황당했냐면 그렇게 몇 마디 안하고 끝냈는데 납득하는 분위기가 제일 황당했다. 어쨌든 교관들은 본격적으로 목소리를 높이며 – 그럴 필요도 없었지만 – 질서정연하게 교육생들을 줄 세워서 준비된 마차에 태웠다. 갑자기 눈물바다가 펼쳐진다. 입소생은 대략 2~300명 정도 되는 것 같았다. 이제 입소시험이 남아 있으니 모든 사람이 다시 보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또 남은 사람들도 끝까지 보리라는 법은 없었다.


마차는 8인승이었는데, 그는 운 좋게도 6명만 탄 마차에 같이 타게 되었다. 건너편에는 남매로 보이는 기 세보이는 소년과, 닮았지만 완전히 분위기가 다른 소녀가 앉아 있다. 우미하에게 빠진(?) 프리하는 그녀를 보고 반하진 않았지만 무척 예쁘다고 생각했다. 엄밀히 말하면 아직 다 자라지 않은 그녀는 오늘 프리하가 보았던 입소생 중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프리하가 살면서 가장 예쁘다고 생각한 사람을 꼽아보자면 (흑화를 제외하고) 아무래도 사진으로 본 자신의 어머니이고, 실물로 본 사람중에는 아넨 공주였는데 그녀의 바다색 눈빛이 영향을 주었을까 어딘가 청색 계열의 눈동자에는 끌리는 것이다. 우미하의 물빛과는 다른 녹색이 살짝 섞인 쪽빛은 어둡지만 영롱했다. 피부는 창백할 정도로 하얗고 무채색에 가까운 치마와 저고리 위로 묶어서 늘어뜨린 머리는 길고 까맣다.


“어이 뭘 그렇게 보는거야?”


여자아이 옆에 있던 소년이 눈을 부라리며 프리하에게 험악하게 말했다.


“아 실례.”

“눈 깔아라. 3년 내내 힘들기 싫으면.”


프리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를 잠시 바라보다 눈을 돌렸다. 굳이 첫날부터 시비를 털 필요는 없을 것이다. 또 제 딴에선 여동생(?)을 보호하려는 마음인 것 같았고. 두 사람 옆에 있던 안경 쓴 여자는 이상할 정도로 기척이 옅다. 소녀랑 말 없이 시선을 주고받는 걸 보니 일행으로 보인다. 오히려 소녀는 프리하에게 보일 듯 말 듯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옆에는 농부의 자식으로 보이는 소년과 홍차 빛깔 머리칼을 짧게 자른 가녀린 소녀가 앉아 있다. 소년은 두 사람이 싸울까봐 전전긍긍하는 표정이고, 소녀는 관심이 전혀 없어 보인다. 주변인들에 대한 탐색을 마친 프리하는 창 바깥으로 시선을 돌렸다.


-


두 시간여를 달린 마차는 지난번에 마굴로 향하는 길과는 완전히 정 반대 방향에 있던 조그만 요새에 도착했다. 몇 차례 마차가 서고 움직이기를 반복하더니 완전히 멈추었다.


“전 인원 하차! 필요 없는 짐은 마차에 두고 내려라. 이름 쓰는 거 잊지 말고!”


프리하는 검 하나 단검 하나를 챙겨서 내렸다. 교관들은 모든 입소생을 인솔해서 웬 땅굴로 들어간다. 무장도 생긴 것도 다양한 수많은 사람들은 아까와는 달리 조용해져서 교관들을 말없이 따라간다. 꽤 넓고 깊숙한 동굴을 30분 정도 내려갔을까, 그들은 아주 두꺼운 강철문 앞에 도달했다. 문이 설치된 벽도 일반적인 벽이 아닌, 성벽에나 쓰이는 큼지막한 돌이 주축이 된 견고한 구조물이다. 교관 한 명이 입을 열었다.


“시험을 개시한다. 제군들은 지금부터 살아남아 시험장 안에서 주어지는 단서를 바탕으로 목적지까지 오면 된다. 규칙은 없지만 이유 없이 옆의 다른 입소생들을 살해한다면 시흐에선 보호해주지 않을 거다. 그럼 목적지에서 보자.”


강철문이 요란한 기계음을 내며 열렸다. 안쪽은 똑같이 자연 동굴에 약간의 공사가 더해진 통로였다. 다만 빛의 조도는 훨씬 낮아져 있다. 모든 입소생이 문 너머로 넘어가자 문이 닫혔다. 이제부턴 교관이 없다. 자기 몸은 자기가 지켜야했다. 프리하는 시험의 내용이 너무나 기대되었지만 그런 감정은 겉으로 내보이지 않은 채 다른 사람들 뒤를 따라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불쾌한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인간의 분변 냄새였다. 사람의 숫자가 상당히 많았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1시험장의 공간에 도착해서 그 곳 상황을 이해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히이이이이이이익! 우린 모두 다 죽을거야?!?”


빛이 하나도 없다. 지나온 통로가 밝아 보일 정도의 짙은 어둠이다. 따로 은신하지 않아도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프리하는 누가 왜 이런 비명을 질렀는지 이해할 수 없었-


“끄아아아아아-”


단말마의 비명. 다 내지르지도 못하고 발성기관 어딘가가 뜯겨져나가는 파육음이 들려왔다. 갑작스런 비명에 긴장했던 분위기가 공포로 변한다. 프리하는 그러거나 말거나 마안을 개방한다. 물론 남들에겐 보이지 않게 살짝. 탐색, 시야개선, 어둠극복, 가시광선이 아닌 열과 마력을 통해 상像을 재구축한다.


“뭐야 이것들? 해골이 가득해!”


누가 또 비명을 지른다.


“크아아아아아아아아악!”

“개같은 것들!”


탁하고 갈라진 소름끼치고 둔증한 목소리들도 들려온다. 쾅쾅 두들기는 소리가 들린다. 물소리가 들린다. 전투 태세로 인격을 전환한 아티하가 좀 이지러져 머리가 아픈 시야를 앞쪽으로 돌렸다. 마인 둘이 아무것도 없는 – 최소한 겉보기엔 그러했다 – 허공을 마구 두들기고 있다. 허공을 두들기니 당연히 충돌음은 나지 않는다. 다만 마인의 수강이 무언가에 부딪히듯 반발해 터져나가 마력을 아래로 뿌린다. 방금 인간에서 고깃덩어리로 변한 무언가는 그 허공, 통로의 바로 앞에 흩어져 있었다.


“고기! 고기! 이봐 나도 먹어도 되지?”

“먹어 미친 새끼야! 야들야들한 고기들이 왔으니 오늘은 축제다!”

“크크크크크흐흐크크!”

“너무! 너무 그리웠어어어!”


광기. 그 자체에 전염된다. 아티하는 안쪽을 들여다본다. 마인이 이렇게 많다니. 여긴 대체 뭐하는 곳인가 생각한다. 이런 게 시험장이라니, 시흐의 인간들은 제정신인가?


“아 제정신이 아니구나.”


금세 혼자 납득한다. 우연인지 옆에서 걷던 마차의 동행자들이 그를 이상하다는 듯 쳐다본다. 물론 아티하만 입을 열고 있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입소생이 수군거리며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마인. 보통의 인간은 절대 죽일 수 없는 마로 물든 인간. 영혼과 인성을 벗어버린 대신 엄청난 마력과 힘을 얻는다. 그들은 본래대로라면 강姜의 경지에 이르지 못하면 사용하지 못하는 강기를 사용할 수 있으며, 본신의 재능이나 성취가 뛰어났던 인간이라면 그야말로 괴물, 영안을 뜬 자들조차 상대하기 어려운 마수로 변한다. 일개 살수 후보생, 교육생으로선 상대할 수 있을 리 만무하다. 지금 얼마나 많은 마인들이 이 공동에 모여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런 괴물이 없어도 여기 있는 자들이 상대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였다.


당연히 ‘상대할 수 없는 적’을 만났다면 다른 방법을 생각하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하지만, 그 보이지 않는 벽 – 아티하는 그것이 실제 벽이 아니라 마인들에게 강제한 인식의 벽이라고 생각했다 – 바로 앞에서 오줌을 지리고 기절한 한 소년 너머로 마인들을 노려보는 아티하의 눈에도 광기가 흘러넘쳤다.


“이 씨발새끼들 드디어 만났네.”

“저기 괜찮으세요?”


찰진 한국어 욕에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보고 아까 아티하가 감상했던(...) 소녀가 묻는다. 그녀 역시도 주변 분위기가 동떨어지게 편안해보이긴 했지만... 그녀는 순수하게 정말 괜찮냐고 물어본 티가 너무 심하게 나서, 아티하는 그 와중에서도 표정을 풀고(어두워서 잘 보이지도 않았지만) 대답해주었다.


“물론, 괜찮습니다.”

“설마 싸우려는 건 아니죠?”

“물론.”


아티하의 입가에 섬뜩한 미소가 걸린다. 검이 전의를 감지하고, 척마斥魔의 상황을 감지하고 검신에 마력을 그득히 채운다.


“다 죽여야지.”

“헤?”


그 순수한 의문의 감탄사가 귀여워서 아티하는 작게 웃었다.


“프리실라, 그 경박한 남자와 말 섞지 마라.”

“오라버니, 그런 사람은 아닌 것 같아요.”

“...”


아티하는 그 싸가지 없는(?) 남자가 갑자기 입을 다물어서 조금 놀랐지만, 두 사람과 더 대화를 이어나가진 않았다. 그저 검을 들고 앞으로 나선다.


모두가 마인들로부터, 정확히는 몰려드는 놈들과 식인생식의 현장에서 물러나려고 애쓰고 있다. 통로는 충분히 넓었고, 시체가 널려있는 전면의 출입구 이외에도 공동으로 진입할 수 있는 길은 충분히 있다. 그들과 가까워진 아티하는 곧 마인들의 눈구멍이 패여 있거나 함몰되어있거나, 안와가 통째로 주저앉아 있다는 공통점을 발견했다.


인공적으로 느껴지는 지독한 어둠 속에서, 마인들의 눈을 아예 못 쓰게 만들어버려 ‘시각’ 자체를 박탈했다. 이번 시험의 목적성이 느껴지는 부분이지만, 아티하는 그저 놈들이 시각이 아닌 다른 감각과 마력탐지에 의존한다는 사실에만 주목했다. 대부분의 마인은 쉽게 사람을 찾아내고 살해하기 위해서 그 육체의 성능까지 짐승처럼 변하기 마련인데, 영혼의 흔적이랄까, 그들 자신에게 부재하기 때문에 갈망하는 ‘영자’를 찾아내는 능력은 기가 막혔다. 하지만 눈이 없다면 마력을 통한 시각화가 불가능하다. 안구를 대체할 개념적 마법이 존재하지 않는 이상 놈들의 시야는 없다.

아티하의 마인에 대한 증오는 유전자에 새겨진 정도로 강렬한 것이고, 아티하 제검마저도 그의 감정과 공기에 반응해서 동조할 정도다. 검이 뽑히고, 곧바로 전투 영안이 전개된다. 물론 완전하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불안정하지도 않다. 그저 좀 모자란? 시뻘건 안광에 맞추어 일렁이는 붉은 색 검강 비슷한 무엇. 탐색 영안을 전개할 땐 눈 아파서 아무것도 신경쓸 수 없었던 아티하는 자신의 영안 색상이 붉은 색의 전투 성향이라고 생각해버렸다.


“이야아! 다들 일로 와바!”

“제기랄 영혼 검사다! 이 영압!”

“죽여버려!”

“이 개새끼들! 우릴 이용해 먹더니 결국 이렇게 죽이겠다고?”


그 외에도 온갖 원망과 저주와 욕설과 불만과, 탐욕의 괴성이 들려왔다. 아티하는 눈을 반개한다. 그 목소리 개개의 숫자는 이미 100 이상.


“키키키키 죽여버리자구!”

“크르르르... 영혼을 먹고 싶었어... 너무나 탐스럽다...”

“진수성찬이야!!”


마인들의 분위기가 점차 싸워서 잡아먹자는 방향으로 변해간다. 단순하다. 하지만 효율적이다. 그들의 사고가 이런 어둠 속에 갇혀 있어서 둔화되고 멍청해졌다고 해서 본능에 충실한 기본이 어디 가는 것은 아니다.


아티하는 공포를 느끼지 않는다. 마인들도 공포를 느끼지 않는다. 미친 놈들이 격돌했다. 아티하의 첫 참격이 먹던 시체를 앞에 두고 물러나지 않던 두 마인들의 머리통에 직격했다.


본인도 지금 손에 쥔 것이 검강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안다. 마력소비가 엄청나다. 어쨌든 마인 놈들의 육체는 터지듯이, 갈려나가듯이 베여 흩어졌다.


“크크크크크크크큭! 크크크크크큭! 다 죽어!!!!”


자신의 힘으로 자를 수 없던 것을 자를 수 있다는 것 자체로 그는 대만족했다. 아티하가 광소를 흘리며 다른 하나의 마인을 치우고, 달려드는 놈들을 향해 마주 달려든다.


작가의말

와 너무 오랜만에 올리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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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아티하 10 20.11.16 30 0 28쪽
9 아티하 9 20.11.02 25 0 3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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