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햄스터가 살아있다면 희망은 있어

아넨티어 2부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무협

햄스터살려
작품등록일 :
2016.12.28 23:10
최근연재일 :
2021.01.19 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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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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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6 2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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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쪽

아티하 5

2부의 주인공은 1부의 주인공들과 밀접한 연관성이 있습니다.




DUMMY

그는 자신의 몸을 다시 살핀다. 영안 전개가 실패했기 때문에, 그의 본질이라 할 수 있는 ‘검심劍心’이 흐트러진 상태다. 하지만 마력 회로는 교란되었을 뿐 건재하다. 마구잡이로 재정렬하는 과정에서 망가진 곳이 있지만 당장 팔 다리 휘두르고 검기 뿜어내는 것은 어렵지 않다. 다만 단전은 잡혀올 때 느꼈던 것처럼 전혀 반응이 없었다. 심장 언저리를 중심으로 쌓이고 회전하는 마력과는 달리 본인의 노력으로 쌓아올린 내력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데, 그가 모르는 영안전개 실패의 휴유증상이 있는 것이 분명해보였다. 단전이 있는 것조차 느껴지지 않는 걸 보니 단순한 내력 고갈은 아닌 것 같다. 마력이 점차 원활히 돌고 어지러운 것이 나아진다. 기본, 적색 마안.


“저놈들 잡아!”

“불부터 꺼!”


아까부터 소란하다. 아무래도 아티하가 아닌 다른 문제가 이 장원에 존재하는 것 같았다. 길을 잃었는지 마구 뛰어다니던 노예 몇이 이쪽에 왔다가 불타는 천막과 무너져 내린 담벼락을 보고 다시 왔던 길로 도망쳤다.


아티하는 적당한 쇠막대를 집어들고 장원에서 가장 높은 건물을 찾았다. 높은 곳에 올라 주변을 살필 요량이다. 최소한 풍경에 높은 산은 잡히지 않았다. 그가 눈에 보이는 가장 높은 건물을 향해 뛰어가는데 한 무리의 허름한 옷차림의 사람들이 금은보화가 분명한 것을 잔뜩 들고 달려가는 걸 마주쳤다.


“어?”


그들이 마구잡이로 들고 도망치던 재화 중 아티하의 가방이 있었다. 그들은 아티하를 경계해서 뭔가 하기도 전에 짐을 뺏겼다. 가방에 잘 묶여 있던 아티하 제검까지 되찾은 아티하는 그들을 돌아보지도 않고 웃는 얼굴로 목표로 한 전각의 지붕을 타고 올랐다. 사방이 연기다. 사방이 고함과 피 냄새다. 노예들이 주인들을 죽이고, 노예를 사러 왔던 자들은 오히려 노예처럼 짓밟힌다.


“와아.”


그런 감탄을 흘릴 수 밖에 없었다. 장원은 성벽이 없을 뿐이지, 하나의 성城과도 같은 규모를 자랑하고 있다. 불타고 있는 부분은 장원의 남부에 불과하다. 그리고 아티하가 가장 높다고 생각했던 건물도 장원 전체를 보면 중간 정도에 불과했다. 장원의 주변은 사막에 가까운 구릉 지형이다. 어디에서 와도 보이고, 어디로 가도 보인다. 지금까지 그가 주변 지형이나 장원의 규모를 파악하기 어려웠던 것은, 이 남부 구획이 비탈진 분지 지형이고 담벼락이 높아서 북쪽을 멀리 바라보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이봐 너! 가문의 살수들은 집합해서 서창(西廠)으로 가도록 한다!”


오와 열을 맞춰 뛰어가던 열명의 병사들을 이끌던 자가 아티하를 보고 외쳤다. 아티하는 본체 만체 했지만 그는 신경도 쓰지 않고 부하들과 가버렸다.


‘나를 같은 편으로 착각했나.’


하긴 지금 아티하는 엄청 더러웠지만 살수들이 입는 경장을 입고 있었고, 그럴듯한 검과 가방도 지니고 있다. 난리통에 주변을 정찰하는 살수로 보여도 아주 이상하진 않다. 아니 그렇게 깊은 생각을 할 인간은 여기 없을 거다. 불은 점점 다른 방향으로 번져나가고 있었다. 장원의 하인들인지 엄청나게 많은 사람이 분주하게 불을 끄러 돌아다니고 있었고, 병사들은 불 때문에 차마 구획을 넘어 오진 못하고 외부를 둘러 남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이미 남쪽의 가장 큰 문을 빠져나와 도망 중인 노예들이 보인다. 그들 중 일부는 마차와 말을 탈취했고, 대부분은 마구잡이로 뛰어가고 있다. 장원의 동 서 양편에서는 훈련받은 소수의 기병이 갈라져 노예들을 쫓고 있다. 시야가 제한적이라 그 이상은 보이지 않았다.


어느새 겁이 없어진 아티하는 더 높은 곳을 찾아 제대로 구경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그는 거침없이 지붕을 뛰어 넘어 북쪽 구획으로 향한다. 화려한 전각과 황금색, 토갈색으로 빛나는 지붕은 굳이 대입하자면 동양풍에 가깝다. 중앙의 가장 높고 거대한 탑을 중심으로 주변이 어디까지나 이 장원은 ‘시장’이라는 것을 주장하듯 넓은 빈 공간들이 다양한 양식의 천막들과 짐승들의 축사, 우리로 채워져 있다.


마력의 회복이 더디다. 내공은 여전히 움직이지 않는다. 하지만 몸을 빠르게 놀리는 데에는 아무런 지장도 없었다. 다만 ‘영안’ 이란 것이 그 개인의 세계를 개변시키는 만큼 본질적이므로 가끔씩 신경이 아닌 어떤 감각이 교란되어 환통처럼 느껴지는 건 있었다. 마안이 깜박인다. 전투를 피하는 건 선택사항이 아닌 필수사항으로 여겨졌다.


그는 모두가 화재와 노예 탈주에 정신이 팔린 사이 어렵지 않게 제일 높은 건물의 꼭대기에 도달했다. 여기서 본 풍경도 사방이 숲도 강도 없는 널따란 고원에서 변하지 않는다. 그새 노예들은 따라잡혀서 포박당하거나 잔혹하게 기병창에 꿰뚫리고 베여 쓰러지고 있었다. 말을 탄 자들은 꽤 잘 도망가고 있었고, 경기병이 능숙한 기마술을 가지고 그들과의 거리를 좁혀가고 있었다. 아티하는 그걸 보고 혼자 여기서 도망가는 건 자살행위라는 것을 깨달았다. 저 무리에 섞였으면 모를까 지금은 이미 늦었다. 그렇게 생각했는데 시선을 아래로 돌리자 엄청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장원의 서쪽 구획에서, 갑자기 엄청난 폭발이 일어난다. 아티하는 급하게 전각의 지붕을 구르듯 내려와야만 했다. 서쪽 구획 전체가 삽시간에 날아가고, 중앙에 있던 높은 전각들은 폭압이나 날아온 건물 잔해에 의해 대부분 윗부분이 날아갔다. 아티하는 다행히 폭압에 날려가기 이전에 바닥에 착지하는 데 성공했지만, 파편을 맞아 여기저기 찰과상을 입었다. 피부가 살짝 익은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다시 남아있는 탑을 올라 바라보니 장원 전체가 불타기 시작한 상태였다. 폭심지는 거대한 구덩이만 남기고 화마조차 날려버린 상태였다. 그 불이 장원 전체로 날려간 것이 문제였지만.


“퇴각 신호를 보내라!”


누가 외치고 나서 얼마 안되어 퇴각을 알리는 북소리가 이 구릉 전체를 울리며 퍼져나간다. 장원의 인력 전체는 노예들을 뒤쫒기보단 불을 끄는 것에 집중하기로 한 것 같았다. 이리저리 빠져나갈 길을 찾는 아티하의 눈에 동쪽에서 다가오는 모래구름이 보였다.


“사막에 부는 모래폭풍 같은 건가?”


아티하는 곧 그것의 정체를 확인할 수 있었는데, 통일되지 않은 복장과 무장으로 돌격하는 기병 무리는 마지막으로 들렀던 시장에서 언뜻 들었던 마적떼가 분명했다. 퇴각하던 기병, 보병 전단은 곧바로 마적떼를 향해 방향을 돌렸다. 장원에 거의 근접한 마적떼는 장원의 담벼락이 있음에도 전력으로 가속했다. 선두에서 달리던 한 사람이 워해머를 어깨 위로 들어올리는 것이 보였다.


소름이 돋는다. 아버지의 영안과는 전혀 다른 계열이다.


아티하는 그 먼 거리에서도 그 남자의 눈이 적갈색으로 빛나는 걸 알 수 있었다. 그것은 시각적인 것이기도 했지만, 아티하에게는 느낌으로 더 와 닿는다. 좋지 않다는 것.


“암리스 아티하!”


말에서 뛰어내려 말보다 더 빠르게 뛰어온 그자가 담벼락을 향해 워해머를 내리치는 순간 거대한 빛의 망치가 빛의 선으로 골격을 짜더니 엄청난 ‘질량’을 상정하고 내리쳐졌다. 영안이 사납게 세계를 짓이기려 마력을 행사하는 것이 아티하에게 그대로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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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유가 아니라 광대한 면적이 집이고 바위고 할 것 없이 납작하게 짜부라들어 지면 0.5m 아래로 주저앉았다. 충격과 반동에 주변의 지반이 전부 파도처럼 휘청이는 것처럼 느껴진다. 장원의 건물과 담벼락이 전부 지면과 함께 휘청하며 무너지고 쓰러지고 잘게 부스러졌다. 마적떼는 아무런 방해도 없이 진입해서 전속력으로 돌격을 감행한다. 그들은 무슨 원수라도 진 것인지,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전부 죽이면서 재물만을 탐욕스럽게 챙겼다. 잠시 기절했다가 반쯤 기울어진 탑 지붕에서 정신을 차린 아티하는 남자의 강대한 영력의 파동 때문에 자신의 영혼 균열이 오히려 인지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심장 언저리의 환통은 무척 아프지만, 마력회로가 정상작동하는 것이 느껴진다. 단전 역시 공허감이 오는 것을 보니 어떤 고장에서 회복한 것 같다. 감각이 이제야 구체적이고 정확해졌다.


추노에서 돌아온 장원의 대병력이 마족의 뒤를 쫒는다. 그들 역시 급하게 장원으로 돌입해서 난전에 임한다. 기사 한명이 내지른 창격이 아티하가 의지하고 있던 탑 옆구리를 완전히 날려버린다. 그 일격에 수십의 마적떼가 그대로 피보라가 되어 사라지지만, 외려 그 일격의 대상인 워해머(?)는 맨손으로 그 첨단의 관통력을 쳐내고 달려들었다. 그가 내리친 워해머에는 아까같은 거대한 것은 아니지만, 여전히 막대한 마력이 뭉쳐 넘실거리는 퇴강(槌剛)이 맺혀있다. 게다가 놈은 공격이 빚나갈 것을 알면서도 일부러 지면을 내리쳐 전장 자체를 자신이 장악하고 있었다. 영안 전개 직전 수준의 기사 넷이 그런 그를 저지하려 달려들었다. 하지만 공격을 막아 흐름을 끊으려던 방패가 직격 한방에 피떡이 되어버리자 나머지 셋의 공조는 금세 흐트러졌다. 처음 창격을 날린 기사가 엄청난 수의 창영을 만들어내며 ‘반개한 영안’으로 아티하급 마창격을 준비하려 했지만, 나머지 둘이 시원찮았다. 한명은 망설이다 동료들을 모두 버리고 도망쳤고, 나머지 하나는 적의 기세에 압도되어 피떡이 되어버린 동료를 붙잡고만 있다가 워해머에 두 번째 피떡이 되어버렸다.


“크하하! 여긴 모두 약골밖에 없나?”


마력이 몽실몽실 기사에게 몰려들지만 워해머의 안중에는 없는 듯 하다. 아티하는 싸움 구경도 좋았지만 자신이 휘말리기 전에 좀 더 멀고 높은 반파된 탑 지붕으로 옮겼다. 그런 그는 갑자기 옆에 누가 서서 창을 들고 있는 걸 보고 깜짝 놀라서 아래로 떨어졌다.


“받아라! 모래바람 부는 위에 시름 한 결, 사구도 꿰뚫는 무의미의 변환이여! 레밍 아티하!”


짙은 황색 마력이 집약하여 물량으로, 막대한 양의 창기를 뒤집어씌우고, 가운데 되다 만 강기를 엮고 엮어 마검격의 이념을 더해 ‘관통’의 이념을 구체화한다. 여전히 느긋하게 맞받아 칠 준비를 하던 남자는 갑자기 폭발적인 마력을 뿜어내며 방금 전까지 아티하가 있던 방향을 올려다보았다. 떨어지던 아티하는 건물 벽에 검을 박아 추락을 면하면서, 그는 느낄수도 없이 은밀하게 올라와서 창을 던지는 창수를 보았다.


간단한 투창, 그러나 아름다웠다. 아티하는 본 순간 저게 마력으로는 형용할 수 없는 무리가 들어간 그 어떤 것이라는 사실을 이해했다. 겉으로는 어떤 마력적 흔적도 볼 수 없는 창은 고색창연한 모습 그 자체로 예술품이 분명하다. 창신 전체에는 빠짐없이 강기와 버금가지만 은밀한 고압축의 마력이 연결되었다. 그렇다. 그것은 쏘아낸 그 순간마저도 창수와 연결되어 있었다.


“미친! 스웨거 아티하!”


지금까지의 워해머가 면이었다면, 워해머의 뒤 끝 날카로운 포인트를 올려쳐 쏘아내는 그것은 점에 모든 질량을 압축시킨다. 양 마검격은 보이는 것보다 빠르게 서로를 쳐냈다. 워해머는 워해머를 부여잡고서 굴러서 마침 날아오던 레밍 아티하의 일점을 급하게 워해머의 쇠뭉치를 붙잡아 막아냈다. 망치를 박살내지 못한 대신, 마검격은 틀림없이 경로에 있던 사내의 내부를 진탕시키며 귀 하나를 날려버리는 것에 성공했다. 정작 피를 토하며 그러한 마창격을 쏘아낸 기사가 어이없다는 듯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비겁하게 협공을!”

“누가 비겁하다는 거지?”


어느새 지면으로 내려와 다시 창을 꼬나 쥔 창수는 중년 정도의 여성 목소리를 냈지만 얼굴과 몸은 일체 드러내지 않았다. 아티하는 담벼락에 붙어서 몰래 그 싸움의 끝을 보았다. 워해머를 세차게 들어올려 다시 자세를 잡은 사내는 이번엔 방심하지 않고 영안을 최대치로 전개한다. 무거운 영압이 아티하의 어깨를 내리눌렀다. 반대로 창수 여인은 두건 아래 보랏빛 영안을 깜박이면서도 얼굴도 어떤 기세도 보여주지 않았다. 그 자연체?에 사내는 좀 질린 것 같았다. 기사가 헐떡거리면서 어떻게든 걸어와 말을 한다.


“귀 귀인의 도움에 감사드립니다...”

“딱히 자네를 위한 건 아니었지만.”


여자는 창을 들지 않은 손을 들어 그를 향해 흔들어 보였다. 물러나라는 신호다. 기사는 그것을 곧 알아듣고 바로 물러났지만, 아티하처럼 싸움의 행방을 확인하고 싶은 것 같았다. 두 사람이 그렇게 대치하고 있는데, 쌍 곡도를 쥔 마적 한명이 급하게 달려와서 워해머 옆에 섰다. 그 역시도 불길한 회갈색 영안을 낮게 치뜨고 있었다.


“이 여잔 뭐야? 창방의 뒷방 늙은이같은데?”


그 판단이 너무 아티하랑 똑같아서, 그는 피식 웃고 말았다. 누구도 신경쓰지 않았지만.


“글쎄, 네놈과 내가 협공해도 이길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군.”

“무기 차이도 있겠다. 단장이라면 모를까 나도 느낌은 나쁘다.”

“적당히 털었으면 물러나지?”

“좋아 그렇게 지시하지.”


하지만 여자는 차가운 목소리로 선언한다.


“제국의 2급 중범죄자 샤말 갈튼, 주요 죄명은 민간인 학살 그 외 생략한다. 제국의 2급 중범죄자 해래스 나비악, 주요 죄명은 범단 조직과 조직원 모집 외 다수 마찬가지로 생략한다. 그러므로 두 명 다 즉결 처분, 사형을 언도한다.”

“미친 년 아니야?”

“스벌 내가 우스워보여?”


두 사람이 갑자기 격분해서 여자에게 달려든다. 정체가 갑자기 드러나서 황망한 마음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티하는 어쩐지 여자가 너무 쉽게 이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후발선제의 묘리, 뱀처럼 파고드는 창의 ‘공간 접기’, 그리고 무언가 – 강기, 호신강기 모두 쉽게 뚫어버리고 한 개체를 부정하는 무시무시한 어떤 것.


“어?”

“에?”


다음 순간 심장에 구멍이 난 두 남자가 의문에 가득 찬 눈을 감지도 못하고 지면에 차례로 스러졌다. 시체는 곧 녹듯이 부스러져서 사라졌다.


“장원의 주인에게 전해라. 창방에서는 단순히 지명수배된 범죄자를 발견하여 즉결처분 했으며 오늘 여기 있던 일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이후로 내가 관여할 일도 없을 것이다.”

“허 허어억! 네 알겠습니다!”


기사는 그 창에서 무언가를 깨달은 것 같았다. 거의 절하는 것처럼 엎드려서 대답했다.


창수는 아티하가 숨어서 보고 있던 쪽을 흘깃 바라보더니 곧 빠르게 몸을 띄워 어디론가로 가버렸다. 아티하는 그 일방적인 유린에서 뭔가를 배우진 못했지만, 떠나간 그 여자가 창방의 장로 중 한명이라고 확신했다. 그렇다고 그의 상황이 뭔가 달라지진 않았지만.


-


그 밤과 다음날 역시 화재를 진압하는 것으로 하루가 꼬박 지나갔다.


결과적으로 말하면 그 시도는 실패로 끝이 났다. 장원은 전소에 가까운 피해를 입었으며, 중앙의 전각은 간신히 지켰으나 마적들의 습격에 의해 무너진 것이 반이였다. 가장 큰 문제는 장원에 머무르고 있던 상인들을 비롯한 여러 인력들이 지낼 공간도 식량도 식수도 부족해졌다는 사실이다. 판단력이 빠른 사람들은 훗날을 기약하고 빨리 그 곳을 떴다. 그 결정도 쉬운 것은 아니었다. 아티하가 외부에서 볼 때에는 알 수 없었지만, 이 몰락한 것이 분명한 장원의 주인과의 관계 악화나 아직 주변에 머무르고 있을지도 모르는 마적떼에게 다시 약탈당할 위험도 생각해야만 했다.


하지만 아티하가 중앙 구역(이라지만 이제 여기만 담장과 건물이 존재했다)에서 여전히 호사 비슷한 식사를 누리는 높은 나리들의 주방을 털며 간간이 버티고 있던 것도 이틀, 수뇌부는 장원에 있던 거의 모든 병사들과 하인들 그리고 상인들을 내보내기에 이르렀다. 그것은 사실상 내쫒았다고 봐도 무방할 처사였다. 갈 곳도 없고, 여비도 없고, 준비한 식량도 없는 사람들을 그냥 광야와 사막 가운데로 밀어넣었다.


이 장원이 비축한 물품이 오랫동안 버틸 수 있을 정도의 인원만 남기고 모두가 장원을 떠났다. 사병으로 근무하던 자들 역시도 제대로 임금도 받지 못하고 떠나가야만 했다. 그래도 그들은 수통과 비상식량 몇 끼 정도는 받을 수 있었다. 그 수많은 인원이 약탈을 생각하지 않은 것도 아니었고, 아티하처럼 도둑도 많았지만 그럼에도 대대적으로 들고 일어나지 못한 것은 장원의 지배세력이 여전히 강력한 마검사나 기사들을 곁에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 습격에서 창방 장로(?)의 창술을 보고 깨달음을 얻은 창수는 아무래도 벽을 뚫고 창강을 쓸 수 있게 된 것 같았다. 밤중에 강기를 휘두르는 것을 아티하가 봤기 때문이다. 전의 어설픈 따라하기가 아니었다.


화재에 고생하고 탈진한 자들이나 화상을 입어 당장 거동하기 어려운 자들은 장원 밖에서 아무렇게나 방치되어 죽어갔다. 대부분은 여행짐을 챙겨 화재 이후 사흘째에 출발했는데, 대부분은 가장 가까운 성이 있는 서쪽으로 향했다. 아티하도 식량과 물을 챙겨 쫒겨난 병사인척 하며 그들과 함께 움직였다. 노예가 되기를 거부하고 이 곳을 빠져나가려 생각했지만 이런 식으로 일이 흘러갈 줄은 전혀 생각도 못했다.


만약 그 때 그 창방 장로에게 동행을 요청했다면?


‘될 리가 없지.’


그가 누구인지 알고 데려가겠는가. 쓸데없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일주일 간, 수많은 사람들이 길에서 쓰러졌다. 아티하는 개중 어린아이들이 쓰러지면 음식과 물을 조금 나눠주기도 했지만 곧 포기했다. 다른 사람들도 달라고 해서 검으로 위협해서 쫒아내야 했기 때문이다. 평소에도, 잘때도 자신의 식량과 물을 노리는 자들이 많아졌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리고 간신히 기운을 차려 다시 걷기 시작한 아이들 대부분은 얼마 버티지 못하고 다시 쓰러졌다. 아티하 또래의 청소년들 역시 강하지 못했다. 그는 그제서야 깨닫는다. 자신이 얼마나 말도 안되는 육체를 타고 났는지. 그 자신이야말로 최악의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 하루에 물 한모금, 건량 한 조각씩만 먹고 있었기에 알 수 있었다. 그마저도 없는 사람보단 나았지만.


결국 이렌시아가 아닌 제국 동부 어딘가의 성에 도착했을 때 살아남은 사람은 50여명에 불과했다. 아티하는 어차피 신분이 불확실했기 때문에 곧바로 이렌시아로 돌아가는 길만 물어서 다시 여정을 떠났다.


작가의말

정성을 들여 쓰기보다는 뭔가 쓸 수 있는 걸 쓰자는 느낌입니다. 저의 특성상 힘이 빠지기 전까진 점차 필력이 좋아지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넉다운 될겁니다. 그러지 않도록 노력하며 이번 연재 이어나가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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