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햄스터가 살아있다면 희망은 있어

아넨티어 2부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무협

햄스터살려
작품등록일 :
2016.12.28 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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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1.19 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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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2 2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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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쪽

아티하 9

2부의 주인공은 1부의 주인공들과 밀접한 연관성이 있습니다.




DUMMY

아티하가 날뛴 덕분에 남은 사람은 정확히 스무명이었다. 아티하는 다른 마물들과는 다르게 바로 흩어져 사라지지 않는 초비오크의 사체를 바라보다가 마굴로 다시 눈을 돌린다.


“수고했네. 이것도 인연인데 끝까지 함께 하지 않겠나? 내 이름은 칼슨일세.”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은 조연 같은 이름이군요. 따라오는 건 막지 않겠습니다.”

“우 우리도 데려가게!”


악담에 가까운 대꾸에도 칼슨은 쓴 웃음만 짓는다. 진짜 이름도 아닐 것이란 생각을 한다. 아티하와 칼슨의 무위를 눈여겨 본 노병이 자기를 따르는 병사들과 함께 바닥에 피와 살점와 함께 나뒹굴고 있던 군장을 챙기며 그의 옆에 붙었다. 아티하는 대꾸도 하지 않았지만 칼슨은 금세 그들과 어울리기 시작했다. 정작 초비오크를 상대할 때는 아무런 도움도 안 되다가 마인들에게 반 이상이 찢겨 죽은 범단 무리는 붙지도 못하고 따로 행동하지도 못하고 눈치만 보고 있었다. 먼저 그들에게 손을 내밀 정도로 아티하가 착한 녀석은 아니었다.


“그럼 가죠. 먼저 간 놈들이 성공할 거란 생각은 안하지만 이 중력속에 계속 있는 것도 바보같으니까.”


아티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먼저 짐을 들고 출발했다. 뒤늦게 화상을 입은 전신 특히 손이 쓰라려온다. 하지만 아티하는 평소에 치료 관련의 마법이나 신비에 관심을 두지 않아서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단순히 고통을 참는 것에는 자신이 있었기 때문에 전투에 문제가 되진 않았지만, 이대로 놔두면 감염되는 것은 둘째치고 손이 문드러져서 검이 손아귀에서 미끄러질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의 육체가 아무리 회복력이 빠르다고 해도 이 지옥같은 환경에선 그마저도 상쇄되어 다시 보통이 되어버리고 만다. 오랜 시간을 들여 이 시련을 이겨낼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겠다고 그는 결정했다.


“어쨌든 살았네.”


그는 누구도 들리지 않게 작게 중얼거리고 뒤를 잠깐 돌아보았다. 어차피 기성품이었던 검집을 찾는 것은 아니다.


동굴 안으로 들어갈수록 중력마법이 약해지는 게 확실히 체감되었다. 대신 아까 마물들을 가득 마주하고 있을 때만큼은 아니었지만 점점 숨 쉬기 어려워지는 것이 느껴진다. 공기에 산소 농도가 떨어지고, 폐에 안 좋은 유독물질 함유량이 올라간다. 악의가 머릿속에 천천히 스며들어온다. 아티하의 정신은 그야말로 탈인간이라 할까 비인간이라 할까 검술이 완성되지 않은 상태에서도 강력한 방어와 견고함을 자랑하는데, 그런 그가 지속적으로 짜증과 살의를 느낄 정도라면 이 지옥에서 올라오는 악의란 단순한 마법적인 효과로 생각할 수 없었다. 이 역시 부정적인 의미에서 ‘신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아티하 본인조차 살면서 이렇게 금세 마굴 그리고 마귀를 경험하게 될 줄은 몰랐지만, 일단 살았다는 안도감이 그의 마음 한 구석을 따뜻하게 물들이고 있었다.


-


병사들과 범단의 깡패들, 대검을 든 칼슨과 있는지 없는지 알기 어려운 살수 그리고 아티까지 한 무리는 가장 넓은 동굴 입구로 그대로 들어갔다. 마물의 습격은 없었고 불쾌감은 조금씩 강해졌지만 중력 마법은 갈수록 약해져서 백걸음도 걷기 전에 몸이 가벼워졌다.


“잠깐 쉬고 가지.”


병사들의 지휘자인 노병이 제안했다. 아티하 역시 재정비의 필요성을 느껴서 적당히 주저앉았다. 마굴이라곤 하지만 아직 초입에 불과한 이곳은 마굴의 가장 큰 특징인 ‘지옥화’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 많은 마물이 지나갔다는 것을 알기 어려울 정도로, 아무 흔적도 남아있지 않은 차가운 동굴이다. 다만 좀 건조하고 동굴 벽 전체가 이유를 알기 어려운 빛을 내어 그리 어둡지 않았다.


손의 붕대를 벗겨내자 아무렇게나 짓뭉개져 진물로 번들거리는 살덩어리가 보인다. 근육과 뼈가 멀쩡한 것이 신기할 정도다. 이러는데도 고통의 정도는 손에 고춧가루를 가득 묻히고 비벼댄 정도의 화끈함이라니, 통증 때문에 정신을 놓는 것보단 낫지만 역시 이상하다.


곧 아티하는 자신이 이 통각을 스스로 제어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자신이 아닌 아티하의 피가 뇌의 어떤 부분을 자동으로 제어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아티하는 그것에 대해 이론적으로도 실전적으로도 잘 알지 못했다. 많이 공부했다 자신했지만 여전히 공부할 것 투성이였던 것이다. 그는 새삼 너무나 멀리 있는 자신이 버리고 온 집이 그리워졌다.


정말 의미가 있을까 생각하면서도 가져온 물과 가방 속의 조악한 외상약으로 응급조치를 한다. 붕대로 손가락 하나하나를 전부 감아버리자 손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결국 그는 오른손에 검을 움켜쥔 채로 붕대를 감아버렸다. 힘이 들어가지 않는 것은 아니었으니 검을 자유로이 놀리는 것에는 조금 방해가 되겠지만, 살갗이 미끄러져 놓치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일행은 곧 다시 일어나 마굴의 핵이 있을 중심부로 향했다. 그들은 마굴의 중심 대로가 되는 가장 큰 굴을 통해 걸었기에 길을 헤매지 않고 곧장 중심으로 향했다. 갈수록 공기가 뜨거워진다. 두통 혹은 살의 그리고 증오와 분노에 대한 자극은 조금씩 강해졌다. 유황 연기가 너무 독해서 대부분은 물을 적신 천을 호흡기에 둘렀다. 도망치는 조그만 마물을 몇 마주치며 전진한지 두시간 정도, 갑자기 바람이 불어왔다.


그 바람은 모두가 느낄 수 있을 만큼 거셌지만 그뿐이다. 다만 바로 다음 순간 두통과 머리를 쑤시던 부정적인 감정이 아무런 전조도 없이 사라졌다. 유황냄새는 여전하지만 공기가 빠르게 식는다. 동굴 여기저기서 계곡을 이뤄 흐르던 용암이 열기를 잃어간다. 아티하가 무언가를 파악하기도 전에 갑작스런 파육음이 여럿 들려왔다.


범단 무리가 숨겨둔 칼을 들어 병사들을 뒤에서 쑤시고 있었다. 그들은 아티하와 눈이 마주치더니 황급히 동굴의 다른 골목으로 도망친다. 칼을 맞지 않은 병사(라지만 어디까지나 죄수다)들이 그들을 따라가려다가 쓰러진 동료들을 살핀다. 모두 살기 어려운 치명상이었다.


“우...이 이것을 우리 집에...”

“이 바보 새끼야! 정신차려! 그건 네 손으로 직접 갖다주란 말이야!”


그런 대화도 오가지만 남은 병사들 특히 노병은 칼슨과 아티하 그리고 살아남은 살수들을 모두 경계하고 있었다. 아티하는 그제서야 마굴이 정확히는 지옥문이 사라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선행한 누군가가 제거한 것이다.


그럼 이제 남은 것은 배틀로얄밖에 없다. ‘공개처형’에서 반드시 3명만 살려주는 경우는 별로 없었다. 어디까지나 ‘공개처형’은 실제적인 형벌 집행이 아닌 귀족들의 유흥거리였기 때문이다. 이렌시아의 경우에는 앞서도 알았듯이 제국과의 여러 가지 정치적인 거래가 관련되어 있었지만, 본질적으로 볼거리를 제공한 생존자가 상품처럼 누군가에게 구매되어 살아나가는 것도 드문 일은 아닌 모양이다. 물론 3명이 아니라 한명만 살아남거나 모두 죽는 경우도 부지기수였지만...


아티하는 이 병사들이야 순식간에 도륙할 수 있었지만, 옆의 칼슨이라는 사내가 신경이 쓰였다. 물론 질 것이란 생각은 들지 않았지만 아직 마굴 속에는 마인들이 있고, 선행해서 마굴을 토벌한 실력자들도 있다. 공기는 여전히 역했고, 마력의 수급은 원활하지 않다. 마굴이 마굴이 아니게 된 순간부터 정신적인 저주에서는 벗어났지만, 물리적인 환경이 삽시간에 변화하는 것은 아니다. 그가 마음이 약해서든, 계산적인 것이었든 결정은 빨랐다.


“아무도 따라오지 마. 죽여버릴 테니까.”


그리고선 아티하는 걸음을 빨리해서 마굴 안쪽으로 들어가는 다른 넓은 통로를 택해서 그 자리를 벗어났다. 뒤에서 별다른 소음은 들리지 않았다. 다행히 따라오는 사람도 없었다. 그는 자신이 ‘사람의 마음’을 억제하고 있지 못하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그가 매일 말하던 ‘검의 마음’으로 자신을 지키지 못하고 있던 것이다.


-


운이 나쁘게도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서 마굴 바깥쪽으로 나오던 8명 구성의 일행과 마주쳤다. 활1, 나머지는 모두 창과 검. 그는 코너를 돌다가 그들과 마주치자마자 곧장 도주를 선택했다.


탐색 마안 전개, 전 방향 탐지.


눈이 푸르게 물든다. 아티하는 곧 뒤통수를 향해 날아오는 화살을 ‘안 보고’ 피해낸 뒤 가장 가까운 어디로 향할지 모르는 좁은 굴로 뛰어들어갔다. 서서 걷기 어려운 낮고 좁은 통로였다. 놈들의 소리를 듣지 못한 건 의외지만 이 굴에서 나는 바람소리나 이미 전개된 탐색 마안이 굴이 막히지 않았다는 것을 알려주었기에 망설임은 없었다.


“쫓아! 죽여야해!”


놈들은 곧장 무기를 들고 그 좁은 굴 속으로 비집고 들어왔다. 마굴의 지옥화가 끝났음에도 이 빌어먹을 동굴의 자연발광은 그대로다. 좁은 통로임에도 명암과 윤곽은 전부 구분이 될 정도의 밝기였다. 아티하는 열심히 도망치다가 아주 완벽하게 1대 1 구도로밖에 설 수 없는 좁은 통로에 이르렀다. 그는 기다렸다가 막 들어와 그를 마주치고 당황한 남자에게 그대로 검을 휘둘렀다. 그는 허무하게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죽어 쓰러졌다.


“한 놈이 죽었어!”

“죽여야 해!”


놈들은 차례대로 들어와 시체를 밟고 넘어졌다가 죽고, 달려들다가 동굴 천장에 안면을 박고 비틀거리다 죽고, 간신히 들어왔다가 일방적으로 난자당해 죽었다. 뒤에서 비명소리가 막 들려서 다시 앞으로 나아가보니 지들끼리 찌르고 베고 난리도 아니었다. 맨 뒤에 있던 자가 창으로 한때 동료였던 사람들을 마구 쑤시는 것이 보인다.


“끄으윽! 살려줘!”


이미 배때기에 구멍이 크게 나서 살 수 없는 것이 분명한 자가 자비를 구걸했지만 창수는 그걸 외면하고 앞으로 나아오다가 아티하가 벌인 살극을 보고 갑자기 돌아서 도망치기 시작했다. 아티하 역시 자신의 발을 붙들려는 놈들을 내버려두고 추적하는 입장으로 바로 돌아섰다. 결국 도망자는 은밀하게 따라잡혀서 단칼에 목이 날아가고 말았다. 빠져나오자 아까의 그 골목에 활잡이와 비교적 무장상태가 좋은 검사가 방패까지 들고 서 있다.


“에잇 한심한 놈들! 이 몸께서 직접 나서게 만들다니.”

“조심해요 오르칼!”

“걱정말라고 루희!”


아티하는 처음 마주했던 화살이 좀 허접했던 것과 별개로 이상하게 여자에게서 좋은 느낌을 받을 수 없었다. 가까이 해서 좋을 게 하나도 없는 어떤 감이다. 물론 아직도 켜진 탐색 마안에는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다. 죄수복에 상체만 간신히 경갑을 두르고 활과 화살은 좀 좋아보인다. 화살은 5개에 불과하다. 남자가 기합을 지르며 달려오지만 젋다는 것, 그리고 어느 정도 체계적으로 군사 훈련을 받았다는 것 외에는 그다지 위협적이진 않았다.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신기할 정도다. 아티하는 몇 번 성의없이 칼을 피해주다가 아주 잠깐 검기를 입혀 방패와 갑옷째로 놈의 심장을 뚫어버렸다.


“이 이!”


폐까지 꿰뚫린 것인지 피거품을 내뿜으며 그대로 엎어져 절명한다. 그의 죽음에는 아무런 감흥이 없었지만, 눈 앞에 남아있는 여자가 전혀 감정을 보이지 않는 것에는 조금 소름이 끼쳤다. 여자는 활을 들려고 하지도 않았고 아티하를 무시하는 것처럼 쳐다보고만 있었다.


마안 – 전투 분석


푸른색이던 눈동자에 붉은 색이 스며들어와 보라색으로 물든다. 긴장이 풀린 상태. 근육 역시 전부 이완. 근육량은 활잡이라고 보기엔 적다. 체내를 순환하는 마력 역시 일반인보다 조금 나을 정도. 아티하는 더 확인할 수 있는 정보가 없었기에 곧 마력의 소비를 그만두었다. 여자는 여전히 그에게서 시선을 떼진 않았지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재미없다는 듯 시위를 튕기고 있다.


“음...”


아티하는 이런 기분은 처음이었지만, 기분이 너무 더럽고 느낌이 좋지 않아서 물러났다. 이윽고는 결국 그녀를 곁눈질하며 왔던 길로 다시 돌아갔다. 다시 병사들과 칼슨을 만나는 한이 있더라도 그녀를 피하는 게 좋겠다는 감이 왔기 때문이다. 여자는 따라오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겁을 먹었다는 사실을 인정하진 않으면서 ‘여자는 가능한 죽이지 않는다.’라는 변명으로 자신을 속이고 말았다.


결국 병사들과 칼슨을 두고 헤어진 장소로 돌아왔지만 아무도 없었다. 아티하는 잠시 고민하다가 처음처럼 가장 대로를 따라 심부로 향했다.


얼마 가지 않아서 점점 전투의 소음이 크게 들려왔다. 통로는 갈수록 좁아지더니 초비오크가 간신히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좁아졌다. 그 관문을 지나자 아티하의 입에서 자신도 모르게 감탄이 나왔다. 지금까지 보아왔던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한 빛이 동굴 천장 전체에서 내리꽂히고 있었다. 야명주는 물론 온갖 빛깔의 수정과 마력석이 사방에 흐드러지게 박혀있다. 그 아름다운 수정동굴의 거대한 공동 안에는 사라지지 않는 마족들의 시체와 인간들의 시체가 백수십 널려있었다. 당연히 바닥은 영롱한 천장과 대비되어 피와 살점, 내장으로 오염되어있다. 금속이 부딪히고 피륙이 터지는 소리는 좀 더 안쪽에서 나고 있었다. 아티하는 직감적으로 여기가 마굴의 중심인 지옥문이 열려 있던 장소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인간들이 대부분 자기들끼리 싸우다 죽었다는 것도 유추할 수 있었다. 마족들은 별로 강해보이지도 않았고 그 시체가 인간들의 시체 밑에 깔려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공동에서 조금 더 들어가 있던 석실은 인공적인 손길이 닿아있는 것이 분명했다. 반듯한 돌벽과 천장하며, 동굴의 야명주를 떼서 설치한 조명장치 하며. 그 백평 정도 하는 공간에선 칼슨이 한 팔이 날아간 채로 칼을 들어 마인들과 싸우고 있었다. 병사들은 모두 으깨져 육편이 된지 오래였다. 살수 하나가 살아서 칼슨을 돕고 있었기에 마인 둘을 상대로 아직까지 버티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나머지 마인들은 보이지 않았다.


아티하는 어떠한 고민도 없이 가세했다. 칼슨은 팔이 뜯겨나갔음에도 혈색이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그를 보고 말을 걸 여유는 없었다.


마안 전개 전투 전용 초집중 검기의 성격 조정 최대출력 효율 나쁨


검붉은 색이 동공과 홍채를 채우자 아티하로부터 섬뜩한 마력압이 뿜어져 나왔다. 마인들 역시 새로 나타난 적을 맞이했다. 놈들의 흉악한 마력이 담긴 권장이 아티하의 목을 잡아 뽑으려 덮쳐온다. 검과 육체가 부딪혔다고는 믿기 어려운 폭음이 터져나왔다. 아티하는 분명 검을 통해 얕게 베는 감각을 느꼈지만, 힘 싸움에는 밀렸기 때문에 형편없이 뒤로 날아갔다.


“푸확!”


충격의 반동이 동굴 벽에 등을 부딪히며 밀려온다. 위액과 피 약간을 토해낸 아티하는 지체없이 벌떡 일어나 다시 달려들었다. 전력으로 휘두른 검이 다시 마인의 주먹과 부딪힌다. 베어내지 못하지만 이번에는 적어도 날려가진 않았다. 아티하의 적안이 마인들의 탁한 마안을 마주한다.


“키햐아아아아아아아!”


마인이 지지 않겠다는 양 괴성을 지른다. 이성보다 본능이 그를 지배하고 있다. 양 팔 중간 언저리부터 시작해 손에 이르러 짐승의 발톱과 같은 형태로 불안정하게 뭉친 수강이 마력의 푸른 빛과 탁한 마기의 갈색과 흑색이 섞여 일렁인다.


아티하는 자신의 검이 ‘강기’에 의해서 부러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 자신이 강기를 뽑아내지도, 버텨내지도 못한다는 것 역시 알았다. 그럼에도 전혀 물러서지 않는다.


크게 내딛어 다시 거침없는 참격, 마인은 그걸 또 피하고 달려들어 수강으로 다시 목을 잡아 뜯으려 휘둘렀다. 아티하는 영거리에서 그대로 검을 위로 그어 몸 전체를 쳐낸다. 마인은 왼손의 수강과 단단한 몸으로 검을 받아낸다. 물리력에 붕 뜨면서도 악착같이 있지도 않은 꼬리를 만들어내어 지면에 박아서 그대로 다시 지면에 낮게 엎드려 곧장 달려든다. 아티하 역시 몸을 낮게 숙여 발도세로 베어낸다. 양측 모두 빗나갔지만 그 잠깐의 검과 권의 충돌로 다시 형편없이 반대방향으로 나뒹군다. 자세를 회복하지 못한 아티하에게 마인이 덮쳐들어 발톱과 꼬리를 마구 내리친다. 아티하는 왼손으로 검신을 받쳐서 휘청거리면서도 그 하나하나를 그대로 받아내지만 몸에 데미지가 쌓인다. 마인이 양손을 겹쳐 모아 내리치는 순간 옆으로 굴러 빠져나온다.


“아키브 라티넨!”


시뻘건 검기에 다시금 마력으로 일구어진 검붉은 검기가 덧씌워진다. 바닥을 내려치고도 곧장 자세를 회복한 마인에게 다시 일검을 날린다. 검의 막대한 내구도덕분에 다시 몇합이 지나간다. 아티하의 검은 수강을 깎아낼 순 없었지만, 강기에 먹히거나 완전히 갈려서 풀려나가지도 않았다. 하지만 마인의 몸에 남은 건 자잘한 찰과상에 불과했다.


“이브티카엘-”


초속의 내질러지는 검이 마인의 어깨에 맞고 튕겨나온다. 외려 빠르기가 늦어 틈을 내주고 말았다. 마인의 수강을 품지 않은 오른손이 아티하의 멱살을 잡는다. 아티하는 오히려 놈의 멱살을 마주 잡아 거리를 줄이고 좌수에 내기를 담아 그대로 비어버린 좌측 흉부에 때려박는다. 기본적인 발경.


“쿠훼에에엑!”


아티하는 그런 이상한 비명소리를 내지르며 마찬가지로 좌측 갈비뼈가 두 개 반은 부러졌다는 느낌과 함께 천장까지 치솟았다가 떨어진다. 잡혔던 멱살은 가슴팍의 피부가 통째로 뜯겨나가고 죄수복 상의는 아예 가루가 되어버렸다. 정신이 나갈 것 같았지만 겉으로는 멀쩡해보이는 마인이 마구 발광하며 낙하지점으로 떨어지는 것이 보인다. 하지만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대로 발목을 잡혀 지면과 벽에 마구 내동댕이쳐진 끝에 다시 마주 잡는답시고 목을 붙들었다가 그대로 ‘사이드 워크 슬램’!


“푸훼에엑!”


이번엔 분명히 척추가 부러졌다. 그렇게 가물가물 시야가 흐려지는...


-


놈이 끝장을 내려는 순간 아직도 아티하의 손에 징하게 묶여있던 아티하 제검이 곧추세워졌다. 하필 내리치려던 손이 검을 수직으로 내리치는 셈이 되어 한방을 막았다. 하지만 놈은 곧 발로 아티하의 배를 걷어차 다른 마인 쪽으로 날려버렸다. 아무리 아티하가 튼튼하다지만 갈비뼈가 뿌러지고 척추(?)가 부러지고 내장이 터져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근사 영안, 전투 속행의 강제 수복 – 긴급


갑자기 감길랑 말랑 하던 아티하의 눈에서 본인은 한번도 시도해본 적도 없고 알지도 못하는 청량한 녹빛이 뿜어져나오고, 후속타를 날리려 다가오던 (마인이란 놈들은 적이 회복할 틈을 기다려주는 착한 놈들이 아니다) 놈은 그 광채가 스러지며 뿜어져나온 마력압에 잠시 눈을 가리며 물러섰다. 마인들이 제일 싫어하는 가장 순수한 정화의 불꽃과 비슷했기 때문이다.


팔 다리에 실 달린 인형처럼 갑자기 일어난 아티하는 좌안이 아예 안보이는 것을 확인하면서 피가 섞인 기침을 몇 번 했다. 여전히 부러지고, 여전히 터져있다. 하지만 몸이 움직이는 걸 느낀다.


그는 공포를 느꼈지만, 그 때문에 몸이 굳진 않았다. 하지만 방금 일어난 그 황당한 자신에게 일어난 일은 무엇이란 말인가? 오히려 그게 더 무서웠다. 어쨌든 몸이 움직인다. 죽는 건 두렵지 않았지만, 자신에게 일어난 무언가를 모르고 또 다시 쓰러지는 것은 억울했다.


광기다. 하지만 지금처럼 싸워서는 아까의 재방송이란 것은 깨닫는다.


아티하의 달라진 기도를 느꼈는지 마인은 다시 수강을 키워 한방에 해치울 준비를 한다. 아티하는 한줌의 내공이 남은 것 이외엔, 방금의 무언가 때문에 마력이 하나도 남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무얼 할 수 있지? 아니 놈을 죽지 않고 죽이려면?


알고 있는 마검격이 일제히 정렬, 기각.

남은 내공으로 할 수 있는 절초들과 실전 적용을 구상, 기각.

가진 건 아티하 제검 하나뿐. 레슬링 기술은 우습게만 생각했는데 아직도 허리가 끊어질 것 같다.


“응?”


그는 반사적으로 마인의 주먹을 피하면서 남은 내력을 모두 발 끝에 집중해서 경공을 전력으로 펼친다. 마인은 겁 없이 달려들던 아티하가 갑자기 엄청난 속도로 공격을 다 피해내자 더욱 화난 듯 괴성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벽을 등지고도 이리저리 피하는 아티하의 뒤로 동굴의 벽이 마구 파이고 부서진다. 아티하는 반짝인 생각이 정말 통할까 의심하면서도 계속 피하기를 반복했다. 홍문파에서 발가락이 부러져라 배운 초상비는 먼 옛날 마교 계열에서 파생된 귀신의 움직임을 흉내낸 사이한 경공들 다음으로 내력 소모가 적다. 남은 내력이 한줌 뿐이더라도 집중하면 모두 피해내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의 싸움방식은 아니지만, 지금은 인정해야했다. 자신은 자신보다 강한 야수를 사냥하고 있다.


뛰어다니면서 오른손의 붕대를 마구 잡아뜯는다. 그새 완전히 박리되어 보기 힘들 정도로 부풀어오른 살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근육이 뼈에서 떨어져나가지만 않았으면 된다.


아티하는 놈이 완전히 미쳐 발광할 때까지 회피를 계속했다. 내공도 거의 바닥에 가까웠다. 그는 실제보다 더 거칠게 숨을 내쉬면서 두 팔을 늘어뜨렸다. 더 도망갈 힘도 없는 것처럼 연기한다. 어설프지만, 이런 연기까지 하는 자신이 정말 싫지만 마인은 이미 이지를 잃어버려 먹힐 것이란 확신도 있었다.


동귀어진 – 천지동수


다급하게 등을 보이고 도망가는 것처럼 몸을 돌리고 망설임없이 검신을 비뚜룸히 위로 올려 자신의 복부를 찌른다.


“푸----웁!”


피를 토하지만 마인은 달려올 때처럼 엄청난 힘으로 멈추더니 우습다는 눈으로 그 아티하의 어리숙한 동반자살기를 비웃고 있었다.


“크흐흐흐 병신새끼. 그런 게 나에게 통할 줄 알았나? 크흐흐흐흐흐!”


얼마나 웃겼는지 이지까지 잠깐 되찾아 비웃는 말을 던지지 않고서는 견디지 못할 지경이었던 것 같다. 아티하는 당연히 창자를 피해서 찌르긴 했지만 뽑아낸 구멍 양쪽에서 내장이 흐를 것 같고 피가 막 흘러나오고 숨도 쉬기 어려웠다.


“죽어라 꼬마!”


아티하는 자신의 피가 가득 묻은 아티하 제검을 들어 놈의 심장을 향해 내질렀다. 마인은 이제 아티하에 대한 경계를 완전히 풀고 있다. 아티하는 포기하는 마음으로 진원지기를 폭발시킬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아티하는 어떻게든 수강에 머리통은 내주지 않으려고 템포를 앞질러 거리를 좁혀 달려든다.


“?”


파육음이 검을 통해 전달된다. 아티하는 검기에 검기를 씌우고 별 지랄을 떨어도 제대로 베어지지 않던 마인의 강체가 이리 쉽사리 관통된 것에 의아해서 놈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마인 역시 수강이 실린 손을 제대로 내려치지 못하고 완전히 마비되어 있었다. 마인화를 겪은 육체는 더 이상 사람의 몸과 같지 않다. 마성과 마력의 흐름의 중심인 심장을 관통당하면 뇌를 관통당한 것처럼 몸의 제어권을 놓치게 된다. 하지만 그것은 반대로 심장과 뇌를 관통당해도 즉사하지 않는다는 것. 그런데 놈은 갑자기 온 몸의 혈관이 부풀어오르더니


“아 아티하!!!!!”


알려준 적도 없는 그의 이름을 부르며 다음 순간 폭사했다. 폭압이 발생하진 않았지만, 오염된 마기가 공기중으로 확 퍼져나와 아티하의 코속으로 파고들었다. 물론 그게 문제는 아니었다. 피와 푸른 살점과 완전히 부스러진 뼈가 아티하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흠뿍 적셨을 뿐이다. 아티하는 그 역한 악취 속에서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것인지 분석했지만 알 수 없었다.


마인 하나가 제법 동수를 이루던 칼슨과 살수를 남겨두고 이쪽으로 달려든다. 그 잠깐 사이에 마인의 피에 가득 함유되있던 마력을 피부로 정제해 그대로 흡수한 아티하가 얼른 정신을 차리고 검을 쥔다.


“뭔 짓을 한거냐 이 녀석!?”

“내가 알아?”


청색 마안 통상 전투 내구도와 전투 지속력


마인의 손톱을 검으로 빗겨내면서 서로 교차한다. 손에 느끼는 감각은 별로 다르지 않다. 무언가를 벤 느낌은 적고 오히려 손목이 시큰하니 반동이 밀려온다. 순식간에 공방이 열차례 이상 부딪힌다. 밀어내고 베고 튕겨나가지만 다시 횡으로 밀어내고 직격은 회피한다. 흘려내고 피해낸 끝에 다시 마인의 등 뒤를 노려 검을 내지르지만 방패를 찌른 것만 같다. 곧바로 돌아서 날린 마인의 발에 아티하가 턱을 맞고 핑그르르 돌며 쓰러진다. 정신을 잃진 않았지만 입안 가득 피가 고였다.


“퉤!”


아티하는 피를 토하듯 뱉으며 또 하나의 작은 웅덩이가 된 그 위에 검을 짚고 간신히 섰다. 뇌진탕이 다시 온 건 물론이고 빈혈로 지독하게 졸리다. 정신이 나가지 않고 버티는 것은 오로지 마안이 활성화되어 그의 신경 전체를 묶어놓고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보통 상태의 집중력밖에 발휘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내장이 조금씩 앞뒤 구멍으로 비집어 나오는 게 보인다. 검은 피 빨간 피 할 것 없이 섞여서 울컥거리면서 계속 쏟아진다. 몸에 묻어있던 마인의 살점 때문에 티도 안 나지만, 이미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출혈량이다. 아무도 그건 몰랐지만.


다시 마인이 달려들었다. 칼슨과 살수가 합류하기 전에 이쪽을 죽이고 싶은 모양이다. 아티하 역시 힘을 쥐어 짜내고 고통을 ‘차단하고’ 검을 길게 빗겨 들어 적을 겨눈다.


마지막까지 어디를 노리는지 패를 보이지 않는다. 기세에 밀려 육탄 돌진하는 마인의 안면에 최속으로 내뻗어지는 검. 당연히 손이 올라와 막는다. 남은 경력을 경공에 쏟아부은 아티하의 신형이 급하게 뛰쳐나간 것을 제외하면 그럴 수 있었을 것이다.


이형환위 의 묘리. 마력으로 급조한 현상적인 투사경.


마인의 머리를 양손으로 붙잡고 띄워올린 몸에서 무릎이 튕겨져나와 검병을 올려 친다. 아티하는 그런 생각이 전혀 없었지만 이번엔 또 갑자기 검신이 마인의 안면을 가볍게 뚫고 뒤통수로 빠져나온다. 그 때문에 손가락이 반쯤 잘려나간다. 마인의 손은 뒤늦게 검신을 붙잡았지만, 강기마저도 아티하의 검을 물리적으로 저지할 순 없었다. 일단 뚫린 상황이다. 손가락을 조심할 새도 없이 공중에서 몸을 돌려 천근추의 수법으로 바닥에 내려앉은 아티하는 마인이 오던 방향의 가속을 붙여서 머리통을 붙잡고 밀어 바닥에 쳐박으며 검끝을 통해 마력을 있는대로 때려 넣었다. 아티하의 마력과 반응한 마인의 마력이 검신과 닿는 모든 부분에서 폭발 반응을 일으킨다.


“쿠우우우우! ㅋ티ㅎ아아아!?!”


이번에도 아티하를 부르는 것 같은데 정확한 건 알기 어렵다. 아티하가 원했던 건 머리통을 날려버리는 것이었는데, 폭발력 대부분은 검신을 머리통에서 강제로 뽑혀나가게 만드는 데 소모되었고, 놈은 아까처럼 전신이 갑자기 파열되어 바닥에 거대한 피웅덩이를 만들어버렸다.


“뭐야 어떻게 한거야??”


가까이 다가온 칼슨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묻지만, 아티하 역시 몰라서 대답을 할 수 없었다. 그렇게나 안 박히던 칼이 갑자기 박히던 부분부터 이해할 수 없다. 어쨌든 이번에도 살아남았고, 죽이고 싶었던 놈들을 죽였다.


“나머지 마인들은 보았습니까?”

“그들은 이 마굴을 해체한 자들을 따라 바깥쪽으로 이동했네.”

“놈들처럼 자유를 갈망하는 자들도 없을테지. 무슨 짓이든 해서 이곳을 빠져나가려고 할걸세. 꼭 다른 자들을 죽이는 방법만이 능사는 아니니까.”


살수 역시 모습을 드러내고 한 마디 하고 사라졌다. 너무 평범한 인상이었는데, 오른손이 없었지만 그 밖의 신체는 멀쩡해 보였다. 어쨌든 믿을 수 없다는 사실은 여전했다.


“떨어져요. 안쪽에는 더 없다는 거죠? 난 알아서 살아서 나갈테니 아까처럼 붙지 마쇼.”


아티하는 아까처럼 허세를 부릴 힘은 없었기에 괜한 도발은 삼갔다. 칼슨 역시 별 말이 없었다. 그들은 각자 가져온 짐을 챙기고 상처를 치료하고 바깥으로 나갈 준비를 했다. 아까부터 조금씩 느껴졌지만 전투에 집중해서 신경쓰지 못했던 진동이 조금씩 강해진다.


“무너지려는 모양이군.”


살수는 다시 모습을 보이지 않고 중얼거린다. 어디서 들리는 것인지조차 불명확하다. 아티하는 그 사실 자체에는 동의했기에 얼른 다시 손가락에 붕대를 감고 내장이 튀어나올 것 같은 배도 압박한 다음 아까처럼 검을 손에 동여맸다. 아까의 그 미친 짓이 검신 자체에는 어떤 손상도 주지 못했지만, 손잡이 부분이 완전히 부서지기 직전의 상태였다. 싸구려 철검을 한 개 더 챙기긴 했지만, 그걸 사용하느니 그냥 부서진 아티하제검의 슴베에 붕대를 말아 쓰리라. 아티하는 그런 의미에서 물과 붕대만 챙기고 짐을 대부분 버린 뒤 곧장 출발했다. 길 찾기는 당연히 어렵지 않았다. 이 아름다운 수정동굴을 다시 보지 못한다는 건 좀 아쉬웠다.


-


셋은 거리를 두고 별로 어렵지 않게 바깥으로 나올 수 있었다. 그들이 뒤로한 동굴 안쪽부터 붕괴하는 소음이 들려온다. 마굴은 지옥화를 거치며 본래대로라면 존재할 수 없는 구조를 만들고 광물질을 변형시키기 때문에 지반이 극도로 약화된다. 그리고 지옥화와 마굴로서의 상태가 풀리면 지탱하던 힘과 신비 역시 사라져 무너지는 것이 보통이다. 다행이랄까 입구 부분의 큰 공동은 무너지지 않을 것 같았다. 병사들이 여전히 도열한 상태로 마법사들과 연구자들이 아직도 남아있는 초비오크의 시체와 안쪽에서 가져온 듯한 마물들의 시체를 이리저리 해체해서 수거하고 있었다. 그들은 지옥의 마력에 저항하기 위해 다양한 차단복을 입고 있었다.


“무기 버려! 손을 위로 올려라!”


마인들은 보이지 않았다. 일단의 모험가 무리 – 여섯 정도 되는 – 가 한쪽에 마련된 나무 우리에 한꺼번에 가두어져 있었다. 아무래도 빠져나온 사람은 다 살려주려는 모양이다. 아티하는 망설였지만 결국 무기를 버리고 손을 올렸다. 칼슨은 신나보이는 표정으로 자신의 잘린 팔을 들어보이며


“오오! 내 팔좀 다시 붙여주시오!”


하고 소리질렀다. 팔이 잘려나가고도 저렇게 멀쩡하다니 타고난 강골이라고 생각하는 아티하. 아티하의 장자들의 역사나 위대했던 아티하의 검사들 중에서도 팔이 잘려나가면서도 한쪽 팔로만 엄청난 업적을 이뤄낸 자들이 있었지만 그들 대부분은 팔을 다시 붙이지는 못했다. 의료마법의 수준의 차이도 있을 것이고, 상황의 다름도 있었을 것이다.


살수 역시 모습을 드러내 순순히 오라를 받았다. 아티하는 그 마법처리된 오라가 몸을 구속하는 순간 마력이 압제당하는 것을 느꼈다. 아까의 대단위 중력마법과 봉인마법은 해제되었지만, 이 오라 하나만으로 마력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는다. 물론 그런 대단한 도구조차도 호흡마다 조금씩 쌓이는 진기마저 틀어막진 못했다. 아티하의 무기를 압수한 병사들은 박살난 손잡이부를 보더니 고개를 갸웃하면서도 준비한 상자에 넣어 챙기는 모양새다. 세이브리드가 신경을 써준 것이리라.


그는 생각한다. 처음에는 잡기라고 생각했던 ‘무공’이 자신의 마검술과 시너지를 일으켜 얼마나 여러번 자신을 살렸는지. 특히나 흑화가 자신을 거의 잡아가면서 가르친 경공과 그 경지는 독보적으로 큰 도움이 되고 있다.


그는 한 순간 자신이 있는 곳도 잊어버리고 후회했으나, 곧 마음을 나쁜 쪽으로 다잡았다. 둘의 도움이 없었다 하더라도 자신은 그 시간에 또 다른 발전을 얻었을 수 있었을 거라고.


귀족들은 돌아간 지 오래였다. 군 병력도 반 이상 철수한 모양이다. 아티하는 칼슨, 살수와 함께 새로운 나무 감옥에 갇혔고 곧 마차에 실려 어디론가로 떠나게 되었다.


-


갔던 길로 수도에 다시 돌아온 무리는 차례대로 각 부대를 떨궈내며 규모를 줄이더니 결국 수도방위대 막사 앞에서 멈추었다. 갈때는 꼬박 하루가 걸렸지만, 올때는 빨리 복귀하고 싶었던 병사들이 전속력을 냈기 때문에 반나절만에 도착했다. 수도는 아주 늦은 밤 시간이였다.


“그럼 전원 해산. 5일 후에 본성의 살수 교육대로 와라. 각자 무기와 입을 옷 정도는 챙기는 게 좋을 거다. 사면 증명서가 필요하면 지금 우리와 동행해서 본대에서 발급받도록 한다. 생존을 축하한다. 이상.”


아티하가 처음에 끌려갈 때 인솔했던 키 작은 장교가 그들에게 지시하자 군인들은 미련없이 죄수들을 풀어주고 본대 귀환했다. 아티하는 황당했지만 검을 챙겨 일어섰다.


살아남은 죄수들은 아티하를 포함해서 모두 열명이다. 다행이랄까, 마인들은 하나도 살아나오지 못했다. 마굴을 끝장낸 팀으로 보이는 여섯 명은 각자 셋 둘 하나로 나뉘어서 각자의 길로 떠나버렸다. 둘 중 하나는 아티하보다 외견상 심한 중상이었는데 여기까지 살아서 실려온 것이 신기할 정도로 혈색이 나빠보였다. 이놈들은 기껏 살아남았는데 치료도 대충 해주고 지들 바쁘다고 수레에 막 밀어 넣어 그들을 끌고 온 것이다. 아티하는 내심 이때 언젠가 이렌시아 군인 놈들에게 엿을 먹여주겠다고 다짐했다. 그 엿이 그가 생각한 것보다 너무 커져버린 것은...


생존자 중 한 명은 어디서 숨어서 살았는지 처음 보는 얼굴이고, 하나는 아티하와 한 팀이었던 군인들을 찌르고 도망친 깡패 중 한명이였다. 그는 칼슨과 아티하의 눈치를 보면서 얼른 뒷골목으로 사라졌다. 그는 아마 이대로 도망쳐 실렌 시흐의 살수 교육에는 보이지 않으리라.


“나는 여기서 사면장을 받고 제국으로 돌아갈 예정이네. 아 물론 팔부터 붙여야지.”


칼슨은 이제 썩어서 냄새가 나기 시작한 팔을 소중히 안고서 악수를 청했다. 이렌시아는 역시 칼슨의 팔도 붙여주지 않았다. 본인은 믿는 구석이 있는 것 같지만.


“팔을 잘 붙이길 바랍니다. 정말 다시 볼 일 없길.”

“하하 나는 또 봤으면 하지만, 이런 곳에서는 다시 보지 말자구. 고마웠네 젊은 친구.”

“아 잠깐만.”


아티하는 칼슨의 잘린 팔에 왼손을 대고 검에 마력을 흘렸다. 간단한 사지 보존용 냉동 기술.


“핏줄이 터지지 않도록 잘 얼렸으니 마법사라면 잘 활용할 겁니다. 그럼 조심하시길.”

“오오 고맙네! 자네 이런 것도 할 줄 알았구먼!”


프리하는 그제서야 썩은 미소를 보여주며 고개를 꾸벅 숙여보이고 움직였다. 손가락이나 팔처럼 검사에게 중요하지만 싸우다보면 잘려나가기 쉬운 신체를 다시 붙일 수 있도록 보존하는 간단한 보조 마검술이다. 아버지가 전투마검격보단 이런 잡술을 고련(攷練)하게 할 때는 왜 그러는지 몰랐으나, 지금은 꼭 칼슨의 팔이 아니더라도 ‘혼자인 아티하’가 가지는 전투지속력의 원천이 무엇인지 깨닫는 중이다. 같이 움직인 시간이 많았던 살수와도 인사하고 싶었지만 그는 보이지 않은 지 오래였다.


“허 아프네.”


배를 움켜쥐면서 그런 혼잣말을 한다. 긴장이 풀리자 빈혈기가 다시 밀려온다. 물론 마력이 회복된 만큼 정신을 붙잡고 있기는 수월했지만, 없던 피가 갑자기 생겨나는 것은 아니다. 이해할 수 없었던, 제멋대로 발동한 급속 자가치료 역시 피가 부족해 죽을 뻔 한 프리하를 살려놓긴 했지만, 그 이후로 무언가를 도와주진 않았다. 수면과 음식섭취가 너무 절실했다. 물론 그전에 구멍이 나 있는 배때기를 어떻게 하지 않으면.


“하...”


우미하가 마중나오길 조금 기대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녀가 그래야 할 이유도 존재하지 않는다. 맡겨놓은 물건을 챙기러 가긴 해야 하지만, 거래는 거기까지다. 그 이후의 관계 발전은 이제 온전히 두 사람의 몫이다. 프리하는 이미 자신이 큰 실수를 했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일단 살아오니 이런 고민도 하는 것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해 보았지만 현실이 바뀌는 건 아니었다. 어쨌든 그 멍청하고 팔 힘 약한 세이브리드 가문의 향사를 만나서 욕을 한 바가지 해줘야겠다는 생각도 문득 들었다.


“휴...”


열고 있는 가게는 없다. 배를 움켜쥐고 여기저기 헤매던 그는 아직 문을 닫지 않은 여관을 찾아 바늘과 실을 빌려서 배때기를 꿰멨다. 등 쪽은 손이 닿지 않아서 여관 안주인에게 부탁했는데, 별로 어려워하지도 않고 금세 봉합해주었다.


그냥, 세이브리드 저택에 돌아가면 될 텐데 그는 그렇게 고집을 부려서 여관에 묵었다. 대금은 다 부서진 아티하 제검의 힐트에 붙어있던 귀금속으로 대신했다. 여관 주인 부부는 그것을 받더니 완전히 거지 + 피투성이였던 프리하에게 바로 가장 좋은 방과 뜨뜻한 목욕물, 가지고 있던 가장 좋은 옷을 내주었다. 아쉽게도 약은 없었다. 이 세계의 사람들에게 약은 가장 간단한 것이라도 비싸고 구하기 어려운 것이다. 오히려 신성에서 기인한 치료술이나 치료마법이 보편적이고 싸게 먹힌다. 물론 그것들은 지금 이 시간엔 제공되지 않았다.


프리하는 긴장이 풀려옴에 따라 거의 씻지도 못하고 간신히 옷만 갈아입었다. 갈비뼈의 통증이 점점 극심해진다. 손가락은 이곳으로 돌아오는 도중에 회복한 마력을 열심히 돌린 덕분에 활성화한 자연치유력으로 최소한 떨어지지 않게끔 붙이는 것에는 성공했지만, 갈비뼈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였다. 일단 호흡이 힘들다. 몸을 조금만 움직여도 정신이 번쩍 뜨이고 또 나갈 것처럼 아프다. 손의 통증도 뒤늦게 밀려오기 시작했다. 그는 너무 고통스러워서 그것을 잊으려 애써 잠을 청했다.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격통보다도 빈혈과 마력회로를 한번 바닥까지 비웠던 공허함이 주는 탈력감, 전투의 피로가 반강제적으로 의식을 끊어버렸다.


작가의말

전개는 좀 막장입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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