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햄스터가 살아있다면 희망은 있어

아넨티어 2부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무협

햄스터살려
작품등록일 :
2016.12.28 23:10
최근연재일 :
2021.01.19 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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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6 0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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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쪽

아티하 10

2부의 주인공은 1부의 주인공들과 밀접한 연관성이 있습니다.




DUMMY

정신이 들어보니 머리가 축축했다. 입으로 흙이 밀려든다.


“웁?!”


씨이발 좆됬다. 그가 처음 한 생각이였다.


한 치 앞도 안보인다. 갈비뼈의 통증은 여전하다. 입에 피맛이 느껴진다. 지금까지 어떻게 호흡을 이어왔는지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아니 지금까지 깨지 않은 것이 신기할 정도로 가슴이 갑갑하다. 오히려 기절(?)하기 전보다 더 나빠진 것 같다.


“웨- 에에에엑! 푸허어어어얽^#&&!&!”


인간의 발성기관에서 나오는 것이지만 형용할 수 없는 끔찍한 소리가 튀어나온다. 아티하는 젤리처럼 끈적끈적한 피를 계속 뱉어냈지만, 그것이 곧 자신의 코와 입을 다시 뒤덮는 것을 깨달았다. 산소가 부족하다. 머리가 깨질 것처럼 아프다. 다행히 사고는 아직 가능하다. 그는 너무 고통스러웠지만 빨리 자신의 상태를 점검해보았다.


손발이 묶여있다. 머리에 피가 쏠리는 느낌으로 중력을 느껴보니 비스듬하게 누워있다. 피가 흙에 스며들면서 아주 약간의 공간이 다시 생겼지만, 공기는 거의 없다. 비가 오는 것인지 끊임없이 두드리는 소리와 진동이 느껴지는 것을 볼 때, 지면으로부터 2m 정도 아래에 있다.


내부를 관조한다. 내장은 어느 정도 회복한 것 같다. 다만 숨쉬기가 너무 어렵다. 너무 힘들다. 너무 아프다. 아무래도 왼쪽 폐에 기흉이 생긴 것 같았다. 폐가 느껴지진 않지만, 어렵게 내쉬는 호흡 한 번 마다 가래처럼 피고름이 밀려온다. 손가락은 움직였다. 마력과 내력 모두 간신히 바닥에서 찰랑이고 있는 정도다. 운기조식이나 호흡법을 할 시간도 여건도 되지 않았기 때문에 내력이 조금이나마 회복된 건 단전과 마력심(心)의 연결이 멀쩡하다는 증거였다.


인생 최대의 위기였다. 뇌가 혼란에 빠질 것 같다. 곧 생각할 수 있는 산소도 없어지리라. 아티하는 산소가 부족해서 뒈지기 전에 남은 마력으로 본능적으로 전신을 변혁시킨다.


녹청색 마안 – 보조 계통 수중 전투, 마력으로 인간의 세포 활동에 필요한 에너지를 일부 대체한다(미토콘드리아의 정상적인 활동이 없어도 에너지를 제공한다), 뇌가 죽지 않도록 뇌세포를 ‘아티하의 피’로 강제적으로 생체 작동방식을 바꾼다. 어쩔 수 없이 죽는 세포 때문에 몸에 오는 반동을 최소화한다. 근육 활동을 무산소운동으로 집중화한다.

귀식대법 – 겨우 1성, 미약한 수준의 피부 호흡, 심박수 감소, 소모하는 산소량 저감.


“커허어억!”


일단 급하게 한시간정도 숨을 못 쉬어도 죽지 않게 만들었지만 몸의 성능이 뚝뚝 떨어지는 것이 실시간으로 느껴진다. 귀식대법은 원래 사용하고 나서 움직이라고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1성의 성취밖에 없는 만큼 게다가 야매로 배워서 (흑화도 배우지 말라고 했는데 배웠다) 내기의 흐름도 조금 불안정하다. 그는 생각했다.


“아 어떤 새...푸웁!”


말할 때가 아니다. 누가 이랬는지 생각할 때가 아니다. 그는 열받은 머리를 억지로 식혔다. 그럴 필요도 없었다. 몸이 점점 차가워지고 있었으니까. 사고는 정상적이었지만, 평소처럼 빠르진 않았다. 두 가지 수법을 동시에 운용한 것은 정답이었을지 우행이었을지 지금은 알 수 없었다. 비가 많이 오는지, 젖은 흙이 점차 무너져 몸을 짓눌러온다. 좌측 폐는 완전히 기능을 상실한 것 같다. 통증은 전혀 사라지지 않았다. 다만 마취한 것처럼 몽롱하고 멀게 느껴지는 감각은 있다.


그는 손과 발에 마력을 둘러 날카롭게 회전시켜 묶고 있던 밧줄을 잘라냈다. 다만 이러한 마력방출과 형태 잡기는 운신할 공간이 전혀 없는 이 땅속에서 큰 규모로 펼치긴 어려웠다. 남은 마력을 방출해서 몸 주위에 둘러 회전시킨다고 해도 흙을 골고루 갈아주는 것 이상의 물리력을 작용할 순 없을 것이다. 바닥을 등지고 마력을 앞으로 폭발시키면 흙이 조금 들썩거릴 진 몰라도 위에 덮인 흙을 다 퍼내기도 전에 마력이 다하거나 척추가 부러져서 죽을거다. 그리고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폐였다. 이것은 바깥에 나가더라도 여전히 심각한 문제였다.


집중 – 한다.


일단 마력을 모은다. 땅 속은 오히려 대기보다 마나의 밀도는 높다. 피부로 빨아들이고, 근처의 마력도 감응시켜 끌어모은다. 마안을 열고 있기 때문에 소비되는 마력보다 충전되는 마력이 근소하게나마 많다. 삼십분을 그러고 있었지만 모인 마력은 처음보다 조금 많은 정도였다. 이걸로는 뭘 할수도 없었다. 여전히 방법은 생각해내지 못했다.


강제로라도 영안을 열어볼까 고민하던 아티하는 차라리 그것보단 기억을 열어보기로 했다. 머리가 엄청나게 아프고 당분간 부작용으로 왼팔에 수전증을 안고 살겠지만, 죽는 것보단 낫다. 자신이 투박하게 막아버린 ‘기억’의 입구를 연다. 검색어는 ‘아무것도 없이 매장되었을 때.’


“으아아악!”


두통, 격통이 머리를 때린다. 그는 잠시동안 자신이 어디 있는지조차 잊어버렸다. 다행히 이번엔 폐부의 통증이 그를 깨운다.


-


아티하의 장자는 아니지만, 외유를 좋아하던 한 검사가 있었다. 그는 나중에 조카뻘되는 아티하 장자에게 자신의 경험담을 공유했다. 25대, 야무르 키섬 아티하는 그 이야기를 기억했다가 검방 방주가 되기 전 어느 날 수해 현장에서 사람들을 돕다가 엄청난 양의 토사에 휩쓸려 땅 속 깊이 파묻혔는데, 그는 검도 없이 그 현장을 어렵지 않게 빠져나왔다. 그가 사용한 방법은...


-


아티하는 고민하다가 이 방법을 써보기로 했다.


자기 자신을 검으로 상정한다. 이것은 익숙하다. 그리고 무척이나 가벼운 검을 상상한다. 경공을 운용할 필요도 없다.

동시에, 자신의 주변에 있는 온갖 흙, 자갈, 모래, 바위를 모두 무거운 질량을 가진 유체라고 생각한다. 절실하게 생각한다. 손을 맞대어 그것들의 속성 한 가지만 잠시 변경한다. 잠시면 된다. 이 정도의 간섭은 세계를 좀먹지 않는다는 확신이 있어야 한다.


다음 순간 그는 물 속에 빠진 스티로폼처럼 어느새 지면으로 올라와 있었다. 차가운 비가 얼굴을 때린다. 그것이 너무 감사해서 그는 자기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지만, 곧 그나마 멀쩡한 오른쪽 팔을 들어 소매로 얼굴을 문질렀다. 흙투성이인 팔뚝이 진흙으로 미끄러진다. 이 새끼들, 옷도 다 벗겨놓았다.


마안 해제, 귀식 대법 해제. 천천히 일어선다. 다행히 잘린 곳이나 적출된 내장은 없다. 죽여서 고기로 팔지 않은 것만 해도 고맙다. 물론 고맙다고 해서 이 일을 대충 넘어갈 생각은 없었다. 쓸모없다고 생각했는지 검신만 덩그러니 남은 아티하 제검이 한쪽에 반쯤 파묻혀 나뒹굴고 있었다.


-


여유(?)가 생긴 아티하는 자신의 몸부터 살폈다. 문제는 하나로 집약된다. 왼쪽 폐가 완전히 맛이 간 것이다. 그는 아티하 제검을 쥐고 망설이다 눈을 꼭 감고 왼쪽 옆구리에 포인트를 살며시 갔다 대었다. 의료적인 지식이 부족해서 정확하진 않지만 기흉이 발생하지 않는 위치를 잡는다. 푹 찌르자 고통보다는 폐에 차 있던 피가 입과 칼 사이로 마구 뿜어져 나온다.


“켁! 케에에엑! 후아 후아. 으 아프다.”


원래대로라면 이렇게 한다고 해서 호흡이 뚫리진 않겠지만, 아티하의 비정상적인 자기복구 능력은 느리지만 확실하게 몸을 낫게 만들고 있었다. 비가 엄청나게 내리는 비 속으로 하염없이 퍼져나간다. 곧 흙탕물에 섞여 피가 있었는지도 모르게 되어버리고, 새로운 핏방울이 하나씩 떨어져 잠시 흙탕물을 검붉게 물들이고 자신도 하나가 된다. 그는 발가벗은 채로 천천히 기어서 근처의 나무 둥치에 몸을 기댔다. 폐를 한번 찔러서 피로 채운 갈비뼈는 그가 어떻게 손을 댈 수 없었다. 이번만큼은 정말로 몸이 알아서 치료해주길 기다리는 것이다. 잠시 그렇게 견디던 아티하는 조심스레 몸을 움직여 근처에 민가가 있는지 수색했다.


멀지 않은 곳에서 폐가를 발견할 수 있었다. 오랫동안 장에 박혀서 장과 함께 곰팡이로 썩어가던 거적 하나를 대충 고쳐 입는다. 비가 조금씩 새는 집에서 그는 최소한의 경계 마검격을 펼쳐 바닥에 꽂아 고정시키고 추위 속에서 떨며 닥쳐오는 수마에 몸을 맡겼다.


-


주변의 살의를 감지하는 경계 마검은 풀려 있었다. 아티하는 땅속도 어느 곳도 아닌 이 허름한 폐가 지붕 아래라는 사실에 매우 다행스러움을 느낀다. 숨쉬기는 불편하고 옆구리는 결려서 왼팔이 거의 움직이지도 않았지만 살아 있었다. 그는 곧장 검을 챙겨 수도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은 크게 어렵진 않았다. 상처들이 곪거나 덧나지 않았고 다리는 멀쩡했으며 감기에 걸리긴 했지만 열은 거의 나지 않았다. 호흡에 가끔 피가 섞인 기침이 섞여 나왔지만 폐가 기능을 못한다는 느낌은 없었다. 무엇보다 그가 버려진 곳이 처음 노예시장을 탈출해 따라오던 동부로와 멀지 않았다.


그가 세이브리드 가문에 도착했을 때, 생각했던 환영은 없었다. 오히려 당황한 문지기가 급하게 들어가더니 눈이 퉁퉁 불어있던 우미하가 혼자 거의 속옷(실내복) 차림으로 뛰어나온 것이다.


“대체! 어디 갔었어요? 왜 곧바로 오지 않은 거냐구요!”

“아 그게...”

“바보! 당신이 죽으면 내가 뭐가 돼요? 흐어어어어엉!”


프리하는 우는 여자를 달래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무척 당황했다. 따라온 집사는 어떻게든 그녀를 달래서 안쪽으로 데리고 갔다. 프리하 역시 딸려갔는데, 그녀는 앉아서 한참을 눈물을 찍어내고 나서야 겨우 안정이 되었다. 프리하는 솔직한 감상을 말했다.


“날 위해 그렇게 울어줄 것이라곤 생각하지 못했네요.”

“...부끄러운 모습을 보였어요.”


그녀는 솔직하게 인정했다.


“어떻게 된 거에요? 왜 곧장 찾아오지 않았어요?”

“그냥 좀 더러웠기에... 하루 쉬고 찾아가려고 했습니다.”

“그런 거 치고는 거지꼴이네요. 일단 씻고서 치료를 받고 나오세요. 이야기는 그 다음에 하죠.”

“몸은 그럭저럭 괜찮습니다. 운이 무척 나빴지만.”


프리하는 새삼 이 도시가 얼마나 소름끼치는 곳인지 떠올리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좀만 몸이 멀쩡해보였다면 그대로 인신매매당하거나 장기가 적출되었을 것이다. 노예시장이야 탈출하면 그만이지만, 죽어버리면 부활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는 앉으면 더러워질까봐 나무로 만든 의자에 앉았다. 우미하는 시녀가 챙겨준 겉옷을 두르고 프리하를 보고 있었다.


“그보다, 우리가 헤어질 때 했던 약속은 유효한 겁니까?”

“그래요. 까짓껏 뭐 사귀자구요.”


프리하는 생각보다 그녀가 잘 기억하고 있었고, 전혀 회피하려 들지 않고 오히려 대담하게 나와서 이상한 기분이 되어버렸다. 어쨌든 여자친구, 가 생겼다 인생 처음으로.


“하하...”

“그 얘기가 그렇게 하고 싶었어요? 참 당신도...”


우미하는 그러면서 자기도 어이가 없는지 허탈하게 웃었다. 그러면서 ‘그저 애인이에요. 그 이상의 것을 바라는 건 안되요?’ 하고 선을 확실하게 그어주었다.


“어쨌든... 말하는 게 늦었지만 정말 고마워요. 이 우미하 세이브리드, 아티하님의 조력 덕분에 가문의 큰 일을 해결할 수 있었어요. 목숨을 걸어준 그 은혜는 언젠가 꼭 갚겠어요.”

“죽을 뻔 한 건 맞지만, 내게 기회를 준 것도 세이브리드 양이 유일했습니다. 서로 은혜라고 생각하고.”


그는 뭔가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기가 어려웠다.


“너무 딱딱하게 생각하지 말자구요. 앞으로도 서로 좋은 협력 관계가 되었으면 합니다.”


솔직한 이야기는 하지 못했다. 뭐 우미하는 대강 알거라고 생각하기도 했지만.


그리고 한참을 ‘공개처형’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그녀는 이야기를 귀담아 들었지만 별다른 반응을 보여주진 않았는데, 프리하가 씻고 나와서 검진을 받을 땐 그의 상처투성이 몸을 보고서 눈물을 애써 참는 모습을 보였다.


“나도 작전에 참여한 경험이 있지만 이렇게 몸을 막 굴려 본 적은 없어요.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 거에요? 몸을 사릴 순 없었던 거에요?”


프리하는 그런 것 보다 궁금한 것이 다시 떠올라서 그녀의 질문을 무시했다.


“세이브리드 가문은 무가입니까? 우미하는 어떤 무술을 익혔나요?”

“하아... 정말 모르는 거에요? 우리 가문은 대륙 3대 명문 궁가에 이름을 올리고 있어요. 나머지 둘은 뭔지 알죠?”


유감스럽게도 아티하는 그것을 알고 있었고, 더 유감스럽게도 그것을 알고 있다는 것을 말해버렸다.


“그럼요. 궁방의 바이첼린과 아넨트리아의 라이나체 아닙니까. 물론 그 명성이 최강 고수의 실력을 입증하는 건 아니지만요.”

“하아... 그래요. 뭐 그래서 나도 우리 가문도 활을 다루어요. 물론 다른 둘과는 조금 계열이 다르지만요.”

“팔이 얇길래 궁수는 아니라고 생각했었는데 틀렸군요.”


우미하는 잠깐 입을 꾹 다물고 있다가 혼자 고개를 끄덕끄덕 하면서 뭔가 자기에게 중얼거리는 것처럼 보였다.


“어쨌든 제가 너무 오래 당신을 붙잡고 있었네요.”

“어 음 더 붙잡고 있어도 되는걸요?”


우미하는 프리하가 그런 말을 부끄럽지도 않게 내뱉자 기가 차지만 뭔가 재밌다는 표정으로 귀엽게 웃었다.


“그래요. 같이 병실로 데려다 줄게요. 에긴, 아티하가 주의할 점이 있을까요?”


옆에서 대기하던 가문의 의사는 마력적인 측면에서는 하나도 단련되지 않은 보통 사람이였다. 냉미남(?) 이미지인데 상체가 탄탄하고 반백의 머리칼을 하나로 묶어내렸다. 40도 안된 사람이 눈썹도 반백이라, 프리하는 신기해서 치료받는 중에도 계속 쳐다봤다.


“공자도 알다시피 폐가 거의 못 쓸 지경까지 다쳤었습니다만 어떻게든 기능을 하고 있군요. 갈비뼈가 폐를 찌르고나서 다시 제자리에 가 붙다니 신성 치료마법도 이런 건 못합니다만, 공자의 몸은 제가 생각할 수 있는 범위가 아닌 것 같군요. 움직이지 마시고 절대적으로 안정을 취하십시오. 대신 회복기 마무리에 접어들었을 때는 일부러라도 폐 기능을 극한까지 사용하는 게 좋겠습니다. 자기 전 환부 접합부에 찬 피를 빼러 오겠습니다.”

“저 에긴 그게 무슨 말이에요? 왜 다 나아가는데 무리를 해요?”

“아가씨. 아티하 공자의 경우는 음...”


의사는 좀 심각한 표정으로 고민하더니.


“저도 ‘영안을 여는 자’들이 어떠한 전투 지속력을 가졌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팔 다리가 떨어져도 다시 붙이고 계속 전장에 남아있는 사람도 있었죠. 하지만 아티하 공자의 경우에는 ‘원복’시키는 것이 아니라 ‘초회복’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아니 그 말도 이상하군요. 이상하게 들리시겠지만 오히려 ‘수리’에 가깝다는 느낌이 듭니다.”

“수리요?”

“네 마치 부러지고 망가진 검을 다시 벼려내는 것처럼. 공자의 몸의 마력과 세포 반응을 살펴보니 망가진 부분을 아예 없애고 아예 그 전체를 다시 구성하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살아있는 게 더 신기할 정도죠. 저도 이해하지 못한 걸 설명하자면 여기까지입니다.”

“사람... 맞아요?”

“맞습니다. 다만 그 과정에서 동반하는 고통은 어떻게 참아내는지 참으로 흥미롭군요.”


아티하는 처음으로 에긴의 눈길이 오싹했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 말을 돌렸다.


“그럼 제가 움직여도 될 때 다시 알려주세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두 사람은 그렇게 의사와 헤어져 프리하에게 배정된 방으로 왔다. 저택의 구석에 있는 방인데, 창 밖으로 정원이 보여 요양에는 썩 괜찮은 곳이였다.


“기한 안으로 다 나을 수 있겠어요? 이렌시아의 살수 훈련은 당신에게도 쉽지 않을 거에요.”

“낫지 못하면 그대로 가는 수밖에 없죠 뭐. 이제 며칠 남았죠?”

“겨우 사흘 남았어요. 사실상 이틀에 가깝죠. 당신이 원한다면 내가 어떻게든 늦게 들어가도 되도록 힘을 써볼게요.”

“그러면 어떤 교육과정이든 그 시간 내내 불편할 겁니다.”

“그건 그렇겠지만...”


우미하는 힘을 주지 않고 프리하의 관이 꼽혀있는 옆구리를 쓰다듬더니 한숨을 푹 쉬었다.


“이제 갓 새끼살수로 새로 전직한 프리하군과 사귀려면 이런 부분은 감수해야하는 것이겠죠? 나도 내 할말은 다 할테니 잔소리로 여기지만 마요.”

“이 아티하 아씨와 만난지 얼마 안되었지만, 그 심계에는 감탄하고 있습니다. 지난번처럼 무례한 일은 없도록 조심하지요...”


그 말에 그녀는 싱긋 웃어보였다.


“그럼 잘 자요. 약 챙겨먹는 거 잊지 말구요. 내일 다시 올게요.”

“그래요.”


그녀는 가볍게 고개를 숙여보이고 방을 떠났다. 프리하는 티 테이블처럼 생긴 탁자에 검신만 남은 아티하제검을 내려놓고 침대에 누웠다. 여기의 침대는 스프링같은 것이 들어간 매트리스가 아니라, 온갖 천 부스러기와 동물 깃털을 우겨넣고 모양을 잡은 매트리스다. 누군가 사용한거면 티가 나는데, 이건 새거가 분명했다. 그냥 그랬다.


-


기절하듯 잠들고 깨어난 것은 새벽녘이다. 너무 잘 자서 그랬는지 아니면 누가 왔는데도 깨지 않았는지도 모를 정도로 깊게 잠들었었다. 누군가 침대 옆에 시원한 물을 갖다둔 상태였다. 무심코 왼팔을 움직여 물병을 집어든 프리하는 격통에 하마터면 물통을 놓칠 뻔 했다.


“와 장난 아니네.”


무심코 한글로 말하는데 대기하던 사람인지 하인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찾으셨습니까?”

“아, 지금 몇시입니까?”

“5시를 조금 넘겼습니다.”

“그렇군요. 다른것보다, 바깥에 나가려고 하는데 옷을 준비해주겠습니까?”

“지금 말씀이십니까?”

“네.”

“당장 준비해드리겠습니다.”


하인이 물러나고 다른 사람들이 곧 세숫물과 외출복을 가져왔다. 프리하의 취향을 반영한 것인지 군인들이 갑옷 아래 입는 기본 전투복과 비슷한 디자인이다. 프리하는 대충 씻고 맡겨두었던 짐에서 페릴과 돈을 챙겨 나왔다. 검을 거적(씻을 때 버리지 말아달라고 부탁했지만 이렇게 쓸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다)에 싸서 방을 나섰다. 하인들은 조금 안절부절 못하는 기색이었다.


“어디 가는 거 아닙니다. 근처에 괜찮은 대장간이 있습니까?”

“간단한 주문이라면 저희 무기고에서도 처리해 드릴 수 있습니다.”

“어려운 건 아닌데, 복잡한 거라서 여기서 될지 모르겠군요.”

“무기고 야장을 데려오겠습니다.”

“같이 가죠.”


무기고는 세이브리드 가문의 장원 구석에 있는 사병 막사, 연병장과 함께 있었다. 간이 대장간에는 이미 불길이 올라오고 있었고, 책임자도 이미 깨어나 있었다. 그는 프리하의 요청사항을 듣더니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아브티드 합금인 것 같긴 한데... 저희로선 이 검의 재질에 맞는 가드나 손잡이를 만들어 드릴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좋은 검은 왕성의 장인들이나 수리할 수 있을 겁니다.”

“탄성계수는 어쩌고 저쩌고, 재질은 9에서 12급 강철로 소곤소곤.”

“저희가 그런 디자인은 이랬다 저랬다, 그런 금속은 없어서 대신 이러쿵 저러쿵.”


프리하는 한참 책임자를 비롯한 무기고 직원들과 이야기했지만 여기서는 견적이 안나왔다. 프리하가 바라는 퀄리티가 절대 나올 수가 없는 구조였던 것이다. 그리고 벽에 걸려있는 것도 대부분 활이였다. 결국 프리하는 대충 성에서 제일 괜찮은 대장간을 추천받아서 밖으로 나왔다. 대문을 나오는데 어느새 외출 준비를 마친 우미하가 빨간 망토같은 걸 뒤집어쓰고 옆에 따라붙었다.


“에? 우미하 아씨는 어쩐 일로...”

“검을 수리하러 나간다면서요? 저도 따라가도 되죠?”

“그건 상관없는데 재미 없을텐데요.”

“아티하는 검에 대해 잘 알죠? 옆에서 보고 배우고 싶어서 그래요.”

“아 그런거라면...”


그렇게 눈치없는 아티하는 우미하와 나란히 대장간을 향해 걸었다. 그녀가 길을 잘 알았기에 두 사람은 헤매는 일 없이 곧장 대장간에 도착했다. 공방이 몰려있는 거리 옆에는 성을 관통하는 강이 수로 사이로 달리고 있고, 아침 일찍부터 일하는 소음이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아티하는 검을 언제부터 쥐었어요?”

“...기억해보면 기억이 나는 순간부터 계속 검을 휘두르고 있었습니다.”

“헤헤 저도 어릴 땐 화살촉을 가지고 놀았지요.”

“...”


프리하는 좋지 않은 기억이 떠올랐지만 애써 지워버리고 미소를 지으려 노력했다.


“아버지는 다섯 살짜리에게 철검을 쥐어주고 정자세로 들고 있는 것부터 시켰습니다. 제대로 못하거나 힘이 빠져 떨어뜨리면 저녁 밥은 없었죠. 그 때문에 유치원에 가면 친구들의 밥과 간식을 뺏어 먹었는데, 그 때문에 여러 번 혼나기도 했습니다.”


우미하는 ‘유치원이 뭐지’ 하는 표정이면서도 잠자코 들었다.


“우습지만 내 몸에 흐르는 피는 이상해서, 다섯 살임에도 금세 장검, 중검 그리고 양손검까지 들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티하 검법의 기본 흐름에서 단검류나 곡도는 사도에 가깝게 여기기 때문에 처음부터 장검으로 시작했죠. 일곱 살 때 이미 검을 전력으로 휘두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또래 애들과 근력이 너무 심하게 차이가 나니까 주변에선 저를 어려워 했죠. 선생님들도 가급적 저를 애들과 어울리지 않게 따로 떼어놨습니다.”

“그건 좀... 불쌍하네요.”

“저도 제가 남들과 다른 걸 알았기에 그 다음부터는 조심했죠.”


이야기하는 새 목표로 한 대장간에 도착했다. 고객 대기실(?)이 따로 있었는데, 접수처에 앉은 아가씨는 졸린 눈을 비비고 장부에 뭔가를 열심히 적어내리고 있었다. 두 사람을 뒤늦게 인지하고 엉거주춤 인사를 한다.


“안녕하세요 손님... 물건 보러 오셨어요? 진열장은 저쪽-”

“수리 상담인데요.”

“아 네.”


책상 뒤에서 앞으로 나온 직원 아가씨는 프리하보단 다섯 살 정도 연상으로 보였는데, 대장장이들이 입는 작업복을 가볍게 옷본만 따서 만든 제복을 입고 있었다. 미모가 보통은 확실히 아니었는데, 여기가 남자들이 많이 오는 곳이란 것을 생각하면 그리 이상하지 않을 수도 있다. 아티하는 옆에서 우미하가 쳐다보는 것도 모르고 멍하니 쳐다보다가 정신을 차렸다.


“손님, 전에 저희 ‘용팔이 대장간’에 방문하신 적이 있으신가요?”

“아니요 처음입니다만.”

“그럼 여기 회원 가입을 하시면 저희가 지금 특별가에-”


우미하가 끼어든다.


“아니요. 그런 것보다 당장 수석 대장장이를 불러주세요. 우리는 평범한 고객이 아니니까요.”


다른 사람이 그런 말을 했으면 모르겠는데, 딱 봐도 기품 넘치고 아름다운 우미하가 이야기하자 직원은 눈을 가늘게 뜨더니 새로 다른 종이를 가져왔다.


“그럼 손님, 여기 성함과 체중, 수리할 무구의 종류를 적어주세요. 그 밖의 사항은 저희 담당 직원이 직접 나와서 상담할 겁니다. 기다리시는 동안 안쪽으로 모시고자 하는데 괜찮으시겠어요?”

“그...럼요.”


프리하는 우미하의 눈치(?)를 보면서 그렇게 대답했다. 여직원이 고객 대기실 한쪽의 고급스러운 나무문을 열자 안락하게 꾸며진 상담실로 이어지는 계단이 있다. 두 사람은 차를 한잔씩 받고 조금 오래 기다렸다. 올라온 사람은 젊은 대장장이였는데, 귀찮은 표정이었지만 우미하를 본 순간 얼굴이 막 풀어졌다. 프리하는 속으로 웃는다.


“네 안녕하십니까. 용팔이 대장간의 부속 수리 담당 메이지입니다. 가드랑 손잡이를 달러 오셨다구요?”

“네 여기 있어요.”


우미하가 프리하 대신 검을 탁자 위에 꺼내놓았다. 메이지는 장갑 낀 손으로 검신을 한번 만져보더니 풀어진 표정이 갑자기 굳어버렸다.


“어... 음... 죄송합니다 손님. 제가 바로 대장 아니 수석님을 불러오겠습니다.”

“네 천천히 해요.”


프리하는 괜시리 우미하의 여유로움이 부러워져 그녀를 쳐다본다. 메이지가 오래 되지 않아 ‘나는 대장장이요’ 하고 써 붙인 듯한 꼬장꼬장해보이는 노인을 한명 데려와서 같이 앉는다. 물론 그 노인은 외견보다는 훨씬 공손하게 인사를 했다.


“안녕하십니까. 용팔이 대장간을 맡고 있는 하빈저요.”

“아티하입니다.”

“안녕하세요.”


프리하는 악수를 하고, 우미하는 일어서 인사만 했다.


“제자놈이 대단한 걸 봤다고 하는데 이거인가보오?”


하빈저의 눈은 사실 방에 들어올 때부터 반짝거리고 있었다. 그는 눈빛으로만 동의를 대충 구하고 곧바로 검신을 집어들었다.


“와.”


그는 한참동안 여기저기 살펴보다가 그 망할놈의 반짝거리는 눈으로 프리하에게 물었다.


“손님은 무슨... 검방의 후기지수 같은 겁니까? 이런 좋은 검은 살면서 다섯 번이나 봤을까. 직접 만져보는 건 처음이오. 극 초기형의 고전적인 각신도검 디자인이군.”


‘클래식’이란 단어를 우리말로 편안하게 쓰자면?


노인도 누구도 이게 ‘원형’이라는 것은 모를 것이다. 프리하는 웃음이 나올 것 같았지만, 우미하는 진지한 표정으로 앉아있다.


“비싼 거 맞죠?”

“비싸다는 건 이 검에 대한 모독이야. 이건... 우리 대장간에선 검신은 수리할 수도 없을게다. 만져보는 것만으로도 네 견식이 5년 아니 10년은 늘어난다고 봐도 좋을거다.”

“흠.”


메이지는 쉽사리 그 말이 믿기지 않는 모양이다. 사실 프리하야말로 검 하나 살펴본다고 실력이 는다는 것이 잘 와닿지 않는다. 검술이라면 모를까.


하빈저는 말할 시간도 아까운 듯 검에 집중했다. 솔직히 아티하는 저 물건과 동조했을 때 다른 검과는 달리 저항감이 전혀 없기 때문에 편리하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그만큼 이 당시의 아티하는 ‘배운 건 많은데 아는 건 없었다’고. 하빈저 역시 이 검을 전부 알 순 없었지만 그래도 전문가로서 쌓아온 지식과 경험만큼은 이해하고, 감탄했다.


“수리된 흔적도 없고 개조된 흔적도 없군. 날은 날카롭지 않지만 손에 들리면 전혀 달라지지 않소? (여기서 아티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엄청나게 진부하지만 엄청나게 잘 만들었어. 이 흠집들은 다른 무기와 충돌하면서 생긴 것인가? 오오, 메이지!”

“예 대장님.”

“가서 쓸 것좀 가져와라.”

“넵.”


하빈저는 메이지를 기다리지 않고 두 사람에게 일어나길 권했다.


“바로 가십시다. 수리를 하지 않는다면 기성품을 조금만 손봐서 결합하는 게 지금으로선 제일 좋을 것 같습니다. 이거에 맞는 손잡이는 새로 제작해야 할 겁니다. 추천서를 써드릴테니 시간이 되실 때 제국 수도에 가서 의뢰를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제국에 가게 될 일이 있다면 그렇게 하죠.”

“하하 이 하빈저 지금은 이렇게 이렌시아에서 철을 두드리고 있지만 한때는 ‘제국공방’의 장인에게 사사한 사람입니다. 나의 스승님도 손님 아 아티하님이군요. 아티하님의 검을 보면 분명 무보수라도 고쳐주려고 하실 겁니다.”

“뭐 잘 고쳐준다면 고맙지만요.”


이후로 검신의 금속, 화학반응을 확인하고 프리하의 기술적 요망을 상담해서 극히 간단한 형태의 손잡이부가 완성되었다. 작업시간이 짧지는 않았지만 프리하는 우미하와 함께 이야기하며 기다렸고, 그녀가 싫어하는 형태의 대화 패턴도 조금은 이해했다.


“꼭 스승님께 안부를 전달해주시는 겁니다?”

“가능하면요.”


그렇게 ‘용팔이대장간’을 일별한 프리하와 우미하는 다시 저택으로 돌아왔다. 무게중심이 조금 달라져 적응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해서 그는 혼자서 사용할 수 있는 작은 연무장을 소개받았다. 우미하는 나름의 일이 있었기 때문에 거기까지 함께 하진 않았다.


작가의말

중간에 이어지는 이야기? 


하빈저와 메이지는 콜옵을 하다가 그냥 머리속에 남아서 사용한 인명입니다. ㅋㅋ;;


다음 화에서는 그동안 있었던 일을 마무리하고 이제 새로 정말로 살수가 되는 길이 시작됩니다. 


아티하의 비틀린 인성이 이제 드러납니다 더욱.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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