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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gster 님의 서재입니다.

펠릭스전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夢ster
작품등록일 :
2014.12.22 00:00
최근연재일 :
2016.12.28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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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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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6.16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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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6

DUMMY

276


"무릇 기사란···."

드비어스 경의 일장 연설이 시작되었다. 이제 막 피곤한 훈련을 마친 펠릭스였지만 조용히 참으며 들을 수밖에 없었다.


이럴 때 괜히 나서서 말대꾸를 하는 것은 그야말로 자기 무덤을 파는 짓이었다. 어릴 적 페로우 기사단장 같은 가문의 완고한 동부 기사들에게서 훈련을 받으며 펠릭스는 이미 뼈저리게 그 사실을 체득하고 있었다.

대신 펠릭스는 드비어스 경의 얘기는 한쪽 귀로 흘리며 속으로는 조금 전에 끝난 훈련을 다시 돌이켜 보기 시작했다.


훈련은 소대 약 30명 정도의 일반 병사들이 모두 참가했다. 상대는 물론 펠릭스 혼자였다.

펠릭스에게 피곤한 훈련이었던 이유는 제 실력을 내지 못했던 탓이었다. 때문에 펠릭스는 이기기도 하고 지기도 했다. 어떤 때에는 이겼음에도 고램으로는 무리한 동작이었다며 패배 선고를 받기도 했다.



마지막 대련상대는 소대의 신참 병사들이었다. 배치 받은 지 두 달 밖에 되지 않았지만 이번 중부 중계진에서 몇 차례 실전을 겪고도 모두 무사히 살아남은 이들이었다.

이들 병사들 다섯은 버클러가 아니라 제대로 된 방패를 들었다. 거기다 창을 대신한 봉을 들고 진을 형성했다.


고램이 등장한 후 대규모 병사들을 동원한 전투는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 기사들조차도 어찌할 수 없는 일반병사들이 고램을 상대로 별 큰 전력이 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때문에 전선에서 병사들의 역할은 전투보다는 기타부수적인 다른 업무를 맡았다. 공병 역할이나 식량 조달, 운송. 가끔 겨울이면 동, 서부 산맥의 몬스터 몰이를 대신해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전투에 전혀 참가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매복 시에는 기사들의 시동 역할겸 본진의 방어를 맡았다. 그리고 전투가 벌어지면 때로 적의 기사들도 상대해야 했다. 그때 기본이 되는 전술이 방패와 창을 이용한 병진이었다.


장거리의 적은 소대의 궁수나 마법사가 견제하고 가까이 다가오려는 적은 방패병과 창병이 견제했다. 그러다 방패진을 돌파해 적이 들어서면 검과 버클러를 든 선임병사들이 마지막으로 상대하는 전술이었다.


물론 오러를 사용하는 기사를 상대로 병사들만으로는 크게 유용한 전술은 되지 못했다. 그나마 아군 기사들이 같이 있을 때의 얘기였다.

그러나 기사가 오러를 사용하지 않는 경우에는 상대하기 상당히 까다로웠다. 검사와 궁수가 없는 반쪽자리 진이었지만 결국 마지막 대련에서 펠릭스는 한 번도 이길 수가 없었다.



"펠릭스 경, 이번 대련에서 자네도 느꼈겠지만 혼자서 여러 명과 싸워 이긴다는 건 일종의 만용이요 환상이야. 얼핏 화려하고 멋지게 보이겠지만 현실은 절대 녹록하지 않아. 하벤 경이 했던 말도 그래. 뭔가 알 것 같다고? 그런데 왜 그 방법을 다른 사람에게는 알리지 않았을까? 왜 혼자서만 알고 있는 거지? 사실 손쉬운 방법 따위는 없었던 거야."

드비어스 경은 자신의 연설에 스스로 취했는지 펠릭스의 양 팔을 잡으며 말했다.

"자네의 사정은 이해하네. 하지만 사람마다 타고난 소질이 다른 것은 어쩔 수 없어. 그들은 타고난 천재들인 거야. 범인이 천재를 따라잡으려면 몇 배로 노력할 수밖에 없네. 오러력을 타고난 기사라도 그 점은 마찬가지야. 결국은 끊임없는 수련과 헌신만이 진정한 기사가 가야할 길이라네."

"예! 드비어스 경! 명심하겠습니다!"

펠릭스는 공감한다는 듯 일부러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드비어스 경의 손을 맞잡았다. 경험상 드디어 이 연설의 끝이 다가온 것을 느낀 것이다.

"뭘, 걱정하지 말게. 자네도 노력하면 언젠가는 그 경지에 닿을 날이 올 걸세!"


이후 몇 마디의 조언과 내일부터 새로 시작하자는 말을 남기고서야 드비어스 경은 겨우 자리를 떴다.

"휴~ 조금 전 훈련보다 더 피곤하다니까."

드비어스가 완전히 사라지자 펠릭스는 겨우 긴장을 풀었다.

"여~ 잔소리꾼은 이제 갔는가?"

"맴피스 씨."

"혹시나 들킬까봐 조마조마했다네."

모퉁이에서 맴피스가 나타났다. 얼굴가득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래, 많이 벌었습니까?"

"아~ 덕분에 생각보다 훨씬 짭짤했네. 하하하!"

맴피스는 품에 두툼한 모자를 두드리며 대답했다. 아마도 이번 내기에 딴 전표들이 들어있는 모양이었다.

"피셔 경과 다른 병사들도 좋아 하겠군요."

"아무렴, 그런데 펠릭스 경, 자네는 정말 필요 없나?"

"예. 저는 됐으니 다들 나눠 가지라고 하세요."

"그래? 우리야 좋지만 이거 괜히 미안해서 말이야. 자네 공이 제일 큰데."

"공이라뇨. 저야 당연히 해야 할 훈련을 했을 뿐입니다."

두 사람이 조심스럽게 얘기를 나누고 있는 순간이었다.

"과연, 그렇게 된 거였군요. 어쩐지 이상하다 했더니."

갑자기 기둥 뒤에서 말이 들렸다.

"누 누구야! 썩 나와!"

펠릭스와 맴피스는 순간 바짝 긴장해 기둥을 노려봤다. 심지어 맴피스는 공격마법을 서둘러 준비할 정도였다.

"아! 아! 접니다. 긴장할 거 없어요."

"칼?!"

"이런 젠장! 놀랬잖아!"

나타난 사람은 칼이었다.

"저야말로 놀랐습니다. 펠릭스, 네가 이런 사기극에 끼다니."

"아니, 그게···."

"험! 험! 사기라니. 거 듣기 민망하게시리. 자네가 오해할까봐 내 미리 말하지만 내가 설득한 거야. 펠릭스 경은 내 부탁에 마지못해 거들어 줬을 뿐이라고."

"그래요? 뭐, 저야 아무래도 좋습니다. 제 몫만 돌려받을 수 있다면. 아니 기왕이면 펠릭스가 거절한 몫도 저한테···."

"어허! 그건 안 될 소리. 이건 소대 공금이 될 거야. 자네도 알잖나? 저번에 갹출이 좀 많아서 다들 타격이 컸다는 걸. 특히 병사들은 더 그랬다고."

"그랬죠. 그러니 저도 끼워주셨으면 좋았잖습니까?"

"그것도 안 될 말이야. 이런 일은 아는 사람이 적을수록 좋은 거야. 그래서 소대 다른 기사 중에는 일부러 피셔에게만 알려줬다고."

"흐음, 어쩐지 지나치게 흥분한다 했더니, 피셔 경은 바람잡이였군요."

"그래, 아무튼 자네도 알게 됐으니 어쩔 수 없지. 분배를 받으려면 오늘 저녁에 막사에서 보도록 하자고."

"좋죠!"

"다시 말해두지만 많이는 못주네."

맴피스는 다시 한 번 못을 박고는 주변을 둘러보고 떠났다.


둘만 남게 되자 칼이 등 뒤의 식당을 가리켰다.

"자! 늦기 전에 서두르자고."

"보고서 때문이야?"

"그래."

"아~! 젠장!"

펠릭스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소리를 질렀다.


식당 한편에 칼과 펠릭스는 넓게 자리를 잡고 앉았다. 두 사람의 옆에는 어마어마한 서류들이 쌓여있었다. 칼과 펠릭스 뿐만이 아니었다. 주변에는 두 사람과 비슷하게 서류를 쌓아두고 작성 중인 사람들이 많았다.

기왕이 작성에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아예 식당에 오가는 시간마저 줄이려는 아이디어였다. 거기다 식당에는 항상 마실 수 있도록 차가 준비되어 있었던 것이다.

여름 산 위의 중부중계진에선 이곳이 가장 서늘하고 좋은 곳이었다.


"가뜩이나 쓸 것도 많은데. 쳇! 칼, 이게 다 너 때문이야."

"훗, 그래서 도와주려는 거잖아."

칼은 서류 하나를 펠릭스의 옆에 쌓으며 말했다.


펠릭스가 불평을 터트리는 것은 이번 훈련 때문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매복이 끝나면 작성해야 할 보고서와 서류들이 많았다. 두 사람은 이번에 고램 격파에 대한 보고서도 작성해야 했다. 거기다 이번 일반병과의 훈련도 엄연히 정식훈련 중 하나였다. 당연히 보고서를 작성해야 했다.

펠릭스는 기존의 보고서에 칼 때문에 자신이 하지 않아도 될 훈련 보고서까지 더해진 것이다.


"우와~ 엄청난 악필!"

"응? 누군데?"

"내 첫 격파에 대한 피셔 경의 증언 보고서. 이거 알아 볼 사람이 있으려나 모르겠네."

"어디? 이런, 정말로 암호 수준이군."

두 사람은 피셔가 작성한 서류를 바라보며 인상을 찡그렸다. 지렁이 수백 마리가 기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펠릭스, 어떻게 한 거야?"

"뭘?"

"승부 조작 말이야."

"아~ 손 흔드는 방향. 최종 배당결과에 따라 맴피스 마법사의 손을 흔드는 방향이 바뀌었거든."

"그래도 병사들과 미리 짜고 한 것도 아니고 실력 차이도 많이 나는 데 계획대로 안 될 수도 있었잖아?"

"그렇지, 그러니 배팅할 때 먼저 우리소대 병사들이 한 쪽에 몰리도록 바람을 잡았지. 모두 몰려가서 한쪽에 걸어 버리는 거야. 그리고 승부에 불합리한 결과가 나오면 피셔 경이나 다른 병사들이 일부러 억울한 척 난리를 피워 의심을 피하는 거지."

"헤~ 짧은 시간에 제법 머리들 썼는걸?"

"뭐, 나야 처음이었지만 다른 사람들은 이미 익숙한 눈치더라고."

"흐흐, 뻔하지. 맴피스 마법사와 그 도박패들이 주도했겠지."


잠시 후 두 사람은 한숨 돌리기 위해 차를 마셨다.

"그나저나 펠릭스, 이번 훈련 보고서는 뭐라고 쓸 거야?"

"흠, 일단은 얌전하게 적어야겠지? 드비어스 경도 쓸 테니. 거기다 나도 일단은 보수적인 동부 출신이고 드비어스 경의 말에 기본적으로는 공감하는 편이고."

"그래? 그럼 본심은? 드비어스 경의 말대로 다수를 이기는 것은 환상이라고 생각해? 역시 하벤 경의 말은 아무 의미가 없었던 걸까?"

"음~ 그게 사실은···."

펠릭스는 자신의 컵을 내려놓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칼, 네가 생각하기에 고램의 약점은 뭐라고 생각해?"

"음? 그야 인간의 움직임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거 아닌가?"

"그렇지. 보통 그렇게 알고들 있지."

"그런데?"

"작년 겨울에 말이야. 누군가 이런 얘기를 해주더라고. 고램의 진짜 약점은 기사의 성장가능성을 제한하는 거라고."

"응? 기사의 성장을? 그게 무슨 말이야?"

"간단히 말하면. 고램이 등장한 후로는 대부분의 기사들이 엑스퍼트 중급이상이 되길 원하지 않는다는 거야."

"응? 아니 왜?"

"생각해봐. 엑스퍼트 중급이나 상급이나 고램에 타면 별 차이가 없어. 심지어 마스터 검사라도 마찬가지야. 고램에 타면 다들 엑스퍼트 중급 수준으로 실력이 평균 절하되어 버리거든. 그러니 누가 일부러 힘들고 목숨을 걸어야 하는 중급 이상의 엑스퍼트가 되려고 하겠어?"

"···!"

펠릭스의 말에 칼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확실히···. 나도 지금까지 눈앞의 엑스퍼트 중급에만 집중해서 그 뒤의 일은 별로 생각해 본적이 없기는 했지만. 듣고 보니 그러네."

칼은 팔짱을 끼며 심각한 표정으로 생각에 잠겼다.

"이번 훈련은 어떻게 보면 사실 말도 안 되는 대련이었잖아. 무기며 제약들 하며. 상대 병사들 수준까지. 하지만 그래도 나름 수확은 있었어."

"어떤 수확?"

"다수를 상대하려면 우선 상대보다 실력이 월등이 뛰어나야 한다는 걸 알았지. 내가 이겼던 대련을 돌이켜 보면, 마주한 상대는 최대한 빠르게 쓰러뜨려야 했어. 단번에 제압하거나 아니면 최소한 두합정도? 거기다 다수에게 몰리지 않기 위해서는 상대보다 빠르게 움직여야 했고."

"그거야 일반론이잖아."

"그래, 그러니까 의미가 있는 거야. 생각해봐. 조금 전에 얘기했듯이 고램에 타면 라이더의 수준은 엑스퍼트 중급에서 평준화 되어버려. 거기다 화이트 고램이나 적이 사용하는 블랙 나이트나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성능이 크게 차이가 나는 것도 아니야. 사용하는 검술도 양쪽이 다 제식검술과 비슷한 형태야. 그럼에도 그 고램을 타고 에이스가 된 제시 교관이나 하벤 경, 혹은 지금 우리 에덜라드에서 최고 격퇴수를 자랑하는 더글라스 남작 같은 경우가 있어. 그 중에는 다수를 상대로 전과를 기록한 경우도 있다고. 이걸 대체 어떻게 설명해야하지?"

"흐음."

"물론 제시 교관이나 드비어스 경이 수련하는 중검 같은 기술이 있기는 해. 하지만 오랜 수련을 거쳐야만 제시 교관처럼 자유자재로 사용하게 되지. 심지어 드비어스 경도 그렇게는 못한다고. 그러면 하벤 경은? 하벤 경도 중검을 익혔을까? 기록을 보면 2년째에 9기야. 만약 익혔다면 1년 밖에 시간이 없었을 거야. 하지만 불과 1년 사이에 중검을 익혔다고? 아니, 아무리 타고난 검술의 재능이 있다고 해도 그건 무리라고 생각해. 내가 수련을 하고 있어서 아는데 그건 재능만으로 어떻게 되는 게 아니라고."

"평준화된 라이더의 기량, 비슷한 수준의 고램성능이라, 펠릭스, 네 말은 하벤 경이 뭔가 알거 같다고 한 게 빈말은 아니었다는 뜻이야?"

"하벤 경이 말한 의미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뭔가 있는 건 틀림없어. 그리고 사실은 나름 집히는 게 있기는 해."

"오! 역시!"

펠릭스의 말에 칼은 재빨리 의자를 바싹 당겨 펠릭스 쪽으로 다가갔다.

"그래, 그게 뭐야? 털어놔봐!"

"고램 말이야. 인간의 움직임을 완벽하게 구현하지는 못하지만 반면 그 나름의 이점이 있는 건 아닐까?"

"그 나름의 이점?"

"그래, 그러니 오히려 그 이점을 잘 이용한다면 하벤 경이 했던 것과 같은 무언가가 가능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해봤어."

"그래? 그래서 그 이점이 뭔데."

"그게, 가물가물 하단 말이야."

"뭐야? 좀 전에 집히는 게 있다며?"

"그러니까 뭐라고 해야 할지, 정확히 뭐라 말하기가 그래. 잡힐듯한데 확 와 닿지가 않는다고 할까."

"아~ 이러면 일부러 펠릭스, 널 그 훈련을 하게 한 보람이 없는데."

"응? 뭐야? 일부러?"

"아차!"

칼은 다급하게 자신의 입을 막았다. 그러나 맞은편의 펠릭스는 이미 화가 난 시선으로 칼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어디 설명을 해 보실까!"

펠릭스의 시선에 칼은 뒷머리를 긁적이며 슬그머니 눈을 피했다.

"사실은···. 어제 말하지 않고 넘어간 게 하나 있어."

"어제라니?"

"너와 스승님이 한 그 신기한 경험에 대해서 말이야."

"무의 상태, 관조에 대해서?"

"그래, 어제 내가 그 조건이 어둠의 오러와 접촉했을 것 이라고 했지만 사실 그 뒤에 에스턴 병대장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 하나가 더 떠올랐거든."

"또 다른 조건?"

칼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제 펠릭스의 훈련이 결정 되고 곧이어 레논이 에스턴 병대장을 불러왔다. 혹시 전투 중에 관조의 경험을 한 적이 있는지 물어보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에스턴 병대장은 고개를 저었다.

그나마 늦게 도착한 피셔와 리차드슨 경은 약간의 성과가 있었다.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을 찾았던 것이다.


당사자는 델무트 경이었다. 10년이 넘는 복무기간의 기사로 한번 제대했다가 다시 입대한 경우였다.

문제는 델무트 경이 현재 서부 중계지 전선에 매복중이라는 것이었다. 만나기 위해서는 최소한 두 달 이상이 걸려야했다.


"그리고 내가 보기에 드비어스 경이 잘못 짚은 점도 하나 있어."

"그게 뭔데?"

"펠릭스 너의 재능에 대해서 말이야."

"내 재능?"

"그래, 넌 오러나 다른 재능은 떨어질지 모르지만 고램 조종에 관해서 만큼은 나보다 더 재능이 있다고 생각해. 아니 어쩌면 저 하벤 경만큼이나 재능이 있을지 몰라."

"내가? 에이, 설마!"

칼의 말에 펠릭스는 오히려 부정했다.

"한번 돌이켜 보라고. 우리 기수 기사 졸업생들이 약 120명이 넘어 그 중에 어릴 적부터 고램 수업을 받은 녀석들이 펠릭스 너 말고도 몇몇 있었어. 하지만 조교로 뽑힌 녀석은 몇 명이었지? 그중에 교관이라는 별명까지 얻은 건 너 뿐이야. 심지어 교관들이 수업 자체를 너한테 맡길 정도였잖아?"

"음,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것만으로는 좀."

"아니, 생각해봐. 우리 졸업생 중에 네 손을 거치지 않은 녀석이 거의 없잖아? 거기다 나나 에드 녀석의 잘못 된 습관을 찾아내고 고쳐준 것도 그렇고 그렇게 알게 모르게 도움을 받은 녀석이 한둘이 아니라고. 다른 유명한 에이스들의 일화 중에 누구 그런 사람이 있었어?"

"하지만 격파 수가 얼마나 차이가 나는데."

"너와 하벤 경과 같은 에이스들의 차이는 그저 저들이 먼저 태어나 전장에서 먼저 이름을 날렸다는 것뿐이라고. 그리고 기억하지? 저 하벤 경 조차도 처음 두 번은 고램만 망실했었다고. 그러니 스스로 너무 평가절하 할 필요는 없다고."

칼이 거기까지 얘기하자 펠릭스도 더 이상 부정만 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나에게 일부러 이 대련을 시켰다? 내 재능으로 혹시나 하벤 경이 말한 힌트나 다수를 상대하는 요령 같은걸 찾아내지 않을까 싶어서?"

펠릭스의 말에 칼은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만약 알게 되면 펠릭스, 너에게도 분명 도움이 되는 거잖아?"

"좋아. 일단 그렇다고 치자고. 그래, 내게 있을지도 모를 그 재능과 관조의 경지를 경험하는 조건과 무슨 상관이야?"

"음. 이건 역시 나 혼자만의 가설이긴 한데. 너의 그 관찰력과 해석력이 또 다른 조건이 아니었을까 싶거든."

"으음, 그건 좀 무리가 있지 않을까? 델무트 경은 잘 모르니 제외하더라도 스승님은 그럼 어떻게 설명할 거야?"

"스승님은 고램 조종 실력은 조금 떨어지지만 경험과 연륜이 있잖아? 그동안 스승님이 해 오신 일들을 생각해 봐. 다른 젊은 기사들을 위해 여러 가지로 노력하고 또 무의 수련을 퍼트리기 위해 하신 일들 말이야. 내 생각엔 그러기위해서 사람들을 관찰해온 경험이 오랫동안 쌓였던 게 아닌가 싶어."

"그리고 델무트 경도 그럴 거다?"

"뭐 일단은, 델무트 경도 복무한지 10년이 넘었다고 하잖아?"

"으음···."

펠릭스는 잠시 말을 멈추고 생각에 잠겼다.


확실히 일리는 있었다. 관조 상태에서 상대의 움직임이 보이는 듯 한 경험은 바꾸어 생각해보면 펠릭스가 학교에서 친구들의 고램 조종을 도와주며 했던 경험과 비슷했다.


어떤 의도와 생각으로 친구들이 고램을 조종하고 또 그들의 행동에 고램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펠릭스는 수없이 반복해서 보고 들었었다.

그리고 밤이면 그들의 문제점을 분석해 해결책을 찾기 위해 고민했던 것이다.


지금까지 겪어온 실전을 돌이켜보면 분명 그때의 관찰 경험이 도움이 되었던 것 같았다.

첫 실전에서도 그랬다. 오러만 이용해 라이더를 노리는 공격은 펠릭스는 처음 겪어본 공격이었다. 처음 당하는 공격임에도 펠릭스는 상대의 의도를 바로 짚어냈고 두 번째 상대의 어설픈 동작과 자세로 상대가 초보 라이더임을 바로 알아차렸던 것이다.

심지어 그때는 관조의 상태도 아니었었다.


"하지만 이것만 가지고는···."

"그렇지? 그러니까 아직은 가설이라니까. 고작 2~3인만으로 판단을 내리기에는 무리가 있는 건 나도 인정해. 그러니까 아직은 아무에게도 얘기하지 않은 거라고."

그러나 답변을 하면서도 칼은 의기양양했다. 이미 반쯤은 확신하는 태도였다.

"그러면 역시 안드레아 경이나 드비어스 경은 결국 관조의 상태를 경험하지 못하는 걸까?"

"글쎄? 어디까지나 가설이니까."

"칼, 너는 어때? 너도 무의 수련을 하는 이상 한번 경험해 보고 싶지 않아?"

"나? 나야 별 상관없어. 그게 아니라도 충분히 해쳐나갈 자신도 있고."

"쳇, 천하의 칼에겐 그런 건 있으나 마나다 이건가?"

"저런, 너무 그러지 말라고! 나도 이래봬도 꽤나 열심히 노력하는 중이니까!"

"핫! 퍽이나 그러겠다."

"하하하하!"


칼과 펠릭스가 잠시 웃고 있는 동안 몇몇 사람들이 식당에 들어섰다. 더운 날씨에 땀과 흙먼지로 다들 지저분했다.

"어라? 저 녀석 오닐이잖아?"

"어? 그러네! 녀석 살아있었어! 오닐~!"

두 사람이 손짓해 부르자 오닐은 반가운 얼굴로 두 사람에게 다가왔다.

"여! 둘 다 오랜만이야!"

"오닐, 어떻게 된 거야?"

"교대조라면 어제 도착했어야 하지 않아?"

"원래대로라면 그렇지. 그러고 보니 너희는 아직 소식을 못 들었구나."

"무슨 소식?"

"베인브릿지 사령관이 돌아왔어. 동부전선의 규모와 편제가 바뀔 거야. 우리 소대는 고램을 모두 차출 당했어. 때문에 하루 늦게 도착한 거야."

"뭐?"

"그게 무슨 소리야?"

"대공세 말이야."

"대공세?"

"그래, 곧 여기 중앙중계진에도 부대 재편성이 시작될 거야."


아니나 다를까 지금 도착한 사람들의 얘기에 식당이 온통 들썩이기 시작했다. 발 빠른 이들은 다른 부대원에게 새 소식을 전하기 위해 서둘러 식당 밖으로 나서고 있었다.


갑작스러운 소식에 뜻하지 않은 긴장감이 넘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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