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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gster 님의 서재입니다.

펠릭스전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夢ster
작품등록일 :
2014.12.22 00:00
최근연재일 :
2016.12.28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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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28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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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쪽

283

DUMMY

283


"에스턴 병대장! 뒤를 부탁하네!"

"옛!"

여느 때와 달리 길버트 경의 명령은 그것뿐이었다. 그리고는 리차드슨 경과함께 심각한 표정으로 서둘러 중계진 지휘부로 향했다.


도착한 중부 중계진의 분위기는 동부 중계진과 사뭇 달랐다. 동부 중계진처럼 고램이나 병사들의 숫자가 줄어 한산해 보이는 건 마찬가지였지만 불안감과 긴장감이 느껴졌다. 다들 무언가에 쫓기는 듯했다.


병사들은 별다른 명령이 없어도 알아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직 부상이 낫지 않은 안드레아와 드비어스는 다시 중계진 병동으로 향했고 펠릭스와 칼은 레논과 맴피스 마법사의 지시로 고램들을 주기고로 옮겼다. 그동안 경험이 좀 쌓였다고 이제는 시키지 않아도 척척 이었다.


고램들은 동부 중계진에서 이미 정비를 마친 상태로 이동했기 때문에 별달리 손을 볼 일은 없었다. 때문에 레논과 맴피스만 인수인계를 위해 주기고에 남고 칼과 펠릭스는 먼저 식사를 위해 식당으로 향했다.


중계진이 유달리 한산해 보인다 생각했더니 모두 식당에 모여 있었던 모양이었다. 사람들의 숫자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분위기는 어두웠다.

"역시 레드숄더 때문일까?"

"그렇겠지. 뭐, 무리도 아니지."

펠릭스의 질문에 칼도 주변을 둘러보며 대답했다.


꽤 많은 사람들이 여기저기 삼삼오오모여서 자기들끼리 쑥덕거리고 있었다. 모두 말소리를 최대한 죽인 채 상채를 숙이고 서로 머리를 모으고 있었다. 그러나 다들 표정에 공통으로 나타난 불안감, 초조감이 주변으로 퍼져나가 식당 공기를 무겁게 만들었다.


요 며칠 길버트 소대의 분위기도 정상은 아니었다. 레드숄더의 출몰소식 때문이었다. 길버트 경은 수시로 지휘부를 들락거리느라 저녁 펠릭스와 칼의 수련도 돌봐주지 못했다. 선임기사들과 에스턴 병대장은 시간만 나면 모여서 심각한 표정으로 얘기를 나눴다.


그러나 그것도 이곳 분위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칼과 펠릭스는 이곳에 와서야 비로소 사람들이 레드숄더에 대해 느끼는 진정한 공포감의 정도를 알게 된 듯했다.


문제는 지금 칼과 펠릭스의 사정이었다. 가뜩이나 먹을거리가 부족한 중부중계진이었다. 거기에 더해 이런 사람들의 분위기는 뭔가 밥을 먹기에 불편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분위기에 눌린 두 사람은 구석에서 조용히 눈칫밥을 먹어야했다. 과연 중부 중계진답게 빵과 스프 외에 저장콩죽 뿐인 부실한 메뉴였다.


"어? 칼, 저기 봐."

"음? 어디?"

맛없는 콩죽을 스푼으로 들쑤시던 펠릭스가 갑자기 입구 쪽을 보고는 칼에게 말했다. 마침 길버트 소대원들 몇몇이 들어오고 있었다.

"뭐야 피셔 경과 엔필드 씨잖아? 저게 왜?"

칼은 시큰둥한 반응이었다. 그러나 펠릭스는 별난 걸 봤다는 듯 들어선 행렬을 유심히 관찰하며 눈으로 따라갔다.

"뭔가 이상한데?"

"뭐가? 다들 밥이라도 먹으러 온 거겠지."

"아니야. 저걸 봐."

펠릭스는 고개를 숙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행렬은 피셔 경이 선두에 서있고 엔필드와 다른 소대의 궁수들이 뒤를 따르고 있었다. 엔필드나 궁수들이야 원래 무표정한 얼굴들이었지만 피셔마저 평소와 달리 진지한 표정이었다. 선두의 피셔와 다섯 명의 궁수들은 뭔가 심각한 이야기를 나누며 주방으로 향하고 있었다.

"펠릭스, 대체 뭐가 이상하다는 거야? 언제나 있는 피셔 경의 중계진 주방습격 같은데?"

"그럴까? 고기 금지령의 벌을 받은 피셔 경이? 그것도 이곳 중부 중계진은 먹을거리가 부족하다며 이곳으로 간다면 늘 짜증부터 내는 저 사람이? 우리 저번에 여기 왔을 땐 피셔 경은 이곳 식당 쪽은 거들떠보지도 않았었다고. 거기다 언제부터 엔필드 씨와 궁수들도 거기에 동참했지?"

"음~ 듣고 보니 그러네."

"무엇보다 마음에 걸리는 건 방금 행렬의 순서야."

"순서?"

"무려 피셔 경이 선두에 서 있었다고. 생각해봐! 평소에 소대에서 엔필드 씨와 피셔 경이 어떻게 줄을 서서 이동했었는지."

"으음."

펠릭스의 말에 칼은 잠시 식기를 내려놓고 생각에 잠겼다. 그러고 보니 방금 본 행렬의 순서는 어딘가 이상했다.


특별히 작전행동 중에 정해진 순서가 아니라면 엔필드와 궁수들이 누군가의 뒤를 따르는 일은 거의 없었다. 궁수들은 선두에서 척후를 보거나 독립해서 매복하는 경우가 보통이었다.

이들 사냥꾼 출신들은 부대 내에서도 상당히 폐쇄적인 성격의 집단이었다. 설혹 타 소대의 사냥꾼들과는 잘 어울려도 자기 소대원들에겐 소원한 경우도 많았다.


당연히 누군가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러니 평소에도 이들이 이동하면 누군가 그들의 뒤에 따라와 무언가 부탁을 하는 경우는 있어도 방금처럼 누군가의 뒤를 따라가며 대화를 하는 경우는 상당히 드물었다.

특히나 툭하면 고기 타령을 하면서도 귀찮은 사냥은 죽어라 가기 싫어하는 피셔 경이었다. 엔필드와 궁수들도 그런 피셔를 상당히 귀찮아 한다는 것은 딱히 비밀도 아니었다. 그런 피셔가 방금처럼 사냥꾼들을 선두에서 이끌며 그것도 심각한 얼굴로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생각해보니 확실히 그러네."

"그렇지?"

"그래도 펠릭스, 너 용케도 그런 걸 알아차렸네?"

"난 그래도 궁수들과 조금은 친분이 있으니까."

"아, 그랬지. 난 아직도 궁수들은 좀 상대하기 어렵던데···."

"그나저나 대체 무슨 일인 걸까?"

두 사람은 호기심에 찬 시선으로 행렬이 사라진 주방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자 잠시 후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주방문이 열리더니 누군가가 나왔다.

"응?"

"어라? 저게 누구야?"

나타난 인물은 피셔도 궁수들 중의 누군가도 아니었다. 그러나 의외로 칼과 펠릭스 두 사람도 아는 얼굴이었다.



동기인 스콧은 크게 눈에 띄지 않는 성격으로 남부 맥퍼슨 영지에 집이 있는 기사가문 출신이었다. 출신이 그렇다보니 당연히 칼을 따르는 조용한 추종자 중 하나였다.

"그날 서부 중계진 앞에서 스쳐 지난후로는 처음이네. 무사해서 다행이다."

"어때? 잘 지냈어?"

"나야 보는 것처럼 잘 지냈지. 너희들 얘기는 여기서 오닐을 만나서 대충 들었어."

칼과 펠릭스의 질문에 스콧은 스프에 커다란 감자 건더기를 건져 올리며 말했다.

"너희들 격파수가 벌써 두기, 세기 반이라면서? 제법 유명하더라."

"이봐 스콧, 언제 적 얘기를 하는 거야?"

"후후후, 이번에 한기씩 더 늘었다고."

칼과 펠릭스의 자랑에 스콧은 떠 올리던 스푼을 멈춘 채 놀란 눈으로 바라봤다.

"이야! 그럼 칼, 넌 이제 하나만 더 잡으면 나이트급 고램으로 갈아타는 거야?"

"규칙대로라면 그렇겠지. 하지만 실제로 어떻게 될지 몰라."

"하하! 역시, 너희 둘 실력이라면 해낼 줄 알았어! 그렇다는 건 펠릭스, 너도 괜찮은 거지?"

아마도 오닐에게서 펠릭스의 군무와 어둠의 오러에 대한 이야기까지 들은 모양이었다.

"그래, 지금은 괜찮아."

"걱정 마. 다 잘 될 거야. 학교에서도 그랬잖아? 무슨 일이 있어도 결국은 다 잘 풀렸었다고."

스콧은 떠올린 감자를 후후 불어가며 맛나게 베어 물었다. 스콧은 어디서 구했는지 이곳 중부중계진에선 보기 힘든 제법 풍성해 보이는 야채스프를 들고 있었다.



식당 문을 열고나온 인물이 바로 스콧이었다. 스콧이 나오자 칼이 자리에서 일어서서 말없이 손을 흔들었다. 스콧은 바로 알아차리곤 칼과 펠릭스와 합석했던 것이다.


스콧의 긍정적인 평가에 펠릭스가 쓴 웃음을 짓는 동안 칼이 물었다.

"스콧, 여기 동부에 우리 동기들은 몇 명이나 온 거야?"

"음, 라이더로는 오닐과 너희들 둘, 그리고 레인저로는 나하고 짐, 로벨, 존, 그리고 버로우까지 다섯이야."

스콧이 이름을 댄 친구들은 다들 남부 출신들이었다.

"다들 어디에 있어?"

"무사한 거야?"

"응, 내가알기론 아직은 다들 무사해. 오닐의 소대는 지금 나가있고 버로우와 짐은 예비라이더 보직을 맡아서 서부 중계진에 있어. 단지 로벨이 좀···."

"로벨이 왜?"

"첫 실전을 좀 거창하게 치렀어. 상대 레인저들과 로벨의 소대가 격하게 맞부딪혀서 서로 사상자가 꽤나 나왔거든."

스콧은 걱정스러운 듯 먹던 감자를 다시 내려놓고 얼굴을 찌푸렸다.

"지금은 미들사이드 요새로 후송되었을 거야."

"뭐? 후송?! 설마 다친 거야?"

후송이라는 얘기에 칼이 크게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물었다.

"아 아니, 아니야. 로벨은 그냥 심적으로 타격을 좀 받은 것뿐이야. 단지 소대가 괴멸 상태라 재배치도 받을 겸 안정을 취하기 위해 본대로 후송된 거뿐이야."

칼의 태도에 스콧은 놀라서 큰 손동작을 놀리며 칼을 진정시켰다. 그제야 칼은 길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의자에 등을 기댔다.

"걱정 마 칼, 우리 모두 다들 약속을 기억하고 있으니, 너와 다시 남부로 돌아가 아이샤님을 만날 때까지 우린 절대 그렇게 쉽게 당하지 않아."

"훗, 그래야지. 다들 진짜 할 일이 남아있는데 절대 여기서 죽을 수는 없잖아!"

"물론이지!"

"남부를 위해!!"

"남부를 위해!!"

칼과 스콧은 자신들만의 구호를 외치더니 책상위로 서로의 팔뚝을 감아 잡았다. 지켜보는 펠릭스는 부러운 시선으로 남부소년들의 끈끈한 유대감을 바라봤다. 새삼 학교 입학식 때의 모습이 떠올랐다.


"흠! 흠!"

두 사람이 요란스럽게 떠들자 곧바로 주변에서 기사들과 병사들의 눈총이 쏟아졌다. 세 사람은 웃음을 참으며 슬그머니 고개를 숙였다.


그 자세에서 펠릭스는 목소리를 잔뜩 죽인 채 물었다.

"이봐 스콧, 여기 이 분위기, 레드숄더 때문인 거야?"

스콧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칼괴 펠릭스는 번갈아가며 질문을 던졌다.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왜 이 사람들은 다들 여기 모여 있는 거야?"

"으음,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되지?"

스콧이 망설이자 칼과 펠릭스는 다시 주변을 잠시 살펴보더니 소리죽여 동시에 말했다.

"레드숄더!"



"그러니까 녀석이 나타난 건 대충 이주일 전이야."

스콧은 행여나 다른 사람들이 들을까 주변의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세 사람은 테이블 가운데로 머리를 모으고 목소리를 최대한 낮추고 대화를 했다.

우습게도 식당을 매운 사람들 대부분이 취하고 있는 바로 그 자세였다.

"이주일이면 우리가 여기 떠나올 때군."

"까딱하면 우리가 마주칠 뻔 한 건가?"

칼과 펠릭스는 작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길버트 소대는 이곳 중부 중계진에서 근무를 마친지 얼마 지나지 않아 급하게 동부 중계진으로 이동했었다. 그러다 동부 중계진에서도 사고를 당해 이주일 만에 이곳으로 다시 돌아온 것이다.

불과 한 달도 되지 않는 사이에 길버트 소대는 두 곳의 중계진을 마구 옮겨 다니고 있었다. 스콧이나 다른 동기들의 배치도 마찬가지였다.

이곳을 떠나기 전 두 사람과 근무지 순환이 한 달 차이나는 오닐과 만났었다. 그리고 역시 순환 차이가 많이 나야했을 스콧과 지금 같이 마주하고 있었다.

대공세로 인한 전력 차출 때문이었다. 보아하니 동부전선 병력 전체가 이리저리 정신없이 이동 중인 듯했다.


"아무튼 너희들이 떠나고 얼마 후, 내가 도착한 지 며칠 후, 저녁 늦게 고램 순찰조가 적에게 당한 매복조의 고램들을 싣고 돌아온 일이 있었어. 그런데···."

"그런데 그 고램들의 전부 왼쪽 어깨에서 가슴 중앙까지 검흔이 있었다?"

스콧이 말을 꺼내기 전에 칼이 먼저 끼어들었다.

"쳇! 뭐야? 알고 있었던 거야?"

"아니, 우리도 레드숄더에 대해서는 여기 오기 며칠 전에야 들었어. 자 그래서? 계속해봐. 스콧."

"그 검흔을 보자 선임 기사들이나 병사들은 모두 레드숄더라고 하면서 다들 공포에 질렸는데. 문제는 지휘부의 태도였어."

"지휘부가 왜?"

"지휘부에선 아직도 그 고램들이 레드숄더에게 당했다고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거든."

"뭐야?"

"허~ 참!"

칼과 펠릭스는 답답하다는 표정으로 스콧을 바라봤다.


칼과 펠릭스가 동부 중계진에서 이곳으로 이주 만에 돌아온 이유가 레드숄더 때문이었다. 동부 중계진에서 자신들을 이곳으로 보낼 때는 레드숄더 출몰 때문이라고 하고선 정작 이곳에선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얘기였다.


"나도 알아. 답답하지. 하지만 그때는 일선 기사들끼리도 의견이 분분했어. 일 년이나 나타나지 않았는데 녀석일 리 없다며 우연이라는 쪽, 반면 누가 이런 기술을 똑같이 흉내 내겠냐며 녀석이 다시 나타났다는 쪽으로 갈린 거지. 거기다 전체 회의에서 지휘부와 일선 기사들 사이에 이 문제의 판단과 처리를 두고 서로 언성이 좀 높아지기도 했고. 가뜩이나 대공세로 인한 고램들이 차출, 소대 해체, 인원이 재배치로 다들 신경이 곤두서 있었는데 때마침 이런 사건이 터진 거지."

"음~"

스콧의 설명을 듣고 칼과 펠릭스는 걱정스런 표정으로 서로 바라봤다. 듣고 보니 상황이 보통 심각하지 않은 듯했다.

"그럼 여기 사람들은 뭐야? 왜 다들 식당에 모여 있는 거야?"

"지휘부에서 취한 임시방편 때문이야. 레드숄더라고 인정은 하지 않지만 그래도 일단 대비를 하기 위해 순찰을 늘렸거든. 그러자니 인원이 부족해서 각 소대 예비라이더들까지 임시로 고램 순찰조로 차출, 편성되었어. 그런데 고램 순찰조에는 레인저 기사들은 별로 필요가 없지. 때문에 남은 레인저들만 개점 휴업상태가 되버린 거야. 그렇다고 소대별 훈련을 하기에도 인원이 부족하니 결국 다들 일정이 엉망이 되 버린 거지."

"거기다 불안하기도 하고. 그래서 다들 여기 모여 있다?"

스콧의 말을 듣고 난 칼은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식당 안을 한번 스윽 훑었다. 그리곤 마치 주변에 들으라는 듯 일부러 소리 높여 내뱉었다.

"쯧, 한심하기는···. 하다못해 개인 훈련이라도 할 것이지."

갑작스런 칼의 행동에 펠릭스와 스콧은 당황해서 칼의 팔을 잡고 내렸다.

"이 이봐! 칼!"

"그러지마!"

아니나 다를까 칼의 목소리를 들은 주변의 몇몇 기사들이 험악한 눈빛으로 돌아봤다.


분위기를 돌리기 위해 펠릭스가 재빨리 다른 화제를 꺼냈다.

"그런데 스콧, 좀 전에 식당에는 무슨 일로 들어갔던 거야?"

"응? 아~ 이번에 서부 중계진에서 감자와 야채를 좀 가져왔거든. 그걸 전해주러 갔던 거야. 겸사겸사 좀 얻어먹을 겸해서 말이야."

스콧은 자신이 먹고 있던 중부중계진 답지 않은 풍성한 야채스프를 가리키며 말했다.

"아하! 그랬군! 그런데 스콧, 너 거기서 뭔가 이상한 거 보지 못했어?"

"응? 이상한 거라니?"

"거기 너 나오기 전에 사람들이 대여섯 명 들어갔었잖아?"

"음? 아- 그 사람들. 뭔가 밀거래를 하려는 모양이던데?"

"밀거래?"

"무슨 거래?"

"글쎄? 이미 연락을 받았는지 외부업자도 주방에 와 있더라고. 그 사냥꾼들 전통에서 뭔가 노란색 병을 하나씩 꺼내던데 아마 핀비 벌꿀 아니었을까? 그거 구하기가 쉽지 않아서 수도 귀족들에게 꽤 비싼 값으로 팔린다고 들었거든."

"어?"

"뭐야?"

"왜? 뭔가 잘못됐어?"

스콧의 대답에 칼과 펠릭스는 황당한 표정으로 서로 쳐다봤다. 그리곤 다시 스콧을 보며 물었다.

"스콧, 너 제대로 본거 맞아?"

"뭘?"

"그러니까 병 말이야. 정말 사냥꾼들이 전통에서 꺼낸 거야?"

"혹시 사냥꾼들이 아니라 거기 같이 있던 좀 불량하게 생긴 기사가 꺼낸 요만한 쇠로된 휴대용 물통 아니었어?"

펠릭스는 피셔가 늘 가지고 다니던 조그만 손바닥만 한 크기의 물통을 손으로 그리며 물었다. 그러나 스콧은 두 번 생각할 필요도 없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 분명 사냥꾼들이 맞아. 그것도 한명씩 화살통에서 제법 큰 병을 꺼내서 건네더라고."

"끄응~"

"뭐지? 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지?"

칼과 펠릭스는 팔짱을 끼고 머리를 갸우뚱거렸다.


밀거래 자체는 크게 문제가 될 것 없었다. 보급 물품을 전달하는 외부 상인들은 가끔 돈이나 현물을 받고 전선의 병사들이나 기사들의 편지를 전달해 주거나 필요로 하는 것들을 따로 팔기도 했다. 예를 들면 망사스타킹 같은 것들이었다.

이런 사소한 물품까지 상부에서 신경써주지 못하기 때문에 지휘부에서도 어느 정도는 눈감아주는 실정이었다.


단지 전선에선 현금을 지닌 이들이 별로 없기에 거래에는 주로 현물이 이용되었다. 당연히 주거래 현물은 사냥물품이었다. 그러다보니 소대 궁수들이 주로 나서서 거래를 했다.

펠릭스도 경험이 있었다. 몇 달 전 서부 중계진에서 사냥을 다녀 온 후 주방에서 엔필드와 주방장이 보는 가운데 뭔지 모를 거래를 했던 것이다.


문제는 칼과 펠릭스가 가지고 있는 정보였다.

이번 동부 중계진에서 핀비의 벌집을 건드린 건 피셔로 알고 있었다. 레논의 추측에 의하면 핀비의 벌꿀을 얻기 위해 피셔가 일부러 벌인 일일 가능성이 컸다.

언제나 말썽을 일으키는 철면피 피셔 경이라면 당연히 벌일만한 사건이었다. 누구라도 그렇게 생각할 터였다. 그런데 현장을 목격한 스콧의 입에서 엉뚱한 이름이 나온 것이다.

엔필드 씨와 그 궁수들이라니. 두 사람은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으음~"

"왜? 무슨 일인데? 뭔가 잘못된 거야?"

영문을 알지 못하는 스콧이 칼과 펠릭스의 얼굴을 번갈아 보며 물었지만 두 사람은 답이 없었다. 그렇게 잠시 세 사람이 침묵하는 동안 다시 주방문이 열리며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다. 피셔와 엔필드 들이었다.


"이크, 나왔다!"

"숙여!"

"응? 왜? 뭔데?"

칼과 펠릭스는 제풀에 놀라서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영문을 알 리 없는 스콧은 오히려 무슨 일인가 싶어 크게 몸을 돌려 주방문 쪽을 돌아봤다. 세 사람의 행동은 별 움직임이 없는 주방에서 되레 사람들의 시선을 끌고 말았다.

"스콧!"

"이런 멍청이!"

아니나 다를까 칼과 펠릭스를 알아본 피셔가 세 사람이 있는 테이블로 다가왔다. 피셔의 손에는 큰 찜통과 빵 같은 먹을 것이 든 커다란 주머니가 양손에 들려있었다.

"여~ 뭐야? 너희들 먼저 식사하러 온 거냐?"

"아, 예, 피셔 경."

"피셔 경도 식사하러 오신 겁니까?"

"아니, 알잖아? 난 한동안 고기 금지라는 거, 대신 우리 부상병들 먹을 것 좀 챙겨주려고 말이야."

피셔는 양손의 음식들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찜통과 주머니에는 삶은 고기와 햄, 소시지 같은 것들이 잔뜩 들어있었다.

"아~ 하하하! 그 그랬군요."

"역시 피셔 경입니다. 하하하."

이미 스콧에게 주방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들었던 두 사람은 어색하게 웃으며 피셔를 칭찬했다. 그러면서 살짝 곁눈질로 식당 문쪽을 살폈다.

피셔와 펠릭스들이 얘기를 나누는 사이 엔필드와 사냥꾼들은 빠른 걸음으로 식당을 나서고 있었다. 그 뒤로는 처음 보는 외지 상인의 모습도 보였다. 상인의 어깨에는 제법 묵직한 자루가 들려있었다.


그러자 갑자기 피셔가 칼과 펠릭스의 시야를 가리며 들어와 물었다.

"그런데 이 녀석은?"

"아, 스콧이라고 학교 동기입니다. 레인저로 동부에 발령 받아서 왔더군요."

"그래?"

칼의 소개에 스콧은 어색하게 웃으며 피셔에게 인사를 했다. 그제야 스콧도 왜 칼과 펠릭스가 주방에서 이 사람들 이야기를 물었던 건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피셔는 스콧과 두 사람을 잠시 살펴보더니 갑자기 자신이 들고 있던 음식들을 식탁에 내려놓기 시작했다.

"좋아. 너희들 꽤 오랜만에 만난 모양이니 내가 선물을 좀 주지."

"예?"

"자! 자! 받으라고."

"엇, 피셔 경?!"

피셔는 찜통과 주머니에서 고기와 먹을 것들을 꺼내 세 사람의 접시에 덜어주기 시작했다.

"자 잠깐만요! 이 이러시면···."

펠릭스가 곤란한 표정으로 주변을 바라봤다.

"괜찮아! 괜찮아! 부담가질 필요 없어! 다 우리 궁수들이 잡은 것들 이거나 그것과 교환한 거니까. 어차피 나는 고기 금지라 가져가도 먹지도 못할 테니. 내 몫까지 먹는 셈 치라고!"

"우왓! 이거 저도 먹어도 되는 겁니까?"

"그럼! 물론이지. 하하하!"

칼과 펠릭스는 부담스러워 했지만 때 아닌 고기에 스콧은 입이 헤벌쭉 벌어졌다.


언제나 부실한 중부 중계진의 메뉴들이었다. 피셔가 고기들을 꺼내자 당장 식당 사람들의 부러운 시선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피셔는 그런 주변의 시선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음식들을 수북이 내려놓았다. 그리곤 마지막으로 자신이 가지고다니던 예의 그 손바닥만 한 쇠로된 물통을 내려놓으며 한쪽 눈을 찡긋했다.

"이것 때문에 너희들도 그 고생을 했으니 맛은 봐야겠지?"

"어? 이건?"

"저기 그러니까···."

칼과 펠릭스는 속으로 적잖이 당황하고 있었다.

그 수통에 담긴 내용물이 무언지는 이미 알고 있었다.


주방에서 밀거래를 했을 거라고 생각했던 장본인이 자신들 앞에 증거품을 내려놓았다.

"자, 그럼. 소대 막사에서 보자고!"

고기와 음식들을 내려놓은 피셔는 칼과 펠릭스가 뭐라고 하기 전에 자리를 떴다.


칼과 펠릭스는 조금은 석연찮은 얼굴로 망설이며 식탁위의 음식들을, 특히 벌꿀이 든 수통을 보고 있었다. 스콧의 증언에도 불구하고 믿지 못하고 있었는데 이제 떡하니 자신들 앞에 그 물건이 있었던 것이다.

"흐음~ 그러니까 같은 소대 선임이었단 말이지? 그러면 좀 전에 그 궁수들도 같은 소대원들 인거야?"

스콧은 고기와 햄들을 이것저것 자신의 접시에 담으며 물었다. 그러나 칼과 펠릭스는 말이 없었다.

"뭐야? 너희들은 안 먹을 거야?"

막 햄을 빵 사이에 끼워 넣던 스콧이 의아한 표정으로 두 사람을 쳐다봤다.

"너희들 먹는 거 앞에 두고 그러는 거 아니다.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일단 이것도 먹어도 되는 거지? 자! 고민은 일단 먹고 나서 생각하자고!"

두 사람이 여전히 멍하니 보고 있자 스콧이 재빨리 벌꿀이 든 수통을 채어서는 빈 그릇에 적당히 붇기 시작했다. 그 순간이었다.

"흠! 흠!"

"···?"

갑자기 주변이 어두워지더니 누군가 헛기침을 했다. 세 사람이 돌아보니 어느새 사람들이 몰려와 자신들의 식탁을 둘러싸고 있었다.

"흐흐흐!"

"거 보아하니 친구들이 별로 식욕이 없어 보이는데···."

"우리가 좀 거들어줘도 되겠지?"

몰려온 사람들은 저마다 그릇이나 접시를 들고 있었다. 모두 탐욕으로 눈빛들이 번들거리고 있었다.

칼과 펠릭스는 차마 거절하지 못했다. 두 사람이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이자 사람들은 바로 테이블로 달려들기 시작했다.

"좋았어! 비켜!"

"어엇!"

"우와와!"

몰려드는 사람들의 기세에 밀려 칼과 펠릭스는 자리에서 일어나 뒤로 물러서야만했다.

"이봐! 그 햄은 내꺼야! 손 치워!"

"웃기지 마! 그 고기나 이리 내 놔!"

"어이, 이것 봐! 이거 꿀이잖아?"

"흐흐, 이게 웬 횡재냐?"

"자 잠깐만! 잠깐만요!"

사람들은 저마다 테이블 위의 음식들을 확보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럴수록 테이블은 엉망이 되어갔다. 스콧은 그 와중에도 필사적으로 자신의 접시에 고기와 햄을 챙겼다.


칼과 펠릭스는 어이없는 표정으로 엉망이 된 자신들의 테이블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설마 우리가 떠나있던 이주동안 중부 중계진에 식량이 다 떨어진 건 아니겠지?"

"저 모습을 보니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 같은데···."

두 사람은 서로 바라보고는 피식 웃었다.


스콧은 용케도 그 난리판에서 칼과 펠릭스가 먹을 것까지 챙겨 나왔다.

"휴~ 겨우 빠져나왔네. 자! 받아!"

스콧이 두 사람에게 먹을 것이 담긴 접시를 건넸다. 그리고 피셔의 수통을 칼에게 건넸다.

"너희들 혹시 핀비 벌꿀 먹어봤어?"

"아니, 칼 너는?"

칼도 고개를 저었다. 두 사람은 그래도 귀족이라 일반 벌꿀은 제법 먹어봤지만 핀비 벌꿀은 먹어본 적이 없었다. 칼은 혹시나 해서 받아 든 피셔의 빈 수통을 거꾸로 들어 보았다. 그러나 예상대로 수통은 한 방울도 남김없이 비어있었다.

"자, 먹어봐! 너희 소대 선임기사가 너희들 때문에 어렵게 넘겨준 거 같은데 맛은 봐야지."

스콧은 작은 그릇에 따로 핀비 벌꿀을 챙겨두고 있었다. 그리곤 칼과 펠릭스에게 핀비 벌꿀을 바른 빵을 건넸다.

"···!"

"흐음!"

한입씩 베어 문 칼과 펠릭스의 눈이 크게 벌어졌다. 태어나 처음 맛보는 달콤함이었다.

"소문만 들었지 이거 정말 맛있는데? 과연 중앙의 귀족들이 비싼 돈을 주고 사 먹는 이유가 있는데?"

스콧의 말에 칼과 펠릭스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과연 피셔가 고기 금지령을 감수 하면서도 구할 만한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세 사람은 한동안 벽에 등을 기댄 채 서서 핀비 벌꿀을 바른 빵을 여유롭게 먹으며 자신들의 테이블위의 음식들이 사라지는 모습을 바라봤다.



한바탕 난리가 끝난 후 세 사람은 다시 자리를 찾아 앉았다. 배도 부르고 주변도 어느새 정리가 되어있었다. 식당 내의 다른 사람들도 만족한 듯 식당은 이제 간간히 웃음소리도 들렸다.

그렇게 편안하게 의자 뒤로 몸을 깊숙이 기댄 칼이 천정을 보며 말했다.

"이봐 펠릭스, 어쩌면 동부중계진에서의 그 건은 피셔 경이 아니라 엔필드 씨들이 일으킨 게 아닐까?"

"글쎄다. 휴~ 어떻게 된 건지 이젠 나도 모르겠다. 아니 이젠 아무래도 좋은 거 같아."

배가 부른 펠릭스는 더 이상 귀찮은 생각은 하기 싫은 표정이었다. 그러자 갑자기 칼이 자세를 바로 하더니 말했다.

"아니 가만!"

"왜? 칼. 뭐라도 떠올랐어?"

"펠릭스, 어쩌면 우리 질문의 방향이 잘못된 거 아닐까?"

"질문의 방향이 잘못되다니?"

"어쩌면 이 건은 누가'가 아니라 '왜'를 생각했어야 했던 걸지도 모르겠어."

"왜?"

"좀 전에 핀비 벌꿀을 먹으면서 스콧의 말 들었잖아? 이거 꽤나 값이 나간다고 말이야. 그러니까 피셔 경이나 엔필드 씨 둘 중에 누가 했는가가 아니라 핀비의 벌꿀을 주고 얻으려는 게 무엇이었을까 라는 걸 생각했어야 한다는 거지. 펠릭스 너도 좀 전에 엔필드 씨와 같이 나가던 그 외부업자 봤지? 그 사람만 뭔가 등에 짐을 지고 있었어. 보통 물물교환 일 텐데 엔필드 씨나 사냥꾼들은 모두 올 때처럼 빈손들이었잖아?"

"흐음~"

"어때 펠릭스? 넌 뭔가 짚이는 거 없어?"

"글쎄? 그러고 보니···."

펠릭스는 문득 몇 달 전 사냥에서 그 검은 화살사건이 떠올랐다. 그러나 그것과 관련해 무언가 물물교환을 할 만한 물품은 떠오르지 않았다.

더구나 그 일은 비밀로 다른 사람에게 아직 발설한 적이 없었다. 딱히 칼에게까지 무언가를 비밀로 하고 싶지는 않았다. 다만 엔필드들과 같이 사냥을 다녀 온 후로 펠릭스는 엔필드와 궁수들에게 묘한 동지애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그 감정도 배신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아마도 그날 산에서 있었던 몇 가지 의식 같은 행위들과 같이 겪었던 경험 때문이라 생각했다. 이를테면 엔필드들이 펠릭스를 수습사냥꾼 취급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러다보니 산에서 돌아온 후 길버트 경에게서 들었던 그 말이 자꾸만 펠릭스를 망설이게 만들었다.

'산에서 일어난 일은 산에서 끝낸다.'

사냥꾼들 사이의 언약 같은 것이었다. 표면적인 의미가 아니라 그 속뜻을 생각하다보니 어느새 펠릭스도 다른 사람들에게 배타적인 사냥꾼들의 관습이 어렴풋이 이해가 되었다.


"그러고 보니 라니? 뭔가 생각나는 게 있는 거야? 펠릭스?"

"응? 어- 글쎄? 음~ 그러니까······."

펠릭스가 잠시 망설이는 순간이었다. 갑자기 식당의 문이 '쾅'하고 열렸다.

"이봐! 또 야! 또 나타났어!"

갑자기 나타난 기사의 고함소리에 나름 좋았던 식당안의 분위기가 다시 싸늘해졌다.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식당 입구로 모아진 채로 모두의 움직임이 굳었다.

사람들은 잠시 그 상태로 굳어 있다가 갑자기 풀려난 듯 문 쪽을 향해 일제히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중계진에는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사람들 틈에 끼어 칼과 펠릭스, 스콧도 같이 몰려가고 있었다.

"이런 제길, 이번엔 누가 당한거야?"

"몰라, 하지만 이번에도 순찰조가 아니라 매복조인가 봐."

"순찰나간 녀석들은 대체 뭘 하고 있었던 거야!"

"이번에도 마법신호는 안 올라왔다고 하더라고. 정기 연락이 늦어서 가보니 이미 상황은 끝나있었데."

처음 식당에 와서 알렸던 기사가 선두에서 이런저런 정보를 전달하고 있었다. 가만히 듣고 있던 스콧이 갑자기 불안한 표정으로 칼을 보며 말했다.

"저기, 칼!"

"왜?"

"오닐의 소대도 매복 중이었어. 어쩌면···."

"뭐야?"

"이런 젠장!"

스콧의 말에 칼과 펠릭스의 눈이 커졌다. 그리곤 걸음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중계진 남쪽과 북쪽은 동서를 연결하는 건물로 막혀있었다. 남북을 연결하는 1층 터널의 경계를 지키는 경비기사들이 당황해서 사람들을 막으려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사람들은 경비기사들을 밀치고 북문으로 향했다.


건물 북쪽은 주기고였다. 그 앞마당에는 순찰조와 비상출동을 위한 대부분의 고램들이 대기하고 있어야했다. 그러나 대공세로 인한 차출 때문인지 임시로 늘린 순찰조 때문인지 대기 중인 고램들의 숫자는 크게 줄어있었다.


북문 마당은 순찰조가 끌고 온 야크수레를 중심으로 사람들과 고램들이 양쪽으로 크게 나뉘어있었다. 야크수레 주변에는 할버드를 든 병사들과 기사들이 경계를 서고 있었다.

"박스터~! 이런 제길! 비켜! 난 저 녀석 친구라고! 비키지 못해!"

"이 멍청아! 네 녀석이 저길 올라가서 어쩌게? 조종석 열지 마! 협착 돼있어서 함부로 열면 위험해! 의료마법사! 의료마법사는 아직 이야?"

야크수레 주변에서 경비기사와 수레로 다가가려는 기사가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부르는 이름을 들어보니 오닐의 소대는 아닌 모양이었다.

세 사람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야크수레위에서 고램들을 살펴본 정비사가 내려오자 사람들이 그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어때?"

기사의 물음에 정비사는 대답대신 오른손을 날처럼 세워 자신의 왼쪽어깨에서 가슴중앙 부근까지 자르는 흉내를 내어보였다.

"역시 그녀석인가?"

"레드숄더다. 그녀석이 틀림없어."

그 기사의 말을 시작으로 주변 여기저기에서 작은 소리로 레드숄더라는 이름이 튀어나왔다. 사람들의 관심은 순식간에 수레에서 그쪽으로 쏠렸다. 정체를 확인한 사람들은 식당에서처럼 삼삼오오 끼리끼리 모여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그사이 의료마법사가 왔다. 의료마법사가 지켜보는 가운데 정비사가 조심스럽게 조종석을 강제개방 시켰다.

조종석이 열리자마자 정비사는 곧 고개를 돌리더니 반대편 달려가 토하기 시작했다. 의료마법사는 조종석을 잠시 바라보더니 야크수레 아래의 경비기사장을 내려 보며 틀렸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세대 모두 마찬가지였다.


펠릭스는 모두와 달리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야크수레 아래에서 보기에 고램들은 모두 멀쩡해보였다. 펠릭스의 시선은 고램의 허리부분에 머물러 있었다.

조종석의 발판 부분이자 환기구가 있는 곳이었다. 그곳에서는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펠릭스는 그렇게 많은 핏물을 처음 보았다. 분명 조종석에는 라이더 한 사람 뿐일 텐데 핏물은 야크수레를 적시고도 모자라서 흙바닥을 흥건하게 적시고 있었다.

한사람의 몸 어디에 그렇게나 많은 핏물이 담겨있는지 믿어지지 않았다.

"작전관이다. 젠장! 이제야 어슬렁어슬렁 나타나다니."

옆에서 스콧이 돌아보며 투덜거렸다. 펠릭스도 고개를 돌리니 중부중계진 작전관이 부대 최선임기사들 몇몇과 함께 다가오고 있었다. 그 중에는 길버트 경과 리차드슨 경의 모습도 보였다.


펠릭스는 문득 칼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것을 깨달았다.

"이봐 스콧, 칼은 어디 간 거야?"

"응? 아! 좀 전에 저쪽으로 가던데?"

"그래?"

스콧은 북문 쪽을 가리켰다. 야크수레 행렬의 뒤쪽이었다.


펠릭스는 야크수레를 한 대씩 지나쳐 북문 쪽으로 향했다. 북문 기둥 부근은 야크수레 주변과 달리 어둡고 경비도 그다지 없었다. 칼은 그곳에 서 있었다.

"이봐 칼!"

다가가며 칼의 이름을 부르던 펠릭스는 멈칫했다. 다가가자 어둠에 가려 기둥에 기대에 있던 물체가 눈에 들어온 것이다.

크로비스 군의 미니트 고램이었다.

"이 이건?!"

좀 더 다가가자 또 한 대의 고램이 어둠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이번에는 적의 나이트급 주력 기종인 흑기사였다.

"칼, 이것들은?"

"아~ 레논 경이 했던 말 기억나지?"

"그 녀석 설마 정말로 자군 기체를 버리고 간 거야?"

칼의 옆에 다가가 선 펠릭스는 놀란 표정으로 적의 고램을 바라봤다. 두 기체 중 미니트 고램은 조종석에 큰 상처가 있었다.

"단순히 버리고 간 것만은 아닌 거 같아. 저걸 봐. 어때 펠릭스, 알아보겠어?"

칼은 손을 들어 흑기사를 가리켰다. 흑기사의 기체도 심하게 손상되어 있었다. 머리와 팔, 허리의 주요부분도 잘려있었다.

저 정도 손상이라면 아마도 전투 중에 가동 불능에 빠졌을 가능성이 컸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크게 눈에 띄는 점은 조종석이었다.

조종석이 검에 의한 관통상이 있었던 것이다.

"세상에 저건!"

구멍을 자세히 살펴보던 펠릭스는 경악하며 칼을 바라봤다.

"레드숄더라는 녀석 어쩌면 실력만 굉장한 게 아닌 모양이야."

칼은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펠릭스를 돌아보며 말했다.


흑기사의 다른 곳에 난 검상과 조종석에 구멍을 뚫은 검상은 서로 다른 검에 의해 입은 상처였다. 더욱이 조종석의 검상은 정면이 아니라 흑기사의 등에서 찌른 상처였다.


한여름이었다.

펠릭스는 세삼 몸에 소름이 돋아 오르는 것을 느꼈다.


작가의말

좀 기네요.

나눌까 하다가...

거기다 후반부는 퇴고도 별로 못하고 올립니다.

죄송합니다.


새 노트북 적응이 쉽지 않네요.

너무 성능이 좋다보니...

계속 글 쓰다 인터넷 접속하는 뻘짓을 하고 있습니다.

괜히 산거 아닌가 싶은 생각이.... -_-;


다음 연재는 아마 좀 시간이 지나야 할 거 같습니다.

미리 사과말씀 드립니다.

죄송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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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6 285 +32 16.10.18 3,497 112 37쪽
285 284 붉은 용 사냥. +28 16.09.25 3,992 121 26쪽
» 283 +22 16.08.28 4,227 110 33쪽
283 282 +50 16.08.22 4,074 136 24쪽
282 281 +38 16.07.23 4,179 129 17쪽
281 280 +32 16.07.07 4,439 126 25쪽
280 279 +32 16.06.30 4,382 129 32쪽
279 278 +10 16.06.22 4,464 139 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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