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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gster 님의 서재입니다.

펠릭스전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夢ster
작품등록일 :
2014.12.22 00:00
최근연재일 :
2016.12.28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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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0.18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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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쪽

285

DUMMY

285


'쾅!'

갑자기 단상이 부서질 듯 흔들렸다.

"젠장! 누군들 이 자리가 좋아서 이러고 있는 줄 알아!"

기사들의 불평에 참다못한 중부중계진 작전관의 분노가 터졌다.

"나도 한때는 잘나가던 라이더였다고! 빌어먹을! 그때 부상만 당하지 않았더라면, 이런 자리 줘도 사양했을 거야! 마음 같아선 나도 지금이라도 당장 고램을 타고 나가고 싶다고."

그러자 단상아래 누군가가 비꼬듯 소곤거렸다.

"흥! 그 뱃살로? 잘도 고램에 타겠다!"

"뭐야?! 어떤 녀석이야?"

"뭐? 내가 틀린 말 했냐? 어디 가서 거울이라도 보시지!"

"너!!"

작전관이 단상에서 뛰어내리며 자신의 흉을 본 기사를 덮쳤다. 그 기사와 주변 사람들도 작전관과 지휘부 기사들의 멱살을 잡아채기 시작했다.


잠시 조용해지는가 싶었던 회의장은 다시 순식간에 서로를 비난하는 욕설이 난무했다. 결국 단상 한쪽에 대기하던 선임기사들이 나서야만 했다.

"자! 자! 다들 진정해! 진정들하라고!"

사태는 선임기사들이 여기저기서 기사들을 다독이고 부대 최고선임인 길버트 경이 작전관을 대신해 단상으로 올라서고서야 다시 가라앉았다.

"다들 불안한 마음은 이해해. 하지만 작전관이나 지휘부에서도 마냥 손을 놓고만 있었던 건 아니야. 실제로 내 소대를 비롯해 인근 중계진이나 미들사이드 요새에 발 빠르게 지원군을 요청한 것도 그렇고. 다른 계획도 준비 중이야."

"길버트 경, 경도 아시지 않습니까? 이게 소대 한 둘 늘어난 걸로 어떻게 해결될 사태가 아니지 않습니까?"

"맞습니다. 좀 더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합니다."

"그러니까 말하지 않았나. 다른 계획도 준비 중이라고 말이야."

"어떤 계획입니까?"

"으음, 그게···."

길버트 경은 잠시 대답을 망설이다 작전관과 눈을 마주쳤다.


이번 작전은 상부에 정식으로 허가받은 작전이 아니었다. 이른바 뿔 뽑기는 개인이나 소수의 복수전적인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정식작전이 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나마 작전관의 권한으로 이루어지는 임시작전이었다. 즉 이 작전에 어떤 문제가 발생하면 전적으로 이곳 중계진의 작전관과 지휘부가 책임을 지게 되는 것이었다. 때문에 작전관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제야 길버트 경은 말을 이었다.


"우선 지원 가능한 인력과 고램으로 새로 고램 순찰 소대를 늘릴 거야. 그리고 회의시작 때도 말했지만 베인브릿지 사령관에게도 정식으로 사건을 보고하기로 했고."

"지원 가능한 인력이라고 해봐야 지금 여기에는 우리뿐이지 않습니까? 거기다 고램은 어디서 빼온단 말입니까?"

"그러니까 말하지 않았나? 인근 중계진이나 미들사이드 요새에 지원을 요청했다고."

"대공세 준비로 고램이 차출되어가는 중인데 지원 가능한 고램이 있단 말입니까?"

"각 중계진의 경비대 고램이 있지 않나? 거기다 좀 전에 누군가 언급했듯이 무리한 몸매 때문에 작전관이나 지휘부의 고램도 사실상 방치상태였으니 이용할 수 있을 테고 말이야."

"으하하하!"

길버트 경의 말의 작전관은 기분 나쁜 듯 코웃음을 쳤지만 회의실에는 한바탕 웃음이 터졌다.

"거기다 다들 알다시피 미들사이드 요새에는 그 외에도 여분의 고램도 제법 있으니, 베인브릿지가 생색내지 않고 계획이 원안대로만 된다면 한바탕 작전을 펼치는데 고램이 부족하지는 않을 거야."

"과연 베인브릿지가 그렇게 쉽게 미들사이드 요새의 고램이나 인력을 이쪽으로 돌리려고 할까요?"

"알잖나? 베인브릿지도 나름 중앙이나 귀족의회 쪽에 눈치를 많이 살핀다는 걸. 가뜩이나 대공세로 바쁜 이때에 이런 불 쌍스런 일로 문제를 일으켜 평판을 깎이긴 싫겠지. 분명 더 위쪽으로 보고가 올라가기 전에 해결하고 싶을 거야. 거기다 사실 미들사이드 요새에 여력의 고램따위 무슨 소용이겠나? 지금 여기 중계진이 뚫리면 끝장일 텐데."

"허긴, 그렇지."

"녀석도 분명 이 와중에 스코필드 사령관에게 문제가 생겼다는 보고를 하기는 싫겠지."

분위기가 제법 수수해진 참이었다. 그러자 누군가 손을 들고 질문을 했다.

"고램이야 그렇다 쳐도 그럼 라이더들은 어쩝니까?"

"음, 대공세로 고램이 차출되어 해체된 소대의 라이더들을 우선 일차적으로 이용해야지."

"하지만 그들 중 상당수는 이미 후방으로 차출되었거나 새로 고램을 전달받고 전선에 매복중입니다만."

"걱정 말게, 그 외에도 남아있는 예비라이더들이 있지 않은가? 각 소대의 예비라이더들도 적극 활용할 생각일세."

"예비라이더들요?"

"그래, 그들로 따로 새 조를 만들어 순찰대 숫자를 늘릴 계획이야."

그 말에 다시 회의장이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예비 라이더들은 대부분 실력이 부족하거나 새로 졸업한 햇병아리들인데?"

"괜찮을까?"

웅성거리는 소리가 잦아지도록 잠시 기다린 길버트 경이 다시 입을 열었다.

"다들 걱정하는 게 뭔지 잘 아네. 하지만 이미 그 점도 생각해 뒀네. 나나 여기 다른 선임기사들도 그동안 기록이나 경험을 서로 비교해보고 내린 결론이야. 아마 복무연수가 오래된 다른 기사들도 어쩌면 느끼고 있었을 거야."

"기록이나 경험?"

"그게 뭡니까?"

"최근 수년간 각 기사학교 출신들의 고램 조종 실력이 비약적으로 좋아지고 있다는 점이야. 실제로 저기, 내 소대의 마이티 라이더들 둘은 올해 졸업한 중앙기사학교 동기생들이야. 그렇지만 실력은 내가 지금까지 같이해본 라이더들 중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야."

"올해 졸업생?"

"중앙기사학교?"

길버트 경의 손짓에 따라 회의장의 사람들의 몸이 자연스럽게 뒤로 돌아갔다. 회의장 분위기에 관계없이 자기들 얘기에 빠져있던 펠릭스와 칼은 갑자기 쏟아지는 사람들의 시선에 슬그머니 끼고 있던 팔짱을 풀어 내려야했다.

"어이, 저 녀석들 그거 아니야?"

"철부지 도련님소대?"

"그러고 보니 올해 길버트 경 고램 소대 구성이 이상하다고 하더니."

"바보! 그게 언제 적 얘긴데. 소문 못 들었어? 저 녀석들 저번에 여기 중부중계진에서 잡은 고램이 각각 2기, 3기씩이라고."

"아~ 그게 저 녀석들이야? 요즘 한 가닥 한다는 소문의 도련님들이?"

"이번에 동부중계진에서도 하나씩 더 잡았다던데?"

"얼씨구? 그러면 하벤 경의 기록에 근접한 건가?"

"그러고 보니 올해 중앙기사학교 졸업생들은 다 엑스퍼트였다며?"

"어이, 그거 불길한 거 아냐?"

기사들은 본인들을 앞에 두고 자기들끼리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다들 올해 길버트 소대의 신규 고램 라이더들의 특이한 구성에 대한 소문은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던 것이다.


작위만 남은 귀족에 귀족취급을 하지 않는 남부출신, 거기다 이름만 귀족인 서자로 구성된 이른바 귀족 같지 않은 귀족출신 삼인으로만 구성된 소대였다.

거기다 나쁜 소문은 더 빨리 퍼진다고 오자마자 펠릭스가 친 사고로 철부지 도련님소대는 금세 동부전선의 명물이 될 뻔했다.


악평을 들을까봐 두 사람은 그 동안 주변의 평판에 별로 신경 쓰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어느새 두 사람에 대한 소문은 중계진 이곳저곳에 제법 넓게 퍼져있었다.

다행이 소문은 펠릭스가 사냥을 다녀온 이후로 조금씩 호의적으로 변했던 모양이었다. 거기다 두 사람의 고램 격파기록이 올라가자 이제는 주목의 대상이 되어있었다.


"흐음, 그러고 보니 몇 년 전 덱스터도 그런 소리 했잖아? 요즘은 새로 온 신입라이더들이 오래된 몇몇 멍청이들 보다 훨씬 낫더라고 말이야."

"맞아, 나도 들은 기억이 나는군."

"사실 여기 동부전선만 해도 연수만 오래됐지 고램 라이더라고 부르기에 창피한 녀석들도 꽤 되잖아?"


기사들의 시선이 따갑게 쏟아졌다. 사람들은 칼과 펠릭스를 바로 앞에 두고 마치 경마를 앞둔 종마의 품평회라도 하는 듯 웅성거리고 있었다.

"저기 칼, 이럴 땐 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

많은 사람들의 시선에 익숙하지 않은 펠릭스는 당황스럽기도 하고 부끄러워 힐끗 칼을 보며 물었다. 그나마 칼은 학교에서도 그렇고 늘 사람들에게 둘러싸여있던 인기인이이라 경험이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칼?"

"음? 아~"

칼은 바로 대답을 하지 않았다. 돌아보니 무언가 다른 생각을 하느라 정신이 팔려있었던 모양이었다. 잠시 멍하니 혼자 생각에 빠져 미처 펠릭스의 질문이나 사람들의 시선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다가 뒤늦게 답했다.

"별거 아니야. 그냥···. 웃어."

그러나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던 탓인지 칼의 경험과 조언에도 불구하고 칼의 웃음은 펠릭스와 마찬가지로 어색하기 짝이 없었다.




다행이 두 사람의 어색한 순간은 금세 끝이 났다. 사람들이 어느 정도 수긍한 듯하자 곧이어 작전관의 작전내용 브리핑이 이어졌다.

"다들 알겠지만 여기 동부전선에서는 중부전선과 달리 지명대결을 신청 한다거나 매번 예상되는 시간과 장소에 적이 나타나지 않아. 해서 우선은 이렇게 작전을 짰네."

사람들은 작전관의 설명을 따라 시선을 정면 흑판으로 향했다. 그러나 커다란 흑판에는 그저 W자가 크게 그려져 있을 뿐이었다.

"우선 기존에 해체된 소대를 중심으로 추가 매복조를 구성할거야. 알고 있겠지만 이미 그들 일부는 작전지에 나가있어. 그 외에 남는 각 소대의 예비라이더들로 추가 순찰조를 구성하고. 그리고 이렇게!"

작전관은 W자를 두드리며 말했다.

"전투가 발생하면 하나의 매복조가 최소한 2개의 순찰조의 지원을 받도록 촘촘한 그물망을 짜는 거야."

"숫자로 밀어붙인다?! 흐음~"

"어때?"

"글쎄? 일단은 그럴싸한데?"

작전관의 설명에 다들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머릿수로 밀어붙이는 것은 이른바 뿔 뽑기에 자주 사용되는 방법이었다.

기사들의 태도를 보며 작전관과 연단위의 선임기사들도 나름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서 언제 시작할건데?"

"아직 미들사이드 요새에 요청한 인원과 고램이 도착하지 않았어. 빌어먹을 베인브릿지 녀석! 때문에 주말쯤은 돼야 전체 배치가 완료될 거야. 그때까지는 지금 순찰조를 좀 무리하게 돌리는 수밖에 없지. 매복조에는 각별히 주의하라고 이미 통지를 내린 상태고."

"쳇! 하필이면 우기도 얼마 남지 않은 이때에 또 녀석이 나타나다니!"

"그나저나 이게 대체 동부전선에 얼마만의 뿔 뽑기가 되는 거야?"

"얼마만인가가 중요한가? 빌어먹을, 희생자가 많지 않을 때 진즉에 했었어야 했는데."

"좋아, 그럼 구체적인 배치나 고램의 지원은 개별 통보하도록 할 테니 이만 해산하도록 하자고."

그나마 평기사들의 불평이 어느 정도 해소된 듯하자 작전관은 웃음을 띠며 해산을 명했다. 막 사람들이 돌아서서 나가려는 순간이었다. 갑자기 누군가가 돌아서며 물었다.

"참! 작전관, 이번 작전은 뭐 작전명 같은 거 없는 거야?"

"아! 그러고 보니 작전명을 깜빡할 뻔했군."

그 기사의 질문에 작전관은 깜빡했다는 표현을 썼지만 표정은 그렇지 않았다. 마치 그 질문을 기다렸다는 듯 득의만만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곤 작전명을 발표하기 위해 다시 연단으로 올라서려했다.

"자 잠깐만! 작전관!"

"그건 다시 상의하기로 하지 않았나!"

작전관의 행동에 막 단상을 내려서던 선임기사들이 다급하게 말리려고 다가섰다. 그러나 간발의 차였다.

"이번 작전명은 붉은 용 사냥으로 명명했다."

"붉은 용 사냥?"

일순 회의장의 분위기가 조용해졌다.

"어때 근사하지?"

작전관은 자신이 생각해도 잘 지었다는 표정이었다. 그러나 이어진 작전관의 발언에 조용한 분위기는 다시 싸늘하게 변했다. 작전관을 말리려던 선임기사들은 차마 다음 상황을 보지 못하겠다는 듯 손을 들어 눈을 가렸다. 그리곤 고개를 절래절래 저으며 슬금슬금 자리를 피했다.

"어? 왜? 다들 표정들이 왜 그래? 나름 고심해서 지은 작전명인데?"

결국 기사들의 분노가 터졌다.

"야! 이 미친 돼지 놈아!"

"붉은 용이라니!"

"전우들을 죽인 녀석에게 보통 그런 별명을 붙이냐?"

"그냥 레드숄더라고 해도 불길할 판에!"

무언가 물건들이 단상으로 일제히 날아들었다.

"아앗! 자 잠깐! 말로 해! 말로 하라고!"

"어이구! 여하튼 저 녀석은!"

"하여간 저렇게 눈치가 없으니 매번 베인브릿지에게 이용만 당하는 거지!"

회의장은 순식간에 다시 아수라장으로 변해버렸다.

"휴~"

길버트 경을 비롯해 선임기사들은 가까스로 자신의 소대원들을 추슬러 회의장을 빠져나왔다. 회의장은 여전히 시끄러운 상태였다. 아마도 혼란은 늦게까지 이어질 모양이었다.




회의가 끝난 다음날이었다. 길버트 경의 소대원 중 안드레아 경과 드비어스 경은 아직 부상에서 완전히 낫지 않은 상태였다. 그리고 병사들도 여전히 몇몇은 부상을 당한 상태였다.


당연히 길버트 경의 소대도 순찰대로 편성되었다. 때문에 칼과 펠릭스 두 사람은 중계진 북쪽의 주기고에서 소대의 고램들을 점검 중이었다.

"오러 전달용액 잔량."

"체크!"

"건틀릿."

"체크!"

"안전장치."

"체크!"

점검과정은 지루하게 이루어졌다. 펠릭스가 조종석 밖에서 항목을 부르면 칼이 조종석에서 일일이 움직여보거나 게이지를 확인하며 동작을 확인했다.


고램들은 이미 정비를 끝난 상태였기에 특별히 손을 볼 필요는 없었다. 이렇게 그저 간단한 점검 정도만 할 뿐이라 평소 고램 정비를 총괄하는 맴피스 마법사도 보이지 않았다.


"그나저나 아무리 비공식 작전이라지만 붉은 용 사냥이라니. 꽤나 거창한 이름이 붙어버렸군."

"그래? 나는 꽤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는데."

"하~ 칼, 너도 참. 어제 작전관이 당하던 꼴을 보고도 그런 소리가 나와?"

펠릭스는 칼의 대답에 불안한 듯 한숨을 내 쉬었다. 그러나 칼은 무성의하게 그저 씩 웃어 보일 뿐이었다. 아무래도 칼은 여전히 레드숄더에 대해 호기심을 가지고 있는 듯했다.


"맴피스 마법사는 레논 경과 다른 예비라이더들의 고램을 보러갔다고 쳐도 피셔 경은 어디로 가신 거람?"

"뭐 있어봐야 지금 상황에 무슨 도움이 되겠어?"

"하긴 그야 그렇지만."

"그러고 보니 피셔 경은 여기 온 뒤로 괜히 바쁜 모양이더라?"

"그러게 평소에는 가까이 가지도 않던 이곳 식당을 뻔질나게 들락거리고 있으니."

"역시 그날 그 핀비 벌꿀 때문일까? 사냥꾼들과 관계가 있는 모양이던데 펠릭스, 너 어디 짚이는 곳 없어?"

"음, 글쎄?"

칼의 물음에 펠릭스는 다시 지난번 식당에서의 일이 생각났다. 그때도 펠릭스는 순간 검은 화살의 일이 떠올랐지만 얘기를 꺼낼 타이밍을 놓쳤었다. 그리고 지금도 이 이야기를 칼에게 해야 할까 망설이는 순간이었다.


"오~ 역시, 너희들도 여기 있었구나!"

"어? 스콧, 그리고 너희들?!"

"이야! 너희들이 여긴 어쩐 일이야!"

칼과 펠릭스는 반가운 얼굴로 점검 중이던 고램에서 뛰어내렸다. 스콧과 함께 찾아온 이들은 그동안 만나지 못했던 동부전선에 같이 배치된 친구들이었다.




주기고 앞 북쪽은 중계진의 고램 연병장이었다. 지금 이곳은 고램과 사람들로 온통 붐비고 있었다. 인근 중계진과 미들사이드 요새에서 도착한 여분의 고램들과 라이더들로 새로 순찰대 조를 짜기 위해 고램을 정비하는 중이었다.

펠릭스와 칼은 잠시 일손을 놓고 친구들과 연병장이 잘 보이는 한쪽으로 갔다. 다들 반가운 표정을 서로 마주보며 웃고 있었다.


"여기에 오닐 녀석만 있으면 동부전선으로 발령받은 중앙기사학교 동기들은 다 모이는 건가?"

칼은 스콧을 비롯해 짐, 로벨, 존, 그리고 버로우까지 다섯을 바라보며 말했다. 지금 전선에 나가있는 오닐을 비롯해 이들 다섯은 모두 남부출신들이었다. 그것도 모두 칼과 친한, 이른바 학창시절 칼 패거리로 불리던 구성원들이었다.

"미들사이드 요새 주기장에 있던 고램 정비 특기생들도 있잖아?"

"힉스와 페로? 녀석들은 이번에 고램들 차출하면서 같이 차출됐어. 이젠 없어."

펠릭스의 말을 로벨이 받았다. 로벨은 모여 있는 동기들 중에 유난히 창백한 표정이었다. 펠릭스와 칼도 스콧에게서 로벨의 소대가 전멸할 뻔했다는 이야기를 들어 이유를 알고 있었다.

"네 얘기는 들었어. 로벨."

"괜찮은 거야?"

칼과 펠릭스의 질문에 로벨은 희미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아. 그저 처음이라 심적으로 충격을 좀 받았을 뿐이야. 부상을 당한 게 아니니까."

로벨의 대답에도 칼은 짐짓 펠릭스에게 눈짓을 했다. 혹시나 로벨에게서 어둠의 오러가 느껴지지는 않는지 확인해 보라는 뜻이었다.

"아니, 괜찮아. 로벨은 무사해."

펠릭스의 말에 칼은 안도의 숨을 쉬었다.


"그나저나 우리야 말로 얘기 들었어."

"칼, 펠릭스, 너희들 제법 유명해 졌더라?"

"벌써 고램을 몇 기나 잡았다며?"

"하하, 우리야 운이 좋았다고 해야 하나? 그보다 너희들은 여기 어쩐 일이야?"

"스콧의 말로는 너희들 모두 다른 중계진에 있었다며?"

"아, 우리?"

칼과 펠릭스의 질문에 다른 다섯은 서로 마주보며 씩 웃더니 대답했다.

"당연히 우리도 모두 이번 작전에 라이더로 차출됐지."

"너희들 모두다?"

"그럼!"

"물론이지."

모두의 대답에 펠릭스는 잠시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예비라이더는 짐과 버로우 뿐이라고 그랬잖아?"

펠릭스는 그 얘기를 했던 스콧을 보며 말했다.

"원래는 그랬지. 아무튼 이게 다 펠릭스 네 덕분이지."

"응? 내덕분이라고?"

스콧의 대답에 펠릭스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이거 왜이래? 교관님 그새 잊으셨습니까?"

"섭섭한데요? 교관?"

펠릭스의 표정에 다른 다섯이 낄낄거리며 펠릭스를 보며 말했다.

"이런, 기억 안 나는 거야?"

친구들의 반응에 칼은 소리치며 팔꿈치로 펠릭스를 살짝 밀쳤다.

"교관? 아!"

그제야 펠릭스도 알겠다는 듯 소리쳤다.


중앙기사학교 시절 고램조종을 배우면서 펠릭스의 손을 거치지 않은 소년들은 거의 없었다. 앞에 있던 다섯도 당연히 펠릭스의 도움을 거쳤던 것이다.

오랜만에 학창시절 별명을 들은 펠릭스는 슬쩍 얼굴을 붉혔다.

"후기 훈련소 레인저 교육 마지막에 고램 조종이 있었거든."

"그때. 교관들이 다들 놀라더라니까. 다들 갈수록 고램 조종 실력들이 좋아진다고 말이야."

"다른 학교 생도들의 실력도 좋은 편이었지만 특히 우리 중앙기사학교출신들은 올해 유독 실력이 좋다고 교관들의 칭찬이 자자했었거든."

"펠릭스, 너 아니었으면 우린 아마 대부분 학교에서 고램 기초기동 시험도 통과 못했을 거야."

"레인저 교육에 고램 조종 훈련이 포함되어 있었어?"

"그래, 형식적이긴 했지만 퇴소 마지막 주에 짧게 고램 조종훈련이 포함되어 있었어."

"그 훈련을 통과하면 서류에 예비라이더 적성 있음이라는 도장을 받을 수 있거든. 그러면 나중에 레인저소대로 발령 받고난 후 예비라이더 보직을 받게 되는 거지. 그리고 선임 라이더들이 제대하고 후속 라이더가 없으면 그 자리로 옮겨가게 되고."

"하지만 우리는 이미 졸업 전에 다들 그 인증을 받았다고 하나봐. 그거 때문에 후기 훈련소 교관들과 조교들이 상당히 놀라는 눈치였다고."

"다 펠릭스, 네 덕분이야."

"그래? 그건 몰랐네."

친구들의 설명을 들으며 쑥스러워하던 펠릭스는 다시 살짝 고개를 돌렸다.


펠릭스도 후기 교육을 레인저로 받았었다. 다만 펠릭스는 일주일 여를 남겨두고 세비안의 기지로 보직을 고렘 라이더로 바꾸면서 미리 퇴소했다. 후기 훈련소에서의 고램 조종 훈련은 아마도 그 후에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러고 보니 다들 무사한지 모르겠네."

펠릭스는 문득 후기 훈련소의 사람들이 떠올랐다.

세비안, 에드먼드, 에드, 붉은 머리의 케니. 특이하게 의족 의수를 하고서도 훈련병들을 압도하던 글랜포드 교관.


"그래도 펠릭스, 네 실력이 좋은 건 알고 있었지만 설마 1년도 되기 전에 이렇게 적 고램을 몇 기나 쓰러트릴 줄은 몰랐어."

"역시 칼이 우리 신생 남부 수호기사단의 고램 교관으로 임명할 만하다니까."

펠릭스가 잠시 후기 훈련소를 떠올리며 있는 동안 스콧과 다른 친구들이 펠릭스의 칭찬을 하기 시작했다.

"아니 그건 난 아직 수락하지 않았······. 응? 가만 그걸 너희들이 어떻게 알고 있는 거야?"

펠릭스는 의아한 표정으로 친구들을 돌아봤다. 남부 수호기사단의 얘기와 그 부단장직에 관한 얘기는 펠릭스도 여기 동부전선의 미들사이드 요새에서의 훈련을 받을 때 칼에게서 처음 들었던 얘기였다.


"응? 뭐야, 모르는 거야?"

"칼? 어떻게 된 거야? 이미 끝난 얘기 아니었어?"

"설마 너 아직까지도 펠릭스에게 얘기도 꺼내지 않았던 아니지?"

펠릭스의 반응에 친구들이 칼을 보며 의외라는 듯 말했다. 지금 친구들의 말이나 태도는 이미 한참 전에 펠릭스가 당연히 그 자리를 맡은 것으로 알고 있었다는 투였다.


친구들의 말에 펠릭스는 고개를 돌려 칼을 쳐다봤다. 칼은 펠릭스의 등 뒤에서 비밀이라는 듯 황급히 손가락을 들어 쉬쉬 거리고 있다가 그만 그대로 펠릭스에게 들키고 말았다.

"카알~! 너!"

"아 하하하!"

칼은 어색하게 웃으며 뒷머리를 긁으며 펠릭스의 시선을 피했다. 펠릭스는 그런 칼을 못마땅한 표정으로 노려보며 말했다.

"어디 설명을 해 보실까?"



"조지라고 기억나? 서부 기사학교 출신의?"

잠시 망설이던 칼이 입을 열었다. 처음 나온 이름은 펠릭스도 아는 이름이었다.

"조지라면 그 맥스네 영토 아래에 있다던, 자칭 칼, 네 라이벌이라던 그 사람? 1학년 때 하고 3학년 때 봤었던?"

펠릭스의 대답에 칼은 고개를 끄덕였다.


펠릭스가 조지를 처음 본 것은 학교 1학년 축제 당시 3교 대항 검술대회에서였다. 그때 조지는 이미 칼과 대등한 수준의 검술 수준을 보였다.

그러나 펠릭스가 조지를 기억하는 진짜 이유는 3학년 축제 때문이었다. 당시 고램 시연회를 엉망으로 만들고 난 후 조지는 막 고램 연습장에 들어선 알리시아에게 필살의 일격(?)을 먹었다.

조지에게는 안 된 일이었지만 알리시아의 그 숙녀답지 않은 행동 덕분에 3학년 겨울 내내 다른 귀족들의 관심에서 멀어질 수 있었다. 펠릭스나 알리시아로서는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 조지가 왜?"

“지난겨울에 말이야. 사실 아이샤님이 우리 영지에 머무르기 전에 녀석의 영지에 먼저 머물렀거든."

"응? 그래?"

칼의 의외의 말에 펠릭스는 주변 소년들의 모습을 둘러봤다. 다들 살짝 고소를 머금은 웃음을 짓고 있었다.

"작년 겨울 아이샤님이 예정에 없이 누군가의 영지에 며칠 머무른 거라면 나보다 그녀석이 먼저 유명해졌어야 했을 거야."


작년겨울 남부 시찰을 돌던 아이샤는 돌아가던 길에 일부러 일정을 단축해서 칼의 맥퍼슨 영지에 이틀을 머물렀다. 별 다른 이유도 예정에도 없는 이 방문은 이후 상당한 화제를 만들어냈었다.


그 전에 남쪽으로 향하던 아이샤가 오크들에게 습격을 받았고 칼의 도움으로 위기를 벗어나며 엑스퍼트가 된 이야기가 이미 유명했다. 그리고 이후 아이샤의 이 일정이 알려지자 때를 같이 해 1학년 겨울 때부터 칼과 아이샤와의 인연 등이 입소문을 타고 같이 알려졌다. 결국 호사가들은 칼과 아이샤의 관계에 핑크빛 소문을 만들어냈다.

덕분에 칼에게 그 겨울동안 남부의 희망이라는 거창한 별명까지 붙어버렸던 것이다.


그러나 마지막 겨울방학이 끝난 후 칼은 그동안 펠릭스나 다른 사람들의 질문에도 그 겨울, 자신의 영지에서 아이샤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입을 굳게 다물고 있었다.

펠릭스는 칼이 지금 그 얘기를 하려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남부수호기사단 이야기도 말이야. 사실 그런 독립기사단을 만들겠다는 아이디어도 조지 녀석이 먼저 아이샤님에게 한 거야. 그 얘기를 듣고 난 아이샤님은 우리 영지로 오셔서 나에게도 만들어 보라고 조언을 하신거지. 정말로 자신의 옆에 서고 싶다면 당당하게 대등한 위치에 서라고 말이야.

"흐음, 그래서?"

"물론 전부터 비슷한 생각은 있었어. 노엘의 아이들처럼 남부 수복을 위해 친구들을 모아서 기사단 같은 것을 만들면 어떨까 하고 말이야. 하지만 구체적인 생각을 하진 못했거든. 기껏해야 그런 기사단 아니면 남부 연합을 다시 살려보자는 정도의 얘기였지. 하지만 그때 아이샤님의 얘기를 듣고 나니 무언가 번쩍 떠오르는 생각이 있더라고."

"어떤 생각?"

"펠릭스, 너 혹시 그거 알아? 올해 우리 중앙기사학교 졸업생들은 100% 엑스퍼트인걸로 유명하지만 사실은 그보다 더 중요한 비밀이 하나있었어."

"그게 뭔데?"

"바로 올해 졸업생 전원이 에덜라드 역사상 최초로 고램 기초기동 테스트뿐만 아니라 초급 고램 전투훈련까지 수료했다는 사실이야. 그리고 펠릭스, 네가 거기에 큰 기여를 한 것도 사실이고."

"음? 그런가? 하지만 그게 딱히 무슨 비밀이라고 할 수 있는 거야?"

펠릭스의 반응에 칼은 그럴 줄 알았다는 팔짱을 끼며 말을 이었다.

"사실 나도 지금까지는 그렇게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어. 그냥 처음 아이샤님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래? 조지 녀석이? 그렇다면 나도 만들지 뭐, 아! 그렇지! 이참에 기사단 전원이 고램 라이더 능력도 갖추면 어떨까?' 라는 생각이 확 들더라고. 너도 알겠지만 당시 프라이스 용병단 일도 있었잖아? 그 일이 잘 풀리면 어쩌면 귀족 외에도 고램을 보유하는 게 가능해 질지도 모르니. 그렇다면 최초로 고램을 보유한 독립기사단이나 용병단을 만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퍼뜩 떠오르더라고. 그리고 거기까지 생각이 다다르자 바로 펠릭스, 네가 떠오르더란 말이지."

"흐음, 그래?"

그제야 펠릭스는 다른 남부 소년들도 칼의 기사단 계획에 자신이 포함되어 있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전에 미들사이드 요새에서 칼이 피셔에게 하던 말이 떠올랐다. 자신의 기사단에 들어오려면 고램 조종은 필수라던.

"그런데 칼, 왜 전에 얘기하지 않은 거야?"

"졸업식장에서 얘기하려고 했었지. 제대하거든 내가 만드는 기사단에 가담할 생각이 없는지 말이야. 사실 많이 망설였거든. 너도 알잖아? 남부 상황이 그리 좋지 못하고 네가 싸우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으니 말이야. 그러니 군무를 하면서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 보라고 말하려고 했는데···."

말을 꺼내면서 칼은 잠시 망설였다. 그 뒤의 일은 펠릭스도 알고 있기에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알다시피 그런 일들이 벌어지는 바람에···."

칼이 말꼬리를 흐리자 모여 있던 다른 친구들도 잠시 측은한 표정으로 펠릭스를 바라봤다. 여기 친구들은 다들 오닐이나 스콧에게서 얘기를 들어 펠릭스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제야 펠릭스도 칼의 마음을 이해할 것 같았다.


아마도 만난 직후에는 졸업식의 일 때문에 꺼내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그 다음에는 펠릭스의 어둠의 오러 문제 때문에 또 얘기를 꺼내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렇게 겨우 펠릭스가 조금 안정된 듯하자 미들사이드 요새에서 처음 그 얘기를 꺼냈다. 그리고 이후로도 칼은 몇 번 지나가듯 그 얘기를 꺼내긴 했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펠릭스도 확답은 주지 않았다. 펠릭스로서는 지금 자신의 처지부터 어떻게 하지 않으면 뜬구름 잡는 소리일 뿐이었기 때문이었다.


펠릭스의 그런 사정을 칼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강권하지는 않았다. 설령 그 문제를 해결한다 해도 펠릭스가 이런 싸움이나 전장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다행이잖아? 설마 두 사람이 이렇게 같은 전선에, 그것도 같은 소대에 배치될 거라고는 정말 몰랐으니까 말이야."

"그러게."

친구들은 어색해진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말을 돌렸다. 그러나 펠릭스는 상관없다는 태도로 칼에게 다시 물었다.

"내 사정 때문에 얘기하는 게 늦어진 건 이해를 하겠는데. 그런데 좀 전에 지금까지는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는 건 무슨 뜻이야?"

"음?"

"아!"

펠릭스의 말에 다른 친구들도 그제야 칼이 처음 꺼냈던 얘기가 떠올랐다. 칼은 쑥스럽다는 듯 손가락으로 자신의 얼굴을 살짝 긁었다.

"말했듯이 처음엔 그냥 새로 만드는 기사단에 고램 전력을 포함시켜보면 어떨까라는 아이디어였어. 그리고 때마침 우리 동기들은 모두 고램 조종에 제법 능숙해지기도 했고. 펠릭스, 네 덕분에 말이야. 그러니 펠릭스, 너처럼 조종에 정통한 녀석이 하나 있으면 좋겠다싶었지. 그렇게 지금까지는 그냥 우연히 내 때에 운 좋게 이런 일들이 겹쳤구나 싶었는데 그게 아니구나싶은 생각이 들었거든."

"응? 우연이아니라니?"

"어제 회의장에서 길버트 경의 이야기를 듣고서 설마 싶었거든. 그러다 조금 전 이 녀석들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어쩌면 대단한 비밀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문득 떠오르더라고."

"어제 길버트 경의 이야기? 조금 전 이야기?"

펠릭스는 고개를 갸우뚱 하며 다른 친구들을 바라봤다. 다른 친구들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그리고 다들 다시 칼을 바라봤다.


칼은 펠릭스를 제외한 다른 친구들을 보며 물었다.

"너희들 모두 같은 후기 레인저 훈련소를 나온 건 아니지?"

칼의 질문에 친구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섯 중 둘을 제외하고는 서로 다른 훈련소 출신이었다.

"레인저 훈련소의 교관들이 그랬다며? 최근 갈수록 다들 고램 조종 실력들이 좋아진다고."

다시 이어진 칼의 질문에 또 친구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건 당연한 거 아니야? 갈수록 전장에서 고램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으니 말이야."

"그래, 그렇긴 한데···. 그래도 길버트 경이나 부대의 선임기사들 그리고 후기훈련소의 교관들이 같은 얘기를 꺼낸 게 과연 우연일까?"

"어?"

"그랬나?"

칼의 말에 어제 회의장에 참석하고 있었던 펠릭스와 스콧은 서로 바라보며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


"지금부터 하는 얘기는 어디까지나 내 개인 추측이야."

칼은 잠시 심각한 표정으로 얼굴을 고치고는 말을 이었다.

"우리 에덜라드는 아직 고램을 만들지 못해. 갈수록 고램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지만 때문에 늘 고램 부족에 시달려왔지. 그리고 고램 부족만큼이나 라이더들의 실력도 크로비스에 뒤쳐진 것도 사실이고. 하지만 봐."

칼은 일어서서 친구들 사이를 헤치며 앞으로 나섰다. 그리곤 연병장을 가리켰다.


중부중계진 연병장은 사람들과 고램들로 가득했다. 동부 중계진에서 칼과 펠릭스가 왔을 때와는 완전 딴 판이었다. 다른 중계진에서 온 아이들도 뭔가 분위기가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대공세의 준비로 각 중계진과 미들사이드 요새의 대부분의 상당수의 고램들이 차출된 상태였다. 때문에 어디를 가도 한산한 분위기였다.

그러나 지금 이곳만은 고램과 라이더가 넘치고 있었다. 특히 연병장에는 유난히 젊은 라이더들이 많았다. 그 중 상당수는 올해 남부기사학교와 서부기사학교를 졸업한 신입 사관들이었다.


레드숄더 사태의 위기감에 불안할 만도 하건만 다들 표정에 기대감과 자신감이 차 있었다. 그 중에는 지금 펠릭스의 옆에 있는 친구들처럼 오랜만에 고램을 만져보는 이들도 있을 텐데도 그랬다.

고램의 숫자, 젊은 라이더들의 표정, 분주한 중계진의 분위기만 보자면 마치 이곳이 대공세의 최 일선인 것처럼 느껴졌다.


"너희도 알겠지만 마이티 고램을 전선에 도입하자고 주장한 사람이 지금 에덜라드의 최고 사령관인 스코필드 후작이야. 그리고 그 의견이 받아들여 진 후 전선과 각 학교에는 부족한 나이트급 고램 대신 마이티 고램이 보급되었지. 그렇게 마이티 고램이 도입된 지 근 40년 가까이 지난 지금 상황은 이렇게까지 변했어. 고램이 부족하고 라이더들의 실력이 쳐진다고? 저 모습 어디에 그런 걸 느낄 수 있지?"


칼의 얘기에 펠릭스와 친구들은 그제야 칼이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 지 알거 같았다. 그동안 부족했던 에덜라드의 고램 전력은 성능이 떨어지지만 수를 충당할 수 있는 마이티 고램으로 대처했다.

나이트급 고램 1기에 마이티2기 라는 편제로 그동안 에덜라드는 부족한 나이트급 고램과 살짝 쳐진다는 라이더들의 실력에도 크로비스에 밀리지 않고 버텨왔다.

더욱이 각 학교에 교육용으로 제공된 마이티 고램은 그동안 꾸준히 생도들의 고램 조종 실력까지 발전시켜왔던 것이다.


"칼, 네 말은 설마 최고 사령관인 스코필드 후작이 근 40년 전에 이 상황을 예측하고 마이티 고램을 도입했다는 거야?"

"글쎄? 말했잖아? 어디까지나 내 개인 추측이라고."

칼의 대답에 펠릭스를 비롯해 다른 친구들은 놀라면서도 설마 하는 표정들이었다.


약 40여 년 전 에덜라드는 공세를 준비 중이었다. 당시 새파랗게 젊은 스코필드는 보급을 담당하는 후방 요새의 책임자에 불과했다. 그 나이에 꽤 큰 요새의 담당이라면 귀족가의 인맥으로 임명된 인선이 분명했다.

이후 크로비스의 우회작전으로 에덜라드는 대부분의 고위 지휘관을 잃었다. 그 우회작전을 막으며 에덜라드를 구한 것이 스코필드 후작이었다.


하지만 그 후 스코필드 후작은 일체의 공세를 펼치지 않았다. 보급선과 요새들의 방비를 강화하고 부족한 고램은 당시 귀족들에게 경원시 되던 마이티 고램을 전선에 도입했다. 그리고 철저하게 방어에 몰두했다.


중앙에서는 그런 스코필드 후작의 전략에 별다른 불만을 표시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환대할 정도였다.

당시 몬스터의 대규모 침공으로 몰락한 남부의 처리, 그로인해 발생한 이권을 두고 서부와 중앙의 다툼, 뒤이어 웨스트랜드 제국의 내분으로 인한 고램 수입하락 등으로 정국이 어수선했기 때문이었다.


때문에 전선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렇게 정국의 혼란과 무관심속에 이 젊은 청년은 에덜라드 사상 최연소 최고 사령관이 되었다. 그리고 십 수 년이 지나자 에덜라드에서 스코필드에게 붙여준 별명이 '철벽의 명장'이었다.


물론 크로비스에서는 40여 년간 일체의 공세를 거부하며 틀어박힌 모습을 비꼬아 '겁쟁이 거북이'라고 불렀지만.


실제로 정말로 명장 소리를 듣기에는 처음 크로비스의 우회 작전을 막은 것뿐이었고 그나마도 우연히 아니냐는 평들이 많았다. 하지만 귀족들에겐 상관없었다.

그가 정말 전략의 귀재인지, 단지 평범한 범재인지, 이유야 어찌되었든 그가 북부전선을 맡고 있는 동안 전선은 평온했다. 적의 일체의 도발에도 넘어가지 않았고 대규모 공세가 없는 만큼 생존해 돌아오는 기사들과 병사들의 숫자도 갈수록 늘어났다.


때문에 병역에 대한 부담이 많이 줄어 다들 군에 입대하는 것에 거부감이나 긴장감이 옅어져있었다. 때문에 대공세 이야기가 처음 나왔을 때 사람들은 '그 스코필드 후작이? 공세를?' 이라며 설마설마 했었다.


그리고 그 점은 지금 펠릭스나 친구들도 마찬가지였다.


"이상한 점은 또 하나 있어. 펠릭스, 내가 몇 번 얘기했었지? 여기 동부 전선에 우리 중앙기사학교 졸업생들의 임관 숫자가 너무 적다고 말이야."

"그래, 그랬었지. 하지만 그게 왜?"

"이 녀석들이 좀 전에 그랬잖아? 갈수록 신입 사관들의 고램 조종에 능숙해진다고. 거기에 우리 중앙기사학교 졸업생들은 올해 100% 엑스퍼트가 됐을 뿐만 아니라 모두 기초 고램 전투훈련도 마쳤다고. 그런데 동부전선으로 임관한 동기들은 오닐을 비롯해 이게 다야. 다들 어디있는거지?"

"칼, 그러니까 네 말은?"

"다른 학교 출신 신입 사관들과 올해 우리 졸업생들의 고램 조종실력. 거기에 때마침 이루어지는 대공세. 거기에 내가 모르는 다른 조건이 있는지, 어쩌면 단순히 우연일지도 몰라. 하지만···."

"우리 동기들 대부분은 중부전선에, 이번 대공세를 대비해 그쪽에 투입되었다?"

펠릭스의 대답에 칼은 대답이 없었다. 그러나 부정하는 태도는 아니었다.

"만약 스코필드 후작이 정말로 그 옛날부터 이걸 노리고 계획하고 있었다면 세간의 사람들의 평가와는 달리 그 사람은 정말 대단한 사람일거야."


칼의 말이 끝나자 다들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러다 누군가가 고개를 저으며 소리를 높였다.

"억측이야. 아무리 그래도 단 한 번의 작전을 위해 40년 가까이 준비를 한단 말이야?"

"뭐가? 너희들 잊었어? 우리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친구들의 반박에 칼은 바로 답변했다.

"여기 동부전선은 원래 동부산맥 속에 있던 곳이야. 크로비스는 40여 년 전 이곳 익시투스 산맥을 우회하기 위해 무려 10년을 투자했었다고."

"아!"

"그랬지···."

칼의 말에 펠릭스와 다른 친구들은 모두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곤 다시 다들 말이 없었다. 무언가 무거운 분위기가 지속되었다.


펠릭스와 친구들은 조용히 연병장을 보고 있었다. 이제는 제법 조가 짜여 졌는지 연병장 한쪽 벽으로 3대 1조의 고램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우리 어쩌면 뭔가 말도 안 되는 시류에 휘말려 있는 거 아닐까?"

누군가 툭 내뱉었다. 그러나 아무도 답변하는 사람은 없었다.


작가의말


또 늦어졌습니다. -_-;;;

뭐라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아울러 이번 글에 오타나 탈자가 좀 많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익숙지않은 놋북을 쓰다보니 

한창 글을 쓰다보면 엄지 손가락이 놋북 패드에 어느새 닿아

알게 모르게 엉뚱한 줄로 커서가 옮겨가

거기에 글을 이어가는 황당한 경우가 종종 생기더군요.


최대한 주의 하느라 썼는데...


늦어진 점도 그렇고 글 오탈자도 그렇고

정말 죄송합니다.


대신 분량을 나눌까 하다가 꽉꽉? 채워 넣었습니다.

다시 한 번 늦어진 점 사과 드립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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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7 286 +28 16.10.21 3,129 111 14쪽
» 285 +32 16.10.18 3,497 112 37쪽
285 284 붉은 용 사냥. +28 16.09.25 3,992 121 26쪽
284 283 +22 16.08.28 4,226 110 33쪽
283 282 +50 16.08.22 4,074 136 24쪽
282 281 +38 16.07.23 4,178 129 17쪽
281 280 +32 16.07.07 4,439 126 25쪽
280 279 +32 16.06.30 4,381 129 32쪽
279 278 +10 16.06.22 4,464 139 26쪽
278 277 +8 16.06.18 4,269 123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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