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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문영 님의 서재입니다.

무당검선

웹소설 > 작가연재 > 무협

진문영
작품등록일 :
2022.05.29 12:25
최근연재일 :
2022.06.12 13:20
연재수 :
16 회
조회수 :
25,816
추천수 :
611
글자수 :
90,249

작성
22.05.29 13:25
조회
2,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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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글자
11쪽

무당검선 - 파락호 대사형 (1) -

DUMMY

- 개새끼가 있다 -



머리가 깨질 것 같이 아프다.

가짜 백주를 마신 다음날이 딱 이렇다.

가만······.

가짜 백주라고?

내가 백주를 마신 적이 있던가?

눈을 찌푸리자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용 사형 정신이 드십니까?”


용 사형?

내가?

그러고 보니, 내 이름이 뭐였지?

이름을 생각하려는 순간 날 깨우는 목소리가 더욱 커졌다.


“용 사형? 용 사형?”


기억이 났다.

내 이름은 용진(庸珍).

천검문 이십팔대 제자.

그러면 무당의 태원이라는 도호는 누구의 것이었단 말인가?

다음 순간, 무당검선으로 살았던 기억과 천검문 이십팔대 제자 용진의 기억이 마구 뒤섞였다.

호접지몽(胡蝶之夢)이 이와 같을까?

어느 쪽이 진짜 나인지 알 수 없게 되었다.

혼란한 와중에도 분명한 한 가지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지금의 내가 무당파의 태원선인이 아닌 천검문의 용진이라는 것이었다.


“음······.”


낮은 신음과 함께 몸을 일으키자 피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상처를 입은 것인가?

그러나 곧 사실을 알게 되었다.

코를 자극했던 피냄새는 내 피가 아니었다.


“사매!”


곱상한 얼굴이 보기 흉할 정도로 퉁퉁 부어 있었다. 입가에는 피를 흘린 자국이 있었으며, 복부에는 검상을 입고 있었다.

나는 급히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사매의 상태는?”


내 물음에 주변에 서 있던 소년이 대답했다.


“권 의원께서 그러시는데 생사의 위기는 넘겼다고 합니다.”


생사의 위기.

그만큼 상처가 심했다는 소리다.

무너져가는 천검문에서 사매만큼 당차게 일을 했던 이는 없었다.

그랬던 사매가 어찌하여 이런 모습으로 누워 있단 말인가?


“일이 어떻게 된 것이냐?”


소년은 어두운 얼굴로 내 물음에 대답했다.


“대사형께서 백룡문 무리에게 두들겨 맞으신 뒤 사저께서 그들을 찾아가 항의를 하셨습니다.”


그랬다.

천검문의 문제 대부분은 파락호라는 별명이 있는 내게서 비롯되었다.

참으로 한심한 일이라 할 수 있었다.


“그래서?”

“백룡문 무리들은 사저를 희롱하고, 사형을 욕보였으며, 사부님을 저주하였습니다. 참다못한 사저께서는 그들에게 비무를 청하였고······.”


소년은 말을 줄였다.

백룡문의 고수와 맞붙어 이렇게 되었단 말이군.

놈들은 오래전부터 우리 천검문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

한 지역에서 문하생을 놓고 경쟁하고 있으니, 사이가 좋다면 오히려 이상한 일이었다.


“젠장.”


최근에는 글재주가 있는 사매가 문하생들에게 글을 가르치면서 우리 쪽 문하생이 늘고 있었다.

그래서 이런 일을 벌였단 말인가?

곱디고운 사매를 이렇게 만들다니, 절대로 용서할 수 없었다.


“개새끼들······.”

“대사형?”


걸음을 옮겨 사매의 침상으로 다가갔다.

이윽고 대야에 놓인 물에 내 얼굴이 비쳤다.

눈에 시퍼런 멍이 든 한심한 얼굴.


“개새끼가 여기 하나 더 있구나.”


기가 찼다.

그래서였을까?

사매의 얼굴을 오래 볼 자신이 없었다.

나는 몸을 돌린 뒤 검을 챙겼다. 그러자 소년이 따라붙었다.

이 소년은 사문의 막내로 이름은 황현성이라고 했다.


“대사형, 어디 가시려고 그러십니까?”

“사매의 복수를 해야지.”


황현성이 깜짝 놀라 외쳤다.


“대사형!”


나는 미간을 좁혔다.


“조용히 해라. 사매가 자고 있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자 가는 빗줄기가 쏟아졌다.

피를 보기 딱 좋은 날씨다.


“그래, 가보자고.”


황현성은 마지못해 문 앞에서 서서 내게 말했다.


“대사형 조심하십시오. 백룡문은 강합니다.”


나는 손을 한번 흔들어 보이고는 몸을 돌렸다.

강하긴 개뿔.

동래군(東萊郡) 육리현(育犂縣)에 강한 문파가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빗속을 뚫고 걸으며 쉬지 않고 중얼거렸다.


“뭐가 후회냐? 뭐가 무당검선이냐? 뭐가 인생의 즐거움이냐? 빌어먹을! 사매를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잔뜩 두들겨 맞은 뒤 술에 취해 곯아떨어지다니! 진짜 개새끼구나!”


철퍽. 철퍽.

빗물이 고인 길을 그대로 뚫고 나아갔다.

천검문에서 백룡문까지는 걸어서 일각 정도.

건장한 사내에게는 그리 멀지 않은 거리였다.


“무당산에 올라 천하를 오시했던 것은 다 개꿈이었어. 개꿈이라고!”


개꿈이라 소리쳤지만 몸에 익혔던 검은 생생하게 기억이 났다.

이토록 생생한 꿈도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제기랄!”


나는 검을 뽑았다. 그러고는 앞으로 크게 뻗었다.

쉬이익!

파공성과 함께 아래로 떨어지던 빗방울이 화살처럼 앞으로 날아갔다.

육리현의 파락호 용진의 검이 아니었다.


“젠장, 검은 살아 있네.”


그냥 꿈은 아니었던 것일까?

무당산에서 익혔던 검은 그대로였다.

철컥.

검을 다시 검갑에 넣은 뒤 걸음을 재촉했다.


“태상노군, 이 꼴을 보려고 하계로 절 내려 보내신 것입니까? 그간 인생이 너무나 태평해서 마음고생 좀 해보라고 말입니까? 사매가 죽었다면 전 어떻게 살아야 했단 말입니까? 말 좀 해보십시오!”


하늘을 바라보며 욕을 내뱉으려는 찰나, 인기척과 함께 중년인이 나타났다.


“용진, 어디가나?”


고개를 돌리니, 익숙한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연 아저씨?”


연리청, 그는 육리현에 유일한 표국인 육리표국의 표사였다.

표두도 아니고 표사.

강호의 서열을 따지자면 연리청도 나와 같은 바닥이었다.

그가 날 바라보며 말했다.


“검을 찬 것을 보니, 설마 백룡문으로 가는 것인가? 그렇다면 포기하게. 향이도 이기지 못한 자들을 자네가 어찌 이긴단 말인가?”


그가 나를 말리는 것은 과거 천검문에서 검을 배운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 마디로 같은 식구이기 때문에 말리고자 하는 것이다.

나는 말끝을 높였다.


“향이가 그렇게 되었는데 어찌 그냥 있을 수 있단 말입니까?”


사매의 이름은 채향(蔡香)이었다.

그녀는 얼굴 못지않게 이름도 고왔다.


“이 사람아, 향이가 그렇게 된 것이 자네 때문인 것을 모른단 말인가?”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가는 것입니다.”


연리청은 혀를 찼다.


“쯧쯧, 어찌 그리 사람이 모자라단 말인가?”


나는 얼굴을 굳혔다.


“모자란 것을 넘어 개새끼죠.”

“허허!”


연리청은 사조부에게 검을 배웠지만, 천검문에 이름을 올린 이는 아니었다.

그는 사매에게 검과 글을 배우는 아이들처럼 천검문의 문하생이었다.

문하생은 넓게 보면 한 식구였지만, 좁게 보면 남이나 다름이 없었다.


“연 아저씨, 이제 가겠습니다.”


연리청은 더는 나를 막지 않았다. 다만, 한 마디 던지는 것은 잊지 않았다.


“자네가 죽으면 향이가 슬퍼할 걸세.”


알고 있다.

사매가 날 아낀다는 사실정도는.

그래서 내가 더 개새끼인 것이다.

곱디고운 사매를 두고, 기루나 가서 술이나 처마시는 개새끼.

왜 이렇게 되었을까?


“퉤.”


바닥에 가래침을 뱉자 비릿함이 올라왔다.

제기랄.

입 안에도 상처가 난 모양이다.


“그래, 그렇게 된 것이지.”


용진이라는 사내가 처음부터 이 모양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밝은 미소와 자신 있는 눈빛, 그리고 당당한 행동.

한 때는 육리현의 맹호(猛虎)라고 불리었던 적도 있었다.

그 모든 것이 어그러진 것은 무림맹의 혈교 토벌전이었다.


“혈교 토벌전이라. 혈교 놈들 다 죽은 것이 아니었던가?”


혈교가 어떻게 다시 일어났는지 그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한 가지만은 분명했다.

나와 사부는 무림맹의 혈교 토벌전에 나섰고, 그곳에서 지옥을 마주했다.


“천검문의 무공은 아무짝에도 쓸모없었지.”


천하제일까지는 아니라도 사부와 나는 나름 고수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혈교의 진짜 무공과 마주하자 일합도 버티지 못했다.

사부는 그대로 목이 날아갔으며, 나 또한 중상을 입고 바닥에 쓰러졌다.

구파일방의 고수가 구해주지 않았다면, 파락호 용진의 인생은 거기에서 끝났을 것이다.


“자신이 하룻강아지라는 것을 안 순간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린 것이지.”


하룻강아지보다는 우물 안의 개구리라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 같다.

어쨌든 사부의 시신을 수습해 육리현으로 돌아온 이후부터 나는 다른 사람이 되었다.

무공을 수련하거나 문하생을 가르치는 대신 술로 매일을 보냈다.

그 동안 사매나 사제들의 충고는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오직 술만이 빈 가슴을 채워줄 뿐이었다.


“결국 술로 도망친 것이지.”


우물 안 개구리였다는 현실에서 도망치고자 했다.

그러나 도망친 그곳에 낙원은 존재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깊은 지옥이었지.”


철퍽. 철퍽.

빗물을 튀기며 앞으로 나아갔다.

곧 백룡문이 눈에 들어왔다.

낡은 현판에는 핏기 없는 서생이 쓴 것 같은 백룡문(白龍門)이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


“저기에 더 많은 개새끼들이 있단 말이지?”


그깟 돈 몇 푼 때문에 사매를 죽이고자 했던 놈들이다.


“사매가 죽었다면, 오늘 백룡문은 멸문했을 것이다.”


빈말이 아니었다.

사매가 차디찬 시신이 되었다면, 나는 정말로 백룡문을 멸문시켰을 것이다.

나는 히죽히죽 웃었다.


“그렇게 되면 혈마(血魔)나 혈귀(血鬼) 같은 별호를 얻게 되었겠지.”


빗줄기를 뚫고 앞으로 나아가자 우비를 입고 있는 두 사내가 보였다.

그들은 백룡문의 문지기였다.


“누구냐?”


그들의 물음에 나는 미간을 좁혔다.


“날 모르나?”


문지기들은 내 얼굴의 멍을 확인하고는 피식하고 웃었다.


“뭐야? 용진이잖아.”

“더 맞고 싶어서 온 거냐?”


그들은 내 허리에 검이 매달려 있는 것을 보고는 미간을 좁혔다.


“설마 싸우려고 온 것은 아니겠지?”


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싸우긴··· 다 두들겨 패버리려고 왔지.”


순간 문지기들의 얼굴이 굳었다.


“뭐야?”

“이 자식이 뚫린 입이라고 함부로 지껄여?”


두 녀석은 말은 험상궂게 해도 쉽게 덤비지 못했다.

이 놈들은 백룡문의 정식제자가 아니었기에 제대로 된 무공을 배운 적이 없었다.

조금 깎아 치면 하인 수준?

딱 그런 정도의 무공만 배운 상태였다.


“맞고 싶지 않다면, 비켜라.”


내 한 마디를 들은 두 녀석은 비키는 대신 손을 뻗었다.

어리석게도 빈정이 상한 모양이다.


“어림없다!”

“용진! 정신 번쩍 들게 해주마.”


이 자식들도 나와 같다.

우물 안의 개구리인 것이다.

느릿한 주먹을 가볍게 피한 뒤 팔을 잡아 당겼다.


“어!”


짧은 한마디와 함께 놈이 빗물이 고인 웅덩이에 머리를 처박았다.

첨벙.

꼴좋다.

다음 놈은 복부에 일격을 가하자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


“끄, 끄억.”


이놈들은 백룡문의 정식 제자가 아니었기에 이 정도로 마무리해줄 생각이다.

참으로 자비가 넘치지 않는가?


“그러게 비키라니까.”


손에 힘을 주자 비틀거리던 놈이 뒤로 자빠졌다.

털썩.

지금부터 시작이었다.

나는 정문에 손을 가져갔다. 그러고는 문을 양쪽으로 활짝 열었다.

끼익.

낡은 경첩소리와 함께 일장 높이의 문이 좌우로 펼쳐졌다.


“백룡문 개새끼들아! 다 나와!”


내 외침을 들은 백룡문 제자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누구야?”

“누가 온 거야?”

“이 자식들! 문단속 안 해?”


그들은 대부분 손에 무기를 들고 있었다.

꼴에 무림인이라고 무기를 수련하고 있었나보다.

그들 중 한 명이 나를 알아보고는 눈썹을 위로 올렸다.


“뭐야? 용진이잖아?”

“용진?”


놈들은 그제야 누가 찾아왔는지 깨달은 모양이었다.


“이 자식이?”


나는 그들을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누구부터 맞을 테냐?”


내 물음에 놈들이 비웃음을 흘렸다.

그래, 웃을 수 있을 때 마음껏 웃어라.

곧 웃지 못하게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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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무당검선 - 나는 강도가 아니다 (1) - +1 22.06.05 1,475 3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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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무당검선 - 흑도냐? 백도냐? (2) - +2 22.06.02 1,743 4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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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무당검선 - 파락호 대사형 (3) - +3 22.05.31 1,860 50 14쪽
3 무당검선 - 파락호 대사형 (2) - +3 22.05.30 1,977 50 11쪽
» 무당검선 - 파락호 대사형 (1) - +2 22.05.29 2,412 54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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