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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문영 님의 서재입니다.

무당검선

웹소설 > 작가연재 > 무협

진문영
작품등록일 :
2022.05.29 12:25
최근연재일 :
2022.06.12 13:20
연재수 :
16 회
조회수 :
25,819
추천수 :
611
글자수 :
90,249

작성
22.05.29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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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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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글자
10쪽

무당검선 - 서(序) -

DUMMY

- 서(序) -



죽음은 모두에게 공평한가?

사람은 결국에는 죽는다.

이 한 마디만 생각하면 죽음은 공평하다.

하나 죽음을 맞이하는 나이와 장소 그리고 상황은 각기 다르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죽음은 공평하다고 할 수 없다.

투둑.

피가 발아래로 떨어진다.

후······.

긴 숨을 내쉬자 몸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이제 끝이군.”


반쯤 부러진 검에는 본문의 상징인 태극문향이 선명했다.

일도향(一道向)이라는 검이다.

오십 년 전 사부께서 태원(太原)이라는 도호와 함께 내려주신 검.

그제까지 일도향으로 벤 사람의 숫자는 열을 넘지 않았다.

하나 이틀 동안 모든 것이 바뀌고 말았다.

이제 일도향이 서천으로 보낸 사람의 숫자는 삼백이 훌쩍 넘었다.

이 정도면 귀검(鬼劍)이나 혈검(血劍)으로 불리기에 충분했다.


“만족하는가?”


이 물음은 내 자신을 향하고 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모르겠다.

이틀 동안 내가 벤 이들은 죽어 마땅한 자들이었다.

그들은 세상의 악(惡)이었고, 그릇 됨이었으며, 불필요한 존재들이었다.


“어쩌면 이들을 벤 것이 너무 늦은 것일지도 모르겠군.”


삶의 끝자락에 이르렀을 때, 비로써 나는 생각했다.

검(劍)은 목표가 아닌 도구였음을.

그래서 무당산을 떠났다.

지금 내가 서 있는 이곳은 아수라혈교(阿修羅血敎)라 불리었던 이들의 신전이었다.

이곳에서 그들은 수많은 악행을 저질렀다.


“살인, 고문, 강간, 학대, 그리고 잔혹한 실험.”


수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악행에 고통을 받았다.

이렇게 묻는 이가 있을 것이다.

그들이 악행을 저지르는 동안 백도 무림과 무림맹은 무엇을 했느냐고.

백도 무림과 무림맹은 나름 혈교를 토벌하고자 했다.

하나 그들은 마교라는 강대한 적을 마주하고 있었기에 전력으로 혈교를 토벌할 수 없었다.

몇 번인가 토벌대를 보냈지만, 이곳 신전에는 이르지 못했고, 중원 깊이 침투한 자들을 내쫓는 그런 정도의 성과만을 올렸다.


“뭐, 그 모든 것이 변명일 수도 있겠지.”


내가 혼자 혈교를 멸한 것을 보면······.

각 문파가 전력을 다해 토벌대를 구성했다면, 혈교를 충분히 무너뜨릴 수 있었을 것이다.

하나 모든 문파가 전력을 다하는 일은 정사대전(正邪大戰) 외에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

아니, 정사대전조차 각 문파가 전력을 다할 것이라고 확신할 수 없었다.

누군가는 이 거대한 싸움에서 이득을 보고자 할 테니까.

혈교 외에도 빌어먹을 놈들이 세상에는 많다.

어쨌든 혈교는 무너졌다.

내 검에.


“후······.”


더는 서 있을 힘이 없었다.

바위 위에 앉자 비릿한 피비린내가 후각을 마비시켰다.

사람을 베고 있을 때는 나지 않던 냄새였다.


“그러고 보니, 할 수 있는 것을 하지 않은 것은 무림맹이 아니라 바로 나와 무당이 아니었던가?”


칠십이 넘을 때까지 무당산에서 검을 닦아왔던 나였다.

내가 조금만 더 빨리 움직였더라면, 수백이 넘는 인생을 구했을지도 몰랐다.


“사형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겠지. 그것도 그들의 운명이자 삶이라고.”


사형은 검이 아닌 도(道)를 닦는 분이셨다.

하나 나는 도사(道士)였지만, 도를 잘 몰랐다.

내가 아는 것은 오직 검뿐이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나를 무당검선(武當劍仙)이라 불렀다.

솔직히 말하면 무당검선은 내게 전혀 어울리지 않는 거창한 별호였다.

무당제일검(武當第一劍)정도라면 괜찮았을 텐데 말이다.


“후······.”


눈이 감긴다.

더는 눈을 뜨고 있기 힘들었다.

내가 죽어가고 있는 이유는 치명적인 상처를 입었기 때문이 아니었다.

투둑.

지금 바닥에 떨어지고 있는 피는 내가 아닌 적의 것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죽어가고 있었다.

내 기력이.

내 생이.

긴 싸움 끝에 끝나가고 있었다.

혈제(血帝)라 불리었던 혈교 교주를 쓰러뜨릴 때, 예상한 것보다 많은 진기(眞氣)가 소모 된 것이 원인이리라.


“후··· 오늘의 싸움이 없었다고 해도 몇 년을 더 살았을 뿐이다.”


나는 몇 년의 삶을 아수라혈교의 멸망을 바꾼 것이다.

후회하느냐고?

후회한다.

더 빨리 이를 행하지 않은 것을.


* * *


눈을 뜨자 밝은 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정신이 드는가?”


내게 질문을 던지는 이는 하얀 수염을 길게 드리운 노인이었다.

그는 범상치 않은 인물이었다.

아니, 이유를 밝힐 수 없었지만, 나는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이 사람은 태상노군(太上老君)이었다.

덧붙여 설명하자면 태상노군은 노자(老子)라는 별호도 함께 가지고 있었다.


“노군을 뵙는다는 것은 제가 죽었다는 뜻이겠지요?”


태상노군은 자신의 신분을 부인하지 않았다.


“아쉬운가?”

“아쉽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습니다만, 혈교를 멸했으니 되었습니다.”


태상노군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선을 행하고, 마(魔)를 멸했도다. 그대는 선인(善人)이로군.”

“많은 늦은 일이었습니다.”


격식을 차리고자 내뱉은 말이 아니었다.

나는 진심으로 늦은 일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더 빨리 움직였더라면, 아니 하루만 더 빨리 움직였어도 그제 혈교도에게 죽은 이들을 구할 수 있었을 것이다.

태상노군이 내 앞에 주저앉으며 말끝을 올렸다.


“이보다 빨랐다면, 혈교를 멸하지 못했을 수도 있네.”


멸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태상노군의 말이니, 흘려들을 수 없었다.

나는 천천히 기억을 되돌려 보았다.

그러고 보니, 혈교의 고수는 수십을 넘어 수백에 이르렀다.

게다가 교주 혈제의 무공은 내가 예상한 것 이상이었다.

검이 완성되지 않았다면?

혈교를 무너뜨리기 전에 내가 먼저 쓰러졌을 수도 있었다.


“때가 되었기에 이룰 수 있었다는 말씀이십니까?”


태상노군이 인자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세상일이란 물처럼 흘러가는 법이지.”

“이제 어찌 되는 것입니까?”


내 물음을 들은 태상노군이 되물었다.


“어찌하고 싶나?”


나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모르겠습니다.”

“이대로 선계(仙界)에 머물러도 좋지만, 자네의 마음속에는 후회가 남아 있군.”

“후회라면 혈교를 빨리 멸하지 못한 후회입니까?”


태상노군은 고개를 흔들었다.


“그렇지 않네.”

“하면 어떤 후회입니까?”


태상노군은 답을 알면서도 답을 말해주지 않았다.


“스스로 모르는 것을 내가 어찌 알겠나?”


나는 미간을 좁혔다.

그리고 후회에 대해 생각했다.

검의 극의(極意)를 깨우쳤으니, 이에 대한 후회는 없었다.

혈교 또한 노군이 말한 것처럼 때가 되어 멸하게 되었다면, 후회할 일이 아니었다.

하면 무엇이 후회란 말인가?

사형처럼 사문에 이바지 하지 못한 것?

검을 성취하느라 제자들을 키우지 못한 것?

이것들은 깊은 후회가 아니었다.

다만 아쉬운 것이었다.

태상노군이 물었다.


“모르겠나?”


노군의 물음에 나는 주먹을 꾹 쥐었다.


“모르겠습니다.”


태상노군이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좋은 것을 먹고, 좋은 것을 지니고, 좋은 사람을 만나고, 즐거운 일을 행하며, 행복하게 사는 것에 대한 후회가 없다고 말을 할 수 있겠는가?”


나는 노군의 물음에 숨이 탁하고 막혔다.

이윽고 잊고 있던 과거의 기억이 모두 떠올랐다.

어린 시절 소채를 먹으며 진미(珍味)를 즐기는 세가의 아이들을 부러워했던 기억, 낡은 옷 때문에 추위에 떨었던 소년시절 기억, 아름다운 여인을 부인으로 맞이하던 친구에 대한 부러움.


“그, 그것은······.”


쉬이 답을 할 수 없었다.

노군은 그런 나를 몰아세웠다.


“부럽다면 그것은 곧 후회라 할 수 있네.”


모두 출가한 도사에게는 허락되지 않는 것이었다.

나는 목에 힘을 주었다.


“바르지 못한 것들입니다.”


태상노군이 하얀 눈썹을 세웠다.


“바르지 못하다? 그러면 세상 사람들은 모두 바르지 못한 삶을 살고 있다는 말인가?”

“그, 그것이 아니라 도인에게 바르지 않은 삶을 삶이라 생각합니다.”


태상노군은 이내 얼굴을 굳혔다.


“도인에게? 누가 그러한 것을 정했단 말인가?”


그의 물음에 나는 바로 답을 할 수 없었다.

사부님과 사형은 그러한 것을 하지 말라 말씀하셨을 뿐, 누가 그것을 정했는지는 말씀해 주시지 않으셨다.

게다가 질문을 던지고 있는 이는 도가(道家)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 태상노군이었다.

태상노군이 정한 일이 아니라면, 후대의 누군가가 그러한 규칙을 정한 것이리라.

혹시 그의 뒤를 잇는 장자(莊子)인가?

아니다.

장자와 같은 깨달음을 얻은 이가 그런 세세한 것에 관여했을 리가 없다.

이러한 규칙을 세운 것은 후대의 어리석은 이가 아니었을까?

나는 고개를 크게 가로저었다.


“모르겠습니다.”


태상노군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금기(禁忌)를 만드는 것은 바위로 물의 흐름을 막는 것과 같은 일이라네.”


자연스럽지 않다는 것은 인위적이라는 말이며, 인위적으로 행하려 하는 것은 무위자연(無爲自然)이라는 도가의 가르침에 반하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태상노군은 출가한 도인들의 금제에 반대하고 있었다.

어쩌면 그는 출가 자체를 반대하고 있는 것인지도 몰랐다.

나는 불연 듯 그의 생각이 알고 싶었다.


“노군께서는 삶의 즐거움을 누리셨습니까?”


태상노군은 대답대신 질문을 던져왔다.


“자네가 보기에는 어떤 것 같나?”


이번에도 생각한 것을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노군께서도 저처럼 즐기시지 못하신 것 같습니다.”


태상노군은 미소를 지었다.


“똑똑한 아이로군.”


칠십이 넘은 내게 똑똑한 아이라 말할 수 있는 것은 태상노군뿐이리라.


“노군께서도 후회가 많으시군요.”

“하나 나는 선계를 떠날 수 없는 몸이 되었네.”


후회가 있다고 해도 이제는 어찌할 수 없다는 말.

그렇다면 나는 다르다는 말일까?

태상노군은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말했다.


“아삼, 더 늦기 전에 떠나는 것이 좋겠군.”


아삼은 어렸을 때 사용했던 내 아명이었다.

역시 태상노군이었다.

내 아명까지 알고 계시다니.


“떠난다니, 어디로 말입니까?”


태상노군은 내 물음에 대답하는 대신 오른손을 들었다.


“아삼, 이번에는 후회를 남기지 말도록 하게.”


그가 가볍게 이마를 툭 치자 머릿속을 가득 채웠던 기억이 산산조각 나면서 의식이 흐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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