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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kokkoma 님의 서재입니다.

우리들의 벽사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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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kokkoma
작품등록일 :
2023.11.21 15:32
최근연재일 :
2024.01.31 19:00
연재수 :
222 회
조회수 :
7,204
추천수 :
253
글자수 :
1,186,938

작성
23.11.28 19:00
조회
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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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자
12쪽

챕터4-59. 불가(佛家)- 걸신(乞神)(2)

DUMMY

사실 소독약 냄새와 삭막한 분위기의 흰색 조명이 가득한 병원은 준희에게 있어서 절대로 오고 싶지 않은 장소였다.


그에게 병원이란 안 좋은 기억만 가득한 곳이었기 때문이다.


어렸을 적부터 늘 아버지에게 두들겨 맞으면 병원에 와야 했고, 응급실을 제 집처럼 드나들었다. 그래서일까. 준희의 기억 속에 각인된 병원의 이미지는 아버지의 폭행이었다.


고개를 절래절래 휘저으며 재빨리 진료와 검사만 받고 서둘러 이 병원을 빠져나가야겠다고 생각하는 준희였다.


준희가 급하게 모퉁이를 돌 때였다. 모퉁이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수희와 준희가 부딪힌 건 순식간의 일이었다.


엄청나게 세게 부딪힌 탓인지 자신은 물론이거니와 날씬한 체구의 수희는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아이고! 아가씨발냄새! 오늘 일진 더럽네! 차라리 그냥 죽여라 죽여!”


앙칼진 하이톤의 신경질적인 목소리는 수희였다.


최근 들어 각종 사건 사고에 휘말리면서 가뜩이나 성치 않은 왼쪽 팔이 말썽이었기 때문에 예약을 잡아둔 병원에 들려 정형외과 진료를 보고 모처럼 의식이 없이 입원해있는 동생 수환의 병실에도 들렸다 지금 막 집에 돌아가는 길이었다.


수희는 화마의 기운을 쓸 때마다 왼쪽 팔이 생살을 불로 지지는 듯 한 고통에 휩싸였다.


고통을 참고 괜찮아질 때 쯤이면 이번에는 왼쪽 팔의 뼈가 부스러지는 듯한 욱씬거리는 고통이 몰려왔다.


분명 영(靈)적인 통증이 분명했지만 그 때마다 정형외과에 들려 물리치료를 받고 나면 아픔이 훨씬 나아졌기에 수희는 병원에 들렸던 것이다.


동네 병원에서 받아도 될 것을 굳이 대학 병원에 와서 진료를 보는 것은 진료를 핑계 삼아 동생 수환이의 얼굴을 한번이라도 더 보기 위해서였다.


수희가 종종 찾는 정형외과 담당의는 진료를 볼 때마다 몸에서 연꽃 냄새가 진동을 했다.


담당 의사는 오른손에 작은 염주 팔찌를 차고 있었는데, 수희 생각에는 염주 팔찌를 보아하니 아마 대대로 불공을 드리는 집안이 아닐까 싶었다.


사실 연꽃은 불교와 인연이 매우 깊다.


룸비니동산에서 마야부인의 오른쪽 옆구리로 탄생한 석가모니가 동서남북으로 일곱 걸음을 걸을 때마다 연꽃이 피어나 떠받쳤다는 데서 연꽃은 불교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꽃이 된 것이다.


수희는 기독교나 천주교, 불교, 밀교 등 종교에 있어 그 어떤 편견이나 호불호도 없었지만 불교를 가장 믿고 의지하는 편이었다.


허망하게 죽은 수희의 할머니 역시 불교를 깊이 믿었던 불자(佛者)였기 때문이다. 함께 불에 타 죽은 동생 수호 역시 그런 할머니를 따라 동네 어귀에 있는 작은 사찰에 가서 할머니를 따라 절을 하며 스님께 얻어먹는 약과를 무척이나 좋아했다.


나중에는 약과를 먹으러 가지 않더라도 무엇이 그리 재미있는지 혼자 가서 절을 하고 한참을 절에서 혼자 스님들과 놀다 오곤 했다.


- 우리 수호 보고 싶네. 우리 꼬맹이... 살아있었다면 지금 쯤이면 많이 컸을텐데...


수희는 수호 생각을 할 때마다, 심장을 칼로 도려내듯이 통증이 몰려왔다.


자신이 힘이 있었다면, 수호 역시 수환이처럼 지켜낼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수희는 어렸고, 힘이 없었다.


수희는 수환이 병실을 들렸다가 이내 담당 주치의의 진료실에 들어가서 가벼운 문진을 받았다.


주치의가 말할 때마다 수희는 머리가 아플 정도로 진한 연꽃 냄새 때문에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겨우겨우 대답을 하며, 문진을 끝내고 물리 치료까지 받고 난 뒤, 지금 막 병원을 나서려는 순간에 준희에게 거의 퍽치기를 당할 정도로 세게 부딪힌 수희는 그만 어지러움에 바닥에 나뒹굴었다.


준희 역시 아무 생각 없이 수희와 부딪힌 탓에 병원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은 것은 마찬가지였다.


준희는 황급히 일어나 바닥에 넘어진 수희를 부축하며 말했다.


“괜찮으세요? 죄송합니다. 제가 잠시 딴 생각에 빠져서....”


자신보다 가녀린 체구의 여성이 바닥에 내팽겨쳐 졌으니 준희는 미안한 마음에 사과부터 꺼냈다.


그런 준희를 말없이 미간을 찌푸리며 쳐다보면 수희는 낮지만 짜증이 잔뜩 섞인 목소리로 답했다.


“앞 좀 잘 보고 다녀요! 여기도 연꽃 냄새가 진동을 해서 머리까지 아프네. 그 쪽 집에서 엄청 불공(佛供)드리나 봐요? 근데... 얼굴을 보아하니 부모님은 다 죽고, 옆에 아무도 없이 혼자 외롭게 사는 거 같은데... 그만 좀 먹구요! 금붕어처럼 배 터져 죽고 싶나?”


순간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른 채, 말을 내뱉고 있던 수희가 ‘아차’싶은 표정으로 준희를 바라보다가 재빨리 준희의 손을 뿌리치고 이곳을 벗어나려 했다.


순간 준희는 어이없는 표정으로 수희를 바라보다가 다시 수희의 손목을 재빨리 붙잡곤 물었다.


“우리 집안이 불공을 드린다고요? 아니, 그보다 우리 부모님 다 돌아가신 건 또 어떻게 알아요? 당신 나 알아요? 아니면 나 뒷조사 한 거예요? 당신 뭐야? 뭐하는 사람이야?”


준희의 물음에 수희는 시선을 다른 쪽으로 돌리며 핑계거리를 생각 중이었다.


- 에이 쌰발! 또 공수 터져 가지고 나도 모르게 헛소리 내뱉었네. 그냥 보이고 들려서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튀어나와서 말했다고 하면 안 믿을 텐데... 어쩐담...


수희는 한참을 고민하다가 이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준희의 손을 세게 밀쳐내며 외쳤다.


“딱 보면 몰라요? 헛소리하는 미친 년인거!”


그러고선 부리나케 뛰어 병원 밖으로 줄행랑을 쳤다.


날다람쥐처럼 총총 걸음으로 잽싸게 뛰어 어느새 병원 입구 쪽으로 사라지는 수희를 멍하니 바라보던 준희는 허탈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몇 차례 가로로 젓고는 원무과 옆에 위치한 ‘소화기 내과’라고 적힌 팻말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준희로부터 도망쳐 병원 밖으로 나온 수희는 진땀을 닦고 있었다.


분명 저 남자에게서는 진한 연꽃 냄새가 진동을 했다. 분명 자신의 정형외과 담당 주치의와 같은 연꽃 냄새였다.


- 아니 무슨 향수로 머리에다가 끼얹은 것처럼 냄새가 진동을 하네... 머리가 아플 정도로 연꽃 냄새가 나고 지랄이야. 아오 머리 아퍼...


수희는 자신의 관자놀이를 엄지손가락으로 꾹꾹 눌러대며 생각하고 있었다.


수희의 생각에 자신의 담당의와 저 남자는 분명 같은 집안 가족일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머리가 아플 정도의 연꽃냄새가 둘 다에게서 똑같이 맡아질 리가 없었다.


수희와 부딪힌 남자는 부모 복이 없어보였다. 부모 복은 타고나는 것이기에 어쩔 수 없다하지만, 수희 눈에 비친 그는 부모가 있어도 그에게 없다시피 한 존재로 보였고 그마저도 단명(短命)하여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아보였다.


그런데 사실 수희가 봤을 때 더 큰 문제는 따로 있었다.


워낙 경황이 없고 급하게 볼 수밖에 없어 자세히 보거나 느끼진 못했지만 그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은 ‘걸신’이 분명했다. 그의 어깨에 붙은 검은 형체는 그의 어머니 혹은 아버지로 보이는 가족령이었다.


- 요즘도 걸신이 있나. 굳이 떼어 내야 하나... 흠... 부모 중 한명이 붙은 거 같은데...


고민에 빠진 수희가 어느새 횡단보도를 건너고 휘적휘적 지하철로 들어가고 있었다.


걸신은 ‘구걸하며 빌어먹는 귀신’을 말하는데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며 밥을 빌어먹고 사는 처량한 신세의 귀신을 뜻한다.


흔히 굶어죽은 사람의 영혼은 걸신이 되는데, 죽어서도 남에게 빌어서 먹다보니 밥이 모자라 항상 배가 고플 수밖에 없다. 그 탓인지 걸신이 붙은 사람은 실제로 음식만 봤다 하면 달려들어 게걸스럽게 먹어치운다.


흔히 우리가 ‘걸신들린다’라는 표현을 쓰는 것이 그 때문이다.


보통 배불리 먹으면 알아서 자동으로 떨어져 나가거나 자신의 원하는 바를 이루면 어떤 계기를 통해 사라지기도 하는데 수희는 굳이 자신이 나서서 해결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모르겠다는 듯이 자신의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은 수희는 어느새 토끼처럼 총총거리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플랫폼에 들어서는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정오가 되자 병원 내부에서는 점심시간이 되었다는 안내 방송과 함께 잔잔한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이내 핸드폰을 들어 시간을 확인한 준희는 잽싸게 일어나 ‘정형외과- 김지호 교수 진료실’ 이라고 적힌 방으로 향했다.


“김지호 교수님! 잘 지내셨어요?”


소화기내과 진료를 마치고, 점심시간이 되길 기다리며 대기실에 앉아있던 준희가 문 앞에 서있던 간호사에게 눈짓으로 인사하고는 진료실 문을 노크하며 문을 열었다.


안에는 막 가운을 벗으며 나갈 준비를 하고 있던 중년의 남자가 인자하게 웃으며 준희에게 들어오라는 손짓을 하고 있었다.


“이 녀석! 얼굴 보기 이렇게 힘들어서야! 잘 지냈어?”


다정한 목소리로 말하는 사람은 준희의 하나뿐인 외삼촌 지호였다.


섭섭하다는 듯이 말하는 외삼촌에게 면목 없다는 듯이 헤헤 웃으며 준희는 지호의 안색을 살폈다.


분명 엄마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난 뒤였으니 외삼촌을 다시 만난 것은 거진 석달 만이었다.


외삼촌은 슬픔에 잠겨 숨도 제대로 못 쉬는지 꺽꺽 울어대며 전화로 엄마의 부고 소식을 전해왔다. 그렇게 서럽게 우는 외삼촌의 모습을 준희는 생전 처음 보았다.


“죄송해요. 공부하느라 알바하느라 정신이 없어서...”


“공시 시험 준비가 보통 힘든 게 아니라던데... 힘든 알바는 그만두고 공부에 전념하는 게 어떠냐. 생활비나 학원비가 필요한 거라면 삼촌이 도와줄게.”


진지한 얼굴로 자신을 향해 말하는 외삼촌은 분명 자신이 도와달라고 하면 금전적으로 아낌없는 지원을 해줄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준희는 외삼촌에게 신세를 지고 싶지 않았다.


“아니에요. 예전부터 해왔던 것처럼... 제가 제 힘으로 스스로 해볼게요. 말씀은 감사합니다!”


“허.... 이 녀석... 참....”


속상하다는 듯이 말하는 외삼촌을 보고 준희가 재빨리 화제를 바꿨다.


“삼촌! 저 배고파서 등가죽이 뱃가죽이랑 같이 달라붙을 거 같아요. 우리 점심 먹으러 가요! 저 밥 좀 사 주세요!”


그의 말에 외삼촌 지호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껄껄 웃으며 준희의 어깨에 양손을 올리고 진료실 밖으로 나갔다.


비싼 밥을 사준다는 말에도 준희는 부득불 외삼촌 지호에게 병원 구내식당 밥이 먹고 싶다며 몇 번이라 조르고 졸라 결국 그들은 지하1층 구내 식당에서 밥을 먹고 있던 중이었다.


이제 막 12시 정오를 갓 넘긴 이른 점심시간이었지만 꽤 많은 병원 직원들이 자리 잡고 식당에서 밥을 먹고 있었다.


준희와 그의 외삼촌 지호는 식판에 밥을 담아 막 자리에 앉는 중이었다.


이내 의자를 끌어내며 테이블에 앉은 외삼촌 지호의 눈에 준희가 퍼온 식판이 보였다.


순간 외삼촌 지호는 놀라 엄청 큰 소리로 준희에게 버럭 소리 지르고야 말았다.


“준희야! 너 이걸 다 먹을 수 있어?!”


외삼촌 지호의 눈빛에는 걱정스러움이 반, 황당함 반이 섞여있었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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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 챕터4-73(완). 불가(佛家)-사모곡(思母曲) (5) 23.11.30 37 1 11쪽
72 챕터4-72. 불가(佛家)-사모곡(思母曲) (4) 23.11.30 42 1 12쪽
71 챕터4-71. 불가(佛家)-사모곡(思母曲) (3) 23.11.30 38 1 12쪽
70 챕터4-70. 불가(佛家)-사모곡(思母曲) (2) 23.11.30 38 0 11쪽
69 챕터4-69. 불가(佛家)-사모곡(思母曲) (1) 23.11.30 37 1 12쪽
68 챕터4-68. 불가(佛家)- 우란분재와 목련존자(3) 23.11.30 39 1 12쪽
67 챕터4-67. 불가(佛家)- 우란분재와 목련존자(2) 23.11.30 40 1 12쪽
66 챕터4-66. 불가(佛家)- 우란분재와 목련존자(1) 23.11.29 40 1 12쪽
65 챕터4-65. 불가(佛家)- 진실(2) 23.11.29 37 1 12쪽
64 챕터4-64. 불가(佛家)- 진실(1) 23.11.29 37 1 12쪽
63 챕터4-63. 불가(佛家)- 가족이라는 굴레(2) 23.11.29 39 1 12쪽
62 챕터4-62. 불가(佛家)- 가족이라는 굴레(1) 23.11.29 41 1 11쪽
61 챕터4-61. 불가(佛家)- 걸신(乞神)(4) 23.11.28 42 1 11쪽
60 챕터4-60. 불가(佛家)- 걸신(乞神)(3) 23.11.28 42 1 11쪽
» 챕터4-59. 불가(佛家)- 걸신(乞神)(2) 23.11.28 42 1 12쪽
58 챕터4-58. 불가(佛家)- 걸신(乞神)(1) 23.11.28 42 1 11쪽
57 챕터3-57(완). 창귀(倀鬼)-전생의 업보(業報) (2) 23.11.28 44 1 14쪽
56 챕터3-56. 창귀(倀鬼)-전생의 업보(業報) (1) 23.11.27 44 1 12쪽
55 챕터3-55. 창귀(倀鬼)- 재회(再會) (2) 23.11.27 46 1 12쪽
54 챕터3-54. 창귀(倀鬼)- 재회(再會) (1) 23.11.27 44 1 12쪽
53 챕터3-53. 창귀(倀鬼)- 호식총(虎食塚) (3) 23.11.27 44 1 12쪽
52 챕터3-52. 창귀(倀鬼)- 호식총(虎食塚) (2) 23.11.27 45 0 12쪽
51 챕터3-51. 창귀(倀鬼)- 호식총(虎食塚) (1) 23.11.27 43 1 11쪽
50 챕터3-50. 창귀(倀鬼)- 토끼몰이 (3) 23.11.27 46 1 12쪽
49 챕터3-49. 창귀(倀鬼)- 토끼몰이 (2) 23.11.26 47 1 12쪽
48 챕터3-48. 창귀(倀鬼)- 토끼몰이 (1) 23.11.26 47 1 11쪽
47 챕터3-47. 창귀(倀鬼)- 호랑이와 여우 (3) 23.11.26 47 1 12쪽
46 챕터3-46. 창귀(倀鬼)- 호랑이와 여우 (2) 23.11.26 46 1 11쪽
45 챕터3-45. 창귀(倀鬼)- 호랑이와 여우 (1) 23.11.26 44 1 12쪽
44 챕터3-44. 창귀(倀鬼)- 마두명왕(馬頭明王)(3) 23.11.26 44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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