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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kokkoma 님의 서재입니다.

우리들의 벽사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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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kokkoma
작품등록일 :
2023.11.21 15:32
최근연재일 :
2024.01.31 19:00
연재수 :
222 회
조회수 :
6,967
추천수 :
253
글자수 :
1,186,938

작성
23.11.27 22:00
조회
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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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자
12쪽

챕터3-55. 창귀(倀鬼)- 재회(再會) (2)

DUMMY

수희는 마치 어린 아이 어르고 달래듯이 다정한 말투로 한결에게 말했다.


“그랬구나... 그 때 가평에서 일 때문에, 나 때문에 처분 받은 거면 진짜 미안해요.”


수희가 머리를 긁적이며 미안한 말투로 말하자 한결이 서둘러 두 손을 앞으로 뻗어 아니라는 듯이 가로저으며 말했다.


“아니에요. 아니에요! 그게 수희 씨 탓은 아니잖아요! 그리구 그때 예나 씨라고 했던가. 그분 남자친구분이랑 그렇게 잘 이별하고 떠나보낼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었어요.”


한결이 다행이라는 듯이 환하게 미소 지으며 말하자 수희 역시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주연은 그런 둘의 대화에 끼어들 수 없어 눈만 꿈뻑 꿈뻑 거리며 가만히 서 있었다.


사실 지금 셋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수희와 주연은 오렌지 주스가 온몸에 범벅이 되어 꾀죄죄한 모습이었는데 거기에 비까지 맞아 물에 젖은 생쥐 꼴이었다. 한결 역시 어디서 맨손으로 땅을 판 모양인지 두 손 모두 흙투성이에 손톱 곳곳에 검은 흙이 잔뜩 껴있었다. 더군다나 한결의 맨발은 흙투성이였다.


남들이 보면 셋 다 거지몰골에 노숙자 차림과 다를 바가 없었다.


초가을인데다가 비까지 내리는 밤이라 그런지 아무리 모닥불을 피워도 추위가 슬며시 느껴지는 것은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셋 다 모닥불 주위에 모여 앉아 오들오들 떨며 예나가 오기만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그러던 와중에 갑자기 수희가 생각났다는 듯이 갑자기 에코백을 뒤적이더니 작은 팩소주 하나를 꺼냈다.


“아싸! 이거 좀 오래된 거긴 한데! 에이, 술에 유통기한이 어디 있어? 우리 이거 마셔요!”


수희가 마치 보물을 발견한 아이처럼 한껏 신난다는 듯이 활짝 웃으며 말하자 한결이 한껏 똥그래진 눈으로 수희를 향해 말했다.


“여기 산이에요! 수희 씨! 산에 술을 가져오면 어떻게 합니까? 게다가 밤에 산에서 술을 마시면 더 위험해요!”


FM 정석대로 말하는 올곧은 성품의 한결은 틀에 박힌 사람이었다.


자신을 말리는 한결을 쳐다본 수희는 아무렇지도 않게, 빨대를 ‘착’ 하고 한번 꽂아 팩소주를 쪽쪽 빨며 말했다.


“산에서 못 마시니까 여기서 마시는 거죠! 그리고 원래 다 이런데서 쏘주 한모금씩 먹고 하는 거예요. 왜 이래? 선수끼리? 그리고 자기도 추워서 벌벌 떨면서?”


손바닥을 들어 괜찮다는 듯이 휘휘 젓는 제스처를 한 수희가 옆에 있던 주연에게 팩소주를 건네자 주연은 팩소주에 꽂혀있는 빨대를 빼내고 구멍을 넓히더니 소주를 한 모금 들이켰다.


주연이 무심한 표정으로 한결에게 팩소주를 건네자 한결 역시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얼마 남지 않은 팩소주 안의 남은 소주를 전부 마셔버렸다.


“이야! 술 마시니까 추운 게 좀 낫네. 역시 쐬주는 최고야! 죽인다, 죽여! 술은 역시 한번도 날 배신한 적이 없어!”


수희의 말에 두 남자는 서로 바라보며 ‘껄껄’ 너털웃음을 지었다.


그렇게 십여분 쯤 지났을까, 세 사람 모두 모닥불의 열기 때문인지, 팩소주의 술을 마셔서 그런 것인지 달큰한 열기가 몸에 퍼지는 듯 했다.


“저기... 저기 수희 씨... 우리 친구할래요?”


주연이 진지한 표정으로 수희를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말하고 있었다.


한결이 깜짝 놀란 표정으로 주연을 쳐다보았다.


조금이지만 술을 마셔서 그런 것일까, 분명 주연이라는 이 남자는 수희에게 호감을 표현하고 있었다. 한결은 재빨리 수희에게 얼굴을 돌려 그녀의 반응을 확인하려 하였다.


그 때 수희가 한심하다는 말투로 주연을 쳐다보지도 않고 말했다.


“자고로 옛말에 밤과 술이 있는 한 남녀사이에 친구란 있을 수 없는 법이랬는데? 내가 지금 친구 사귀고 그럴 처지가 못 되서요! 그리고 주연 씨! 지금 우리 목숨이 당장 위태위태한 상황이에요. 지금 나한테 개수작 부리지 말고 어떻게 버텨야 할 지 고민하는 척이라도 좀 하죠? 오늘 우리 여기서 죽을지도 몰라요!”


역시 수희는 쉽지 않은 여자였다.


한결은 다소 안심했다는 듯이 살짝 웃어보이며 주연을 쳐다보았다.


주연은 수희의 냉담한 말이 아쉽다는 듯이 입을 쩝쩝 다시며 말없이 활활 타오르고 있는 시뻘건 모닥불만 바라보며 앉아있었다.


- 그냥 됐다고 하면 될 것을... 가끔 보면 수희 씨는 나한테만이 아니라 다른 남자들한테 다 차갑네? 차라리 다행인가? 흠... 근데 왜 자기 곁에 아무도 안 두려는 거 같지? 일부러... 일부러 사람들하고 친분 쌓는 걸 피하는 느낌이야...


조용히 한결이 마음 속 깊이 수희에 대해 이런저런 갖가지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밖에서 이상한 낯선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 소리를 들은 세 사람은 흠칫 놀라 황급히 폐건물 문쪽을 바라보았다.


​ ‘사각사각’


마치 낙엽을 빗자루로 쓸 듯이 무언가가 바닥에 쓸리는 소리가 났다.


그것은 분명 낙엽소리였다.


비가 온 탓에 낙엽이 다 젖었을 것이 분명한데 이상하게도 밖에서는 계속 쉴새 없이 낙엽 쓸리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한결과 주연이 천천히 모닥불 앞에서 몸을 일으켜 문 앞에 다가서려고 하는 순간, 수희가 재빨리 그 둘의 팔을 붙들고 조용한 목소리로 낮게 말했다,


“움직이지 마요. 소리도 내지 마요. 저거 호랑이 귀신이에요.”


"네? 소리만 듣고 어떻게 알아요?“


한결의 말에 수희가 대답했다.


“원래 산 속에서 나는 소리는 들리는 대로 다 믿으면 안 돼요. 특히 밤에 나는 소리는요. 사람 발소리랑 귀신 발소리는 달라요. 사람 발자국 소리는 쓸리는 소리에 리듬감이 묻어나요. 하지만 귀신 발자국은 낙엽이 쓸리는 소리만 나요. 리듬감이 없이 쓸리는 소리만 들리면 무시하고 신경을 쓰면 안 돼요. 그러다가 자칫 홀리기라도 하면 끝장이에요. 잘 들어봐요. 지금 저 소리 아무런 리듬감 없죠? 저거 분명 귀신 소리에요.”


수희의 말은 신중하고 조심스러웠기에 한결과 주연 모두 몸이 굳은 채 문 앞에 가만히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저거 분명 창귀일텐데 앞으로 무슨 소리가 나도 절대로 문 열면 안돼요. 그냥 가만히 기다려요.”


수희의 말에 두 남자는 수희만 쳐다본 채 고개를 끄덕였다.


이내 수희의 말이 끝나길 기다렸다는 듯이 문 밖에서 서글픈 젊은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도와주세요. 다리를 다쳤어요! 누가 좀 도와주세요!”


한결과 주연이 깜짝 놀라 서로 쳐다본 뒤, 문 쪽으로 시선을 돌리자 문틈으로 어떤 검은 형체 하나가 보였다. 저 멀리 보이는 것은 희끄무레한 사람 모양의 실루엣이었다.


“보지 말래두! 비 오는 이 새벽에 플래시 하나 없이 산을 오르는 여자가 어디 있어요? 그것도 혼자서? 저거 창귀예요! 주연 씨! 저 목소리의 여자 알죠? 누구에요?”


수희의 목소리는 작았지만, 어떤 확신에 찬 듯 당당했다.


수희의 강한 어조에 주연은 잠시 망설이는 듯하다가 이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차분히 설명해주기 시작했다.


“한 이삼주 전 정도에... 강남 쪽 클럽에서 만나서 잔 여자예요. 이름도 모르고... 그냥 하룻밤 즐긴 상대입니다.”


수희는 혀를 끌끌 차며 말했다.


“주연 씨한테는 하룻밤 엔조이였을지 몰라도, 호랑이 귀신은 주연 씨 냄새가 묻은 저 여자한테 찾아가서 주연 씨인 줄 알고 죽인 거 같은데요? 그래서 저 여자는 그대로 창귀가 된 거고....”


수희의 말을 들은 주연은 슬픈 표정으로 묵묵히 가만히 서 있을 뿐이었다.


수희와 함께 호랑이 귀신에게 쫓겨 다니며 겪은 일들과 틈틈이 그녀에게 주워들은 이야기로 주연 역시 대충은 짐작하고 있었다.


하룻밤 유흥거리로 만난 저 여자와 수목원 입구의 경비 곽씨 아저씨가 죽은 것은 분명 자신의 탓이라고 어렴풋이 생각하고 있던 주연이었다. 수희의 말처럼 자신의 전생과 관련된 것이 사실이라면 호랑이 귀신 때문에 죽은 것이 자신과 무관한 일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갑자기 바스락 거리면서 멀리서 낙엽 받는 소리가 문 바로 앞에서 더 크게 들려오기 시작했다.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는 것이 분명한데 셋은 초조하게 문 앞에 서서 가만히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순간 갑자기 ‘퍽’ 하는 소리와 함께 ‘꺄악’ 하는 끔찍한 여자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 오케이! 잡았다!


수희는 자신의 손가락을 가볍게 튕기며, 기쁜 얼굴로 한결과 주연을 쳐다보았다.


사실 수희는 아까 전 두 남자에게 폐기도원 건물 입구 바로 앞마당에 흙을 파게끔 시켰다. 그리고 그곳에 자신이 박물관에서 챙겨온 율죽 하나와 부적 몇 장을 꽂아두고 흙과 낙엽으로 덮어 구덩이를 가려놓은 것이다.


분명 호랑이 귀신이 찾아온다면 이 함정을 피하지 못하고 율죽에 찔리던, 부적에 닿던 어떤 피해를 입을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수희의 작전이 통했는지 더 이상 낙엽을 스치는듯한 음습한 소리는 들려오지 않고 있었다.


수희가 밖으로 나가봐야 하나 잠시 고민하고 있던 찰나 이번에는 낙엽 잎이 스치는 게 아니라 긁는 것 같은 소리가 살포시 들려오기 시작했다.


- 뭐지. 호랑이 귀신한테 직접적인 데미지는 하나도 안 들어 간 건가. 아까랑 기운이 달라지지 않았어. 똑같이 엄청난 위압감이다. 근데 소리는...


수희는 창귀를 소멸시키면 창귀를 부하로 부리고 있는 호랑이 귀신의 기운 역시 약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수희의 착각이었다.


결국 자신이 밖으로 나가 호랑이 귀신과 직접 싸워야겠다고 생각하며 수희는 천천히 왼팔에 묶인 스카프를 푸르기 시작했다.


“안 돼요. 여기 있어요!”


밖으로 나가려는 수희의 마음을 눈치챈 것일까, 갑자기 한결이 수희의 앞을 가로막아 섰다.


“뭐하는 거예요. 어차피 내가 해결해야 해요. 한결 씨가 못해요.”


수희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비키라는 듯이 그의 팔을 밀어냈지만 한결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뭐해요! 빨리 비키래도!”


수희가 아까보다 좀 더 세게 밀며 말했지만 한결 역시 질 수 없다는 듯이 몸으로 버티며 수희가 문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막고 있었다.


한결이 큰 키와 덩치로 수희 앞을 가로막고 있었기 때문에 수희는 주연이 문 앞을 향해 걸어가는 것을 볼 수 없었다. 한결 역시 수희와 마주보며 수희가 밖으로 못 나가게 붙잡고 있었기에 자신의 등 뒤에 있는 주연을 바라볼 수 없었다.


그 때 주연은 마침내 결심했다는 듯이 문 쪽으로 휘적휘적 재빠른 걸음걸이로 걸어가고 있었다.


- 그래... 내가 해결해야 해! 이 두 사람까지 죽게 할 순 없어.


수희가 건넨 팩소주를 마셔서일까.


주연은 갑자기 어디선가 알 수 없는 용기가 불끈 생겨나는 듯 했다.


이내 주연은 당당하게 걸어가 문 앞에 다가섰고, 두 손에 힘을 주어 문을 세게 열기 시작했다. ‘끼익’ 소리가 나며 문이 활짝 열리는 소리에 수희와 한결이 화들짝 놀라 황급히 앞을 쳐다보았고, 고개를 돌리자 폐기도원 문 앞에 서 있는 주연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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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챕터4-71. 불가(佛家)-사모곡(思母曲) (3) 23.11.30 38 1 12쪽
70 챕터4-70. 불가(佛家)-사모곡(思母曲) (2) 23.11.30 37 0 11쪽
69 챕터4-69. 불가(佛家)-사모곡(思母曲) (1) 23.11.30 37 1 12쪽
68 챕터4-68. 불가(佛家)- 우란분재와 목련존자(3) 23.11.30 38 1 12쪽
67 챕터4-67. 불가(佛家)- 우란분재와 목련존자(2) 23.11.30 38 1 12쪽
66 챕터4-66. 불가(佛家)- 우란분재와 목련존자(1) 23.11.29 39 1 12쪽
65 챕터4-65. 불가(佛家)- 진실(2) 23.11.29 37 1 12쪽
64 챕터4-64. 불가(佛家)- 진실(1) 23.11.29 37 1 12쪽
63 챕터4-63. 불가(佛家)- 가족이라는 굴레(2) 23.11.29 37 1 12쪽
62 챕터4-62. 불가(佛家)- 가족이라는 굴레(1) 23.11.29 39 1 11쪽
61 챕터4-61. 불가(佛家)- 걸신(乞神)(4) 23.11.28 41 1 11쪽
60 챕터4-60. 불가(佛家)- 걸신(乞神)(3) 23.11.28 42 1 11쪽
59 챕터4-59. 불가(佛家)- 걸신(乞神)(2) 23.11.28 41 1 12쪽
58 챕터4-58. 불가(佛家)- 걸신(乞神)(1) 23.11.28 42 1 11쪽
57 챕터3-57(완). 창귀(倀鬼)-전생의 업보(業報) (2) 23.11.28 44 1 14쪽
56 챕터3-56. 창귀(倀鬼)-전생의 업보(業報) (1) 23.11.27 42 1 12쪽
» 챕터3-55. 창귀(倀鬼)- 재회(再會) (2) 23.11.27 45 1 12쪽
54 챕터3-54. 창귀(倀鬼)- 재회(再會) (1) 23.11.27 44 1 12쪽
53 챕터3-53. 창귀(倀鬼)- 호식총(虎食塚) (3) 23.11.27 44 1 12쪽
52 챕터3-52. 창귀(倀鬼)- 호식총(虎食塚) (2) 23.11.27 43 0 12쪽
51 챕터3-51. 창귀(倀鬼)- 호식총(虎食塚) (1) 23.11.27 43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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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챕터3-48. 창귀(倀鬼)- 토끼몰이 (1) 23.11.26 47 1 11쪽
47 챕터3-47. 창귀(倀鬼)- 호랑이와 여우 (3) 23.11.26 45 1 12쪽
46 챕터3-46. 창귀(倀鬼)- 호랑이와 여우 (2) 23.11.26 45 1 11쪽
45 챕터3-45. 창귀(倀鬼)- 호랑이와 여우 (1) 23.11.26 44 1 12쪽
44 챕터3-44. 창귀(倀鬼)- 마두명왕(馬頭明王)(3) 23.11.26 44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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