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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련하 님의 서재입니다.

삶의 위대함 - 한울 쥬맥

웹소설 > 작가연재 > 무협, 퓨전

완결

설련하
그림/삽화
설련하
작품등록일 :
2021.06.28 08:42
최근연재일 :
2022.10.17 08:20
연재수 :
290 회
조회수 :
378,369
추천수 :
7,321
글자수 :
2,467,752

작성
21.06.29 10:03
조회
1,462
추천
47
글자
19쪽

19화. 우르표범과의 조우

삶의 위대함 - 한울 쥬맥




DUMMY

한울이 잠시 뜸을 들이다 비 대족장의 안색을 살피며 본론으로 들어갔다.


“그건 그렇고, 아침부터 일찍 온 비 대족장의 얼굴빛이 밝지 못한 걸 보니 무슨 문제라도 있는 듯 보입니다.”


“실은 말씀드리지 못하고 처리한 일이 있어서 죄를 청하러 왔사옵니다.”


“급할 때는 먼저 행하고 뒤에 보고를 할 수도 있는 일이지 대족장이나 되시는 분이 어인 말이오?”


“최근에 발생한 전염성 풍토병에 대하여 들으셨사옵니까?”


“열세 명이나 죽었다고 하여 급히 자세한 상황을 파악하라 일렀소이다. 돌림병이라면 어떻게 해서든지 빨리 고리를 끊어야지요.”


“그 문제로 제가 가장 처음 병에 걸려 주위에 퍼뜨린 환자를 완전히 격리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어젯밤에 산에 내다 버리라 하였사옵니다.”


“허어~ 살아 있는 환자를 산에 버려요? 혹시 그 쥬맥이라는 어린아이가 아닌가요?”


“맞사옵니다. 그 아이로 인하여 전염병이 돌았다고 종족의 민심이 흉흉해서, 더 이상 지체하면 문제가 될 듯하여 소신이 독단(獨斷)으로 처리하였사옵니다. 소신을 벌하여 주소서.”


“어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살아 있는 어린아이를 어른들이 산속에 버리다니요? 그 아이는 부모 형제가 다 죽어 천둔산에서 내가 돌봐 주겠다고 했던 아이인데······. 부끄러운지고······. 다 내가 부덕한 탓이오 내가 부덕한 탓이야.”


“죽을 죄를 지었사옵니다. 소신이 시킨 일이니 벌하여 주옵소서.”


“그 병든 애를 그냥 거적에 싸다가 산속에 버렸단 말입니까?”


한울이 좀 화가 난 투로 물었다.


“옷가지와 비상식량, 검 등을 함께 챙겨서 혹시라도 살아남을 수 있는 방도를 찾도록 하였사옵니다.”


“그래도 그렇지. 허어~ 부끄러운지고. 이미 저질러진 일을 어이할까? 대족장이 시켰다고는 하나 멍에를 대신 짊어지고자 함이니 내 어이 탓할 수 있겠소. 그만 나가 보시오.”


“죄송하옵니다.”


몇 번이나 머리를 숙이며 사죄를 한 비율신 대족장이 막사를 물러 나왔다.


그러자 멀찍이서 서성거리던 부족장 네 사람이 황급히 다가왔다.


“아니 비 대족장님! 아침에 저희가 죄를 청하기로 했는데 왜 대족장님께서 나서셨습니까?”


“이 나이에 내가 부하들 뒤에 숨는다면 그게 더 부끄러운 일일세. 한 번 뒤로 숨는 것을 배운 사람은 다음에 또 숨게 되는 법이야.”


“죄송합니다. 저희들 때문에 비 대족장님만 입장이 난처해지셨습니다.”


“자네들도 다 멍에를 짊어지고자 했던 일이 아닌가? 나도 묵언으로 동조(同調)한 일이니 어쩔 수 없는 일이지. 그건 그렇고, 챙길 것은 다 챙겨서 안전한 곳에다 두고 왔겠지?”


“예, 최선을 다했으니 그건 염려하지 마십시오.”



그때 한울은 의복을 갖추고 직접 천사장의 막사를 찾고 있었다.


천사장도 좀 전에 식사를 마쳤는데, 아침부터 부르지 않고 직접 찾아오는 한울을 보니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아침부터 어인 일이십니까? 식사는 하셨는지요?”


“예, 식사는 하였는데 바로 비 대족장한테 황당한 얘기를 듣고 나니 체하지나 않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부르시지 않고 이리 직접 오시다니요? 무슨 일인데 그렇게 얼굴빛이 안 좋으신 것입니까?”


“어젯밤에 비 대족장이 전염성 풍토병을 앓고 있는 쥬맥이라는 아이를 산 채로 산에 내다 버린 모양입니다.”


“허! 그게 마음에 걸려서 그러셨군요. 그런데 그 아이의 미래를 점쳐 보니 그리 쉬 죽을 아이가 아니었습니다.


어떻게든 살아남아 큰일을 할 아이이니 너무 상심하지 마세요. 큰 시련(試鍊)이 있어야 큰사람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 시련이 닥쳐온 게지요.”


“정말입니까? 그렇다면 그나마 다행입니다. 그래도 병든 어린것이 홀로 산에 버려졌는데 어른들이 어찌 손을 놓고 보고만 있다는 말입니까?


종족의 수장으로서 모든 생명을 소중히 하라는 천신의 가르침을 어찌 소홀히 할 수 있겠습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태을 선인이 천령수 때문에 천둔산에 가 있으니, 제가 기별을 넣어서 위험에 빠지지 않게 가끔 살펴보라 이르겠습니다.”


“정말 그리 해 주세요. 그러면 그나마 안심입니다.”


“이왕 오셨으니 소화도 시키실 겸 저 하고 목책이나 둘러보러 가시지요. 나이가 들수록 건강이 제일 중요합니다.”


천사장이 앞장서서 한울을 인도(引導)하니 같이 나서서 주변의 목책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한울이 막사를 나설 때부터 보이지 않게 은신하여 따라나선 수신호위 이십여 명이 주위에 소리 없이 숨어들며 기감(氣感)을 퍼뜨려 사방을 경계했다.


이렇게 천인족의 주거지는 또 하루가 시작되었다. 쥬맥을 산속에 홀로 버린 일로 아침부터 부산을 떨면서······.


* * * * *


쥬맥은 이제 완전히 해가 떠서 산하를 밝게 비추는 전경을 바라보면서 무슨 일을 먼저 할 것인지 생각했다.


분명히 안전한 주거지(住居地)를 먼저 찾는 게 필요한데, 목도 너무 마르고 배도 고프다. 뭐부터 해야 하나?


그동안 아파서 누워 있었기 때문에 자주 씻지 못했다. 부스럼과 짓무른 피부에서 흐르는 진물로 온몸에서 역한 냄새가 나니 스스로도 싫었다.


이런 몸으로는 여기저기서 냄새를 맡고 짐승이나 사특(邪慝)한 것들이 몰려오기 쉬운데······. 그래서,


우선 봇짐을 숨겨 두고 단도와 바로 먹을 비상식량, 갈아입을 옷만 가지고 아래쪽으로 물을 찾아 나섰다.


겨우 바위를 타고 내려와서 짐승이나 뱀 등은 없는지 사방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몸을 낮추고 천천히 계곡을 찾아 밑으로 내려갔다.


다행히 얼마 내려가지 않아서 시작된 계곡에는 무릎이 잠길 정도의 내가 흐르고 있었다. 천둔산 정상에 쌓인 눈이 녹아서 흘러내리는지 물은 조금 차갑지만 수량(水量)이 매우 풍부했다.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살핀 뒤 잘 보이지 않는 큰 바위 뒤에 숨어서 먼저 목을 축였다. 갈증이 가시자 그제야 주린 배를 채우려고 육포(肉脯)를 소리 나지 않게 꼭꼭 씹어 먹었다.


허기진 배가 불러오자 이제 좀 살 것 같다. 역시 먹는 게 최우선인지······.


그런데 그때 아래서 무언가 물로 첨벙거리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이 아닌가?


깜짝 놀라 바위틈에 숨어서 얼굴만 살짝 내밀고 살펴보았다. 그러자 금방 눈에 띄는 위험한 짐승! 얼룩덜룩한 커다란 호랑이 같은 야수가 물을 들여다보며 바위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물을 앞발로 잽싸게 내리쳐서 산천어(山川魚)처럼 생긴 커다란 물고기를 잡아낸다.


파닥거리는 물고기를 그 자리에서 날카로운 이빨로 뜯어 먹는데, 아작아작 뼈까지 씹어 먹는 소리가 쥬맥에게까지 생생하게 들려왔다.


무서우니 바위 뒤에 숨어서 가슴만 콩닥거리는데, 갑자기 바람이 쥬맥 쪽에서 짐승이 있는 쪽으로 마치 계곡풍(溪谷風)처럼 부는 것이 아닌가?


그러자 짐승이 이상한 냄새를 맡았는지 갑자기 코를 킁킁거리며 일어섰다. 그러면서 불꽃처럼 이글거리는 샛노란 눈으로 쥬맥이 있는 쪽을 살핀다.


표범처럼 생겼지만 몸통 두께가 두 자 반에 길이가 여섯 자 정도나 되는, 일반적인 표범보다 덩치가 몇 배나 큰 짐승이었다. 생각보다 훨씬 더 무섭게 생겼고······.


노란 눈에서는 번갯불이 튀어나올 듯한데 쫑긋한 귀를 움직이며 긴 꼬리를 바닥에 대고 살랑살랑 흔들었다.


물고기 먹는 것을 멈추고 코와 귀를 계속 움직이며 둘레를 살피는 것이 아무래도 쥬맥의 냄새를 맡은 듯했다.


그러더니 낮게 ‘크르릉~’ 하면서 목을 구르며 미지의 적에게 위협 신호를 보내는 것이 아닌가?


쥬맥은 엄습(掩襲)하는 공포와 긴장감으로 움켜쥔 작은 주먹에 땀이 흥건하게 고이고, 심장이 콩콩거리며 콩알만 해졌다. 뭔가 사달이 날 것만 같았다.


이 짐승은 뒤에 우르표범이라고 불리었는데 우르산맥 일대에 서식(棲息)하는 대형 표범으로 사납기가 호랑이 못지않았다.


그런데 쥬맥이 겁을 잔뜩 집어먹고 움츠리다 보니 너무 긴장하여, 한 발이 미끄러지면서 ‘풍덩!’ 하는 소리와 함께 물속으로 빠지고 말았다.


그 소리를 듣고 우르표범이 비호처럼 뛰어오더니 쥬맥이 있는 바위 위로 튀어 올라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쥬맥이 더듬거리며 가져온 단검(短劍)을 찾았으나 미처 손에 잡기도 전에 짐승이 아래로 뛰어내려, 뒤로 넘어진 가슴을 커다란 앞발로 내리눌렀다.


그러더니 큰 먹이를 잡아서 기쁘다는 듯이 하늘을 향해 포효하는데······.


“크허어어엉!”


큰 울음으로 잡은 먹이를 위협하는 한편, 샛노란 눈으로 쥬맥을 노려보며 이리저리 살폈다. 이놈이 맛이 있을까? 속으로 그렇게 따져 보는 모양이다.


쥬맥은 어린 가슴에 덜컥 겁을 집어먹고서 무서움에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제발 죽더라도 고통스럽지 않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오직 걱정은 그것뿐!


그리고 이제 죽으면 엄마, 아빠랑 형을 만날 수 있겠구나 하고 생각하니 처음과 달리 오히려 마음이 담담했다.


우르표범은 이미 물고기를 많이 잡아먹어서 배가 불렀지만, 처음 보는 먹이에 호기심이 생겼다. 어디 새로운 먹이인데 한번 먹어볼까?


일단 목을 물어뜯어 죽이려고 입을 크게 벌려서 물려고 하는데, 아직 한 번도 맡아 보지 못한 심한 악취(惡臭)가 풍겼다.


먹이의 얼굴과 목을 살펴보니 살아 있는데도 이미 상한 먹이처럼 부스럼에서는 진물이 흐르고, 고약하게 썩는 냄새까지 나는 것이 아닌가?


이 먹이는 병들고 상해서 먹을 수 없는 것이고 먹으면 위험하다고 본능이 경고하고 있었다. 어유~ 더러워!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고개를 갸웃거리며 망설이고 있는데, 쥬맥도 죽기를 기다리다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자 슬며시 눈을 떠 봤다.


그러자 바로 눈앞에 무서운 짐승이 커다란 머리를 들이밀고 있다가 두 눈이 딱 마주쳤다. 샛노란 두 눈이 달빛을 받아서 마치 불을 뿜는 듯한데······.


이미 죽기를 각오한 마당이라 모든 것을 포기(抛棄)한 채 그 눈을 피하지 않고 지그시 마주 보았다.


우르표범은 힘없는 먹이가 감히 겁도 없이 눈으로 자기를 마주 보고 있는 것이 참 하찮고 한편으로는 가상(嘉尙)했다. 그래서 다시 목을 구르며 노려보면서 은근히 겁을 주었다.


“크르르~”


그리고 마치 금방 죽일 것처럼 한 번 더 입을 벌려서 위협(威脅)해 보았다.


그런데 어라? 이 어려 보이는 먹이가 겁을 먹는 게 아니라 가만히 자기를 쳐다보며 씩 웃어 주는 것이 아닌가?


‘이 녀석 봐라? 참으로 맹랑하네. 겁도 안 먹고 저승사자인 나를 보고 웃어? 혹시 살짝 맛이 간 거야?’


썩은 피부와 냄새로 봐서도 맛이 간 것은 확실한데···, 여유(餘裕)가 만만한 것을 보니 뭔가 있는 게 아닐까?


일단 슬그머니 목을 물려던 머리를 뒤로 물리고 가슴에 올려놓았던 앞발을 내린 다음, 혹시 몰라서 조금 뒤로 물러나 앉았다.


앞발을 세운 채 지그시 노려보고 있는데, 이 상한 녀석도 물에 빠진 발을 빼내더니 도망갈 생각은 안 하고 옆에 와서 그냥 눕는 게 아닌가?


실은 다리에 힘이 빠져서 도망갈 기운이 하나도 없으니 완전히 자포자기를 한 것이다. 그러자 표범이 앞발로 위협하듯이 쥬맥을 툭툭 쳤다.


‘요놈 봐라? 너 뭐야?’


그랬더니 또 씩 웃으며 감히 자기 앞발을 따라서 툭툭 쳐 댄다. 어린 녀석이 겁도 없이.


쥬맥의 뜻은 ‘야! 죽일려면 빨리 죽여! 엄마와 아빠 만나러 가게.’ 였다.


몇 번 해 보니 장난기가 발동했다. 이놈아 혼나 봐라 하면서 입을 크게 벌린 뒤 머리를 물려고 가져다 댔다.


그런데 놀라지도 않고 가만히 있다?


‘이 녀석 재미있는 녀석인데? 심심할 때 가지고 놀면 재미있겠어.’


먹거리야 사방에 널려 있으니 아쉬울 것도 없고 심심하던 차에 잘 되었다. 그리 생각하며 한참을 장난치고 놀다 보니 왠지 친근한 생각도 든다.


일방적으로 잡아먹던 먹이가 이런 감정을 주리라고는 감히 생각도 해 본 적이 없었다. 느껴 본 적도 없었고···.


그래서 차마 죽이지 못하고 다음에 와서 또 가지고 놀려고 그냥 돌아갔다. ‘네 녀석은 뛰어 봐야 내 손안에 있다. 크르릉!’ 하면서 말이다.


쥬맥은 우르표범이 간 뒤에도 멍하니 바위 위에 누워 있었다. 죽는 줄 알고 기다렸으나 죽지 않았고, 마음을 비우니 무서울 것이 없었다.


자포자기(自暴自棄)의 심정으로 무슨 행동을 하는지도 몰랐는데 짐승이 장난을 치다가 그냥 가 버렸다.


“에이 고얀 녀석! 엄마, 아빠를 보는 줄 알고 괜히 좋다 말았네.”


엄마와 아빠 곁으로 가려나 했는데 그게 무산되자 실망 반에 그래도 살아서 다행이다 싶은 마음이 반이다.


손을 털고 일어서니 아래로 쭉 뻗은 수려한 계곡이 눈에 들어왔다.


계곡가에 우거진 숲과 풀잎에 맺힌 이슬이 채 마르지 않아서, 햇빛에 반짝이며 뿌려 대는 영롱한 오색 광채의 편린들이 너무 눈부시다.


어린 마음에 모든 것을 포기하면서, 거대한 짐승의 발 아래 삶을 자포자기했던 쥬맥의 정신이 일대 전환점(轉換點)을 맞이하였다.


아빠의 말씀대로 죽고 사는 것이 사실 별로 두려울 것 없다는 생각과, 그렇다면 혼자도 멋지게 살 수 있다는 인식(認識)의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그 달라진 마음에 끝없이 펼쳐진 광대한 대자연의 신선한 기운들이 가슴을 가득 채우는 듯하여 숨을 깊이 들이 쉬었다. 그러자 후련한 기운이 전신을 파도처럼 휩쓸고 지나간다.


“휴우~”


한동안 풍경을 바라보며 깊은 숨을 몇 번 내쉰 뒤에 천천히 돌아서서 옷을 벗기 시작했다.


목까지 길게 자란 검은 머리는 부스럼의 고름이나 진물이 뒤엉켜서 눌러 붙었다. 그것만 봐서는 완전 거지꼴이다. 그러나 커다란 눈과 우뚝 솟은 코, 다부지게 악물고 있는 입술을 보라!


비록 이제 여덟 살을 앞둔 어린애지만 나이답지 않게 어른스러운 얼굴을!


아직 천진난만함이 남아 있는 얼굴이지만, 세상 풍파를 겪은 그 얼굴에서는 꺾이지 않을 것 같은 강인함과 사내다운 기상(氣像)이 엿보였다.


또래보다 큰 키에 앙상하게 마른 몸에는 부스럼에서 흐르는 고름과 진물이 섞여 흘렀고, 그것이 옷에 달라붙어서 떼어 내는 고통이 상당하였다.


그래도 이를 악물고 물에 불려 가면서 들러붙은 옷을 떼어 냈다.


마침내 옷을 모두 벗고 전신이 드러나는데···, 온통 부스럼투성이의 몰골이 보기에도 너무 참혹하다.


옷을 다 벗고 물가에 앉으니 잔잔한 거울 같은 수면 위에 자신의 모습이 비친다. 스스로가 보기에도 자신의 모습이 너무 흉측해 보였다.


‘내 모습이 정말 이랬나?’


이를 악물고 물속으로 다리를 넣으며 주저앉으니, 높은 산에서 눈이 녹아 흘러내린 물은 온몸이 오싹할 정도로 시렸다. 추위에 턱이 덜덜 떨린다.


‘아무리 추워도 이런 모습은 싫어!’


더러워진 몸이 너무 싫었기에 머리에서 발끝까지 그동안 싸인 때와 오물을 여린 손으로 말끔히 씻어 냈다.


“아아~ 아파!”


물에 닿은 수많은 부스럼의 상처들이 너무 쓰려서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나오고 신음이 절로 입 안을 맴돈다.


겨우 몸을 다 씻고 일어서니 한기에 온몸이 오돌오돌 떨렸다. 피부에는 마치 털을 뽑아낸 닭의 살갗처럼 소름이 돋았고. 그래도 몸을 깨끗이 씻고 새옷으로 갈아 입으니 몸이 가쁜하고 기분이 상쾌하여 날아갈 것만 같았다.


입었던 옷을 버릴 수 없어서 물에 빨고 가져온 단검 등을 챙겨서 왔던 자리로 돌아오는데, 이제까지의 무서움과 슬픔과 고통은 어디로 간 것인지 기억의 저편으로 날아가 버렸다.


자신에게 미지의 새로운 생이 펼쳐지고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뛰었다. 이제는 내 삶에 뭔가를 해야 할 때다.


버려졌던 바위 위로 다시 돌아와서 빨래를 보이지 않게 바위 위에 널었다. 혹시 날아갈까 봐 작은 돌로 눌러놓는 것도 잊지 않았고······.


“급한 것을 해결했으니 이제는 빨리 안전한 주거지를 찾아야 해.”


다시 봇짐에서 육포를 조금 챙겨 들고 단검을 허리춤에 꽂은 뒤, 가벼운 몸으로 주거지를 찾아 나섰다.


* * * * *


한편, 천인족 주거지에서는 신녀들이 어린아이들을 모아서 막 수련을 시작하고 있었다. 앞에서 이것저것 설명을 하면서 가르치는데, 몇몇이 집중하지 못하고 머리를 맞대며 숙덕거린다.


“얘, 수르야! 너랑 친하게 지냈던 쥬맥이 풍토병으로 죽어서 숲속에 내다 버렸다는데 그게 사실이니?”


“아닌데, 아파서 누워 있는데······.”


“아니야. 내가 오면서 봤는데 쥬맥이랑 환자들이 누워 있던 막사랑 옷가지들, 그릇들까지 모두 불태우고 땅에 묻던데?”


“응? 정말이야? 그럼 내 친구 쥬맥이 죽었나? 그럴 리가 없는데······.”


“너랑 유리도 쥬맥이랑 셋이서 맨날 함께 놀러 다녔잖아? 너희도 혹시 쥬맥이 만졌다는 죽은 동물을 같이 만졌니? 그랬으면 아예 우리 곁에는 오지도 말고 떨어져 앉어. 알았지?”


“아니야, 그때 우린 같이 안 갔어.”


“우리는 그때 없었어. 쥬맥이 자기 혼자 갔댔잖아?”


유리와 수르는 혹시 불똥이 자신들에게 튈까 봐 펄쩍 뛰며 손을 내젓고 완강히 부인했다.


그래도 수르는 아프던 쥬맥을 외면(外面)하던 것이 생각나면서 미안한 생각이 들었고, 죽었다는 말에 슬픔이 밀려와 눈에 이슬이 맺혔다.


한쪽에서 그 모습을 보는 유리도 친구들이 알지 모른다는 두려움과, 신랑 신부 하기로 했던 풋사랑을 이룰 수 없게 된 상실감(喪失感), 그리고 쥬맥에 대한 그리움과 미안함에 슬픔이 뒤섞여 눈가에 습막이 번지고 있었으니.


겁이 많은 어린 마음에 모른다고 진실에서 도망을 쳤을 뿐, 어찌 그것에 배신(背信)이라는 단어를 끌어다가 붙일 수 있겠는가?


속이 상한 수르와 유리는 수련이 끝나자 정말인지 확인하기 위해서 쥬맥이 누워 있었던 천막을 찾아갔는데···.


덩그러니 터만 남아 비어 있는 자리를 보면서 둘은 또 한 번 울어야 했다.


* * * * *


그 시간에 쥬맥은 주거지를 찾아서 헤매고 있었다. 처음에 버려졌던 산을 내려와서 뒤쪽의 좀더 높은 산을 오르는데, 가을이라 여기저기에 열매가 주렁주렁 달린 나무가 제법 많았다.




감사합니다. - 설련하(偰輦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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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23화. 무인을 꿈꾸다 +1 21.06.29 1,500 50 18쪽
22 22화. 동굴 속의 기연(奇緣) +1 21.06.29 1,504 50 18쪽
21 21화. 새 친구 점박이 +1 21.06.29 1,481 50 18쪽
20 20화. 새로운 안식처(安息處) +1 21.06.29 1,485 49 19쪽
» 19화. 우르표범과의 조우 21.06.29 1,463 47 19쪽
18 18화. 홀로 숲에 버려진 아이 +1 21.06.29 1,468 49 18쪽
17 17화. 풍토병(風土病) +2 21.06.29 1,463 48 18쪽
16 16화. 화해협상(和解協商) +1 21.06.29 1,462 49 19쪽
15 15화. 핏물은 강이 되어 흐르고 +2 21.06.29 1,473 50 18쪽
14 14화. 협상 결렬과 힘겨루기 +2 21.06.29 1,463 50 18쪽
13 13화. 울트의 읍참마속(泣斬馬謖) +2 21.06.29 1,499 50 17쪽
12 12화. 반인족 선발대와의 전투 +2 21.06.29 1,555 50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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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8화. 반인족과의 격돌(激突) +2 21.06.28 1,753 48 19쪽
7 7화. 사건의 발단(發端) +2 21.06.28 1,859 50 19쪽
6 6화. 첫 주거지 +2 21.06.28 2,008 52 18쪽
5 5화. 선인과 거인(巨人) +3 21.06.28 2,161 50 18쪽
4 4화. 거인족과의 조우(遭遇) +2 21.06.28 2,384 53 18쪽
3 3화. 천인족의 대이동(大移動) +3 21.06.28 2,635 55 18쪽
2 2화. 서장(2) 탈출(脫出) +3 21.06.28 2,830 56 19쪽
1 1화. 서장(1) 탄생(誕生) +4 21.06.28 4,638 58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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