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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련하 님의 서재입니다.

삶의 위대함 - 한울 쥬맥

웹소설 > 작가연재 > 무협, 퓨전

완결

설련하
그림/삽화
설련하
작품등록일 :
2021.06.28 08:42
최근연재일 :
2022.10.17 08:20
연재수 :
290 회
조회수 :
378,705
추천수 :
7,321
글자수 :
2,467,752

작성
21.06.28 09:43
조회
1,756
추천
48
글자
19쪽

8화. 반인족과의 격돌(激突)

삶의 위대함 - 한울 쥬맥




DUMMY

여러 가지로 바쁜 와중에 결국 그렇게 염려하던 일이 발생하고 말았다.


이주한 지 네 달여가 지난 어느 봄날.


아열대 기후지만 열대에 가까이 있어서 밤에는 날씨가 제법 선선해도 낮에는 기온이 올라 마치 여름처럼 더웠다.


초저녁이라 아직 낮의 열기가 식지 않아서 사람들은 저녁을 먹고 집 앞에 나란히 앉아 더위를 식히는 중이었다.


밤하늘에 보석처럼 반짝거리는 수많은 별들, 특히 별들이 운집한 은하수를 바라보며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는 사람들도 많았고······.


“오늘 저녁은 정말 별이 참 많네. 어머~ 저 은하수 좀 봐!”


한 사람이 가리키는 손끝을 따라 여러 사람의 시선이 머문다.


쥬맥도 아픈 몸을 이끌고 천막 앞에 나와서 친구들과 떨어져 앉아 하늘의 별들을 구경했다. 수르와 유리만 그 근처에서 곁을 지키고 있을 뿐이다.


옹기종기 모여 앉아서 별을 보는 모습을 보니 마치 아리별에서 형들을 따라 뒷동산에 오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별을 보던 추억 속의 그날처럼.


“우리 고향에도 별들이 참 많았는데, 여기서 보는 별들은 다른 별일까?”


“같은 별일 거야. 저기 예쁜 별은 맥이 네 것 해라. 저 별은 내 거야.”


유리가 돈이 들지 않는 선심(善心)을 썼다. 그러자 질세라 나서는 수르.


“그럼 저 은하수는 다 내 거야.”


과하게 욕심을 부리며 은하수의 수많은 별들을 혼자서 다 독차지하려고 했다.


그런데 그때 동쪽 구릉(丘陵) 너머에 밤하늘을 붉게 물들이는 화광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하더니, 점점 늘어나면서 제법 그쪽 하늘이 훤해졌다.


“저쪽에 무슨 일이 있나 봐. 하늘이 훤한 걸 보니, 누가 큰불을 피우나?”


쥬맥의 손짓에 수르와 유리가 함께 손가락질을 하며 그쪽을 바라보자, 별을 보던 사람들도 금방 알아차리고 함께 그쪽을 바라보았다.


천령대에서도 무슨 일인가 염려되어 1조 오십 명을 정찰조(偵察組)로 내보내 상황을 알아보게 하였다.


정찰조 마야루 조장은 때가 어두운 밤이고 상대에게 들키지 않아야 하는 임무이기 때문에, 모두 말을 두고 검은색 야행복 차림으로 위장을 시켰다.


모두 몸을 낮추고 소리를 죽였으며, 몸을 어둠 속에 은신하면서 불꽃이 피어오르는 곳을 향해 천천히 접근했다.


도대체 이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정황을 파악해야 하니 말이다.


실은 오늘 이곳에서 피어오르고 있는 여러 개의 모닥불은, 반인족(半人族)의 젊은이들이 따뜻한 아열대 지역으로 집단 수련을 나온 것이었다.


그들은 천인족이 위치한 시원평원보다 더 남쪽인 온대 지역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그곳은 아직 날씨가 쌀쌀하니까 훈련 삼아 따뜻한 곳을 찾아온 것인데······.


반인족은 매년 관례대로 집단 전투와 신체를 수련하기에 좋은 장소를 골라서 야숙을 하며 집단 훈련을 해 왔다.


그리고 이곳이 나무가 적고 뜰이 넓어서 제격이니 자주 애용하였고.


이렇게 훈련차 오늘 이곳에 도착해서 첫날 밤을 보내며, 모닥불 주변에 모여 앉아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중이었다.


“야! 술과 고기는 충분하니까 모두 실컷 먹고 마셔라!”


“와우~ 우리 대장님 최곱니다.”


술과 고기를 넉넉하게 내주는 대장을 추켜세우며 모두 먹고 마시기 시작했다.


반인족은 이각족(二脚族)과 사각족(四脚族)으로 나뉘는데 이번 수련은 반반씩 섞여 있었고, 쵸룬이라는 서른여섯 살 먹은 이각족이 지도를 맡고 있었다.


반인족은 통상 육 척(1.8m) 정도의 키에 수명이 백 살 전후이며 모계사회(母系社會)였다. 남자는 엄마 손에서 자라다가 성인이 되면 가정을 이루지 않고 독립하여 살았다.


그러다 보니 마음에 맞는 여러 이성과 자유로운 사랑이 가능해서 이성관계(異性關係)가 매우 문란한 편이었다.


자식은 아버지의 혈통(血統)을 따지지 않고 모두 엄마가 키웠다. 그래서 남자들은 성인이 되면 사냥과 종족 간의 전투에 참여하여 집단 생활을 하는 경우가 많아서, 가족과 자식에 대한 부담이 전혀 없었다.


물론 혈통을 따지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자신의 아버지가 누군지는 알고 살았다.


그들은 심지어 밝은 보름달이 뜨는 밤이면 넓은 벌판에 모여서 남녀 간에 뜨거운 열정의 축제를 벌인다.


그들끼리 만월축제(滿月祝祭)라고 부르는 이 축제가 벌어지면 많은 성인들이 모여서 함께 놀았다.


이때는 들판에서 사교춤과 집단으로 이상한 행위들을 벌이기도 하니 아직 문명을 제대로 이루지 못한 종족인 것이다.


오늘 모여 있는 모습만 봐도 오백여 명의 젊은이 속에는 젊은 여자들도 백여 명이나 끼어서, 차마 봐 주기 힘든 희한한 모습들을 연출하고 있었다.


“아! 오빠아~”


“아으~ 그러지 마.”


이때, 천령대 정찰조의 조장 마야루는 무사들을 데리고 수풀 사이로 은밀하게 접근했다. 그렇게 다른 종족으로 보이는 무리를 세심히 관찰하고 있는데······.


달이 없는 밤이라 불빛에만 노출되지 않으면 쉬 들킬 것 같지 않아서 대범(大汎)하게 근처까지 접근을 시도했다.


놀고 있는 무리를 살펴보니 주변에 있는 이십여 개의 커다란 모닥불에 이삼십 명씩 둘러앉아서 고기를 구워 술을 마시며 흥청거리고 놀았다.


익어 가는 고기에서 기름이 불 속으로 떨어지니 지글거리며 냄새를 풍기는 데 발효시켜서 시큼한 냄새가 나는 주향(酒香)이 함께 섞여 있었다.


어떤 무리는 술을 마시는 데 빠져서 정신이 없고, 또 어떤 무리는 좀 어두운 뒤쪽에서 보기 민망한 애정 행각(愛情行脚)을 벌이느라 정신이 없었다.


생김새를 가만히 살펴보니 어떤 사람은 유인원처럼 하체에는 털이 북슬북슬한데, 배꼽 위의 상체는 천인족과 똑같이 생겼다.


얼굴이나 가슴이나 하얀 피부까지···, 상체만 봐서는 구분이 힘들 정도다.


그럼 도대체 사람인가 짐승인가?


그런데 하체는 말처럼 생기고 상체는 사람과 같은 모습도 보여서 매우 놀랐다. 흰 피부에 두 팔을 가지고 있는데 상체는 역시 천인족과 똑같았고.


하체의 털 때문인지 웃옷만 입었는데, 그나마 대부분이 상체의 옷도 벗어서 방석처럼 깔고 앉았다.


그런데 여자들이 부끄러움도 없는지 허연 상체를 다 드러내 놓고 있었다.


심지어 좌우에 앉은 두 녀석이 손장난을 하는데 신경도 안 쓰고 시시덕거리며 떠들고 논다. 아니 도대체 저게 무슨 짓일까? 마치 짐승처럼. 절반이 짐승이라고 하는 짓거리도 짐승을 그대로 빼어 닮았다.


아마 문화 자체가 그러한 모양이다. 글자 그대로 절반만 사람인 모습이고, 절반은 아직도 짐승의 태(胎)를 벗어나지 못했으니······.


더욱 놀라운 것은 길고 아주 튼튼해 보이는 꼬리까지 엉덩이에 달고 있다는 것!


손으로는 옆 사람과 서로 술잔을 주고받으면서도 꼬리로는 뒤에서 다른 이성과 딴짓을 하는 사람도 있으니, 에그 쯧쯧! 보기에도 너무 민망하다.


“아니, 저것들은 도대체 뭐야? 사람이야 짐승이야? 별짓을 다 하네.”


생긴 모습과 하는 짓이 하도 어이가 없어서 마야루와 그 조원들은 혀를 차면서도, 한편으로는 처음 보는 신기한 모습에 본연의 임무가 무엇인지 망각한 채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때 무리에서 떨어져 둘만의 시간을 갖고 돌아오던 이각족 두 명이 정찰조 무사들을 발견하고는 뾰족한 비명(悲鳴)을 질렀다.


“으아~악! 너희들 뭐야?”


비명 소리가 나자마자 순식간에 분위기가 바뀌었다. 반인족들이 번개처럼 무기를 가지고 튀어나오더니 천령대의 정찰조 주위로 모여들었다.


도망치려 했지만 어찌나 원숭이처럼 동작들이 날쌘지, 마치 비호 같아서 엉거주춤 뒤로 몰리면서 뭐 밟은 표정으로 적들에게 둘러싸이고 말았다.


최대한 몸을 가볍게 하고 소리를 줄이기 위해서 도검에 손목용 투갑만 차고 왔는데, 만약 싸움이라도 벌어진다면 낭패도 이만저만한 낭패가 아니다.


아무리 무예(武藝)를 닦은 무사들이라고 해도 열 배가 넘는 날랜 종족들에게 둘러싸여서 공격을 받는다면, 목숨을 보장하기가 어렵지 않겠는가?


이상한 모습과 어처구니없는 짓거리에 정신이 팔려서 곤경에 처하고 말았다.


반인족들도 놀랐는지 몇 겹으로 둘러싸고 이구동성(異口同聲)으로 떠들어대는데······.


“야! 너희들 뭐야?”


“우리와 다른 사람들인데···, 처음 보는 종족이야!”


“아래에도 옷을 입는 거 보니까 아랫도리에 털도 없나 봐! 어? 신발도 신었네? 사람이 되다 말았나 봐.”


“우와! 꼬리도 없는 병신이네.”


“어머! 그래도 얼굴은 잘 생겼다, 얘. 한 번 갖고 싶어~어.”


“혹시 우리 여자들이 병신 낳아서 갖다 버린 것들 아녀? 꼬라지들이······.”


“키가 우리보다 큰데 혹시 변이(變異)한 괴물들이 아니냐?”


반인족들이 빙 둘러싸고 저마다 한마디씩 떠드는 가운데 지휘자인 이각족 쵸룬이 앞으로 나서자 마야루도 눈치를 채고 앞으로 나왔다.


“나는 여기에 모인 사람들의 대장인 쵸룬이다. 너희는 어디서 온 누구냐?”


“뭐라는 거야? 왜 웽웽거려. 너희는 누군데 여기 있는 것이냐?”


“이놈들 봐라. 말도 안 통하고 무기도 들고 있네. 설마 우리랑 싸우려고?”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우리는 싸우러 온 게 아니다. 이 주변은 우리 종족의 땅이니 어서 물러가라!”


서로 통하지 않는 말만 주고받다가 마야루가 연락병(連絡兵)을 찾았다.


“아무래도 안 되겠다. 본대에 비상 신호를 보내라.”


그러자 중간쯤에서 서로 눈을 마주친 연락병이 허리에 차고 있던 길쭉한 대통 모양의 비상 연락용 폭죽(爆竹)을 빼냈다. 그것을 왼손에 들더니 하늘로 겨누며 오른손으로 밑에 달린 끈을 힘껏 잡아당겼다.


그러자 큰 소리와 함께 빨간 불꽃이 하늘로 꼬리를 끌며 높이 날아오른다.


뿌앙!


그런데 신호용 폭죽 소리를 전투 신호(戰鬪信號)로 생각한 쵸룬이 위험하다고 생각했는지 황급히 뒤로 물러나며 반인족 수련생들을 향해 외쳤다.


“모두 공격하라! 한 놈도 살려 두지 말고 다 죽여 버려!”


대장의 지시에 정찰조의 주위를 둘러싸고 빠르게 빙글빙글 돌아가면서 날카로운 대나무 창을 던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활을 가진 수십 명의 여자들과 돌팔매를 가진 덩치 작은 남자들은 근처의 나무나 바위 위로 기어올랐고.


그들이 도검(刀劍)이 닿지 않은 거리에서 화살과 돌을 날리기 시작하자 금방 십여 명이 맞고 바닥으로 나동그라졌다.


이에 놀란 조장 마야루가 검을 뽑아 들고 커다란 목소리로 명령을 내렸다.


“모두 나선은하진을 펼쳐라!”


조원들이 명령 한마디에 모두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가운데를 비워 부상자를 넣고 둥글게 원을 그리더니, 원 둘레로 팔과 같이 사오 명이 비스듬히 늘어선 나선형 날개가 다섯 개나 튀어나왔다.


그러면서 둥근 원이 반인족과 반대방향으로 서서히 돌아가기 시작했는데···.


앞사람을 뒷사람이 받치면서 협공을 가하니, 날개 사이로 적이 끼어들어 공격하면 뒤에서 그 공격자의 뒤를 공격하므로 안으로 끼어들지를 못했다.


마치 나선형 운하가 둥글게 맴도는 형상이다. 부상자들을 원 안으로 빼내 보호하면서 싸우기에 좋은 진 같았다.


전원이 일제히 검과 도를 뽑아 들고 날아오는 것들을 쳐 내며 공격을 시도(試圖)하지만, 열 배가 넘는 인력이 몇 겹으로 에워싸고 덤벼드니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적들은 활과 돌팔매 외에도 빠르게 여기저기에서 창을 찌르거나 투창(投槍)을 하기도 하고, 잘록한 칼로 치고 들어왔다. 게다가 수가 많아서 전투력은 좀 떨어져도 인해전술을 펼치니 계속 뒤로 밀릴 수밖에!


특히나 사각족은 끝에 날카로운 쇠 송곳이 박힌 장창(長槍)을 말처럼 달려오면서 힘껏 내지르는데, 어찌나 빠른지 웽 하는 소리까지 내며 날아오는 것이 매우 위력적이었다.


일부는 이각족이 사각족 등에 올라타 둘이 각자 창을 휘두르며 기마대처럼 공격해 오니, 처음 겪는 공격 수법(攻擊手法)에 모두가 허둥대기 일쑤였고······.


심지어는 뒷사람이 앞사람의 긴 꼬리를 잡고 빙빙 돌리다 놓으면 그네를 타듯이 허공을 날면서 덮쳐 오는데, 각 수법들이 괴이하고 한편 신기하기도 했다.


그래도 고된 훈련 속에서 체계적으로 육성된 무사들이라 빗발처럼 날아드는 창이나 화살을 쳐내며 예기가 번득이는 눈으로 공격과 수비를 병행했다.


이때 원 안에서 두 사람이 주술과 같은 것을 외우며 중궁(中宮)의 위치에 금빛 주술문이 흐르는 자색 수정 같은 기석을 박아 넣었다. 그러면서 천령수 잎을 향불처럼 태우기 시작했다.


그러자 푸르스름한 연무가 진 가운데 부분을 희미하게 감싸더니 용오름처럼 바람이 휘돌면서 위로 치솟았는데···.


점차 진의 내부가 밖에서는 잘 보이지 않았고, 적이 쏘아 대는 화살이나 창도 바람에 날려 빗나가기 시작했다.


그 바람에 벌써 반인족도 이십여 명이 죽고 삼십여 명이 크게 다쳐서 피를 흘리며 여기저기 쓰러져 울부짖는다.


정찰조도 검과 도에 푸른 진기가 실린 고수들이 나선형 날개 앞에 서서 고군분투(孤軍奮鬪)하고 있었지만, 수없이 날아드는 창과 화살에 벌써 십여 명이 죽었고 십여 명은 다쳐서 피를 흘리며 간신히 버티는 중이었다.


오늘 일은 길함은 없고 흉함만 보이는 상황. 뒤로 후퇴를 하려고 해도 사방이 둘러싸여 있어서 쉽지 않은 상태였다.


수가 훨씬 많은데도 적보다 아군이 더 많이 죽으니 반인족도 당황하는 한편 분노하여 광기를 드러냈다. 더욱 오기가 생겨 인해전술로 강하게 밀어붙인다.


그러면서 그중에 고수급으로 보이는 열댓 명이 대도를 휘두르며 앞장서서 거칠게 치고 들어왔고······.


이러다가는 아무래도 정찰조가 전멸을 당할 것 같은 상황이다. 그러자 아직 여러 사람에게 동시 전음(傳音)이 어려운 마야루가 큰 목소리로 명령을 내렸다. 자신도 창에 찔린 허리를 왼손으로 움켜잡은 채······.


“이대로는 모두 죽는다! 유성돌파진으로 적진을 돌파하면서 후퇴한다. 선봉에는 무공이 가장 강한 미로가 서고 좌우로 늘어서서 후방으로 돌진하라!”


그러면서 자신은 가장 후미를 맡아 추격을 물리치니, 사방으로 핏물이 난무하는 가운데 쇄기형으로 적진을 뚫기 시작했다.


돌파와 저지로 서로 격하게 충돌하면서 또 반인족 수십 명이 죽거나 다치고, 정찰조도 이제 멀쩡한 사람은 십여 명에 지나지 않았다.


막 적진을 뚫고 뒤를 방어하며 앞으로 내달리는데, 뒤에서는 반인족이 바짝 붙어 추격해 오면서 계속 창과 화살을 날려 보냈다.


이러다가는 과연 한 사람이라도 멀쩡히 살아서 돌아갈 수 있을까? 눈앞이 캄캄하니 모두 절망하며 앞으로 내달리는데, 갑자기 앞쪽에서 큰 함성이 들려왔다.


“와아!”


"공격하라!"


반가운 소리들이 들려오면서 불붙은 화살들이 빗발치듯이 반인족의 추격대(追擊隊)를 향해서 쏟아져 내렸다. 본진에서 비상용 폭죽 신호를 보고 정찰조를 구하러 달려온 구조대였다.


그 수가 불빛에도 대강 천여 명에 가까우니 그제야 반인족도 겁을 집어먹고 추격을 멈추었다. 그리고 쵸룬의 지휘 아래 잽싸게 뒤로 도망가기 시작했고.


이렇게 쫓고 쫓기는 추격전을 한참 벌이다가 반인족이 어둠 속으로 멀리 물러나자, 그제야 추격을 멈추고 전장을 수습했다.


주변을 살펴보니 반인족은 여든 명이 넘게 죽었고 큰 부상을 입어서 도망가지 못한 사람도 백 명에 가까웠다.


천령대 정찰조도 스무 명이 죽고 열다섯 명이 크게 다쳤으며 그래도 잔상처만 입고 멀쩡한 사람은 열다섯 명에 지나지 않았다.


남아 있는 반인족 중에서 죽은 자는 시신을 한곳으로 모으고, 중상을 입은 자들은 차마 죽일 수 없어서 무기를 빼앗고 자기네들끼리 서로 돌보게 하였다.


반항도 못 하는 자들을 죽여서 무엇 하겠는가? 짐승들처럼 말이다.


정찰조의 죽은 무사들과 부상자를 데리고 본진(本陣)으로 돌아오니, 어느덧 새벽이 멀지 않은 듯 동쪽 하늘에서 그믐달이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모두 불안에 떨며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쥬맥도 혹시나 무슨 일이 있을까 봐 천막 한쪽에 웅크리고 누워서 바깥 동정에 귀를 기울였다.


밤새 사방에 모닥불을 여기저기 피우고, 진법을 설치한 목책 주변으로 경계를 강화하면서 서서히 날이 밝았다.


아침이 되자 밤새 근심 걱정으로 잠을 못 이룬 부족민(部族民)들이 우르르 몰려와서 살펴보니, 어젯밤에 일어난 일들이 모두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막사에는 환자들이 즐비하게 누워서 치료를 받고 있었고, 중앙의 넓은 광장에는 전사자들이 흰 천에 씌워져 일렬로 쭉 놓여 있었다.


그리고 주거지를 삼엄하게 지키고 있는 천령대 무사들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고.


쥬맥도 욱신거리는 몸을 이끌고 나와서 그 참담한 모습을 바라보았다.


비록 무인이 되어 하늘을 날겠다는 꿈을 지녔지만, 죽은 무사들을 보니 어린 마음에 절로 고개가 돌아간다.


“무사가 되면 꼭 저렇게 죽고 죽여야 하는 것일까? 그건 싫은데······.”


그때 천사장과 대신녀가 오더니 한 명씩 얼굴에 씌워진 천을 들추고 죽은 자의 원혼(寃魂)을 달랬다.


눈을 부릅뜨고 죽은 사람은 눈을 감겨 주고 얼굴을 쓰다듬어 주며, 부디 원한(怨恨)을 남기지 말고 좋은 곳으로 가기를 기원했는데······.


소식을 들은 부모와 형제들이 달려와서 시신을 부둥켜안고 통곡하며 오열(嗚咽)했다. 잠시 뒤에는 친척과 지인들도 몰려와서 함께 눈물짓는다.


이미 한울까지 세부 내용이 보고되었고 이제는 마무리만 남았다.


전사자 장례를 치르는 일과 보상 문제 등 여러 가지 일이 빠르게 협의되었고 결정된 내용은 즉시 진행되었다.


반인족이 주변에 더 있을 수 있고 또 다시 공격해 올 수도 있기 때문에, 말을 탄 천령대가 조를 이루어 주변을 샅샅이 수색(搜索)했다.


어젯밤에 싸움이 벌어졌던 곳에는 반인족이 다시 와서 데려갔는지 시신과 부상자들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먹다 남은 음식들과 사방에 뿌려진 붉은 핏자국만이 어젯밤의 처참했던 싸움을 말해 주고 있었다.


이슬과 함께 풀잎에 맺힌 핏물들, 그리고 땅에 스며들어 풍겨 오는 역겨운 피비린내!


그뿐인가? 여기저기에 주인을 잃고 땅을 뒹구는 잘린 사지(四肢)들까지······.


어느 것 하나 참혹하지 않은 모습이 없었다. 서로 정확히 상대를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얼결에 벌어진 전투는 이렇게 서로에게 상처만을 남겼다.


왜 싸워야 했는지도 모르고······.




감사합니다. - 설련하(偰輦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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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2

  • 작성자
    Lv.32 무림존자
    작성일
    21.07.01 14:26
    No. 1

    우와~ 반인족들 싸우는 모습이 너무 원숭이스럽네요. 웃기고 재밌어요. 판타지가 절묘하게 섞이네요.

    찬성: 36 | 반대: 0

  • 작성자
    Lv.28 철없는사과
    작성일
    21.08.13 23:46
    No. 2

    석기시대 인류를 연상케 하는 모습이.. 서로가 서로를 정상이
    아니다라고 하는 것이 후후 모계사회라는 것을 본다면 더더욱
    제일 우두머리 역시 남자가 아닌 여자일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보는데 서로 말이 통하지 않고 행동의 오해를 통해
    너무 많은 사상자가 나와서 안타깝네요. ㅜㅜ

    찬성: 7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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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9화. 들개 떼의 습격 +2 21.06.28 1,689 49 18쪽
» 8화. 반인족과의 격돌(激突) +2 21.06.28 1,757 48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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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6화. 첫 주거지 +2 21.06.28 2,011 52 18쪽
5 5화. 선인과 거인(巨人) +3 21.06.28 2,164 50 18쪽
4 4화. 거인족과의 조우(遭遇) +2 21.06.28 2,387 53 18쪽
3 3화. 천인족의 대이동(大移動) +3 21.06.28 2,639 55 18쪽
2 2화. 서장(2) 탈출(脫出) +3 21.06.28 2,835 56 19쪽
1 1화. 서장(1) 탄생(誕生) +5 21.06.28 4,651 58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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