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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련하 님의 서재입니다.

삶의 위대함 - 한울 쥬맥

웹소설 > 작가연재 > 무협, 퓨전

완결

설련하
그림/삽화
설련하
작품등록일 :
2021.06.28 08:42
최근연재일 :
2022.10.17 08:20
연재수 :
290 회
조회수 :
378,371
추천수 :
7,321
글자수 :
2,467,752

작성
21.06.29 09:35
조회
1,473
추천
50
글자
18쪽

15화. 핏물은 강이 되어 흐르고

삶의 위대함 - 한울 쥬맥




DUMMY

그때 막사의 가림막을 제치며 추장들이 황급히 안으로 들어섰다.


“빨리들 이리 들어와서 보고를 해 봐! 몇 명이 갔는데 어떻게 됐다고?”


“시원맘모스 오백 마리에 두 명씩 천 명이 타고, 몰이꾼 겸 보병으로 전사 오천 명이 함께 갔습니다. 그런데 돌아온 것은 시원맘모스 이십여 마리에 병사는 오백 명도 채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그럼 전투를 지휘를 하려고 함께 간 두 추장은 어떻게 됐어?”


“한 명은 죽고 한 명은 중태입니다.”


“이런 이런, 도대체 싸움을 어떻게 하길래 이 지경이야? 그럼 시원맘모스는 거의 다 죽고, 함께 간 병사들도 사천오백이 넘게 죽었다는 거야, 엉?”


그러자 추장들이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모깃소리만 하게 간신히 대답했다.


“그렇게 되었습니다.”


“······실은 우리의 예상보다 적이 훨씬 강한 듯합니다.”


그때, 대추장의 머릿속으로 좀 전에 보낸 천인족의 천사장이라고 하던 노인의 말이 순간적으로 스쳐 지나갔다. 일당백이라는 무사들······.


“그래 그건 그렇고, 우리 전사자(戰死者)들의 시신은 어떻게 했어?”


“적진 바로 앞이라 아직 거두지 못했습니다. 너무 위험해서······.”


그러자 화가 다시 치미는 울트. 도대체가 마음에 드는 것이 하나도 없다.


“그런다고 내 새끼들을 들짐승의 먹이로 버린단 말이냐? 당신들은 그렇게 살아? 그러면 부하들이 우리를 믿고 따를 것 같애, 엉? 이 병신들!”


“죄송합니다. 내일 사신을 보내고 모두 거두도록 하겠습니다.”


“시신을 거두는 병사는 원래 공격하지 않는 법이야. 설령 공격한다고 해도 그냥 도망쳐 오면 되잖어. 당장 몇백 명을 보내서 모두 수습해!”


“알겠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어찌할 것인지 앉아서 함께 얘기를 해 보자고.”


분위기가 차후(此後) 대응으로 넘어가면서 그제서야 탁자에 둘러앉기 시작했으나 분위기는 여전히 살벌하였다.


······중략······


한참을 협의한 끝에 오늘 밤에 대대적인 야습을 통하여 일격을 가하자는 의견도 있었다. 그러나 지난번과 오늘의 전투 양상으로 보아 도리어 피해만 커질 수 있는 상황이다. 그래서 야습을 포기하고 대신 내일 아침에는 아예 최소 인원만 남기고 오만 명을 투입해서 일거에 들이치는 것으로 결정하였다.


말 그대로 인해전술이다.


그리고 천인족의 기마대가 날렵하고 공격력이 강하니 그에 대응할 대책을 마련하였다. 그 예봉을 꺾지 못하면 내일 전투도 승산이 없으니.


또한 함께 온 사각족 만 명을 활용하여 기마대처럼 운용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오랜 시간 숙의가 이루어졌다.


한편 시신을 수습하러 간 병사들이 비무장으로 접근하니, 천인족도 처음에는 공격하러 오는 줄 알고 비상이 걸렸으나, 곧 진지 안에서 바라볼 뿐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았다.


진지 앞에서 수많은 시신이 부패하면 전염병(傳染病)이 생길 수도 있으니 스스로 치워 주는 것이 고마울 따름이다. 그리고 시신이 널려 있으면 전투에도 방해가 될 것이고······.


시원맘모스의 사체는 반인족이 식량으로 쓰기 위해서 수백 구를 끌고 갔으나, 천인족의 진지에서 가까운 백여 구는 접근이 어려우니 그대로 남겨 두어 천인족이 가져다가 식량으로 쓰기로 했다.


이렇게 수많은 생명이 흘린 피로 첫날의 힘겨루기가 겨우 끝이 났다.



천인족 진지에서는 또다시 다음 전투를 대비한 전략(戰略) 회의가 열리고 있었다.


오늘 비록 대승을 거두었다고는 하나, 적은 아직도 대군이 버티고 있어서 마냥 기뻐할 상황이 아니었다.


천사장이 화해 협상에 나섰으나 이미 결렬(決裂)된 상태라고 봐야 한다.


만일 적이 전 병력으로 일거(一擧)에 밀고 들어오면, 설사 많은 적을 죽인다 하여도 멸족의 위기를 맞을 수도 있었다.


오늘과 같이 짐승 떼를 몰고 수만의 적이 밀고 온다면, 기마대도 적을 돌파하지 못하여 중간에서 붙들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 상황이 벌어졌을 때 시원마가 먼저 저격(狙擊)당하면 아무리 무술이 뛰어난 무사라고 해도 사방에서 밀려오는 눈먼 무기에 당하기 쉬웠다.


결론은 하나였다. 초전에 강력한 본보기를 보이되,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최대한 빨리 전쟁을 중지시키는 것!


그리고 내일은 적이 대군으로 밀고 들어올 확률이 높고, 기마대에 많이 당했기 때문에 나름의 대책을 세우고 몰려올 것이라는 전제(前提)하에, 어떤 수단으로 나올 것인지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에 초점이 맞춰졌다.


오늘 큰 짐승들을 앞세운 전략이 실패했기 때문에, 적들이 내일은 분명히 다른 수단을 강구할 것이다.


따라서 그들이 사용할 것으로 추측되는 여러 가지 가능성에 대해서 머리를 모으고 대안을 짜기에 바빴다.


더구나 선발대(先發隊)와 싸울 때 독화살에 당한 적이 있는데, 이번에도 모두 군집해 있을 때 독화살로 공격을 해 온다면 피해가 더욱 커질 것이다.


그 외에도 백병전을 펼칠 때 전개할 진법을 포함하여, 보급대의 운영과 전투가 길어질 경우에 대비한 작전 전환 등 많은 문제들을 검토하고 보완했다.


나머지 인력도 적의 동태 관찰과 진지의 보완, 자신의 무기 손질 등 다가오는 전투 준비에 정신없이 움직였다.


그리고 어느 순간.


해가 서산마루에 걸리고 서천(西天)이 온통 붉은 노을빛으로 물들었다. 마치 내일 온 들판을 피로 물들이는 혈전(血戰)을 예고라도 하는 듯이······.


온갖 새들은 집을 찾아 날아들고 석양에 부는 한 줄기 바람 속에 세상은 평화로운 안식의 어둠을 맞이하려 하건만, 양 진영에서 내일 목숨을 내걸고 싸워야 하는 전사들의 마음은 긴장과 흥분 속에서도 착잡하기 그지없었다.


빛나는 승리, 처절한 패배, 그리고 불타는 복수의 맹세도 생명이 스러진 다음에는 다 부질없는 것!


......긴장과 초조 속에서 드디어 죽음과 삶을 가르는 대전투의 날이 밝았다.


적아(敵我)를 불문하고 너 죽고 나 살아야 하는 전장의 운명 속에, 예민해진 심기와 사납고 날카로운 눈빛만이 사방에 번뜩거릴 뿐이다.


생전에 다시 먹을 기회가 안 올지도 모른다. 그리고 잘 먹고 죽은 귀신은 때깔도 좋다고 하지 않던가?


그러니 모두 아침밥은 기름진 음식으로 배를 든든하게 채웠다. 생사(生死)도 문제지만 전투가 언제 끝날지 모르고, 또 살려면 힘을 써야 하니까.


드디어 양 진영 병사들이 동녘에 찬란하게 떠오르는 태양과 함께 병장기를 움켜쥐고 서로 마주 섰다.


햇살에 은빛으로 번쩍이는 도검의 반사광이 이슬에 젖은 풀잎들의 반사광과 어우러지니 전장만 아니라면 한 폭의 그림이 되련만, 야속하게 명을 재촉하는 뿔고동과 전고 소리가 전장에 드높이 울려 퍼졌다.


뿌우~ 뿌우~ 뿌우~


둥둥둥~ 둥둥둥~ 둥둥둥~


오만에 이르는 반인족 대군이 일만의 천인족 진영을 일거에 삼킬 듯이 학이 날개를 편 학익진(鶴翼陣) 형상으로 밀려오기 시작했다.


날랜 사각족과 높은 망루를 앞세우고, 양 날개를 활짝 펴서 소수의 천인족을 둘러쌀 것처럼 날개를 펴고 전진했다.


천인족도 두려움 없이 전고로 사기를 북돋으며, 중무장한 보병을 둥글게 앞세우고 그 뒤를 삼중으로 늘어선 기마대가 나아갔고, 나선은하진을 펼친 보병대가 하나씩 뒤따르기 시작했다.


뒤에서 들려오는 전고 소리에 약속이 있는 듯, 그 소리에 맞추어 전진과 회전 속도가 달라지며 점차 진형(陣形)을 이루어 간다.


양측 전사들 간 거리가 이십 장(60m) 이내로 접어들자 사정거리를 가늠하는 화살이 반인족 진영에서 서너 발씩 날아오더니, 드디어 화살이 상대 진영에 떨어지기 시작하자 사격 명령이 떨어졌다.


“화살을 쏘아라!”


여기저기에서 외치는 소리와 함께 망루와 근처의 나무 위에서 화살이 빗발치듯 쏟아지기 시작했다.


화살촉이 검푸른 빛을 띠고 광채를 잃은 것으로 보아 독을 묻힌 모양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화살은 중갑 보병의 방패에 막히거나 기마대의 갑주를 뚫지 못하고 힘없이 떨어졌다.


이번에는 천인족의 기마대에서 일제히 화살이 날아올랐다. 화살에 진기가 실린 듯 ‘쉬잇!’ 소리와 함께 훨씬 빠른 속도로 적진을 향해서 빛살처럼 날아갔다.


그러자 그 화살에 맞아 나동그라지는 수백의 반인족 궁수들!


“으아아악!”


“크흑~”


이번에는 양 진영이 ‘와~’ ‘죽여라!’ 하는 거친 함성과 함께 앞으로 내달렸다.


흥분에 사로잡혀 목숨을 도외시한 전사들은 눈을 희번덕거리며 상대를 향해 무기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오늘 너 죽고 나 살자!


그때 사각족 일만이 말처럼 앞으로 내달리며 긴 장창을 내던지는데, 창이 ‘피우웅~’ 하고 요란한 소리를 내며 천인족을 향해 날아들었다.


그 창에 맞아 쓰러지는 천인족이 여럿이라 반인족도 사기가 올라서 고함을 지르며 더욱 거세게 덮쳐 오기 시작했다.


그러자 활을 쏘는 적들을 대부분 처리한 기마대가, 활을 넣고 앞으로 나서서 사각족(四脚族)과 맞붙었는데······.


사각족의 등에는 또 이각족(二脚族)이 여러 병기를 든 채 타고 있어서 위아래로 두 사람이 협공하며 치고 들어왔다.


그런데도 무술 고수인 기마대는 흔들림 없이 긴 무기로 마상에서 적들을 하나씩 격살하기 시작했다.


진기가 서린 시퍼런 칼날에 여기저기에서 사각족과 그 위에 탄 이각족이 추풍낙엽처럼 목이 떨어져 나갔다.


형세가 불리해지자 반인족 진영에서,


뿌우~ 뿌우~


하는 뿔고동 소리가 몇 차례 울리고 진로가 막힌 사각족이 뒤로 물러났다.


그러자 그 자리에 긴 장창을 든 이각족 전사들이 몰려나와 자리를 메우며, 사정거리 밖에서 시원마(始原馬)들의 빈틈을 찾아 공격을 가했다.


시원마도 중요 부위는 모두 갑주로 덮었지만, 비어 있는 틈새로 긴 창이 찌르고 들어오니 하나둘 부상을 입고 쓰러지는 말이 생겨났다.


그러자 이번에는 천인족 진영에 변화가 일어났다.


둥둥둥~ 둥둥둥~ 두둥~ 두둥~


급히 전고가 울리자 기마대가 뒤로 서서히 물러났다. 그리고 그 자리에 나선은하진(螺旋銀河陣)을 펼친 보병대가 앞으로 나서기 시작했고······.


이제 기마대는 일단 뒤로 빠져서 다시 활을 들더니 장창을 들거나 활을 든 적을 찾아서 하나씩 제거해 나갔다.


반인족의 활보다 배에 가까운 사거리를 가졌으니 화살에 맞아서 죽어 가는 적이 부지기수(不知其數)였다.


반인족도 장창 부대가 화살의 표적이 되자 서서히 뒤로 물러나고, 본격적으로 보병대 간에 백병전이 벌어졌다.


그러나 옆으로 학의 날개처럼 밀려오던 적들이, 양쪽으로 늘어선 나선은하진에 막혀서 활로(活路)를 뚫지 못하고 있었다.


중형 나선운하진은 백 명 정도가 한 조를 이루어 회오리처럼 튀어나온 날개를 빙빙 돌려가며 적을 척살한다.


비어 있는 가운데의 큰 원에서는 부상자나 싸우다 지친 무사들이 교대로 쉬면서 한숨을 돌렸고······.


중형 나선은하진의 수가 점점 늘어나더니 어느 순간 수십 개가 되었다.


진 간 거리를 벌려서 적진 한가운데에 자리를 잡자, 무사 한 명이 주술진의 기석(基石)을 땅속에 박아 넣었다.


금빛 주술문이 흐르는 팔뚝만 한 자색 수정! 진언과 함께 그 기석이 중궁(中宮)의 위치에 박히자 갑자기 주변에 이상기류가 흐르기 시작했다.


나선은하진 한가운데의 일 장(3m) 높이에서 돌풍이 일더니, 점점 거세지며 하늘을 향해서 용오름처럼 솟아오른다.


사방의 먼지를 빨아올리는데도 진의 가운데에서 천령수 잎을 태우는 연기는 밑바닥으로 퍼지며, 마치 은하(銀河)처럼 내부를 아늑하게 가려 주었다.


처음에는 많은 수에 기대어 인해전술(人海戰術)로 밀고 가던 반인족도, 수없이 아군이 죽어 나가자 점차 사기가 꺾이며 우왕좌왕했다.


그때 천여 명의 반인족 전사들이 대오를 이탈하여 천인족의 진지를 부수기 위해서 다가오기 시작했다.


목책 앞으로 주술진(呪術陣)이 이중으로 보호하고 있지만, 안에서 천여 명의 무사들이 튀어나와서 앞을 가로막으며 치고받는 싸움이 벌어졌다.


그때 나무 위에 서서 전황을 살펴보던 한울이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해타정심검(海駝正心劍)을 뽑아서 다가온 적들을 향하여 내던졌다.


그러자 검이 푸른 진기에 휩싸여 날아가는데, 이기어검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용감한 적병이 무의식 중에 손을 내밀어 덥석 움켜쥐려고 했다.


그러나 전광석화처럼 날아가던 검이 검결지에 따라 빙글빙글 돌면서 적의 손과 목을 한 번에 자르고 지나갔다.


그러자 손과 목을 잃은 몸뚱이가 허망하게 허우적대며 바닥으로 쓰러졌다. 그리고 뒤따라서 주변의 적들 수십의 목이 회전하며 날아다니는 해타정심검에 힘없이 떨어져 내리는데······.


몇 번 더 휘두르니 추풍낙엽처럼 바닥에 떨어진 목이 순식간에 수백이라 남은 적들은 전의를 상실한 채 도망치기에 바빴다.


한 칼에 수십의 목숨이 이승을 하직하나니···, 도대체 저게 사람의 목숨인가? 아니면 파리 목숨인가?


한울의 수신호위들은 눈앞에서 그 난리가 벌어지고 있는데도 눈 하나 꿈쩍하지 않고 한울이 올라가 있는 나무 밑을 지키고 있었다. 천인족은 용기 백배하여 도망치는 적을 쫓아 주살하기 바쁘건만, 한울은 돌아온 검을 바라보며 어두운 얼굴빛으로 한탄하였다.


“오늘 이 전장에서 얼마나 많은 생명이 스러져야 하는가? 해타(海駝)는 빨리 와서 싸움을 중지시키지 않고 왜 이리 늦는가?”


전투가 시작되고 이제 겨우 한 시진이 흘렀건만···, 전장(戰場)에는 피가 강(江)을 이루고 셀 수 없이 많은 시신이 벌판을 뒤덮었다.


그 참혹한 모습에 신도 고개를 돌릴 지경인데, 이제 인성(人性)이 마비된 병사들은 죽을 줄 모르고 습관적으로 양손을 휘두를 뿐이다.


사기를 북돋우던 뿔고동과 전고 소리도 악귀 같은 아우성에 묻혀서 잘 들리지 않았다. 아수라지옥(阿修羅地獄)이 있다면 이러한 풍경일까?


오직 서로 죽이고 죽는 모습만이 짙은 피 냄새 속에 지옥도처럼 펼쳐져 있으니 인간 자체가 서로 잡아먹지 못해서 안달하는 악귀 나찰과 다름없었다.


기세 등등하게 나섰던 반인족 추장 울트의 표정이 점점 일그러져 가는데, 그 모습이 꼭 흉신악살(凶神惡煞)이다.


그때 멀리서 거대한 짐승으로 보이는 괴물 같은 것이 나타나더니 하늘을 향해서 거칠게 포효(咆哮)하였다.


“으허허엉~~”


그 소리가 어찌나 큰지 땅이 진동하고 그 메아리로 하늘이 한참을 울었다. 그러자 최면에 빠진 괴뢰인 양 서로를 정신없이 죽이던 모두가 놀라서 순간 손을 멈추었다.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둘러보니 너 나 할 것 없이 온몸에 피칠갑이요 사방에 널린 게 사지 잘린 시신이라!


모두들 넋을 잃고 망연히 적아를 바라보는데, 왜 서로 이렇게까지 죽이며 싸워야 하는지 한숨이 절로 나온다.


그러다가 퍼뜩 왜 천둥소리 같은 게 울려 퍼진 것인지 궁금하여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방금 무슨 소리가 났지?


그 눈에 멀리서 상상하기도 힘든 거대한 괴물이 달려오고 있었다. 건정건정 걷는 듯한데 몇 걸음만에 전장에 다다르니 모두 놀라서 황급히 자리를 피했다.


몸은 전체적으로 사자를 닮은 듯한데 황색 털에 검은 갈기가 무성했다. 머리에는 금색의 뿔 두 개가 앞을 향해 솟아 있었고.


그리고 부리부리한 두 눈에서는 금방이라도 번개가 내리칠 듯 뇌전이 번쩍거리고, 온몸에는 푸르스름한 영기 같은 것이 안개처럼 흐르는데······.


마치 작은 산을 옮겨온 듯이 몸통 높이가 오십 장(150m) 정도에 그 길이는 백 장(300m)에 이르렀다. 긴털이 자욱한 꼬리만 해도 그 길이가 무려 십칠 장(51m) 정도였으니!


그런데도 그 육중한 몸이 땅에 닿지 않고 허공에 떠 있으니 신기하고 한편 두려워서 모두 몸 둘 곳을 몰라 했다.


괴물과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모두 시선을 피하는 가운데, 등 위에서 신선(神仙) 같은 사람이 천천히 미끄러져 내려왔다. 모두 멍한 눈으로 바라보면서,


‘저 사람이 누구지?’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니 바로 천인족의 천사장이 아닌가? 천인족이 안심하는 반면에 반인족은 가슴이 덜컹거렸다.


그 큰 짐승 같은 것이 다시 한 번 낮게 으르렁거리는데, 모두의 머릿속으로 뇌가 떨리듯이 말이 들려온다.


[나는 신수 해타이니라. 모두 싸움을 멈추고 기다리도록 하라!]


그 위엄(威嚴)에 누구도 섣불리 움직이지 못하고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천사장이 신선처럼 가만히 앞으로 걸어 나가니 적아(敵我) 할 것 없이 황급히 자리를 비켜 주었다. 천사장이 반인족 대추장 울트가 서 있는 단 앞에서 걸음을 멈추더니, 지그시 눈을 보며 선어(仙語)로 말을 걸었다.


[어제 만났던 돈문이외다.]


“그래서 저 큰 짐승이 신수라는 거요? 이름을 스스로 해타라고 하던데.”


[그렇소. 수천 년을 살아온, 우리 종족을 지키는 신수입니다.]


“그럼 신수인지 괴물인지와 함께 우리와 싸우겠다는 것이오?”


그때 노한 듯한 신수 해타의 말이 울트의 머릿속으로 종처럼 울려 퍼졌다.


[나는 신수 해타이니라. 그대는 경거망동(輕擧妄動)하지 말지어다.]


그 말에 울트가 놀라 천사장과 해타를 번갈아 바라보며 말했다.


“아니 그대도 모자라서 이제는 저 신수라는 짐승까지 내게 머릿속으로 말을 하는 거요?”


[짐승이라고 함부로 말하지 마시지요. 노하면 여기에 있는 귀 종족이 저 신수의 한 번 울부짖음에 모두 죽을 수도 있습니다.]


“허허! 이제는 협박까지 하는 겁니까? 저 벌판에 수없이 죽어 있는 내 부하들이 보이지도 않습니까?”


[그래서 어제 화해(和解)를 요청한 것이 아니었습니까?]


“이제는 너무 멀리 왔소. 그대들이 다 죽든가 우리가 다 죽든가. 저 신수라는 동물이 그렇게 싸움을 잘한다고 하니까 어디 한번 해 봅시다.”


말을 마친 울트가 끝까지 가 보겠다는 듯이 천사장과 해타까지 사나운 눈빛으로 노려보았다.




감사합니다. - 설련하(偰輦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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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2

  • 작성자
    Lv.32 무림존자
    작성일
    21.07.01 14:48
    No. 1

    핏물이 강물처럼 흐르고 서로 죽이기 위해서 아귀다툼을 벌리는 전장. 생각만 해도 참혹하네요. 우리 현생에서는 제발 전쟁이 없었으면 ...

    찬성: 36 | 반대: 0

  • 작성자
    Lv.28 철없는사과
    작성일
    21.09.25 00:06
    No. 2

    끝까지 노답.... 도대체 얼마나 잃어야 정신을 차릴지...
    화목이 정말 필요한데 방법이 다르니 마음만 나서네요.
    오로지 복수로 점철되어 안타까울 뿐이에요.. ㅜㅜ

    찬성: 3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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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23 23화. 무인을 꿈꾸다 +1 21.06.29 1,500 50 18쪽
22 22화. 동굴 속의 기연(奇緣) +1 21.06.29 1,504 50 18쪽
21 21화. 새 친구 점박이 +1 21.06.29 1,481 50 18쪽
20 20화. 새로운 안식처(安息處) +1 21.06.29 1,485 49 19쪽
19 19화. 우르표범과의 조우 21.06.29 1,463 47 19쪽
18 18화. 홀로 숲에 버려진 아이 +1 21.06.29 1,468 49 18쪽
17 17화. 풍토병(風土病) +2 21.06.29 1,463 48 18쪽
16 16화. 화해협상(和解協商) +1 21.06.29 1,462 49 19쪽
» 15화. 핏물은 강이 되어 흐르고 +2 21.06.29 1,474 50 18쪽
14 14화. 협상 결렬과 힘겨루기 +2 21.06.29 1,463 50 18쪽
13 13화. 울트의 읍참마속(泣斬馬謖) +2 21.06.29 1,499 50 17쪽
12 12화. 반인족 선발대와의 전투 +2 21.06.29 1,555 50 17쪽
11 11화. 대륙지도 작성 +2 21.06.29 1,605 49 21쪽
10 10화. 비월족과 검치범 +2 21.06.29 1,613 48 19쪽
9 9화. 들개 떼의 습격 +2 21.06.28 1,687 49 18쪽
8 8화. 반인족과의 격돌(激突) +2 21.06.28 1,753 48 19쪽
7 7화. 사건의 발단(發端) +2 21.06.28 1,859 50 19쪽
6 6화. 첫 주거지 +2 21.06.28 2,008 52 18쪽
5 5화. 선인과 거인(巨人) +3 21.06.28 2,161 50 18쪽
4 4화. 거인족과의 조우(遭遇) +2 21.06.28 2,384 53 18쪽
3 3화. 천인족의 대이동(大移動) +3 21.06.28 2,635 55 18쪽
2 2화. 서장(2) 탈출(脫出) +3 21.06.28 2,830 56 19쪽
1 1화. 서장(1) 탄생(誕生) +4 21.06.28 4,638 58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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