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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련하 님의 서재입니다.

삶의 위대함 - 한울 쥬맥

웹소설 > 작가연재 > 무협, 퓨전

완결

설련하
그림/삽화
설련하
작품등록일 :
2021.06.28 08:42
최근연재일 :
2022.10.17 08:20
연재수 :
290 회
조회수 :
379,330
추천수 :
7,321
글자수 :
2,467,752

작성
21.06.28 09:31
조회
2,642
추천
55
글자
18쪽

3화. 천인족의 대이동(大移動)

삶의 위대함 - 한울 쥬맥




DUMMY

지금으로부터 삼십오억 년 전.


지구의 시원대륙 발바라에 있는 어느 산 정상이다.


이 산은 아열대에 위치하여 겨울에도 따뜻하지만 산 정상은 높이가 천칠백 장(5,100m) 정도라 대부분이 구름에 가려 있었고 연중 흰 눈이 내려 쌓였다.


훗날 천둔산(天遁山)이라 이름한 이 산은 모나지 않고 덕이 많은 사람의 얼굴처럼 경사가 완만하며 부드러웠다.


그러면서도 가운데 계곡은 매우 깊었으며, 듬성듬성 집채만 한 둥근 바위들 사이로 하늘을 찌를 듯이 높이 솟은 커다란 침엽수들이 마치 밀림(密林)처럼 빽빽하게 자랐다.


오르는 길이라고 해 봐야 큰 동물들이나 다니는 오솔길 같은 좁은 길이 듬성듬성 이어지는 심심산천(深深山川)인데···, 그래도 산중턱을 좀더 내려오면 시야가 넓게 탁 트였다.


그곳에서 내려다보이는 곳에는 고사리과 식물들과 이끼류가 뒤섞여 자라고, 이름 모를 각종 꽃과 열매가 매달린 태고의 원시림(原始林)이 아스라이 펼쳐졌다.


낮은 산들이 둘레를 에워싸고 있어서 많은 산 중에 왕(王)이 앉아 있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그래도 볼수록 친근하고 신비스러우면서도 성스러움과 장엄(莊嚴)함이 묻어나는 산.


이 산이 바로 천둔산이다.


* * * * *


일월에 갓 접어든 어느 날 밤.


맑은 하늘에 그믐달이 어슴푸레하게 떠오르니 어둡던 천둔산 정상이 그 신비스러운 자태를 드러냈는데······.


밋밋하면서도 널따란 정상의 암반(巖盤)은 그 넓이가 만 평도 넘을 듯했다. 그 위에는 흰 눈이 두껍게 쌓여서 달빛에 마치 이슬처럼 반짝거렸고.


그때 한 줄기 바람이 불어오니 작은 눈 입자들이 하늘로 날아오르며 마치 보석인 양 오색으로 빛났다.


그런데 맑은 하늘에 갑자기 먹구름이 수없이 모여들더니 천둔산 정상이 짙은 어둠에 가려지는 것이 아닌가?


칠흑 같은 암흑(暗黑) 속에서 눈을 에일 듯한 번갯불이 번쩍이며 우르릉거리는 천둥소리가 끊임없이 울리더니, 산 정상에서 ‘쨍!’ 하고 유리가 깨지는 듯한 맑은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때···, 어둠 속에서 눈부신 광채(光彩)가 터져 나오며 공간에 균열이 가고 그 틈이 점점 더 벌어졌다.


그러면서 마치 지진이 난 것처럼 산 정상에 떨림이 일어나자 인근에 있던 짐승들은 모두 놀라서 꼬리를 말고 산 아래로 줄행랑을 놓았다.


그 눈부신 광채 속에서 공간의 균열을 헤집고 키가 칠 척(2.1m)이 넘는 천장(天將) 같은 사람이 걸어 나오더니 사방을 조심스레 살폈다.


우람한 체격에 온몸에는 은빛으로 빛나는 갑주를 걸쳤는데, 한 손에는 키만큼 큰 검을 들고 한 손은 안장을 얹은 거대한 말의 고삐를 쥐고 있었다.


한참을 여기저기 다니며 산 정상을 둘러보던 그가 빛이 쏟아져 나오는 사차원의 공간균열 속을 향해서 말했다.


“한울이시여! 이곳은 드넓은 산의 정상인 듯하온데, 추위 외에는 별다른 위험이 없어 보이옵니다.”


그러자 벌어진 균열 속에서 낮으면서도 장중한 저음의 말이 우렁우렁하면서도 멀리까지 뚜렷하게 퍼져 나갔다.


“천령대 1대 오백 명은 먼저 나가서 주위를 살펴 위험 요인을 제거하고, 모두 안전하게 나갈 수 있도록 주변을 경계하라.


그리고 나머지 천령대 전원은 노약자와 가져온 물건들이 차질 없이 이동할 수 있도록 서둘러 지원하라.”


그러자 천령대 대장들인 듯한 여러 명의 목소리가 힘차게 들려왔다.


“명을 받드옵니다.”


대답과 함께 갑주로 중무장한 무사들이 무수히 나타나는데···, 기마대인지 한 손에는 말고삐를 쥐었고 다른 한 손에는 도검이나 창을 들었다.


무사들이 공간균열에서 꾸역꾸역 밀려나와 한곳에 집결하더니, 수십 명씩 조(組)를 이루어서 여러 방향으로 퍼져 나갔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서 일반인과 군사처럼 보이는 무사(武士)들이 뒤섞여 말과 여러 가지 짐승들, 그리고 마차에 실린 많은 짐들을 밀고 당기며 빠져나오기 시작했는데······.


사람들의 키가 남자는 대부분이 칠 척(2.1m)에 이르렀고 몸체가 우람했으며 여자는 육 척(1.8m)에 몸매가 늘씬했다. 원래 이 종족의 외양(外樣)이 이러한 모양이었다.


그중에서도 고풍스러운 자색 장삼(長衫)에 은하수와 별 모양을 아름답게 금실로 수놓은 옷을 입은 초로의 중년인 모습이 눈에 띄게 두드러졌다.


반백(半白)의 긴 머리를 틀어 올렸으며 풍성한 수염이 한 자쯤 자라서 절로 위엄이 묻어났다.


중년인의 옆에는 가족들로 보이는 이들이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 뒤로는 하얀 장삼을 입고 흰머리와 수염을 길게 기른 선풍도골의 노인과 흰 치마에 붉은색 장옷으로 머리와 상의를 가리고 있는 중년 미부가 뒤를 따랐다.


그때, 고풍스러운 자주색 장삼을 입은 중년인이 뒤를 돌아보며 노인과 중년 미부에게 말을 걸었다.


“자! 그만 천사장과 대신녀께서도 함께 나가십시다.”


그러자 천사장과 대신녀라 불린 두 사람이 가벼이 허리를 숙이며 답했다.


“한울께서 먼저 나서시지요.”


“예, 따르겠습니다.”


지도자들인 듯한 무리가 빠져나와서 먼저 나온 천령대원들이 한쪽에 준비한 탁자 주변으로 걸터앉았다.


천둔산 정상은 공간균열에서 불어 나오는 바람에 사방으로 눈이 흩날려 시야를 가렸으며, 계속 공간에서 사람들이 꾸역꾸역 밀려나오자 곧 사람과 짐승으로 가득 차 버렸다.


쥬맥도 신녀를 따라서 여러 고아들과 함께 벌어진 균열 속을 빠져나왔다. 부모 형제를 잃어서 슬프고 의기소침(意氣銷沈)하여 초라한 모습이었고.


낯선 땅에는 흰 눈이 잔뜩 쌓여 있었고 아직도 밤인 듯 춥고 어두웠다.


산 정상이 사람들로 가득 차자 처음에 공간의 틈에서 빠져나와 산 정상을 살폈던 장수인 듯한 무사가, 한울이라고 불리는 초로의 중년인(中年人) 앞으로 나아가 읍하며 고했다.


“한울이시여! 산 정상이 고도가 높은지 너무 춥고 산소가 희박하여 숨쉬기가 쉽지 않사옵니다.


또한 비록 넓으나 전원이 빠져나오기에는 무리인 듯싶사오니 천령대 오백 명을 미리 보내어 내려갈 길을 만들고, 중간중간에 쉴 수 있는 기지를 만들어서 순차적으로 내려가는 것이 좋을 듯하옵니다.”


그러자 한울이 대답 대신에 넌지시 천사장을 돌아보며 물었다.


“이번에 이주하며 살아남은 우리 천인족 인원이 모두 해서 만오천 명 정도라고 하셨지요?”


“예, 총인원은 그 정도가 맞습니다. 그 안에 공식 전투원으로는 기마대인 천령대가 삼천 명, 기타 보병이나 보급대 인원이 천 명 정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 인원이 산 정상에 다 모일 수는 없겠군요. (장수를 보며) 여봐라! 그럼 오백 명을 미리 보내어 길을 트고, 중간 세 곳에 백 명씩을 배치하여 백성들이 안전하게 쉬면서 식사를 할 수 있는 곳을 준비시켜라.


그리고 마지막 쉴 곳에는 전체가 모일 수 있는 넓은 곳에 이백 명을 배치시켜서 임시 거처를 만들도록 하라.”


“예! 명대로 시행하겠사옵니다.”


명을 받은 천령대 대장이 즉시 천령대 오백 명을 집결시켜 명을 전하고, 차질 없이 수행할 것을 당부하였다.


“모두 잘 들어라. 우리는 지금 고향별을 떠나서 이제 새로운 보금자리가 될 이 별에 막 도착하였다.


그러나 이곳은 산 정상인 듯한데 아직 어둠이 걷히지 않았고, 산밑에는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지 모른다.


우리 종족의 명운(命運)이 걸린 일이니 모두 정신을 바짝 차리고 일치단결하여, 내가 지시한 바를 차질 없이 수행해 주길 바란다.


산을 내려가는 길이 험하여 말을 탈 수 없으니 모두 내려서 걷도록 하고, 각 거점간 간격은······. 연락은······.”


거점 간격과 연락하는 방법, 준비해야 할 사항과 주의 사항 등, 세세한 내용을 전달한 대장은 곧바로 선발대(先發隊)를 출발시켰다.


천사장, 대신녀와 함께 따뜻한 차로 추위를 녹이며 그 모습을 바라보던 한울이 시녀(侍女)를 손짓해서 불렀다.


“너는 가서 태을 선인과 비율신 대족장을 오라 하여라”


“예, 알겠사옵니다.”


추워서 손을 호호 불던 시녀가 종종 걸음으로 달려가는데······. 이제 갓 스물쯤 되어 보이고 육 척 정도의 키에 얼굴은 예쁘장하며, 회색 상의(上衣)에 검은색 치마를 입고 있었다.


시녀가 간 지 얼마 안 되어 대머리에 흰머리와 수염을 곱게 기른 노인과, 키가 칠 척 반은 되어 보이는 장신에 근육질로 온몸이 울룩불룩한 거한(巨漢)을 데리고 한울 앞으로 걸어왔다.


“선인 태을과 대족장 비율신이 한울님께서 찾으신다 하여 여기 대령했사옵니다.”


두 사람이 나란히 서서 앞에 두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여 예를 갖추자 한울이 앞쪽에 있는 빈 의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어서 오시오. 내 할 말이 있으니 두 분은 우선 자리에 잠깐 앉으시오.”


그러자 어려운 자리인지 태을 선인이 고개를 가볍게 숙이며 답했다.


“괜찮사오니 편히 말씀하소서.”


자신보다 나이가 더 많은 태을 선인이 사양을 하자 한울은 사람 좋게 ‘허허허!’ 하고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럼 내가 부탁 좀 하겠습니다. 선도(仙道)를 참구(參究)하는 선인께 이런 부탁을 드려서 죄송하나, 아시는 것처럼 우리 천인족이 살던 별은 소행성과 부딪쳐 파괴되었소.


우리는 소행성(小行星)과의 충돌 때문에 빚어진 약한 공간의 벽을 찾아서, 겨우 사차원의 공간을 열어 목숨을 걸고 이 이름 모를 별에 도착했습니다.


사전에 상황을 파악해 본 결과 그나마 우리가 전에 살던 별과 비슷한 환경이라 조금 안심은 되지만, 그래도 어떤 위험이 우리 앞에 놓여 있는지 알 수 없어서 종족을 책임지고 있는 나로서는 마음이 불안하기만 합니다.”


한울은 잠시 말을 끊고 이미 차갑게 식어 버린 차로 목을 축이며 천사장을 바라보다가, 다시 태을 선인에게 시선을 돌리며 말을 이었다.


“천사장께 들으니 태을 선인께서 가장 수행이 깊다고 하시더군요”


“그렇지 않사옵니다. 저보다 뛰어난 선인들도 많사옵니다.”


“허허허! 자만하지 않고 겸허(謙虛)하시니 더욱 믿음이 갑니다.”


한울은 믿음직스럽다는 표정으로 미소를 지으며 정기가 어린 눈으로 지그시 선인을 바라보았다.


“아시는 것처럼 우리는 천령수 아래에 신단(神壇)을 쌓고 그곳에서 하늘에 계신 천신께 제를 지내며, 그 계시를 받아서 살아가는 종족입니다.


그러니 천령수를 심을 위치를 결정하는 것과, 살던 별에서처럼 성도 환시를 건설하여 우리가 정착해서 살아갈 터전을 만드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래서 천지의 영기를 감응하고 천기(天機)까지 두루 살필 수 있는 태을 선인께, 천령수를 심을 위치와 환시를 건설할 자리를 찾아 주십사 이렇게 부탁을 드리는 바입니다.”


한울의 부탁에 태을 선인은 더욱 겸손하게 머리를 깊이 숙이며 읍했다.


“당연히 종족의 일원으로서 받들어야 할 일이옵니다.”


그러자 한울이 이번에는 대족장 비율신을 지그시 바라보며 말했다.


“비 대족장도 알다시피 이번 소행성과의 충돌로 우리 종족의 대부분이 죽었습니다. 사천오백만 명이 넘던 우리 종족이 달랑 만오천 명밖에 남지 않았으니 말이오.


삼만 명이 넘게 사차원의 공간 속으로 피신하여 들어갔으나, 바닥의 균열과 공간풍에 휩쓸려서 절반에 가까운 사람들이 균열의 틈새에 빠져 죽었지요.


그나마 선인들께서 법술의 신통(神通)과 진법을 펼쳐서 이만한 것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얼마나 살아남았을지 생각만 해도 끔찍합니다.”


한울은 음울하고 망연한 눈빛으로 주위를 둘러보면서 다시 한 번 차가워진 차를 한 모금 들이마셨다.


그리고 다시 비 대족장을 바라보며,


“대족장도 세 분만 살아남았는데 그나마 비 대족장 소속의 인력이 가장 많이 살았남았소. 그러니 태을 선인을 도와서 천령수(天靈樹)와 환시의 위치를 정하고, 빨리 종족의 주거지를 만들 수 있도록 앞장서 주셔야겠소.”


그러자 비율신 대족장이 한울께 머리를 깊숙이 조아리며 공손하게 답했다.


“그리하도록 하겠사옵니다.”


“그럼 태을 선인과 함께 부족민을 데리고 먼저 나서도록 하시오. 선발대가 지나간 길을 따라서 조심히 내려가면 될 것이오.”


“알겠사옵니다. 그러면 저희가 먼저 출발하겠사옵니다.”


두 사람이 앞으로 공손히 손을 모아 읍하고 그 자리를 물러나왔다.



벌써 해가 뜨려는 것인지 산 정상에 몰려 있던 먹구름이 엷어 지고, 그믐달은 동녘을 뿌옇게 물들이며 밝아 오는 여명(黎明)에 빛을 잃었다.


공간균열에서 빠져나온 사람들은 희미하게 빛을 잃어 가는 달빛 아래 짐을 들고 벌써 절반 가까이 떠났고, 산이라 가지고 갈 수 없는 수레나 덩치가 큰 물건들은 한곳에 버려져서 작은 동산처럼 쌓였다.


쥬맥은 홀로 다닐 수 없으니 신녀를 기다리며 다른 고아들과 함께 추위에 오들오들 떨면서 자리를 지켰다.


“으~ 추워.”


그러나 이제 누구도 그 작고 차가워진 손을 잡아 줄 사람이 없었다. 한울과 천사장 등 종족의 지휘부를 바라보며 그렇게 망연히 서 있을 뿐!


그때 한울은 천사장과 잠시 대화를 나눈 뒤, 여기저기 혼잡한 산 정상을 둘러보면서 격려도 하고 즉석에서 지시를 내리기도 하였다.


책이 많이 쌓여 있는 수레에 이르자 다시 천사장을 돌아보며 말을 건넨다.


“이 책들은 우리 문명의 정수(精髓)가 담긴 것들이니 대단히 소중한 것들입니다. 이것들을 지키기 위해서 많은 희생을 치렀습니다. 하나라도 유실되거나 손상되지 않도록 천사장께서 선인들에게 관리를 맡겨 주세요.”


“예, 그렇지 않아도 안다 선인께 관리할 인력을 붙여서 잘 이송하도록 하였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그리고 참! 진령닥은 종이를 만드는 데에 필수적인 나무인데 종자를 잘 챙겨 왔는지 모르겠습니다.”


“천령수를 포함하여 진령닥나무 외에도 중요한 종자들은 모두 챙겨 왔습니다. 삼십이 종을 챙겨 왔는데 문제는 이 별에서 잘 재배가 이루어질지 그것이 관건(關鍵)입니다.”


“진령닥나무는 줄기와 잎으로는 종이를 만들고, 뿌리는 잘게 가닥을 나누어 붓을 만들며, 잎이 완전히 자라면 염료나 문서용 먹으로도 쓸 수 있으니 이 얼마나 유용한 나무입니까?”


“어디 그뿐인가요? 열매는 색이 변하는 시기별로 따서 여러 색의 글씨를 쓸 수 있으니 버릴 것이 하나도 없는 유익한 나무지요.”


그러면서 수레들의 틈을 지나 그 뒤쪽에 쥬맥과 고아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발길을 돌렸다.


여섯 살에서 열다섯 살에 이르는 어린아이들이 눈물을 글썽이며 슬프고 불안한 얼굴로 웅성웅성 모여 있었다.


한울도 눈가를 붉히며 쥬맥과 고아들을 바라보다가 대신녀를 향해 물었다.


“이 아이들이 이번 이주 과정에서 고향별이나 공간의 균열 속에서 부모를 잃은 아이들인가요?”


“예, 그렇습니다. 그나마 형제자매(兄弟姉妹)가 살아남은 경우는 다행인데, 홀로 남은 아이들도 백구십오 명 중에 팔십이 명에 이릅니다.”


“참으로 가슴이 아픈 일이로다. 내 마음이 너무도 아프구나. 천신이시여! 이 잔인한 시련 속에서도 살아남은 이 아이들을 부디 지켜 주소서.”


하늘을 우러르며 애통한 목소리로 혼잣말을 하더니 대신녀를 보았다.


“이곳에서는 어릴 때부터 환경에 적응하며 살아가는 것이 어른들보다 훨씬 나을 수 있습니다. 대신녀께서는 신녀들 중에 대모(代母)를 정하여, 이 아이들이 제대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돌보아 주셨으면 합니다.”


“예, 그리하도록 하겠습니다.”


한울은 아이들의 머리를 하나둘 쓰다듬으며 둘레를 둘러보다가, 허름한 옷을 입고 혼자 우두커니 서서 하염없이 공간균열의 틈을 바라보고 있는 쥬맥에게 다가와서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을 걸었다. 눈빛에 애잔함을 담고서······.


“너는 이름이 무엇인고?”


“쥬맥이에요.”


“너는 형제가 없이 홀로 남았느냐?”


“예, 저 속에서 엄마 아빠와 형이······ 벌어진 틈새로 빠졌어요.”


쥬맥은 손가락으로 공간균열 속을 가리키며 억지로 울음을 참고 있었다. 그러나 어느새 두 눈에 가득 맺혔던 눈물이 주르륵 흐르더니 굵은 눈물방울이 턱에서 방울방울 떨어진다.


마음이 아픈 한울은 차마 말을 하지 못하고 쥬맥을 가만히 품에 안더니 머리를 쓰다듬었다.


“너는 용감한 아이이니 울지 말거라. 쥬맥이란 이름은 용감하다는 뜻이란다. 네 부모님이 용감하고 씩씩하게 살라고 붙여 준 이름이 아니더냐? 어른들이 잘 돌보아 줄 것이니 걱정하지 말아라”


한울의 말에 쥬맥은 슬픈 얼굴에도 고개를 끄덕거리며 억지로 울음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참고 있었다. 이때는 부모 형제 다 잃고 초라한 이 볼품없는 어린아이가, 훗날 종족을 지키는 위대한 영웅이 될 것이라고는 그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다. 수많은 사선(死線)을 넘고 온갖 고난과 시련을 극복하면서 말이다.


어느덧 사람들은 대부분 회색빛의 공간균열 속에서 빠져나왔다.


이때 동녘을 온통 아침 노을빛으로 붉게 물들이며 아득히 먼 곳에서 태양이 힘차게 떠오르기 시작했다.


새로운 별에서의 첫 태양이 멀리 지평선에서 떠오르며 찬란한 빛을 뿌리니 그 모습이 실로 장엄(莊嚴)했다.


한울은 천사장과 대신녀를 대동하고 산 정상의 가장자리에 서서, 장엄하게 떠오르는 태양과 서늘한 서기(瑞氣)를 품고 옅은 안개 속에 끝없이 펼쳐진 산과 들을 바라보았다.

20210623_085126 (4)_LI.jpg

3화 지구 천둔산으로 이주하는 천인족




감사합니다. - 설련하(偰輦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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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3

  • 작성자
    Lv.32 무림존자
    작성일
    21.07.01 14:11
    No. 1

    우와! 삽화처럼 이주하는 장면이 영상으로 펼쳐진다면 정말 멋질것 같애요.잘 봤습니당. 꾸벅!

    찬성: 36 | 반대: 0

  • 작성자
    Lv.28 철없는사과
    작성일
    21.08.04 23:20
    No. 2

    묘사부분에서 정말 눈 감으면 떠오를 듯 너무나
    선명하게 전달해주어서 저도 모르게 입을 다물지 못했네요..
    쥬맥 뿐만 아니라 많은 아이들이 부모를 잃고 형제를 놓고
    서러움을 겨우 극복하여 넘어왔을 아픔에 저도 모르게
    울컥했네요.. 하지만 그 누구보다도 강한 아이라 믿습니다.
    쥬맥이라는 이름이 무색하지 않을만큼요....

    찬성: 11 | 반대: 0

  • 작성자
    Lv.99 세비허
    작성일
    22.10.21 14:03
    No. 3

    재미있게 읽고 갑니다

    찬성: 1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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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20화. 새로운 안식처(安息處) +1 21.06.29 1,488 49 19쪽
19 19화. 우르표범과의 조우 21.06.29 1,467 47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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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16화. 화해협상(和解協商) +1 21.06.29 1,465 49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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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3화. 울트의 읍참마속(泣斬馬謖) +2 21.06.29 1,504 50 17쪽
12 12화. 반인족 선발대와의 전투 +2 21.06.29 1,561 50 17쪽
11 11화. 대륙지도 작성 +2 21.06.29 1,607 49 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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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9화. 들개 떼의 습격 +2 21.06.28 1,691 49 18쪽
8 8화. 반인족과의 격돌(激突) +2 21.06.28 1,759 48 19쪽
7 7화. 사건의 발단(發端) +2 21.06.28 1,865 50 19쪽
6 6화. 첫 주거지 +2 21.06.28 2,015 52 18쪽
5 5화. 선인과 거인(巨人) +3 21.06.28 2,168 50 18쪽
4 4화. 거인족과의 조우(遭遇) +2 21.06.28 2,393 53 18쪽
» 3화. 천인족의 대이동(大移動) +3 21.06.28 2,643 55 18쪽
2 2화. 서장(2) 탈출(脫出) +3 21.06.28 2,838 56 19쪽
1 1화. 서장(1) 탄생(誕生) +5 21.06.28 4,664 58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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