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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련하 님의 서재입니다.

삶의 위대함 - 한울 쥬맥

웹소설 > 작가연재 > 무협, 퓨전

완결

설련하
그림/삽화
설련하
작품등록일 :
2021.06.28 08:42
최근연재일 :
2022.10.17 08:20
연재수 :
290 회
조회수 :
378,368
추천수 :
7,321
글자수 :
2,467,752

작성
21.06.29 09:59
조회
1,462
추천
48
글자
18쪽

17화. 풍토병(風土病)

삶의 위대함 - 한울 쥬맥




DUMMY

칸드란은 피를 흘리는 울트의 보기 흉한 모습을 보면서 주변을 둘러보더니, 대추장의 체면을 생각한 것인지 시종과 시녀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너희들은 모두 나가 있거라.”


그들을 모두 문밖으로 내보낸 뒤에 다시 울트를 지그시 바라보며 묻는다.


“아니 그게 무슨 소리요? 우리 반인족의 용장인 울트 대추장이 수도 얼마 안 된다는 종족에게 대패를 했단 말이요?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그 자초지종(自初至終)을 말해 보세요.”


“사각족 일 만까지 육 만 명이 출전을 하였으나 전사자가 이만 명이 넘고······.”


숨김없이 있는 그대로를 전부 보고하자 피해 상황을 모두 들은 칸드란은 ‘쯧쯧쯧!’ 하고 혀를 차면서 안타깝다는 듯이 울트를 바라보았다.


“만 명 정도밖에 안 된다는 적들과 육만이 싸워서 그렇게 대패를 했다는 말이요? 우리 종족 중에서 그렇게 싸움을 잘한다는 울트 대추장이?”


그러면서 모여 선 대추장들을 살펴보는데, 웃는 얼굴을 들키지 않으려고 고개를 돌리는 몇몇이 보이자 인상을 찌푸렸다. ‘뭐 저런 놈들이 다 있지’ 하면서.


“모두 소신의 잘못이오니 저를 일벌백계로 죽여 주시옵소서.”


다시 머리를 바닥에 쿵 소리가 나도록 찧는 울트를 바라보면서 혼자 속으로 웅얼거리는데···.


‘그래도 꼴에 대족장이라고 부하 탓이나 다른 탓은 안 하는 구만. 쯧쯧!’


무슨 생각인지 칸드란이 한참 울트를 바라보다가 옆으로 다가가더니 엎드린 팔을 잡아서 일으켜 주었다. 그러자 얼굴을 감춰 가며 웃던 몇몇의 얼굴색이 변했다.


이번에 차기 칸드란 후보 중에서 가장 강력한 울트를 없애야 하는데, 생각대로 될 것 같지 않아서다.


“벌은 벌이고, 우선 마무리가 어찌 되었는지 소상히 말해 보세요. 다른 대추장들도 모두 자리에 앉아서 같이 들어 봅시다.”


모두 칸드란 뒤쪽의 커다란 탁자에 앉자 울트도 칸드란과 마주 보는 자리에 앉았다. 피해 상황 이외에도 천인족의 구성과 전투 능력, 진법, 패하게 된 주요 원인 등을 상세히 보고했다.


“이 목간은 그 내용들을 상세히 정리한 것이옵니다. 비록 소신은 참패하였사오나 우리 종족에게 필요한 내용이라 생각되옵니다.”


그러면서 반인족의 표기 문자가 가득히 적힌 얇은 나무판 여러 장을 칸드란 앞으로 들고 가더니 두 손으로 공손히 바쳤다.


울트의 상세한 보고를 들으면서 칸드란과 대추장들도 모두 새로 알게 된 천인족에 대하여 놀라고 있었다.


“그리고 비록 패하였사오나 협상을 통하여 몇 가지를 약속하였고, 칸드란님께 올리는 예물도 받아 왔사옵니다.”


두 종족 간의 협상 내용을 자세히 설명하니 모두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런데 예물을 받아 왔다는 말에는 별거 있겠냐는 듯이 시큰둥한 표정이다.


“그래요? 그래도 예물이라니 어디 한 번 보기나 하게 들여오시오.”


칸드란의 말에 울트가 나가서 몇몇 전사들과 함께 예물로 가져온 물건들을 들고 들어와 대전에 늘어놓았다.


맨 먼저 검과 도, 창 등 처음 보는 병장기들을 꺼내 놓자 모두 눈을 반짝이며 다가가서 살펴보았다.


칸드란이 검집에서 검을 뽑아 드니 은빛으로 빛나는 검신에서 서늘한 예기가 주변으로 퍼진다.


‘하! 이것 봐라’


누구도 예상치 못한 모습에 손가락 끝으로 검날을 살짝 만져 보니 금방 손가락이 베일 듯이 날카롭다.


그러자 비교해 보기 위해서 예물을 들고 들어온 전사에게 명령을 내렸다.


“네 칼을 이리 내 보아라.”


그런데 일개 전사가 칸드란 앞에 감히 자신의 칼을 들고 올 수 있겠는가? 목이 여러 개라면 모를까.


전사가 다시 밖으로 나가서 사정을 얘기하고 들어올 때 맡겨 두었던 칼을 가지고 들어와서 두 손으로 공손히 바치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대추장이 칼을 예물과 비교(比較)하기 위한 것이라 생각하여 대신 받아 들었다.


“제가 칼을 뽑겠사옵니다.”


공손히 아뢰고 옆으로 돌아서 칼을 뽑은 뒤 날을 아래로 내렸다. 조심스럽게 칼등을 잡고 가까이 가져오자, 칸드란이 탁자 위에 예물과 나란히 놓고 둘을 비교했다.


그런데 두 무기가 한눈에 봐도 알 수 있을 만큼 현저하게 차이가 난다.


“두 개의 무기를 들고 힘껏 서로 부딪쳐 보세요.”


그러자 칼을 뽑았던 대추장이 칼을 가져온 전사에게 자신이 가져온 칼을 들게 하고, 자신은 예물로 가져온 검을 들고서 서로 힘을 주어 날끼리 세차게 충돌(衝突)시켰다. 그러자······.


챙!


쨍그랑!


반인족이 쓰는 칼은 날이 없는 뒷부분이 더 두꺼워서 무척 튼실해 보였으나, 두 무기를 힘껏 부딪치자 의외로 힘없이 부러지고 말았다.


모두 놀라서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는데, 칸드란은 창이나 다른 것들도 뽑아서 이리저리 살펴보며 연신 감탄(感歎)을 하였다.


“우리보다 훨씬 뛰어난 기술이구나. 이것들을 어떻게 만들었지? 울트 대추장! 이것들을 만드는 기술(技術)은 얻을 수가 없었소?”


“그렇지 않아도 신이 그것을 요구 하였사온대 종족의 중요 기밀(機密)이라고 내주지 않았사옵니다.”


“당연히 그럴 거요. 여봐라! 이 병기들의 절반은 나를 수호하는 호위들이 쓰게 하고, 몇 자루는 우리의 최고 대장장이에게 내주어 똑같이 만들어 보게 하라. 나머지는 차후에 결정하겠다.”


그러자 보이지 않게 은신해 있던 수신호위(守身護衛)들이 몇 명 나타나서 무기를 가지고 나갔다.


나머지 예물인 천령수 열매와 인드리코룡의 이빨에 대해서도 설명을 듣고 좋아하기는 하였지만, 병기(兵器)처럼 깊은 관심을 갖지는 않았다.


다시 모두 탁자에 둘러앉으니 한참 생각에 잠겨 있던 칸드란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자, 이제 보고는 모두 끝난 것 같고, 이 일을 어찌 처리하면 좋겠소?”


상벌(賞罰)을 논하자는 것이니 앞서 고개 돌리고 웃던 정적 몇몇이 나섰다.


“이렇게 많은 전사를 잃은 것은 우리 종족의 막대한 손실이옵니다. 마땅히 대추장의 자리를 내놓고 옥에 하옥(下獄)해야 하옵니다.”


그러자 얼굴에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는 몇몇은 그래도 울트를 편들었다.


“처음 내용을 들었을 때는 소신들도 황당하였사오나 세부적인 내용을 듣고 가져온 병장기를 살펴보니, 우리 종족이 여러 종족들 틈에서 계속 생존(生存)하기 위해서는 알아야 할 것도 많고, 그리고 개선해야 할 것도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사옵니다.


일벌백계도 중요하지만 그 종족과의 전투 경험이 유일한 울트 대추장을 버리기보다는 그 종족과 다시 싸울 때를 대비하게 하심이 좋을 것 같사옵니다.”


칸드란이 하옥을 요청했던 대추장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모두 일리가 있는 말씀이오. 그렇다고 패배한 죄를 묵과할 수는 없으니 앞으로 삼 년간 울트 대추장은 대외적인 업무를 모두 중단하고, 오로지 천인족을 상대하여 이길 수 있는 방법을 찾는 데 전념하도록 하시오. 대추장 자리는 일단 유보토록 하겠소.”


그러자 하옥을 요청했던 대추장들의 얼굴빛이 변했다. 반면에 울트는 깊이 허리를 숙이며 선처에 감사를 드렸다.


“감사하옵니다. 소신이 반드시 그 방법을 찾겠나이다.”


이렇게 전쟁 실패에 대한 보고가 끝나고 돌아가는데, 숙청(肅淸)을 위해 하옥을 요청했던 몇몇이 대청을 나가면서 머리를 맞대고 숙덕거린다.


“이번에 그놈을 한 방에 저 밑바닥으로 보낼 수 있었는데 너무 아쉽구려.”


“칸드란이 유력한 차기 후계자라고 너무 봐주는 것 아닌가요?”


“또 기회가 있을 거요. 일단 대외적인 업무를 못하게 하였으니 우리에게는 좋은 기회요.”



모두 나가고 넓은 대청(大廳)에 혼자 덩그러니 앉아 있던 칸드란이 혼자 피식 웃으며 중얼거렸다.


“그래도 날 속이지는 않는군. 뒤에서 나를 속이고 뒤통수를 치려는 놈들 보다는 낫겠지. 몇몇 놈이 끌어내리려고 안달을 부리던데······.”


고개를 이리저리 갸우뚱거리더니······.


“그나 저나 천인족이라는 종족들이 놀랍구나. 갑자기 어디에서 나타났을까? 빨리 사각족 칸드란께도 내용을 알려 주고 대책을 세워야겠어. 그 수가 불어나면 감당하지 못할 거야.”


또 한참을 생각하더니 마음이 심란한지 일어나서 이리저리 서성거린다.


“신수라고? 어떻게 그렇게 큰 짐승이 갑자기 나타난 거지? 또 우리말도 모르면서 머릿속으로 말을 한다는 선어는 뭐야? 정보원들 모두가 한목소리로 얘기를 하니 안 믿을 수도 없고 말이야. 나 원 참!”


들은 얘기들이 모두 상식적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아리송한 것뿐이다.


* * * * *


천인족 주거지에는 큰 태풍이 한 번 지나간 뒤의 고요함이 찾아왔다.


아픔을 억누른 채 모두 약속이나 한 것처럼 말수가 줄었다.


독화살에 맞아서 중독된 환자들은 해독제를 먹고 대부분 완쾌(完快)되어 돌아갔지만, 병장기에 상처를 입은 많은 전사들이 아직도 여러 막사에 누워서 치료를 받고 있었다.


많은 사람이 죽어서 분위기가 너무 가라앉자 천사장이 종족 차원에서 대신녀와 함께 위령제(慰靈祭)를 지냈고, 전사자 집에는 위로품이 전달되었다.


사랑하는 연인을 잃어버린 여인은 영원히 함께하자던 약속을 저버리고 떠났다고 먼저 간 님을 배신자인 양 원망하고, 절친한 죽마고우(竹馬故友)를 잃어버린 남자들은 그늘에 모여 술잔으로 시름을 달랜다.


아무리 그래도 사랑하던 자식을 하루아침에 잃어버린 부모들만 하겠는가?


그들은 아무도 없는 곳에서 초점 없는 눈으로 앉아 가슴에 피멍이 들도록 두들기며 꺽꺽거리고 있었으니.


죽은 자식을 가슴에 묻고서······.



그래도 세월은 가고 어느덧 여름도 지나서 초가을에 접어들었지만, 아열대지역이라 한낮에는 아직도 햇볕이 뜨거워서 밖으로 나다니기가 싫었다.


천막에는 아직도 누워 있는 환자가 수십 명이다. 그런데 환자들과 같이 천막 한구석을 차지하고 누워 있던 쥬맥의 부어오른 몸에서 갑자기 심한 악취(惡臭)가 풍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전신에 부스럼 같은 것이 퍼지더니 고름과 함께 진물이 흐르고 피부가 짓무르니, 마치 나병환자(癩病患者) 같은 모습으로 변했다.


모두 옆에 가기를 꺼리는데, 며칠 뒤 같은 천막에 누워 있던 몇몇 환자가 같은 증세를 보이며 고열에 시달렸다.


그 수가 십여 명을 넘더니 몇 명이 생사지경(生死之境)을 헤매기 시작하자, 환자들을 치료하던 신녀나 선인들도 어찌할 줄 모르고 당황했다.


결국은 그 병이 쥬맥으로부터 전염되지 않았을까 생각하여 긴급하게 쥬맥이 앓아 누운 이유를 조사(調査)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쥬맥은 혹시 좋아하는 친구 야수르와 하유리에게 나쁜 영향(影響)이 갈지도 모르니, 함께 들판에 나가서 겪었던 일을 전부 감추었다.


그냥 혼자서 죽어 있던 동물의 사체를 만졌던 적이 있다고 둘러댔다.


쥬맥과 가까이 지내던 친구들도 한 명씩 불러서 물어보았는데······.


야수르는 아버지가 절대 그 얘기를 다른 사람 앞에서 입 밖에 꺼내지 말라고 다그치던 모습이 떠오르자 모른다고 딱 잡아떼었다.


하유리는 나중에 크면 신랑 신부 하자던 약속이 떠올랐지만, 풋사랑을 품은 여린 가슴에 혹시 야단을 맞을지도 모르니 무서워서 모른다고 외면하였고.


그날 밤 남몰래 혼자서 울었지만 야단맞는 것보다 낫다 여겼으니······.


쥬맥의 어린 시절 철부지 우정(友情)과 사랑은 그렇게 떠나갔다.


결국은 쥬맥이 전염성 풍토병을 앓고 있다는 생각에 따로 격리(隔離)를 시켜야 한다는 얘기들이 점점 많아졌다.


그 와중에 부상당했던 환자들이 쥬맥과 같은 증세로 세 명이 죽어 나갔다.


그러자 부모들이 들고 일어나서 난리가 났고 쥬맥을 주거지에서 내보내야 한다는 얘기에 힘이 실리기 시작했다.


결국 쥬맥은 다른 환자들과 따로 격리되었다. 그러나 자신의 비참(悲慘)한 지경에도 굴하지 않고 홀로 누워서 쉼 없이 토납술에만 매달릴 뿐이었다.


그런데 마침내 쥬맥과 같은 증세를 보이던 환자 열 셋이 모두 죽자, 돌림병 공포가 주거지 전체로 퍼져 나가면서 난동(亂動)이라도 일어날 기세였다.


그때, 부족장 몇 사람이 밤에 술을 서너 병 들고 대족장 비율신을 찾아왔다. 뭔가 할 얘기가 있는 듯한데 계속 다른 얘기만 하면서 머뭇거리는 사이에 술은 어느덧 바닥이 드러났다.


결국 한 사람이 마지못한 듯이 술기운을 빌려 입을 열었다.


“비 대족장님! 돌림병 얘기는 들으셨지요?”


“나라고 어찌 귀가 없겠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닐세.”


“이러다가 난동(亂動)이라도 날 것 같습니다. 빨리 결단을 내려서 불쌍 하지만 얘를 빨리 밖으로 내보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한울님 성격에 그 어린 것을 내치려고 하시겠는가?”


“한울님이 못 하실 것 같으니까 저희가 대족장님을 찾아왔죠.”


“아니, 그럼 우리끼리 일을 꾸미자는 것인가? 나중에 그 불호령을 어찌 들으려고? 천사장도 반대할 텐데······.”


“그러니까 저희가 그 멍에를 지겠다는 겁니다. 이것이 우리 종족을 살리는 길입니다. 어린애 한 명 때문에 수없이 죽어서는 안 되지요.”


“그렇다고 어찌 부모 형제(父母兄弟)도 없는 어린 고아를 버려······.”


“비 대족장님은 알고만 계십시오. 저희가 일을 마무리하고 한울님께 죄를 청하겠습니다.”


“휴······.”


비 대족장은 대답을 못 하고 답답한 가슴에 한숨만 내쉬었다.



비율신 대족장을 찾아갔던 부족장들이 술에 취해서 불콰한 얼굴로 달빛이 밝게 비추는 길로 나섰다. 그곳에서 다시 머리를 맞대고 속닥거리다가 하천(河川)의 다리를 건너서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 돌 위에 둘러앉았다.


“어이, 야 부족장. 우리가 모두 살려면 이 수밖에 없지 않겠어?”


“그래, 보 부족장. 아무도 못 하면 우리가 멍에를 짊어져야지. 죽이기밖에 더 하겠어? 해 보자고.”


“저도 선배 부족장님들의 의견에 따르겠습니다.”


“나도 같은 또래의 자식을 가진 부모라서 마음이 아파 죽겠네. 그런데 어쩌겠는가? 살 사람은 살아야지.”


“집에서 키우는 동물도 그냥 버리지는 않는데······. 그래도 마음에 걸리니 뭐라도 챙겨서 보내야 하지 않겠어?”


“혹시 모르니까 비상식량이랑 긴 칼 말고 중간쯤 되는 것하고 단검, 옷 몇 벌하고 그 외에 필요한 것이 있으면 등짐으로 싸서 함께 주자고. 그런다고 마음이 편하지는 않겠지만.”


“내일 낮에 짐을 모두 챙겨 놓았다가 밤에 보름달이 뜰 테니 모두 잠들면 그때 해치웁시다. 보름달이 저 중천(中天)에 뜨면 모두 이리로 모여서 함께 움직이지요.”


이렇게 병든 쥬맥을 버리기 위한 모의(謀議)에 밤은 깊어 가고······.



그때, 쥬맥은 깜박 깊은 잠에 빠져서 꿈을 꾸고 있었다.


꿈속에 사차원의 공간균열 속에서 돌아가신 엄마, 아빠와 형을 만났다. 그래도 저세상에서 잘 지내는지 모두 밝은 얼굴이다.


모두 행복해 보이는데 자기만 힘든 것 같아서 투정을 부렸다. 오랜만에 엄마 품에 안겨 훌쩍거리며 하는 말.


“엄마! 보고 싶었어. 왜 나만 버리고 갔어? 힘들어서 죽겠단 말이야.”


“아우~ 우리 쥬맥이 힘들었나 보구나. 하나도 걱정할 것 없단다.”


그 모습을 보더니 아빠가 귀엽다는 듯이 옆에서 볼을 살짝 꼬집었다.


“나이가 몇인데 아직까지 어리광이냐? 너는 용감한 아이라고 했잖아?”


“그래도 힘들어~”


“너는 큰일을 하는 훌륭한 사람이 될 것이니 벌써 오면 안 된단다.”


그러자 옆에서 보던 형이 나섰다.


“쥬맥아! 이 형이 항상 네 곁에 있을 거야. 걱정하지 마.”


“언제? 한 번도 안 보이던데?”


“영혼(靈魂)이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거야. 그래도 항상 네 곁에서 형이 지키고 있으니까 무서워할 것 없어.”


“형! 정말이지? 항상 내 곁에 있는 거지?”


“그럼, 정말이구 말구. 오늘 오랜만에 만났는데 형이 구경시켜 줄까?”


“그래, 재미있겠다. 우리 함께 놀러 나가자.”


두 형제는 손을 잡고 밖으로 나왔다.


들판에는 여기저기에 사람처럼 큰 예쁜 꽃들이 피어 있고 벌과 나비가 한가득 날아다녔다. 여기는 어디일까?


한참을 걸어가니 손이 닿을 듯한 나무에 주먹만 한 황색 열매들이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그것을 형과 함께 따서 맛있게 먹었다.


또 한참을 가니 높은 절벽(絶壁)이 보이고 중간쯤에 큰 동굴이 있는데, 형이 바위틈을 딛고 힘들게 쥬맥을 데리고 올라갔다.


커다란 동굴 안에 들어서니 바위 사이로 빨간 버섯 같은 것이 잔뜩 자랐다. 형이 그 버섯 같은 것들을 따더니 몸에 좋은 약이라면서 쥬맥의 입에 억지로 넣어 주었다.


그런데 이게 무슨 맛인가?


그 맛이 매우 쓸 뿐 아니라 뜨거운 불길 같은 것이 목구멍에서 치솟아 오른다. 얼른 뱉어 내려고 하는데 형이 자꾸 먹으라고 시켰다.


어쩔 수 없이 억지로 그것을 씹어 먹으며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오랜만에 형과 손을 잡고 뛰어노니 기분이 너무 좋았다. 그 고약한 버섯 맛만 빼면.


이제 엄마, 아빠와 형이랑 이렇게 항상 함께 살았으면 좋겠다.


힘들 때는 이렇게 어리광도 부리고. 마음 한편은 꿈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이 상황이 영원하기를 빌 뿐이다.


그러면서 형의 손을 놓으면 헤어질 것만 같으니 꼭 잡고 놓지 않았다.




감사합니다. - 설련하(偰輦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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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2

  • 작성자
    Lv.24 김톨.
    작성일
    21.09.03 16:54
    No. 1

    드디어 이제 주인공 성장 에피소드로 넘어가나보네요

    찬성: 3 | 반대: 0

  • 작성자
    Lv.28 철없는사과
    작성일
    21.10.04 21:40
    No. 2

    맞는 말이지만.. 그렇지만 맘이 저린 건 어쩔 수 없네요.
    마치 한을 하나씩 쌓아주는 기분이라... 어른들의 방식을
    아이가 얼마큼 이해해 줄 수 있을지... ㅜㅜ

    찬성: 3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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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23화. 무인을 꿈꾸다 +1 21.06.29 1,500 50 18쪽
22 22화. 동굴 속의 기연(奇緣) +1 21.06.29 1,504 50 18쪽
21 21화. 새 친구 점박이 +1 21.06.29 1,481 50 18쪽
20 20화. 새로운 안식처(安息處) +1 21.06.29 1,485 49 19쪽
19 19화. 우르표범과의 조우 21.06.29 1,462 47 19쪽
18 18화. 홀로 숲에 버려진 아이 +1 21.06.29 1,468 49 18쪽
» 17화. 풍토병(風土病) +2 21.06.29 1,463 48 18쪽
16 16화. 화해협상(和解協商) +1 21.06.29 1,462 49 19쪽
15 15화. 핏물은 강이 되어 흐르고 +2 21.06.29 1,473 50 18쪽
14 14화. 협상 결렬과 힘겨루기 +2 21.06.29 1,463 50 18쪽
13 13화. 울트의 읍참마속(泣斬馬謖) +2 21.06.29 1,499 50 17쪽
12 12화. 반인족 선발대와의 전투 +2 21.06.29 1,555 50 17쪽
11 11화. 대륙지도 작성 +2 21.06.29 1,605 49 21쪽
10 10화. 비월족과 검치범 +2 21.06.29 1,613 48 19쪽
9 9화. 들개 떼의 습격 +2 21.06.28 1,687 49 18쪽
8 8화. 반인족과의 격돌(激突) +2 21.06.28 1,753 48 19쪽
7 7화. 사건의 발단(發端) +2 21.06.28 1,859 50 19쪽
6 6화. 첫 주거지 +2 21.06.28 2,008 52 18쪽
5 5화. 선인과 거인(巨人) +3 21.06.28 2,161 50 18쪽
4 4화. 거인족과의 조우(遭遇) +2 21.06.28 2,384 53 18쪽
3 3화. 천인족의 대이동(大移動) +3 21.06.28 2,635 55 18쪽
2 2화. 서장(2) 탈출(脫出) +3 21.06.28 2,830 56 19쪽
1 1화. 서장(1) 탄생(誕生) +4 21.06.28 4,638 58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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