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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련하 님의 서재입니다.

삶의 위대함 - 한울 쥬맥

웹소설 > 작가연재 > 무협, 퓨전

완결

설련하
그림/삽화
설련하
작품등록일 :
2021.06.28 08:42
최근연재일 :
2022.10.17 08:20
연재수 :
290 회
조회수 :
378,707
추천수 :
7,321
글자수 :
2,467,752

작성
21.06.29 09:56
조회
1,463
추천
49
글자
19쪽

16화. 화해협상(和解協商)

삶의 위대함 - 한울 쥬맥




DUMMY

악에 받친 듯이 울부짖는 대추장 울트의 말을 듣고 있던 해타(海駝)가 가만히 몸을 한 번 털어 내더니, 금빛이 번쩍이는 두 개의 뿔에서 뇌전처럼 섬광(閃光)이 일면서 기다란 실 같은 것을 뿜어냈다.


그리고 그 실로 울트의 몸을 마치 거미줄처럼 옭아매더니 번개처럼 공중으로 번쩍 들어올리는 것이 아닌가?


그러면서 뇌전처럼 번쩍이는 두 눈으로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니 울트는 기겁을 하고 놀랐다. 그 눈빛만 봐도 머릿속이 하얗게 비는 것 같았다. 그리고 가슴이 정신없이 벌렁거리니 이 무슨 창피인가?


“으아악! 이게 무슨 짓이냐? 빨리 나를 내려놓아라! 어서!”


그러자 화가 나서 으르렁거리는 해타.


[으르르르! 버릇없이 감히 날 능멸(凌蔑)하다니! 그럼 어디 내 소리나 한 번 들어보고 판단할 지어다.]


화가 난 해타가 하늘을 향하여 고개를 들더니 날카로운 이빨이 가득한 입을 벌리면서 천둥소리보다 더 크게 울부짖었다.


“으허허헝~~ 으허엉!!”


그러자 그 노호가 어찌나 큰지 천지가 바르르 떨리는 소리에 귀청이 터질 것 같았고 머리가 쪼개질 듯이 아프다.


뿐만 아니라 속이 울렁거려서 가만히 서 있을 수가 없으니 모든 병사들은 그 자리에 힘없이 주저앉아서 계속 머리를 정신없이 흔들어 댔다.


그제야 대추장 울트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오늘 잘못하면 원정을 온 모두가 죽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니 더럭 겁이 나고 한편으로는 걱정이 되었다.


사내대장부가 자기 혼자 죽는 거야 겁나지 않지만 저 많은 병사들을 다 죽이고, 그 가족들의 원성과 불명예를 짊어질 것을 생각하니 갑자기 머리가 아찔하다. 그럴 수는 없는일!


“좋습니다. 잘 알았으니 이제 그만 내려 주고 어떻게 화해를 할 것인지 말해 보세요. 우리 이제 말로 합시다.”


[그럼 우선 전장을 수습하고 내일부터 협상을 하도록 하지요. 지금은 사방에 시신이 즐비하고 흘린 피가 강을 이루고 있으니······.]


“좋습니다. 일단 전쟁을 멈추는데, 어디에서 협상을 할 것이요?”


[내일 해가 뜬 뒤에 내가 대추장 막사로 가지요. 지난번의 그곳으로요.]


“알겠습니다. 그리 준비하지요.”


천사장이 가만히 목례(目禮)를 나눈 뒤 돌아서니, 신수 해타도 울트를 내려놓고 멀리 편한 곳으로 물러나 풀밭에 조용히 내려앉았다.


이렇게 혈전의 대전투가 막을 내리니 들녘에는 또다시 정적이 찾아오고···, 수많은 사람들이 친구나 지인의 시신을 찾아서 부산하게 전장을 누비기 시작했다.


내 친구는 어디에 쓰러져 있을까? 내 아들은? 내 동료는? 모두 눈에 불을 켜고 먼저 소중한 지인을 찾아 나선다.


이미 들판에는 시신이 산을 이루고 붉은 피가 강물처럼 흐르니, 훗날 천인족과 반인족 모두가 이 전쟁터를 피의 바다 ‘혈해(血海)’라고 불렀다.


물론 그 이후에 대륙 전역에서 벌어지는 거대한 전쟁들에 비하면 이 전쟁은 작은 접전에 불과 했지만 말이다.


* * * * *


아침나절에 전투가 끝나고 모두 온몸에 피칠갑을 한 채 진지로 후퇴하였다.


참담한 마음을 달래며 그래도 먹고 살겠다고 허기진 배에 음식을 구겨 넣는데 짠 눈물이 같이 입으로 흘러 들어간다. 누군가는 고통을 달래려고 일부러 음식을 억지로 구겨 넣었고.


그중에는 피 냄새가 역겨워 음식을 넘기지 못하고 한쪽에서 웩웩거리는 사람도 있었다. 어디 그뿐인가? 멍하니 전장을 바라보는 사람, 한쪽에서 훌쩍거리는 사람, 머리를 다리 사이에 파묻고 있는 사람······ 등등.


그 모습은 각기 달라도 그들 마음에 담긴 참담함은 모두 같았으니······.


점심을 대충 때우고 나서 중천에 뜬 따가운 햇볕 아래 양측이 모두 뒤처리를 시작했다.


이미 화해하기로 한 뒤라서 뒤처리 인력은 모두 무기를 내려놓고 들것들을 이용하여 시신을 실어 나른다.


외양이 완전히 다르니 구분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꼬리 하나만 봐도 한눈에 알 수 있었으니까.


피로 질척이는 들판을 누비며 시신을 모아 한쪽에 누이는데, 열에 아홉은 반인족 시신이라 반인족 측 들판은 목 없는 시신으로 가득 찼다.


대부분 단칼에 목이 잘려 죽어서 몸과 목의 임자를 구분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그래서 몸 따로 목 따로 모아 놓은 모습이 더욱 흉측(凶測)스럽기만 했다.


날씨가 더워서 시신이 부패하기 쉬우니 처리를 서둘러야 한다. 잘못하면 이 전화에 전염병마저 돌 수 있으니.


천인족은 그나마 대부분 몸과 목이 붙어 있어 가족들이 시신을 운구했다.


선인과 신녀들 주관으로 합동 장례식을 치르고 공동묘지를 만들어서 매장하기로 하였으며, 가족이 없는 시신은 천령대가 대신해서 처리하기로 했다.


반인족은 본거지에서 멀리 떠나왔기 때문에, 진지 옆으로 길게 땅을 파고 몸과 목이 맞지 않아도 한 구씩 짝을 맞추어 매장하였다.


무녀들이 일일이 명복을 빌어 주는데 그 일이 밤늦게까지 이어졌다.


그리고 시신 처리가 모두 마무리되자 양측 모두 피해 규모를 파악하였다. 비교적 피해가 적은 천인족도 전사자가 이천을 넘었고 부상자는 삼천을 헤아렸다. 만오천이라는 그 많지도 않은 인구에서 말이다.


그런데 반인족은 전사자가 천인족의 열 배인 이만 명이 좀 넘었다. 그러나 의외로 부상자는 적어서 천여 명에 지나지 않으니 이상하지 않은가?


이것은 천인족에 무술의 고수가 많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일단 적을 죽일 때는 고통 없이 죽이기 위해서 단칼에 목을 치거나 심장을 찌르는 경우가 대다수(大多數)이기 때문이다.


육만 명을 데려와서 1차전에 이천오백이 죽고, 2차전에서 이만이 넘게 죽었으니 반인족은 위에서 아래까지 완전히 초상집 분위기였다.


모두 이럴 수는 없다며······.


그러게 왜 이런 싸움을 벌였는지···, 누구의 자존심 때문일까? 모두 의문을 던져 보지만 대답하는 자가 없다.


반인족 측은 전사자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모닥불만 밝게 타오를 뿐 조용한 반면에, 가족이 옆에 있는 천인족 측은 호곡성이 여기저기서 울려 퍼졌다.


망자를 달래는 소리와 사후 좋은 세계로 인도하는 팔혼령(八魂鈴 천신이 창조한 여덟 세계에 망자의 선처를 바라는 마음으로 울리는 은방울로 방울 여덟 개가 둥글게 달린 장례용 기구) 소리가 애처롭다.


밝은 달빛 아래 애달픈 방울 소리와 함께 처량하게 염(殮)하는 소리가 멀리 울려 퍼지니 듣는 이 모두의 눈에는 습막이 번진다.


바람결 따라 처량하게 ‘딸랑~ 딸랑~’하면서 퍼져 가는 팔혼령 소리! 그 소리를 따라서 슬픔도 하늘을 떠돈다.


쥬맥도 천막에 누워 아득히 먼 곳에서 밤하늘에 딸랑거리며 들려오는 팔혼령 소리를 듣고 있었다.


‘또 누군가 죽었나 봐. 전쟁이 벌어졌다는데 걱정이네. 내가 아프지 않았으면 화살이라도 날라다 줄 텐데······.’


병들어서 누워 있으면서도 자신보다는 전장에서 싸우는 사람들 걱정이 앞섰다.


결국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엉금엉금 기어서 천막 문까지 다다라 문틈으로 밖을 내다보았다.


수많은 사람들이 들것에 죽은 사람이나 부상자를 실어 나르고 있다. 어떤 수레에는 십여 명이 짐짝처럼 포개져 있는 것을 보니 모두 죽었나 보다.


병든 마음에도 자신이 크면 종족을 지키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종족들이 저렇게 죽어 나가지 않도록.



그 와중에도 한울을 비롯한 고위 지도층은 내일의 협상을 위한 여러 가지 내용을 놓고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수많은 전사자를 낸 반인족을 설득하여 화해의 협상을 마무리 짓기 위해서는 무언가 양보가 필요하다.


대추장 울트가 돌아가서 반인족 최고수장인 칸드란에게 보고할 때 위축되지 않도록 ‘체면 살리기’와 ‘명분’을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반인족 진영에서도 대추장 울트의 주관하에 회의가 열리고 있었다.


우선 오늘 전투 결과를 놓고 상상치 못한 대패를 당한 것에 대하여 울트는 대추장답게 자신의 잘못으로 돌리고 더 이상 추장들을 몰아세우지 않았다.


돌아가서도 칸드란께 자신이 모든 책임을 지고 보고할 것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부하들을 안심시켰다.


역시 수장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닌가 보다. 권한만큼 책임도 질 줄 아는 사람이 바로 수장이 아니겠는가?


이번 전투에서 보고 들은 천인족에 대한 정보는 진법이나 기마대, 무기류와 신수에 이르기까지 하나도 빠짐없이 정리하여 혹시 모를 다음 전투에 대비하도록 지시했다.


또한, 비록 싸움에서 졌지만 내일 천인족과의 협상에서 내놓을 반인족 요청 사항과 예상되는 천인족 요구 내용에 대하여 밤늦도록 토론을 거듭했고.


지옥 같았던 하루가 지나가고 있건만 밤이 깊어 이미 삼경이 지난 전장에는 소인족과 비월족이 밤이 새는지도 모른 채 염탐하고 있었다. 소인족은 땅을 여기저기 기웃거리고 비월족은 하늘을 저공으로 날면서 말이다.


또한 사방에 퍼진 피 냄새를 맡고 에피온개를 비롯하여 수많은 짐승들이 몰려들어 먹이를 찾아 서성거렸다.


그러는 가운데 또다시 새벽은 어김없이 찾아오고, 새로운 하루를 시작하는 태양이 동녘에 떠오르기 시작했다.


오늘 협상에는 천사장과 비율신 대족장이 함께 가기로 했다.


동녘을 물들이며 찬란한 햇살이 이슬을 머금은 풀잎 사이로 퍼져 나가는 사이를, 천사장과 비율신 대족장이 나란히 걷고 있는데 그 발걸음이 무척 무거운 모양이다.


마치 협상의 난항을 예측한 듯 얼굴 표정도 딱딱하게 굳었고.


이슬에 젖은 풀잎 아래에는 어제의 전투로 아직까지 핏물이 질척거리건만, 그래도 두 사람의 가죽신에는 이슬방울 하나 묻어 있지 않았다. 꼭 초상비를 펼치는 것처럼.


비율신 대족장도 이주 시에 살아남은 투신급의 절대고수 세 명 중 한 명이라 공력이 사 갑자에 이르고 열네 경맥을 모두 융통한 초고수이기 때문이다.


화해 협상에 임하는지라 일체의 무기를 지니지 않았음에도 전혀 두려움이 없었고, 선인인데 무릎도 굽히지 않고 나아가는 천사장의 운신을 바라보며 옆에서 감탄을 거듭하고 있었다.


어제 전투가 치열하게 벌어졌던 전장의 한가운데에 이르자 두 사람은 걸음을 멈추고 잠시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제 시신들은 모두 치웠지만 풀잎과 땅에 배인 피 냄새가 아직도 진동하고 있었고, 질척거리는 땅에는 여기저기에 핏물이 흥건하게 고여 있다.


빈자리만 남아 있는 해타는 벌써 왔던 곳으로 돌아간 것일까?


대자연은 무관심한 듯 어제와 다름이 없었다. 나무마다 색색의 꽃을 피우고 벌과 나비가 바람결에 이리저리 오간다. 그런데 문명을 이뤘다는 종족들은 뭐가 부족하여 그리고 무엇을 위하여 이리도 처절하게 싸우는지······.


천신의 가르침을 행하는 선인의 마음에는 그 부질없음에 한 줄기 비애가 가슴 깊이 스며들었다.


마침내 반인족 진영에 다다르자 추장 한 사람이 사신을 영접하기 위해서 나와 있었다. 두 사람을 발견하더니 어제의 울트 대추장 막사로 안내를 했다.


막사 안에는 이미 대추장을 비롯하여 세 명의 추장들이 함께 앉아 있었다. 사신이 도착한 것을 보고 자리에서 일어나 간단히 서로 목례를 했고······.


대추장 울트가 처음 보는 비율신 대족장을 바라보며 천사장에게 물었다.


“이분은 처음이군요. 누구십니까?”


[아, 이 분은 선어로 대화를 할 수 없으니 내가 대신 소개하겠습니다. 우리 천인족의 대족장 중 한 분인 비율신 대족장입니다.]


“아! 그래요? 어서 오세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대추장 울트라고 합니다.”


[만나서 반갑다고 합니다. 대추장 울트입니다.]


비 대족장도 무인처럼 포권을 하고 대추장과 추장들을 보며 가볍게 목례로 인사를 나누었다.


자리에 앉자 천사장이 중간에서 말을 전하고 내용을 조율하면서 협상이 진행되었다. 대부분은 사전에 예측한 대로 어렵게 협상이 흘러가는데······.


“우리도 이제는 더 이상 피 흘리는 싸움을 바라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6만의 대군이 먼 이곳까지 와서 수많은 부하를 잃었는데, 이대로 돌아가려면 명분(名分)이 필요합니다.


나야 정 안 되면 최고수장이신 칸드란께 목을 내놓으면 그만이지만, 내 밑의 추장들은 무슨 낯으로 돌아갈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 그대들이 우리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이번 전쟁은 우리가 아니라 그대들이 일으킨 것입니다. 하지만 서로 화해를 위한 자리이니 우리도 무리한 요구는 하지 않겠습니다. 그대들의 요구를 들어 보고 우리도 원하는 것을 말하지요.]


······. ······.



아침에 시작된 협상이 저녁 무렵이 되어서야 끝이 났다.


반인족은 천인족의 뛰어난 무예와 함께 무기를 제작하는 기술도 전수해 주기를 원했고······.


그리고 당장 돌아가서 칸드란의 분노를 잠재울 예물로 도검과 창을 비롯하여 천인족이 내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물어 왔다.


천인족은 독화살에 맞아 중독된 부상자가 많아서 독의 성분과 제대로 된 해약제 제조법, 그리고 소금이나 말린 생선 등 서로 물물 교역이 가능한 물품을 물어 지속적인 교역을 요청했다.


그러나 서로 요구하는 것을 다 들어줄 수는 없었기 때문에 최종적으로 조율된 내용은 다음과 같았는데······.


첫째, 향후 두 종족은 전쟁을 멈추고 서로 적대하지 않는다. 분쟁거리가 발생하면 서로 사신을 보내어 협상한다.


둘째, 지속적인 우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두 종족 거점의 중간 지점에 물물 교환을 할 수 있는 교역소를 만들어 운영한다.


교역소에는 양족(兩族) 대표자가 상주하여 협상한다. 천인족은 곡류, 술, 천령수 열매 등 여러 특산품을 보내고 반인족은 소금과 말린 생선, 동물의 가죽 등을 보낸다.


셋째, 천인족은 반인족 칸드란께 보내는 예물로 검 백 자루, 도 백 자루, 창 백 자루, 천령수 열매 한 가마니, 인드리코룡의 이빨 열 개를 보낸다.


반인족은 천인족 한울께 예물로 길들인 시원맘모스 백 마리와 우르들소 백 마리, 시리낙타 백 마리와 함께 해독약 한 단지와 그 제조법을 보낸다.



이렇게 두 종족 간의 화해 협상이 끝났고 저녁에는 화해하는 술자리를 가진 뒤 헤어졌으며, 다음 날 약속한 예물들이 서로 오갔다.


서로 만족은 못했지만 충분히 건질 것은 건졌다는 분위기였다. 반인족이 무공과 무기 제조술을 원했지만 그건 자신들도 쉽지 않은 일이라 생각했고.


반인족이 건네준 길들인 동물들은 천인족에게도 유용하였다.


농사에 활용하기 좋았고, 식용 가축의 용도도 있었으며 시리낙타의 경우에는 짐을 실어 나르기에 좋았다.


모두 반인족 전사들의 식량으로 사용하거나 천막과 보급품 등 짐을 싣기 위해서 끌고 온 짐승들이었다.


시원 맘모스의 경우 처음에 끌고 온 오백 마리는 대부분 전투에서 죽었고, 추가로 보급받은 것에서 내주었다.


우르들소는 우르고원 주변에 서식하는 들소를 길들인 것으로, 몸통 두께가 다섯 자(1.5m)에 길이가 열두 자(3.6m) 정도인데 긴 털이 자라난 힘센 소였다.


시리낙타는 사미르사막과 우르고원 일대에 서식하는 동물을 길들인 것으로 등 위에 두 개의 혹이 솟아 있다.


몸통 두께가 네 자에 길이가 열 자 정도인데 긴 다리가 있어서 올라타면 말의 높이만큼 높았다.


보기와는 다르게 힘이 좋았고 지구력이 있어서 많은 짐을 멀리까지 실어 나르는 데 안성맞춤이었다.


제대로 된 해독제(解毒劑)가 도착하니 독화살을 맞고 중독되었던 부상자들이 금방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인드리코룡의 이빨은 의외로 반인족이 신성하게 여기는 것이라 한다. 그래서 칸드란들은 그 이빨을 목에 걸고 다니는 것을 무척 자랑스럽게 여겼다.


인드리코룡의 덩치가 커서 반인족 능력으로는 도저히 잡을 수 없는 동물이다 보니 그리 된 것이리라.


다행히 이주 시에 사냥한 두 마리의 뼈가 남아 있어서 좋은 선물이 되었다.


한편, 전쟁에서 대참패를 당한 반인족은 부상자를 수레나 짐승에 태워서 본거지인 리반에 도착했다.


출전한 전사들의 가족이 마중을 나와 자식이나 친지의 무사 귀환을 바라며 맞이했으나, 돌아오지 않은 사람이 너무 많으니 사방이 울음바다로 변했다.


대추장 울트는 죄인의 마음으로 그 모습을 망연히 바라봐야만 했고······.


때늦은 후회. 경솔했던 자신의 판단을 가슴 깊이 뉘우치고 그동안 쌓아 온 자신의 전 재산을 전사자 가족들에게 고루 나누어 주도록 하였다.


그리고 자신이 패전에 대한 모든 책임을 지고 죄를 청하기 위하여 칸드란의 거처로 향했다. 천인족에게서 예물로 받아 온 수레를 함께 끌면서.


마침내 저 멀리 높은 언덕 위에 대리석으로 지은 거대한 궁전(宮殿)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바로 최고수장인 칸드란의 거처다.


그 주변을 이각족의 무장한 전사들 수천 명이 지키고 있었다. 바로 칸드란을 보호하는 직속 친위대였다.


칸드란은 원정길에 몰래 함께 보낸 비선들을 통하여 이미 상황을 파악했다. 2차 전투가 벌어져서 수많은 아군이 죽을 때 한 명이 도망쳐 와서 중간에 보고를 한 것으로.


그리고 화해 협상이 진행되고 있을 때 몰래 떠나온 한 명이 또 보고를 하였기 때문에 최종 협상 내용만 모를 뿐 큰 내용은 이미 다 알고 있었다.


거기에다 울트가 자신을 만나러 오기 전에 전 재산을 털어서 전사자 가족들에게 보상(補償)을 했다는 내용까지 벌써 보고를 받았고 말이다.


그래서 지금은 한 푼도 없는 빈털터리가 되었다는 것까지 알고 있었으나 겉으로는 모른 체하며 울트를 맞아들였다. 그래서 최고수장인지 모르지만···.


칸드란은 반인족 치고는 큰 칠 척(2.1m)에 가까운 키에 칠십줄의 노인이었다.


그럼에도 아직 근육질의 풍채를 지녔고 하체는 붉은 털로 뒤덮여 있었다.


상반신에 흰 동물의 털옷을 입고 머리에도 흰 털모자를 쓰고 있는데 인자한 듯하면서도 눈매가 매우 날카로웠다.


무슨 얘기를 들었는지 주변에는 벌써 다른 대추장들 열댓 명이 와서 진을 치고 있었다. 시종과 시녀로 보이는 사람도 몇 명 눈에 띄었고······.


“울트 대추장! 어서 오시오. 먼 출정 길에 고생이 많았소.”


칸드란의 말에 울트가 머리를 바닥에 찧으며 그 앞에 넙죽 엎드렸다.


“칸드란이시여! 저의 잘못된 판단으로 수많은 부하를 전장에서 잃고 왔나이다. 대패(大敗)를 하고 돌아온 소신을 죽여 주시옵소서.”


그런데 바닥에 찧을 때 이마가 터져서 피가 얼굴로 주르륵 흘러내렸다.


그 모습을 보며 경쟁하는 몇몇 대추장이 고개를 돌리고 웃었다. 경쟁자가 당하고 오니 마음이 고소한 모양이다.


그래도 평소에 가까이 지내던 몇몇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침통하게 바라보았다.

16화 혈해 위치 지도.png

16화 혈해 위치 지도




감사합니다. - 설련하(偰輦河)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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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1

  • 작성자
    Lv.28 철없는사과
    작성일
    21.09.30 19:26
    No. 1

    반인족과의 전투는 휴전되었으나 끝이 아니어서
    언제든 긴장을 늦출 수 없겠네요. 서로간의 피해만 확인 한
    전쟁이지만 조금이나마 생각을 할 수 있기를.. 쥬맥은 잠시 등장하다
    들어가서 너무 아쉬워요. ㅜㅜ

    찬성: 3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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