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설련하 님의 서재입니다.

삶의 위대함 - 한울 쥬맥

웹소설 > 작가연재 > 무협, 퓨전

완결

설련하
그림/삽화
설련하
작품등록일 :
2021.06.28 08:42
최근연재일 :
2022.10.17 08:20
연재수 :
290 회
조회수 :
378,712
추천수 :
7,321
글자수 :
2,467,752

작성
21.06.28 09:35
조회
2,164
추천
50
글자
18쪽

5화. 선인과 거인(巨人)

삶의 위대함 - 한울 쥬맥




DUMMY

다시 한 번 멀리서 멈추라는 소리가 울려 퍼지는데, 크게 고함치는 소리가 아님에도 바로 귀에 대고 얘기를 하는 것처럼 모두의 귀에 또렷하게 들렸다.


그 말에 놀라서 천령대도 거인들도 순간적으로 모든 움직임을 멈추었다.


말이 들려온 쪽을 바라보니 멀리 사람으로 보이는 하얀 점이 하나 나타나서 날 듯이 다가온다.


그런데 몇 걸음 뛰지도 않은 것 같은데 축지법(縮地法)을 쓰는지 순식간에 모두의 눈앞에 다다랐다.


그리고 그 모습이 드러나는데···, 앞 이마는 훤한 대머리요 한 뼘 길이의 흰머리에 흰 수염을 단정하게 길렀다.


겉옷은 눈부시게 하얀 선인복을 입었고 손에는 지팡이처럼 길쭉한 네 자 남짓의 푸른빛 나는 막대를 쥐었다. 그냥 눈으로 봐서는 나무인지 옥(玉)인지 도대체 분간이 어려운 물체인데······.


갑자기 싸움이 멈추자 모두 몸을 추스르며 다시 양 진영으로 나뉘었다.


천령대 소속의 무사 이십여 명이 뼈가 부러졌는지 움직이지 못하자 동료들이 한쪽으로 들어냈고, 거인들 서너 명도 몸에 부상을 입었는지 불편하게 손발을 흔들다가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갑자기 나타난 사람은 태을 선인이었다. 선법(仙法)을 수행(修行)하여 겉모습이 별로 늙지 않아서 그렇지 벌써 나이가 백삼십 살에 이르렀다. 선인들 중에서는 백오십 살을 넘긴 천사장 돈문 다음으로 나이가 많았고.


태을 선인은 정갈한 모습에 현기(玄機)가 가득 담긴 눈으로 주위를 살펴보는데, 거인족은 자신도 처음 보는 것이라 약간 놀라는 얼굴이었다.


비율신 대족장과 함께 내려오다가, 수행으로 쌓은 민감한 감각으로 선발대에 무언가 일이 생겨서 소란스러워진 것을 알고 먼저 달려온 것이다.


몸집이 거대한 거인들과 천령대 사이에 서서 상황을 살피다가 대충 짐작은 하였으나 확인차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니, 무슨 일인가? 이 거인들은 또 뭐고. 왜들 싸우고 있는 거야?”


무슨 말인지 몰라서 거인 율리타는 튀어나온 큰 눈만 껌벅거리고 있는데, 안율이 나서서 우선 예를 갖추었다.


“예, 선인님 잘 오셨습니다. 저는 선발대를 맡고 있는 안율입니다. 실은 저희가 이 자리에 세 번째 휴식처를 만들기 위해서 이곳을 둘러보다가···.”


안율이 왜 이 지경이 되었는지 그동안 벌어진 일의 자초지종(自初至終)을 선인께 자세하게 설명했다.


거인들도 눈앞에 새로 나타난 사람이 뛰어오던 모습으로 보아 보통 사람이 아님을 느꼈는지 모두 은연중에 자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태을 선인은 가만히 눈을 들어 거인들을 살펴보는데, 조용하고 침착한 모습이 전혀 겁먹거나 당황한 모습이 아니었다. 반대로 덩치가 큰 거인들이 더 당황했고······.


한눈에도 키가 크고 어른스러움이 묻어나는 율리타를 올려다보더니, 한 발로 땅을 구르자 몸이 둥실 떠올라서 율리타와 같은 눈높이가 되었다.


그 모습에 돌목족 거인들이 모두 놀라면서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 높이까지 뛰어오르기도 어려운데, 제 자리에 가만히 멈춰 서서 허공에 떠 있다니!


선인이 율리타의 커다란 눈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현기가 어린 저음의 목소리로 조용히 물었다.


“그대가 여기 모인 거인들의 수장인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소.”


율리타는 그래도 상대가 함부로 말해서는 안 되는 사람임을 느꼈는지 나름대로 정중한 어투로 대답했다.


양 옆구리의 상처를 누르고 있던 손을 펴서 고개와 같이 흔들며 모르겠다는 손짓을 하자, 태을 선인이 알겠다는 듯이 유쾌하게 허허허 웃었다.


“허허허! 이 별에 처음 온 우리와 말이 통할 리가 없지. 그게 당연한 것을. 그럼 내게도 좋은 방법이 있다네.”


그러면서 눈에 선기(仙氣)를 흘려 눈동자에 푸르른 광채를 띠고 거인 율리타의 탁한 눈동자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그 모습이 마치 선인의 눈에서 푸른 광선이 나와 율리타의 눈 속으로 들어가는 듯했다.


율리타는 갑자기 머리에 울림이 일고 소리가 아닌 느낌으로 어떤 뜻이 전해져 오자, 놀란 눈으로 태을 선인의 눈을 직시했다.


그런데 그 뜻이 분명하게 말로 하는 언어처럼 자신의 머리로 전해져 온다.


[나는 천인족의 태을 선인이라고 한다네. 그대는 누구인가?]


“거인족 중에서 돌목족으로 불리는 종족의 일원인데 율리타라고 합니다.”


[오~ 율리타! 반갑군. 말로 해도 되고 머리로 말하고자 하는 뜻만 생각해도 의사소통이 되니 편히 하게.]


태을 선인의 선어(仙語-심어(心語)의 일종)에 놀란 율리타의 태도가 한결 공손해지며, 한번 시험을 해 보려고 머리로 뜻만을 생각했다.


[예, 저는 거인족 중에서 돌목족의 율리타라고 합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내가 우리 쪽 사람들에게서 그간 사정은 다 들었네. 우리는 나쁜 사람들이 아니고 또한 그대들의 적은 더더욱 아니지. 이만 서로 화해를 하고 싸움을 끝내는 것이 어떠한가?]


[우리 쪽 수련하는 아이들 중에서 몇 명이 많이 다쳤습니다. 이대로 돌아가면 인솔하여 데리고 온 제가 그 책임을 져야 하고, 또한 우리 위대한 거인들의 체면도 서지 않습니다.]


[그것은 우리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도리어 이쪽에 다친 사람이 더 많아. 내 한 손으로도 그대들을 모두 제압할 수 있음을 모르는가?]


[우리가 이렇게 덩치도 더 크고 힘도 엄청 센데 어찌 그럴 수 있습니까?]


[못 믿겠다는 것인가? 그럼 내가 할 수 있다는 것을 한번 보여 주지.]


그러더니 비어 있는 오른 손을 가만히 내밀어서 율리타를 움켜쥐는 시늉을 하였다. 마치 허공을 움켜쥔 것처럼.


그러자 마치 허튼짓을 하는 것 같은 모습이 우스운지 율리타가 얼굴에 비웃음을 띠고 가만히 바라만 보았다.


그런데 갑자기 율리타 주변에 흰 안개 같은 것이 뭉치더니 커다란 손모양을 이루어 율리타를 힘껏 움켜쥐는 것이 아닌가?


도저히 눈을 뜨고도 믿지 못할 상황이었다!


율리타가 깜짝 놀라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을 치는데···, 태을 선인이 움켜쥔 손을 가만히 들어올리자 율리타가 허공으로 몇 장을 둥실 떠오르니 양측이 모두 놀란 눈으로 바라만 보았다.


태을 선인은 선인 수행이 백 년을 넘어서 법술(法術)과 마법(魔法)까지 깊이 깨우친 사람이다. 그러나 그 신통이 대단함에도 선인답게 가능한 그것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오늘도 어떻게든 이 싸움을 말려야 한다는 생각으로 어쩔 수 없이 그 일부를 드러냈을 뿐인 것!


들었던 손을 가만히 내려서 풀어주자, 바닥에 내려선 율리타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뒤로 몇 걸음을 물러섰다. 그러자 그 모습을 바라보던 태을 선인이 빙긋이 웃으면서 율리타에게 물었다.


[이래도 물러서지 않겠는가? 대신 내가 사례로 선물을 주겠네. 이것은 귀한 것이라 함부로 주지 않는 것일세.


우리 천인족이 신령스럽게 모시는 신수(神樹)인 천령수(天靈樹)의 열매지. 열매로는 신수로 자라지 않으니 선물로 주는 거야.


가루로 만들어 물에 타서 바르면 상처가 금방 아물고 진통제의 약효가 있어서 통증도 없애 준다네.


조그만 항아리에 담아서 발효시키면 건강을 지켜주는 향기로운 술이나 차가 되고······.]


태을 선인이 품속에서 황금빛으로 빛나는 조그만 열매 스무 개가량을 꺼내어 내밀었다. 그러자 율리타가 상체를 살짝 굽히고 커다란 두 손을 내밀어서 열매를 공손히 받았다.


신기하다는 듯이 열매를 찬찬히 살펴본 뒤에 다친 사람도 있어서 요긴하게 쓰일 것 같으니 일단 봇짐에 챙겨 넣었다.


[알겠습니다. 저희도 더 이상은 피해를 원치 않으니 이만 물러 가겠습니다. 그리고 선물은 감사히 받겠습니다.]


공손하게 꾸벅 고개를 숙이며 선인에게 인사를 하더니 뒤로 돌아섰다.


“우리는 이만 왔던 길로 돌아간다.”


율리타가 앞장서서 걸어가자 거인들은 거동이 불편한 동료들을 부축하여 대장을 따라 남쪽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보이지 않는 곳까지 한참을 가던 거인들이 한곳에 덜퍼덕 주저앉았다. 서로의 몸을 살피고 받은 열매를 작은 돌로 으깨어서 물에 개더니, 다친 곳에 바르고 상처를 싸매며 서로를 돌보았다.


이때 수련 생도 중에서 제법 똘똘하게 생긴 녀석이 율리타를 바라보며 조금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말을 건넸다.


“율리타님! 주먹만 한 노인네한테 괜히 겁먹고 왔나 봐여.”


그러자 율리타가 생도들을 둘러보며 고개를 설레설레 내저었다.


“얘들아 말도 마라. 생긴 건 쥐톨만 해도 그 대머리 늙은이가 무슨 도술(道術)을 부리는지, 한 손으로 나를 움켜쥐고 들었다 놨다 하는데 정신이 하나도 없더라. 어휴~ 정말 혼났어.”


“그런데 왜 한참을 서로 바라보고만 있었어여?”


“말도 마라. 머릿속으로 소리도 없이 말을 하는데, 말하지 않아도 내 생각을 모두 읽어 버리더라. 그 노인네는 늙은 요괴(妖怪)야 요괴.”


“아유~ 창피혀! 돌아가서 어떻게 주먹만 한 사람들한테 얻어맞고 도망쳐 왔다고 얘기를 해여. 나 몰라여~”


“얘들아! 돌아가면 오늘 얘기는 절대로 누구에게도 말하면 안 된다. 우리만 아는 비밀이야 비밀! 알았지? 말하는 놈은 내가 나중에 혼내 줄 거야.”


그러자 이구동성으로 ‘그래요, 알았어요’ 하는데 한쪽에서 멍청하게 생긴 두 녀석이 머리를 맞대고 수근거린다.


“이 좋은 야기를 어떻게 말을 안 하고 감춘다냐? 속이 터지게 잉?”


“생활이 우리를 속일 때는 슬퍼하고 노할 줄 알아야 혀어~, 참고 숨기면 마음속에 병이 되는 겨~.”


개구쟁이 녀석 둘은 여기저기 떠들고 다닐 생각에 벌써부터 입이 근질거리고 얼굴에 웃음꽃이 피어났다.


입밖으로 나온 비밀(秘密)은 원래 ‘비밀이니까 너만 알아’ 하면서 입에서 입으로 퍼져 나가는 법인데, 모두 보고 듣고 하였으니 철없는 이 거인들이 정말로 비밀을 지키겠는가?



거인들이 떠나자 태을 선인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땅으로 내려오더니 대장(大將)인 안율을 불렀다.


“여보게! 부상자를 포함해서 백 명만 남기고 빨리 나머지를 데리고 가서 임시 주거지를 준비해야지. 어서 가게.”


“예, 알겠습니다. 바로 준비하여 떠나도록 하겠습니다.”


해가 벌써 중천을 지났으니 한쪽에서는 부상자를 치료하며 주변을 정리하고, 이백여 명의 천령대는 서둘러 안율을 따라서 다시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러자 태을 선인이 남은 사람들에게도 지시를 내렸다.


“부상자는 한쪽으로 눕히고 몇 사람이 붙어서 치료를 하도록. 그리고 나머지는 먼저 출발한 사람들이 곧 도착할 것이니 빨리 맞을 준비를 해라.”


“예! 알겠습니다.”


모두 바삐 움직이기 시작하자 그제서야 숲속으로 흐릿하게 멀어져 가는 거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허~ 정말 덩치가 크기는 엄청 크구나! 그래도 사람들이 참 순진하네.”


그렇게 감탄을 하면서 내려왔던 길로 일행을 찾아서 다시 올라가는데 그 모습이 눈 깜박할 사이에 사라져 버렸다.



이제 천둔산의 드넓은 정상에는 아무도 남지 않았다. 산길이라 가져가기가 힘든 물건들은 한쪽에 쌓여 있고, 공간균열은 아직도 완전히 닫히지 않아서 수렁과 같은 긴 틈을 드러내고 있었다.


부드러운 바람 한 줄기가 오후의 햇볕에 보석(寶石)처럼 반짝이는 흰 눈을 질투라도 하듯이 휘몰고 스쳐 지나갈 뿐이다.


곧이어 흰구름 한 자락이 다가와서 중턱에 걸리더니 점점 거품이 쌓이듯이 산 정상은 다시 흰 운무(雲霧)에 휩싸이고 말았다.


놀라서 도망쳤던 동물들은 다시 자신들의 보금자리로 돌아와서 무슨 일이 있었나 궁금한지 코를 킁킁거리며 이곳저곳을 기웃거렸다.


쥬맥도 신녀를 따라서 여러 고아들과 함께 산을 내려와 첫 번째 거점(據點)에 이르렀다. 약간 쌀쌀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흰 눈이 쌓이지 않고 풀들이 자라 있어서 한결 추위가 덜했다.


그곳에서 나누어 주는 육포로 허기를 채우고 물로 갈증을 해소하니 그래도 살 만했다. 그때 신녀가 다가오더니 물었다.


“네가 쥬맥이라고 했지?”


“예, 쥬맥인데요.”


“이 산만 내려가면 따뜻한 곳이라니까 조금만 참으렴. 저 밑에 풀들을 봐.”


쥬맥은 신녀가 가리키는 손끝을 따라서 나무 사이로 살짝 엿보이는 산하를 내려다보았다. 아닌 게 아니라 그곳에는 따사로운 햇볕에 풀들이 무성했다.


“추운데 빨리 내려갔으면 좋겠어요.”


“그래, 잠시만 쉬었다가 얼른 가자.”


신녀가 다른 아이들에게 건너가자 쥬맥은 멍하니 서서 나무 사이로 비치는 산하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쥬맥은 지금 부모 형제를 잃은 슬픔은 둘째 치고, 한기(寒氣)에 오들오들 떨던 기분에 어서 추위가 없는 곳으로 가고 싶은 것이 가장 큰 바램이었다.



한편, 안율은 거인들과의 싸움으로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시간을 많이 빼앗겼기 때문에 임시 거주지를 찾아서 서둘러 내려가고 있었다.


더 이상의 난관(難關)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천령대를 이끌고 가면서도 혹시 주거지로 삼기에 좋은 자리가 없는지 사방을 둘러보기 바쁘다.


이미 천둔산은 다 내려왔고···, 둘레를 감싸고 있는 산 사이의 계곡 틈으로 빠져나오자 아스라이 펼쳐진 태고(太古)의 밀림이 모습을 드러냈다.


산 아래는 제법 따뜻하여 추위를 전혀 느낄 수가 없었고 여름처럼 사방에 푸르름이 가득하다.


아름다운 들꽃이 피어 있는 구릉에는 이름 모를 새소리가 울려 퍼지고, 벌과 나비가 떼 지어 날고 있어서 마치 무릉도원(武陵桃源) 같은 모습인데······.


이백여 장을 더 내려가니 수백만 평의 드넓은 초원 같은 들판에 도착했다.


주위는 낮은 산과 넓은 잎을 가진 오 장 정도 높이의 나무숲으로 둘러싸여서 마치 분지(盆地) 같은 초원(草原)이었다.


“햐! 정말 좋구나. 꼭 천신께서 우리를 위해 만들어 주신 보금자리 같아.”


안율을 포함하여 천령대 무사들 모두가 멋진 들판을 홀린 듯이 바라보았다.


초원 가운데에는 산에서 흘러내린 넓은 하천이 완만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어느 곳은 키가 작은 이끼류로 덮여 있는가 하면 어떤 곳은 발목 높이로 풀들이 무성하게 자라 있었고.


풀 냄새와 꽃향기가 흐드러지게 어우러진 곳! 바로 살아 있는 자연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곳이었다.


약간 높은 구릉에서 내려다보니 정말로 신이 내려 주신 보금자리 같았다. 그래서 안율을 포함하여 천령대 모두는 이 곳에 임시 주거지를 만들자는 데에 이구동성(異口同聲)으로 찬성하였다.


이제 자리를 정했으니 빨리 준비를 해야 한다. 어젯밤부터 시작해서 정신없이 이동하면서 비상식량으로 주린 배를 대충 채우다 보니, 허기진 배에서는 꼬르륵 소리가 나지만 한눈을 팔 시간이 없었다.


벌써 해가 기울어 가고 있기 때문에 한두 시진이 지나면 곧 저녁이 될 것이다.


그리고 뒤이어 출발한 사람들이 도착하기 전에 최소한의 기본적인 것은 미리 해 놓아야 하고 말이다.


안율은 천령대를 집합시켜서 조(組)를 나누어 임무를 지시했다.


“1조와 2조 백 명은 둘레를 모두 둘러보고 위험 요소를 제거하며 사주 경계(四周警戒)를 펼친다.


3조와 4조 백 명은 한울님께서 머무실 자리부터 시작하여 천사장님과 대신녀님, 그리고 부족 단위의 구획을 정하여 머물 자리를 준비하도록.


그리고 1, 2조는 사주 경계 중에 혹시 먹을 수 있는 짐승이 있으면 사냥을 해서 먹거리도 준비한다. 그동안 모두 비상식량만 먹어서 속이 느끼할 것이다. 그러니 뱃속을 달래야지. 모두 알겠는가?”


“예! 알겠습니다!”


각 조장들이 자기가 맡은 무사들을 데리고 분담한 업무를 하러 흩어졌다.


3조와 4조는 시원마(始原馬)에 싣고 온 짐들을 내리고 도구를 챙기더니 주거지 별 위치를 잡으며 바닥 정리에 들어갔다.


1조와 2조는 또 십 명씩 짝을 이루더니 시원마를 타고 사냥을 하는 무사와, 경계 업무(警戒業務)를 서는 보초로 나뉘어서 사방으로 흩어졌다.


말처럼 생긴 시원마는 등과 발목이 갑각으로 되어 있었다. 등 높이가 여섯 자(1.8m)에 몸길이가 열 자(3m), 땅에서 머리까지의 높이도 열 자에 이른다.


키가 칠 척 전후인 천령대가 올라타고 달리자 바람처럼 내달리는데, 목뒤에서 두 자 길이의 말갈기가 깃발처럼 흩날리니 그 모습이 꼭 멋들어진 한 폭의 그림과 같았다.


이렇게 정신없이 주변을 살피랴 주거지를 만들랴 부산하게 움직이던 사람들 중에서, 서쪽 들판을 살피던 1조 무사들이 또다시 기겁할 만한 일과 맞닥뜨렸으니······.


물론 앞서 만난 거인들도 컸지만 이번에 만난 괴물은 그보다 더 큰 공룡(恐龍)과 같은 동물들이었다.


피부는 악어처럼 제법 딱딱하고 질긴 갈색 피부로 덮여 있었으며 길다란 솜털이 듬성듬성 나 있었다.


무엇보다도 몸통이 높이 열일곱 자(5.1m)에 길이는 마흔 자(12m) 정도인데, 목 길이만 해도 스무 자(6m)에 이르러서 무게가 팔만삼천 근 정도 나가는 거대 중량의 공룡과 동물인 것이다.


구릉 밑에서 성체 두 마리가 느긋하게 풀을 뜯고 있다가, 구릉을 넘어오는 천령대와 맞닥뜨리자 하늘을 향해서 엄청나게 큰 소리로 포효하였다.


더 이상 다가오지 말라는 경고였다.


“우어어어어어어!!”


그 소리가 어찌나 큰지 평원 전체에 울려 퍼지자 모두 깜짝 놀라서 소리가 나는 곳을 바라보았다.


결국 위험을 느꼈는지 말을 타고 다가오는 천령대를 향해서 거대한 목을 흔들며 돌진해 오는데, 그 모습이 마치 작은 산이 움직이는 것만 같았다.


그래도 동작이 굼뜬 편이라 날랜 시원마를 탄 이십여 명의 천령대 무사들이 거리를 띄우고 그 주위를 맴돌았다.


함부로 날뛰지 못하게 제동을 걸면서 어떻게든 사냥할 방법을 찾는 것이다.


‘이걸 어떻게 잡지?’


모두 머릿속으로 궁리를 하는데···, 오늘 만나는 것마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덩치가 너무 커서, 이 별에 사는 생명체는 모두 이처럼 큰 것은 아닌지 한편으로는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오늘 처음 만난 이 거대한 동물을 천인족은 훗날 ‘인드리코룡’이라고 이름 지었다.


바로 거대한 초식공룡이라는 뜻으로.




감사합니다. - 설련하(偰輦河)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3

  • 작성자
    Lv.32 무림존자
    작성일
    21.07.01 14:19
    No. 1

    ㅎㅎㅎ ! 거인들 대화가 너무 재밌어요. ' 생활이 우리를 속일 때는 슬퍼하거나 노할 줄 알아야 혀~ 그것을 참고 견디면 병이 되는 겨~' 퓨쉬킨이 무덤에서 뛰어나오겠네요.

    찬성: 36 | 반대: 0

  • 작성자
    Lv.28 철없는사과
    작성일
    21.08.08 17:19
    No. 2

    ㅋㅋ 거인들도 거인들이지만 초식공룡이 ... 아.. 지구라는 별에서
    아기공룡 둘리도 만날 수 있길..(쿨럭.. )^^;;;
    느낌이 딱 태고적 모습이 떠올라 다음편도 풍광이 장난이
    아닐 것 같아 설레요~^^//

    찬성: 7 | 반대: 0

  • 작성자
    Lv.99 세비허
    작성일
    22.10.21 14:18
    No. 3

    재미있게 읽고 갑니다

    찬성: 1 | 반대: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삶의 위대함 - 한울 쥬맥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23 23화. 무인을 꿈꾸다 +1 21.06.29 1,501 50 18쪽
22 22화. 동굴 속의 기연(奇緣) +1 21.06.29 1,506 50 18쪽
21 21화. 새 친구 점박이 +1 21.06.29 1,482 50 18쪽
20 20화. 새로운 안식처(安息處) +1 21.06.29 1,486 49 19쪽
19 19화. 우르표범과의 조우 21.06.29 1,464 47 19쪽
18 18화. 홀로 숲에 버려진 아이 +1 21.06.29 1,469 49 18쪽
17 17화. 풍토병(風土病) +2 21.06.29 1,464 48 18쪽
16 16화. 화해협상(和解協商) +1 21.06.29 1,464 49 19쪽
15 15화. 핏물은 강이 되어 흐르고 +2 21.06.29 1,475 50 18쪽
14 14화. 협상 결렬과 힘겨루기 +2 21.06.29 1,464 50 18쪽
13 13화. 울트의 읍참마속(泣斬馬謖) +2 21.06.29 1,500 50 17쪽
12 12화. 반인족 선발대와의 전투 +2 21.06.29 1,557 50 17쪽
11 11화. 대륙지도 작성 +2 21.06.29 1,606 49 21쪽
10 10화. 비월족과 검치범 +2 21.06.29 1,615 48 19쪽
9 9화. 들개 떼의 습격 +2 21.06.28 1,689 49 18쪽
8 8화. 반인족과의 격돌(激突) +2 21.06.28 1,757 48 19쪽
7 7화. 사건의 발단(發端) +2 21.06.28 1,863 50 19쪽
6 6화. 첫 주거지 +2 21.06.28 2,011 52 18쪽
» 5화. 선인과 거인(巨人) +3 21.06.28 2,165 50 18쪽
4 4화. 거인족과의 조우(遭遇) +2 21.06.28 2,387 53 18쪽
3 3화. 천인족의 대이동(大移動) +3 21.06.28 2,639 55 18쪽
2 2화. 서장(2) 탈출(脫出) +3 21.06.28 2,835 56 19쪽
1 1화. 서장(1) 탄생(誕生) +5 21.06.28 4,651 58 18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