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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련하 님의 서재입니다.

삶의 위대함 - 한울 쥬맥

웹소설 > 작가연재 > 무협, 퓨전

완결

설련하
그림/삽화
설련하
작품등록일 :
2021.06.28 08:42
최근연재일 :
2022.10.17 08:20
연재수 :
290 회
조회수 :
378,711
추천수 :
7,321
글자수 :
2,467,752

작성
21.06.28 09:41
조회
1,862
추천
50
글자
19쪽

7화. 사건의 발단(發端)

삶의 위대함 - 한울 쥬맥




DUMMY

지구로 이주(移住)하고 드디어 첫날 아침이 밝았다. 아직도 어둠이 채 가시지 않았건만, 부지런한 사람들은 벌써부터 희뿌연 안개 속에서 열심히 움직이고 있었다.


어젯밤에 지도자들의 회의에서 시원평원(始原平原)이라고 이름이 붙여진 이곳은, 천인족에게는 지구에서 두고두고 잊지 못할 고향과 같은 곳이 되었다. 마치 자신이 태어난 태자리처럼.


천사장의 거처가 있는 주변에서는 아침부터 여러 사람이 바쁘게 움직였다.


천인족은 일월 일일을 신단(新旦)이라 하고 시월 삽십일을 천단(天旦)이라 하는데 종족의 2대 명절이었다.


이 두 명절은 사흘씩 편히 쉬면서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먹고, 부모와 일가친척을 찾아 뵈며 하늘과 조상님께 감사의 제를 지내는 날이다.


특히 천사장이 주관하여 대신녀와 함께 지내는 천제(天祭)는 반드시 한울도 참석하는 국가적 행사였다.


음양의 조화를 이룬다 하여 독신으로 살아가는 천사장과 대신녀가 함께 나서고, 제물은 생명체를 소중히 여기기 때문에 육류를 금하였다.


대신에 신성한 천령수의 열매와 함께 음양의 조화를 위해서 암꽃과 수꽃이 따로 피는 샨들라(암꽃)와 챤들라(수꽃)라는 거대한 꽃을 제단에 바쳤다.


이때 사용하는 제주(祭酒)로는 천령수 열매로 빚은 술을 사용했고.


원래는 천령수 아래에 신전을 짓고 백옥으로 단을 쌓은 제단 위에서 제물을 바치며 일월 일일에 천제를 지냈다.


그러나 지금은 막 이주해 온 상태라 그러한 준비를 할 수가 없어서 하루가 지난 오늘 천제를 지내기로 한 것이다.


장소도 아직 천령수를 심지 못하여 지도부의 거처가 있는 구릉 위에 돌로 임시 제단을 쌓고, 제물로는 가지고 온 천령수 열매와 술, 그리고 이곳 들판에 피어 있는 붉은 꽃과 푸른 꽃을 다발로 만들어서 제단에 바치기로 했다.


“빨리빨리 준비해라. 시간이 없다. 어서 서둘러.”


천제를 총괄하는 선인의 독촉에 따라서 준비하는 선인들과 신녀들의 손길이 제때를 맞추려고 바삐 움직였다.


드디어 찬란한 태양이 붉은 아침노을 속에서 빛을 뿌리며 힘차게 떠오르기 시작하자 천제가 시작되었다.


눈처럼 하얀 대례복(大禮服)을 갖추어 입고 머리에도 하얀 건을 쓴 천사장과 대신녀가, 하늘을 향해서 천천히 세 번을 절했다.


천사장이 푸른 꽃다발을 들고 먼저 나서고 대신녀가 붉은 꽃다발을 들고 뒤따라 제단 위로 오르더니, 이미 커다란 그릇에 담겨 있는 천령수 열매의 그릇 옆에 공손히 바치었다.


천사장이 단 아래 무릎을 꿇고 앉아서 잔을 드니 대신녀가 천령수 열매로 담은 제주를 큰 술잔에 가득 따랐다.


천령수 가지로 피우는 푸르스름한 향무(香霧)가 서기를 머금고 퍼져 나가는 가운데 세 잔의 술을 제단에 바치고, 천사장과 대신녀는 제단 앞에서 다시 세 번을 절한 뒤 그 앞에 앉았다.


하늘을 향해 두 손을 모아 합장하며.


“천신이시여! 우리 천인족이 천신의 가호 아래 무사히 이 지구에 도착하였나이다. 이 별에서 부디 앞으로 닥쳐올 모든 고난과 역경을 이기고······.”


종족의 안녕과 평화를 기원하면서 많은 시련이 닥치더라도 이를 극복하고 이겨낼 수 있도록 해 달라고 빌었다.


단 아래서는 한울을 포함하여 대족장과 부족장들, 선인들과 신녀들도 모두 땅에 엎드려 기원을 드리니, 그 분위기가 자못 엄숙했다.


천사장과 대신녀에 이어서 한울이 올라갔고, 대족장들도 그 뒤를 따르니 마침내 천제가 모두 끝났다.


뒤풀이로 선인들과 신녀들 수십 명이 나와서 선무를 추었다. 선인들은 푸른 제례복을, 신녀들은 붉은 제례복을 입은 채 한 마리 학처럼 고고한 자태로 춤을 추니 그 모습이 자못 엄숙하면서도 멋지게 어우러졌다.


뒤풀이마저 끝나자 제단에 바쳤던 천령수 열매 바구니를 내리더니, 주변과 각 가정마다 하나씩 고루 나누어 준다.


부족민 모두에게 새로운 별 지구에서의 축복과 안녕을 기원하면서······.


쥬맥도 어젯밤의 꿈을 생각하며 멀리 뒤편에서 천제를 지켜보다가, 신녀가 건네는 백령 하나를 선물로 받았다.


“자, 맛있는 것을 사서 먹으렴.”


“감사합니다.”


덥석 받기는 받았는데 상점이 아직 생기지 않았으니 당장 뭘 사 먹을 수는 없었고···, 손으로 공깃돌처럼 가지고 노는 작은 장난감이 되었다.



천제를 시작으로 정신없이 바쁜 나날들이 흐르고, 세 달이 지나자 시원평원의 여러 천인촌도 제법 모습을 갖추었다. 벌써 들판에서는 곡식이 자랐고.


일부 성장이 빠른 채소들은 요리를 해 먹을 만큼 크게 자라서 육류와 곡류 천지였던 식탁을 풍성하게 했다.


지구에 자생하는 먹거리를 찾기 위해서 여러 사람이 조사에 나섰고, 동물 사냥과 나물 채집에 식량 문제도 조금씩 해결되어 안정을 찾아가니, 사람들 얼굴에도 점차 웃음꽃이 피어났다.


그 사이에 안다 선인은 방어용 목책 주변으로 주술 진법을 마무리하고, 장인들과 함께 비거 다섯 대를 만들었다.


제대로 하늘을 날 수 있는지 시험 비행을 한 뒤에, 지도를 만들기 위해서 다섯개 조를 편성(編成)하여 여러 방향으로 날려 보내기로 했다.


“반드시 지도를 만들 수 있는 모든 자료를 수집해서 와야 한다.”


미지의 세계로 떠나는 사람도 보내는 사람도 모두 비장(悲壯)한 표정이다.


비거는 바람에 의지하여 나는 기구이기 때문에 두 명밖에 탈 수 없었다. 물론 보조로 날개를 돌려 동력을 얻을 수는 있으나 비상시에 사용하는 정도였다.


한 명은 조종을 하고 한 명은 지형 그리기와 기록을 맡아서, 나중에 그 결과들을 바탕으로 전체 지도(地圖)를 작성하기로 한 것인데······.


이 비거는 천인족이 아리(峩理)별에서도 만들어서 사용했던 것으로 유령수(幽靈樹) 또는 유령목이라고 부르는 나무로 만든, 하늘을 나는 기구였다.


비거를 만드는 유령수는 각도와 빛에 따라서 반투명하기도 하고 때로는 부분적으로 투명하기도 했다. 그래서 눈에 잘 보이지 않아 진법이나 방어용 차단막에 사용하기도 하는데, 높이가 오 장(15m)에서 큰 것은 십 장(30m)이 넘게 자라는 고급 나무였다.


나무가 강하면서도 부드러워서 얇게 가공해도 잘 부러지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매미 날개처럼 가벼워서 비거를 만들어 구릉에 올라 달리면 바람을 타고 새처럼 하늘로 날아오를 수 있었다.


바람의 세기에 따라서는 한 번에 수천 리까지도 날 수 있었고 말이다.


제작 초기에는 많은 실패로 다친 사람과 죽은 사람도 있었으나, 많은 실험을 통하여 제작법을 보완해서 이제는 안정적으로 비행이 가능했다.


몸무게가 적은 두 명 정도가 탈 수 있어서 무거운 짐이나 무장이 어려운 관계로, 경계(警戒)나 관찰용(觀察用)으로만 거의 사용해 왔다.


이번에 만든 비거는 이주 시에 가지고 온 유령수의 목재를 모두 사용하여 겨우 만든 것이다.


이 비거 다섯 대가 마치 대붕과 같이 시원평원에서 날아오를 때,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바라보며 박수를 치고 크게 환호하였다.


그리고 이 별 곳곳에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지 모르는 상황이라서 모두 무사히 귀환하기만을 빌었고.


쥬맥도 새로 사귄 친구들과 함께 날아오르는 비거를 멀리서 바라보며, 자신도 언젠가 저렇게 하늘을 날 수 있을 거라는 꿈을 키웠다.


“우와! 멋져. 하늘을 새처럼 나네.”


“맥이 너도 저처럼 날고 싶지?”


“그럼! 나도 어른이 되면 꼭 하늘을 날아다니는 사람이 될 거야.”


“그럼 너는 무사가 되어야겠네.”


“무사가 되면 하늘을 날 수 있는 거야? 정말이지?”


“응, 우리 아빠가 무인의 경지가 화경에 이르면 하늘도 날 수 있댔어.”


친구들은 쥬맥을 그냥 맥이라고 불렀다. 다들 성이 쥬씨라고 생각한 것.


무인이 되면 하늘을 날 수 있다는 말에 쥬맥은 크면 꼭 무인이 되고 싶었다. 저 푸른 창공을 마음껏 날기 위해서······.



바쁜 생활 속에 부모를 잃은 고아들의 슬픔도 조금씩 묻혔고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많이 잊혀져 갔다.


고아들은 따로 모아서 대신녀 아래의 신녀들이 돌보아 주었다. 그 안에서 자기들끼리 어울리며 친구도 사귀고 여러 가지 교육도 받는 과정에서, 아이들의 얼굴도 전보다 많이 밝아졌다.


쥬맥도 일곱 살 또래인 야수르와 하유리라는 두 친구를 사귀었는데, 교육은 같이 받지만 둘은 고아가 아니었다.


야수르의 아버지 야갈타는 부족의 무사인데 능력이 그다지 뛰어나지 않다 보니 계속 하류층에 머물렀다.


그래서 아들인 야수르는 잘나가는 집안 애들과 어울려서 자기보다 출세하기를 바랬으나, 고아인 쥬맥과 친하게 지내자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니 못마땅해서 자주 핀잔을 주었고.


그래도 야수르는 서로 편하게 지내는 쥬맥과 척척 죽이 잘 맞았다.


하유리는 여자 친구인데 마음이 맞는 친구가 없어서 늘 외톨이로 지내던 아이였다. 친구 없이 그렇게 홀로 지내다 보니 다른 애들 놀림감이 되기 쉬웠고.


그런데 다른 또래들에게 놀림을 당하거나 얻어맞을 때 쥬맥이 용감하게 나서서 편을 들어주니, 쥬맥과 친한 친구가 되어서 서로 의지하게 되었다.


원래 말수가 적고 수줍은 편인 하유리는 쥬맥이나 야수르와 같은 일곱 살이지만 여자라서 조숙한 면이 있었다.


그래서 쥬맥과 신랑 신부 소꿉장난도 많이 하였고, 크면 의지할 수 있는 쥬맥의 각시가 되겠다는 철부지 풋사랑을 가슴 한 편에 키워 나갔다.


커다란 눈망울에 뽀얀 살결, 예쁘장한 얼굴의 유리가 쥬맥과 같이 놀면서 다정하게 손을 잡고 걸어가면, 야수르가 가끔 질투를 하기도 하였으나 그래도 셋은 잘 어울려서 놀았다.


오늘도 쥬맥과 친구들은 오전에 모여서 교육을 받고 점심을 먹은 뒤, 촌락 여기저기를 함께 다니면서 재미있는 일이 없을까 하고 두루 찾아 다녔다.


천인족은 원래 말귀를 알아듣는 세 살 때부터 조기에 선인의 기본 호흡법인 토납술(吐納術)을 가르쳤는데···.


인성(人性)을 바로 하고 건강을 지키며, 선인이 될 수 있는 아이들을 조기에 찾아내기 위한 것이었다.


자질이 있는 아이는 선인이 될 수 있었고 법술과 마법도 배울 수 있었다. 물론 여자도 선인이 될 수 있었는데 그 경우에는 선자(仙子)라고도 불렀다.


일부 종교와 비슷한 집단에서는 도를 닦는 사람들 모두를 도인이나 진인, 또는 수사라 칭하기도 하였다.


선인이 되면 종족의 인재(人材)로 육성되지만 결혼을 못 하고 독신으로 살기 때문에 강제가 아니었고, 중간에 그만둔 사람들도 더러 있었다.


주술과 마법도 전에는 누구나 재능 있는 사람은 자유롭게 배울 수 있었다.


그러나 생명체를 대량으로 학살하는 사건들이 많이 발생하여, 백여 년 전부터 종족 차원에서 관리하는 선인 외에는 마법을 배우는 것이 금지되었다.


다만 특수한 상황하에서 종족을 위해 꼭 필요한 소수 한정인(限定人)에게는 제한적으로 허용되었지만······.


그래서 쥬맥과 친구들도 오전에는 토납술로 수련(修鍊)을 하고, 기다리던 자유 시간에 나들이를 나선 것이다.


오늘도 동네 이곳저곳을 셋이 기웃거리며 돌아다녔지만 별로 재미 있는 것이 없으니, 야수르가 쥬맥과 하유리를 들판으로 나가자고 꼬드겼다.


“맥아! 유리야! 우리 저쪽 벌판으로 꽃과 나비를 보러 가지 않을래?”


“어른들이 마을 주변에서만 놀고 그쪽은 가지 말라고 했는데 괜찮을까?”


쥬맥이 유리의 눈치를 보며 망설였다.


“나도 한번 가 보고 싶어. 맥아 우리 함께 가 보자, 응?”


이렇게 유리까지 나서서 부채질을 하니 쥬맥도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머리를 긁적이며 따라 나섰다.


“그럼 어른들이 안 볼 때 얼른 보고 오자. 들키면 혼날 거야.”


셋은 서로 손을 잡고 하천의 다리를 건너서 신나게 미지의 들판으로 달렸다.


들판은 일부만 개간되고 나머지는 그대로 남아 있었는데, 그곳에는 형형색색(形形色色)의 예쁜 꽃들이 피어 있고 벌과 나비가 떼 지어 날았다.


마치 동화 속의 꽃동산 같아서 세 아이들은 갈 때 생각을 까마득히 잊은 채 여기저기를 구경하느라고 한눈을 팔았다.


쥬맥과 야수르는 서로 경쟁이라도 하듯이 예쁜 꽃을 따다가 유리를 기쁘게 해 주기에 바빴고······.


그때 좌측에서 커다란 잠자리 수십 마리가 떼 지어 날아왔다. 양쪽의 날개 길이가 다섯 자(1.5m)에 몸통의 길이는 네 자(1.2m) 정도나 되는 거대한 잠자리였다.


아이들을 무서워하지도 않고 바람결을 따라 주변을 빠르게 날아다니며 곤충들을 잽싸게 잡아먹고 있었다.


빨강색 노랑색 파란색 그리고 오색으로 뒤덮인 것 등, 색색의 모습이 너무 예뻤다. 그러나 곤충을 잡아먹는 집게 같은 큰 입은 좀 흉측해 보였는데······.


너무 커서 감히 잡을 엄두를 내지 못하고 처음 보는 아름다운 모습에 모두 넋을 잃고 바라만 보았다.


이 잠자리는 나중에 천인족이 메가네잠자리라고 이름 붙인 대형 잠자리인데, 쥬맥 일행이 가장 먼저 발견한 것이다.


그때, 예쁜 잠자리만 바라보며 걷다가 유리가 무언가를 밟고 미끄러졌다.


비틀거리다가 넘어지면서 손으로 땅을 짚다 보니 손에 조그만 생채기가 나서 피부에 붉은 피가 배어 나왔다.


토끼와 비슷한 동물의 사체(死體)를 밟았는데···, 죽은 지 오래되어 몸체가 부패했는지 역한 냄새가 났다.


유리가 신은 가죽신에도 미끄러지면서 사체의 내장이 터진 오물이 잔뜩 묻어서 고약한 냄새가 풍겼다. 그러자 유리는 아프기도 하고 겁도 나서 ‘으앙’ 하고 크게 울어 버렸다.


수르는 어쩔 줄을 모르고 바라보기만 하는데, 그래도 더 친한 쥬맥이 나서서 울고 있는 유리를 다독이며 달랬다.


“유리야 괜찮아. 겉에만 조금 상처가 났으니까 금방 나을 꺼야.”


“신발도 더러워졌잖아! 엉엉~ 가면 아마 어른들한테 야단맞을 꺼야.”


“가만히 있어 봐. 신발은 내가 깨끗하게 닦아 줄게.”


쥬맥은 주변에 있는 풀과 나뭇잎을 뜯어서 냄새나는 오물을 닦아 내는데, 손에도 묻어서 역한 냄새를 풍겼다.


코에 손을 대고 냄새를 맡는 쥬맥.


“에이, 손에도 좀 묻었네, 아우~ 냄새야! 우리 가면서 물에서 씻고 가자.”


결국 우는 유리를 달래서 셋은 다시 돌아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때까지만 해도 이 조그만 사건이 쥬맥에게는 씻을 수 없는 큰 고통을 주고, 천인족을 발칵 뒤집어 놓는 일로 비화될지는 아무도 몰랐다.


쥬맥은 오면서도 역겨운지 손을 코에 대고 계속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았다.


한참을 걸어서 다시 처음에 건넜던 하천(河川)의 다리에 도착한 일행. 쥬맥은 유리를 바위 위에 앉히고 신발을 벗겨서 물가로 내려갔는데······.


맑은 물에는 이름 모를 크고 작은 물고기들이 수없이 떼 지어 헤엄치면서 유유히 놀고 있었다.


울긋불긋한 닭의 볏 같은 것이 등에 돋아 있는 물고기가 신기한지 한참을 살펴보던 쥬맥이, 드디어 유리의 신발에 묻은 오물을 물로 깨끗이 닦아 냈다.


손에 물을 묻혀서 신발을 깨끗이 닦아 낸 뒤에 손을 코에 대고 킁킁거리더니, 여전히 냄새가 가시지 않자 손을 다시 한 번 물에 씻었다.


그리고 신발을 들고 올라와서 유리의 작은 발에 예쁘게 신겨 준 뒤에 기분이 좋은지 밝게 웃었다.


“유리야, 이제 깨끗해졌다. 됐지?”


“응! 맥아 정말 고마워.”


“맥아! 유리야! 늦겠다, 어서 가자.”


어른들에게 들킬까 봐 셋은 서둘러 달려가기 시작했다. 달리기를 잘하는 수르가 잽싸게 달려가면서 쥬맥을 팔꿈치로 툭 치며 물었다.


“맥아! 너는 성이 쥬씨니? 다른 데서는 쥬씨는 본 적이 없는데······.”


“아니야, 그냥 이름이 쥬맥이야. 나는 성이 없어.”


“아버지의 성이 있을 거잖아?”


“우리 아버지도 성이 없었어. 그러니까 그냥 쥬맥이라고 불러.”


“싫어, 그럼 넌 지금부터 쥬씨야. 계속 맥이라고 부를래. 그치 유리야? 지금부터 맥이는 쥬씨다.”


“응, 나도 그냥 맥이라고 부르는 게 좋아. 우리가 성씨를 만들어 주자.”


그날부터 쥬맥은 성이 쥬씨가 되어 버렸다. 그때만 해도 천인족의 하류층에는 성씨(姓氏) 없이 이름만 있는 사람도 제법 많았다.


들판에서 놀고 온 저녁부터 쥬맥은 온몸에 열이 오르고 가슴과 등에 울긋불긋한 열꽃 같은 반점이 생겨났다.


담당 신녀가 열을 내리는 약을 먹이고 물수건으로 닦아 주어도 별 차도(差度)가 없었고······.


그때만 해도 모두 감기나 몸살로 알고 걱정만 하면서 지켜볼 뿐이었다. 그러나 하루가 가고··· 열흘이 흘러도··· 그 병은 쉬 낫지 않았다.



한편, 천인족 조직에도 불안한 평화 속에 여러 가지 변화가 생겼다.


기존에 있던 한울의 수신호위(守身護衛)들이 모두 죽어서, 천령대 대장 중의 한 사람이었던 안율이 정식으로 수신호위의 수장(首長)이 되었다.


그리고 천령대에서 무예가 뛰어난 무사들 중에 오십 명을 추려서 새로운 수신호위로 삼고, 한울의 신변을 한시도 떨어짐 없이 호위하게 하였다.


수신호위들은 천령대의 무거운 갑주를 벗고 대신 가벼운 검은색 경장(輕裝)차림에 도검과 손목 보호용 투갑 등 필수 장비만을 착용했다.


이는 움직임에 장애가 되는 것을 모두 제거하여 언제든지 번개처럼 움직일 수 있도록 기본 태세를 갖추는 것이다.


천령대는 원래 한울 직속의 군대와 같은 조직인데, 삼십만이 넘던 기마대가 이제는 삼천여 명밖에 남지 않았다. 더구나 수신호위를 빼고 나니 이제 삼천 명도 채 되지 않아서 인원 충원이 필요했다.


그래서 보병 및 보급병 중에서 인원을 선발하여 보충하고 총대장 한 명, 대장 세 명, 부대장 여섯 명에 대(隊)별로 천 명씩 3개 대를 두어 총 삼천십 명 전원을 기마대로 편성했다.


그리고 대족장도 살아남은 세 명의 산하에 각자 자치 무사대를 두도록 하고, 부족도 세 개로 합하여 다시 재편성했다.


그 외에도 천사장과 대신녀 산하(傘下)의 조직도 재정리를 하다 보니 인력의 부족함을 절실하게 느꼈는데······.


더구나 다른 종족과 큰 전쟁이라도 하게 되면 멸족(滅族)에 이를 수 있기 때문에, 각 가정에는 출산을 늘리기 위한 장려 정책이 전달되었고 그에 따른 여러 가지 보상안도 포함되었다.


교육과 농사, 수렵 및 의료체계 확립, 기지 관리, 전문기술자 관리, 무기 제조, 시원마와 가축 확보 등 수많은 일들이 하나씩 빠르게 자리를 잡아 갔다.




감사합니다. - 설련하(偰輦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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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2

  • 작성자
    Lv.32 무림존자
    작성일
    21.07.01 14:23
    No. 1

    비거는 옛날에 우리 선조들이 만들었다는 그 비행기구에서 따온 것인가요? 설마 아니겠죠?

    찬성: 36 | 반대: 0

  • 작성자
    Lv.28 철없는사과
    작성일
    21.08.13 23:37
    No. 2

    무슨 일이 생기려는지..아이가 아픈 것도 그렇고
    유리도 같이 앓고 있는 지 괜시리 벌판으로 나가자고 한건
    야수르인데 고아인 쥬맥이 뒤집어 쓸까봐 걱정이네요.. ㅜㅜ

    찬성: 7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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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23 23화. 무인을 꿈꾸다 +1 21.06.29 1,501 50 18쪽
22 22화. 동굴 속의 기연(奇緣) +1 21.06.29 1,506 50 18쪽
21 21화. 새 친구 점박이 +1 21.06.29 1,482 50 18쪽
20 20화. 새로운 안식처(安息處) +1 21.06.29 1,486 49 19쪽
19 19화. 우르표범과의 조우 21.06.29 1,464 47 19쪽
18 18화. 홀로 숲에 버려진 아이 +1 21.06.29 1,469 49 18쪽
17 17화. 풍토병(風土病) +2 21.06.29 1,464 48 18쪽
16 16화. 화해협상(和解協商) +1 21.06.29 1,464 49 19쪽
15 15화. 핏물은 강이 되어 흐르고 +2 21.06.29 1,475 50 18쪽
14 14화. 협상 결렬과 힘겨루기 +2 21.06.29 1,464 50 18쪽
13 13화. 울트의 읍참마속(泣斬馬謖) +2 21.06.29 1,500 50 17쪽
12 12화. 반인족 선발대와의 전투 +2 21.06.29 1,557 50 17쪽
11 11화. 대륙지도 작성 +2 21.06.29 1,606 49 21쪽
10 10화. 비월족과 검치범 +2 21.06.29 1,615 48 19쪽
9 9화. 들개 떼의 습격 +2 21.06.28 1,689 49 18쪽
8 8화. 반인족과의 격돌(激突) +2 21.06.28 1,757 48 19쪽
» 7화. 사건의 발단(發端) +2 21.06.28 1,863 50 19쪽
6 6화. 첫 주거지 +2 21.06.28 2,011 52 18쪽
5 5화. 선인과 거인(巨人) +3 21.06.28 2,164 50 18쪽
4 4화. 거인족과의 조우(遭遇) +2 21.06.28 2,387 53 18쪽
3 3화. 천인족의 대이동(大移動) +3 21.06.28 2,639 55 18쪽
2 2화. 서장(2) 탈출(脫出) +3 21.06.28 2,835 56 19쪽
1 1화. 서장(1) 탄생(誕生) +5 21.06.28 4,651 58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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